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공파 출신 예술인이 타 종파에 비해 유독 많다. 당장 헤아려 봐도 문중을 대표하는 청재 위선환(淸齋, 魏瑄煥) 시인을 비롯 野井(홍환)소장, 玉露(성유), 서예가로 德雲(황량)丈, 화가로 위용환, 위명온(女), 위진수(女), 한학자로 漣塘(창복) 께서 계시다. 예술의 특성상 감성이 풍부한 파조이신 청계공의 유전자가 이어져 내려와 후손에게 전해진 것이리라 생각된다. 언어의 마술사 청계공의 '속상왕부병서 (續傷往賦並序)라는 글은 보는 이마다 감탄을 자아내게한다.
청계공(聽溪公, 휘 덕의 德毅,1540-1613))은 1540년 태어나 1573년 사마시에 합격한다. 그해 진원朴氏 부인과 혼례를 올린다. 첫째 부인 안동金氏와 사별하여 다소 늦어진 청계공 나이 34세였고 박씨 부인은 18세였다. 어린 나이의 박씨 부인은 친정에서 잘 교육받은 현숙한 여인이었다. 청계공과 24년간 해로했는데 말년에 몸이 허약해 중풍으로 상당기간 병치레를 했다. 그때 나이 42세였다. 1597.08.16. 정유재란으로 인해 청계공은 배를 빌려 병든 아내와 함께 바다로 피난을 가다가 영광에서 아내가 타계하자 인근에 시신을 묻게 된다. 이런 슬픈 사연으로 인해 청계공은 1613년 별세하기 이전 노년쯤에 '속상왕부병서'라는 아내와의 사랑의 기쁨을 회상하고 이별의 슬픔을 주제로 한문으로 된 명문(名文)을 후손에게 남기어 오늘날 전해지게 되었다.
1573년 음력 12월 화려한 결혼식을 치른다. 허리에 찬 향주머니 속에 담은 훈계를 통해 다소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흐르는 뉘앙스는 부부의 정을 애뜻하게 그린다. 또한 행실, 재주, 자태, 언사, 태도, 집안살림, 제사 등을 통해 아내의 어진 덕성을 표현하는가하면 분가해 살림을 알뜰이하는 아내의 근면과 내조를 부각시키고 있다. 바로 이 부분이 아내에 대한 애절한 사랑을 돋보이게 한다. 글의 상당한 부분을 신혼생활의 달콤함과 아내의 현숙한 성품에 할애하고 있으나 잠시후 상황은 극반전된다. 청계공은 아내의 죽음에 대해 '속절없이 보낸 42년의 춘광(春光) 쉽게 꺾임이여 약질(弱質)에다 사풍(邪風)까지 걸리었네.'로 시작하여 배안에서 파도의 거침으로 타계하여 오장육부가 찢어지고 목이 메여 슬픈 눈물을 견디지 못하고 있다.
圓山(정철) 前씨족문화연구소장은 '속상왕부병서'에 대해 ‘한편의 장편 서정시다. 현대적 시보다 더욱 애틋하고 절절한 사랑의 언어들이 독자를 놀라게 한다. 그 탁월한 서정적인 문장과 사랑의 표현력은 저자의 문학적 소양을 짐작하게 한다.’고 극찬하고 있다.
'속상왕부병서' 문장의 단락은 구조적으로 기승전결의 완벽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글의 쓰게 된 동기와 상처의 슬픔, ◇신혼의 생활과 아내의 성품, ◇병치레와 타계 상황, ◇재회의 희망은 뒷날 황천에서 아내와 다시 만날 기약을 그리며 글을 마무리한다. 슬픔과 고통-->사랑의 기쁨-->그리움-->재회의 기대로 두번째 문장을 첫번째, 세번째와 대비시키고 마지막을 통해 재회라는 소망을 부여해 반전에 반전을 거듭된다.
또한 단어의 풍부함과 그 선택이 탁월하다.
신혼과 아내의 성품에 대한 단어는 주로 지혜롭고 단정함에 중점을 두고 있으나 나머지는 상처의 고통을 극단적인 단어를 사용하여 대비시키고 있다.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고통을 극단적으로 대비시켜 글로 표현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닌데 청계공의 문장은 단어가 풍부하고 선택 또한 탁월했다. 이는 청계공이 높은 수준의 학식을 구비했다는 단적인 증거이고 선천적으로 감성이 풍부했다고 여겨진다. 아래의 문장을 보면 서로 상반되는 감정을 잘 표현주는 백미(白眉)이다.
'장막 아래 새롭게 단장함이여 비단 이불과 화려한 저고리였네. 천도(天桃)의 봄이 밝음이여 높은 가지 매화향기 그윽하네. 신방(新房)에 기쁨 넘침이여 부부의 정(情) 화락(和樂)하였네.'라고 하다가 장면은 극반전되어 '아 슬프도다. 세상에 짝 잃은 이가 많으련만 참통(慘痛)함이 어찌 나와 같으리요. 사무친 정을 억제하지 못함이여. 장자가 토해낸 피에 물들음이여. 고편(古篇)에 화답하여 읊으노라.'고 하며 기픔과 슬픔이 순식간에 교차하고 있다.
상처의 아픔과 고통을 잊으려 아내의 체취(體臭)를 찾으려 손 떼 묻은 그릇과 옷가지를 어루만지는 청계공의 모습이 애뜻하기만 하다. 청계公의 아내를 향한 사랑의 세레나데는 아직도 우리들 심장에 용솟음치고 있다. (벽천)
'속상왕부병서 (續傷往賦並序)〈해설〉
『내가 丁酉年(1597년) 8월 16일 병을 앓은 아내(박씨)와 함께 배를 타고 바다에 있다가 이틀 뒤인 18일 배에서 아내가 숨을 거뒀으니 최상(摧傷)함이 어떠했겠는가. 운상할 형편이 되지 못해 영광경상(靈光境上)의 풀숲에 시신을 묻고 슬픈 마음을 달랠 길 없어 유몽득(劉夢得)의 상왕부를 보고 내 마음처럼 느껴져 그 사(詞)에 차운(次韻)한다』
아 슬프도다. 내가 흐느껴 우는 것이 누구를 슬퍼함인가. 그 슬픔은 이 사람이 나를 버린 슬픔이네. 인정이 점점 지워져 조금씩 잊어져가는 데 어찌하여 해를 넘겨도 더욱 슬퍼지는가. 방혼(芳魂)을 불러본들 미치지 못함이여! 눈물만이 하염없이 흘러 그칠 줄 모르네. 형해(形骸)를 생각함이여 어느 곳에 있는가. 마음은 하루에도 구천(九泉)으로 달려가나 지경(地境)이 끊어져 인적(人跡)은 드물고 바람은 슬픈 듯이 불고 풀마저 시들었네.
따라가고자 하나 갈 수 가없어 푸른 하늘(蒼天)을 원망하며 탄식하네. 흙덩이처럼 홀로 뫼 가운데 서서 지난 일을 생각하며 저문 햇빛을 서러워하네. 그의 체취(體臭)를 찾으려 손 떼 묻은 그릇과 옷가지를 어루만지네. 유허(遺墟)를 찾아 헤맸으나 기장만 무성하여 이슬도 햇볕에 마르지 않았구나. 어제 밤 꿈속의 형영(形影)이여 단지 한(恨)만 더하고 슬픔만 더하구나. 세상에 짝 잃은 이가 많으련만 참통(慘痛)함이 어찌 나와 같으리요.
신빙(新聘)한 날을 더듬어보니 지난 계유(癸酉 :1573년)년 섣달 하순이었네. 분잡(紛雜)함은 끝나고 향주머니 속에 훈계(訓戒)담아 허리에 참은 단지 남편의 뜻 거스르지 않은 것만 알았네. 장막 아래 새롭게 단장함이여 비단 이불과 화려한 저고리였네. 천도(天桃)의 봄이 밝음이여 높은 가지 매화향기 그윽하네. 신방(新房)에 기쁨 넘침이여 부부의 정(情) 화락(和樂)하였네. 술이 맑은 술동이에 가득함이여 빛이 물결처럼 떠서 움직이네.
방파즉(旁派則) 적(籍)이 초홀(貂忽)에 이르렀네. 다행이 그대가 주어 함께 감춤이여 진실로 하늘과 같으며 신(神)에 비유하리라. 그 행실을 보면 이지러짐이 없음이여 그 재주를 말하여도 또한 갖추어졌네. 시집온 당일이여 일실이 기쁨이 넘치었네. 자혜가 족히 사람에게 미침이여 감동하지 아니한 자 그 누구인가. 얼굴빛 온화하고 말을 공손하나 유약하지 아니했네.
아름다운 태도 유한(幽閒)함이여 유순한 거동 아름다웠네. 공손하게 나를 섬기고 지혜롭고 부끄럼이 많았으며 사람을 대할 때는 어리석은 듯하였네. 집안을 다스림이여 가문에서 숙자(淑姿)라 칭찬하였네. 6년 동안 제사를 받음에 정성과 공경을 다하였네. 분가해 살림한지 3년이여 매양 근고(勤苦)하였네. 부질없이 백세동실하자고 다짐함이여 어찌 사람의 일 헤아리랴.
속절없이 보낸 42년의 춘광(春光) 쉽게 꺾임이여 약질(弱質)에다 사풍(邪風)까지 걸리었네. 5개월 동안 밖에 있어 삼성(參星)과 상성(商星)처럼 멀리 떨어짐이여 한 몸인데도 노내기가 공공이처럼 하지 못하였네. 온갖 질병을 앓으면서도 다정함이여 손수 일폭을 만들어 눈물 섞여 봉해 두었네. 내가 갑작이 창문을 열고 손을 잡음이여 먼저 어디서 오느냐고 물었네.
눈물 머금고 서로 바라봄에 두 마음 하나같이 몽몽(夢夢)한데 이르렀네. 약으로 다스린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또한 어찌 적의 칼날을 만나는가. 한 배를 타고 바다에 뜸이여 물도 거의 거슬러 오고 산도 거의 다 하였네. 비록 일분의 살아남을 희망으로 구원중(舊園中)에서 같이 즐기기를 바랐었네. 천의도 어찌 그리 은혜롭지 못함이여 문득 파상(波上)에서 흉음을 만났네. 오장이 찢어지고 목이 메임이여. 슬픈 눈물 음음(淫淫)함을 견디지 못하겠네.
사무친 정을 억제하지 못함이여. 어찌 자상(自傷)하는 이 잠(箴)을 알았으리요. 아! 그대와 같이 말하였을 때 어찌 오늘이 있을 줄 알았으랴. 다른 곳 외로운 무덤이여. 천길 단애로다. 이봉(移封)치 못함을 한탄함이여. 땅도 망망하고 하늘도 침침(沉沉)하네. 슬프고 슬프도다. 백수의 홀몸이여 어떻게 세월을 보내리오. 뒷날 황천에 가서 같이함이여. 다시 이 세상의 남은 정성 맺으리다. 장자가 토해낸 피에 물들음이여. 고편(古篇)에 화답하여 읊으노라. 끝.
≪續傷往賦並序 全文≫
「余於丁酉秋八月迨旣望載病妻朴氏淨海越十八喪于舟上摧傷奈何勢難運傷草瘞於靈光境上傷懷之極見劉夢得傷往賦信乎先獲我心聊抒悲傷之意續而次韻其詞曰
噫歟欷吾誰傷兮傷斯人之我遺人情漸刷而少弛兮夫何越歲而愈悲招芳魂兮靡及淚潛兮無時歇疑形骸兮在何處祚一日而九馳境絶兮人稀風悲兮草衰欲往從兮末由籲蒼天而怨咨塊獨處兮山之中弔前迹於殘暉辱手澤於遺器兮撫芳塵於餘衣立遺墟兮求寢處黍離離兮露未晞昨宵夢裏之形影兮只以添恨而增悲人世常多喪匹兮慘痛誰似我者追惟新聘之日兮往在癸酉臘月旬下紛旣結縭以佩訓兮只知無違乎夫帷下新粧兮錦衾華襦天桃春曉兮標梅香徵歡溢新閨兮鼓琴瑟之陶陶酒滿淸樽兮動浮光之漪漪旁派則光生組綬兮先系則籍連貂笏幸與子而偕臧兮信天同而神比顧其行則靡虧兮語其才則亦具于歸當日兮一室懽如慈惠足以及人兮不致感者伊誰色溫而能厲兮語恭而非飴嘉度幽閒兮柔儀葳㽔恭事我兮多慧差對人而如癡宜家宜室兮門稱淑姿奠蘋六載兮幾盡誠敬之歸疑營家三歲兮每見勤苦之容謾擬百歲同室兮豈料人事擲空四十二春光易摧兮弱質遽罹於邪風還慮巳病之染我兮每勉我而遠通五月在外爲參商兮一體未足爲蚷蛩百端病裏之情兮手裁一幅和淚封忽余自牖而執手兮問先及兮來何從共含淚而相對兮兩心皆至於蒙蒙曾藥治未畿兮又何賊鋒之迫逢載一舟以浮海兮水幾遡兮山幾窮庶將一分之向蘇兮冀同歡舊園中何天意之未惠兮奄遭之波上凶音五內摧裂而哽胭兮不堪悲涕之淫淫情不能以自制兮豈知自傷之是葴鳴乎與子成說兮豈知有今異地孤瑩兮斷岸千尋恨未及期移封兮地茫茫兮天沉沉哀哀白首之單形兮豈獨留隙上光陰異日泉裏之則同兮更結此世之餘忱染莊生之吐血兮和古篇而悲吟」
휼륭하신 위문중 조상님의 옛발자취와 역사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청계공파 종친분들중에 휼륭한 예술인이 상당히 많으시네요.
잘보고 갑니다.
역시나 벽천이십니다.
그중에관창의육촌동생당질녀내생질등옥동출신이많네
벽천은우리보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