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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현종과 경신대기근
고재수/6903/포병8기서울중랑 추천 0 조회 53 15.05.16 09:2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현종과 경신대기근

태정태세문단세....
어릴 적 조선 왕들의 순서를 이런 식으로 외웠다.
그런데 잘 외우다가 존재감이 없어 이름이 막히는 왕들이 있다.

세조 다음 예종, 중종 다음 인종 등은 역사를 조금 안다는 사람도 잘 들어 보지 못한 이름 일 것이다.

 이 왕들은 재위기간이 2년이 채 안 될 정도로 짧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재위기간이 15년이나 되는 데도 우리 기억 속에 없는 왕이 있으니 그가 현종이다.
현종은 효종의 큰 아들이다.

현종 당시 큰 전쟁이 없어서 인지 모르지만 현종은 역사 책이나 드라마 상에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현종이 역사 책에 잠깐 나오는 것은 예송논쟁 때문이다.

현종 때 예송논쟁은 효종이 죽자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가 상복을 3년 입을 것인가 1년 입을 것인가를 두고

서인과 남인이 정권을 바꿔 가면서 싸운 것을 말한다.

정말 조선의 사대부들은 지지리 할 일도 없었다.
왕이지만 아들이 죽어 계모가 상복 입는 것 가지고
십 년을 넘게 정권을 바꿔 가면서까지 참 치열하게도 싸웠다.

물론 그 속내에는 왕의 정통성 문제가 걸려 있었다. 그러나 거기 까지 깊이 들어가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니 그냥 넘어간다.

현종은 나름 북방도 개척하고 대동법도 호남지역까지 실시하려는 등 치적이 꽤 있다.
그리고 상당히 어진 성품에 어진 정치를 했다고 알려져있다.

그런데도 이토록 존재감이 없으니....

그런데 우리가 거의 모르고 지나 가는 데,
사실은 현종 때 전쟁보다 더 큰 엄청난 사건이 있었다.

바로 경신대기근이다.

경신대기근( 庚辛大飢饉)은 현종 실록에도 나오지만 대부분은 잘 모른다.

아래는 실록에 나오는 당시 상소문이다.

"서울 내외에 굶어 죽은 시체가 도로에 이어지고 있습니다. 혹은 부모 처자가 서로 베고 깔고 함께 죽은 경우도

있고, 혹은 어미는 이미 죽고 아이가 그 곁에서 엎드려 그 젖을 만지며 빨다가 곧이어 따라 죽기도 합니다. 울고

 불고 신음하는 소리에 지나가는 자도 흐느낍니다. 더욱이 전염병은 날로 치솟아 열풍이 불꽃을 일으키는 듯한 기세입니다.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드문데, 걸렸다 하면 곧 성 밖에서 죽습니다. 사방이 염병이라 온통 움막을 지어 끝없이 펼쳐지니

, 참혹한 광경과 놀라운 심정을 이루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서울 밖의 죽어가는 참상은 이미 전쟁에 비길 바가 아닙니다.

더군다나 보리와 밀을 이미 그르쳤고 수수와 좁쌀도 다시 벌레가 먹었으니, 이로부터 겨우 살아남은

 백성들은 생기가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ㅡ《현종개수실록》 현종 12년 6월 4일, 대사헌 장선징의 상소 중에서.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어떤 특정한 시기에 우리 조상들은 참 지긋지긋한 고통 속에 살아 왔다는걸 느낀다. 바로

선조, 광해군, 인조, 효종, 현종 때를 살다간 16세기 말과 17세기의 우리 조상들이 그랬다.

최근에는 국제시장이라는 영화에서 보듯이 일제, 해방, 6.25등을 겪은 우리 아버지 세대도 그렇다.

가령 16세기 말 어려서 임진왜란(1592 ~ 1598)을 겪고 겨우 살아 남았다해도 30년이 지나 정묘호란(1627)을

겪고 여기서도 무사했다면 또 몇 년 후 병자호란(1636년)을 겪게된다.
그러나 이건 전쟁일뿐이었다.
그 외에도 각종 재난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 중에 조선 최악의 재난 중 하나로 기록된 것이 경신대기근이다.

병자호란이 끝나고 30년이 지난 1670-1671년
두 해에 걸쳐서 조선 최악의 대기근이 터진 것이다.

당시 조선의 인구는 공식적으로는 516만 명(실제로는 두 배쯤)인데 굶주림과 돌림병으로 죽은

 이가 최대 100만명이라는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때 보다 더 많이 죽었다.
얼마나 참혹했는지 서울의 양반은 물론 사대부들까지 굶어죽고 돌림병에 걸려 죽었다고 한다.

그 당시 사람을 먹는 식인은 당연했고 노인들은 임진왜란 이나 병자호란 때도 이것보다는 나았다고 할 정도였다.

그때는 조선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북반구에 소빙하기가 왔던 시기로 기온이 많이 떨어지고 겨울에는 엄청 추웠었다.

조선에는 1670-1671년 두 해에 걸친 경신대기근 때가 절정이었는데 한 여름에도 우박과 서리가 내렸고,

홍수와 메뚜기 떼의 습격이 연이어져서 곡식과 농작물들이 다 초토화 되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백성을 구휼해야 할 우리 자랑스러운 조선의 사대부 어르신들은 현종이 죽자 오래도 살면서

 본의 아니게 괜한 입살에 오르 내렸던 자의대비가 손주가 죽은 할머니로서 상복을 얼마나 입을 것인가 문제로 또 피 터지게 싸운다.

바로 2차 예송논쟁이다.

어린 나이 였지만 숙종이 당차게 정권을 바꾸면서 예송논쟁을 정리는 하였지만

참으로 자랑스러운 우리 조선 사대부 어르신들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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