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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신외숙
○○ 역사(驛舍)를 나서자 직사각형의 구획된 읍내 거리가 보였다.
단층짜리 상가와 음식점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었다. 커피숍과 철물점 너머로 전통시장도 보였다. 자세히 보니 읍내가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시외버스가 한적한 도로를 천천히 달리면서 이색적인 분위기를 더하고 있었다.
이곳은 군 주둔 지역이라 그런지 이상하리만치 분위기가 썰렁하고 황량하다. 근처에 캠핑장이 있는지 등산복 차림의 남녀들도 많이 보인다. 어쩐지 세월이 비껴간 모습이다. 군 주둔지역은 확실히 발전이 덜 돼 있다. 고즈넉하고 침체(沈滯)된 분위기에 행인들의 발걸음도 뜸하다.
건널목엔 신호등도 없고 주택도 퇴락한 연립주택이 더 많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니 이따금씩 폐가도 눈에 띠고 후미진 농촌 지역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한쪽에 연탄재가 딩굴고 어린이 놀이터에는 적막감만 감돌고 있다. 그럼에도 낯선 감정과 함께 낭만이 흐른다.
흩날리는 눈발과 어디선가 들리는 기타 소리에 마음이 설렌다. 이것이 바로 겨울 낭만이다. 세상은 진영논리로 피박살이 나도 계절은 항상 낭만을 선물해 준다. 눈발은 점차 세지더니 어느새 눈폭탄이 되어 산야를 온통 흰눈으로 색칠하고 있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쏟아부으면서 발걸음이 휘청했다. 제설차가 열심히 눈을 퍼날라도 눈은 여전히 맹렬한 기세로 퍼부었다. 발목이 푹푹 파이도록 일부러 걷고 또 걸었다. 정혁은 오랜만에 보는 폭설에 가슴이 설렜다. 사방이 눈천지로 변하면서 얼음왕국을 보는 듯했다.
상고대가 빙화가 겨울을 만끽하라고 손짓하는 모양새로 다가왔다. 그는 누구보다 겨울을 사랑했다. 어릴 때는 눈만 오면 밖에 나가 눈사람을 만들고 눈썰매를 탔다. 빙판 위에서 얼음 지치기도 하고 미끄럼틀을 탔다. 벌판을 지나자 파출소 초소가 나왔다.
논밭 한가운데 파출소라니, 제복을 입은 경찰이 눈을 쓸면서 자꾸 눈을 털어내고 있었다. 경찰차 위에도 눈이 쌓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모자를 푹 눌러쓰고 눈을 맞으며 걸어갔다. 그러다 몇 번이나 미끄러지면서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졌다.
누가 만들었는지 커다란 눈사람이 모자와 머플러까지 두른 채 길 한복판에 서 있었다. 어디선가 왁자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60세는 상회한 듯한 얼굴에 등산복 차림의 남녀였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레깅스에 배낭을 맸는데 옷차림이 영 우스꽝스러웠다.
그들은 노욕과 허세가 담긴 대화를 큰소리로 마구 지껄이고 있었다. 마치 제 세상 만난 듯 열에 들떠 신바람이 났다. 사람들은 노인에게 절대 관대하지 않다. 나이가 어리거나 젊은층에겐 웬만하면 용서가 되는데 유독 고령층에겐 나잇값 운운하며 추태라고 표현한다.
똑같은 실수를 하더라도 들이대는 잣대가 확연히 다르다. 대학생들이 전동차 안에서 떠들었다 치자. 그러면 젊은 기분에 그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노인이 웃고 떠들면 눈살을 찌푸리며 노인 혐오증을 나타낸다.
젊은이가 말하면 좋은 의견이라 하고 노인이 말하면 잔소리라 한다. 청년들의 의견은 신념이고 노인들의 의견은 똥고집이라 한다. 아예 귀를 막고 들으려고도 안한다. 이래 저래 늙으면 더 서럽다. 그럴 때 나오는 말이 있다. 지들은 안 늙을 줄 아나.
한 지인(知人)이 말했다.
“전요, 절대 늙지 않고 죽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도 늙네요.”
그녀의 말은 곧 정혁의 마음과 상통했다. 그렇다. 정혁은 자신만큼은 절대 늙거나 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병을 달고 살면서도 수많은 죽음의 위기를 겪으면서 절대 죽지 않을 거라 자신했다. 그런데 중년기를 넘어서면서 약속이나 한듯 노쇠현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제일 먼저 접한 건 시력의 저하 곧 노안(老眼)이었다. 어느날인가부터 책에 글씨가 흐릿해지더니 돋보기를 쓰지 않고는 안 보이는 것이다. 그건 일종의 충격이었다. 그리고 미래보다 과거에 집착하면서 현실감각이 점차 둔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감정이 무뎌진 건 아니었다.
발걸음을 돌려 사거리 쪽을 향하는데 옛날 다방 간판이 보였다. 상호도 촌스럽게 귀빈 다방이었다. 가까이 가는데 심수봉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별보다 더 슬픈 건 정이라며 고개를 떨구던 그때 그 사람.
고객층의 수준을 맞추다 보니 노래도 7080이었다. 흐릿한 불빛 창가에 눈이 미끄러져 내리고 있었다. 처음 대하는 낯선 동리 낯선 풍경은 호기심과 더불어 마음을 느긋하게 한다. 마치 시간이 정체된 듯 여유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때뿐이다. 그 시간을 지나 일상으로 돌아오면 조급함으로 마음이 조여온다.
스마트폰에서 계속 진동음이 감지되고 있었다. 영심이었다.
오빠 지금 어디쯤 왔어?
아차 싶었다. 정혁은 그때서야 현실을 감지했다. 그는 이곳에 여행 온 게 아니고 외사촌 동생 영심이를 만나러 온 것이었다.
도착했어, 곧 갈게.
답신을 보냈다. 발길을 돌이켜 다시 역사(驛舍)를 향했다. 꿈에서 깨어난 듯 정신이 몽롱했다. 길모퉁이를 돌아서는데 커피숍 앞에 길고양이 급식소가 보였다. 턱시도 고양이가 사료를 폭풍 흡입하고 있었다. 녀석은 몹시도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정혁과 흘끔 눈이 마주치더니 옆에 설치된 제 보금자리로 잽싸게 들어갔다. 살만한 세상이다. 말 못하는 길짐승에게도 온정을 베푼다. 길냥이 급식소 바로 옆에 보금자리가 두 개나 있었다. 찌릿한 감동으로 가슴이 뭉클했다. 최첨단 과학 문명과 AI 인공지능으로 인성이 메말라 가는 시대에도 여전히 온정은 존재한다.
타들어가는 이념 전쟁도 생명사랑은 외면치 못하리라. 세상은 악이 활개치고 승전고를 울리며 절대자의 존재를 비웃는 듯 보여도 심판의 순간은 언제나 다가온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죽음의 순간이다. 이상하게 재작년부터 정혁의 주변에서 죽음의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맨 처음 들려온 죽음은 영심이의 남편 매제였다. 영심이는 정혁의 유일한 인척이었다. 그는 퇴직을 앞두고 동료들과 골프장에 갔는데 갑자기 심정지가 와서 사망했다. 119를 불렀지만 미리 손쓸 사이도 없이 천국행 열차를 타고 말았다.
그는 법 없이도 살만큼 인성이 좋은 사람이었다. 겨우 1살 많은 정혁에게도 꼭 형님 칭호를 붙이며 깍듯이 공대했다. 유일한 처가 식구인 그에게 살갑게 대하며 처자에게도 성실한 가장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신(神)을 두려워하는 신앙인이었다.
퇴직하고 나면 이슬람권에 가서 봉사와 선교활동 하겠다고 원대한 꿈을 펼쳐보인 보기 드믄 의인이었다. 인간관계에 손해가 발생해도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보응하지 않았다. 신은 그런 의인을 하루아침에 데려가 버리고 말았다. 하긴 일찍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 중에는 선인이 많다.
주변에서 보면 대부분 그렇다. 의인이나 선인은 천국에서 먼저 필요로 하는 모양이다. 영심이는 몇 번이나 까무러쳤다 깨어나길 반복했다. 매제의 죽음은 너무 뜻밖이었고 허망 그 자체였다.
영심이는 본당 신부에게 찾아가 왜 하느님이 착한 내 남편을 아무 예고도 없이 한순간에 데려갔냐고 따져 묻다 울기를 여러번 했다고 한다.
하느님이 너무 하신 거 아닌가요?
자매님의 남편분은 천국에서 분명 성인 대열에 오르셨을 겁니다. 너무 애통해 하지 마십시오, 천국은 슬픔이나 애통함이 없는 평화 그 자체랍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정혁은 오대 독자인 아들을 잃었다. 그리고 한 달 후 아내마저 아들의 뒤를 따라 천국에 입성했다. 유일한 인척인 영심과 그의 집안에 일어난 줄초상은 그야말로 멘붕을 일흐켰다. 이러한 참극(慘劇)은 또다시 없으리라. 둘은 망연자실 하다못해 생을 포기할만큼 자포자기의 늪에 빠져들었다.
정혁은 가족을 다 잃은 반면 영심이는 아들은 지켰다. 영심이 아들 영규는 해군 장교였다. 훈남 스타일에 애국심이 투철한 장교로 장래가 촉망되는 직업 군인이었다. 영심이는 영규를 아꼈지만 멀리 떨어져 지내는 탓에 자주 왕래가 없는 것 같았다.
영심이는 한동안 멘붕에 빠져 지내다가 느닷없이 아들의 결혼소식을 들었다, 엄마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통고한 것이다. 영심이는 분해서 펄펄 뛰다가 여자의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한번 결혼 경력이 있는 여자였다. 영규는 초혼인데 상대 여자는 재혼인 셈이었다.
영심이는 거의 실성하기 직전이었다. 세상 천지에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냐며 그야말로 결사반대했다. 영규는 엄마의 반대에도 끝까지 밀어붙일 작정이었는데 결혼식 일주일을 앞두고 여자 쪽에서 먼저 파혼을 통고하고 외국으로 가버렸다. 해군 장교 영규는 미칠 듯이 괴로워하며 제대까지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러나 주변의 만류로 간신히 복귀했다. 그리고 엄마와의 관계도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남편의 죽음도 허망하고 미칠 지경인데 어디 여자가 없어서 그런 걸. 집안의 대를 끊어놓으려고 작정한 것도 아니고. 파혼이라는 극약처방으로 평지풍파는 가라앉았지만 후유증은 오래 갔다.
무엇보다 당사자인 영규가 못 견뎌했다. 영규는 엄마가 음식점을 열었다는 소식에도 얼굴 한번 내비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자식이 춘향이 서방 이도령도 아니고 괘씸해서.
영심이는 오빠에게 전화로 하소연했다.
어느날 정혁이 직장에 출근해 일하고 있는데 아내한테 전화가 왔다. 집안의 5대 독자인 아들 현민이가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처음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고 아내가 정신병자가 된 건 아닌가 순간적으로 의심했다. 아님 이 여자가 왜 내게 소설을 쓰고 있지.
아내는 미칠 듯이 울부짖으며 빨리 집으로 오라고 했다. 5대 독자로 선친의 사랑을 독차지한 어릴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듣던 아들이었다. 아들은 미국에 유학 갔다가 학위를 마치고 막 취업을 앞두고 있었다. 생필품을 사기 위해 슈퍼마켓에 들렀는데 그만 권총 강도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성공가도를 앞두고 있던 아들이었다. 아내는 늘 아들 자랑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그런데 그 아들이 하루아침에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니. 아들의 비보를 접한 아내는 몇 번이나 까무러쳤다 깨어나길 반복하더니 그만 심장병이 발발하고 말았다.
한밤중에도 일어나 가슴을 움켜쥐며 통증을 호소하더니 아들이 죽은 쥐 한달만에 눈을 감고 말았다. 너무나 허망한 죽음이었다. 그때만큼 죽음의 실체가 가깝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설상가상이라더니 성경에 욥의 고난이 떠올랐다. 내가 욥도 아닌데 왜 이런 일이.
연거푸 들이닥친 죽음에 어떤 단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멘붕 상태였다. 어떠한 위로의 말도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왜 하필이면 내게 이런 고난이 왔을까. 한꺼번에 생의 의미를 상실하면서 가슴 깊은 곳에서 분노가 치밀었다. 분노가 가라앉을 즈음 팔자와 운명이란 단어가 생각났다.
세상 천지에 나 혼자 남았구나.
영심이는 남편상을 치르고 경기도 인근 낯선 지방으로 가서 음식점을 차렸다. 유동 인구도 적고 전망도 밝지 않아 보였는데 어떤 선견지명이 있었을까. 여동생이 음식점을 차린 지 일년도 안돼 서울 전철과 직통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정혁에게 꼭 놀러와 달라고 영심이는 신신당부했다. 차일피일 미루다 그는 드디어 발걸음에 시동을 걸었다. 집에서 일찍 출발했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해거름이 몰려와 있었다. 무려 2시간 40분이나 걸린 것이다. 그렇다고 대기 시간이 긴 것도 아니었다.
전동차는 청량리에서도 1시간 20분 넘게 걸려 도착했다. 의정부를 지나자 낡고 퇴락한 주택가가 나타나더니 논밭이 보였다. 추수가 끝나서 그런지 그야말로 허허벌판이었다. 역사에서 나오니 군인들의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그는 자신의 젊은 군(軍) 시절 모습이 떠올랐다.
그가 ROTC 장교로 근무한 곳은 강원도 최북단 지역이었다. 겨울이면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곳으로 현역이라면 모두 꺼리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죽음과 맞먹는 유격훈련을 마쳤고 제대할 때는 군대에 말뚝을 막으라는 상사들의 권유도 엄청나게 많이 받았다.
한마디로 군발이 체질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가족이 결사반대했다. 4대 독자라는 이유였다. 제대 후 재벌그룹에 입사에 승진을 거듭해 이사 자리까지 올라갔다. 아들은 미국 유학에 성공하여 외국인 회사에 입사를 앞두고 있었다. 그때는 이미 선친은 작고한 뒤였다.
만일 생존해 있었다면 줄초상을 두고 까무치기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아내처럼. 영심이 운영하는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트리 장식이 한창이었다.
입구에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대형 인형이 설치돼 있었고 내부는 소박하면서도 정갈하게 꾸며져 있었다. 메뉴는 단촐했다. 역 부근이라 그런지 김밥 분식류가 다였지만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다. 덕분에 정혁도 서빙하는데 일조하고 말았다. 손님이 가고 난 뒤 돈가스를 먹었는데 맛이 아주 일품이었다.
“맛이 좋구나 그러게 손님들이 알고 찾아와 주는구나.”
“죽은 애 아빠가 돈가스를 좋아해서 내가 자주 해주었거든.”
죽은 애 아빠라는 말에 잠시 가슴이 먹먹했다. 잊었던 슬픔이 가슴속에서 돌출되면서 목이 메었다. 영심에게 웬만하면 영규 결혼을 허락해 주지 그랬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또다시 손님이 매장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날씨가 춥죠?”
“네, 저 돈가스 해주세요.”
“네 저쪽으로 앉으시죠?”
손님은 끊임없이 몰려왔다. 덕분에 그도 쉴틈없이 서빙을 했다. 손님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누구냐고 묻자 영심은 오빠라고 응수하며 얼굴을 붉혔다. 혹시라도 오해할까봐 당황하는 눈치였다. 친오빠에요? 아님 애인?
“고종사촌 오빠에요, 단 하나밖에 없는 우리 고모 아들이요.”
“영심아, 나 여기에 취직시켜줘라. 이렇게 바쁜데 직원 한명쯤 써야 되는 거아니니?”
“오빠. 지금이 대목이라 그런 거야, 한가할 때도 많아.”
“그래서 굳이 날 필요로하지 않는다 그거지?”
“오빠 생각 있으면 말해, 알바라도 괜찮아?”
“그건 안 되겠는데, 정식 직원이라야지.”
“것봐, 나도 그럴 줄 알았어.”
손님들이 다 가고 나자 영심이 물었다.
“오빠 이제 괜찮아?”
“뭐가?”
그는 알면서도 물었다.
“응 새언니하고 조카하고 떠난 지도 한참 되었는데 오빠도 이젠 살길을 찾아야지.”
“그런 너는?”
“난 이렇게 창업해서 살아가고 있잖아.”
“그런데 왜 하필 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할 생각을 했니?”
“그냥 멀리 떠나고 싶었는데 마침 여기가 생각나는 거야, 죽은 애 아빠가 젊었을 때 여기서 군 복무했었거든. 그때 대학 다니면서 면회 오느라 엄마한테 야단 맞고.”
“그런데 영규 결혼을 왜 끝까지 반대한 건데? 웬만하면 허락하지 그랬니?”
“그 여자애가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거기에다 과거까지 있고, 내가 어떻게 키운 아들인데 그런 하찮은 여자를 며느리로 맞아? 어림도 없지.”
더이상 묻지 않았다. 영심은 영규와도 여러번 싸웠다며 핏대를 세웠다. 그러더니 갑자기 정색을 하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빠 내가 중매해도 될까?”
“그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니? 내 나이가 몇인데?”
“그러니까 서로 조건만 맞으면 되지 뭐, 중학교 영어 선생님인데 나이에 비해 젊고 예쁘고 착한 편이야, 학벌도 인물도 오빠 정도면 딱 맞을 것 같애.”
“그쪽도 가족이 있을 거 아냐”
“젊었을 때 사별하고 여태껏 쭉 혼자 지냈대, 오빠 정도면 서로 맞을 것 같은데 서로 홀가분하고 괜찮잖아.”
홀가분하다는 단어에 정신이 명료해지는 느낌이었다. 서로 딸린 자식이 없으니 이 눈치 저 눈치 볼 것 없다는 뜻인가.
“이제 남은 여생을 서로 위로해 가면서 뜻 맞는 일 해가면서 살면 좋잖아. 오빠 아직도 캠핑 좋아해? 그 선생님도 캠핑 엄청 좋아한대.”
캠핑? 젊었을 때 몇 번 해본 캠핑을 여동생은 내 취미생활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영어 교사라는 건 확실한 거니?”
“어라? 그래도 싫다고는 안 하네? 한번 날 잡아볼까? 아님 두사람이 서로 핸드폰으로 연락해서 만나든가.”
“얘가 김칫국물부터 마시고 있네.”
아내와는 중매로 맺어진 인연이었다. 집안 어른들끼리 만나 혼사를 정해 놓고 일방적으로 통고해 결혼식을 강행하다시피 했다. 아내는 대학 졸업을 앞둔더욱이 당시로선 흔하지 않게 대기업에 취업을 준비하고 있던 터였다. 전공도 회계학으로 전도가 양양한 능력있는 여자였다.
그런데 갑자기 졸업을 앞두고 결혼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일제 강점기도 아닌 현대에. 집안이라는 허울 좋은 간판 내세워 어른들끼리 모여 일방적으로 정해진 정략결혼이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현실로 벌어진 것이었다. 우리는 둘 다 결사반대했지만 만나는 순간 합의하고 말았다.
서로의 외모에 전격적으로 이끌렸던 것이다. 집안에서 독자라는 이유로 강행되어진 결혼은 아들을 순산하고나서부터 평탄대로를 이루는 듯했다. 오늘날 같은 비혼 무자녀 시대가 도래할 줄은 꿈에도 몰랐으리라. 전에는 몰랐었다. 허망하다는 말의 의미를.
허망(虛妄)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그 어원의 뜻을 그는 오랜 시간 가슴이 저리도록 경험하며 살아왔다. 누군가 말했었다. 살아도 산 목숨 같지 않다고. 살아 있으나 죽은 목숨이나 진배없다고. 넋 나간 채 오랜 시간이 흘렀다. 어느날 친구가 다가와 말했다.
“너 예전에 글재주 있었잖아.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슬픔을 시로 표현해봐, 그럼 마음이 좀 가라앉지 않을까?”
동감이야. 그는 속으로 손뼉을 쳤다. 바로 그거야. 그는 그날부터 가슴속에 있는 슬픔과 한(恨) 섞인 그리움을 시로 써서 인터넷으로 발표했다. 대부분이 연시(戀詩)였다. 죽은 아내와 아들을 향한 절절한 사랑을 연시로 써서 발표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로 시단에 등단했고 시인들과 많은 교류를 나누었다. 그때마다 듣는 질문이 있었다. 애인이 생겼는가?
나중에 속사정을 안 시인들은 모두 숙연한 표정이 되었다.
그들 표정 위로 한 문장이 떠올랐다. 독자인 아들도 모자라 부인까지 줄초상이라니? 너무 끔찍하다. 그때 좌중에 있던 한 시인이 말했다. 세월이 가도 그리움은 없어지지 않는 법이랍니다. 그렇지만 그리움만큼 행복한 감정도 없답니다. 그러자 또 한 사람이 말했다.
그렇긴 하죠. 하지만 새로운 사랑을 만나면 또다른 행복감도 찾아올 테니 미리 포기하지는 마십시오. 네, 그러면 더 아름다운 연시를 쓰게 되실 겁니다.
그는 겨우 입을 열어 말했다. 위로의 말씀으로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느날 외사촌 여동생 영심이에게서 카톡이 왔다.
오빠, 시를 무척 좋아한다는 독자분이 오빠를 만나고 싶어하는데 시간 되면 우리 가게에 들러.
그 의미를 그는 단박에 알아차렸다. 중학교 영어교사라는. 당장 거절하려고 했지만 이상하게 궁금증이 일었다. 어떤 여자일까. 나이에 비해 젊고 미모라니 어떤 스타일의 여자일까? 키는 어느 정도이고 전문 교양인다운 면모를 갖추었을까. 성격은 원활한 편일까.
이상하게 소년처럼 가슴이 뛰었다. 답글을 안 보냈더니 영심이가 일주일 후에 다시 카톡이 왔다.
부담 갖지 말로 그냥 만나보라니까. 누가 당장 결혼하라고 했나. 처녀 총각도 아니면서 남사스러운가 보지.
그럼 소설 쓴 기분으로 한번만? 그래 어쩌면 또다른 연시를 쓰게 될지도 모르니까. 아님 소설이라도 쓰게 될지. 그는 잠시 아내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미래의 찬란한 청사진을 포기하고 아내와 엄마로 살면서 묻혀 두었던 재능을 아쉬워하던, 아들만 장가보내고 나면 꼭 재능을 살려 성공하겠다는 야무진 포부를 아내는 숨기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 당당한 포부도 아들의 죽음과 함께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본인의 꿈이 아들과 직결돼 있었기에 그랬다. 아들과 아내의 죽음을 겪고 나자 시간이 온통 정체된 느낌이었다. 허망한 고통이 가슴속을 치고 올라오면 죽음이라는 현실만 보였다.
우리 인생은 잠시 보이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것이니라. 우리 인생은 이 땅에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 같은 것이란다.
누군가 그의 귓가에 대고 계속 들려주고 있었다. 그래, 안개와 나그네와 같은 인생길 이왕이면 마음 편하게 살다 가자. 아무리 다짐해도 그때뿐이었다. 영심이의 성화로 의정부에 있는 유명 커피숍에서 여자와 만남을 가졌다. 스마트폰으로 서로의 위치를 알린 뒤 대면을 했다.
이젠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위장해야 할 나이다. 청춘남녀도 아니고 더 조심스럽고 신중해야 한다. 그런데 첫 대면을 하는데 이상하게 상상이 깨지는 느낌이었다. 나이보다 젊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역시나 나이는 속일 수 없는지 얼굴에 잔주름이 그대로 보였다.
옷차림도 정장 스타일이 아닌 평상복이었고 인상은 차분한 편이었다. 정혁을 바라보는 그녀도 약간 실망한 표정이었다. 둘은 통성명과 주로 과거의 경력을 통상적인 의례처럼 물었고 동시에 창밖을 바라보며 말을 잃었다. 그러다 그녀는 자신의 신앙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녀는 집안 대대로 카톨릭 신앙을 유지하고 있었다. 정혁은 집안의 장손이라는 내세웠지만 그게 어디 내세울만한 일이던가
“그래서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아직, 하지만 여동생이 하고 있는 근처에 작은 북카페를 열까 생각 중입니다.”
느닷없이 튀어나온 말에 그는 스스로가 놀라 입이 벌어지고 말았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말이었다. 그러나 내밷고 보니 그럴싸했다. 북카페를 열어 커피도 팔고 시집도 팔고 시 강의도 하면 일석삼조라 생각됐다. 꿈은 항상 거창한 법이다. 자금은 최소로 하고 커피 머신은 대여로 하고 인건비 대신 셀프로 운영하면 될 것이다.
서비스로 노트북을 설치해 놓고 작가 사인회도 하면 금상첨화라 여겨졌다. 순간적인 아이디어에 정신이 명료해지는 것 같았다.
“요즘 커피숍이 너무 흔해서.”
“장삿속으로 하자는 게 아니라 여가생활로 하려고요. 이 나이에 무슨 큰 축재를 하겠습니까. 소일삼아 시나 쓰면서 가끔 창작 강의도 하고요.”
“전 내년에 전출 신청해 놓았어요, 여긴 너무 후미진 지역이라 내년엔 시내 쪽으로 나가보려고요.”
여자는 자기 신상 이야기만 늘어놓더니 약속이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표정이 호감도 그렇다고 썩 내켜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녀가 일어선 자리에 허망함이 묘한 실망감이 일었다. 정혁은 그녀와 헤어진 뒤 서울 가는 전동차에 몸을 실었다.
전동차는 너른 벌판과 빌딩과 상가를 번갈아 보여주면서 끝없이 전진했다. 마음속에서 슬픔이 꾸역 꾸역 치받고 올라왔다. 생전의 아내 모습과 아들과 단란했던 일상이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떠올랐다. 인생은 무엇으로 사는가? 모 시인이 시 낭송하듯 툭 던진 화두가 떠올랐다.
그때 누군가 옆에서 말했었다. 안개와 같은 인생길 과연 누굴 위해 살까요? 처자식? 나 자신?
인생의 성공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무엇 때문에 피터지게 경쟁하고 돈! 돈! 하며 또 명예에 목숨걸며 사는 걸까요? 자기 만족을 위해서지요. 그러나 그것도 속임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때 누군가 옆에서 말했다. 인생은 캠핑장과 같습니다. 그 말에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웃음보가 터졌다.
캠핑장 맞습니다. 이 세상은 잠시 머물다 가는 임시 거처와 같습니다. 영원한 하늘나라가 우리의 진짜 주소지입니다. 세상은 아니 인생은 조물주가 지으신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잠시 만끽하라고 보내주신 곳입니다. 한번 떠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여행하라고.
그러나 그 말도 무의미했다. 아내와 아들이 떠나버린 세상은 허무와 무의미로 가득했다. 아름다움이라니? 여행의 의미도 모호했다. 더구나 만족감이라니? 돈을 벌어도 용처가 불분명해진 것이다. 예전에는 아내와 아들, 가족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일했다면 지금은 열기가 식은 느낌이다.
인생이란 과연 누굴 위해 일하며 존재하는가? 아무리 애써 눌러 참으려 해도 눈물이 자꾸 나왔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는데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엉엉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전동차가 덜컹하더니 갑자기 멈췄다. 사람들의 몸도 기우뚱하며 흔들렸다. 역무원의 멘트가 나왔다. 전동차는 거리 간격을 위해 잠시 정차 중이라 했다.
전동차가 잠시 멈칫하더니 지상에서 지하로 접어들고 있었다. 차창 밖은 삽시간에 흑암으로 덮였다. 굉음을 뚫고 몇 정거장 지나더니 다시 지상으로 나왔다. 이정표 표지판이 보이면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상과 지하로 연결된 길을 지나 밖으로 나왔다. 역사(驛舍) 밖은 온통 불빛 천지였다.
휘황한 도심 불빛이 사람들의 마음과 발걸음을 마구 흐트러놓고 있었다. 정신없이 걷는데 현실이라는 무게감이 그 앞을 떡 가로막았다. 이젠 그만 상실감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해야지. 삶은 소중한 것이란다.
그는 다시 시 창작에 몰입하면서 여행길에 나섰다. 인생은 캠핑이라는 말에 적극 동참하면서 캠핑에 열을 올렸다. 캠핑하면서 명산도 찾아다니며 백팩킹도 즐겼다. 일출과 일몰 광경을 보면서 신세계를 경험했다. 대자연의 신비와 산행이라는 고행 끝에 맛보는 성취감은 행복 그 자체였다.
자연이 주는 기쁨은 힐링의 효과를 가져 왔고 상실로 인한 공허한 가슴을 어느 정도 메워 주었다. 어느날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함께 캠핑 가자는 제의였다. 오케이. 그는 흔쾌히 허락했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캠핑을 즐기고 있었다. 은퇴하면 캠핑카를 사서 전국일주 할 계획이라고 했다.
나이에 비해 근력이 좋았다. 텐트 피칭도 잘했고 요리솜씨도 수준급이었다. 서양 요리사였던 전 남편으로부터 전수 받았다며 자랑까지 곁들였다. 전 남편 이야기를 듣는데 이상한 질투심과 함께 묘한 감정이 들었다. 캠핑은 주로 자동차를 이용하지만 트레킹 백팩킹은 장시간 걷는 인내심을 요구했다.
백팩킹 역시 캠핑처럼 우중 설중 백팩킹이 낭만 백퍼센트였다. 눈 쌓인 산길을 걷다 보면 감성이 폭발해 예쁘다 미쳤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산행하다 가끔 젊은 등산객들을 만나면 부러운 생각에 잠시 길을 멈춰 서기도 했다. 자주 지치고 중간 기착지에 머물러 있다 도로 하산한 적도 많았다.
어쩌다 정상까지 올라가면 그야말로 세상을 다 얻은 듯 성취감으로 가슴이 뛰었다. 바닷가 캠핑은 더 황홀했다. 바닷물을 태울 듯이 태양이 고개를 내밀 때면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졌다. 그때였다. 멋지다 소리를 연발하던 그녀가 갑자기 바닷속으로 마구 뛰어가기 시작했다.
흥분이 고조되었던 것일까. 일렁이는 파도 속에 몸을 날리며 웃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모양을 보고 있던 사람들도 너도 나도 바닷속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대자연의 신비 앞에 모두 일심동체가 된 것 같았다. 붉은 태양은 사람들의 마음을 물들이며 천천히 떠올라 하늘에 닿았다.
어느날 그녀는 본격적으로 죽은 남편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릴 때 고향에서 만난 남편은 동향이자 동창이자 동년배로 신앙마저 같았다. 양가 다 독실한 카톨릭 집안으로 구한말 때 순교자도 나온 집안이었다. 대원군의 천주교 말살 정책으로 증조 할아버지가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순교하면서 그는 후대 손자대에 꼭 사제가 나오기를 염원했다. 그녀의 집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증조 외조 할아버지가 모두 순교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한테 수녀가 될 것을 강요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성당 분위기가 싫다며 주일 미사도 빼먹는 날이 많았다.
일부러 반항심으로 그랬던 것 같다. 남편은 온 집안이 그에게 사제가 될 것을 강요했다. 대대로 카톨릭 집안에서 장손을 사제로 바치는 것은 그야말로 집안의 영광이라 했다. 그래서 그는 어릴 때부터 성당에서 복사로 봉사했고 종교 분위기에 젖어 살다 마침내 신학교에 진학했다.
남편이 신학교 4학년 때였다. 둘은 아무도 몰래 여행을 떠났다. 다시는 못 만날 것을 우려해 급히 떠난 여행이었다. 그리고 둘은 신의 음성을 뒤로 하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 어찌 알았을까. 둘의 소문은 일파만파로 퍼져갔다.
신학교는 물론 양쪽 집안의 어른들과 심지어 동네 꼬마들까지 알게 됐다. 양가 집안은 동네 망신이라며 난리가 났다. 남편은 신학교에서 출교를 당했다. 둘은 먼 시골 바닷가로 피신을 했다. 한 달 후 둘은 양가에 들러 공식으로 결혼을 알렸다.
태중에 아기가 숨을 쉬고 있었다. 양가는 또한번 기함을 했다. 조상 대대로 사제 한명 탄생시키기 위해 온 집안이 묵주기도를 올렸는데 그 바람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나중에는 그녀에 대한 악담까지 나왔다. 요물이 나타나 사제의 길을 막았다는 것이었다.
신학교에서 쫒겨난 그는 서양 요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호텔 양식당에서 근무하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데 언젠가부터 기침에 피가 섞여 나오기 시작했다. 입사한 지 얼만 안 된 시기인지라 그만두기도 애매한 시기였다. 그리고 그녀는 지방에 있는 중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남편은 서울에서 그녀는 경기도 먼 외곽지대에서 떨어져 살고 있었다. 주말 부부로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날 급보가 전해졌다. 남편이 근무 중 쓰러진 것이다. 응급실에서는 아무것도 해줄 게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암이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퍼져 있었다.
거기에다 독감까지 겹쳐 생사가 오락가락했다. 그녀는 남편을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 근처에 있는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퇴근하면 매일 남편에게 달려갔다. 남들은 스트레스 운운했지만 그녀는 가까이서 남편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행복했다. 의사가 연명치료 중단을 제의했지만 그녀는 단연코 거부했다. 매일 남편의 손을 붙잡고 기도했다. 생명을 연장시켜 달라고 이대로 떠나보낼 수 없다고.
그러나 의사의 예고대로 남편은 그녀의 손을 놓은 채 그대로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그와 동시에 뱃속의 생명도 기운을 다하고 말았다. 미칠 듯이 울부짖는 그녀 앞에 양가의 시선은 싸늘했다. 맺어져서는 안될 것을 억지로 맺었다가 화근이 발생한 걸로 단정했다.
말은 칼이다. 칼에 찔린 마음은 피를 동이를 쏟고 그녀는 고향에 발걸음을 끊고 말았다. 그리고 생업인 교직에 매진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가슴속에서 통증이 소용돌이처럼 일어났다.
어느날 그녀는 동료들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지방에서 꽤 크다는 음악당에서 그 유명하다는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가 공연되고 있었다.
독일 가곡에 연극이라는 요소를 접합해 진행하는 오페라와 비슷한 장르였다. 오페라와는 약간 스타일이 다른 가수가 연극까지 같이 하는 무대였다. 테너 가수는 여느 성악가와 달리 마이크를 쓰지 않고 육성으로만 노래를 불렀다.
언 듯 보아도 상당히 잘생긴 얼굴로 예술가 특유의 카리스마가 넘쳤다. 표정에 각종 대사가 담겨 있는 듯 연기력도 뛰어났다. 표정과 제스츄어에서 예술적 감각이 저절로 살아 움직이면서 관객의 감정을 압도했다. 가수와 관객은 노랫말 가사에 혼연일체가 되어 감정이입이 됐다.
나그네는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진 아픔을 노래하며 인생을 회한(悔恨)했다. 가슴 저리는 가사 한마디 한마디에 시적 감성이 충만했다. 독일어로 가사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애끓는 감정은 충분히 느껴졌다. 무대 뒤에 가사가 더빙되고 있었다.
주인공은 떠나간 연인을 찾아 방황하며 오열하고 자책하며 괴로워하다 드디어 마지막 길을 떠난다. 떠나는 길에 바람소리도 나뭇가지의 움직임도 그의 슬픔을 비웃는 듯 들려온다. 각 서막에 풍향기 얼어붙은 눈물 도깨비불 봄의 꿈 환상의 태양 등 많은 단어가 등장하는데 그렇게 스산할 수가 없다.
나그네 주인공의 얼굴에 남편의 얼굴이 오버랩 되고 있었다. 남편은 어릴 적부터 동네에서 잘 생기기로 소문난 미남이었다. 영화배우하라는 제의도 숱하게 받을 정도였다. 사실 남편은 연극무대를 좋아해 성당에서 하는 연극에는 반드시 참여했다.
차라리 사제 대신 배우나 됐더라면, 그녀는 쓸데없는 상상을 하며 무대에 집중했다. 극이 막바지로 치달으며 피아노는 천둥치듯 고음을 내달리며 한순간에 멈췄다. 애달픈 나그네는 은유 섞인 호소로 아픔을 노래하다 그 자리에서 푹 쓰러진다. 그리고 정적이면서 강렬한 메시지를 따라 극은 반전되고 엔딩을 고했다.
그녀는 극을 보고 나오면서 폭포수같은 눈물을 흘렸다. 이별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고 아픔이다. 세월로도 씻기지 않는 거대한 환상이 되어 마음을 압도한다. 언젠가 그녀의 귓가에 들려온 말이 있었다.
춘향이가 따로 없지. 은장도는 없을래나 몰라.
그러더니 어느날 또다른 음성이 들려왔다.
고선생, 요즘 애인 생겼나봐 점점 예뻐지고 있어
그러게 말예요, 세월이 고선생한테만 비껴가는 모양이죠, 점점 젊어지는 것도 같아요.
요즘 여행하면서 자주 힐링하거든요, 여행만한 힐링은 없는 거 같아요.
누구랑 힐링하는데?
누구라뇨?
혼자 하는 건 아닐거잖아.
차암 선생님도 누구랑 하는 게 중요한가요? 힐링이 중요하죠.
누구랑 하는 게 왜 안 중요해? 중요하지.
대화는 거기서 끊겼다. 그녀가 서둘러 자리를 빠져 나왔기 때문이다. 어느덧 정혁과 그녀는 힐링여행에 동참하고 있었다. 그러나 과거의 상흔 때문인지 서로를 향해 어떤 한계선을 긋고 있었다. 또다시 이별이라는 아픔을 겪게 되지 않을까 두려움이 앞섰다. 감정은 항상 기대와 두려움 사이를 오고 갔다.
1년 후 정혁은 영심이 운영하는 분식점에서 500미터 떨어진 곳에 북카페를 개업했다. 많은 문인들이 찾아와 개업을 축하해 주었다. 개업 떡과 다과는 영심이 모두 제공해 주었고 자기네 단골손님들도 다 몰아다 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리고 일을 도와주러 올 때마다 꼭 동행자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둘의 사이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남자는 꽤 중후한 중년으로 태도가 겸손하고 온화해 보였다. 정혁이 갖은 말로 유도해 보았지만 둘은 끝까지 동업자라고만 했다. 그럴 리가 있나. 그래도 둘은 끝까지 함구했다. 어쨌든 좋았다. 하나가 아니고 둘은 보기 좋았다. 정혁이 북카페를 개업하고 운영하는 동안 그녀는 한번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다.
소문이 두려웠는지 어떤 예감이 있었는지 그건 알 수 없었다. 잔설이 녹고 겨울이 끝나갈 무렵 그녀는 그곳을 떠나 수원에 있는 모 중학교로 전출돼 갔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마지막 근무지가 될 것이라는 문자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두 번 다시 읍내에 나타나지 않았다.
어느사이엔가 북카페 앞에 아지랑이가 피면서 봄기운이 읍내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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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신작가님 대단하십니다 /
오늘 회원들 조회를 확인해 보다가 놀랐어요
그간 그렇게 많은 분들이 보고 있었네요
안은순님과 두 분의 조회를 보니 사람들이 소설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나 혼자 있는 줄 알았더니
소설가님들이 있었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