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에 가면 오직 두 명의 사람들만 결혼을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려고 참석한 하객들이다. 그래서 두 명의 사람만이 결혼한다고 말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결혼식을 축하해주고 구경하려고 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배는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예배드리러 간다고 말하지, 예배에 참석하고 구경하러 간다고 말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결혼식의 주체는 두 사람이지만, 예배의 주체는 모든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예배라고 말하는 헬라어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프로스퀴네오’로서 ‘절하다’ ‘경배하다’ ‘예배하다’라는 뜻이다. 또 하나는 ‘라트레이아’로서 ‘제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제사는 구약시대의 예배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수님은 모세에게 주어진 율법을 통해 소나 양 등의 짐승을 잡아 불에 태워 번제를 드리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시대의 제사법은 짐승을 잡아서 번제로 드리는 제사가 곧 예배의식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기르던 짐승을 끌고 가거나, 먼데 사는 사람들은 성전 앞에서 파는 짐승을 돈을 주고 사서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제사장에게 짐승을 건네주고 자신은 제사의식이 진행되는 것을 경건한 마음으로 구경하면 되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는 구약시대의 제사를 이어받은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배의식을 거행하는 것이다. 구약시대의 제사법은 짐승이 제물이 되었지만, 신약시대의 예배의식(제사법)은 참석한 예배자 자신이 살아있는 제물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예배를 번역한 우리네 성경은 예배와 예배의식을 구별하여 기록하지 않아서 무척이나 혼란스럽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는 정확하게 말해서 예배의식이고 영어로는 worship service이다. 그러나 우리는 의식(service)이라는 말을 생략해서 예배의식자체가 예배라는 말로 둔갑해 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배의식에 참석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예배를 드리는 거라고 착각하기 일쑤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위에서 말한 예배는 ‘예배하다’는 ‘프로스퀴네오’가 아닌 ‘제사’인 ‘라트레이아’를 번역한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에는 제물이 필요한데, 그 제물이 당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짐승과 사람과는 무엇이 다른가? 짐승은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피를 흘려서 죽어야 한다. 피를 흘리는 제사법을 하나님이 기뻐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들어오면서 구약시대의 제사법이 폐지가 되었으며, 사람들은 찬양이나 기도, 설교, 헌금 등의 순서를 넣어서 새로운 예배의식(제사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예배의식에 대해서는 성경에 아무런 언급이 없다. 구약의 제사법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율법으로 주어졌지만, 신약시대의 예배의식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사람들이 관행적으로 만든 종교의식일 뿐이다. 그렇다고 필자가 작금의 우리네 교회에서 시행하는 예배의식을 폄훼하려는 게 아니다. 필자의 영성학교에서도 이러한 예배순서에 따라 예배의식을 드리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배의식에 참석하는 것과 예배자가 된다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일요일 오전에 열리는 교회에서의 예배의식에 참석하는 행위가 주일성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주일이라는 말은 일요일이라는 뜻이 아니며, 예배의식에 참석하는 것이 성수(거룩하게 지킨다)라는 의미도 아니다. 그뿐 만이 아니다. 주일 오후에도 점심을 먹자마자 예배의식을 드리고, 수요일과 금요일 저녁에도 예배의식이 있고, 새벽마다 드리는 기도회에도 예배형식을 취하며 교인들이 모이면 예배의식을 엄격하게 시행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예배의식에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참석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영적 예배’는 형식적인 예배의식에 성실하게 참석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당신의 희생적인 신앙행위가 아니라 속내나 목적, 동기를 불꽃같은 눈동자로 살피시고 계시다. 또한 일상의 삶에서 살아있는 제물이 되어 예배의 삶을 살고 있는 지를 보시고 계시다. 그래서 당신이 어떤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며, 어떤 목적과 속내로 말과 행동을 하는 지를 지켜보고 계시다. 즉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이 되어 살아간다면 예배의식에 참석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을 기쁘게 받아주신다. 그러나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말과 행동, 생각과 성품으로 살다가, 예배시간에 되면 경건한 얼굴로 교회의 의자에 앉아있다면 당신의 예배행위를 가증스럽게 여기실 게 뻔하다.
아니라고? 일상의 삶에서도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 하나님이 기쁘시게 하다가 교회의 예배의식에 참석하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증거를 들어보자. 하나님이 가장 기쁘게 여기시는 행위는 기도와 말씀으로 자신을 찾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고 항상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기도의 내용도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간구가 아니라, 하나님을 부르고 감사하고 회개하고 찬양하는 내용이다. 당신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기뻐한다면 날마다 정해진 시간과 혼자 있는 시간이 되면, 하나님을 부르고 찾으며 성령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어야 할 것이다. 또한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깨달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삶에 적용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평일에는 하나님을 까마득히 잊고 지내다가, 주일이 되면 허겁지겁 양복을 차려입고 경건한 얼굴로 교회의자에 앉아있다면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기억이나 하시겠는가?
전 세계에서 우리네 교회만큼 예배를 많이 드리는 나라도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인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증거가 없으며, 성령의 능력이나 기도의 응답도 경험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성령의 열매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교회에서는 예배의식에 참석하면 천국에 들어간다고 침을 튀기며 광고하고 있다. 이는 성경에 없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들은 교회의 좌석을 채우는 사람들의 수효와 그들이 내는 헌금만이 필요할 뿐이다. 안타깝고 두려운 일이다.
출처 :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쉰목사
첫댓글 아멘! 순간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가 되기를 간구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아멘.주여~~
아멘~
아멘..
하나님앞에서 두렵고 딸립니다. 주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오!!!주님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본질을 향하여 제대로 걸어가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아멘~하나님 사라진 교회에서 이것저것 자의적으로 만들어내니 그들만의 율법만 가득합니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