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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8일 오늘의 역사
2022년 개기월식 후 천왕성 엄폐현상
오늘 밤 지구 그림자에 가려진 달이 다시 천왕성을 가리는 신비한 우주쇼가 펼쳐졌다. 이런 현상을 국내에서 볼 수 있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오후 7시 16분 12초 달이 지구의 본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지는 개기월식이 시작되고 이후 46분 이상 월식이 진행되며 최장 오후 8시 41분까지 지속되었다.
개기월식 시작인 오후 7시 16분부터 8시 41분까지 약 85분 동안은 지구 대기를 통과한 태양 빛 때문에 평소보다 어둡고 붉은 ‘블러드 문’을 볼 수 있다. 달이 완전히 가려지는 개기월식 전후로는 달이 지구 본그림자에 부분적으로 가려지는 부분식이 관측되었다.
특히 이번 개기월식 때는 ‘천왕성 엄폐’ 현상이 동시에 나타났다. 달과 같이 지구와 가까이 있는 천체의 뒷면에 멀리 있는 천체가 위치해 가려져 안 보이는 현상을 ‘엄폐’라고 한다. 개기월식이 진행되는 오후 8시 23분경 천왕성이 달 뒤로 숨었다가 오후 9시 26분쯤 다시 나타났다. 개기월식 현상은 1000년에 한번 일어날까말까한 현상이며 아시아와 호주, 아메리카, 태평양에서 관측할 수 있지만 천왕성 엄폐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건 동아시아가 유일하다.
2020년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미대통령 당선.
2014년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장 방북, 북한억류 미국인 케네스 배와 매튜 토드 밀러 풀려남
2013년 순간 풍속 사상최고(379km)인 초대형 태풍 하이옌 필리핀 강타,
36개주 428만명 태풍 피해 사망 6천여 명 실종 2천여 명 가옥 59만여 채 완전붕괴 피해액 8억2천600만$(8천700억원) 추정
2009년 친일인명사전 발간
2009년 11월 8일 오후 2시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는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를 열고 총 3권, 3천 페이지에 달하는 인명사전을 공개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하는 ‘친일문제연구총서’ 중 인명편인 이 사전은 일제 식민통치와 전쟁에 협력한 인물 4천389명의 주요 친일 행각과 해방 이후 행적 등을 인물, 이름, 가나다 순으로 소개한다. 이는 지난해 발표한 최종 명단 4776명에서 387명이 줄어든 숫자이다.
수록된 인물 중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장면 전 국무총리, 김성수 전 부통령, 이종욱 전 의원, 무용가 최승희, 음악가 안익태, 홍난파, 언론인 장지연, 문인 김동인, 서정주, 현상윤 고려대 초대 총장 등 기존 발표된 유력 인사들이 모두 포함됐다.
제외된 387명 중 신현확(1920∼2007) 전 국무총리와 최근우(1897∼1961) 전 사회당 창당준비위원장, 이동훈 소위 등 3명은 지난해 발표된 ‘친일 명단’에 포함됐으나 유족들의 이의 신청 등이 받아들여져 제외됐으며, 나머지 보류된 384명은 정보가 소략하거나 확중이 어려워 추가조사를 벌여 향후 보유편 발간 때 반영키로 했다.
1994년 출간계획이 발표된 친일인명사전은 2001년 편찬위원회가 출범해 8년간 3천여종의 문헌 자료를 통해 250만명의 인물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수록대상을 선정했다.
수록 명단에는 민족 반역자 전부, 일정 직위 이상의 부일 협력자, 대중적 영향력이 큰 교육이나 언론, 종교계 종사자와 지식인 등이 역사적·사실적 검증을 통해 선별작업을 거쳐 수록됐다.
편찬에는 150여명의 교수와 학자 등이 편찬위원으로 참여했고 집필위원으로 180여명, 문헌자료 담당 연구자도 80여명이 투입됐다.
이날 박정희바로알리기국민모임 등 보수단체 회원 30여명은 친일인명사전이 객관성과 형평성이 부족하다며 숙명아트센터 앞에서 '친일인명사전 발간 반대 및 민족문제연구소 해체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으나 연구소측이 장소를 옮기면서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2008년 러시아 핵잠수함, 동해상에서 사고
2008년 11월 8일 동해상에서 시험 항해를 하던 러시아 태평양함대 소속 핵추진잠수함이 화재 진압장치의 오작동으로 유출된 프레온가스 중독으로 사망자 20명을 포함해 41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와 관련, 러시아 해군의 대변인 이고리 디갈로(Dygalo)대변인은 "설비의 오작동으로 인한 사고에도 불구하고 원자로는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었고 방사능 노출 정도도 일상적인 수준이었다"고 말했지만 사고 잠수함의 종류는 밝히지 않았다.
한편, 러시아 관영 리아노보스티통신(RIA)은 사고 잠수함이 지난 2008년 9월에 건조된 8140t급 'K-152 네르파(Nerpa·바다표범이란 뜻)'호라고 보도했다. 이 잠수함은 1190MW급 원자로 1개로 터빈기관을 구동시켜 추진하며 수면 아래 450m까지 잠수가 가능하다.
이번 사고는 지난 2000년 8월 러시아의 핵추진잠수함 'K-141 쿠르스크(Kursk)'호가 노르웨이 북부 바렌츠해(海)에서 침몰해 118명이 사망한 이후 최악의 규모다.
2007년 무안 국제공항 개항
2005년 최준희씨 에디슨市서 한인최초 美 직선시장 당선
2005년 제12차 남북이산가족상봉(~10일)
제12차 남북이산가족상봉(~10일) 북한측이 남한 기자들의 취재를 방해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9일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취재 중인 남한측 기자를 북한 안내원이 제지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8일 오후 금강산에서 열린 제12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서 남측 99가족이 북측 가족 256명을 만났다.
이날 상봉에서 김종심(74)씨는 1987년 서해 백령도 부근에서 동진호를 타고 고기잡이를 하다 북으로 끌려간 아들 정일남(50)씨를 18년 만에 만났다. 김씨는 상봉 순간 “우리 아들… 우리 아들”이라며 정씨를 부둥켜안은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으며, 정씨는 “변하지 않으셨네”라며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북에서 결혼한 정씨는 부인 이금옥(44)씨, 아들, 딸과 함께 나왔다.
담담한 모습을 보인 정씨는 어머니 김씨가 “네 아버지가 5년 전 폐암으로 돌아가실 때 대문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네 이름을 부르다 돌아가셨다”고 하자, 눈물을 흘렸다.
며느리 이씨는 “통일이 되면 큰아들집인 저희가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했고, 김씨는 “그날까지 꼭 살겠다”고 말했다.
납북된 동진호 선원이 남측 가족을 만난 것은 2000년 11월 2차 상봉 당시 강희근(54)씨, 2003년 9월 8차 상봉 때 김상섭(54)씨, 지난해 3월 9차 상봉 양용식(46)씨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다.
그러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아버지 송환을 호소하는 공개 편지를 보낸 최우영(35)씨의 아버지 최종석(60)씨 등 다른 동진호 납북자 7~8명은 생사확인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취재 중인 남측 기자들의 기사를 문제 삼아 현장에서 취재활동을 저지하고 취재수첩을 빼앗기도 했다.
2002년 유엔 안보리, 이라크 무기사찰 결의안 만장일치로 채택
2001년 김대중 대통령, 민주당 총재직 사퇴 선언
김대중 대통령이 2001년 11월 8일 10·25 재·보선 패배 이후의 민주당 내분 사태와 관련, 경제와 남북관계 등 국정에 전념하기 위해 민주당 총재직을 사퇴하고 평당원으로 백의종군하겠다고 선언했다. 김 대통령의 당 총재직 사퇴 선언은 대선후보 경선을 둘러싼 민주당 내 권력투쟁과 함께 여야관계, 정부 대 정치권 관계에도 큰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
김 대통령은 이날 오후 민주당 당무회의에 친서를 보내 이같이 사퇴 의사를 밝히고, 사퇴서를 제출한 12명의 최고위원 중 총재의 권한을 대행할 한광옥(韓光玉) 대표를 제외한 11명의 최고위원의 사표를 수리했다. 김 대통령은 이들 11명의 최고위원을 당 상임고문으로 위촉했다. 이와 함께 당직자들의 사표도 전원 수리하고, 내년 초에 있을 전당대회를 포함한 정치일정과 중요 당무를 처리할 비상기구를 과도체제로 구성토록 했다.
여론은 김 대통령이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뒤 총재직을 포기했던 전력(前歷)과 1992년 대선 패배 후 정계은퇴를 선언했다가 다시 복귀했던 전례를 환기시키며 총재직 사퇴의 진의(眞意)를 반신반의했지만, 정파적 입장을 벗어나 국정에 임할 경우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했다.
2000년 일본 적군파 최고 간부 시게노부 후사코 체포
과격 무장테러단체인 일본 적군파의 최고 간부 시게노부 후사코(55·여)가 2000년 11월 8일 오사카의 한 호텔에서 나오다 경찰에 체포됐다. 중국 베이징에 거점을 마련하고 일본을 드나들던 남장차림의 시게노부는 일본 적군파 지원자들의 집회가 열린다는 정보를 입수한 경찰의 불심 검문에 걸렸다.
1975년 네덜란드 주재 프랑스 대사관 점거 사건으로 지명수배된 지 25년 만이다. 학생 운동가 출신으로 적군파의 중앙위원 겸 조직국 부국장이었던 시게노부는 26세인 1971년 세계 혁명의 국제 거점을 구축한다며 레바논으로 거처를 옮긴 후 일본 적군파 결성을 주도했다.
1972년 이스라엘 공항 습격사건을 비롯, 1988년 이탈리아내 폭탄사건 등 일본 적군에 의해 자행된 각종 테러의 배후인물로 암약, 국제 테러리스트들의 여제(女帝)로 불렸다. 테러의 피해자는 사망. 부상자를 합쳐 약 1백30명이나 된다. 시게노부가 이끌던 일본 적군은 또 일본에서 두차례나 인질 사건을 일으켜 일본에 수감 중이던 과격파 요원 11명을 해외로 무사히 빼돌리기도 했다. 경찰 조사 결과 시게노부는 여권을 위조해 지난달 입국, 일본 적군 지원단체가 마련해준 아파트에서 조직 재건을 꾀한 것으로 밝혀졌다.
시게노부는 2001년 `사과나무 밑에서 너를 낳으려 결심했다`는 옥중수기를 써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팔레스타인 남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27)에게 일본 국적을 얻어주려는 어머니의 간절한 탄원서를 모은 내용이다.
2000년 대우자동차 최종 부도처리, 공장 가동 멈춤
1998년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 도쿄영화제서 금상
이광모 감독의 영화 ‘아름다운 시절’이 1998년 11월 8일 폐막된 제11회 도쿄국제영화제에서 금상을 받았다. 금상은 데뷔작을 포함해 3편 이내 작품을 발표한 감독을 대상으로 하며 이광모 감독은 1천만엔(1억1천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최고영화인 그랑프리에는 스페인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오픈 유어 아이즈’에 돌아갔다.
영화 ‘아름다운 시절’은 전형적인 작가주의 영화다. 이 감독은 작가적 고집과 의지를 감탄스럽게 관철해 화면에 구현해 놓았다. 영화는 한국전쟁의 휴전을 전후한 시골 마을 이야기를 어린 소년 시선으로 풀어갔다.
이광모는 카메라를 고정한 채 롱테이크(길게 찍기)와 롱샷(멀리서 잡기)으로 일관했다. 한 컷 평균 길이가 1분에 가깝고 등장인물 얼굴은 잘 식별되지 않아 답답할 지경이다. 이광모는 장면 하나하나를 구도 완벽한 풍경화처럼 다듬어 놓았다.
1997년 세계 최대 중국 삼협댐 물막이 공사 완성
세계 최대인 중국 삼협댐 공사중 물막이 공사가 1997년 11월 8일 완성됐다. 물막이 공사는 강 양쪽에서 토사를 부으며 전진, 강 중심에서 맞닿게 하는 작업이다.
중국정부는 물막이 공사완성 후 바로 시작할 댐 공사비로 2천억달러를 예상했다. 중국인들이 장강으로 부르는 이 양자강 물을 가로막는 역사적 장면은 중국 중앙 CCTV를 타고 12억 중국인들에게 중계됐다. 삼협댐 건설은 ‘물속의 만리장성 공사’라고 불릴만한 대역사였다.
1919년 손문이 처음으로 안을 냈고, 1956년 모택동, 1958년 주은래, 1980년 등소평 등이 의욕을 보였으며, 1992년 4월 중국정부의 결정으로 현실화됐다. 2009년 댐이 완성되면 높이 185m, 길이 2331m 총출력 1820KW, 저수량 393억입방미터로 저수량, 발전용량 모두 세계최대가 된다. 또 양쯔강 중상류 지역에는 평균 너비 1.1Km 길이 6백Km에 달하는 거대한 인공호수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삼협댐은 당시 기후-환경변화와 수질의 변화, 토사침적 등의 문제로 국내외 환경전문가들의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1997년 북송 일본인 처 고향방문단 제1진 15명 도쿄 도착
1995년 한국,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 이사국에 피선
1992년 노태우 대통령-미야자와 일본총리 정상회담(일본)
1991년 노태우 대통령, 비핵화선언 발표
1990년 1만여명의 안면도 주민, 핵폐기물 저장시설 설치 반대시위
1990년 11월 8일 안면도에 핵폐기장 건설을 반대하는 안면도 주민 1만여명이 이날 오전부터 밤 늦게까지 경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안면지서와 예비군 무기고가 불에 타면서 폭음이 진동하고 내뿜는 연기로 안면도 일대 상공은 한때 화염에 휩싸였고 곳곳에서 충돌이 벌어졌다.
주민과 학생 등 1만여명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안면읍 버스터미널 광장에 모이기 시작, 오전 11시쯤 핵처리장 설치반대 궐기대회를 가졌으며, 안면도내 16개 초중고 학생 3천7백여명 중 3천여명이 등교를 하지 않고 집회에 참석했다. 일부 주민은 읍사무소와 파출소를 점거하는가 하면 시위상황을 살피러 현장에 있던 군청직원 5명을 납치하기도 했다. 경찰은 시위가 과격해지자 1천1백여명의 경찰을 투입, 시위대들이 점거하고 있던 읍사무소를 되찾았다.
경찰이 투입되자 시위대는 도로에 설치했던 드럼통과 폐타이어 등 바리케이드에 불을 질러 읍 전체가 폭발음과 연기 등으로 30여분간 검은 연기에 휩싸이기도 했다. 결국 안면도에 핵폐기장을 설치하려던 계획은 무산되었고 과기처 장관과 충남도경국장이 경질됐다.
1990년 새민방 명칭 `서울방송`으로 결정
1984년 미국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 제14차 우주여행 시작
1981년 프렘 태국수상 내한
1980년 정부, 경제활성화대책 발표. 금리인하
1974년 경주 98호분에서 순금제 그릇 출토
1973년 영동대교 준공
영동대교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청담동을 잇는 한강에 놓인 교량이다.
길이 1,065m. 너비 25m(6차선).이며 1970년 8월13일에 착공, 1973년 11월8일에 준공하였다.
영동대교는 강남구 청담동·삼성동 일원의 개발을 촉진하는 데 크게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건설된 한남대교와 잠실대교에 집중되는 교통량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1984.11.7 한강상의 교량을 모두 대교로 통일함에 따라 영동교에서 영동대교로 조정되었다.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 가조인
1970년 인천 율도 무장공비사건
1965년 미국의 작곡가 에드가 바레즈 사망
1965년 영국, 사형제 폐지
영국에서 사형제도가 1965년 11월 8일 폐지됐다. 아이슬란드나 모나코같은 소국을 제외하면 유럽의 주요 국가로서는 처음이었다.
베네수엘라나 코스타리카 등 남미 국가들이 이미 19세기에 사형제도를 없앴다는 점을 감안하면 민주주의 발상지인 영국에서 이제서야 이 제도를 없앤 것은 다소 때늦은 감이 들기까지 했다. 그 뒤 유럽에서는 대체로 좌파 정부들의 주도로 사형제도가 차례로 폐지돼 오늘날 대부분의 유럽국가는 사형제도가 자취를 감추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89년 5월 사형폐지운동협의회가 결성된 이래 법조계와 종교계를 중심으로 사형제도 폐지운동이 펼쳐지고 있지만, 아직은 사형제도를 유지하자는 의견이 더 우세해 존속되고 있다. 노태우 정부시절엔 39명이, 김영삼 정부 시절엔 57명이 사형에 처해졌다.
1961년 서독수상에 아데나워 당선
1960년 케네디 미대통령 당선
1950년 세계 첫 제트전투기 교전
1950년 가을. 6․25전쟁은 유엔 연합군의 참전에 이어 중공군의 도하(渡河)로 혼전일로였다.
연합군으로선 중국의 인해전술도 난감했지만 하늘도 골치였다.
중국이 소련제 제트전투기 미그(MIG)-15 카드를 내놓은 탓이다.
전쟁은 양보가 없다. 상대방의 약점을 물고 늘어진다. 중국은 연합군의 화력을 병력으로 눌렀다.
연합군은 지상군의 부족을 B-29의 폭격으로 메웠다.
그러자 폭격기 킬러로 통하는 미그-15가 전장에 나섰다.
눈에는 눈. 미그기와 쌕쌕이 F-80의 정면승부만이 남았다.
11월 8일 신의주 인근 상공. 미 공군은 폭격기 B-29를 엄호하기 위해 F-80 4대를 띄운다.
이를 저지하려 미그-15 6대가 출격했다. 세계 최초로 벌어진 제트전투기 간의 교전이자 미국과 소련이 자랑하는 최첨단 무기의 충돌이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전투는 싱거웠다.
미그기는 수적 우위를 살리지 못하고 격추(1대)까지 당하는 졸전 끝에 도망쳤다.
전투기의 성능보다는 신참으로 구성된 중국 조종사의 실력이 모자랐다.
분노한 건 중국이 아니라 소련이었다.
군사과학만큼은 미국보다 낫다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중국 공군의 재정비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소련군 조종사들이 전투에 참가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미그기는 점차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지상마저 어려워지자 미국은 승부수를 던진다.
시험 운용하던 신예 전투기 F-86 세이버를 긴급 투입했다.
당시 공중전이 도그 파이팅(근접전) 위주였던 상황에서 최대 1.3km 밖에서 공격이 가능한 세이버는 한반도 제공권을 연합군의 품에 돌려준 명검이었다.
제트전투기의 격돌은 시작일 뿐이다.
이후 미국과 소련은 수많은 곳에서 부딪쳤다.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로 시작된 스타워즈는 차라리 건강한 경쟁이었다.
아프리카와 중동, 중남미 등에서 끊임없이 대리전을 벌였다.
냉전의 주역인 미국과 소련. 그들은 공식적으로는 한번도 전쟁을 벌인 적이 없다.
20세기 최강의 강대국들은 한 손엔 칼을, 다른 쪽 손엔 서로가 쥐여준 면죄부를 들고 있었다.
1949년 한국음악가협회 발족
1944년 독일, 신무기 V-2호 발명
1942년 미-영 연합군 북아프리카 상륙작전
1936년 프랑코, 스페인 총통 취임
1932년 미국 대통령선거. 루스벨트 제32대 대통령에 당선 확정(10일)
1923년 히틀러 뮌헨에서 무장봉기 실패, 이틀 후 체포
히틀러가 1923년 11월 8일 나치스당 소속 SA 대원 300여명을 동원, 뮌헨교외의 맥주홀 뷔르거브로이켈러에 난입, 천장을 향해 총을 쏘며 카를 바이에른주 통감을 납치했다. 카를이 바이에른 분리주의자로 전국지배를 지향하는 히틀러와 입장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당시 맥주홀에서는 뮌헨경제단체 초청으로 카를이 대중연설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카를은 감시소홀을 틈타 도주했고 히틀러는 이틀후 카를의 반격으로 체포돼 법정에 넘겨졌지만, 재판기간을 오히려 자신의 입지를 확대하는 연설기회로 활용했다.
이른바 ‘뮌헨폭동’ ‘맥주홀 폭동’으로 불리는 이 사건으로 체포된 히틀러는 옥중에서 자신의 궤변을 담은 ‘나의 투쟁’을 집필했다 .1924년 4월 반역죄로 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그해 12월 20일 석방됐다. 석방되자마자 히틀러는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1915년 원산 상수도 준공
1912년 대한인국민회, 샌프란시스코에 중앙총회 설립
1905년 변호사법 반포(최초의 변호사제도)
1900년 미국 여류소설가 마거릿 미첼 출생
1895년 뢴트겐, X-선 발견
빌헬름 콘라드 뢴트겐이 1895년 X-선을 발견했다!
대부분의 과학사가들은 독일의 빌헬름 콘라드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한 1895년을 20세기 과학사의 기점으로 삼는다.
그만큼 X-선은 현대물리학과 진단의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X-선 발견 역시 우연이었다.
1895년 11월 8일 저녁, 뢴트겐은 놀라운 현상을 목격한다.
고전압이 걸린 고진공관을 이용해 작업을 하고 있던 뢴트겐이 관에 전류를 흘려보내자 음극선이 금속 벽에 빠른 속도로 충돌하면서 투과력이 강한 알수 없는 광선이 발생하고, 이 광선이 고진공관을 둘러싼 검은 종이를 뚫고 나와 책상 위에 있던 백금시안화바륨 종이를 감광시킨 것이다.
미지의 빛이라는 뜻에서 이 새로운 광선을 X-선이라 명명한 뢴트겐은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실험을 계속했다.
12월 22일, 자신의 처 베르타의 왼손을 감광판 위에 놓고 실험한 결과 살아있는 사람의 뼈가 사진으로 찍혀 나왔다.
사진은 이듬해 학회지에 제출한 그의 논문 새로운 광선에 대해서와 함께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주었지만 1901년 첫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할 때까지 사회의 도덕성에 반한다는 이유로 그는 대중에게 시달림을 받아야 했다.
한 신문은 여성의 속옷 밑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광선을 발견한 뢴트겐을 사악한 기계장치와 함께 땅속에 파묻어야 한다.며 비난하기도 했다.
발명가 에디슨의 조수는 X-선의 효능을 검증해보기 위해 자신의 신체에 X-선을 노출시키는 실험을 하다 죽기도 했다.
1884년 독일 심리학자 H. 로르샤하 출생
1847년 산부인과 의사 제임스 심프슨의 세계최초의 무통분만 시행
1674년 영국 시인 존 밀턴 사망
장편 서사시 `실낙원`의 작가 존 밀턴이 1674년 11월 8일 사망했다. 66세였다. 영어로 작품을 쓴 위대한 작가를 꼽으라면 세익스피어 다음 사람으로 기록될 정도로 그의 시들은 뛰어났다.
밀턴의 삶을 지탱한 두개의 지주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청교도주의와 르네상스적 교육을 통해 얻은 인문주의였다. 크롬웰이 이끈 청교도 혁명 속에서 밀턴의 종교적 신념과 인문주의적 교양은 서로 합쳐져 역사를 움직이는 에너지가 되었다. 열두 권으로 이뤄진 `실낙원`은 구약성서를 소재로 삼아 아담과 하와의 타락과 낙원추방을 묘사하고 있다.
밀턴은 젊은 시절부터 장편 서사시를 쓸 계획이 있었지만 청교도 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틈을 내지 못하다가, 만년에야 이 웅대한 시를 쓰게 되었다. 밀턴은 죽기 3년 전에 인간의 마음속에 낙원이 회복되는 과정을 묘사한 서사시 `봄낙원`을 출간해 `실락원`과 짝을 맞추었다.
1656년 영국의 천문학자 핼리 출생
1572(조선 중종 22) 성리학자 기대승 사망
1226년 카페 왕조 출신 프랑스의 왕 루이8세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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