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 포르투갈 여행기-끝

[김승태]

4월 14일. 금요일

[마드리드-사라고사-예이다]

‘진수성찬인들 그대 오시지 않으면 무슨 소용 있으랴.

그대 오시면 한갓 진수성찬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가이드가 들려주었던 누구인가의 시의 내용을 기억으로 떠올려 옮겨본 것이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란..... 왕궁 앞 넓은 광장에서 두 명의 근위병이 행진하는 모습이 아침 공기와 함께 상쾌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전시되어있다는 레이나소피아미술관은 아내만 관람하고, 나는 다음 행선지인 프라도미술관으로 먼저 갔다. 스페인이 자랑하는 화가 고야의 동상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벤치에 앉아서 입장권을 사려고 늘어선 긴 줄을 느긋이 바라보며 일행을 기다렸다. 마치 오랫동안 묶여있다 풀려나기라도 한 듯 혼자만의 한가로움을 만끽하며, 있는 힘껏 휘파람을 불어 재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하늘은 또 왜 이리도 푸른가. 프라도는 스페인 왕실에서 수집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라는데, 런던의 대영박물관과 파리 루브르와 함께 세계적인 미술관이라 한다. 일행들과 함께 미술관을 관람했다. 이곳 미술관 등에는 각 나라의 언어로 설명해 주는 오디오 가이드가 있는데, 그 나라들의 국기 사이에는 스페인의 4개 지방기(?)도 함께 자리해 있다. 스페인은 공식적으로 마드리드‧ 카탈루냐‧ 갈리시아‧ 바스크 4개의 표준 지방언어가 존재하는데, 우리말과 스페인 말이 다른 정도로 그 네 개의 언어가 서로 전혀 다른 말이라 한다. 말이 그러할진대 다른 차이와 갈등이야 굳이 말해 무엇하겠는가? 하나의 국가가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무엇인가?

푸에르타 델 솔 광장은 ‘태양의 문’이라는 뜻인데, 발뒤꿈치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산딸기 먹는 곰의 동상이 있고, 스페인 측량 원점이 이곳에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어느 곳보다도 상업적으로 번화하였고 지하철역이 있어 활기가 넘쳤다. 주변에는 백화점과 각종의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쇼핑거리가 있다. 해외여행에서 예전에 비하여 가장 크게 변한 것 중의 하나가 쇼핑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우리가 해외로 처음 나가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카메라‧워크맨‧밥솥 등등..... 돈이 없고 손이 모자라 사 오지 못했었던 것이, 요즈음은 뭐라도 선물을 사 가기는 해야겠는데 살 것이 없어 고민해야 하는 세상으로 바뀌었다. 고르고 골라서 우리의 엿을 닮은 과자 몇 개를 겨우 샀다. 출장비 줄여 워크맨 하나 사 오면서도 행복해했었던 그 행복을 나는 어쩌다 잃어버리고 이제야 그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인가.

사라고사까지는 4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바람이 많은 지역답게 곳곳에 풍력 발전용 바람개비가 낮은 언덕 위에 풍차처럼 서 있다. 북부에 있다는 산맥의 영향인지, 길은 이곳에서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터널과 교량을 지나고 또 산을 자르고 나아간다. 필라르성모대성당은 성모마리아가 발현하여 건네준 기둥으로 야곱이 지은 성당이라는데, 안에는 그 기둥과 이곳이 고향인 고야의 프레스코 천장화와 스페인 내전 중 성당에 떨어졌으나 터지지 않았다는 2개의 불발탄 등이 전시되어있다. 에브로강을 가로지르는 산티아고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성당은 저물어가는 햇살과 강물이 함께 어울려 더할 수 없도록 넉넉하고 멋진 풍경이었다. 특히나 화려한 타일로 장식된 11개의 둥근 지붕이 어디서도 보지 못한 품격을 자랑했다. ‘산티아고’는 ‘성 야곱’의 이곳 이름이란다.

스페인 ‧ 포르투갈 여행기내일 바르셀로나에서의 일정을 위하여 예이다로 이동한다. 달리는 버스 창밖을 바라본다. 저 멀리에서 하루가 저물어간다. 하루 종일 놀고서 지쳐 돌아가는 아이처럼 아무런 아쉬움도 부족함도 남아있지 않다. 흰 구름‧저녁노을‧지평선..... 세상만사가 저렇게 막힘없이 평화롭게 펼쳐지기를.....

예이다에 도착하여 투숙한 호텔은 과거 수녀원으로 쓰던 곳을 정부에서 호텔로 운영하는 빠라도르라고 하는 곳이다. 가운데가 넓게 뚫린 공간을 가진 독특한 건물이었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저녁 식사는 포도주 한잔을 곁들인 스페인 정찬이었다. 수녀원이었던 곳이라서인가, 정찬이라는 이름에서 가졌던 기대에 비하여서는 간소하였다.

4월 15일. 토요일/ 4월 16일. 일요일

[예이다-바르셀로나-인천]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우리는 바르셀로나로 다시 가서 가우디의 건축물 등을 구경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예이다에서 바르셀로나는 4시간 거리이다. 푸르른 평원 위로 하늘은 구름 없이 맑고 푸르다. 하늘색이 저리 짙은 푸른색이었다는 사실을 오래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한영애가 노래했었다.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그렇게 푸른 하늘을 여러 개의 비행운(飛行雲)이 가로세로 두부모 자르듯이 줄을 그어 놓았다. 그동안 내가 하늘을 올려다보는 날이 너무 없었던 탓인가? 산뜻해서 반가웠다. 바르셀로나가 가까워지며 멀리 피레네산맥이 보이고 이번 여행길의 첫 방문지였던 몬세라트가 멀리서 우리의 귀환을 반겼다.

몬주익 언덕을 차로 돌아나가는 길옆에 황영조 선수의 부조상이 있었다. 바르셀로나와 황영조, 그때 참으로 대단했었지. 드디어 바르셀로나의 상징이요, 세계가 경탄하고 찬양하는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세계로 들어간다.

카사밀라와 카사바뜨요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척에 있지만, 이 지역은 주차 및 정차가 금지된 곳이라 우리는 버스를 타고 지나가며 그들을 구경한다. 이게 뭐 사파리인가? 그러잖아도 넓지 않은 차도를 한 차로만 남기고 공원화하는 공사로 길은 더욱 비좁고 밀렸다. 아마도 우리처럼 차로 지나가며 구경하려고 일부러 속도를 줄이는 탓도 있을 것이었다. 말 그대로 주마간산이다. 그것도 늘어선 가로수 가지 사이로 보는 재주를 부려야 했다. 카사밀라는 울퉁불퉁한 건물표면과 주재료인 흰색 돌로 인하여 채석장이라는 뜻의 ‘라 페드레라’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고 한다. 그러나 전면 모습과는 달리 내부와 옥상은 갖가지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한 온갖 구조와 장식으로 화려하기가 그지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 차 타고 지나가는 내게 무슨 상관이람.

직물업자인 바뜨요의 집, 카사바뜨요는 전설 속의 용이 뱉어낸 뼈다귀의 집이란다. 해골 모양의 발코니와 뼈 모양의 창살 등, 용과 뼈 등을 모티브로 하여 곡선만으로 이루어진 건물로 잘 알려져 있단다. 온갖 타일로 장식한 겉모습도 울긋불긋하여 카사밀라와는 닮은 듯이 다른 느낌이었다. 두 건물은 너무나 유명하여서 그들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 여행 가이드의 설명이나 내가 TV 등을 통해서 보고 들은 것을 굳이 여기에 옮겨 적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만, 100년 전에 이미 지하 주차장을 설치하였다니 앞날을 내다보는 그 천재성이야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으랴.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 많은 나라들이 국가 차원에서 세운 정책이라는 것들도 고작 몇십 년 앞을 내다보지 못함이 어디 한 둘인가 말이다. 각국이 난리 치고 있는 인구정책이란 것이 30년 전과 오늘이 어찌 다른지 비교해보면 더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관광대국이라는 스페인, 그중에도 으뜸 관광 도시인 바르셀로나를 찾는 관광객 중 많은 수가 바로 가우디의 건물을 보러오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그 가우디의 건축물에 관한 평소 나의 생각을 미리 말하지 않고서 무턱대고 가서는 아니 되겠다. 나는 온갖 매체를 통해서 접해 왔던, 가우디의 건물에 헌납하는 극찬들에 도저히 공감할 수 없었다. 그 원인이야 말할 것도 없이 나의 무지와 부족함 탓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 건물을 평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 취향을 말하려는 것이다. 세계적인 음식이라 해서, 내 입맛에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맛있다고 해야 할 필요는 없겠기에 하는 말이다. 나는 대체로 간결하고 단출한 건물을 좋아한다. 내가 선호하는 그 간결하고 단출함은 건물뿐이 아니라 내 생활 모든 면에서 그러하다. 당연히 옷도 주머니가 많고 이런저런 장식물이 달렸거나 여기저기 멋을 부려놓은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나의 그것이 꼭 요즈음 말하는 ‘가성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직선을 바탕으로 하되 필요하다면 약간의 곡선이 가미된 정도가 좋다. 한마디로, 내가 보기에는 지나치게 모든 것이 구불구불한 가우디의 건물에서 나는 아름다움을 느끼기보다 솔직히 거부감을 가져왔었다.

이제 우리를 태운 버스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향하여 간다. 가우디의 최대의 역작으로 손꼽고 세계건축사에도 한 획을 긋는 건물로 일컬어지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가우디가 설계는 물론 직접 건축 감독하였으나 마치지 못하고 가우디 사후인 지금도 공사는 계속되고 있다. 가우디 타계 100주년인 2026년 전체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입장료 수입으로 진행되는 공사는 코로나19로 인한 입장 수입 감소로 그 완공도 늦어질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성당을 마주하며 나는 앞서 말했던 나의 거부감들을 다소라도 해소할 수 있으면 다행이겠다고 생각했고 또 그럴 수 있기를 바랐다.

성당은 규모에서 역시 대단한 크기였다. 건물 면적은 교황청에서 상한으로 정해놓은 최대의 면적이라니 더 말할 필요가 없겠고, 더 넓히지 못하는 바닥의 욕심을 높이로 채우려 한다는 탑들은 하늘을 찌르며 치솟고 있었다. 탑의 외관은 예수의 일생을 담은 온갖 조각들이 차지하였고 그 나머지도 모두 구불구불 다듬은 대리석으로 장식했다. 가우디가 이곳에 적용한 곡선이 자연스레 늘어뜨린 실이 그리는 현수곡선(懸垂曲線)이라 하는데,치솟은 탑에 대한 내 느낌을 그대로 말하면 자연스럽다기보다는 고깔 아이스크림- 그것도 꼬불꼬불 옥수수 모양을 한 바로 그 콘 아이스크림인데, 아~ 녹아서 흘러내리려는 딱 그 느낌임을 어이하랴. 흘러내리는 아이스크림은 사람을 엄청 당황스럽게 하고 때로는 처치 곤란하게 만들기도 하는 법인데..... 탑은 무엇 때문에 꼭 저렇게까지 높아야만 하고, 또 무엇을 위해 자세히 볼 수도 없는 그 높은 곳까지 빈틈없이 조각으로 치장해야 하는가?

반짝이로 빽빽하게 채운 트로트 가수의 윗 저고리를 연상하며 올려다보는 나는 숨 쉴 틈이 없는 답답함을 느꼈다. 한마디로 하자면 내 눈에는 아무래도 ‘과유불급’이었다. 그 탑의 조각들은 예수의 탄생과 관련한 영광의 시기와 예수의 말년에 해당하는 고난의 시기를 동서로 나누어 표현하였다는데,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의 색상도 그에 따라 탄생의 동쪽은 아침햇살의 푸른빛으로 꾸몄고 수난의 표현이라는 서쪽은 석양의 붉은빛에 맞추었다.

내 생각을 조금 더 적어 보자. 내가 모나리자 그림을 두고서 표정이 더 환했으면 좋겠다거나 색상이 더 밝았으면 좋겠다는 등의 말을 한다고 해서 그 그림에 대한 모독이 되거나 그림의 가치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변화를 잘 따르는 재주가 부족하듯이 새로운 유행에 적응하는 속도도 무척이나 느리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고 보아온 집이라는 것이 모두가 곧바르게 솟은 기둥에 반듯한 벽이 있고 문과 창문 모두가 반듯반듯한 것들뿐이었다. 그 반듯함에 곡선이라고는 다만 지붕의 용마루와 추녀 등에서 볼 수 있는데 그것들도 직선에 가까운 듯 완만한 곡선이다. 내가 가보지는 못했어도 그리스나 이탈리아의 고대 유적이라는 것도 대체로 곧은 기둥과 곧은 들보가 기본이고, 곡선이란 그들을 거드는 정도로 쓰인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곡선을 기본으로 한, 아니 모든 것이 곡선인 가우디의 건물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지는 100년이 넘었다지만 내가 듣고 보게 된 것은 비교적 근래에 와서였다. 그러니 내 눈이 적응하는 데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쪼록 적응을 기다려서 내가 그것을 아름답게 느껴 경탄할 수 있다면 빨리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

다음으로 성당이라는 건물에 관한 내 생각이다. 이곳에 와서 며칠을 여행한 지금 내 머리에는 이 넓은 땅덩어리가 온통 성당으로 뒤덮여있다는 느낌이다. 그들은 규모와 화려함에서 어느 것 하나 뒤처지지 않고, 하나하나가 더할 나위 없는 대단함을 자랑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러함에도 또 저렇게 거창한 성당을 지어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 땅에 살아온 사람들은 그 많고 거대한 성당들 덕분에 구원도 그에 걸맞게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일까? 그래서 그들은 남들에 비하면 더 평화롭고 행복하였었기 때문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신에 대한 우리 인간들의 정성이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그도 저도 아니라면, 신의 이름을 빌린 에펠탑을 세운다고 해도 신께서는 크게 기뻐하실까? 그만해야겠다. 우리나라에도 세계적인 위상을 자랑하는 교회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고, 국토 어디를 가든 크고 작은 절들이 무수히 들어서 있으니 말이다. 다만, 나는 비록 신을 따르지는 못하지만, 내 모자라는 눈에는 그 신이 안타깝게 느껴져서 해본 말들이다.

덧붙여 성당의 이름 ‘사그라다 파밀리아’와 관련된 내 생각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성 가족’이란 말로 예수와 마리아와 요셉을 뜻하는 것이라는 데, 내가 요즈음 안타깝게 여기는 것 중의 하나가 우리 사회의 가족 경시(실제로 내가 쓰고 싶은 단어는 ‘가족해체’이지만 누그려 쓴다.) 현상이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는 효도와 함께 가족제도를 우리의 자랑이라고 내세워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얼마 전에 미국의 어느 조사기관에서 실시했다는 ‘삶에서 중요한 가치관 조사’*내용을 보면서, 내가 혹시나 하고 우려했던 우리의 가족 경시 현상이 사실로 드러남에 자괴감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가 자랑해 오던 그 가족을 와해시키는 장본인이 너와 내가 아니라면 누구란 말인가? 도대체 무엇이 우리 가슴 속에서 ‘가족’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는가? 나는 이 성당이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성 가족’만이 아니라, 우리에게서 멀어져가는 ‘내 가족’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기만이라도 한다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지금까지 내가 성당에 대해 비아냥거리듯 주절거린 모든 말을 찬양의 말로 흔쾌히 맞바꾸겠다.

구엘공원은 가우디의 가장 적극적인 후원자였다는 구엘 덕분에 가우디의 기발한 상상력이 총동원된 곳이라는 데, 세상에서 가장 신비스러운 공원이라는 그곳을 둘러보는 것으로 가우디와 작별하였다.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이번 여행을 생각한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문제는 너무 많은 욕심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비하여 너무 많은 곳의 너무 많은 유적을 보고자 하는 욕심이 너무 컸었다. 그것이 여행사에서 만든 프로그램 탓이라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그것을 그렇게 만든 것은 우리이지 남이 아니다. 쇠잔 속의 뜨거운 커피를 후후 불어가며 급히 마시고, 늘어놓은 고야‧ 세잔‧ 르노아르‧ 피카소의 그림 앞을 마라톤 하듯 달려온 느낌이다. 성당 성당 그리고 최고 최고.....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저 욕심을 줄이는 수밖에. 그것이 그들을 대하는 예의이기도 할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단체여행이 처음이라서 사람과의 부딪힘을 가장 걱정했었는데 다행히도 그것은 별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도리어 사람들을 접할 기회가 너무나 없었던 것이 아쉬웠다. 그러다 보니 죽은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산 사람의 이야기는 적어서 남길 그 무엇도 없다. 마치 묵언 수행을 하고 난 듯한 느낌이다. 바람직한 여행이라면 많은 부분이 사람 간의 이야기로 채워져야 할 터임에도 말이다.

제트기류 덕분에 스페인으로 올 때보다 비행시간이 두 시간이나 적게 걸리는데도 왜 더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는지는 알 수 없다. 공짜로 얻어 썼던 7시간을 이제 갚아야만 하기 때문일까? 하지만 나는 나의 시간에게 그렇게까지 야박하게 굴고 싶지는 않다. 내 가방에는 입은 옷보다도 입지 않은 옷이 더 많이 남았다. 항상 말하지만 살아가면서 짊어지고 가는 나의 걱정보따리도 그와 같다. 더러 잃어버려도 좋으련만 나는 항상 그놈의 걱정보따리를 신주 모시듯 챙겨 모시고 다닌다. 하지만 쓰지도 않은 우산을 챙겨온 것이 괜한 일이었을까? 비가 내리고 말고는 하늘의 일이다. 그 하늘의 뜻까지 내가 어찌 헤아리랴. 여행이라는 것이 늘 그렇지 않던가? 새로운 것에의 호기심은 달리는 기차가 너무나 느리고, 살펴보지 못한 아쉬움은 창밖에 스치는 풍경이 너무나 빠르게 마련이다. 이번 여행의 모든 것들이 내 속 깊은 곳에 곱게 남겨지기를 바란다. [2023. 5. ]

* 삶에서 중요한 가치관 조사: 미국 여론조사 기관 퓨(Pew)리서치센터가 2021년 전 세계 17개 선진국을 대상으로 삶에서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한국만 유일하게 ‘물질적 행복(material well-being)’을 1위로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은 ‘물질적 행복’을 삶의 1순위(19%)로 꼽았다. 이어 건강(17%)‧ 가족(16%)‧ 일반적 만족감(12%)‧ 사회·자유(각각 5%) 순이었다. 대부분 국가에서도 ‘물질적 행복’은 5위 이내였지만 1위는 한국이 유일했다. 17개국 중 절대다수인 14개 국가에서 ‘가족’을 1순위로 2순위로 친구‧사회공동체를 꼽은 것과 대조적이다.

[이준화]

잘 보았습니다 매우 수준높은 어행후기에 스페인에 대해서
많은것을 배우고 갑니다 감사 ^^

[김승태]

댓글을 달았다는 것을 이제야 봤네요. 스페인 여행을 앞둔 사람에게 괜히 미리 김빠지게 한 것이나 아니었는지 모르겠구만요. 다녀온 후기를 올려주시지 않으니 언제 만나서 말로라도 들어야 할 터인데......불구경 싸움구경 재미나고, 남의 고생담 기대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