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에드가 앨런 포의 ‘The Raven’
It was many and many a year ago
In a kingdom by the sea
That a maiden there lived whom you may know
By the name of Annabel Lee
And this maiden she lived with no other thought
Than to love and be loved by me
I was a child and she was a child
In this kingdom by the sea
But we loved with a love that was more than love
I and my Annabel Lee
With a love that the winged seraphs of Heaven
Coveted her and me
And this was the reason that long ago
In this kingdom by the sea
a wind blew out of a cloud, chilling
my beautiful Annabel Lee
So that her highborn kinsmen came
And bore her away from me
To shut her up in a sepulchre
in this kingdom by the sea
The angels, not half so happy in Heaven
Went envying her and me
Yes! That was the reason(As all men know
in this kingdom by the sea)
That the wind came out of the cloud by night
Chilling and killing my beautiful Annabel Lee
But our love it was stronger by far than the love
Of those who were older than we
Of many who were wiser than we
And neither the angels in Heaven above
Nor the demons down under the sea
Can ever dissever my soul From the soul
of the beautiful Annabel Lee
For the moon never beams without bringing me dreams
Of the beautiful Annabel Lee
And the stars never rise but I feel the bright eyes
Of the beautiful Annabel Lee
And so, all the night-tide I lie down by the side
Of my darling, my darling-My life and my bride .
In the sepulchre there by the sea
In her tomb By the side of the sea//
오래도 아주 오래 전에, 내 참 좋아하는 팝송 가수 짐 리브스(Jim Reeves)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읊듯 부른 노래가 있었다.
언뜻 느낌에, 여인의 이름을 연상케 하는 ‘에나밸 리’(Annabel Lee)라는 제목의 노래였다.
짐 리브스라면 ‘가야만 하리’(He'll Have To Go)와 ‘친구여 안녕’(Adios Amigo)과 같은 노래로 20대 젊은 시절의 내 혼을 온통 앗아갔던 가수다.
그래서 내 그 젊은 시절부터 일흔 나이의 지금껏 변함없이 내 그를 좋아하고 그의 노래를 좋아한다.
어쩌면 그의 노래가 있어 그 노래를 듣고 부르면서, 지치고 힘든 내 젊은 시절을 견뎌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느낌으로는 분명 시를 낭송하는 것 같긴 했지만, 짐 리브스가 부르고 있었기에 ‘에나밸 리’ 역시 노래로 생각하고 들었었다.
노래가 하도 길어서 가사를 외울 생각은 아예 하지 않고, 그저 듣기만 했었다.
그랬으니 그 노래에 담긴 뜻이 뭔지도 몰랐다.
그렇게 뜻도 모르면서 듣기만 하다 보니, 어느덧 내 기억에서 ‘에나밸 리’ 그 노래는 사라지고 말았다.
겨우 기억에 남아 있었던 것은 그 즈음에 내 친구 하나가 서울 강남구 논현동 어느 고갯마루에 ‘에나벨 리’라는 그 이름으로 고급 레스토랑을 경영하다가 어느 한 순간에 스르르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뿐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기억에서 사라졌든 ‘에나벨 리’라는 그 이름이 내 생각의 세계를 문득 파고드는 순간이 왔다.
한 달 전쯤의 일이다.
한 달이라면 내게 있어서는 꽤나 긴 세월이어서 그 날짜가 며칠인지 시간은 몇 시인지 요일은 어떤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새벽쯤이었다는 것뿐이다.
그 새벽에 문득 잠이 깼었고, 더 이상 잠들지를 못해서, 이왕 깬 김에 영화나 볼까하고 TV를 켰다.
어느 채널인지도 기억이 없긴 했지만, TV를 켠 첫 순간에 내 눈에 들어온 화면은 영화였다.
‘더 레이븐’(The Raven)이라는 2012년 미국 제작의 스릴러 영화였다.
그 제목의 뜻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저 그 영화에 출연하는 주인공이 ‘존 쿠삭’(John Cusack)이라는 미국 배우로, 그가 출연한 2009년 미국 제작의 어드벤처 영화 ‘2012’를 감명 깊게 본적이 있어, 그 인연으로 ‘더 레이븐’이라는 영화를 끝까지 보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영화를 끝까지 보면서 알게 된 것이, 영화 제목의 중심인 ‘Raven’이라는 영어단어가 ‘갈가마귀’라는 것과, 그 원작을 쓴 작가가 에드거 엘런 포(Edgar Allan Poe)라는 사실이었다.
에드거 엘렌 포에 대해서는 미국 작가로 추리소설의 창시자 정도로만 알고 있던 터여서, 그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인터넷 Daum사이트 검색을 해봤다.
‘검은 재해(災害)의 벌판에 떨어진 조용한 운석’
Daum백과는 그 한 줄 짧은 문장으로 에드거 엘런 포를 소개하고 있었다.
다음은 그 소개의 글 전문이다.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말라르메가 에드거 앨런 포 사후 그에게 바친 소네트이다. 19세기 미국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포는 소설가, 시인, 비평가로, 근대 환상 문학의 창시자, 단편소설의 창시자, 추리소설의 창시자로 불린다. 〈검은 고양이〉, 〈어셔 가의 몰락〉 등 낭만적이고도 음산한 분위기 속에 죽음과 공포, 괴기가 인간의 심리 묘사와 한데 어우러진 작품들을 많이 발표했으며,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에드거 앨런 포는 1809년 1월 19일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데이비드 포는 순회극단 배우로, 아들이 태어난 지 18개월 만에 집을 나갔다. 그때까지 포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부모를 따라 순회극단의 분장실 커튼 뒤에서 자라났다. 그가 3세 때 어머니 엘리자베스가 사망했고, 이후 리치먼드에 사는 숙부 존 앨런에게 입양되어 '에드거 앨런 포'라는 이름을 받았다. 담배 사업을 크게 벌이던 숙부는 매우 부유했고, 에드거는 남부럽지 않게 자라났다. 6세 때 사업 관계로 런던으로 이주하는 숙부를 따라가 이듬해부터 약 5년간 런던의 기숙학교를 다녔다. 이 시기부터 틈틈이 시와 단편소설을 습작했다.
11세 때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으며, 17세 때 버지니아 대학에 입학했다. 이 시기에 그는 사라 엘미라 로이스터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졌는데, 그녀가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다른 남성과 결혼하자 크게 상심했다. 포는 명석한 우등생이었으나 그런 한편 생각이 많고 감수성이 풍부하며 다소 심약했다. 때문인지 평생에 걸쳐 어려운 일에 부딪칠 때마다 술과 도박으로 도피했으며, 우울증과 불안 장애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 연애 때문에 상심했는지 그는 대학에 입학한 지 1년이 지나지 않아 도박과 술에 빠져 엄청난 도박 빚을 지게 되었다. 이에 격노한 숙부는 그를 자퇴시키고 자신의 상점에서 일하게 했다. 그러나 포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숙부와 심각한 언쟁을 벌인 끝에 집을 나와 보스턴 항구로 향했다. 직업을 구하려 했지만 실패하자 포는 한 달여 만에 군에 자원입대했다.
그해 여름 포는 《태멀레인과 그 밖의 시들》이라는 시집을 익명으로 출간했다. 엘미라 로이스터와의 파경 이후 절망적인 심정으로 쓴 시들이었다. 이 시집은 아무 주목도 받지 못했으나 포는 꾸준히 글을 써서 《알 아라프, 태멀레인 그리고 다른 시들》, 《에드거 A. 포 시집》을 펴냈으나 역시 주목받지 못했다. 그는 시를 단념하고 소설에 매진하기로 한다. 숙부 존 앨런의 재정적 지원이 완전히 끊긴 데다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군대에서도 제대하여 글로 생업을 유지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잠시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 들어가기도 했으나 곧 그 결정을 후회했다. 그리고 다시 술과 도박에 빠졌고, 이로써 새로운 연인 메리 스타리와도 파국을 맞이했다. 숙부 역시 크게 실망하여 그를 상속권자에서 완전히 제외시켰다.
포는 볼티모어로 가서 미망인이었던 숙모 마리 클렘의 집에 살면서 각종 잡지와 신문에 단편소설들을 응모했다. 그리고 24세 때 〈볼티모어 위클리〉 지에 〈병 속에 담긴 원고(MS. Found in a Bottle)〉가 당선되면서 서서히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던 리터러리 메신저〉 지에 〈베레니스〉, 〈그림자〉 등 단편소설 몇 작품을 발표했다. 그 인연으로 1835년부터 약 3년간 편집자로 일하면서 많은 문학 비평들을 남겼다.
1836년, 28세의 포는 숙모 마리 클렘의 딸인 사촌 버지니아 클렘과 결혼했는데, 당시 그녀의 나이는 14세였다. 행복한 신혼 생활과 편집자로서의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되어 있었음에도 그는 음주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결혼 이듬해 〈서던 리터러리 메신저〉의 발행인과 불화를 일으켜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여기에는 또 다른 여인과의 추문 사건도 있었다. 이 때문에 포는 추문을 피하고자 장모와 아내를 데리고 뉴욕으로 떠난다. 그러나 뉴욕에서도 일자리를 찾지 못해 결국 장모가 가계를 꾸려 나가며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듬해 포는 장편소설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를 발표하고 닥치는 대로 소설을 쓰는 한편, 직장을 구하러 다녔다. 그러나 당시는 금융대공황 시기라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고, 소설을 쓰는 일은 생계에 큰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 여기에다 사랑하는 아내 버지니아의 건강도 악화되기 시작했다.
1840년대부터 포의 작가로서의 전성기가 시작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가난했다. 1841년에는 그동안 쓴 공포소설들을 모아 《그로테스크하고 아라베스크한 이야기》라는 단편집을 출간했고, 최초의 탐정이 등장하고 논리적인 추리를 플롯에 활용한 최초의 추리소설 〈모르그 가의 살인〉을 발표했다. 버지니아가 죽은 1847년까지 포는 왕성하게 창작열을 발휘하여 단편소설 〈함정과 추〉, 〈황금충〉, 〈도둑맞은 편지〉, 〈적사병의 가면〉, 〈검은 고양이〉 등을 발표했다. 또한 그의 명성을 일거에 드높인 걸작 시 〈갈가마귀〉도 이때 썼다.
〈검은 고양이〉를 발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인 보들레르가 프랑스의 주간지 〈파리 마치〉에 번역된 그 작품을 보고 큰 인상을 받고, 직접 다시 번역해 소개하면서 포는 프랑스에서 크게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보들레르는 '여기에 내가 쓰고 싶었던 모든 것들이 있다'라고 극찬하면서 이후 포의 작품 대부분을 프랑스에 번역하여 소개했다. 그의 작품에 쓰인 상징성과 독특한 감성 그리고 주도면밀하게 계산된 시어와 플롯, 단어 선정은 말라르메를 비롯해 발레리 등 프랑스 상징파 시인들의 추앙을 받았다. 그러나 포는 지나치게 미학적인 부분과 감성 표현에 치중하여 실용주의를 견지하는 미국에서는 이단자로 취급받았고, 영국에서는 비속하다는 지적을 받는 등 무시당하기도 했다. 사후에도 이런 평판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작가로서의 성공에도 포의 삶은 안정을 찾지 못했다. 버지니아의 건강이 점점 악화되었고, 포의 음주벽도 날이 갈수록 더해 갔다. 1847년 1월 30일, 버지니아가 25세의 나이에 결핵으로 숨을 거두자 포는 완전히 절망에 빠졌다. 포는 그녀가 죽은 후에도 몇 주 동안 무덤가를 배회하며 울부짖었다. 우울증과 음주벽이 심화되었으며, 아편을 하고,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버지니아에 대한 사랑과 슬픔은 그녀를 그리며 쓴 시 〈애너벨 리〉에도 잘 드러나 있다.
포는 결국 그녀가 죽은 지 2년 만에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하기에 이른다. 1849년 10월경, 포는 볼티모어의 한 주점에서 과음으로 쓰러져 지나가던 행인에 의해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그는 정신착란과 흥분상태를 오가다 결국 혼수상태에 빠져 10월 7일 홀로 쓸쓸히 숨을 거두었다. 마지막으로 "신이시여, 내 불쌍한 영혼을 구하소서."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도벽과 음주벽으로 대학에서 쫓겨나고 끝내 양아버지에게 의절당했으며, 평생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수차례 여인들과의 추문 사건을 일으켰으며,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으로 결국 몰락을 맞이했다는 일화들은 사후 부풀려지고 윤색되어 포에 대한 일종의 전설을 이루었다. 포는 '미국 문단의 사악한 천재', '저주받은 악의 시인'으로 불리면서 예민하고 음울한 감수성, 공포와 광기에 찬 비운의 작가로 이미지화되었으나,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그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19세기의 가장 독창적인 작가로 여겨지고 있다.//
이 소개의 글을 읽으면서, 오래도 아주 오래 전에 들었던 짐 리브스의 ‘에너벨 리’라는 노래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됐다.
노래를 부른 것이 아니라, 시를 읊고 있었다는 것이며, 그 시는 에드거 엘런 포가 죽음을 목전에 둔 삶의 끝자락에서 쓴 것으로, 앞서 죽은 아내 버지니아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껏 몰랐던, 그 시에 담긴 의미를 챙겨봐야 했다.
다시 Daum사이트 검색을 해야 했다.
다음은 그 우리말 풀이다.
아주 아주 오래 전이었지요
바닷가 어느 왕국에
한 소녀가 살았는데 님도 아마 아실 테지만
'애너벨 리'란 이름이었죠.
그런데 이 소녀, 아무 딴 생각 없이 살았어요
날 사랑하고 내게 사랑 받는 것밖엔.
나는 한 아이, 그녀도 한 아이였지요
이 바닷가 왕국에서
하지만 우리는 사랑 이상의 사랑으로 사랑했답니다
나와 나의 애너벨 리는,
천국의 날개 달린 천사들이
그녀와 나를 부러워 한 그런 사랑으로.
그리고 바로 그 탓이었지요, 오래 전
이 바닷가 왕국
한 구름에서 불어 나온 바람이
나의 고운 애너벨 리를 차갑게 식혔고
그녀의 지체 높은 가문 사람이 와서
그녀를 내게서 가로채어 갔지요
바닷가 이 왕국의
한 무덤 속에 가둬 버리려고.
천사들은 하늘에서 그 절반도 행복하지 못해
그녀와 날 시새웠는데
예! 그게 그 까닭이었죠. (모두들 알아요,
바닷가 이 왕국에서는)
그 바람이 밤에 구름에서 나와
나의 애너벨 리를 차갑게 해 죽인 것.
그러나 우리의 사랑 그것은 여느 사랑보다 훨씬 더 강했지요
우리보다 나이 든 사람들의 사랑
우리보다 훨씬 더 슬기로운 다수인들의 사랑보다.
또 하늘 위 천사들이든
바다 밑 악령들이든
내 넋을 내 고운 애너벨 리의 넋에서
떼어 놓을 순 없어요
왜냐면 달은 고운 애너벨 리의 꿈을
내게 갖다 주지 않고는 결코 비추질 않고
별들은 고운 애너벨 리의 반짝이는 두 눈을
내가 느끼지 않고는 도무지 뜨질 않거든요
그래서 온 밤을 난 그 곁에 누워요
내 사랑-내 사랑-나의 생명과 나의 신부 곁
바닷가 그 무덤
철썩이는 바닷가 그녀의 무덤 속에.//
한 줄 한 줄 그 풀이를 읽어가는 동안, 내가 마치 그 시를 쓴 주인공인양 푹 빠져들고 말았다.
그리고 끝내 두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야 했다.
그 좌절의 삶이 너무나 안타까워서였다.
바로 그날이었다.
Daum사이트에서 ‘더 레이븐’이라는 제목의 에드거 엘런 포 단편집을 검색한 끝에, 2012년 7월 23일 더클래식 출판사에서 펴낸 4,400원짜리 책 한 권을 무작정 인터넷 주문으로 구입했다.
꼭 이틀 뒤에 서초동 우리 법무사사무소 ‘작은 행복’으로 배달되어온 그 책에는, ‘더 레이븐’ ‘검은 고양이’ ‘모르그 거리의 살인 사건’ ‘도둑맞은 편지’ ‘어셔 가의 몰락’ ‘마리 로제의 수수께끼’ 해서, 모두 6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었다.
명탐정 셜록 홈즈‘를 탄생시킨 영국의 추리작가 코난 도일에게 영향을 크게 미쳤다는 에드거 엘런 포였다.
비록 부피로는 얄팍한 느낌의 단편소설이긴 했지만, 풀어가는 그 스토리는 과학적 수학적 심리적 근거와 깊은 명상을 겸비해야 하는 것이어서, 그 무게감은 한 편 한 편 그 모두가 장편소설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얼마나 풀어내기가 어려운지, 그 한 예를 든다.
다음은 다들 빤히 보는 상황에서 훔쳐간 귀부인의 편지를 되찾아오는 과정을 담은 ‘도둑맞은 편지’의 한 대목이다.
‘모든 대중적 관념과 인정받는 관습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적합하기 때문에 어리석다.’는 말이 있지. 수학자들이 자네가 방금 말한 유명한 오류를 널리 퍼뜨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네. 하지만 아무리 진리로 위장한다 하더라도 오류는 오류일 뿐이야. 에를 들어보세. 수학자들은 더 나은 일에 쓸 수 있는 능력을 이용해 ‘분석’이라는 용어를 대수학에 은근슬쩍 적용했네. 이러한 기만을 가장 먼저 저지른 것은 프랑스 수학자들이었어. 하지만 만일 용어라는 것이 중요하다면, 즉 단어를 응용해서 어떤 가치를 끌어냈다면 라틴어의 ‘ambitus(순환)’이 파생어인 영어 ‘ambition(야망)’과 의미가 다르고, ‘religio(의무)’가 ‘religion(종교)’과 다르고, ‘homines honesti(유명한 사람들)’가 ‘a set of honorablemen(고결한 사람들)’과 다른 것처럼 ‘분석’도 ‘대수학’과는 의미가 다르다고 할 수 있지.
이 소설에서 ‘나’라고 하는 화자에게 친구 뒤팽이 건네는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소설의 첫 머리로 몇 번을 되돌아가서 그 대목까지 다시 읽어 내려와야 했었다.
그러고도 완벽한 이해를 하지를 못하고 끝내 얼렁뚱땅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
책의 맨 처음에 소개되는 ‘더 레이븐’의 첫 대목도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음은 그 대목이다.
어느 쓸쓸하고 깊은 밤, 나는 힘없이 지쳐 있었다.
지금은 잊힌 진기한 옛이야기 책을 떠올리다
고개를 꾸벅이며 졸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똑똑,
내 방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중얼거렸다.
“누가 내 방문을 두드리는 군. 그뿐, 그뿐이야.”
알만한 상황인데, 마지막의 독백인 ‘그뿐, 그뿐이야.’가 어떤 의미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역시 그냥 넘어가야 했다.
여기서도 ‘나’라고 하는 화자가 등장하는데, 그가 방문을 두드리는 그 소리에 결국 덧문을 활짝 열게 되고, 그 연 덧문으로 까마귀 한 마리가 예의를 차리지도 않고, 망설임도 머뭇거림도 없이 마치 귀족이나 된 듯 우아한 몸짓으로 방문 위에 걸어둔 팔라스 흉상 위에 올라앉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까마귀가 올라앉은 흉상의 주인공인 팔라스가 누군지를 나는 모른다.
그렇다고 백과사전을 들춰볼 수도 없었다.
한 편 한 편 그 모두가, 그렇게 낯선 단어들이 너무나 많이 등장하는 소설이어서, 그 낯선 단어 모두를 백과사전으로 확인하고 넘어가다가는, 아예 읽기를 포기하기 십상일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또 그냥 넘겼다.
다음은 그 이어지는 대목이다.
이 흑단 같이 검은 새의 엄숙하고 점잖은 표정에
나는 슬픈 공상을 잠시 잊고 미소를 지었다.
“볏은 깎이고 닳았지만 너는 겁이 없구나. 밤의 기슭에서 날아온 소름끼치도록 차가운 그 옛날의 까마귀여, 지옥 같은 밤의 기슭에서 부르던 너의 당당한 이름을 말해 다오!”
까마귀가 말했다.
“다시는 아니야.”
여기서 또 막혔다.
까마귀가 무슨 말을 하며, 그 했다는 말인 ‘다시는 아니야.’는 도대체 그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하는 의문만 일뿐, 정작 그 답을 풀어낼 수가 없었다.
거의 끝 대목에 다 가서야, 대충 뭔가 화자의 심중이 짚이는 상황이 있었다.
다음은 그 대목이다.
“예언자여! 악마의 짐승이여! 새든 악마든, 여전히 예언자로다! 우리를 굽어보는 하늘에 대고, 우리가 받드는 신의 이름을 걸고, 슬픔으로 가득한 이 영혼에게 말해 다오. 아득한 천국에 가면 천사들이 레노어라 이름 지은 거룩한 소녀를 안을 수 있다고, 천사들이 레노어라 이름 지은 찬란하게 빛나는 소녀를 안을 수 있다고.”
까마귀가 말했다.
“다시는 아니야.”
나는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새든 악마든, 그 말을 작별 인사라 치자! 폭풍 속으로, 지옥 같은 밤의 기슭으로 돌아가라! 네 영혼이 내뱉은 거짓말의 표시, 검은 깃털 하나 남기지 마라! 내 고독을 깨지 말고 떠나라! 내 방문 위 흉상에서 내려오라! 내 심장에 박힌 네 부리도 빼내어 문밖으로 썩 사라져라!”
까마귀가 말했다.
“다시는 아니야.”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괴로워하는 그 심중을 담은 듯했다.
그 정도 이해하는 데도 꽤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했다.
그러고도 충분한 이해를 하기에는 부족했다.
힘도 들고 속도 상했다.
끝내 나도 한 마디 하고 싶어졌다.
나 자신을 향한 한 마디였다.
곧 이랬다.
‘다시는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