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sis 음악여정
피터 가브리엘 시대(1967~1975)
고등학교에서 만난 피터 가브리엘, 토니 뱅크스(Tony Banks), 마이크 러더포드(Mike Rutherford), 앤서니 필립스(Anthony Phillips) 등은 학교 선배이자 유명한 제작자인 조너던 킹(Jonathan King)의 도움으로 데카 레코드와 계약을 맺었다. 이 때가 1967년으로 멤버들은 대개 17-18세였다.
이들은 1968년 여름에 녹음을 하여 69년에 첫 앨범인 《From Genesis to Revelation》을 발표했다.
이 앨범은 이후의 음반들과는 전혀 다른 음반으로 3분대의 짧은 곡들이 주를 이루었으며 분위기도 목가적이거나 로큰롤에 가까웠다. 그러나 독특한 피터 가브리엘의 목소리나 피아노가 기타와 더불어 사운드를 이끌어 나가는 등 다른 그룹들과는 차별성을 보여주는 좋은 음반이었다.
결성 당시에는 미국에 이미 Genesis라는 이름을 가진 밴드가 있었지만, 2집 제작 당시에 그들이 해체했기 때문에 지금의 그룹명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들은 아직 라이브 경험도 변변찮은 아마추어 밴드였다.
두 번째 앨범 《Trespass》는 70년 10월에 레이블을 바꾸어 발매되었다. 다른 프로그레시브 록 앨범들처럼 건반연주가 강조되었고 극적인 구성을 취하게 된 이 음반은 전작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물론 전작이 가지고 있던 목가적 서정미가 여전히 남아있긴 하지만 이미 이 앨범의 작곡이나 연주는 프로의 그것이다. 이들의 목가적 서정미는 이후 밴드를 탈퇴한 앤서니 필립스의 솔로 음반들로 이어진다. 이 때의 공연중 피터 가브리엘은 흥분한 나머지 스테이지 다이빙을 시도하다 관객들이 받아주지 않고 피해버리는 바람에 다리가 부러졌다. 하지만 그는 아픈 다리를 무릎으로 받치고 계속 노래하여 공연을 끝마친 뒤 병원에 실려갔다.
1974년, 망또와 박쥐 날개, 분장을 한 피터 가브리엘
새로운 멤버 스티브 해킷(Steve Hackettk)과 필 콜린스(Phil Collins)를 맞이한 제네시스는 그들 음악스타일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Nursery Cryme》을 1971년 11월에 발매한다. 피터 가브리엘은 이 음반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전래동화 혹은 환상적인 분위기의 가사들은 음악적 구성과 대등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곡 구성도 이전보다 더욱 극적으로 변했는데 노랫말의 전달과 이야기의 구성에 맞추어야 한다는 제한요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주는 예전보다 더욱 힘있게 전개되고 있다. 이들의 연극적인 요소는 영국보다는 대륙에서 인정을 받아 벨기에와 이탈리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들은 인정받기 시작했고 전작에 비해 한걸음 더 나아간 명작 《Foxtrot》을 1972년 10월에 발매한다. 23분에 달하는 대작 <Supper's Ready>는 이들의 극적인 요소가 극에 달한 곡이며 본작은 이들의 한 정점이 되었다.
1973년 8월에 《Live》를 발매하였다. 이들은 이 시기의 공연에서부터 이들은 공연에서 ‘쇼’를 하기 시작하는데 피터 가브리엘은 얼굴에 분장을 하고 이상한 무대 의상을 뒤집어쓰고 나오는가하면 노래와 동시에 연기를 시작했다. 이러한 스테이지는 특히 이탈리아의 밴드들을 자극시켰다.
메타모르포시(Metamorfosi), 라떼 에 미엘레(Latte e Miele), 일 발레또 디 브론조(Il Balletto di Bronzo)와 같은 연극적인 밴드들도 잘 알려져 있다.
1973년 9월에 《Selling England by the Pound》가 발매되었다. 스타일의 정점에 오른 밴드는 변화해야 했고 그 결과물은 보다 현실에 가까운 가사, 곡 구조의 단순화, 서정미의 회복 등이었다. 그런 과도기적인 작품이고 예전에 비해 확실히 느슨한 음반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연주력은 뛰어나며 이전 곡들이 가지고있던 양식미는 그대로 남아있다. 이 앨범의 고상한 분위기는 제네시스에게 가장 영국적인 밴드라는 별명을 안게 해 주었다. 제네시스의 가사는 영국인들만이 알 수 있는 문학(특히 Lewis Caroll과 J.R.R. Tolkein), 생활문화, 은유, 전래곡, 이야기, 사투리 등이 섞인 복잡한 텍스트이다.
1974년 11월에 발표된 《The Lamb Lies Down on the Broadway》는 피터 가브리엘이 뿜어낸 자아의 극한적인 표출이었다. 더블앨범으로 나온 본작은 라엘(Rael)이라는 청년이 겪는 내적/외적 사건들을 다룬 초현실적인 작품이다. 피터 가브리엘은 제네시스 내의 독재자가 되었으며 그는 이 앨범의 투어 이후 밴드를 나가게 된다. 이는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로저 워터스(Roger Waters)와 그의 독백 《The Wall》을 연상시킨다. 본작은 방만한 구성에 피터 가브리엘의 야심까지 겹쳐 무척 듣기 어려운 대작이 되었다. 음악을 수단화시켰다는 혐의를 벗기 어렵지만 그와 같은 아티스트는 그런 작품을 뽑아 던져놓을 자격이 있다.
필 콜린스 시대 (1975~)
제네시스는 피터 가브리엘이 나간 다음에도 이전까지의 분위기를 갖는 음반을 석장 발매했다. 《A Trick of the Tail》(1976), 《Wind & Wuthering》(1977) 그리고 《Seconds Out》(1977, 2LP live)이 바로 그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에는 많은 이들이 과도기적이다, 나름대로 준수한 아트록이다, 비록 작가는 아닐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훌륭한 연주를 들려준다 등의 평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변해야 했다. 피터 가브리엘이 자신의 과거와 결별하려 했듯 그들은 피터 가브리엘과 결별해야 했다. 이상하게도 그들은 상업적으로 점점 성공해갔다.
《…And Then There Were Three》(1978), 《Duke》(1980), 《Abacab》(1981), 《Three Sides Live》(1982, 2LP live), 《Genesis》(1983), 《Invisible Touch》(1986), 《We Can’t Dance》(1991)은 그들이 선택한 새로운 길, 팝 뮤직 그룹으로서의 제네시스가 발표한 음반들이다. 이 음반들을 발표하면서 이들은 상업적으로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중 인상적인 음반은 《Genesis》(1983)와 《Invisible Touch》(1986)이다.
《Genesis》 앨범에서 필 콜린스는 매우 당당한 보컬을 들려준다. 그는 이미 7년 동안이나 제네시스의 리드보컬이었으며 솔로작들이 차트 1위를 점령하고 있었다. 그리고 프로듀서 휴 패점(Hugh Padgham)과 함께 만든 사운드는 귀에 쏙쏙 박히기 충분했다.
《Invisible Touch》는 전작에 비해 훨씬 진보한(더더욱 팝적인!) 팝음반이 되어 제네시스의 유일한 싱글 1위곡이 된 <Invisible Touch>를 비롯한 5곡의 싱글 히트곡이 나왔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휴 패점과 함께 만든 이 앨범의 사운드는 솔직히 ‘신난다’. 300만장 이상이 팔린 히트 앨범으로 본 작은 80년대 팝의 가장 중요한 음반중 하나가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피터 가브리엘의 최고 히트작이자 최고의 성과물 중 하나인 《So》가 《Invisible Touch》 바로 다음의 미국 앨범 차트 1위가 되었다는 것이다. 똑같이 유일한 싱글 1위곡을 내었고, 판도 엇비슷하게 팔았다. 그런데 그 성과는 정말 크게 달랐다.
사실 제네시스에선 더 이상 볼 일이 없었던 필 콜린스는 96년에 밴드를 떠나고 그 자리는 레이 윌슨(Ray Wilson)이 메운다. 그는 허스키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 필 콜린스와 조금은 유사하다. 제네시스는 97년에 《Calling All Stations》를 발매한다.
https://youtu.be/Jt_iggp316Q
첫댓글 이 앨범에서는 첫곡인 The Musical Box, 이 곡이 이 앨범에 명곡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