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3. 1:10 PM
거리 : 88.3 km 소요 시간 : 3h 38m 5s 이동 시간 : 3h 33m 13s 휴식 시간 : 4m 52s 평균 속도 : 24.9 km/h
오후1;08 프랑스 요리 식당 La Terrasse 스테이크 2인용 460.000낍(30.000원)
오전 산책을 끝내고 쉬는데 하요셉선교사님부부가 찾아오시다.
라오스선교사협회 총무로 헌신하느라 분주한 분인데 시간을 내어 찾아주니 고맙기 그지없다.
원래 아침부터 하루 종일 안내하시겠다는 것을 우리 여행 스타일을 말하고 극구 사양하여었다.
시내 중요 관광지는 걸어서 방문했으니 시 외곽 드라이브를 부탁하였다.
조부모님때부터 믿고 다녔던 주왕교회의 파송을 받았다고 한다. 행복한 선교사님이시다.
드라이브 내내 많은 대화를 나누며 교제할 수 있었다.
셀러드와 식후 음료수까지 포함하여 4인 약 100만낍(63.000원)
13번도로 EAST
오후1;10 동남아 어디를 가도 눈에 익은 풍경; 저 많은 전기와 전화줄을 어떻게 구별할까
오후1;12 라오스주석궁에서 죄회전하여 13번 도로 북향 빠뚜사이 독립기념문 방향
오후1;16 빠뚜사이 독립기념문;
돌아올 때 보기로 하고 23번 도로
오후1;19 비엔티안에서 가장 크다고 하는 농사팡(Nong Sa Phang) 공원
오후1;30 다시 13번 도록 북향; 라오스 최고층 건물 라차봉 플라자
중국 운남성 만봉건설에서 시작한 5성급 호텔과 쇼핑몰이 들어설 예정
2016년에 시작되었는데 시공사의 자금난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는데 다시 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오후 1;53 라오스국립대학교; 부지도 넓고 다양한 형태의 건물과 기숙사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근래에 입학생의 급 감소로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다고.
오후1;59 어렵게 입학하고 졸업해서 취직을 해도 타이나 한국에서 노동해서 받는 수입의 3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학비도 절약하고 돈도 벌기 위해 입학을 포기하고 외국 노동자로 나가기에 신입생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젊은 인재가 필요한 개발도상국 라오스로서는 큰 문제이겠다.
오후 1;59 대학교 내에 있는 한국어교실 세종학당; 이젠 왠만한 외국의 대학교에서 흔히 볼수 있다.
한때는 한국학생들도 제법 있었고,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도 제법 많았다고 한다.
국립대학교답게 캠퍼스도 넓고 시설도 많고 좋다.
방학기간이라고 하지만 너무 한산하다.
그래도 국립대학인데. 라오스의 미래가 걱정이된다.
오후2;07 일본어 학당. 중국 다음으로 라오스와 깊은 관계가 깊고 경제 협력을 하고 있다는 일본
프랑스식민지였던 라오스를 잠시나마 해방시키고(?) 점령하였던 일본이다.
불과 10년 사이를 두고 일어난 일본의 성공한 명치유신과 조선의 실패한 갑오개혁(경장)의 결과가 가져온 엄청난 격차
120년 후 지금은 그 간격을 거의 좁힌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라오스도 개혁에 성공하여 발전할 날이 오려나.
북향 13번도로
오후2;58 남응강(Nam Ngum River) Tong Lieu Bridge
오후3;11 Nakoung Village
북쪽으로 계속 달려 선교사님이 협력하는 현지교회도 방문하고,
메콩강의 지류인 남능강에 조성한 저수지 남능댐(Nam Ngum Dam)까지 갈 듯히였다.
라오스에 건설된 최초의 수력 발전 댐인지라 관광지이겠으나 너무 무리하는 듯하여 돌아자고 제안하다.
오후3;41 정부 주요기관들이 이지역으로 이전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기관이 세종시로 옮기듯이.
오후4;06 탓 루앙 사원(황금사원) 도착; 한산한 식당가에 주차하다
오후4;12
오후4;17 왓루앙사원 남문
오후 4;20 탓루앙 사원; 일명 항금사원. 다 그렇듯이 도금한 것이다.
제일 높은 부분만은 진짜 금이라는 데?. 사원이나 교회 건물에서 그게 뭐 중요하겠는가.
셋타티랏 왕 동상; 라오스 역사상 위대한 지도자 중 한명.
타이의 치앙마이와 아유타야를 정복한 버마 정복자 Bayinnaung에게 맞서
Lan Xang 왕국을 방어하였고 루앙프라방의 여러 사원과 이곳 파 탓 루앙도 세웠다.
'위대한 탑' 탓 루앙은 라오스 국장과 지폐에 사용될 정도로 신성시된다. 1566년, 미얀마의 침공으로 인해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안으로 수도를 이전하게 된 쎗타티랏 왕이 새로운 수도에 불심을 모으려 건설하였다. 부처의 사리를 모시고 기념비 너머에 탑을 세우고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탑'이라고 새겼다. 현생에서 30가지의 선행을 실천하라는 의미인 30개의 작은 탑이 직사각형의 기단부 위에 연꽃 봉오리를 형상화한 첨탑을 둘러싸고 있다. 탑 안에는 아소카 왕의 유물이 있고 84,000개의 작은 탑들 안에 부처 제자들의 유골재를 넣어 네 귀퉁이의 둥근 탑에 분산 배치했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마와 씨암, 청나라 흑기군의 침략을 받아 대부분 파괴되었다. 1935년 짜오 아누웡 왕이 복원했으며 1995년(라오 공산 정권 탄생 20주년)에 황금색을 입혀 번쩍이는 탑을 만들었다. 콘크리트 건물에 금색을 칠한 것이다.부처의 사리를 봉안했다는 의탓 루앙 탑을 중심에 두고 동서남북 방향으로 네 개의 수호 사원을 건설했지만 현재는 북쪽 느아와 남쪽 따이만 남아 있다. 망자의 문인 북쪽 공터가 탓 루앙 광장이 되었다(네이버 지식백과)
세계평화의 징(World Pease Gong)
인도네시아세계평화위원회 기증품이라는데 문선명교주의 통일교 홍보물 냄새가 난다.
오후4;31 빠뚜사이(Patuxai)개선문; 비엔티안 동서남북 도로의 기준점
라오 인민민주주의 공화국(1975년~현재)의 상징, 2차 세계대전과 프랑스 독립전쟁으로 사망한 라오스인들을 추모하기 위함
'빠뚜(문)'와 '싸이(승리)' 즉 개선문으로 불리우고 있으나 사실 기념할만한 승리의 역사가 없으므로 독립문 성격이 강할 듯하다.
1950년대 미국의 대외 원조법에 따라 미국이 공항 건설을 위해 지원한 시멘트로 공항 대신 이 빠뚜싸이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서 있는 활주로'란 별명이 있다고 한다. 당시 정권으로서는 공항보다는 국민의 마음을 모을 기념탑이 급선무였을 것이다.
음악분수대; 중국인이 기증해서인지 중국 관광객들이 기념 촬영을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존의 5대 원칙을 상징한다는 다섯개의 탑 ;온화. 유연. 정직. 명예. 번영
오후4;34 총리관저
그 옛날 왕국 시대나 지금 공산정권 시대나 무시할 수 없고, 변함이 없는 것은 일반 국들의 종교심과 의식일 것이다.
신들의 이름으로 평화와 안녕 그리고 승리를 기원하던 왕들과 백성
전망대로 올라가는 계단; 저렴(3천낍?)했으나 요금이 있다.
전망이 볼만하다고 하였으나 계단이 가파라서 아내에게 무리일듯하여 포기.
빌려온 사진; 그래도 다른 사람이 찍은 전망사진을 보노라면 매번 후회하게 된다.
오후4;35 힌두교의 사대신 비쉬느. 시바. 브라흐마. 인드라
오후4;35
프랑스 파리의 에투알 개선문을 본따서 세웠다고 한다.
높이 49m 바닥 사각형 가로 24m. 동서남북 문의 폭 8m 전망대 올라가는 계단 197
비교를 위해 빌려온 파리의 개선문(승리의 문) 사진; 높이 약 50m, 넓이 약 45m, 깊이 22m다
파리 개선문은 또 로마의 티투스(디도) 장군 기념 개선문을 본따서 세웠다고.
모든 종류의 개선문을 볼 때마다 영웅보다는 허무를 연상하게 되는 나에게 전쟁 영웅 알레르기가 있는 것 같다.
하요셉선교사님 부부가 저녁만찬까지 안내하시겠단다.
우리 부부 여행 스타일은 늘 저녁 산책을 하고 현지 길거리 음식을 먹고 마무리한다며 애써 사양하다.
후배 이철호목사와의 인연으로 먼 타국에서 또 하나의 인연(因緣)을 맺게된 만도 감사할 따름이다.
여행 중에 감사한 것 중에 하나가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이다.
여행 중에 인연(因緣)을 맺는 것처럼 귀중한 게 어디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