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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하나
풍경 소리
박일천
lsky@hanmail.net
산길을 굽이굽이 돌았다. 낯익은 풍경에 차에서 내려 경사진 길을 올라갔다. 길 양옆으로 나무가 늘어 서 있다. 나뭇잎이 떨어져 속살을 다 드러낸 나뭇가지는 자신이 누구인가 물음표를 달고 나를 바라본다. 오래된 기억 너머로 노란 물결에 이끌려 이곳에 왔던 일이 생각났다. 짙푸른 하늘 아래 햇살에 투영되어 황금빛을 천지사방에 뿜어대던 나무가 떠오른다.
길 양옆을 노랗게 물들이던 은행잎은 어디로 가고 앙상한 나뭇가지만 바람결에 파르르 떨고 있다. 겨울은 옷을 다 벗은 나무들이 자기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정직한 계절인가 보다. 나뭇잎을 떨군 나무들은 산등성이마다 나뭇가지로 수묵화를 그리고 서 있다. 군데군데 소나무만 저 홀로 푸르다. 일주문을 돌아들자 돌로 쌓은 옹달샘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갔다. 돌 틈으로 흐르는 물은 시간을 멈추고 얼음으로 엎드려 있다. 갈 곳 잃은 얼음은 높다랗게 층을 만들었다. 산사에서는 얼음도 바람의 염불 소리로 층층이 탑을 쌓는가.
한 굽이를 더 돌아들자 산사 마당이다. 아무도 없는 산정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산방 마루 댓돌에는 하얀 고무신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스님들이 거주하는 암자에 놓여 있는 고무신은 눈부시게 하얗다. 고무신을 깨끗이 씻는 것도 마음을 닦는 수행인지도 모른다. 고요를 품에 안고 산사를 한 바퀴 돌았다. 갑자기 쨍그랑 쩡쩡 소리가 쉬지 않고 들린다. 멈추지 않고 들리는 소리가 몸부림치는 사람의 절규처럼 들렸다.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가 떠오른다. 무엇에 놀란 듯 입을 벌리고 머리를 감싸 쥐는 인간의 고뇌에 찬 모습. 이 조용한 산사까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릴 줄이야. 절규는 끊이지 않고 산골짜기를 흔들었다. 산정에서는 처음 듣는 요란한 소리다. 그 소리는 한참을 내 귀를 휘젓다가 멀어졌다.
요즘 코로나로 사람이 사람을 피해 다녀야 하는 살얼음 세상에 경종을 울리는 것인가. 그래서 산사 마당에도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멀리 우크라이나를 갑자기 침공한 러시아를 규탄하는 소리일까.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단말마의 울부짖음처럼 뗑그렁 땡땡 미친 듯이 소리친다. 정각사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잠시 그쳤던 절규는 또다시 쉬지 않고 머리를 부딪치며 울부짖는다. 산사 기둥을 돌아 처마 끝을 올려다보았다. 풍경이다. 이토록 풍경소리가 굉음으로 들릴 줄이야. 산모퉁이를 휘몰아치는 거센 바람은 풍경을 미친 듯이 뒤흔든다. 떠나는 겨울이 몸부림치고 있다. 귀를 막았다. 그 소리는 풍경소리가 아니라 절규다. (...)
『에세이스트』 등단(2015)
저서 - 『경계 너머 세상을 걷다』 『달궁에 빠지다』
『바다에 물든 태양』
토지문학 대상, 해운문학상 본상, 연금문학상 금상 수상 등
대원사에서 어린왕자를 만나다
황소지
teresah29@hanmail.net
문학기행을 간지가 아득하다. 봄, 가을 일 년에 2번씩 가던 문학기행을 3년 가까이 코로나19로 갈 수 없었다. 5월 초, 2년 3개월 이상, 기승을 부리던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2만 명대로 떨어지고 실외에선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당국의 보도가 있었다. 여성문인회에서 당일로 전남 보성 대원사에 다녀오기로 해서 조금 무리한 코스지만 꼭 참석하고 싶었다.
대원사는 503년 백제 제25대 무령왕 3년 아도(阿道)화상에 의해 창건하였고 통일신라시대에는 대찰의 면모를 갖추었다. 1260년 자진 국사가 크게 중창하였고 중봉산을 천봉산으로, 죽원사를 대원사로 개칭하였다. 1766년에는 단청 불사와 더불어 지장보살상을 다시 금칠하고 시완 탱화를 조성하였다. 여러 차례의 중건 및 보수를 거쳐 천불전을 중심으로 많은 당우와 상원암, 호적암 등의 부속 암자가 있다. 1993년에는 태아 영가천도를 위하여 태안 지장보살과 6지장보살 및 108 동자상을 봉안하였다. 현재 경내에는 어린 왕자 선(禪) 문학관, 티베트 박물관과 김지장 성보박물관 등 3개의 박물관이 있다.
이곳은 천오백 년 전 백제 고찰로 광활한 터에 사찰도 3백여 개 이상이었다.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흔적을 어떻게 다 찾을 수 있겠는가? 6.25 전쟁과 여수 순천 십일구 사건으로 건물뿐 아니라 모든 것이 소실되었다. 극락전만 보전되어 전남 지방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지가 넓어 숲속엔 연못이 7개 이상 있어 정자에 불이 켜지면 물속에 정자가 비쳐 한국 사찰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밤의 사찰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주요 유형문화재는 보물 1800호 지장보살과 시왕탱화가 있고 보물 1861호로 극락전 달마도 와 백의 관음도가 있고 전남 지방문화재 제35호 자진 국사 부도가 있다. 극락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작은 문지방 위에 큰 목탁이 매달려 있어 들어가는 사람의 머리를 친다. 인간들의 무지에 깨우침과 성찰의 순간을 가지라는 뜻일 거다. 극락전 앞 넓은 뜰 오른쪽에는 수태되었다가 태아로 죽은 영가(붉은 천으로 머리를 반쯤 싸맨)를 천도하기 위해 태안 胎 安 지장보살과 6 지장보살 및 108 동자상을 봉안해 놓았다. (...)
『에세이문학 』등단(1992)
한국수필 문학진흥회 기획위원, 부산여성문학인협회 자문위원
현대수필문학상, 부산문학상, 한국여성 문학상 등 수상
수필집 『터널을 지나며』 등 8권,
수필 선집 『사랑의 동심원』 등 3권
가을 산(山)에 올라 보시라
김대원
dk9595@hanmail.net
태풍 힌남노가 전국 곳곳에 아픈 상흔을 남기고 지나갔다. 그 소란함 속에서도 한가위 명절을 보내고, 생채기가 못내 미안했던지 힐끔힐끔 뒤돌아보며 9월도 그렇게 가버렸다. 그리고 ‘시월상달’이라 불리는 10월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감회가 새롭다. 산행을 즐기는 나에게 가을 산은 그저 산행이 아닌 안식과 평안을 만끽하게 한다. 여름 내내 까맣게 태웠던 얼굴을 청량한 바람에 식히며 산을 오르노라면 지난여름 무더위와 좋고 나빴던 이런저런 일들도 단풍처럼 좋은 추억으로 물들어버린다.
그러나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이 화려하지만 한 편으론 스산함마저 느끼게 하는 가을 산은 새삼 시간의 흐름을 깨닫게 하며, 덧없는 세월에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도 한다. 하지만 그 망연함 속에서도 우리는 삶에 대한 새로운 애착을 갖게 되며 도전의 용기를 내게 한다. 산마루에 앉아 물 한잔을 마시며 저만치 산 아래 정경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새삼 자신의 존재가 지극히 왜소함을 느끼게 된다.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도 마치 장난감처럼 보이지 않는가. 어쩜 이 시간만이라도 겸손해지는 나를 의식하게 된다.
秋山樵路轉추산초로전 去去唯靑嵐거거유청람
夕鳥空林下석조공림하 紅葉落雨三홍엽낙우삼
가을 산 오솔길을 굽이굽이 돌아/ 가도 가도 푸르스름한 안개뿐
저녁 새, 빈 숲속으로 날아 내릴 제/ 붉은 단풍잎 두세 잎 떨어지나니
- 김숭겸金崇謙(조선 숙종대)의 ⟨秋景추경⟩
여기서 제아무리 붉게 물든 고운 단풍이라도 살짝 소슬蕭瑟바람 불면 속절없이 춤추듯 하늘거리며 떨어지고 말거늘…. 마지막 연에 눈길을 뗄 수가 없다. 새삼 미미微微하기 짝이 없는 내 존재를 의식하며.
그런데 요즘 집밖의 세상은 말이 많아 탈도 많다. 특히 사회 각 분야 중에서도 가장 선도적先導的 입장에 있어야 할 정치계 사람들이 가장 후진성을 보여주고 있어 안타깝다. 말로는 백성들이 잘 살 수 있게 하는 ‘민생民生’을 외치면서 정작 행동은 차라리 없는 편이 나을 법한 ‘민폐民弊’의 극치를 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서로 앞장서 다투듯 훌륭한 정책을 계발하여 국태민안國泰民安에 힘써도 모자랄 판에 여與는 집안싸움으로 날 새는 줄 모르고, 야野는 저들이 했던 일들은 잊은 채 낯 뜨거운 반대를 위한 반대로 정부의 발목을 잡기 일쑤로 국민을 짜증나게 할 뿐이다. 그들은 쉽게, 또 함부로 말들을 한다. 그리곤 아무도 책임지는 이가 없다. (...)
수필과 비평』 등단(2004)
『에세이문학』 등단(2006)
『월간 신문예』 시등단(2006)
현대수필문학상, 수필과 비평 문학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허난설헌문학상(시부문) 등, 다수 수상
수필집 『백학산의 가을』 , 『먼 산에 달이 오르네』, 『한뼘의 볕바라기』
단시집 『놀이』
함안 땅에서 만난 백이 숙제
조성현
jo9714@naver.com
한반도 남쪽을 따라 홀로 서에서 동으로 걸을 때였다.
진주 진성면을 출발하여 어석재를 넘어 함안 땅에 닿았다. 이곳은 어계(漁溪) 조려(趙旅)가 태어나고 여생을 보낸 곳이다. 그는 세조가 계유정난을 일으켜 단종을 폐하자 관직을 버리고 낙향한 생육신 중 한 사람이다. 조려는 고향에서 정자를 짓고 은거하며 계곡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이 일대는 충절의 대명사 백이(伯夷) 숙제(叔齊) 일색이다. 산과 봉우리도, 서원과 정자도 모두 그들과 연관이 깊다. 이유가 뭘까. 숙종은 단종을 복위하면서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려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킨 백이 숙제와도 같다며 다양한 은혜를 베풀었다. 조려의 고향 땅 쌍안산을 백이산으로 바꾸고, 봉우리도 백이봉, 숙제봉으로 바꾸라 명하였다. 두 봉우리가 몸은 조선에, 머리는 중국으로 떨어져 400년 넘도록 생이별하고 있으니 억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숙종 연간 영남 유림은 생육신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서산서원(西山書院)을 세웠다. 옳다커니, 숙종은 본인과 자신의 직계 이외에는 누구도 왕 노릇을 못 하게 하려는 듯하면 다른 성씨가 왕조 교체를 획책해서는 안 된다고 쐐기를 박으려는 듯, 이 서원을 국가에서 제물을 지원하는 사액서원으로 지정하였다. 조려가 기거했던 정자 자리에는 채미정(采薇亭)도 지었다. 채미는 고사리를 캔다는 뜻이다. 고사리를 캐며 부른 노래가 채미가이고, 첫 구절에 서산(西山)은 백이 숙제가 굶어 죽은 수양산이다.
중국 주나라는 상(商)나라(은(殷)나라)의 제후국 즉 신하 나라였다. 주나라 무왕은 부친의 상중에 전쟁을 일으켜 상나라를 멸하였다. 주나라 땅에서 나는 곡식을 먹지 않겠다던 이들이 백이 숙제 형제다. 이들의 주장은 무왕이 부친의 장례도 치르기 전에 전쟁을 일으켰으니 불효이고, 신하가 임금을 죽였으니 불충이라는 것이다. 효(孝)와 충(忠)은 유교의 근간이므로 공자의 나라 중국이나 국시가 성리학인 조선에서는 백이 숙제를 추앙하였지만, 속내는 다르지 않을까. 무조건 임금에 충성하라는 것이니 기존 왕조 입장에서는 백이 숙제가 더할 수 없이 필요한 도구였다. 역성(易姓) 쿠데타로 왕조를 창건한 이들은 백이 숙제 눈에 불충이지만 그런 왕조가 세월이 지나며 쿠데타 방지용으로 두 형제를 끌어들였다. 인(仁)이니 의(義)니, 성리학을 내세워 왕조와 왕위의 안위를 꾀한 것 아닌가 싶다.(...)
『에세이스트』 등단(2013)
『에세이스트』 올해의 작품상(2021),
저서- 서평 모음전 『현장에서 읽는 우리 수필』
육지 속의 섬마을 회룡포를 찾아서
김정동
kjd2163@naver.com
경북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 새벽잠을 설치고 06:00에 관광버스를 탔다. 하루 일정이므로 예천군의 이모저모를 기웃거리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구경거리가 많지만, 예천 8경 중 회룡포와 낙동강 1,300리 마지막 주막인 삼강주막에서 점심 막걸리를 맛보는 일정으로 잡았다.
예천(醴泉)의 예는 예도 예, 천은 샘물을 뜻하는 말이다. 예천의 인구는 1960년에 15만 명이었는데 지금은 5만 5천 명 정도라고 하니 여느 곳처럼 인구가 줄어드는 곳이다. 예천군의 북부에는 소백산맥이 뻗어있고, 동부에는 태백산맥의 지맥이 있다. 낙동강이 군 남부에 있는 지보면과 의성군과의 경계를 이루면서 굽이쳐 흐르고, 그 지류인 내성천이 군 중앙부를 흘러 낙동강에 합류한다. 예천군의 남쪽에 있는 용궁면에 있는 회룡포는 우리말로 하자면 물돌이 마을이다.
회룡포(回龍浦)는 명승고적 16호이며 우리나라 최고의 물돌이 마을로 육지 속의 섬마을이다. 내성천(乃城川)이 큰 산에 가로막혀 마을을 350도 휘감고 나가는 형상으로 유유히 흐르는 냇물과 넓은 백사장과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연출한다. 특히 반짝이는 하얀 모래의 백사장을 감싸 안고 돌아가는 옥빛 물결은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 준다.
회룡포는 영월의 청령포와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감입곡류하천(瞰入曲流河川)이다. 지형적 아름다움은 탐방객들의 감탄을 자아내며 호젓한 마을 둘레길을 거닐며 지친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는 곳이다. 회룡포에서 육지로 이어지는 길목은 폭이 80m, 수면에서 15m 정도의 높이로 비가 많이 와 넘치면 실제로 ‘육지 속의 섬’이 된다고 한다.
낙동강의 상류로 물의 흐름이 느리고 수량이 적은 전형적인 사행천이다. 유유히 흐르는 내성천과 넓게 펼쳐진 백사장이 나타난다. 첩첩산중 하천에 형성된 아름다운 백사장 모래톱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내성천엔 회룡포로 건너갈 수 있는 뽕뽕 다리가 두 개 있다. 회룡마을 주차장 쪽 다리가 제1 뽕뽕 다리다. 하천에 쇠기둥을 박고 그 위에 공사장에서 사용하는 구멍 뚫린 철판을 연결해 만든 다리로, 사람들이 이 다리를 건널 때 철판 구멍 사이로 물이 퐁퐁 솟아올라 예전부터 ‘퐁퐁 다리’라고 불렀는데 뽕뽕으로 잘못 전해져 굳어져 버렸다고 한다.
영주댐이 생긴 이후 하천에 수량도 줄고 모래톱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 이 좋은 자연경관이 훼손되지 않을까 안타깝다. 백사장에는 텐트를 친 몇몇 가족들이 늦여름을 즐기며 아이들이 모래놀이하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니 2009년 KBS 1박 2일의 촬영지였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일찍 수확한 벼 그루터기의 파릇파릇한 모습이 세월을 재촉하는 것 같다. 자전거를 대여하여 라이딩을 즐기는 젊은 청년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나도 한번 타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넉넉지 않다.(...)
『에세이스트』 등단(2016)
저서 『거울은 혼자 웃지 않는다』 (기고문 모음)
고독 그 즐거운 향연
이순헌
sabinalee2002@daum.net
들과 물길 사이로 하늘을 가르며 나는 빠르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한낮의 강가는 바람을 품에 안고 달리는 나를 아늑하게 보듬는다. 나는 자연과의 합일을 즐기며 상쾌한 고독을 만끽한다. 군중 속에서 외로웠던 고독은 자연 속에서 풍성해진다.
의정부에서 상암경기장까지 이어진다는 자전거 도로를 즐겨 찾게 된 것은 중랑천변이 놀랍게 변하면서 부터였다. 장안교, 군자교를 지나, 살곶이 다리를 건너 팔각정이 굽어보는 응봉산 밑을 지나, 서울숲 쪽으로 달리다가 비릿한 내음을 풍기는 강변을 옆에 끼고 한참 만에 뚝섬에 이른다.
그 길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르다. 노란 들판의 유채꽃, 붉게 타오른 채 사열해있는 칸나, 메밀꽃, 갈대숲,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오리 떼, 하늘을 나는 철새, 특히 이른 봄 응봉산은 산 전체가 개나리꽃으로 노랗게 물들어 눈부시게 황홀하다.
은둔자 ‘쥐스킨트’가 창조한 좀머씨는 길죽한 호두나무 지팡이를 들고, 들로 벌판으로 호수가로 숲으로, 이 동네서 저 동네로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엄청난 속도로 줄기차게 쏘다닌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다가 우박이 사납게 난리를 치던 날, 들판에서 차로 몇 번 앞지른 이웃이 “어서 타시라니까요 글쎄, 몸이 흠뻑 젖었잖아요. 그러다가 죽겠어요” 라고 재촉하자 좀머씨는 지팡이로 땅을 여러 번 내리치며 소리쳤다. “그러니 제발 날 그냥 놔두시오!” 그에게서 웅얼거리지 않는 분명한 어조를 들은 것은 그 말, 한 마디 뿐이었다. 실제, 세상과 소통을 차단한 작가는 ‘좀머씨 이야기’에서 자기와 닮은 기이한 인물을 그려냈다.
‘이방인’의 뫼르소는 불을 쏟는 듯한 강렬한 태양빛에 긴장하여 순간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자기의 참여 없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해 공방전을 벌이는 검사와 변호사를 타인처럼 바라본다. 사형을 요구하며 검사는 마음이 가뿐하다고 했다. “흉악한 것밖에는 읽어 볼 수 없는 이 자 앞에서 내 구형이 명랑한 적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손색이 많은 변호사에 비해 검사의 솜씨가 훨씬 뛰어난 것 같았다. 재판장이 살인의 동기를 묻자 뫼르소는 태양 때문이었다고 말했고 장내에는 웃음이 일었다.
‘날개’에서 주인공은 내객을 맞는 아내의 유곽, 곁방에서 낮 밤 없이 게으르며 아내가 외출하면 돋보기와 거울을 가지고 노는 허구적인 인물이다. 작품과 비슷한 비현실적 삶을 살았던 작가 ‘이상’은 ‘종생기’를 마지막 작품으로 요절했다.
어느 날 나는 북 콘서트에서 이 시대의 성공한 남자, 조모씨를 보았다. 그는 타고난 예술적 재능이 많아 운 좋게도 명예와 부와 여자를 섭렵했다. 그러나 이 세상을 한바탕 잘 놀고 간다며 객기를 부리는 그에게도 고독이 도사리고 있었다.(...)
문학저널』 등단(2006)
동아일보 투병 문학 가작(2002)
중랑 문학상 수상(2019)
배롱나무
김금희
kgh0003@hanmail.net
할머니 집에 가는 길에는 아련히 추억에 남아있는 한 풍경이 있다. 수원초등학교 바로 옆으로 만발한 분홍색 꽃 무리가 춤을 추듯이 산소 하나를 에워싸고 하늘거리는 모습이다. 지금도 사월의 만개한 벚꽃을 볼 때면 가끔 꿈인 듯 기억 속에 너울거리는 꽃나무를 생각한다. 배롱나무, 꽃이 너무 고와서 밤에 산소의 영혼들이 나와서 같이 즐기라고 산소 주변에 심는다는 속설이 있다.
학교 옆의 산소는 바로 나의 증조할아버지 산소였고 지금은 문중 묘원으로 이장하였다. 그게 기억은 추억일 뿐 그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추석을 맞아 내려온 동생과 상대리에 있는 가족 묘원 아버지 산소를 찾아갔다. 옛 기억을 되살려 일부러 수원학교 쪽으로 돌아서 가는데 허사다. 그 학교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그 옆 어디에도 배롱나무의 흔적은 없다. 중학생이 되면서 할머니가 제주시 우리 집으로 자주 오셔서 그곳에 갈 기회가 없었으니 열두 살 아래 동생은 까마득한 이야기이고 내게도 족히 육십 년이 다 되어가는 일이다. 몰라보게 변화된 모습만이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시켜준다. 그래도 외가인 대림리로 올라가는 길은 찾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추석날 오후, 아버지와 오빠와 남동생과 함께 외할머니가 계신 대림으로 올라갈 때 우리는 신을 벗고 풀밭을 맨발로 걸었고 하늘에는 기러기가 날아다녔다. 아직 태어나지 않았던 막냇동생은 내 말을 듣고 한 폭의 그림이라고 하였다. 예전의 길, 그때는 큰길이었다고 생각되었는데 바로 옆으로 6차선 길이 생겨 좁은 골목길이 되어버렸다. 길가에 있는 커다란 물통으로 옛길을 알아냈으니 육십여 년 이상 농업용수용으로 남아있는 물통이 고마울 뿐이다. 물통에는 그림이 곱게 그려져 있었다.
산소를 이장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오빠에게 문수동 가족 묘원의 산소도 다 함께 이장하는 건 어떠냐고 하였다. 세 살 위의 오빠는 그렇게 하긴 할 건데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했다. 아버지는, 세 살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구십을 훨씬 넘겨 장수하신 할머니, 육이오 전쟁에 참전하여 육군 중위로 전사하신 큰아버지와 폭격 맞아 돌아가신 큰어머니 산소 등을 다 돌보셨다. 아버지는 나이 들면서 오빠가 서울에서 내려올 때마다 이담에 당신이 죽으면 화장하지 말고 문수동 가족 묘원으로 같이 묻어 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했다고 하였다. 가족 묘원은 지대가 주변보다 높아서 주위가 시원스레 보이고 멀리 한림 바다도 아스라이 다 보이는 곳이다.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린 시절을 힘들게 보낸 아버지는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인지, 부모 형제들과 어울려 여기에서 편히 쉬고 싶어서였는지 모를 일이다. (...)
『에세이스트』 등단(2017)
별 헤는 밤
엄미란
didwkrkd522@daum.net
얼마 만에 보는 총총한 별들인가. 이십여 명의 문우가 길바닥에 드러누웠다. 서서는 잘 보이지 않던 별이 누워서 보니 한눈 가득 들어왔다.
어린 시절 여름밤이면 덕석 위에 누워 늦도록 별자리를 찾았다. 예나 지금이나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별은 북두칠성이다. 커다란 국자를 찾아 일곱 개의 별을 세고 저렇게 큰 국자로 무엇을 퍼 담을까 상상했다. 엄마가 가르쳐 주던 삼태성을 따라 시간을 가늠했다. 삼태성은 세 개 별이 일자로 줄을 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시간에 따라 자리를 달리했다. 전설에 따르면 흑룡이 해를 삼켜버려 세상이 어두워지자 삼 태자의 어머니는 아들들에게 해를 찾아오라 했다. 삼 형제는 해를 삼킨 흑룡과 싸워 해를 토하게 하여 찾았다. 다시는 흑룡이 해를 삼키지 못하게 삼 태자는 하늘에 올라가 해를 지키는 삼태성이 되었다고 한다.
어릴 때 내 눈에 비친 가장 신비로운 별은 은하수였다. 엄마의 별 이야기에 따르면 일 년에 겨우 하루, 칠월 칠석이면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이라고 했다. 둘이 만나는 장면은 누구도 볼 수가 없다며, 그들이 만나는 순간은 구름이 가려버린다고도 했다. 나는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모습이 궁금해 눈을 비비며 지켜보곤 했다. 끝내 만남을 보지 못했지만, 칠월칠석날 밤은 매해 기다리곤 했다. 견우와 직녀를 찾아 눈을 맞추던 하늘, 그날의 밤하늘을 수십 년을 건너뛰어 지리산에서 보고 있다. 내게 별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엄마도 저 하늘 어디쯤 빛나는 별 중의 하나일까.
저 별은 북두칠성, 저 별은 오리온, 문우들의 별자리 찾기가 시작된다. 가끔 떨어지는 별똥별에 우리는 환호한다. 모두 동심으로 돌아간 듯하다. 여기저기 들려오는 우스갯소리 속에 ㅈ과 나란히 누워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읊조린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슴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합니다. 중략.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문우들은 모두 숙소로 돌아가고, ㅈ과 둘이서 그대로 누워 지나온 일들에 관한 얘길 나누었다. 어쩌면 그녀는 하늘의 별이 될 뻔했다. 생을 포기할 만큼 그녀의 삶은 고단했다. 감히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삶을 살아온 그녀가 대견스럽다. 마치 연인처럼, 소곤소곤 늦도록 별을 세다 문우들의 호출을 받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은 밤이슬에 온통 흠뻑 젖었다. (...)
『에세이스트』 등단(2018)
슬기로운 피서 생활
박정옥
pr5975@naver.com
올여름 피서는 색다르고 시원했다. 유난히 더웠던 7, 8월 서울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사정이라 달궈진 아스팔트를 걸으며 떠나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그러다가 ‘어느 수집가의 초대’로 말미암아 나도 남부럽지 않게 더위를 잊었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싱그런 바다와 계곡을 만나고 그 속에서 사랑과 추억의 이야기도 찾아냈다. 가성비까지 좋은 미술관 바캉스다.
장안에서 유명한 고상한 수집가가 뭇사람들을 국립 박물관으로 초대했는데 그곳에 가려면 일찌감치 인터넷 예약을 해야 했다. 모든 것을 놓친 나는 다녀온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며 아쉬움을 달래는 중이었다. 간절히 소망하면 길이 열린다고 우연히 마지막 방법을 찾게 되었다. 아침 일찍 줄 서서, 조금 남아있는 당일 티켓으로 호사스러운 초대에 발을 내디뎠다.
권진규 작가의 목재 조각품 <문>이 우리를 처음 맞이하니, 마치 수집가의 저택 대문으로 들어서는 느낌이다. 이어서 뜰처럼 생긴 공간에 옹기종기 놓인 석인상들이 다시 한번 격조 높은 인사를 건넨다. ‘어서 오십시오.’
뒷벽의 작은 창 너머로 얼핏 모네의 그림이 엿보인다. 참을 수 없어 얼른 그 공간으로 건너가니 모네의 정원, 수련이 핀 호수가 펼쳐져 있다. 말년에 눈이 나빠져서 모호한 형체로 그린 <수련이 있는 연못>이다. 병을 얻어 탄생한 작품이 추상화로 가는 길목이 되었음이 신기하다. 피서(避暑) 나온 마음을 아는 듯 작가들이 감청색 바다로 안내한다. 이중섭을 따라 제주도 해안에서 <섶섬이 보이는 풍경>을 보고, 천경자를 따라 고흥에서 <만선(滿船)>을 만난다. 물고기들과 어우러진 원색의 불가사리 성게 왕 조개에 어린이처럼 마음이 부푼다. 고고한 백자 항아리의 청화 무늬도 선선하다. 뱃사공의 나룻배를 타고 강을 따라 그 유명한 소상팔경을 구경한다.
계곡으로 데려가는 분도 있다. 박래헌을 따라 등나무 아래서 <피리>를 불고, 조선 시대 <소나무 아래에서 폭포를 보다> 속 바위에 나란히 앉아 여름날의 멍을 때리다, 급기야 <불국 설경>으로 하얀 눈까지 만나고, 김환기의 화폭에서 하늘과 바다, 해와 달을 가득 담은 푸르름에 시원히 젖는다. 그 코발트 빛을 붙들고 집으로 가려는데 어느 이가 쫓아오며 옷소매를 부여잡는다. <산정도(山精圖)> 속 말 위의 여인이다. 소나무 가득한 산중(山中)에서 ‘이랴!’ 하며 채찍으로 말 모는 모습이 고구려 벽화의 기마도처럼 호쾌하다. 신선한 산의 정기(精氣)를 건네준다.
기이한 초대의 냉기(冷氣)로 7월을 지탱하다가 신문에서 김환기 미술관 개관 30주년 기념 전시회 소식을 접했다. 그의 푸른 화폭이 아른거리던 참이라 부리나케 부암동으로 가서 파란색 점화(點畵)를 다시 만났다. 푸르름의 갈증을 해소하고 나니 다른 색조의 <매화와 달항아리>에 더 끌렸다. (...)
에세이스트』 등단(2018)
저서 『나도 빌리처럼』
길 위에서 만난 목포
박영서(영순)
woosungschool@hanmail.net
초록이 짙어가는 5월에 목포 문학기행을 떠난다.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은 역시 가슴 설레는 일이다. 쉬 잠들지 못해 뒤척이다 아침을 맞는다. 오전 7시에 출발한 버스는 남해고속도로를 달린다. 차창 밖으로 바라다보이는 들판의 풍경과 이제 막 모심기를 끝낸 어린 모 포기들이 불어오는 봄바람에 살랑댄다. 한없이 정겹게 느껴지는 시골 풍경이다. 이런 풍경 또한 떠남으로써 볼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수필 교실 문우들과 함께 떠나는 목표여행이 새로운 세계로 데려다줄 것으로 기대된다. 여행의 묘미는 예측 불가능한 새로운 상황들과의 만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현재의 삶을 사랑하지만, 더 나은 세계를 꿈꾸며 여행을 떠난다. 과거로부터 현재와 미래로 끊임없이 유동하며 흐르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다.
버스 안에서 각자 자기소개 시간이다. 그때마다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온다. K 문우님은 병마로 다시는 여행을 떠날 수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가슴이 벅차오르며 설렌다고 했다. 이 순간이 기적인 것 같다고 기뻐했다. 모두가 숙연하다. 그 아픔이 전이되어 가슴을 파고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길 위에서 만나고 이유 있는 떠남과 그 길 위에서 탄생하는 수많은 이야기 속에는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마산에서 출발한 버스는 3시간여를 달려 목포에 도착한다. 생각보다 아담하고 소담한 도시이다.
먼저 유달산으로 오른다. 유달산은 기암괴석으로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목포 시내와 다도해가 한눈에 바라다보인다. 데크 길을 오르며 갓바위, 이순신 동상, 오포대와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노래비, 천자총통을 지나 30분 정도 오르니 일등바위가 정상이다. 일등바위 앞에서 단체 사진도 한 컷 찍는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목포시가지는 옛 정서를 그대로 간직한 소박한 도시라는 느낌이다. 유달산이 도심 안에 있다 보니 목포시가지와 바다 건너 작은 섬들과 저 멀리 영암 월출산이 한 폭의 그림 같다. 봄 산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로 사르락거리며 쏟아지는 초록의 봄빛이 눈부시다. 봄바람을 타고 긴 뱃고동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사방으로 펼쳐진 푸르른 목포 앞바다는 윤슬로 은빛 물결이다. 하얀 파도와 바다의 푸름에 가슴은 부드럽게 부풀었다. 이순이 넘은 이 나이에도 가슴은 주책없이 두근거린다. (...)
에세이스트』 등단(2019)
마음이 찾아가는 길
배혜금
bhk3811@naver.com
신은 나에게 다리를 주었지. 걷는 법을 DNA에 심어 두었지. 사방을 돌아다녀 보라고.
“이것이 네 것이다, 가꾸어 즐겨라.” 걸었지. 다리에 힘이 솟고 팔은 앞뒤로 흔들렸어. 씩씩하게 걸었지.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보았어. 공중을 가로지르는 검은 물체, 구름이 일렁이는 곳을 날아다니는 그들의 이름은 새였어. 자유로워 보였어. 부럽던 순간 깨달았지. 날개와 다리는 같은 의미라는 것을. 다리를 움직여 걷는 것과 날개를 파닥여 나는 것은 같은 거였어. 신은 각자에게 필요한 것만 주었던 거야.
갖고 싶은 게 많았던 적 있었지. 덤을 원했던 거야. 인간에게 날개를, 새에게 튼튼한 다리를 덤으로 주었다면? 그건 재앙인 게지. 날 수 없고 걸을 수 없는 것은 끔찍한 악몽이 되는 거지. 덤은 잉여야. 잉여는 자유로움을 방해해. 땅의 생명에게 다리를! 하늘의 생명에게 날개를! 역시 신의 한 수였어. 나는 걸을 수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네이버 지도에서 ‘국제갤러리’를 입력하고, 번거로운 환승 안 하는 교통편을 선택하니 하차할 곳은 ‘조계사’다. 조계사에서 국제갤러리까지 걸어서 17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니 멀지 않은 거리다.
한낮의 햇살이 밤송이처럼 피부를 따끔거리게 하겠지만 양산을 펴들면 나를 향한 빛의 관심쯤은 가릴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유영국 작가의 작품 전시회 마지막 날이다. 하마터면 관람 기회를 놓칠 뻔했다. 작년, ‘예술의 전당’에서 피카소 작품 전시회 관람 기회를 놓친 일이 생각나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당시, 전시회가 끝난 후 전시 담당자에게 전화로 부탁해서 2주일 후에야 간신히 도록을 구할 수 있었지만, 작품을 직접 볼 기회를 놓친 안타까움은 지금도 사그라지지 않은 상태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중섭 작가의 작품을 관람하고 ‘국제미술관’에서 유영국 화백의 작품을 관람한 후 북촌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만 보 채우는 것이 오늘의 일정이다. 수많은 인파와 상황 속으로 가는 외출. 미래를 알지 못하는 존재가 인간인 ‘나’라는 사실에 내 의지를 내려놓고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내가 외출할 때 갖는 자유로움은 내 앞일을 내가 ‘모른다’에 기인한다. 마음이 찾아가는 길 따라 나는 발걸음을 옮긴다.
조계사에 내려 4분 정도 걸으면 인사동이다. 3호선을 타고 한 장소로만 드나들다가 다른 방향에서 가니 인사동 옆구리를 가로지르는 느낌이다. 계획대로 ‘국립현대미술관’에 들러 현장 발매권을 신청했다. 예약 관람 시간은 6시 30분이다. 유영국 전시 관람과 이중섭 전시 관람 사이, 시간 간극에 시원한 여백이 생긴다. 이 여백에 어떤 일들이 채워지려나. 살짝 예측해 보지만 여전히 알 수 없다. (...)
『에세이스트』 등단(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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