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평범한 날의
햇살에 뭉개진 조팝나무 꽃잎이
다시 하늘로 피어나고 있어
바람에 여린 몸을 맡기고 있는 전깃줄 위의 새들과
얼굴 맞대고 속삭이는 풀들
고개 들어도, 고개 숙여도
이건 정말 완벽한 시간이야
그들만의 파티는 온 힘을 다해
밤에서 낮으로 이어지는 중인 거지
절대 깰 수 없는 약속하기 좋은 때야
서로의 비밀을 속속들이 알아버린 분수는
머리 위로 날아오르며 추는 춤
깜짝 놀란 강아지들 거리로 뛰쳐나온 지금
어쩔 줄 몰라 해도 좋을 지금
나, 문득
피었다 지는 이 우주의 신비를
슬쩍 풀어보고 싶어진 거지
매이고 매이다, 그 어느 하루는 들뜨고
꽃단장을 마친 그녀 발을 들였다, 엘리베이터에
밀집되었던 공기 사이로 순간, 피어나는 생기
일찍 출근하시네요. 방긋 인사하는 그녀
“나는 친구들과 나들이 가요”
“어디로 가시나요?”
“모르겠어요... 저거들 가자는 대로 어디든 갈 거예요”
해사한 웃음의 육십 대 중반 그녀,
일층에서 총총 그녀 사라지고 나는 지하 주차장으로 향한다
오늘의 운세에 따라 뿔뿔이 흩어지는 시야
미세먼지가 많으니, 외출을 자제하라고
스마트폰 첫 창이 경고를 하지만
그 무엇에도 조종당하고 싶지 않다는 그녀
당신 주관대로 행동하는 게 정답이라고 일러준다
지상은 반짝이는 연두 이파리들
갓 세상에 나온 게 저리도 행복한지
마구 흔드는 손바닥들
저러다 금세 얼얼하지는 않을지
연두가 나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나는 매이고
그녀는 방방 연두에 들뜨러 가고
몸값 올리기
고깔 쓴 복숭아는 창백한 얼굴이어도 값은 비싸다. 기미와 주근깨투성이 복숭아는 맛은 좋으나 헐값이다.
중앙대로 횡단보도를 마주 걸어오는 사람들 웃는 얼굴과 붉힌 얼굴에도 값이 매겨질까. 횟집 수족관 물고기는 자연산보다 양식이 수명이 더 길다는데 몸값 좀 올려보려는 나는 어느 기준에 맞추어야 할까
갈등의 얼굴은 좌와 우가 달라서 바라보는 그대 눈빛의 각도에 따라 내 화장법도 달라져야 할 것
치명적 선택 앞에서 기준을 갖지 못한 나는 오늘도 카멜레온이 된다
혼밥족
난 한 마리 고슴도치
아웃사이더인 거야
혼자가 좋아?
둘이 좋아?
혼자는 싫어
아니 둘도 싫어
아무도 찾지 않는 동굴의 아늑함 속에서
누구라도 와 주길 내심 기다리지
외로움 따위는 안전을 담보로 한 사치일 뿐
더 이상 가까워지는 건, 원치 않아
겉보기와 다르게 속절없이
속은 부드러운 바게트 빵
씹을수록 고소해
오늘의 페이스북 포스팅에 ‘좋아요’가
무려 오십 개나 달렸다고
세운 털 눕히고
웃는
꿈의 파동
쫓아온 햇살에
나뭇가지 사이로 뛰쳐나온 꽃들
지는 꽃잎이 있어 나무 그늘이 움찔거립니다
후드득 후드득 여기가 화들짝 꿈밖인가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꽃 피던 꿈결을 떠나와
짓물러지는 막간에 재즈를 흘려놓습니다
떨어지고 밟히는 바람의 농간에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내미는 젖은 손들
아무도 잡아 일으켜 주지 않습니다
주연이 되지 못한 엑스트라에게도
소용돌이치던 절정은 빛처럼 짧았습니다
[특집시]
별점
숨어 있던 별들 하나 둘 몰려와서
하늘은 푸르스름해진다
지하에서 탈출을 궁리하고 있었거나
공중에 매달린 노란 살구를 따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저 별에게도
어둠 속 기다려야 할 무엇이 있었나
별빛 시공을 건너 온 너에게로
이제 내가 숨 가쁘게 달려갈 차례인가
차가운 겨울이거나 무더운 여름이거나
별의 운항은 분절음을 내며 스르르 잠이 든다
점점 껍질 두터워지는 나의 고독은
반짝이다 떨어진 별빛을 가둔다
켜켜이 쌓인 이야기 왈칵 쏟아낼 듯이
소란 뒤에 찾아온 경전 같은 침묵에도
품에 든 별을 슬며시 꺼내놓고 묻는다
간절함에 깊어진 내 눈이 하늘이라면
넌 언제까지 나에게 머물 수 있을까
김 정 아
▶ 경북 상주 출생
▶ 2014년 계간 ≪문장≫ 신인상 등단
▶ 2021년 제12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 형상시학회, 대구시인협회, 문장작가회 회원
▶ 시집 『채널의 입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