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잘하는 법
『 잘해야 하고 잘 하고 싶은 공부 왜 잘되지 않을까?』
李 鎭杰
교육현장에서 40년을 넘게 교단에서 보냈는데, 언제나 갖고 있던 화두(話頭)는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그 어느 구석에서도 시원한 답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교직을 떠나게 되었고, 지금까지 계속 그 화두를 잡고 고민을 해 왔었는데, 오히려 현장에서 나와 바깥세상에서 ‘교육’을 들여다보니 무엇인가 잡히는 것이 있는 것 같아 그 것을 정리하여 세상에 내 보내는 바이다.
이 이론은 어떤 교육철학에 바탕을 두거나 누구의 이론을 좇아서가 아니고, 교육경험에 근거하고 자신을 교육현장에 피교육자로 투입한 가상 하에서 얻은 것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서술해 본 것임을 밝혀둔다.
연날리기
학교교육을 연날리기에 비유한다면 학생은 연(생각하는 연...)이고 교사는 연희자라 볼 수 있다. 연희자는 각각 다른 개성을 가진 다수의 연을 각각의 다른 연줄에 메달아 날리는 데는 마술사와 같은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교사는 전문직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연(鳶)줄은 사제를 결연시켜주는 연(緣)줄의 구실을 하며 연(鳶)줄에 칠하는 유리가루가 아닌 사랑으로 풀칠을 해야 한다. 그 연줄은 너무 느슨하면 연희자의 손길에 연에 전달이 잘 되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팽팽하면 줄이 끊어지기 쉽다.
교육정책이나 가정과 사회의 기대치가 바람이 되어 연의 욕구와 상호작용하여 상승하게 되는데, 이때의 바람은 역풍이 아닌 순풍이라야 잘 뜨고 제주도 잘 부린다. 연날리기 장소는 뒤편으로는 바람막이가 없고, 앞쪽으로는 연이 걸리는 장애물이 없는 평야지대면 더 없이 좋다. 맹모는 그런 곳을 찾느라 세 번을 이사했다는 고사가 바로 ‘맹모삼천(孟母三遷)’인 것이다.
연날리기 기술로는 지표면에서는 특별한 기술이 요하나 어느 정도 높이의 상층부에 올라가면 손을 쓰지 않아도 잘 날게 된다. 학습에도 기본 학습능력만 갖추어지면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의 맛을 알아 매달리는 경우도 있게 된다.
연과 연희자 사이에는 작용과 반작용으로 연이 줄을 끊고 떠나려는 충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럴 때 강풍을 만나거나 다른 장애로 줄이 끊어지는 순간 멀리 떠나갈 것 같던 연의 기대는 간 곳 없이 추락하고 만다. 풀밭에라도 떨어진다면 주어다 헤진 곳을 덧붙여 다시 날릴 수도 있겠으나 무논에라도 떨어지거나 높은 나무에라도 걸리는 날에는 연으로의 생명을 다하고 만다. 어느 방송국 프로에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는 거슬러 올라가면 ‘대추나무에 연 걸리 듯“에서 온 것 같다. 줄 떠난 연이 대추나무에라도 걸리는 날에는 처참한 끝장만 있을 뿐이다. 요즈음 사회 일각에서 가끔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전해 듣는다.학교폭력. 왕따, 원조교제...등의 비행 청소년의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다.
이런 안타까운 사건들을 연의 교훈에서 찾는다면, 연은 줄을 떠나면 연이 아니다. 그러므로 연은 연제나 연줄을 떠나지 않고 날고 있어야만 연인 것이니라...
학업성적은 尊師心에 비례한다.
‘존사(尊師)’란 스승을 존경함. 또는 도사(道士)에 대한 존칭으로 나와 있다. 우리에겐 이 용어가 생소(生疎)하여 한글사전에도 잘 나오지 않아 자전(字典)에서나 볼 수 있는 실정이다. 스승을 존경한다는 아름다운 용어가 교육현장에서도 잘 쓰이지 않고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화교(華僑)학교 교문을 들어서니 ‘존사중도(尊師重道) 돈품여학(惇品勵學)’ 이라는 표어가 눈에 들어왔다. 풀어보면 ‘스승을 존경하여 도덕심을 높이고, 바른 품행을 닦아 공부에 힘쓰자‘ .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어떻든 스승 존경 사상을 교육의 주요 덕목으로 삼아 교육하고 있다는 것에 크게 놀랐었다. 우리는 주체인 교사가 스승을 존경해야한다는 덕목을 교육하기가 마땅치 않아 소외되고 있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야말로 이런 덕목의 교육은 외부 인사가 해야 할 몫이 아닐까 싶다.
*예화 하나: 현역 장성이 늦게 얻은 막둥이가 취학했는데, 아이의 행동이 안하무인격이라 고심을 하던 아버지가 어느 날 아들의 담임을 집으로 초대하였다. 한데 담임선생님이 대문에 나타나자 그 내외가 맨발로 뛰쳐나가 정중히 맞이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가 한 번도 그런 일을 보지 못했으며, 모든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 앞에서는 굽실거리는 것을 보아 와서 이 세상에는 그의 아버지가 제일 높은 사람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데 오늘 그 아버지가 허리를 굽혀 담임선생님을 맞이하고 있지 않은가? 어린 마음에도 지금껏 가져온 생각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마음속으로 아! 우리 아버지 보다 더 높고 위대한 분이 있으니 바로 우리 선생님이시구나.....
*예화 둘: 생물학 박사의 아들이 ‘오이’에 대한 수업을 하다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엿다.
C; “선생님 오이의 가시는 무슨 작용을 합니까?”
T; “아! (말이 없이 한참 있다가....
지금은 모르겠는데, 집에 가서 조사에 다음 시간에 알려주마...“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온 아이가 그의 아버지께 오늘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이야기를 자세히 전하였다. 이야기를 다 들은 그의 아버지가 하는 말이...
P; “지금은 나도 모르겠는데 , 내일 연구실에 가서 조사해서 알아 오마....”
이튿날, 한편은 서운하고 한편은 의아한 마음으로 학교로 갔는데, 수업 시간에 담임으로부터 오이가시의 작용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을 듣게 되었다. 아이의 아버지가 그 자료를 담임에게 넘겨준 것을 아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예화 셋: 우리나라 올림픽위원을 지낸 명사 집안의 실화를 소개하고자한다.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그의 아버지는 해마다 가을이면 첫 수확한 벼를 달구지에 실어 이웃 마을 정미소까지 가서 찧어온 쌀을 자녀들 담임에게 선물로 보낸단다. 다른 사람은 미신으로 첫 수학한 쌀을 세존단지란 곳에 바치고 있을 때인데 그는 자녀들 선생님을 세존처럼 받들었던 것이 아닌가.
제사를 지내고 나서는 음복음식을 아이들 손으로 선생님 댁으로 보냈으며, 서울로 유학하는 아들의 편지 답장으로 은사에게도 안부편지를 보냈는지를 확인했다고 한다. 방학을 맞아 귀향하는 날이면 모교에 들러 선생님들께 인사드리라고 챙기셨단다.
이렇게 아이들 선생님을 알뜰히 챙긴 그의 여러 자녀가 하나 같이 글공부로 성공하여 널리 알려진 명문가(名文家)가 되었다. 명문은 하늘에서 내려주는 것이 아닌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 좋은 본보기이다.
고전(古典)에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니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는다 말이 전해오는데,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시대에 뒤떨어진 고루한 이야기라고 타박만 하지 말고 한 번 더 짚고 넘어갈 일이라고 생각한다.
학업성적은 존사심에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을 물리학적으로 우회 증명해 보면 수력발전의 발전량은 낙차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는가. 옥상에 물탱크가 설치된 아파트에서는 아래층으로 내려 갈수록 수압이 세어지듯이 스승을 높여 받들 때에 받을 것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 바로 ‘존사심’은 교과 성적과 비례하며, 존경하는 스승의 말은 귀에 또 판서는 눈에 잘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출제 예상문제 알아맞히기
시험시기가 다가오면 출제(出題)범위(範圍)와 예상문제(豫想問題)를 알고자 교사에게 매달리기도 하면서 안달을 한다. 학생들이여 수업시간에 선생님을 주시하면서 경청(傾聽)을 하면, 예상문제를 암시적(暗示的)으로 짚어주니 그 때를 놓지 말라. 그걸 잘 한 사람은 시험이 예고 되도 대충 공부하고 잘 자고나서도 적중(敵中)하는데, 그 것을 못한 사람은 밤새워 머리 싸매고 공부했는데도 헛 다리 짚었다고 실망(失望)하는 것을 보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수업시간만은 교사와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라 ... 이건 선생님이 아닌 바로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콩나물시루 교실
지난 날 학교교육의 대명사(代名詞)로 ‘콩나물 교실’이라고 부르던 때가 있었다. 한 학급 아동이 칠팔 십 명이나 돼서, 담임교사가 반 아이의 이름과 얼굴을 익히는데 애를 먹기도 했었지. 그 때의 교사들은 아동 수가 줄어든다면 그에 비례(比例)해서 교육의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믿고 또 그러기를 바랐던 것이다. 한데 그 기대가 거의 이루어진 현재의 교사들에게 물으니 바라던 만큼의 성과 있다는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나아가 아동이 열 명도 채 안 되는 소인수 벽지 학교 교사는 아이수가 적어서 체육수업이나 음악교육 나아가 게임지도도 잘 할 수 없어 말이 아니란다. 그렇다고 개별학습이 가능한 상황인데도, 도구교과의 성취도가 높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여기에서 역시 교육은 여럿이 부대끼는 상황에서 콩나물이 자라듯이 상호작용(相互作用) 속에서 이루어짐을 짐작 할 수 있다.
지난날 할머니들이 콩나물을 기를 때 제일 먼저 시루 크기에 알맞은 콩의 양을 가늠하여 안치는 것이다. 너무 많으면 비좁아 콩나물이 뜨기도 하고, 뽑을 때 잘 뽑히지 않아 애를 먹기도 하며 어쩌면 시루가 터지는 수도 있다. 그런 반면 양이 적으면 충실할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하고 똬리를 틀기도 하고 속담에 ‘건방진 콩나물은 누워서도 큰다.’고 했는데, 바로 자라지 못해 누운 콩나물은 벌써 콩나물이 아니다. 시루의 크기와 적정량의 콩과의 함수관계에서 우리는 교육의 한 원리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알맞은 밀도에서 자라는 콩나물은 서로가 등기대고 키 재기 경쟁을 하면서 위로 향해 하루가 다르게 토실토실 자라지 않는가?
옛말에 ‘마중지봉(麻中之蓬)이요,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 하지 않았던가. 길섶의 쑥은 옆으로 가지를 치면서 볼품없이 자라지만, 삼밭에 난 쑥은 삼과 겨루면서 한 길이 넘게 자라는 것에서 조상들이 ‘교육원리’를 터득하였던 것이다. 또한 많은 닭 가운데서는 학(鶴)에 겨눌만한 닭이 나올 수 있다고 했으니 여럿의 부대낌 속에서 교육은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아닐는지? 급우를 경쟁 대상으로만 보고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깎아 내리는가 하면, 나아가 ‘왕따를 시킨다.’는 말이 유행하는 현실은 콩나물시루의 교훈을 받아드린다면, 급우는 경쟁자(競爭者)이기 전에 험한 산길의 동행인이요 조력자가 아니겠는가.
논어에 ‘삼인행필유유사(三人行必有我師)’라 했는데, 이를 풀이하면 세 사람이 일을 행하는데, 그 중 한사람은 자신이고, 두 사람은 착한 자와 그렇지 아니한 사람이므로 나는 착한 것은 본받고, 악한 것은 고치게 되니 두 사람 모두가 나의 스승이 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또 ‘넝쿨효과’라는 것이 있는데, 한줄기의 덩굴이 위로 올라가기에는 힘이 들지만 여러 줄기가 뒤엉키고 휘감기면 위로 뻗어 올라갈 수가 있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그렇다 자기 반에 있는 친구의 자랑을 늘어놓거든 귀 기우려 들어주고, 그런 좋은 친구를 가진 자녀도 함께 추켜 주어라. 또 옆 짝이 못생기고 공부 못한다고 흉보거든, 못난 사람 옆에 있는 사람이 더욱 잘나 보인다고 다독여 주어라. 내가 피는 것은 네 눈길, 네가 피는 건 내 눈길이 닿기 때문이며, 나는 너를 너는 나를 통하여 이루어지나니 어이 너와 나 사이에 벽이 있을 수 있겠는가?
팔다리가 없는 장애인이 쓴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린 일이 있지 않았는가? 그가 좌절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건져주었는가? 잘난 이, 똑똑한 사람들만 사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숨이 막혀 못 살 것 같지 않는가? 못난이와 바보들은 이 세상의 윤활유(潤滑油)요 완충재(緩衝材)가 아니던가? 공부에 앞서서 세상을 또 인간을 바로 보는 눈을 갖게 하자. 그러면 학교 폭력이랑 왕따랑... 비행이 사라지는 학교가 되지 않을까 싶다.
글눈과 말귀에 밝아야...
인류문명은 애초부터 암호(언어와 문자)로 전수되어 왔다. 학교교육의 현장에서도 거의가 말과 글을 전달 수단으로 하여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우리가 쓰고 있는 언어 중 순 우리말은 30% 정도이고, 그 나머지는 한자어라는 통계를 눈여겨보아야겠다. 그 중 한자어를 이해하고 쓰려면 한자를 알아야 함은 말할 것도 없는데, 그렇지 않는데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용한자1800여자에 조금 더 보태어 2000여자는 알아야 눈이 뜨이고 귀가 정상인인 1.0의 시청력(視聽力)으로 본다면, 한자(漢子)를 한자도 모른다면 0.3 정도 밖에 볼 수 없지 않는가? 정상 시력을 갖지 못한 학습자를 눈뜬장님과 귀 뚫린 농아와 같지 않은가? 이 가설을 수치로 환산한다면 한자(漢字)300 여자에 0.1의 시력이 올라간다고 볼 수도 있다. 정상(正常)에서 훨씬 못 미치는 약시청자(弱視聽者)들은 교사의 교수용어를 들으려 애를 써도 잘 들리지 않고 판서(板書)를 보아도 잘 보이지 않는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점으로 교사는 학생들의 시청력이 정상이라고 착각하고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이다. 눈뜬장님을 인솔한 안내인(案內人)이 뒤따라오는 사람들이 정상인(正常人)이라고 착각하고 등산(登山)하는 경우와 다를 바가 없지 않는가?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문(漢文)교육을 하자는 것이 아니고, 우리말을 잘 알고 쓰기 위한 수단(手段)으로라도 한자를 익히자는 뜻일 뿐이다. 노력과 시간이 조금은 든다고 하더라도 학습 도구(道具)인 한자를 익히는 것이 끝에 가서는 효율성이 높아 결국 남는 장사가 된다는 것을 확신(確信)한다. 하지만 한글전용을 부르짖는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책망도 하겠지만. 보리 고개를 넘을 때에는 쌀밥 보리밥을 가릴 겨를이 없듯이, 문맹률(文盲率)이 높던 시절은 한글 전용이 효율적일 수밖에 없었다. 생활에서도 ‘참살이’ 바람이 불고 있듯이, 이제 우리의 교육도 웰빙 시대를 열어가자는 것이다. ‘한글전용’ 외치던 사람들도 자기 실속 다 차려 높은 수준(水準)의 한문 실력을 갖추었고, 그들의 자녀들도 한자에 눈감기지 않고 있단다.
말에도 맛이 있다.
말도 그 뜻을 충분히 알고 쓰면 맛이 있다. 찐쌀을 입안에서 오래 불리면서 씹으면 구수한 맛을 느끼듯이 말에도 감칠맛이 난다. 순수 우리말은 물론 한자어(漢字語)도 한자의 뜻과 어원까지 알고 쓰면 입과 귀로 말맛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다음에 수많은 어휘 중 영역별로 보기를 몇을 실었다. 많은 내용은 본인의 브로그에 자세히 게재해 두었음도 밝혀두는 바이다.
◈말의 뿌리 찾아 말맛(語味)보기
*바보: 1. 지능이 부족하여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
2. ‘어리석고 멍청한 사람’을 얕잡아, 또는 욕으로 이르는 말
※바보= 밥+보(보자기)̀⟹‘밥을 사는 보자기 : 사람의 구실을 하지 못하고 밥만 먹어서 밥을 사는 보자기 역할 밖에 못한다는 의미... ‘바보자기’. ‘밥통’ ‘축기’ *통도 같은 유의 말..
*새침데기: 새침한 버릇이 있는 사람을 홀하게 이르는 말.
※어원; ‘시치미’는 새의 임자를 밝히기 위하여 주소를 적어 매 꽁지 위의 깃털 속에 매어두는 네모진 뿔을 말하는데, 사냥매는 사냥 중 주인의 손을 떠나게 되는 수가 있는데, 이 때 이 때 떠돌이 매를 주은 사람이 ‘시치미’ 만 떼어내면 임자를 모르게 되어 자기 소유가 될 수 있는데서, 나온 말로 짐짓 알고도 모르는 제하거나 ,하고도 안 한 체하다. 라는 뜻.
*숙주나물: 1. 녹두를 물에 불리어 싹을 낸 나물. 숙주.
2. 숙주를 데쳐서 양념하여 만든 반찬.
※말 뿌리 풀이: 조선 시대 단종 복위사건 때 ‘신숙주“의 변절을 녹두 나물이 잘 변질 되는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설렁탕: 소의 머리·양지·사태·사골·무릎도가니·내장 따위를 푹 고아서 만든 국. 밥을 말고 소금·파·후춧가루 따위를 넣어서 먹는 탕국의 한 가지.
※말뿌리: 조선 시대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를 주신(主神)으로 모신 신농단(神農壇)에서 왕이 친림하여 풍년(豊年)들기를 기원(祈願)하던 제사(祭祀)를 지내고 난 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던 국에서 유래.....
*을씨년스럽다:1. 보기에 쓸쓸하다. ¶ 을씨년스러운 겨울 바다. ¶ 날씨가 을씨년스럽다.
2. 보기에 살림이 군색한 듯하다.
※말 뿌리 풀이: ‘을사늑약’이 이루어진 ‘을사년(乙巳年)’과 같이 아주 ‘쓸쓸하다’에 비유....
*소금쟁이: 소금쟁잇과의 곤충. 몸길이 15mm가량. 등이 검고 배는 은백색이며 다리가 길어 물 위를 저어 가거나 뛰어다님. 연못이나 염분이 있는 물에 모여 삶.
※말 뿌리 풀이: 소금장수에서 온 말로 소금장수는 물을 싫어하고 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쩌다 물에 빠지는 날에는 모든 것이 헛장사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소금을 지게에 진 소금장수가 물가에서 조심하는 그 모습에서 따서 붙여진 이름.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왕오-천축-국전 으로 읽거나 풀이하면 안 되고, 왕-오천축 국-전으로 해석해야 된다.
※왕(往=가다) 오(五=다섯) 천축(天竺=옛 인도에 있었던 나라 이름) 국(國=나라) 전(傳=기 행문) 풀이; ‘인도에 있는 다섯 천축국을 다녀와서’ 란 기행문 제목으로 풀이해야 .....
*조의제문(弔義帝文):조의-제문 이 아닌 조-의제-문으로 풀어야 한다.
弔;슬퍼하다. 義帝;초의 회왕. 文;글
※풀이; ‘회왕(懷王=義帝)의 죽음을 슬퍼하노라’
내용인즉 초(楚)나라의 의제(義帝)가 항우(項羽)에게 죽임을 당한 것을 세조가 단종의 왕위 찬탈(簒奪)을 은근(慇懃)히 비유(比喩)하여 김종직이 쓴 글인데, 이를 단초로 무오사화(戊午士禍)를 일으켰다.
*낭패(狼狽): (실패나 사고를 당하여) 난감한 처지가 됨.
¶ 졸지에 부모를 잃었으니 아이들의 일이 낭패로구나.
※풀이; 낭(狼)은 앞다리가 길고 뒷다리가 짧으며, 패(狽)는 앞다리가 짧고 뒷다리가 길다. 그래서 이 둘은 서로 업혀서야만 다닐 수 있다. 고로 이 두 짐승이 서로 떨어지면 걸을 수 없고 넘어지게 되는 데서 이르는 말.
*전망(展望):1. 멀리 바라봄, 또는 멀리 바라다 보이는 풍경.
2. (앞날을) 미리 내다봄, 또는 내다보이는 앞날.
※풀이; 이 전망을 멀리, 또는 미리 내다본다는 뜻으로 쓰되, 희망적이고 바람직한 곳에는 쓰고, 그 반대적 상황일 때는 짐작된다, 예상된다. 그렇지 않을까? 걱정된다. 고 서야 적합(適合)하다고 본다.
※예: 앞으로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또 그에 따라 평균수명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예: 이번 사고로 인해 부상자 중 중상자(重傷者)가 많아 앞으로 사망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늘어나지 않을까 걱정된다. 염려(念慮)된다. ....)
◈장단음(長短音) 바로 알고 쓰기
*가산: 가산(家産)의 정도는 가:산(加算)점에 포함되지 않았다.
*낭자: 낭자(娘子)가 강도에게 피습된 현장에는 유혈이 낭:자(狼藉) 하였다.
*대사: 연극에서 대:사(大師)역을 맡은 그가 무대에서 대사(臺詞)를 잊고 당황하였다.
*면직: 화재사건으로 면직(綿織)공장장을 면:직(免職)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방문: 방:문(訪問)객이 열린 방문(房門)으로 들어오고 있다.
◈동음(同音) 반의어(反意語) 바로 알고 쓰기
*과언 過:言:정도에 지나친 말.
寡:言:말수가 적음.
*낭자 郎子:지난날, 남의 집 '총각'을 점잖게 이르던 말.
娘子:지난날, '처녀'를 점잖게 이르던 말.
*매혈 買血:[수혈에 대비하여]혈액을 삼
賣血:혈액을 팖.
*방수 放水:물을 흘려 보냄.
防水:물이 새거나 스며들거나 넘쳐흐르는 것을 막음.
*사죄 謝:罪: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 용서를 빔.
赦:罪:죄를 용서함.
◈뒤바뀐 말 바로 알고 쓰기
고무(鼓舞):남을 격려하여 힘이 나게 함.
무고(舞鼓):고전 무용의 북춤에서 쓰이는 북. 북춤.
공중(空中):지구 표면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 하늘과 땅 사이의 빈 곳.
중공(中空]:①중천. ②속이 빔.
권리(權利):무슨 일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격.
이권(利權):이익을 얻게되는 권리.
근친(近親):가까운 친족. 특히 팔촌 이내의 일가붙이.
친근(親近):사귀어 지내는 사이가 매우 가까움.
난전(亂戰):두 편이 뒤섞여서 어지럽게 싸움. 또는 그러한 싸움.
전란(戰亂):전쟁으로 말미암은 난리.
◈상대어 알고 쓰기
가감(加減)⇒(加:더할 가+減:덜 감)①더하거나 뺌. 보태거나 덞.②더하기와 빼기.
농담(濃淡)⇒(濃:진할 농 + 淡:묽을 담)색이나 맛이 짙고 옅은 정도.
단속(斷續)⇒모순(矛盾)⇒(矛=창, 盾=방패.)창과 방패. 앞뒤가 서로 맞지 않음.(斷:끊을 단 + 續:이을 속)끊어졌다 이어졌다 함.
봉별(逢別)⇒(逢:만날 봉 + 別:헤어질 별)만남과 이별.
소밀(疏密)⇒(疏:드물 소 + 密: 빽빽할 밀)성김과 빽빽함.
※그 밖에 독자가 풀어 맛을 볼 말들: 먼저 예 1)에서 한글로만 된 말을 음미하고 나서 한자(漢字)가 받쳐준 말에서... 나아가 예2)에서는 사전으로 뜻을 찾아 풀어 본 후에 맛을 보라 말맛의 차이가 나지 않는가?
예1) 순 한글
책상조직. 감조하천. 자주포. 박격포. 금수강산. 피침형. 선상지. 와중. 수련. 함수초. 제대.
수지주망. 의사뇌염. 낭자. 불우. 금자탑. 무연휘발유. 송무백열. 혜분난비. 조흔판.
예2) 한자(漢字)를 받쳐줌
책상조직(柵狀組織). 감조하천(感潮河川). 자주포(自走砲). 박격포(迫擊砲). 금수강산(錦繡江山). 피침형(披針形). 선상지(煽狀地). 와중(渦中). 수련(睡蓮). 함수초(含羞草). 제대(臍帶). 척수지주망(脊髓蜘蛛網). 의사뇌염(疑似腦炎). 낭자(狼藉).불우(不遇). 금자탑(金字塔). 무연휘발유(無鉛揮發油). 송무백열(松茂栢悅). 혜분난비(蕙焚蘭悲). 조흔판(條痕板).
제대로 맛을 알고 먹은 음식은 소화(消化)도 잘 되듯이 말맛을 아는 수업시간은 흥이 나고 성적은 향상되고 나아가 즐거운 학교생활이 이루어진다.
사전(辭典)에 어미(語尾)와 의미(意味)는 있어도 어미(語味)는 없어 만들어서라도 썼으며 한다. 말맛을 알고서 임하는 수업 시간 얼마나 재미있겠는가?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
목에서 나는 탁탁지성(啄啄之聲)
옛날 한 선비가 공부를 아무리 해도 문리(文理)가 트이지 않아서 어느 먼 곳에 유명한 도사(道士)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먼 길을 어렵게 찾아가
선비 “도사님! 제게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제게 일러 주십시오.” 하니
도사 “ 그래 그렇다면 네가 읽고 있는 그 책을 천 번만 읽어라 . 그러면 너의 목에서 ”탁탁‘하는 소리가 들 것이니라“
그 말을 들은 선비는 그날로부터 전심전력(全心全力)으로 천 번을 읽게 된 것이다. 한데. 천 번을 채우는 순간 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날 것으로 알았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이 아닌가? 의아하게 생각되어 다시 스승에게 찾아가 그 사실을 아뢰었던 것이다. 하니 그 스승이 무릎을 치면서 ‘바로 그것이다, 너는 이제 됐다. 천 번을 읽었기에 문리(文理)는 터졌다’ 것이다.
이 이야기에 우리에게 시사(示唆)하는 점은
자라는 아이들에게 수준에도 걸맞지 않은 많은 책을 그것도 수없이 많은 책을 미리 준비해 두는 가정이 있는데, 책이 많으면 많이 읽을 것이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역효과가 날 수도 있음을 염두(念頭)에 두자.
필름은 께끗하게.....
학생들 곁에서 그들의 대화를 엿들어 보면 유명 텔런트나 소위 스타들의 프로필을 달달 외우고 있단다. 특정 팀의 감독은 물론 그의 작전술까지도 알고 있으니, 얼마나 머리가 복잡하겠는가? 그러고도 공부가 머리에 들어갈 여백이 있겠는지 의심이 갈 정도이다.
그렇다, 사람의 두뇌에도 기억용량의 한계가 있는 법인데, 불필요하고 잡다한 것 그것도 무질서하게 입력해 두면 다른 자료가 입력될 공간이 제대로 주어질리 없다. 그래서 청소년 보호를 위한 각종 규제가 주어지는 것인데, 부모들의 교육관이 확고해야하고 나아가 학생도 자제력을 길러 교육공해에 최대한 노출을 줄여야한다고 본다.
어부는 투망을 하고 부표를 띄워 둔다.
이것은 학습한 것을 어떻게 입력을 시킬 것인가의 기법인데, 어부는 망망대해에서 어구를 설치하고는 그 위치를 부표(浮漂)를 띄워 표지(標識)를 해둔다. 지금은 GPS가 생활화 되어 있는데도 그렇게 해오고 있다. PC가 학습 자료로 자리 잡 은지 오래 되었다. 그 기록 면에서의 우수성은 사람의 두뇌보다 앞선다고 볼 수 있지만 학습의 보조교구일 뿐 결국은 두뇌에 저장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우리의 뇌 속의 기억 장치도 그 세포를 펼치면 바다에 못지않을 만큼 방대(尨大)하다. 어느 위치에 어떤 상태로 저장해 두었으며, 다음에 찾기 좋게 표지를 해 둔다면 재생(再生)하 때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이 입력한 것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재생을 잘 할 수 있게 정연(整然)히 해 두는가가 관건(關鍵)이다.
기억할 때에는 漁夫의 부표처럼 기존에 습득한 지식과 짝을 지워 입력하는 것도 한 방법이기에 예를 들어본다면....
⎈연도 및 숫자
*삼일운동이 일어난 해: 아이구아이구⇨1919년
*토함산의 높이: 칠칠한 사위⇨ 745m
*전국의 역(驛)의 전화번호: 칙칙푹푹 ⇨ -7788번
*어느 병원의 전화번호 : 의사이오 ⇨ -2425번
*이삿짐센터의 전화번호: 이 사 ⇨ -2424번
⎈일어
*범이 뱅뱅 도라() *꿩은 날지 않으면 기지() *접시 사라() *호박 따러 가봇자()
⎈용어
*십장생(十長生); 무생물5⇒일,산,수,석,운(日山水石雲) 식물2⇒송,불노초(松,不老草)
동 물3⇒鹿龜鶴 ⇒사슴(육지) 거북(바다) 학(하늘)
*‘갈라파고스’에서는 칼라사진을 찍으면 좋다....
*호주의 원주민은 애벌레를 먹기도 해 ‘에보리진’이라 한단다.
*베르디의 4대 오페라는 ‘아라리오’ 다... (아이다, 라트라비아타, 리골레토, 오셀
*차(車)는 차고(車庫)로 차고시안들은 차고스제도로 돌아가려한다...
*맛을 보려면 ‘마슬랭가이드’에서 찾아보아라.
*불에 타지 말아야하는 인도의 타지마할 궁전.
*바다 밑으로 침몰(沈沒)할 것 같은 인도양의 몰디브 섬.
※이는 각자가 개발해간다면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고, 무지막지하게 외우는 것보다 수월 히 익힐 수 있어 경제저이라 할 수 있다고 본다.
기억법은 PC에서 얻자.
사람이 만든 PC의 문서 저장법을 우리의 기억에도 전용(轉用)하자. 왜냐하면 그 저장 구조가 가장 합리적이고 재생하는데 편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머리도 기억 분야는 아예 PC처럼 구조화하고, 그렇게 훈련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유사한 파일을 모아 폴더로 묶어서 입력하는 것이나 책사(冊肆)에서 도서를 정리 배열하는 법이나 한약방에서 쓰는 약장의 구조는 우리의 기억방법에 꼭 원용(援用)할만 하다고 본다.
기록(記錄)보다 기억(記憶)에 힘쓰자.
학습과정을 관찰해 보면 도구교과에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필기(노트정리)에 쏟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시간과 노력이 아까우니 아예 공책이라는 것을 없애고 그 걸 기억하는데 쓰자고 주장하고 싶다. 학생들에게 성서와 같은 공책을 없애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할지 모르나. 대안으로 교과서의 여백(餘白)에다 메모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면 부전지(附箋紙)를 쓴다면 교과서가 노트도, 참고서도 되어서 얼마마나 간편하냐 말이다. 우리가 교과서를 족보처럼 받들고 중히 여기면서 글자 한자도 쓰지 못하게 했던 전통적 사고(思考)에서 온 것이다. 그 때는 책이 아주 귀한 때라 대대로 물려가면서 쓸 때가 아니던가? 지금은 교과서도 1년 아니면 6개월의 한시적 소모품(消耗品)에 지나지 않는 시대가 되지 않았는가?.
책가방을 교단 밑에 숨겨두고 다니던 먼 친구 이야기를 해보면, 지난날 시오리가 넘는 산골길로 등하교를 하는 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책보’가 부담된다고 하교(下校)할 때 선생님 몰래 교단(敎壇) 밑에 숨겨두고는 이튿날 꺼내는데 익숙하였다. 그래도 그의 성적은 항상 학급에서 상위(上位)였던 것이다. 여기에서 학습결과는 노트에나 가방에 들어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바로 머릿속에 들어 있어야 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려면 교사와 학생의 합의(合意)가 이루어져야 하고 나아가 교실의 혁명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본다.
자신에게 최면(催眠)을 걸어라
그리스&로마 신화에 보면, 피그말리온이라는 청년이 아름다운 여성의 조각을 보며, 이 여성이 진짜 사람이 되어 자신의 연인이 되어주길 간절히 바라죠. 이 바람을 들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피그말리온의 소원을 들어주어, 이 조각상 여인을 진짜 사람으로 만든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게 되는 현상"을 교육 심리학(心理學)에서는 ‘피그말리온 효과’ 라고 한다.
여기에서 ‘말이 씨가 된다.’ 는 속담도 있듯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확신(確信)하고 기대하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을 보여준 사례이다. 하나가 이루어질 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마라라. 백발노인(白髮老人)도 칭찬을 들으면 흡족(洽足)해 하고, ‘칭찬을 하면 고래도 춤춘다.’ 는 말도 있지 않는가? 칭찬을 할 때에는 ‘똑똑하다’는 칭찬보다 ‘열심히 잘했다’고 해야 아이들의 학습능력을 향상(向上)시킨다고 어느 연구기관의 결과도 참고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즉 지적능력(地積能力)을 칭찬(稱讚)하면 학습의욕이 떨어지는 반면 노력을 칭찬하면 도전의식과 자신감(自信感)이 커져 성적을 올린다는 것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뜀틀 앞에서 ‘나도 넘을 수 있다는 자기 최면(催眠)을 걸고 뛰면 5단도 거뜬히 뛸 수 있고 자신 업이 주저(躊躇)하면 3단에도 걸리고 만다....
배수진을 처라
시험이 박두하면 어떻게 해서 한 문제라도 더 맞힐까 하고 고심을 하다가, 비정상적인 족으로 기우려 커닝 페이퍼를 만들거나 다른 부정한 방법을 강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s이는 도덕적 문제이기 전에 마이너스 효과 오게 됨을 알아야한다. 부정한 방법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그 순간 있던 들어가 있던 것도 지워져 텅 비게 되고, 머리에는 들어가는 것이 하나 없다. 온통 머리 쏙에는 부정으로 가득차고, 그와의 싸움만 일어나고 있을 뿐이다. 시험을 앞두고는 머리하나로 승부하는 ‘배수진(背水陣)을 치라고 권하고 싶다.
엉뚱한데 기대지 마라. 힘센 형이 있는 아이는 놀다가도 잘 울고, 조절도 잘한다. ‘사업에 투자할 때에는 전 재산을 몽땅 걸어라, 그래야만 뒤돌아보지 않고 전력투구(全力投球)하여 성공할 수 있다’고 충고하는 사람이 있다.
굶은 돼지도 과식하지 않는다.
학습자의 생리적(生理的) 상태가 최적상태가 되어야 학습의 효율성이 오른다. 대표적인 몇 가지만 든다면...
첫째 배부름과의 상관관계(相關關係)에서는 적정량보다 더 많이 먹어, 즉 배가 부른 상태는 약간의 배고픔을 느낄만할 때보다 학습의 효과가 낮다고 본다. 생존경쟁이 극심한 자연 상태에서 살아가는 동물은 배불리 먹지 않는다고 한다.
예1)
굶긴 돼지에게 먹이를 넉넉히 주고난 뒤 잡아 위를 갈라본 결과 위의 80%만 차 있더란다. 보통 많이 먹는 사람을 ‘돼지’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그 건 잘 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위의 실례에서 보여준 것이다.
예2)
사냥매는 사냥 나가기 하루 전날은 굶기고, 그것도 모자라 목화씨를 먹이기도 한다는데, 이튿날 뱉어낸 목화씨에 기름기가 끼어 노랗게 변해 있다고 한다. 이것은 목구멍의 기름기 까지도 빼서 매의 사냥 의욕을 높이려는 것이다.
예3)
고양이를 집에서 기르게 된 목적은 쥐를 잡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구서(驅鼠)를 떠나서는 고양이의 존재(存在)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런 고양이에게 먹이를 실컷 주면 쥐 잡을 의욕이 떨어질 뿐 아니라 민첩(敏捷)함이 없어져 쥐를 잡을 수도 없게 되는 것이다. 끝내는 도둑고양이로 전락(轉落)하고 마는 것을 보아왔다. 쥐를 잡지 못 하는 고양이는 벌써 고양이가 아니고, 아이들 노리개 감에 불과하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포식하는 경향이 있다, 과식(Over- eat)이라는 용어는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동물은 결코 과식하는 일이 없고, 그래야만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최적 상태가 되는 것이다.
학습장의 온도는 더운 곳보다 시원하게 느낄 정도가 훨씬 좋다. 추운 것은 체력 낭비(浪費)와 안정에 좋지 않지만 더운 것도 그에 못지않게 나쁘다고 본다. 모든 물질은 더우면 팽창(膨脹)하게 되는데, 사람의 세포도 더우면 이완되어 활동이 둔(鈍)해진다.
‘배부르고 등 따스우면 음탕(淫蕩)한 생각만 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학부모들이여 체력유지와 성장을 이한 균형 잡힌 식사는 좋지만 실컷 먹이는 것은 재고(再考)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허리둘레와 학습의 효율은 반비례에 가까울 것이다.
도깨비상자의 공해에서 벗어나기
문명의 첨단(尖端) 이기(利器)라는 TV가 우리 교육에 이바지한 부분도 많았지만 공해적 측면도 없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TV의 공해문제는 옛말이 되었고, 요즈음은 도깨비상자(인터넷망에 연결된 PC)이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의 혼(魂)도 빼버리고 있는 실정이다. 밀폐된 공부방에 ‘도깨비상자’를 두고서 공부만할 것이라고 믿는 어른들이 더 한심하다. 많은 어른들이여 그대들이 그 자리에서 밤을 지새운다면 그 상자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다고 장담(壯談)하겠는가? 말이다. 그럴 진데, 미성년자(未成年者)인 아이들에게야 물어 무엇 하리오?
그렇다면 이 정보화시대에 눈 어둡게 해서 어쩔 것이냐고 반문(反問)할지 몰라도, 그것은 학습과 실생활(實生活)에 이용하면서 공해를 추방하자는 것뿐이다. 그러려면 PC를 열린 공간(거실 같은 곳)에 두고 온 가족이 공용(共用)으로 쓰는 방법을 권하고 싶다.
빌게이츠 회장은 올해 열 살인 그의 딸이 컴퓨터 게임에 빠져 하루에 2-3시간을 매달려 애를 먹었단다. 그래서 그의 아내와 상의하여 평일에는 45분, 주말에는 1시간만 PC 모니터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엄격히 제한했단다. 이 실화는 우리에게 주는 시사(示唆)점이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공개 선발한 양자(養子)
지난날 어느 대감댁에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 양자를 들이기로 했는데, 좋은 아들감을 고르려고, 공개 선발을 하기로 했다. 근친 중에서 대상 아이들을 여럿을 불러 모아 잔치를 열어주면서 살펴보니... 많은 아이들이 상에 차린 좋은 음식들을 정신없이 먹어치우는데, 그 중 한 아이는 제대로‘나는 오늘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다 부모님생각이 나서 갖다 드리려고 사는 중이’라고 말했다. 대감은 느낀 바 있어 그 아이를 점찍고 음식을 푸짐히 사서 집으로 보낸 후에 정식으로 입양(入養)을 하게 되었다. 한데 집으로 들어온 후부터 책은 거들 떠보지도 않고 뛰놀기만 했다. 수없이 어르고 달래면서 공부를 시키려 해도 될 것 같지가 않아 파양(罷養)하기로 하고 돌려보냈다. 업고 가던 하인(下人)이
“바보 같은 도련님도 있나? 시키는 공부나 했으면 호화롭게 살 텐데 이게 무슨 짝이냐?”하 니. 아이가 하는 말이
“바보는 바로 너로구나. 서재(書齋)에 있는 책을 보지도 못했니? 한 권을 읽으면 또 한권 을 읽으라고 할 것이고 그 많은 책을 누가 읽는다는 말이야. 아예 읽지 않는 것이 낫지 않 는가.?”
미련이 남아 집으로 돌아 온 하인에게 도중(途中)에 무슨 일이 없었느냐고 물으니. 냇물을 건너면서 주고 은 이야기를 전했던 것이다. 다 들은 대감은 깊이 생각에 잠겼다가, 그 아이를 다시 데려오라고 하였던 것이다. 설사 공부를 못하더라도 소견이 넓어 쓸 만하다고 본 것이다.
아이가 글도 깨치기 전에 많은 책을 그것도 질로 갖추어 놓는 가정을 더러 본다. 한 번 생각할 무문제다. 이 이야기 속의 아이처럼 책에 질려 멀리하지나 않을까 말이다. 책은 ‘출탁동기“의 교훈처럼 필요로 할 때에 때맞추어 마련해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물론 다른 것들도...
병아리 젖떼기
요즈음 많은 가정에서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우유로 애기를 키우고 있으며, 분유회사에서는 모유(母乳)에 못지않은 제품들이라고 앞 다퉈 선전들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서 우유와 모유가 같다는 가설(假說)이 성립 된다면, 끝에 가서는 사람과 소가 같다는 등식이 이루어진다.
※모유 = 우유 ⇒ 사람 = 소 의 등식을 유도해 낼 수 있다.
모유 속에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영양과 기운이 들어 있는 반면, 우유 에는 우수한 소의 형질을 갖추게 하는 성분이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모유먹이기 운동’은 영양 분석적 측면 뿐 아니라, 엄마의 젖가슴을 통해 모자의 사랑이 깊어지면서 정서적 안정은 물론 나아가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바탕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기도해 끝이 없으나, 성장단계에 맞추어 과보호가 없어야한다. 과보호는 온실의 화초처럼 나약해져 사회 풍파에 부딪치면 쉽게 좌절하는 수가 있다.
어미닭은 목숨을 걸고 솜털 병아리를 보호하고 품어 기르지 만, 깃털이 나서 독립가능하게
되면 사정없이 쪼아서(머리에 피가 나도록...) 어미로부터 떨어지게 한다. 이를 두고 어른들은 ‘병아리 젖 뗀다.’ 다고 한다. 젖도 없는 닭이 젖을 뗀다니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우리는 눈여겨보아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교훈을 얻어 독립심이 강한 아이로 키우자....
요즈음 학교에서 아이들의 무질서한 행동양상을 ‘우유를 먹고 자란 아이들이라서 그렇다.’ 라는 말은 우스개로 들어 넘길 수만 없다고 본다.
줄탁동기(啐啄同機)
‘줄(啐)은 닭이 알을 깔 때에, 껍질 속에서 병아리의 우는 소리를 ‘줄(啐)’, 어미 닭이 빢에서 쪼아 깨뜨리는 것을 ‘탁(啄)’이라 하며, 이 두 가지 일이 동시에 행하여져야 한다는 뜻으로, ‘놓쳐서는 안 될 좋은 시기(時機)’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 또 선가(禪家)에서, 두 사람의 대화가 상응하는 일을 나타내는 말이다. 깨어 나오려는 병아리와 어미 닭이 호흡과 타이밍이 맞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 모든 일에는 다 줄탁동기처럼 될 때 그 일이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학습자에게 어떤 동기(動機)가 주어지고 교사와 학부모 나아가 사회의 쪼는 것이 맞아 떨어질 때, 부화에 성공(成功)함은 물론 큰 닭이나 또는 닭이 아닌 학(鶴)으로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사람이 어학(語學)에 관심을 갖고 한 평생 매달려 온 내력을 밝혀보면.
*일어(日語): 해방 입학동(入學童 =해방되던 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사람)으로서 일어カナ도 몰랐다. 한데 교직에 나오니 선배들은 다들 일본어로 농도 하고 젊은이들의 흉도 보는 것이 아닌가? 가끔 인쇄물 조각에 일본글자 중 の를 더러 보았는데, 앞뒤 한자로 해석할 때‘의’란 의미로 쓰인 것 같은데, 선배들에게 물으니 음은 ‘노’라고 한다. 일본어(日本語)에 대한 호 기심은 가득하나 접근 할 길이 없었다. 당시에는 반일(反日)사상이 넘쳐날 때이고서점에도 일어로 된 책 한권 없었으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한데, 그 때 갖고 있던 트랜지스터라디오로 새벽 방송을 듣다가 NHK의 국제국에서 대한국(對韓國)방송프로 중 ‘일본어 첫걸음’이란 일본어 강의가 있음을 알고, 방송국으로 편지를 보내 연결 되어 교재를 보내왔다. 인디언지로 된 B4 크기마한 데다 몇 주 분의 교재가 실려 있었다. 그것이 점점 발전되어 몇 년 후에는 제법 작은 책 모양으로 나오기도 했다. 말이 자습이지 생소한 일어를 자습으로 풀어가려니 어려움이 컸다. 그러고 나서 몇 십 년이 지난 후 일본에 선진지 시찰기회가 와서 몇 년 선배들이 자신이 없어 뒤로 물러서는 바람에 앞장서 시내의 야간 관광도 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외국어라는 것은 혼자 눈으로 해서는 안 되고 직접 부닥치고 입 밖으로 쏟아내야 한다는 것도 통감했다. 아는 말도 입안에서 맴돌고 밖으로 네 뱉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더란다.
*한문(漢文): 장년(壯年)시절 학교에서 에리트 교사라고 불릴 때 쯤, 용인 자연농원(自然農園=지금 에버렌드의 전신)에 단체 여행을 갔는데, 입구에 공원의 조성(造成)을 알리는 비석이 있었다. 엄청나게 큰 자연석에다 비문(碑文)은 한글을 주로하고 보기 좋을 정도로 한자를 섞어놓았다. 중얼거리면서 읽어 내려가는데, 두어 줄 째의 ‘凜’자에서 막히고 말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황당했다고나할까... 망설이다 말고는 염치불고(廉恥不顧)하고 옆의 후배(後排)에게 물으니 서슴없이 ‘늠’자라고 했다. 그 장애를 넘어서니 얼음에 박민 듯이 술술 잘 내려가더라. 뜻인 즉 ‘늠늠(凜凜)한 기상(氣象)을 품고..... 하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 날은 그 충격이 일정 중에서도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하나는 후배도 아는 그 글자를 내가 왜 몰랐나 하는 자괴감과 ’늠늠‘이란 말이 순 우리말인 줄 알고 있었는데 한자어란 사실에 놀랐던 것이다. 그날 이후 한자에 매달려 자습으로 사서(四書)에 접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는데 후회 없으며 잘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영어(英語): 성철( )종정이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을 즈음 어는 잡지에서 성철종정의 머리맡에 ‘TIME지가 있다는 기사를 읽고서 나도 그날부터 스님을 마음으로 존경하게 되었던 것이다. 새로운 열린 세상에 도전하는 스님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보고 크게 공감하게 되었다. ’그렇다‘ 나도 영자(英字)잡지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기르자.... 그래서 내가 늘그막에는 손자들이 한 4 개 국어 판 신문 정도는 읽을 수 있어야 ’할아버지‘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목표를 정하고 노력해 왔다. 어지간히 이루어지는 듯도 한데, 중국을 가서 보니 우리가 쓰는 한자(繁體字)는 알겠는데, 간체자(間體字)를 쓰고 있어 많이 막히더라. 그래서 늦게나마 간체자에 도전하여 이젠 중국 본토 발행 신문은 내려갈 정도가 됐다.
DOS시대에 컴퓨터를 자습으로 익힌 것이 바탕이 되어 이런 글도 써 보고 ‘카페’니 ‘브로그’니 하는 것도 꾸려오고 있게 되었지요....
흥감을 좀 떨면 한우충동(汗牛充棟)하리 만큼의 책을 뒤적였고, 어학(語學)에도 관심을 남달리 기우려 왔다. 한데, 저물어가는 인생행로(人生行路)에 써먹을 곳도 없이 무덤으로 가져가버리면 너무 허망(虛妄)할 것 같아 ‘퀴즈 대한민국’에 도전(挑戰)하기로 한지 삼 년 여에 세 번의 예선통과에다 면접(面接)까지 보았고, 준비한 예선문제도 수천을 만들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본선에 나가서 잘 풀리기만 기다려진단다. 아니면 ‘우리말 달인’이면 어떠리...
이럴 즈음 ‘최고령에 최고의 상금을 획득한 ’퀴즈영웅‘으로 되었단다... 어디에서 축하(祝賀)인가 싶은 전화(電話)벨소리가 요란하다....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니 해는 서산마루에 걸려 있고, 늦가을 스산한 바람이 소매 속으로 스며드는구나... 이 늦가을에 ‘봄꿈’을 다 꾸다니? 멀지 않은 길이지만 땅거미가 내리니 조심해야겠구나.
어설픈 문장들로 쓴 황당한 이야기들을 끝까지 읽어 준데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이 사람의 생각에 조금이라도 공감하는 이가 있다면 더없이 흡족하게 여기겠습니다. 크게 잘 못된 부분은 지적해 주신다면 기꺼이 받아들여 수정 보완하겠습니다. 원래 이 내용은 강의 내용을 짜 두었던 것을 풀어 쓴 것인데, 교육 현장에서 불러준다면 어디라도 달려가 서슴없이 봉사할 용의가 있음도 밝혀둡니다.
첫댓글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