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은 1187m의 장엄한 산으로 서석대를 비롯하여 입석대의 비경속에 말이 없는
산이다 . 그렇게 역사에서 호남의 한(恨)들의 사연속에도 무등산은 말없이 하얀 설경
의 모습으로 우리들을 지키고 있다. 아니 우리들의 가슴에 엉어리진 역사의 사연을
포용하여 주고 있다. 호남하면 무등산으로 대변을 하여 주고 있다.
무등산을 바라보면 한 없이 역사의 질곡의 가슴 아픔을 내 품고 싶지만, 말이 없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흘러가는 구름이요 , 지나가는 바람의 한 켠으로 지나간다.
그러면서 영산강의 발원지며, 또한 영산강도 3벡5십리의 장구한 물결속에 호남의 한의
역사를 벳 노래에 실코 노젓는 소리만 한가하게 들리며 구만리 장천으로 백구(白鷗)만 나르고
석양에 노을로 아름다운 빛을 우리들에게 선사를 하고 있다.
무등산의 수 많은 정자(亭子)들이 자리를 갖이 하고 호남의 문학의 산실을 이룬다. 무등산
북쪽으로 담양인데, 가사문학관이 세워져 가사문학의 고장임을 알리고 있다. 호남의 가사
문학의 앞장을 서 온 면앙 송순으로 시작하여 하서 김인후 , 서하당 김성혼,석천 임억령
소쇄 양산보, 환벽당 김윤재등에 의하여 그 아래서 공부를 한 송강 정철에 읳애 가사문힉이
우리나라의 최고의 꽃을 피운다. 송순에 의한 '면앙정가'로 시작하여,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과 정철의 장진주등의 시조문학도 고산 윤선도 못지 않는
시조 로 문학사에 거봉으로 남는다.
무등산의 동남쪽으로 화순의 산자락에는 18C 걸출한 시인 김삿갓 김병연의 시인이 있으나 그렇게
적벽풍류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것 같다. 자료의 부족과 기축옥사로 인하여 동인들의 세력이 전멸을
하여 화순쪽으로는 담양의 가사문학의 발달보다 못하고 계산풍류를 즐기는 무등산 계곡의 물소리와
시인들의 시혼이 담기는 소리보다는 못하다. 그러나 칮지 못하여 발굴을 못하고 있는 문학의 산재는 무궁
우진한거 같다. 화순문학회에서 활동을 하는 나로서는 뒤 늦게 낙향한 탓으로 이제 무언가 알려고 하니
나이는 먹어지고 많이 아쉽다. 서울생활의 5십년의 허송 세월이 이 지역문학발전에 도움을 못 주고 있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무등산 자락의 산수에서 흐르는 요소요소에 자리한 정자들을 부지런히 찾아 영산강변의 정자를
찾아 선대 문인묵객들의 향취를 느끼기도 하였다 그것은 저의 12대조 시서 김선의 자취를 찾고져 노력한
결과라고 하겠다. 저의 12대조 시서 김선은 1천2백여수의 한시를 금성산변과 영산강변에서 노래하고 마음
을 달레고 시국을 걱정을 하고 안빈락도로써 한 세월을 보내셨다. 그러한 역활이 나로 하여금 영산강변의
정자를 찾게 하고 옛 선대 할아버지의 가깝게 가 볼 수 있는 여건이 되었지 많았나 생각을 하여본다.
호남은 풍부한 물산과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권력 지향의 엣 선비보다 향토의 문학을 좋아하고 풍류를 즐기는
삶으로 안분자족을 하며 민중으로 살아가는 민초들의 삶의 현장들이 많다. 삶의 밑바닥에서 삶을 노래하고
거기서 삶의 흥취를 찾아가는 민초들의 삶이다. 답사를 다니다보니 영남은 걸죽한 권문세가의 모습들이 호남
보다 많고 특히 지금에도 종가들이 즐비한 모습을 보면 호남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본다 그건 나의 생각이다.
첫댓글 봄이오면 무등산 일대가 향기롭게 변하겠지요?
예인의 고장 호남 무등산 화순 걸출한 인재들이 수 도없이 많이 배출 되었지요 전 가보진 못해도 만장봉님 덕분에 이젠 익숙한 듯합니다 오늘도 문학의 향기에 취하고 갑니다.
아 오늘도 한 수 배웁니다.
저는 담양의 소쇄원이 좋아서 여러 번 가봤고
그 길에 주변에 있는 유서깊은 정자들도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오랜 세월 동안 꽃피운 호남의 선비 문화가 찬란합니다.
무등산은 아직 가보지 못했네요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인물들도 많이 난곳 ~
배우고 갑니다 찬찬히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무등산 청소년시절 한번 가 보고 못 갔는데
지금 생각하니 뭉등한 산새에 짙푸른 녹음
근처에서 놀다본 모양새가 머리에 박혀 있는데
1187m 꽤 높은산이네요
무등산과 그주변마을설명 잘듣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