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5:13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그냥교회 출첵합니다.
전능하신 ~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하루라는 좋은 날을 주시고
기도에 응답주시니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의 찬양을 올립니다.
1월 30일 ~ 즐거운 화요일입니다.
2010년 1월 30일 오늘은
길창덕 화백이 별세했다고 하네요.
2010년 1월 30일 오후 1시쯤 한국 명랑만화의 뿌리이자 평생을 명랑만화 작가로 살았던
‘꺼벙이’ 와 ‘순악질 여사’ 의 원로만화가 길창덕(吉昌悳·81) 화백이 노환으로 숨졌다.
1930년 1월 평안북도 선천에서 태어난 그는 6·25전쟁으로 피폐해진 나라의 청소년들에게
꿈과 웃음을 선물한 한국 명랑만화의 개척자였다.
‘허서방’(1955) ‘홀쭉이와 뚱뚱이’(1959) ‘꼴뚜기 영감’(1960) ‘재동이’(1966) ‘꺼벙이’(1970)
‘순악질 여사’(1970) 등 고유의 캐릭터와 작품을 통해
전후(戰後) 다양한 세대를 가로지르며 웃음과 희망을 줬다.
그의 후배이자 제자인 ‘로봇찌빠’ 의 신문수(71) 화백은 ‘명랑만화’ 라는 장르를 개척해서
반석에 올려놓은 분이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맹꽁이 서당’ 의 윤승운(67), ‘별똥 탐험대’ 의 박수동(69), ‘철인 캉타우’ 의
이정문(69) 등의 작가들 모두 직·간접적으로 그의 영향을 받았다.
1980년대 잠시 신문 시사만화를 그린 적도 있었지만 곧 명랑만화로 ‘복귀’ 했다.
데뷔는 1955년 잡지 ‘야담과 실화’ 에 ‘허서방’ 을 연재하면서부터였지만,
실제로 그가 만화가로 인정받은 것은 열네 살 때다.
평양과 묘향산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평안북도 정주 조일보통학교 고등과 2학년생들은
기행문을 써내라는 지시를 받았고, ‘소년 길창덕’ 은 엉뚱하게도 그 숙제를
파노라마 만화 형식으로 제출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화를 냈던 선생님은 작품을 보고 나서 감탄사를 연발했고,
이후 그를 ‘만화가’ 로 공식 인정했다.
그의 캐릭터들은 얼핏 단순한 선(線)으로 대강 그린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보이지만,
정제된 소박함과 명쾌함으로 세대를 뛰어넘는 사랑을 받았다.
1970년대 땜통자국 머리에 콧물을 흘리던 ‘꺼벙이’ 는 요즘 표현으로 하면 ‘국민 남동생’ 이었고,
일자 눈썹의 순악질 여사는 억척스럽고 강인한 ‘대한민국 아줌마’ 였다.
폐암진단과 수술을 받은 뒤 1997년 12월 이후 모든 연재를 중단했다.
한국 만화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2002년 대한민국 출판만화대상을 받았고,
2003년 보관문화훈장, 2006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어워드대상을 받았다.
만화가 김수정씨는 한국만화의 거대한 뿌리가 가셨다고 안타까워했다.
🛸 🚙 ✈️ 🚋 🚉 🚈
내일
수요 예배를 위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성령께서 충만한 은혜 내려주시길 ~
그냥교회와 성도님들을 위하여
강건과 풍성을 ~
성탄절 예배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첫댓글
할렐루야~~
또 하루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귀한 날을 감사하며 '뺀순'님을 기도 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 감사합니다.^^
감사와 기쁨 가득한 하루 보내세요.
강건과 풍성을 기도합니다.
즐겁고 좋은 일들 많은 2월 맞이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