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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글] 입니다.
사람들은 신세한탄을 굉장히 많이 한다.
문제는 그 시궁창 같은 삶의 이유가 본인의 문제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부모가 부자가 아니라서 내가 못산다는 생각을 한다면 솔직히 낳아준 부모가 불쌍하다.
그런 생각을 할시간에 내가 성공해서 부모님을 편안하게 살게 해주겠다는 생각이 훨씬 정상적이지 않을까?
어떤 삶을 살든지 살아가는 것이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다.
또한 삶의 기쁨도 그 살아가는 속에서 만들어진다.
삶의 단편적인 현실들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행복이 될수도 불행이 될수도 있는 것이다.
시궁창 같은 삶이라고 삶을 비관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집착하기 때문에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이 <긍정적인 사고>와 <미래지향적 삶>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야 현재를 보다 열심히 살게된다.
왜냐면 그런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들에게 모두 평탄한 길만 있었던 사람은 전혀없다.
성공한 그들은 현재에도 커다란 도전과 거대한 현실의 벽앞에 마주하는 것은 보통 사람과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어 그 이면의 세계를 보려는 욕구가 강할뿐이다.
우리가 잘아는 고 정 주영 회장은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은 갖은 고생을 한 인물이라는 것을 잘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들이 처한 현실과 다른점이 있을까?
최고의 축구선수인 리오넬 메시는 어렸을때 성장 호르몬 장애로 비싼 치료비 때문에 자신의 재능을 썩일뻔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그의 키는 여전히 169m에 머무르지만 현재 그 어떤 거대한 선수도 그 보다 큰 축구선수는 아니다.
운동선수의 신체사이즈는 워낙 중요하지만 그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한 거인이다.
빌 게이츠는 78~84년 사이에 휴가가 단 6일이었다.
그런데 하루하루 인생을 즐기자며 인생을 낭비하는 사람들은 빌 게이츠의 노력이 아니라 그의 돈만 본다.
그리고 그의 10분의 1만큼도 노력할 생각은 하지않는다.
정말 현실은 시궁창일까?
롯데 자이언츠에는 정 훈이라는 선수가 있다.
연봉도 낮은 아직 무명의 선수이지만 자이언츠 팬이라면 정 훈이 어떤 선수인지 잘안다.
그는 올해 처음 주전이 되었다.
그런데 이 선수는 2006년에 당시 현대에 입단했던 선수였다.
문제는 당시의 현대는 최강의 팀이었고 넘을수 없는 벽인 박종호와 용병 로드리게스, 정성훈 등이 주전 선수였고 더안타까운건 2006년에 같이 팀에 입단한 선수가 바로 강 정호와 황 재균이었다.
보통 프로지명 야구 선수들은 고교까지는 난다긴다하던 선수들이라서 프로에 와서 2군 생활을 시작하면 좌절하기 마련이다.
거기에 목돈인 계약금까지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지금도 많은 유망주들이 미리 짐을 싸서 야구를 그만두는 경우가 잦다.
정 훈도 그랬다.
그는 군대에 갔고 재대 후에는 별로 할일이 없어서 모교에 가서 후배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다시 2010년에 롯데의 연습생으로 다시 테스트를 거쳐 신고 선수로 2군에 입단한다.
피나는 노력으로 1군에까지 올라선다.
경기 중 그의 눈빛을 보면 이 사람이 얼마나 많은 후회를 노력으로 극복하려고 하는지 쉽게 찾을수 있다.
과거 현실의 벽에 포기했던 이 선수는 되돌아와서 더 큰 현실의 벽 넘어야 했다.
원래 롯데의 2루 주전은 상징과도 같은 주장 조 성환이었다.
현실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나만 최고로 힘들다고 생각하는가?
월드시리즈가 한참이다.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시리즈의 MVP는 일본인 투수 우에하라 고지이다.
그의 나이는 39세.
야구 선수로는 환갑이다.
우에하라는 중학교 때까지 육상선수였다.
고교에 진학해서야 야구를 시작했는데 고시엔(일본고교야구선수권) 대회에는 나갈만한 실력의 명문고도 아니었다.
일본은 고시엔 출신이 아니면 큰 인기를 끌지 못한다.
일본 사회는 경직되어 있어서 야구선수도 명문 사립고와 고시엔 성적 그리고 명문대 입학 이후 프로행이나 바로 프로행의 엘리트 코스의 선수들이 주류를 이룬다.
심지어 사회인 출신인 노모 히데오는 그 냉대 때문에 메이저 진출의 선구자가 되었고 보스턴의 다자와 주니치는 메이저로 직행했다.
우에하라는 별볼것 없는 학교 출신이라서 당연히 프로지명이 될리가 없고 체육대학 시험도 낙방했다.
그는 노가다를 하면서 재수를 했고 오사카 체육대학에 입학한다.
그리고 야구팀에 들어가는데 투수를 하게된 계기가 <어떤 포지션을 할래?>라는 물음에 투수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늦게 야구를 시작했고 대부분 외야수로 뛰다가 대학에 와서 본격적으로 투수가 되는데 문제는 투구를 제대로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우에하라는 놀란 라이언과 같은 대선수의 비디오와 이론서를
혼자서 독학해서 투구연습을 시작했다.
이기간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수가 없다.
왜냐면 그는 곧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국가대표에 선발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세계선수권에 출전했는데 당시는 프로들이 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쿠바는 세계최강이었고 160경기 무패였다.
이 포기한 경기에 선발로 나선 선수가 우에하라였고 그는 쿠바의 161경기 무패행진을 저지해버린다.
그리고 일약 스타가 된다.
당연히 메이저리그 팀이 그에게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에하라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지명을 받게된다.
일본에서 요미우리의 지명을 받은 선수가 메이저리그 진출은 당시로는 꿈꿀수가 없다.
그것은 일본 프로야구에 대한 모독이자 배신자의 낙인이 찍히는 행위였다.
이후에 우에하라는 요미우리의 에이스로 10년을 보낸다.
2006년 WBC 대회에서는 대한민국의 선수들이 일본에게 패한적이 없었지만 준결승에서 패하는데 당시 일본 선발 투수로 7이닝 무실점 투구를 하며 우리를 울렸던 선수가 바로 우에하라이다.
비록 우에하라가 요미우리의 에이스이기는 했지만 항상 고시엔의 스타이지 명문 엘리트 출신의 마쓰자카 다이스케나 다르비슈 유와 비교해 2인자 취급을 받았다.
심지어 요미우리의 반대로 35세가 다되어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게 된다.
물론 마쓰자카나 다르비슈와 같은 매스컴의 떠들석한 주목도 받지 못했다.
더구나 너무 나이가 든 그의 구위는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메이저리그에서 선발 투수로 견뎌내기 힘들었다.
결국 볼티모어에서 불펜투수로 전환하다가 텍사스로 트레이드된다.
텍사스에서 꽤 좋은 활약을 했지만 포스트 시즌에서 부진하면서 심지어 텍사스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을때는 엔트리에서 제외되어 구경만 하는 신세가 되었고 다음해에도 크게 중용되지 못했다.
보통사람이면 이제 39살에 포기하고 좌절했을것이다.
받아주는 팀도 별로없는 상황에서 보스턴 레드삭스가 보험용 로또로 올시즌 그를 영입했다.
그리고 그 어떤 전문가도 우에하라가 주연배우가 될것이란 예상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마무리 투수들이 줄부상을 당하자 임시 마무리 투수로 나서서 그는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아메리카 동부지구에서 4승 1패 방어율이 무려 1.09 24세이브로 팀을 지구 우승 시켰으며 포스트 시즌에서는 아메리칸 챔피언시리즈 MVP에 올랐고 이제 월드시리즈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글이 써진 이후에 우에하라는 월드시리즈 6차전에서 9회에 마운드에 올라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면 영광의 월드시리즈 우승 헹가레의 실제 주인공 투수가 됐다.)
그는 채프먼이나 킴브럴과 같은 마무리 투수들의 최대 덕목인 불같은 강속구가 전혀없다.
평범하다 못해 평균이하의 구속으로 매일 승리를 지키고 있다.
심지어 보통 메이저의 마무리 투수가 1이닝만을 책임지는데 반해 39살의 그는 위기 상황에는 8회에도 등장한다.
보스턴의 오티스는 그를 <실력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최고의 선수라고 평가했다.>
보통 일본 선수들이 미국 문화에 적응못하는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게 팀원들과도 끈끈한 면을 보인다.
그렇다.
그는 일본인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일본은 좋아할수가 없다.
하지만 일본인이란 개인을 모두 한가지 관점으로 보는 것은 불쌍한 사고 방식이다.
필자가 우에하라에게 가장 감동을 받았던 모습은 요미우리 시절이었다.
당시 페타지니와 마쓰이는 홈런왕 경쟁중이었다.
후에 양키스 선수였으며 월드시리즈 MVP에 올랐던 마쓰이는 당시 요미우리의 상징이었다.
여기서 일본의 비겁한 정신적 병폐가 발휘되는데 마쓰이를 홈런왕을 만들기 위해 요미우리 선수들은 고의로 페타지니를 포볼로 걸러보냈다.
아예 칠 기회를 안준 것이다.
이때 우에하라는 벤치의 지시를 보고 페타지니를 거른다.
일본야구에서 감독에 대해 선수의 항명은 있을수 없다.
그리고 우에하라는 마운드를 발로 차며 눈물을 훔치는 장면이 TV에 흘러나왔다.
심지어 베이징 올림픽 4강전에서 이 승엽의 홈런으로 대한민국에 패했을때 유일무이하게 옛동료였던 이 승엽을 찾아와 축하 인사를 한 선수도 우에하라였다.
만약 그가 당시 구원 등판했다면 어땠을까?
그는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킬러이자 국제대회 12승 무패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야구, 그리고 그것을 직업으로 택하고 메이저리거의 꿈을 이루었으며 이제 야구팬이라면 전세계가 주목하는 39세의 나이든 선수의 도전을 보면서 필자는 자신의 나태함을 질책하고 있다.
그리고 인생은 새옹지마이고 항상 노력하면 전화위복의 기회가 온다는 것을 다시한번 마음에 새긴다.
류 현진은 고등학교 시절 혹사로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인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았다.
인간의 몸은 소모품이라서 나이들면 죽게되듯이 팔을 혹사하는 직업인 투수의 경우 많이 던질수록 팔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는다.
류 현진이 프로에 들어올때 이미 1년 넘게 수술로 쉬었으며 그 수술의 재활과정은 프로 선수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당시 프로야구 드레프트에서는 당연히 한 기주나 나 승현은 알아도 류 현진은 주목받지 못하는 선수였다.
하지만 지금 류 현진은 메이저리그 선발투수이며 대한민국 야구사에 역대급 선수이지만 한 기주나 나 승현은 결국 고교때의 혹사가 프로에 와서 발목이 잡혀서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왜 류 현진은 성공할수 있었을까?
그의 멘탈을 보라!
항상 싱글벙글하면서 긴장감을 즐길줄 아는 그의 긍정적인 성격이 그 고난을 이기게 만든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엄청난 좌절의 시기를 극복하게한 피와 땀이 서린 노력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우에하라도 마찬가지다.
남들보다 야구를 늦게 시작해 불리하기만 했다고 생각하겠지만 고시엔에서 혹사 당해 마지막이 좋지않고 있는 마쓰자카와 같은 선수들과 달리 그는 당시 싱싱한 팔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팔이 많이 소모되자 타자들을 농락할 무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어마어마한 노력을 했을지 알수가 없다.
거기다가 그는 새가슴이라고 한다.
그가 영어를 안배운 이유가 영어로 야유를 하면 떨릴까봐서란다.
물론 이 인터뷰이후에 미국 관중들이 일본어로 야유를 하기도 했다.
현실은 정말 힘들다.
날씨만 해도 추우면 추워서 싫고 더우면 더워서 죽을것 같다.
그러나 생각을 바꿔보면 어떨까!
내가 어떤 일을 하든지 내가 열심히 일을 하면 그것을 쓰거나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행복하며 그렇게 행복을 많이 나눠주면 그것이 다시 나에게 돌아와 더 크게 모아진 행복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즐겁지 않을까?
지금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내가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평생을 불평불만만 하면서 살게된다.
현실이 시궁창이라면 이제 더 나빠질게 없지 않은가?
바꾸어보면 이제 행복만 남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1분 1초를 열심히 사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작성자 갈매기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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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동!
감동적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저도 잘 읽었습니다. ^^
좋은 글이네요.
감동!
지금 우리 아들이 인 서울하지 못해서 침체되어 있는데 꼭 맞는 좋은 글입니다 오늘 밤에 가서 읽어 보라고 권해야 겠어요
감사합니다.
일요일 출근,,,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불만이 사라지는 좋은글이네요.
열심히 일하다보면 좋은 날이 있겠죠~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