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이 이미 감내하기 힘든 수준입니다. 세계 경제에 충격이 가해지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죠. 한국 경제의 건전성 회복과 재정문제 해결을 위해 증세는 선택의 아닌 필수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정의당 박원석(45) 의원(비례대표)이 “재정 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증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은 심각한 세수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재정 위기론’이 고개를 들 만큼 세수부족 상황이 지속되며 재정 건전성마저 흔들리고 있다. “증세는 고려치 않는다”는 청와대를 향해 야당은 물론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등 여당 일부 핵심 인사들까지 ‘증세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재정 악화에 따른 ‘증세 논쟁’과 연말정산 대란으로 불거진 ‘무원칙한 조세 정책’ 문제는 정치권과 경제계에 뜨거운 감자다. 주간조선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원석 의원을 만나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원석 의원은 시민단체 ‘참여연대’의 창립 발기인(1994년) 중 한 명으로 유명하다. 참여연대에서 상근감사와 협동사무처장(상임집행위원 겸직)을 맡으며 한국 사회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박 의원은 “재정적자와 정부부채(국가 빚)가 우려할 만큼 급격한 증가 추세에 있다”고 했다. 재정적자를 보자. 2008년 11조7000억원에서 2009년 43조2000억원으로 폭증했고 이후 2012년까지 계속해서 10조원대 중·후반을 기록했다. 그러다 2013년에 21조1000억원으로 그 폭이 커졌다. 지난해에는 재정적자가 25조5000억원까지 증가했다. 올해도 33조6000억원의 재정적자가 예측되고 있다. 앞으로 재정적자의 폭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심각성을 더 키우고 있다.
정부부채 문제는 더 심각하다. 2008년 298조원에서 2009년 346조원으로, 2014년엔 527조원까지 증가했다. 올해 말 570조원, 2016년에는 616조원으로 급증이 예측되고 있다. 지난해 말 국회예산정책처가 내놓은 ‘2014~2060년까지의 장기재정전망에 관한 보고서’는 국가 재정 악화의 심각성을 적나라하게 지적했다. 2060년 재정적자 712조원에, 국가부채가 1경4612조원까지 폭증할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이대로라면 2060년엔 국가부채에 대한 이자 비용만 연 295조원이 필요하다. 한국의 재정이 버틸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부분이다. 더구나 이 수치에는 국민연금 고갈에 따른 적자가 포함되지 않았다. 이를 포함하면 재정 악화는 실제 더 심각해진다.
재정적자 상태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건 국채 발행이다.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다는 게 박 의원의 말이다. 그는 “국채를 발행하면 그것이 바로 국가부채가 된다”며 “현재 국가부채가 500조원을 넘고, 2018년 7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 상황에서 재정적자 보전을 위한 국채 발행은 한계가 있다”고 했다.
재정압박 문제는 사실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심각한 수준의 세수 결손 문제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게 박 의원의 말이다. 그는 “MB정부 이후 매년 10조원 이상의 세수 결손이 계속돼 왔다”며 “올해도 세수 결손을 피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문제는 지금의 제도와 상황에서 세수 결손 규모를 줄이거나, 재정 악화를 완화시킬 현실적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라고 했다.
“경제 상황이 나아지는 게 없어요. 세금이 더 들어올 곳이 없다는 얘깁니다. 빠르게 진행 중인 고령화로 앞으로 경제활동 가능인구까지 줄게 돼 있습니다. 세금을 낼 수 있는 사람까지 줄어든다는 말이지요. 국가 재정에 위험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세수 확보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데, 고령화와 복지 수요 확대에 따른 재정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박 의원은 “확대되고 있는 재정 수요 감당을 위해 과거 정부들과 현 정부 모두 매번 ‘재정 지출 구조를 효율화하겠다’고 했다”며 “근데 어느 정부에서도 지출 효율화라는 걸 제대로 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박 의원은 10조원 이상은 고사하고 정부가 재정 지출 몇조원을 줄이는 것조차 간단치 않다고 했다. “예를 들어 보지요. 거의 모든 역대 정부가 ‘지출 효율화를 위해 SOC사업 예산을 줄여야 한다’거나 ‘줄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부도 SOC예산을 줄인 사실이 없습니다. 현 정부를 볼까요. 현 정부가 세수 확대와 재정 건전성을 내세우며 꺼내 든 게 ‘지하경제 양성화’였습니다. 그런데 지하경제에서 양성화된 게 도대체 뭐가 있나요? 현실은 정부가 아직까지도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조차 파악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문제가 지적될 때마다 정부가 지출 구조 효율화를 쉽게 말하지만, 현실은 정부 말과 전혀 달랐다는 거지요.”
박 의원은 “사실 지금 재정 상태도 우리가 감내하기 힘든 수준”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 경제 규모에서 한 해 재정적자가 30조원에 이르는 건 정부가 무책임하게 재정 운영을 했다는 것”이라며 “이런 재정 운영을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지금 정부는 경제성장률을 낙관적으로 예측하고 있어요. 한 4%쯤으로. 그런데 이 같은 성장률 전망에서도 사실 재정적자가 30조원으로 나옵니다. 더 문제는 정부 말처럼 ‘정말 4% 성장이 가능하냐’는 건데, 현재 3% 중반도 힘듭니다. 이 상황에서 경제가 더 어려워지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세계 경제에 충격을 주는 일이 벌어지면 심각한 재정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큽니다.”
박 의원은 정부가 지키지도 않을 지출구조 효율화만 말할 게 아니라 솔직해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제 증세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수”라며 “현재의 악화된 재정 문제는 결국 낮은 조세부담률에서 온 것”이라고 했다.
“OECD 34개국 평균이 25%대인데 우리의 조세부담률은 17.9%쯤 입니다. OECD 평균과 7.1%포인트쯤 차가 날 만큼 OECD 국가 중 조세부담률이 낮습니다. 한국의 GDP(국내총생산)가 1500조원쯤 되니까, 조세부담률을 OECD 평균 수준으로만 조정해도 100조원쯤 (세원을) 더 확보할 수 있게 됩니다.”
박 의원은 이 부분에서 법인세 문제를 말했다. 한국의 법인세는 원래 25%였다. 이명박 정부에서 3%포인트 내려 22%가 된 후 현 정부까지 유지되고 있다. 박 의원은 “MB정권이 법인세율을 낮추면서 매년 9조원에 이르는 정부 재정 수입(세금)이 줄었다”며 “문제는 이렇게 덜 걷힌 세금이 경제 성장과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투자된 게 아니라 재벌·대기업 금고에 대부분 들어갔다”고 했다. 이것이 국가 재정 기반 축소, 약화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매년 10조원 이상인 세수 결손에 대해 정부는 그것(법인세 인하)과는 무관하다고 말하는데 실제 무관하지 않아요. 이전까지 들어오던 세금이 안 들어오면서 세수 결손이 생긴 겁니다. (사실상 대기업) 감세와 연결된 것이지요.”
박 의원은 정부와 정치권이 세수 기반 확대를 위한 ‘법인세 정상화’ 논의에 미온적인 건 “법인세에 대한 ‘허구적 가설’과 ‘조작된 공포’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말한 법인세에 대한 ‘허구적 가설’과 ‘조작된 공포’란 게 뭘까. “법인세 인하를 말하는 분들은 ‘법인세를 낮추면 투자와 고용이 늘어나고 이것이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법인세를 낮췄을 때 실제 투자와 고용이 늘었다는 객관적 지표와 근거가 없습니다. 반대로 ‘법인세를 올리면 투자와 고용이 줄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이 역시 객관적 지표도 근거도 없습니다.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가 똑같습니다.”
그는 “기업의 투자·고용 결정에 법인세는 사실 후순위 고려 대상”이라고 했다. “삼성 같은 글로벌 기업에 정말 법인세가 투자·고용에 결정적 요인이라면 법인세가 없는 나라로 갔을 것입니다. 그런 나라로 가지 않습니다. 기업의 투자 우선순위는 ‘노동의 질, 금융 환경, 사회 안정성’ 같은 겁니다. 그런데 법인세 말만 나오면 마치 이것이 투자·고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식의 ‘허구적 가설’을 쏟아냅니다. 또 법인세 때문에 기업이 위축되고 경제가 침체된다는 ‘조작된 공포’ 논리를 들고나옵니다.” 박 의원은 “이 내용들이 일부 기업이 말하는 감세 주장과 논리를 대변하는 허구적 이데올로기”라며 “정치권과 정부, 언론이 이 ‘허구적 가설’과 ‘조작된 공포’를 거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객관적 사실을 통해 법인세 정상화 문제를 대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정부와 일부 정치권, 재계에서 우리나라 법인세 명목세율이 마치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것처럼 말한다”며 “사실 그렇지 않다. OECD 중간 수준이고 (각종 공제 항목을 감안한) 실효 세율을 따지면 오히려 낮은 수준”이라고 했다.
“한국 GDP에서 법인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23%쯤 됩니다. OEDC 국가 대부분은 이 비중이 10% 초반 또는 5~6%쯤입니다. OECD 국가 중 한국이 가장 높은 편입니다. 우리도 10여년 전쯤엔 법인소득 비중이 10%대였습니다. 이것은 지난 10여년간 기업의 수익은 크게 증가했지만 가계의 수익은 그만큼 늘지 못했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법인이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겁니다.”
박 의원은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조세 원칙에 따라 돈을 더 많이 벌었다면 당연히 법인세를 더 내야 했다”며 “그런데 법인세는 오히려 더 낮아졌다”고 했다. 법인세가 낮아진 만큼 대기업은 막대한 ‘초과이윤’이 생겼고 이를 사내유보금으로 쌓았다는 것이다.
그는 세수 결손과 재정 압박을 감수하며 법인세를 낮춰준 덕에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쌓은 기업들이, 경제 활성화를 위한 투자·고용에 이 돈을 투입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회 환원까지 바라지도 않습니다. 투자를 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지난 5년 동안 투자와 고용이 늘었습니까. 늘지 않았어요. 대기업들이 이 돈을 그냥 쌓아두거나 부동산 등 비생산요소를 사는 데 쓴 게 사실입니다. 개인과 법인의 소득불균형이 커졌고 가계와 법인 간 조세 형평성이 깨진 상황에서 재정 안정을 위해 법인세는 정상화돼야 합니다.”
법인세를 둘러싼 증세 화두가 기업과 정치권, 정부가 얽힌 조세 문제라면, 최근 벌어진 연말정산 대란은 정치권과 정부의 조세 정책에 직장인들이 불신과 비난을 직접 표출한 사건이다. 박 의원은 이번 연말정산 대란에 대해 “기재부 등 정부가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으면서 불신을 자초했고 국회(정치권)가 정부를 제대로 심의하지 않으면서 문제를 키운 것”이라고 했다.
연말정산 대란의 시작점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세제 개편에서 연말정산의 소득공제 방식이 세액공제 방식으로 바뀌었다. 저소득자의 세 부담을 낮추고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좀 더 걷겠다는 취지였다. 문제가 바로 터졌다. 최초 개편안이 나오자 연 3400만원 이상 소득자부터 세금이 올라 대다수 직장인의 세 부담이 커지게 된 것이다. 이것이 국민에게 알려지자 불만이 커졌고 개편안을 만든 지 1주일 만에 기재부와 정치권이 세 부담이 커지는 구간을 연소득 5500만원 이상으로 허겁지겁 뜯어고쳤다. 박 의원은 “당시 정부가 국민에게 ‘5500만원 이하 소득자는 세금이 거의 안 는다’며 특히 ‘5500만~7000만원 근로소득자도 평균 2만~3만원밖에 안 는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올 초 연말정산이 시작되자 정부 주장은 빚나갔다. 평균만 보면 5500만~7000만원 근로소득자 세 부담은 조금 증가했다. 그런데 세금이 늘지 않는다고 했던 연소득 5500만원 이하에서 205만명이나 세 부담이 더 커져 버렸다. 특히 이 계층에서 가구 유형별(가족수·결혼여부 등) 특성에 따라 전보다 세금이 훨씬 크게 증가한 이들이 많아졌다. 박 의원은 “이 부분에서 국민 불신과 불만이 커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치권이 이 상황을 정략적으로 이용했다”며 “여당(새누리당)은 정치적 부담과 타격이 커지니까 허둥거렸고 제1야당(새정치민주연합)은 ‘중산층, 서민 세금 폭탄론’을 확대시키며 당론으로 불만을 더 부추겼다”고 했다. 언론까지 실제보다 상황을 더 과장해 ‘연말정산 대란’이 폭발했다는 게 그의 말이다.
박 의원은 연말정산 대란은 그동안 침묵하던 국민이 서민 세금 증가에 대한 근본적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해석했다. “수년 동안 정부와 정치권이 이른바 ‘부자감세’ 기조를 유지하며 대기업에 100조원 가까운 법인세를 깎아 줬어요. 이것이 세수 결손의 이유인데, 이 부족한 세금을 오로지 서민에게만 전가시켰다는 불만이 터진 겁니다. 근로소득은 투명합니다. 투명한 개인 소득은 오르지 않는데 개인의 세 부담은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담뱃세 인상, 연말정산 개편 등이 결국 월급쟁이 주머니에서 세금을 더 가져가겠다는 것 아니냐’고 보게 된 거지요. 정부가 잘못해 세수에 구멍이 난 걸 왜 죄 없는 직장인에게 뜯어 가느냐는 불만이 나온 겁니다.”
그는 “국민이 정부와 정치권에 던지고 있는 이 비판은 정당한 것”이라며 “‘세금이 부족하다’면서 ‘법인세는 올릴 수 없다’는 정부의 이중적 태도가 세금 불만을 키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5월 12일 국회가 연말정산 대란 대책이라며 새 소득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개정안이 향후 조세 정책을 더 꼬이게 할 가능성이 크다고 박 의원은 지적했다. 그는 “조세 불신과 불만이 커지자 정치권과 정부가 허겁지겁 궁리한 게 ‘연소득 5500만원 이하 근로소득자의 세금을 늘리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전체 근로소득자의 84%(5500만원 이하 층)에 대해 앞으로 세금을 늘릴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진다”고 했다.
그는 “2013년 세제개편으로 이미 근로소득자 중 48.2%가 면세자가 됐다”며 “조세 기준과 원칙, 형평성도 없는 그때그때 땜방식 엉터리 조세 정책을 현 정부가 만들었다”고 했다.
박 의원은 현 정부의 재정, 조세 성적을 ‘낙제’로 평가했다. 그는 “경제회복 대책조차 못 내놓으면서, 기재부는 ‘경제만 회복되면 세금 문제도 해결될 것’처럼 말한다”며 “무책임과 무능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다. 19대 국회(정치권) 역시 “기재부의 무능력과 무책임을 견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부가 하자는 것에 거수기 역할만 하고 있다”며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고 했다. 특히 재정, 조세를 담당한 기획재정위원회의 평가는 박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