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 축복의 원리(말3장7-12)
성경본문/말라기 3:7-12
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12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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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주사 대학(Azusa Pacific University)의 리처드 포스터(Richard J. Foster)목사님의 책 가운데 ”Money, Sex and Power”돈, 섹스, 권력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소유권에 대한 회심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인 노릇 하는 데서 하나님이 주인인 것으로 돌아서는 것이 회심입니다.
즉,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셨고,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쓰여져야 된다는 사실을 그는 소유권에 대한 회심이라고 말합니다. 이 소유권에 대한 회심을 ’내적인 단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하나님 앞에 바칠 때에 아들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소유권, 즉 내적인 단념을 한 것입니다. 내적인 단념을 하게 될 때에, 우리는 소유에 대해 자유로운 사람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책의 요지는 돈에는 영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돈은 인간이 가진 우상 가운데 가장 잔인하고 무서운 우상이 될 수도 있고, 돈을 의미있게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 일을 가장 의미 있게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도구도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사람은 그 사람이 돈을 사용하는 출처를 보면 그 사람이 가진 관심이 무엇인지, 그 사람이 어떤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그 사람의 우선 순위와 그사람의 가치관을 파악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구약의 마지막 책 말라기서입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포로에서 돌아온 후 고레스의 도움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성전이 완공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각하기를 이제 성전 건축만 끝나면 자동적으로 그리고 요술같이 하늘 축복이 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배드리는데 게을렀습니다. 감사생활에 게을렀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형식적인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 말라기서는
1장: 감사생활이 없는 헛된 모습들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책망하는 모습이 나옵
니다.“눈먼 것, 병든 것, 찌든 것 가지고 나와서 너희들 예배하려 하느냐? 하나님 앞에 상달되지 아니할 것이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지도자들이 방만하게 살았습니다. ’정치 지도자들 얼굴에, 종교지도자들 얼굴에, 제사장들 얼굴에 내가 똥칠을 하겠다’라고 선언을 하는 말씀이 말라기서 2장입니다. 그리고 3장의 문을 열면 ’돌아오라! 돌아오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돌아오라는 애절한 하나님의 외침과 부르짖음이 들립니다.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목회하고 계시는 L. 픽켓 목사님이 했던 설교 가운데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여전도회장님이 한 번은 목사님을 찾아오더니,
”목사님 다음 주일날 광고를 해주세요. 교인들보고 빈 병, 폐품을 전부 모아 가져와 달라고 해주시면 그걸 팔아서 교회 사업을 하고자 합니다.”
목사님이 설득을 했습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먼저 잘라서 바치는 것이지 폐품 팔아서 하나님일 하는 것 아닙니다.” 가르쳤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 일 하려는데 돈이 모자라서 그래요.”하도 간곡하게 얘기하길래 목사님이 ”알았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주일날 목사님이 ”여러분 집에 있는 빈 병이나 폐품이나 휴지 조각 있으면 전부 가져오십시오. 그것을 모아 팔아서 우리 여전도회장님 살림살이 좀 보태주려고합니다. 여전도회장님 용돈 좀 마련해 드리려 합니다.”그렇게 광고를 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여전도회장이 길길이 뛰면서 담임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나를 어떻게 보고서 그런 소리를 하십니까? 어떻게 그런 목욕?을 줄 수 있습니까? 나를 거지로 아셨나요? 자존심 상해서 교회 못나오겠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정중하게 웃으면서
”회장님 그 빈 병 팔아서 모은 돈으로 회장님이 쓰면 자존심 상하고, 하나님이 쓰면 하나님은 그럼 자존심도 없는 분이신 줄 알았습니까?”
그래도 여전도회장이 화가 안 풀렸나봐요. 그날 밤 잠을 자지 못하고 씩씩거리다가 늦은 밤
에 잠이 들었는데 천국에 갔더래요. 갔더니 온 교인들의 천국집이 보이는데 황금으로 지은 집사님집, 진주 보석으로 지은 권사님, 집사님 집들이 가득하게 있는데 자기 집이 없더랍니다. 동네가 끝나는 한쪽 개울창 아랫동네에 기둥은 병 조각 부셔서 세우고, 벽은 휴지조각 뜯어서 갖다 붙인 집이 있길래 이게 누구 집인가 하고 가서 봤더니 자기 이름이 큼지막하게 써 있더랍니다. 깜짝 놀래서 깼더라지요. 하나님 앞에 이렇게 살아가는 것 아니구나! 회개하고 언제나 하나님을 먼저, 하나님을 가장 중심자리에 높여서 살아가는 삶을 살았다는 얘기입니다.
영적인 침체에 빠져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영적인 지도력을 상실한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향하여, 경제파탄에 빠져있는 전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돌아오라 ”회개하라”는 멧세지가 선포 되고 있습니다.
회개하라는 것은 하나님을 떠났던 사람이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나도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고 하셨습니다. 항상 문제는 우리 자신입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죽을 때 까지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탕자의 귀향은 어떻게 시작 됩니까? ”이에 스스로 돌이켜, he came to himself” 그는 아버지께 가기 전에 자신에게 돌아왔습니다. 문제는 언제나 [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변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사람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 앞으로 돌아와서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받아 주십니다. ”내게 돌아오라”고 했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묻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돌아갑니까?” ”어떻게 회개 합니까?” 그랬더니 8절에 보시면 주께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 하십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겠느냐?” 회개하라고 하시면서 갑자기 ”네가 돈 떼어먹은 것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뭔가 문맥의 흐름이 고상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기에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
다.
”성경은 돈 문제가... 사람에게 있는 가장 기초적인 영적 문제”라고 지적 하고 있습니다.
돈과 영성의 관계는 매우 밀접한 것 입니다. 예수께서도 설교와 비유와 교훈 가운데 1/3을 돈 얘기 하는데 사용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회개의 기초는 우리의 재물 사용에 대한 것 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첫 마
디가 ”너희들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했다”는 것 입니다.
”우리가 언제 그것도 어떻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했느냐”고했더니 ”십일조와 헌물”을 도
둑질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좀 거스리는 표현이 ”도둑질”이라는 것입니다. 기분은 안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기본적으로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온 우주와 천지 만물, 삼라만상은 누구의 것 입니까?
우리의 것일까요? 누구에게 속해 있을까요? 다윗의 고백을 읽어 보실까요?
대상 29:11-14
11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
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
의 머리심이니이다
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13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14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
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여기 이 겸손한 고백을 들어 보세요.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
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주의 것 인데 제게 잠시 맡겨 주신 것뿐입니다. 시간도 맡겨주셨고, 재물도 맡겨 주셨고, 가정도 맡겨주셨고, 회사도 맡겨주셨고, 가게도 맡겨주셨고, 직장도 맡겨주셨고, 자녀도 맡겨주셨고, 직분도 맡겨주셨고, 명예도 맡겨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맡기셨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표증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재물을 맡기시며 ”이 모든 것이 나의 것이고 너에게 맡겼는데 네게 맡긴 것의 1/10은 손대지 말라” 10개중 하나를 손대 0지 않음으로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 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입니다.
구약 시대에 십일조라는 것은 전체가 하나님의 것 이라는 것에 대한 대표성을 상징하는 것 입니다.
주일 개념도 마찬가지 입니다. 왜 일주일 중에 하루 만이 주의 날 입니까?
하루를 ”안식일, 또는 주의날”로 지킴으로서 나머지 모든 날도 주의 날 인 것을 인정하는 대표성의 원리적 의미가 여기 있습니다.
어린이 날의 의미는 무엇 입니까? 어머니 날의 의미는 무엇 이겠습니까?
365일 중 한 날을 어린이 날로 정한 것은 나머지 364일도 이런 정신을 가지고 어린이를 귀중히 여기고 사랑으로 잘 양육 하라는 뜻입니다.
십일조나 주일 성수를 한다는 것은 다 이런 대표성의 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 하나님의 것 인데 일부를 떼어 놓음으로서, 전체가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 하는 것 입니
다. 여기에 십일조의 근본정신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하나의 신앙고백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나를 시험해 보라는 말씀까지 하십니다. 십일조는 무슨 시험입니까?
1. 십일조는 믿음의 시험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아니하나 보라”(말 3:10)
이 말씀은 말라기 선지자의 말이 아닙니다. 목사의 말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이 표현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의 주인이심을 말해 줍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늘과 땅과 바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조물주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아멘하여 바로 순종하면 좋고, 그러지 못하겠으면 시험이라도 해서 체험해 보라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가 십일조를 바치므로 여섯 번 놀랐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 첫째는 십일조를 바치므로 자기 신앙이 더 확고해짐을 보면서 놀랐고,
▶ 두 번째는 십일조를 바치고도 나머지로 넉넉하게 살아가는데 놀랐고,
▶ 세 번째는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그렇게 많은 돈을 낼 수 있다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놀랐고,
▶ 네 번째는 십일조를 내보니 물질에 매이지 않는 담력이 생긴 것에 놀랐고,
▶ 다섯 번째는 십일조를 내면서 자신의 생활이 물질적으로 부유해지는 것을 보고 놀랐고,
▶ 여섯 번째는 이런 축복을 진작 받을 것을 왜 이제야 받았던고 그러면서 후회하면서 놀랐다는 것입니다.
2. 십일조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시험입니다.
왜 하나님은 십일조 물질을 드리라 하십니까?
그것은 우리의 사랑의 마음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느니라.’ 헌금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반드시 물질로 고백해야 합니다. 십일조는 물질에 대한 고백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시험입니다.
사랑의 확증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뭔가를 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주고 또 줘도 아깝지 않습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왜 인색해 집니까?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니까 그렇습니다.
3. 십일조는 소망의 시험입니다.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십니다. 이 말씀은 축복해 주시는 것을 시험해 보라는 말씀입니다.
십일조 신앙은 나 자신의 개인적 축복일 뿐만 아니라 자손 대대의 소망을 가진 자가 받는 축복입니다. 어머니가 십일조 신앙으로 살아가면 그 자녀들이 복을 받습니다. 십일조는 자 손대의 축복이며 국가의 축복을 약속하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십일조는 단순한 물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시험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에 대한 불순종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신이 되는 것입니다.
8절 하반 절에 보면 ”십일조와 헌물”을 나누고 있습니다.
왜 이것을 나누었습니까? 이것은 ”십일조는 엄밀하게 말해서 헌금” 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세 가지 십일조가 있었습니다.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레 27:30)
이것은 율법입니다. 구약에는 십일조가 율법의 조항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성도의 마땅한 의무였습니다.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신 14:22)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신14:28-29)
신약에 와서 십일조는 율법이 아니라 축복의 언약입니다. 예수님도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에 형식으로 십일조 드리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다가 멈추시고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십일조도 하고 의와 인과 신도 버리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일조 한다고 칭찬하고, 십일조 한다고 어깨에 힘주고, 십일조 한다고 큰소리치는 것은 유치한 것 입니다. 그것은 기본 중의 기본 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 안하는 사람은 기본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문제는 헌물 입니다. 나머지 90% 가운데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헌물 또는 헌금입니다. 감사헌금,구제헌금,선교헌금,건축헌금,장학헌금, 각종 지정헌금은 하나님의 것을 감사함으로 돌려 드리는 헌물입니다.
십일조 생활 철저히 해서 축복 받은 사람의 간증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십일조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신 분은 손들어 보세요)
일조 얘기가 나오면 빠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미국의 최고 부자였던 록펠러입니다. 록펠러가 얼마나 부자였느냐 하면 뉴욕 맨하탄의 한 블록에 있는 수십 개의 거대한 건물이 다 록펠러의 건물이었습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건물도 록펠러의 것이었습니다.
록페러는 십일조 생활은 잘 했습니다. 그러나 삼사대 내려 오면서 자손들이 십일조 생활을 안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록페러 가문이 가지고 있었던 맨하탄의 건물이 대부분 일본 사람들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십일조 생활에 대한 교육을 안했기 때문에 당대에는 축복을 받았지만 그 후손들은 그런 복을 누리지 못한 것 입니다.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유산은 재물이 아닙니다. 십일조하는 훈련부터 시키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재산 10불도 안 물려줘도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는 자녀들이 될 줄로 믿습니다.
또 유명한 사람은 Willam Colgate입니다. 집안이 너무 어려워서 16살 때 비누 공장 할 꿈을 가지고 뉴욕으로 가던 중 운하의 선장인 노신사를 만나 자기의 꿈과 포부를 말했더니 “앞으로 뉴욕에서 제일가는 비누회사 사장이 나타날 터인데 바로 네가 그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질 좋은 비누, 정량의 비누를 만들 것과 수입의 십분의 일을 정확히 드리라고 일러주었을 때 그 말을 명심하고 실천하여 큰 거부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1/10을 드리다가 그 다음 2/10, 다음 3/10, 나중에는 5/10를 드렸는데 큰 거부가 되었습니다.
아침 식사로 먹는 오트밀, Quaker Oat Co. 사장, Mr. Crowell도 십일조로 거부가 된 사람이고
Ivory 비누로 유명한 Mr. Ivory, 맨솔래담으로 유명한 A. A. Hyde는 그 옛날 10만 불의 부채가 있는 상태에서 십일조를 드리다가 거부가 되었고 치즈 왕 Mr. Kraft도 십일조 를 드려 거부가 되었고 기관차를 만들어(Baldwin locomotive회사) 거부가 된 마티아스 볼 드윈(Matthias Baldwin)씨도 철저한 십일조 생활로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플라스틱 제품 의 왕자라고 할 수 있는 Stanley Tam씨는 처음에 십일조를 해도 실패를 보았다가 전체 운 영권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 전부를 드리고 자기는 봉급만 받는데도 엄청난 거부가 되었습니다.
세계에 호텔 체인을 가지고 있는 Holyday Inns의 사장, Wallace Johnson씨도 십일조로 거부가 된 사람입니다. 그 예를 다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1950년 알버트 슈바이쳐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알베르트 까뮈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슈바이쳐는 상금으로 아프리카 난치병환자들에게 병원을 지어주어서 오늘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그 병실에서 나음을 얻습니다.
그러나 까뮈는 파리 근교에 별장을 짓고 주말 마다 거기 가서 쾌락을 즐겼습니다. 어느 주일 아침 예배시간, 애인과 함께 별장으로 달려가다가 교통사고로 이 세상의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카네기는 ”얼마를 벌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했는가 하는 것만 중요하다. 돈을 남기고 죽는 것은 수치다. 모두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쓰고 죽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가 평생에 선하게 쓴 돈이 그 옛날에 약 3천억 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예배 행위가 되는 것을 아십니까?
히 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그러면 십일조는 어디에다 갖다 내야 할까요? 다시 10절 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여기서 나의 집은 어디 일까요?
우선적으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구체적으로 자기가 소속된 교회에 드리는 것이 옳습니다.
십일조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여기 저기헌금 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것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고 자기 맘대로 쓰는 교만한 생각 입니다.
우리가 국가에 세금 낼 때 ”이 세금은 여기에 써 주시기 바랍니다”하고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이번에 내는 세금은 제일 어려운 지역의 수재민을 도와주세요. 이 세금은 우리 동네도로공사 하는데 사용하여 주세요.
다만 우리는 국민으로서 국민의 의무이기 때문에 세금을 내는 것 이고, 세금을 어떻게 쓰는지 결정권은 행정부에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께 바친 헌금을 사용할 결정권도 교회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회는 이 헌금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잘 써야 합니다.
그런데 마치 십일조가 자기 것 인양 생각해서 십일조를 선교기관이나 자선 사업 단체에 보내면 두 가지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 첫째는 하나님의 것인데 마치 사람의 것 인양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감사하고 사람에게 영 광을 돌리게 되는 것 입니다.
▶ 둘째는, 선한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엉터리 목회자와 가짜 사역자를 도울 수도 있습니다.(한국 시골 교회목회자 엽서 1,000군데 발송…10%는 속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함부로 돕지 않습니다. 교회는 헌금을 사용할 때 신중하며, 돕는 개인이나 단체를 사전에 면밀히 조사하고 난 후에 돕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가장 많이 시험에 드는 것은 교회에서 헌금을 잘못 사용하기 때문 입니다.
헌금을 힘을 다해 내었건만 생명 살리는 데는 쓰지 않고 엉뚱한 데만 낭비하기 때문 입니다.
마지막으로 십일조 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축복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풍족하게 부어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성도에게는 하늘 문을 여는 3개의 열쇠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천국 문이 열리며, 기도로 하늘 문이 열려 성령을 선물로 받고, 십일조로 하늘 문을 열어 물질 축복을 받게 됩니다.
잠 3:9-10
9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10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포도즙이 넘치리라
역사를 보고 나라들을 보고 배우십시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솔로몬 같은 거부가 된 성경 인물들을 보고 배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고, 이웃을 섬기기 원해 나누어 주는 나라들은 항상 최고로 부유한 사람을 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둘째는, 보호의 약속 입니다.
말 3: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보호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농작물도 보호해 주고 우리의 삶도 보호해 주시겠다는 말씀 입니다. 포도 알이 익기도 전에 우박이 떨어지고 비바람이치면 한해 농사를 망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포도가 떨어지지 않고 열매를 잘 맺을 수 있도록 끝까지 지키시고 보 호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그래서 묘한 일들이 생기는 것 입니다. 남들에게 다 닥치는 일을 혼자만 안겪고, 남들 다 망 할 때 혼자만 잘되고, 남들은 다 불황이라고 할 때도 그 집만 호황 입니다. 왜냐하면 전능자가 보호해 주시기때문 입니다.
이런 간증을 들었습니다.
어느 교회에 아주 인색하기로 소문이 난 인 권사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권사님은 재산은 많았지만, 하나님께 십일조 드리는 것이 아까워서 감사헌금만 조금씩 드렸습니다. 그런데 3대 독자 아들이 장가를 갔는데, 며느리가 임신을 하기만 하면 낙태를 했습니다.
그래서 며느리가 세 번째 임신을 하자,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뭐 좋은 방법이 없겠습니까?”
”함께 기도합시다.” 그런데 목사님이 기도하시던 중에 하나님께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 말라기 3장 11절 말씀을 펼쳐 보고는 권사님에게 말했습니다. ” 권사님,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십일조를 드리셔야겠습니다.”
인 권사님은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며느리를 위해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며느리의 배가 점점 불러지더니 기한이 다 되어 순산을 하게 되었습 니다. 옥동자 같은 아주 귀여운 손자를 낳았습니다. 권사님은 그때서야 정신이 들었습니다. ”와! 십일조가 세긴 세구나!” 그는 진작 십일조를 드리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며, 축복을 받으려면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고 솔선해서 가르치고 전도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십일조 생활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 바치느냐 병원에 바치느냐, 교도소에 바치느냐, 경찰서에 바치느냐, 자동차 공장에 바치느냐, 그 차이 입니다”
십일조 바치지 않으면 황충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십일조 액수 이상이 병원비로 나가고, 보험회사에 갖다 주고, 변호사에게 갖다 줍니다. 어떤 사람은 사기 당해서 십일조 이상을 손해 봅니다. 그것도 아니면 도둑이 들어와서 십일조 이상을 털어 갑니다. 아니면 차만 세우면 티켓을 땝니다. 자녀들이 여러가지로 사고 치므로 말미암아 뒷처리 하느라고 돈을 썼을 것 입니다. 그러니까 누구에게 바쳤든간에 십일조는 다 바치게 되어 있습니다.
셋째는, 존경과 칭찬 입니다.
말 3:12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러분, 내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축복이 증가한다는 것 그와 동시에 십일조가 증가한다는 것, 이것은 신앙생활의 재미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우리의 응답, 감사의 응답입니다.
한 평생 이 하나님의 축복의 응답의 계속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잠 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는 말씀처럼 십일조 생활 하는 사람들은 칭찬과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는 말씀 입니다. 그런데 십일조 떼어 먹고 사는 사람들은 평생 거지 같이 남의 도움이나 받으며 살게 되는 것 입니다.
십일조의 축복은 확실한 것 입니다.
참존 화장품 김광석 회장님의 간증을 들어 보신 분이 계십니까?
이 분은 신앙생활의 초기부터 주변에 있던 두 분에게서 십일조에 대한 도전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 당시 이 분은 적자투성이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고, 보건 범죄 단속법 위반으로 벌금 8억 3천만 원의 빚을 지고 있는 터였습니다. 자연히 이제 갓 교회 출석하기 시작한 사람으로 이익이 남아야 십일조지 적자 투성이의 회사 운영을 하는 사람에게 십일조는 가당치 않은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친구의 권면이어서 슬며시 한번 해 볼까하는 충동을 느끼던 차에 또 한명의 지인을 통해 도전을 받습니다
.“김 사장님, 이제 크리스챤이 되셨으면 십일조를 하셔야지요. 사업하는 사람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기는 쉽지 않으시겠지만 한번 십일조를 하나님을 시험해 보시지요”
그리고 그에게 말 3:10의 말씀을 드려 줍니다.“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유난히 도전의식이 강하고 승부사의 기질이 강한 그는 문자 그대로 하나님을 시험하고 싶었답니다. 그래서 그는 당장 그 다음 주부터 매주 십일조를 드리기로 하고 십일조가 아닌 십이조를 드리면서 그의 간증집 “주가 쓰시겠다 하라”에 보면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제가 다음 주부터 십의 이조를 드리겠습니다. 제 사업이 어렵다는 것 주님이 더 잘 아시지요. 빚 갚고 직원 급여 주고 나면 남는게 하나도 없는 것 하나님이 더 잘아시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의 이조를 드리겠습니다.
그 대신 저도 조건이 있습니다. 제가 십의 이조를 드리는 대신 다음 달부터 메출액의 두배를 늘려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성격이 급합니다. 1년후가 아니라 당장 다음 달에 증거를 보여 주셔야 합니다.”
세 주까지 아무 소식이 없더랍니다. 그런데 삼주를 넘기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전국의 대리점을 비롯하여 외국에서부터 주문이 쇄도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새로 개발한 제품이 빅 히트를 했고 공장은 24시간 가동하게 되었고 매출은 두배가 아닌 8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분은 이제 전국 교회를 다니며 십일조 헌신을 가르치는 사역자가 되신 것입니다.
1989년 12월 31일 이분은 모든 벌금을 다 내고 부채에서 자유해진 그날을 가르쳐 이제 그
의 인생은 BC와 AD처럼 새로운 분기점을 맞아 새처럼 날아오르게 되었다고 간증합니다. 그리고 십일조 헌신과 함께 두 가지 약속을 더 하게 됩니다.
새벽기도와 함께 나머지 일생을 도덕적으로 성결하게 살기로 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이라도 이런 분을 축복하고 싶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