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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나눔 스크랩 `슬픔과 분노, 그리고 창조` 정신건강 전문의 이나미 [심리톡톡 나와 만나는 시간]
정선애 추천 1 조회 375 18.10.16 20:52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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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톡톡 나와 만나는 시간](6) 정신건강 전문의 이나미

 

'슬픔과 분노, 그리고 창조'

 

ㆍ외로워야 해요, 가슴이 뚫려야 해요… 그래야 새로움이 생겨요

 

▲ 슬픔과 절망 없인 창조 역시 불가능

… 창조적 에너지는 이상한 것과 정상적인 것의 중간에서 나와…‘작은 나’ 버리고 ‘큰 나’를 지향해야

 

 

경향신문 연례기획 ‘심리톡톡-나를 만나는 시간’ 6월 강연에서는 이나미 박사를 초청해 슬픔과 분노의 힘에 대해 재평가하는 시간을 가졌다. 융 심리학 전문가로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 원장으로 일하면서 <오십후애사전> <한국사회와 그 적들> <슬픔이 멈추는 시간> 등 유려한 심리에세이들을 발표해온 그는 슬픔과 절망 없이는 창조 역시 불가능하다는 역설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난 13일 저녁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여적향에서 열린 강연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이나미 심리분석 전문가가 지난 13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심리톡톡’ 강연에서 ‘슬픔과 분노를 넘어서’란 주제로 청중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심리톡톡-나와 만나는 시간]심리치료 전문가 이나미 '슬픔과 분노를 넘어서' ①

 

 

 

 

안녕하세요. 불타는 금요일에 공부하러 오시다니 대단하시네요. 때도 그래서 제가 강의 지루하지 않게 하려면 웃겨야 하는데, 웃는 걸 캡처해서 뜨면 어떻게 하나. (웃음)

이제 사람들이 간신히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많은 생각들을 하시나 싶어요. 경향신문사에서 하는 강의라서 진보적인 사람들 많이 오시겠다 했는데. 요즘 기사도 보고 이러면서 혼자서 막 분개했다가 이러고 하는데요. 그런 심각한 얘기하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아요.

사랑방 같은, 여적이라는 단어도 참 이쁜데요. 공간도 이쁘구요. 제가 가지고 있던 분노라는 게 공간에 들어오니까 가라앉는 것 같아요. 여기 오신 분들의 따뜻한 얼굴 때문인 것도 같고요.

 

사실은 여러분에게 말씀 드리려는 것은 쉽지 않아요. 슬픔이 어떻게 창조적인 에너지를 내느냐고 하죠.

오늘 발표의 주제잖아요. 언뜻 생각하면, 슬프면 우울하잖아요. 우울하면 정신·신체 에너지가 떨어지고 생산성 떨어지고 이럴 것 같잖아요. 생각 외로 많은 실험에서 기분이 좋아서 붕 떠서 좋은 사람보다 때때로 슬프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창조적 에너지가 응축돼 있더라라는 결과가 있어요.

 

 

<이미지> 포르츄나, 사피엔시아, 관세음보살

 

 

운명을 관장하는 신들이죠.

 ‘포르츄나’는 재물을 가져다주는 신이고요. ‘사피엔시아’는 지혜의 신입니다. ‘관세음보살’은 중국 쪽에서 운명을 헤쳐나가는 지혜로운 신으로 알려져 있죠.

그림을 보시면 포르츄나가 가지고 있는 물고기 같은 것에는 금이 들어있어요. 포르츄나가 말하는 운명은 재물이죠.

시파엔시아는 가슴이 둘인데 이 가슴으로 젖을 먹여요. 가장 힘들 때 어머니가 젖을 주듯이 힘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젖을 먹여줌으로써 헤쳐나가게 하는 신이죠.

관세음보살은 여러 가지 이형이 많은데, 중국의 여러 전설 중 하나는 관세음보살이 어려서부터 자신은 비구니가 돼겠다 하니까 왕과 왕비가 공주인데 어떻게 그렇게 되느냐 절대로 안 된다 해서 가둬놓고 했어요. 그 공주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에 가거든요. 왕과 왕비가 사람을 보내서 절에서 견디지 못하게 굉장히 핍박을 하라고 합니다. 주지 스님이 못살게 굴었지만 꿋꿋히 버텨요. 그래서 불을 질러 거기에 있는 사람들 죽게 하는데 관세음보살만 살아남습니다. 왕과 왕비가 더 이상 안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왕과 왕비가 병이 들었는데 의사가 와서 말하길 ‘산 사람의 눈과 살을 먹으면 다시 살아난다’.

그 소리를 듣고 관세음보살이 자기 눈을 떼고 팔을 잘라서 부모에게 줘요. 왕과 왕비는 낫고 관세음보살은 손이 천개, 눈이 천개가 생깁니다. 끔찍한 이야기지만 원형적인 모티브가 되는 거죠.

우리에게도 비슷한 전설이 있죠. 바리데기 전설. 7번째니까 버려라 했는데 그 딸이 지하세계로 가서, 또 7자녀를 낳고 거기서 신비한 묘약을 갖고 있는 샘물을 정성스레 돌보는데 왕과 왕비가 아프다는 얘기를 듣고 그 물을 들고 가서 살려주는 이야기죠.

 

이걸 말씀드리는 이유는 포르츄나의 운명을 개척하는 방식, 사피엔시아나 관세음보살이 운명을 극복하는 방식의 차이를 보여드리고 싶어서예요.

자기를 버리고 큰 것을 향해서 갈 때 운명이 진실로 더 한 단계 높고 깊게 변한다는 것이죠. 융 심리학에서 말하자면, 작은 나를 버리고 큰 나를 지향할 때 슬픔이 창조적인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창조성은 왜 중요한가

아무리 슬프더라도 슬픔을 극복해서 창조적으로 만들어야 하잖아요. 내가 사업에 실패해서 빚이 몇 억원 있다고 하면 항상 울면서 슬퍼만 할 수 없잖아요. 그 빚을 어떻게 갚아갈지 생각해야 하고요.

이혼했다고 하면 맨날 슬퍼할 수 없으니 배신당했다 할지라도 이런 상황에서 내가 새로운 것을 찾아봐야겠다는 것이 창조적인 에너지죠.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중요한 성격을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일단 우리 사회는 외모지상주의라서 이쁜지 안 이쁜지 따지지만 실상은 외모를 보는 게 57% 이하입니다. 그 사람의 야망을 보는 경우는 88%, 유머 89%, 배려심 92%, 학벌 93%입니다. 창조적인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느냐를 보는 경우가 94%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들, 자본주의 시대니까 성공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가장 돈 많은 사람들 통계로 보면 아이비리그 출신은 5%도 안 됩니다. 대학 안 나온 사람이 20% 육박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성공한 사람들이죠. 지능을 뛰어넘는 창조적인 에너지가 있는 사람들이에요.

슬픔은 사람을 창조적으로 만든다는 무슨 말일까요.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인데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포함한 모든 위대한 사람들은 우울한 병에 걸려 있거나 우울해하는 습관이 있다

창조적인 사람은 우울한 사람일까요.

 

니체의 경우를 볼까요. 철학자는 일관성이 있는데, 니체는 이 말 저 말 다 합니다.

니체는 수줍고 외롭고 고독한 남자예요. 맨날 피아노 치고 책 보고 이게 다였어요. 식모가 꼬셔서 유곽에 가는데 너무 깜짝 놀라서 도망쳐서 나와서는 그것만 생각합니다. (정말 순수한 사람이라서) 매독에 걸려서 엄청난 두통에 시달리고, 길거리에서 소리지르고 이러다가 나중에는 엄마랑 누이에게서 대소변 받게 하는 치매 상태로 죽음에 이릅니다.

니체 책을 보면 젊어서 쓴 것과 다르게 후기로 가면서 이상한 말이 나옵니다. 이상한 말이 나오지만, 창조적인 에너지는 이상한 것과 정상적인 것의 중간이에요. 엣지라고 하죠. 가장자리에 있을 때 창조적으로 됩니다.

경계 밖에 있는 사람들이 조금 더 창조적이에요. 보수적인 사람들은 창조적이게 되기는 어렵습니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지키고 관리하는 사람들이에요. 진보적인 사람들이 창조적이어야 하는데요.

 

***

우리나라 진보는 창의적이지 않아요. 아이디어가 없어요.

보수가 너무 싫지만, 진보가 대안을 제시 안 해줘요. 보수적인 사람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지만, 진보가 밸런스를 못 맞춘다는 거죠. 진보가 진보답지가 않아요. 굉장히 기득권에 집착해서 오히려 더 보수보다 보수스러운 그런 모습이 가끔 보여요.

우리나라 진보는 네트워크를 잘 형성 못하는 것 같아요. 오늘 문창극 총리 지명자 관련 기사도 나왔는데요. 너무나 기억나는 게 탕평인사라면서 친이계 쓴 것이라고 해요. 탕평책은 친박과 친이계 섞은 것이라는 거죠. 나머지는 사람이 아닌 것이죠. 근데 그런 것을 욕하지만, 진보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이죠. 노무현 대통령 때도 코드 인사 했잖아요. 지금보다는 낫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비판받는 이유 중 하나가 네트워크가 굉장히 작았던 거죠. 지금 우리가 보수를 욕하지만 진보도 네트워크를 형성하진 못한 부분, 진보가 진보스럽게 신속하게 나가지 못하고 항상 뒷북쳤던 것들, 뭔가 비전을 제시해서 아이디어 선점해야 하는데 신속한 결정 못 내리는 것들이 참 아쉽습니다.

 ***

 

 

<이미지> 한국의 천재들이죠. 이중섭 화백, 김수환 추기경, 진은숙 작곡가.

 

 

진은숙 작곡가는 중2때부터 말러 음악을 듣고 그때부터 작곡을 하기 시작했다고 해요. 이중섭은 안타까운 인생을 살았죠. 김수환 추기경은 종교적인 부분에서 전무후무한 분이죠.

진보건 보수건 나이가 젊거나 늦거나 아우를 수 있는 것도 사회적인 창조죠. 김 추기경은 여유가 있죠. 추기경은 무수한 사람을 만났기에 여러분도 만났을 수 있고, 저도 만난 적이 있는데요. 재밌고 여유있고 잘 들어주시고 그래요.

창녀였던 여자가 증언을 하는데요. 다른 유명인사들은 자기를 만나서 “왜 그렇게 사느냐”, “빨리 나와라” 등의 설교를 하는데 추기경은 이야기를 듣고, “고생 많이 했겠네” 라며 딱 거기까지지만 한다는 거예요. 잘 들어주는 능력이 있는 거죠. 판단하지 않고 공감해주고 섣부른 조언하지 않는 것이 창조적인 리더입니다. 지시를 잘하는 리더는 집단을 창조적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지시를 잘하는 사장은 “불 날 위험이 있으니까 조심하라”라고 지시만 합니다. 그러면 부사장과 간부들은 직원들에게 “불 날 위험이 있으니까 조심하라”고 지시하고, 직원들은 청소하는 사람들에게 같은 지시만 합니다. 그럼 지시만 하고 아무도 실행에 옮기지 않습니다.

지시하지 않는 리더는 “불 날 위험이 많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물어요. 그럼 알아서 아이디어를 꺼내요. 지시하는 조직과 다르게 창조적인 조직으로 변합니다.

잘 들어주는 스타일이 창조적인 지도자의 한 전형입니다. 좋은 지도자는 물처럼 흘러가는 지도자입니다. 창조적인 사회는 너무나 편안한 사회는 아니에요. 긴잠감도 있고 경쟁도 있고 적당히 스트레스를 받는 게 창조적인 삶입니다.

창조적인 삶을 이끌어내려고 지도자가 악역을 할 때도 있어요. 애들에게 소리 한 번 안 지르고 키울 수 없잖아요. 공동체의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게 2가지인데요.

상대방 힘들 때 들어주는 것이죠. 유머가 있어야 합니다.

추기경 중환자실 계실 때 잠깐 깨어나서 “나 부활했어” 라고 말했대요. 얼마나 유머가 있어요.

 

 

 

<이미지> 불행했던 천재들입니다. 괴테, 공자, 니체, 피카소

 

 

프로이드의 이론이 니체에서 많이 나왔어요.

천재 봉우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봉우리들이 있습니다. 프로이드를 만들기 위해 니체가 있었고 니체가 나오기 위해서 쇼펜하우어가 있었고, 쇼펜하우어를 만들기 위해서는 칸트가 있었죠.

피카소는 20세기 가장 천재적인 사람입니다. 피카소 그림의 90%는 거의 표절이라고 하는데요. 고전에서 아이디어 가져온 것입니다. 아흔이 넘을 때까지 작업을 했는데 보여드린 그림은 죽기 전에 그린 자화상입니다. 피카소는 결혼도 많이 했고, 뱀파이어처럼 젊은 여자 기를 뺏기도 했죠.

피카소를 만난 여성 중에 1명 빼고는 거의 자살했어요. 천재 뒤에는 천재에게 기를 빨린 사람이 많아요. 피카소가 죽기 전의 자화상을 보면 불행해 보이죠. 추기경과는 달라요. 피카소 역시 자기의 천재성 때문에 항상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거죠.

엄마들의 로망이 우리 아이가 세계적인 화가, 음악가 됐으면 하는 게 로망인데, 그런 아이가 피카소가 니체처럼 불행해도 괜찮다는 것을 알고 뒷바라지 해주시면 돼요.(웃음)

니체 엄마는 자기 아들 대소변 다 치우고 뒷바라지 했어요.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게 있고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어요. 너무나 창조적인 것이 행복한 것만은 아니죠.

 

 

*컬럼비아대의 실험

애들을 쉽게 칭찬하는 게 좋지만은 않다는 실험이에요. 창조적인 아이를 만드려면 “잘했다, 잘했다” 해야 할 것 같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라는 거죠. 공부 잘해서 성적 잘 받아가면 엄마가 “너무 잘했어. 우리 아이 최고야. 1등을 하다니”라며 엄청 기분이 업돼죠.

아이가 기분은 좋지만 상대적으로 불안하다는 거예요.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성적이 좋기 때문이구나. 성적이 떨어지면 안 사랑하겠구나’라고 생각한대요. 아이가 친구를 때리고 왔는데, 칭찬해주는 것도 아니죠. 항상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는 것이 인성개발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어느 그룹이 있으면 좋은 리더는 팀원들이 못해도 “잘했어” 하는 리더가 좋은 리더같잖아요. A+ 남발하는 학교가 결코 좋은 학교 아니죠. 자신 강의에 자신 있으면 아이들 야단칠 수 있어요.

 

긍정적 피드백과 부정적 피드백이 있습니다. DHEAS(디하이드로에피안드로스테론 설파이트)라는 호르몬과 cortisol(코르티솔)은 길항작용으로 하는 호르몬입니다. cortisol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분비되는 호르몬입니다. 스트레스 받으면 코르티솔이 나오는데 위계양도 생기고 성호르문이 이상해져서 생리불순이나 성관계도 잘 안되고 합니다.

출산율이 떨어진 것이 꼭 아이를 낳기 싫어해서가 아니라, 요즘 불임부부가 많아요. 이유 중 하나가 호르몬입니다. 초중고 아이들 보면, 초등학생들이 아줌마 이야기듯이 이야기합니다. “내 평생...”

 이미 대학 들어오기 전에 아이들이 지쳐버려요. 아이 낳고 결혼하고 그러려면 에너지가 남아있어야 하는데, 초중고 때 에너지 다 쓰고 대학에 와서도 취업하느라고 엄청 스트레스를 받죠.

지금 20대들은 말도 못해요. 코르티솔이 나와서 성관계도 잘 안 되잖아요. 관절에도 병이 생겨요. 아줌마들이 중년이 돼면 여기저기 아픈 것이 코르티솔의 영향입니다. 스트레스 많이 받으면 혈관 위축돼 심근경색, 뇌졸중, 암 등의 원인이 됩니다.

근데 몸은 참 신기해요. 코르티솔이 나오면 제가 말한 디에이치이에이(DHEAS)가 나와요. 스트레스가 너무 없을 땐 지루해서 죽어요. 입맛도 없고요.

인간은 딱 두 가지라고 해요. 권태롭지 않으면 불안한 거죠. 뒤집어보면 불안해서 새로운 것 만들고 지루해서 새로운 것 만들고요.

 

 

*포가스의 실험

웃기는 영화와 우울한 영화를 보여준 다음 소문이나 과거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판단력 비교한 실험입니다. 웃기는 영화 본 사람보다 우울한 영화 본 사람이 판단력과 정확성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아이들을 가면 보면 공부를 잘 못해요. 인상 쓰는 애들이 좀더 공부 잘 해요. 사회도 마찬가지예요. 필리핀 사람들 낙천적이죠. 우리나라보다 행복한데 창조적이긴 힘들죠. 행복지수가 낮다고 해서 꼭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세월호 난 다음, 국민들의 판단력이 좋아졌던 것 같아요. 요즘 뉴스 보면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게 최근 총리 지명을 보면요. ‘유병언 엄마 실시간’ 보도하는데 판단력이 흐려져요. 거꾸로 불행만 하면 창조적인 생각이 떠오르냐, 그러지는 않죠.

언제 창조적인 영감이 나올까요? 피카소처럼 창조적인 것을 하라는 게 아니고요. ‘오늘 아침 뭐 해 먹을까’, ‘옷장에서 뭘 입을까’, ‘가구 배치 다시할까’ 등도 창조적인 겁니다. 내가 슈퍼에서 일을 하는데 어떻게 하면 슈퍼가 잘 될까, 이런 고민도 마찬가지죠.

창조적인 영감이 떠오를 때는 목욕한다든가 잠자기 직전 술한잔 마셨을 때 등 긴장이 이완됐을 때죠. 이태백과 두보는 술에 취해야 글을 쓰고 그랬다는데요. 예술가들이 술을 마시고 하잖아요. 긴장이 완화됐을 때죠.

왜 그럴까요. 이유가 뇌를 보면 나와요. 사람의 뇌 앞을 신피질이라고 하는데 조직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계산하고 이해하고 지적인 작업을 합니다. 잠을 살짝 든다든가 술 마신든가 하면 신피질이 살짝 눌려지면서 다시 말해, 지적인 이성적인 살짝 눌려지면서 성 밖으로 나간 거죠. 가장자리로 가는 거예요. 관습적인 부분이 아닌 것으로 나간 것이죠. ‘광기가 춤추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게 긴장을 풀 때입니다.

실제로 비발디가 작곡을 하는 게 꿈을 꾸면서 였다고 하고요 도스토예프스키가 글을 많이 쓰잖아요. 그를 두고 ‘다언증’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그가 간질에 걸려서 뇌에 엄청나게 스파이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어요. 에너지가 창조적인 에너지로 막 쓰고요. 그렇게 보는 사람이 있어요. 어떤 사람은 빚을 갚느라 책을 많이 썼다고 해요.

사람은 배고프지 않으면 창조적으로 하려고 안 해요.

부자가 2대 3대 가기 힘들죠. 도스토예프스키가 빚에 쪼들리지 않았으면 책을 많이 쓸 필요가 없었다는 거죠. 우울하고 외롭고 결핍돼야 영감을 실행에 옮긴다고 합니다.

 

 

*지속적인 노력에 의한 피로감

 

-목표상실의 느낌 :

내가 목표가 없으니까 다시 뭔가 만들어서 해보자 하면 천재로 가는 거고 이제 관두자 하면서 더 이상 못하겠다고 덮는 사람이 있는 거죠. 사실 천재들도 이럴 때 접는 사람 많아요. <호밀밭의 파수꾼>를 쓴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는 그 책 한 권만 남겼어요. 하물며 우리같은 사람이야 항상 창조적 영감이 떠오를 리가 있겠어요. (웃음)

 

-외부에 비치는 모습(페르소나)과 실제 내 모습의 괴리 :

어떤 사람은 그걸 가지고 자기의 창조적인 에너지로 쏟아요. 괴테의 경우를 볼까요. 젊어서 법관한 사람인데요. 많은 걸 성취한 사람인데 늙어서 젊은 여자에게 반해요.

다른 것 때문에 붕괴되는 사람이 있죠. 유명한 정치인, 학자 중에는 젊은 여자와 어페어가 있어서 정치생명 끝난다든가, 하지만 괴테는 영감으로 글을 쓰죠.

지금 나에게 온 어떤 역경이나 슬픔이 동전의 양면입니다. 슬픔, 역경, 분노, 좌절은 ‘내가 성밖으로 쫓겨나 가장자리에 있는 느낌’이에요.

엣지라고 했죠. 엣지에 있으면 베일 가능성이 있어요. 아파요. 거기에 있어야 창조적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윌리암 블레이크의 그림>

 

 

 

[심리톡톡-나와 만나는 시간]심리치료 전문가 이나미 '슬픔과 분노를 넘어서' ②

 

 

 

윌리암 블레이크는 융이 좋아한 시인입니다. 지금봐도 정말 변태적인 시를 썼는데요. 그림의 주제를 보면요. 가운데 웅크린 사람이 하느님입니다.

불경스럽게 보실 줄 모르겠지만. 하느님 위에 어둠이 있죠. 그 어둠의 무게에 눌려 있는데요. 하느님도 창조 전에 눌려 있는데, 우리는 어떻겠어요. 창조 직전의 우리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봅니다.

17세기 유명한 화가가 그린 그림입니다. 해가 뜨는데 큰 동굴에서 뜹니다. 연금술에 나오는데 섬이 망망대해에 고립돼 있어요. 창조적인 행동을 하려면 고립감, 외롭감을 꼭 느껴야 한다는 거죠.

동네 여기 저기 다니면서, 계모임 다 가고 아침 저녁 연속극 다 보고 화장하고 이러다보면 창조적이게 되기 어려워요. 외로워야 해요. 가운데 구멍이 뚫려야 해요. 꽉 차 있으면 창조적이기 어렵습니다. 가슴이 뻥 뚫려 있고요. 이효리 같은 사람은 제주도 가길 잘 한 것 같아요. 버려야 뭔가 다시 채워지죠.

 

좌절, 상처, 분노에서 다시 해가 뜬다고 해요. 슬픔에 잠겨 있으면 당시로는 세상이 다 무너지는 것 같아서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은데 사람은 또 살게 돼 있죠.

박완서 선생님 <한 말씀만 하소서>를 보면, 남편 죽고 아들 죽고 차례로 죽은 다음에 못견뎌서 수녀원가서 지냈는데 그것을 책으로 쓰잖아요. 그 고통을 책으로 쓰셔서 그 고통을 나누는 거죠. 고통을 안 겪었다면 그런 힘을 못 얻겠죠. 고통 겪어서 깊은 작품을 낼 수 있었던 거죠.

문필가는 아니더라도 주변 사람에게 큰 빛이 되는 사람들이 있어요. 어떤 사람은 그 옆에 가면 싫어요. 피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하면, 옷차림 추리해도 뭔가 따뜻해지는 듯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 보면 상처가 있어요. 상처가 있는데, 남 탓 하지 않고 꼭 운명의 탓으로만 돌리지 않아요.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극복한 사람들은 상처 모르는 사람들이 모르는 에너지가 있어요. 진짜 가치있고 존경하고 따라야 할 사람이에요. 지식이나 지위와 상관없는 거죠.

옛날 이야기지만, 비유인데 힌두교의 전설입니다.

사람을 창조했는데 죽지를 않았어요. 계속 인구가 늘어나서 안 되겠다 싶어서 죽음이라는 여신을 만들었습니다. 여신이 계속 사람을 죽여야 해서 너무 힘들어 했답니다. 그래서 나온 게 눈물이라고 해요.

눈물이 우리 인간에게 불행을 가져오게 오는 사건 사고를 만드는 원천이면서 (죽음의 신에서 나오는 거니까요.), 눈물이 바로 우리가 겪어야 하는 불행을 씻어주고 승화시켜주고 정결하게 해주는 힘을 갖게 되기도 해요. 눈물이 그런 힘이 있어요.

누군가랑 굉장히 친해지려면 그 친구랑 같이 붙잡고 울었을 때죠. 친구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같이 울어주는 사람이면 친구잖아요. 눈물이 상처와 고통을 치유해주는 힘이 있어요.

 

 

모든 세상에는 행복한 게 있으면 불행한 게 있고 낮이 있으면 밤이 있고 슬픔이 있으면 극복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슬픔과 분노의 감정을 모르면 기쁨을 몰라요. 용서와 화해의 순간도 없고요. 좌절과 열등감 없으면 성취의 감정 몰라요. 감정은 상대적이죠. 아프리카의 한 부족은 크고 짧고를 한 단어로 쓰는 데가 있어요. 산이 깊으면 골이 깊다고 하죠. 성공 뒤에 그림자는 깁니다.

융 심리학의 핵심적인 개념인데요. 우리 안의 ‘그림자’를 볼 때가 필요해요. 작은 자아는 욕망에 휘둘린다면 큰 자기는 그것을 뛰어넘는 거예요. 큰 자기 성취를 위해서는 자기 안의 어두운 부분을 봐야 한다는 거예요.

자기 안의 어두운 부분을 보는 사람이 창조적인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창조다” 이러면 경제적인 것만 생각하죠. 창조경제. 창조적 기업 등등. 창조는 돈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이유 중 하나가 너무 서구의 기능주의적 창조적 이론에 의존해서 그렇습니다.

 

 

*서구의 기능주의적 창조성이론

과학주의와 효율성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 중심의 창조성 이론입니다. 개인적 성공을 지향하는 창조성 이론이에요. 감정과 도덕 측면에 대한 상대적 무관심을 불러옵니다. 콜티졸만 너무 나와요. 아이들이나 노인들이 자살하죠. 엣지를 지나치지 않는 밸런스가 필요합니다. 너무 돈으로만 된 부분이 있어요.

 

*정신분석 이론이 보는 창조성 이론

-아들러 / ‘권력에의 의지와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는 욕구가 생긴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휘두르고 싶고요. 구석기 철기시대 청동기 시대를 거쳐 오면서 뭔가 상대방과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하잖아요. 상대방을 싸워서 이겨서 휘두르고 싶은 마음에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거죠.

미국과 소련이 우주탐사를 보세요. 그 비용이면 아프리카 사람들 먹여살릴 수도 있을 텐데요. 뭔가 이겨보겠다는 심리죠. DMZ에 가면 북한과 남한에 깃대가 서로 있는데 서로 높게 올리려고 경쟁합니다. 어느 시점에 가니까 물리적으로 있을 수 없는 높이까지 올려서 둘이서 타협했대요. 한쪽은 상대보다 더 큰 깃발, 한 쪽은 더 높은 깃발을 달고요. 깃발도 서로 뭔가를 상대를 이겨보려고 하는 거죠.

어려서 땅따먹기 해보셨죠?  애들이 게임 죽어라고 하는 것 중 하나가 권력의지죠. 밖에서는 찌질해도 안에서는 영웅이 되는 거죠.

안에서는 집도 만들고. 아이들 이야기 들어보면 게임 안에서 창조적인 에너지를 얻는대요. 제 아들이 벤처회사 다니는데, 게임만 하면 근심걱정이 사라진다고 말합니다. 게임 속에서 많은 것을 해소한다는 거죠.

 

 

-융/‘우리의 무의식에는 창조적인 사고와 행위를 하려는 원형적 배열이 존재한다’ 요즘식으로 하면 DNA라고 할 수 있겠죠.

 

-프로이드/‘어려서 상처가 기억을 억압하면 강한 정동 반응이 나온다’

 

창조성 이론은 아주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토마스 홉스는 ‘상상력이 인간 인지의 핵심’이라고 했고요. 중국에서는 온고이지신. 공자님은 겸손해서 자기가 뭘 새롭게 만든다는 이야기 안 합니다.

플라톤은 화가는 무엇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모방하는 사람이라고 했죠. ‘크리에티브’하다라는 말은 계몽시대, 이후 근대에 나온 말입니다. 그 전에는 창조한다는 단어는 인간에게는 없었어요. 신의 영역이었죠.

 

 

*창조적인 사람이 되려는 5가지 단계 (wallas의 창조단계)

1)문제의 인식 //우리 사회 뭐가 문제나, 나는 뭐가 문제인가 인식해야죠.

2)문제의 내면화 //진심으로 내 안으로 가져와서, 이건 심각한 문제야, 인큐베이터

3)문제를 풀어야 하겠다는 정동반응 //모티베이션이 없으면 움직여지지 않아요. 분노나 슬픔, 공포 등이 있어야 뭔가 만들어냅니다.

4)문제 해결이 전의식 상태에 발현, 직관적 이해// 이건 해야 한다는 생각. CEO 중에서 직관력이 좋은 사람이 뭔가 만들어냅니다.

5)새로운 생각을 분화, 형상화해서 적용하는 시기//실행할 능력이 중요합니다.

 

 

*융의 연금술적 창조단계

RUBIDO 루비도 : 고통과 아픔의 과정을 지난 변환의 신비 //빨갛에 아픈 단계죠.

CALCINATIO : 물질을 태워 재로 만듬 //자아 집착으로부터 벗어남

용해 : 슬픔으로 분노를 녹임

분리 : 고통을 객관적으로 응시, 몸과 영혼의 분리

융합 : 분리된 상태, 다름을 다시 포용함

발효 : 통합된 물질이 새로운 화확물질로 변화

증류 : 변화한 물질을 올라감. 초월적 경험

응축 : 단단하게 통합해서 자아/자기의 축을 재건

 

 

*연금술의 공간 : 일차 진료에서 창조까지

복잡한 연금술 방에서만 이뤄지는 것도 아닙니다. 부엌에서 하는 일도 창조적이에요. 칼로 찢고 불로 끓이고 하잖아요. 하찮게 볼 게 아닌게요. 만달라라고 티베트 스님들이 모래 그림을 그리잖아요. 그런데 다 싹 지우잖아요. 창조 과정을 재현하는 거거든요. 열심히 밥하고 먹고 싹 치우면 창조의 과정입니다. 요리하는 건 창조의 과정에서 가장 깨끗하고 가장 좋아요. 제가 가끔 ‘책 쓴 게 이게 다 죄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쓰레기거든요. 음식은 남지 않잖아요.

 

 

*창조성과 정신질환에 관련된 신화들

-우울한 사람이 더 창조적이다 : 우울하다다고 다 창조적은 아니다

-창조적인 사람은 우울해진다 : 우울의 기간이 길면 병적일 수 있다.

-조증 환자는 창조적이다 : 너무 조증이면 비창조적인 일을 할 때가 있다.

-창조성을 남발하면 정신분열증이 된다 : 고정관념. 잘 지켜보면 반복되는 테마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창조적인 사람이 아니죠.

-지능이 높은 사람이 창조적이다 : 그렇지는 않다.

-안락하고 좋은 환경이 창조적 인물을 만든다 :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걸 주면 주의력집중장애만 생겨요. 창조적이게 되는 것은 집요한 것이 있어야 한대요.

-동성애자들이 창조적이다:플라톤, 레오나르도 다빈치, 보들리야르, 랭보, 파스빈더, 조디 포스터, 엘렌 디제네레스. 일면 맞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왜 동성애자들이 창조적일까요.

융 심리학에서는 사람은 양성적인 면이 다 있다고 봅니다. 남자는 무의식에서 여성적인 측면이, 여자는 무의식에 남성 측면이 있어요. 아이가 자궁에 있을 때 4~5개월까지는 남녀구분이 없죠. 처음에는 양성 다 있다가 dna와 호르몬이 만들어지면서 분화합니다. 동성애자들은 자기 무의식의 것이 막 올라옵니다. 양성을 다 가지고 있어서 창조적이 될 가능성이 많다는 거죠.

제가 그래서 모두 동성애를 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새롭고 관습적이지 않은 부분에서 창조적인 것이 나올 수 있으니까 그런 천재를 죽이지는 말자는 거죠. 천재성 도드라지 않은 사람들을 도와줘야 빛을 보죠. 괴상하고 발직하고 이상한 사람들이 죽지 않아야 발전해요. 그 사람들이 칼날에 찢기면서 사는 거거든요.

사회도 마찬가지예요. 이순신의 거북선이 얼마나 창조적이에요. 그 당시 잘 살지 않았거거든요. 위인들을 키우는 것은 그들을 수용할 수 있는 창조적인 사회라는 거죠. 미국이 실용주의 강조하면서 천박하지만, 20세기 이후패권을 진 것은, 이민정책 덕분이에요. 나치가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이 다 미국으로 간 거거든요. 허용적인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저에게 이런 질문들을 합니다.

‘창조경제를 위한 인재 양성을 어떻게 해야할까요?’

:저는 영재교육의 명암을 보고 사지선다형 문제, 괄호 넣기 문제 빼라고 합니다. 신체경험 많이 하라고 권하고 ‘권위주의’, ‘무책임한 자유’ 둘다 버리라고 말합니다. 불안과 피로사회에서 벗어나야죠.

교사와 부모들이 창조적 자녀를 키울 에너지가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을 허용적이지 못한 부모는, 엄마 아빠가 본인들이 사느라고 힘들었어요. 여러 이유 때문에 힘들고 불안해서 앞날 없어서 공포스럽고 자기 자신이 힘들어서 창조적인 아이를 못 만들어요. 부모나 교사가 너무 힘들면 안 돼요.

 

-창조적 사고 : 적극성/긍정적 태도/호기심/통합/개방성/관습을 벗어나려는 의지

-관습적 사고 : 수동성/부정적 태도/냉소주의/분열/폐쇄성/집단에 안주하려는 패턴

 

-창조적 교육 : 리서치, 글쓰기, 토론, 분석, 행위를 통한 학습

-관습적 교육 : 암기, 객관식 문제 풀기, 경청, 이해, 수동적 학습

 

아이들에게 수동적으로 가만히 있어라 하는 것은 창조적이 될 수 없죠. 뛰어나기기도 하고. 상처를 받지 않으려면 자꾸 기억을 해야 해요. 기억 때문에 자학하고 자기비하하면 안 되요. 자성과는 달라요.

상처 치유와 상처를 잊는 것은 별개의 문제예요. 위안부 문제들은, 극복하신 할머니들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잊으라는 것은 욕이에요. 상처를 극복하면서 창조적인 에너지를 뿜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창조적인 한국 위인들 : 신사임당, 정조, 정약용

 

*창조는 느린 과정을 인정. 창조의 시작은 단자인 동시에 양극입니다. 내가 뭔가 그럴 듯한 것을 만들어서 역사에 남으리라고 하지만 실은 수천년 지나면 다 잊혀져요. 창조는 영원할 수는 없어요.

헤밍웨이는 유명한 작가인데 미국 도서관에 가면 헤밍웨이 책은 버려진다고 해요. 굉장한 업적을 세워도 다 사라집니다. 그 과정 자체에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가 요리가 한다고 해서, 음식사에 남는 요리를 안 해도 된다는 거죠. 창조적인 에너지를 그 순간에 쏟는 거죠. 그게 가장 창조적인 것이에요.

나만 위한 것은 악이에요.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만드는 창조를 해야 합니다. 원자폭탄, 아우슈비츠의 가스실 등은 창조지만, 인류사에 뭐가 좋았죠? 창조를 하되, 도덕적인 창조를 해야 하죠. 지구도 생각하고요.

 

*당신에게 천재성이 있는가

/혼자 있는 시간이 좋다

/무의식과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영감이 떠오르면 세밀하게 들여다 본다

/떠오른 영감을 구체화시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평가에 일희일비 하지 않는다

/거듭된 실패와 무시에도 끝까지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나 자신의 외로운 작업, 그 자체를 즐긴다

 

어떻게 보면, 천재는 괴로워요. 질시도 받고요. 때로는 너무 앞서가서 이해도 못받고요. 주변 사람과의 관계도 좋지 않을 수 있어요. 지루한 일을 하기 싫어해요. 학교 부적응자 중에 많아요. 자폐적인 아이도 있고요. 주변의 돌봄을 요구해요(천재들 중에는 헌신적인 어머님이 꼭 있죠)

 

*프란치스코 교황

“폭력의 대가는 항상 나약한 사람에 의해 지불된다”

전세계 가장 존경받고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인데 아픈 아이의 발에 입을 맞춰줍니다. 훨씬 더 창조적인 사회가 되죠. 프란치스코가 무너져가는 가톨릭을 일으켜세운 CEO라고 누가 그러더군요. 교황이 어디를 방문하면 땅에 입맞추잖아요. 낮은 데로 임하는 자세죠.

 

 

(질의응답)

질문 : 괴테가 내적 자아와 외적 자아 균열을 극복했다고 하는데 공자는 어땠나요?

답 : 파우스트를 보면 괴테는 본인의 갈등을 작품으로 옮겼던 거죠. 고로 과정이 성공적이었다는 얘기에요. 미루어짐작하는 거죠. 공자는요. 죽을 때가 돼서 꿈을 꿨어요. 재단 앞에 상을 보고, 제사상을 보고 꿈을 보고 막 우셨대요. ‘내 뜻을 펼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이렇게 죽다니’ 하면서 돌아가셨대요. 실제로 세상을 주유할 때 에피소들이 있는데요. 후회를 많이 했어요. 자기는 성인이 아니다, 라고 스스로 말했어요.

 

질문 : 자녀를 창의적으로 키우는 방법 말씀해주셨잖아요. 교수님은 어게 몇 가지 적용하셨는지?

답 : 저희 아이들은 저에게 “우리가 한국 사람 맞냐”, “조기 교육 왜 안 시켰느냐” 하면서 서운하다고 해요. (웃음) 초등학교 5학년쯤 되니까 “나도 미술, 음악 좀 배우게 해달라”고 했어요.

근데 저는 아이들이 어릴 때 운동만 시켰어요. 학원도 애들이 보내달라고 할 때까지 안 보냈어요. 그런데 한국사회는 같이 놀 애들이 없어서 학원을 안 보낼 수가 없더라구요.

‘어느 학원을 갈 것이냐. 니들이 알아봐라’라고 하고 아이들이 알아봐서 자신이 무슨 과목이 모자라니까 이런 학원에 다니겠다고 알아봐서 오더라구요. 그런 패턴이 되니까 고등학생이이 되니까 제 카드를 들고 본인들이 지불을 해요. 좀 내놓고 키운 편이죠. 아이들이 각자도생한 거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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