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05 살아 움직이는 말씀 시 107:1-7, 33-37; 수 3:7-17; 살전 2:9-13; 마 23:1-12
주일 설교 준비를 위해 약 3년간 같은 커피숍을 다녔습니다. 새침해 보이는 그녀가 처음으로 웃으며 인사를 건넵니다. “목사님이세요?” 전혀 티를 내지 않았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들었다고 하는데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 아직은 목사에게 기대감이 남은 듯 합니다. 혼자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눈빛은 이전과 전혀 다른 신뢰감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교회는 다니지 않지만, 하나님이 있다고 믿는다”라는 말까지 덧붙이는 그녀에게 훌륭하다고 말했습니다. 돌아서면서 순간 ‘신앙인이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의문이 들었습니다. 힌두교인 간디에게 어떤 신학자는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했던 말도 떠오릅니다. 각박한 오늘의 시대 속에 개독교라는 비난은 참 그리스도인을 찾아보기 힘든 까닭일 것입니다. 열심히 교회 다닌다고, 열정적인 종교 생활을 하며, 입만 열면 하나님, 하나님 하는 사람을 참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오늘의 교회는 많은 경우 그러하며, 그렇게 하기를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개독이라는 비난은 분명, 말에 그치기 때문이고, 행동이 따르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타자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랑보다는 이기심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은 대반전을 기록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꼽힙니다. 제국 이집트의 식민지 하에서 해방과 자유를 위해 백성을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어쩌면 모세는 아주 평범한 인물일지 모릅니다. 처음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 모세는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겠습니까” 라며 반문하는데, 스스로 평범하거나, 지극히 소심한 사람이라는 방증입니다. 대범하고 비범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세계의 제국, 절대 존엄 앞에 맞선다는 것은 상상이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모세가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라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평범하거나 소심한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자,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 것일까요? 그 해답을 알게 된다면, 어쩌면 우리도 최고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듭니다. 그 답은 잠시 후 공개 됩니다.
대반전이 무엇일까요? 예수의 말을 듣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실행하고 지켜라”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사람을 최고 지도자 모세와 같은 지위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가르침을 다 지키라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들에 관한 이미지는 겉으로는 아니지만, 속으로 항상 불편하고, 비판적이었습니다. 이들은 항상 예수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이들의 눈에 예수는 반율법주의로 보였고, 신성모독자로 보였고, 사이비 이단으로 보였습니다. 이들을 항상 위협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기회만 엿보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를 잡아 죽일까하는 궁리로 가득한 이들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는 이들을 모세의 자리에 올려놓습니다. 자기를 가장 적대시 하는 이들을 이스라엘 최고 지도자 자리로 올려놓은 것입니다. 이들의 가르침은 곧 하나님의 말씀과 다를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불편하고 비판적인 것은 무엇때문일까요? 여기서 대반전이 있습니다. 다시 예수의 말을 듣습니다. “그들의 행실은 따르지 말아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모세와 같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이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행동은 부정합니다. 말은 하나님을 높이지만, 행동은 전혀 반하나님, 하나님을 깍아 내리는,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입만 열면 하나님, 하나님이라고 하는 이들을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종교지도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예수는 이들의 행동을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그들은 지기 힘든 무거운 짐을 묶어서 남의 어깨에 지우지만, 자기들은 그 짐을 나르는 데, 손가락도 꼼짝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행실은 모두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경문 곽을 크게 만들어서 차고 다니고, 옷술을 길게 늘어뜨린다. 그리고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즐기고, 장터에서 인사받기와, 사람들이 자기들을 선생이라고 불러 주기를 즐긴다.” 모세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가르치며 남은 것은 권위의식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왠지 기시감이 듭니다. 대부분의 지도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유아독존입니다. 말은 멋떠러지게 하지만, 실상은 남을 무시하는 행동입니다. 다른 사람을 하찮게 여긴다는 방증입니다. 사람들이 높여주고, 칭송하고, 경의를 표했더니 돌아오는 것은 거만하고 교만한 행동으로 보답합니다. 그래서 불편하고 비판의 대상일 뿐입니다. 그러나 한없이 높은 권위 때문에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하고 속으로 삭힐 뿐입니다. 예수는 이를 분명히 지적합니다. 그렇다면 참 지도자는 어떤 모습일까요? 진정한 모세의 자리에 오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반대의 경우일 것입니다. 이해와 배려, 자신은 낮추고 상대를 높여주는 것입니다. 예수의 결론을 듣습니다. “으뜸가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평범한 사람, 어쩌면 소심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고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해답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그렇습니다. 말씀은 문자입니다. 문자가 어떻게 살아 움직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살아 움직이는 말씀은 바로 우리의 행동에 따른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 사는 것입니다. 입만 열면 하나님,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아도, 열정적인 종교인으로 살지 않아도, 우리의 행동은 참 그리스도인으로 드러날 수 있습니다. 이해와 배려, 존경과 존중, 차이를 차별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파하는 이들과 함께 아파하고,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광주를 이해하고, 세월호를 이해하고, 소성리를 이해하고, 이태원 참사를 아파하며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 말씀은 살아 움직이고 있을 것입니다.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는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침묵합니다.
231105 시 107:1-7, 33-37; 수 3:7-17; 살전 2:9-13; 마 23:1-12
시 107:1-7, 33-37
1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2 주님께 구원받은 사람들아, 대적의 손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아, 주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려라.
3 1)동서 남북 사방에서, 주께서 모아들이신 사람들아, 주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려라.
4 어떤 이들은 광야의 사막에서 길을 잃고, 사람이 사는 성읍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했으며,
5 배고프고 목이 말라, 기력이 다 빠지기도 하였다.
6 그러나 그들이 그 고난 가운데서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는 그들을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7 바른길로 들어서게 하셔서, 사람이 사는 성읍으로 들어가게 하셨다.
33 주께서는 강들을 사막으로 만드시며, 물이 솟는 샘들을 마른 땅이 되게 하시며,
34 그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죄악 때문에, 기름진 땅을 소금밭이 되게 하시며,
35 사막을 연못으로 만드시며, 마른 땅을 물이 솟는 샘으로 만드시고,
36 굶주린 사람들로 거기에 살게 하시어, 그들이 거기에다 사람 사는 성읍을 세우게 하시고,
37 밭에 씨를 뿌리며 포도원을 일구어서,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시며,
수 3:7-17
7 주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바로 오늘부터, 내가 너를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보는 앞에서 위대한 지도자로 세우고,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처럼 너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게 하겠다.
8 이제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요단 강의 물 가에 이르거든 요단 강에 들어가서 서 있으라고 하여라."
9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였다. "이 곳으로 와서, 주 너희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라."
10 여호수아가 말을 계속하였다. "이제 이루어질 이 일을 보고,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셔서,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히위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기르가스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11 온 땅의 주권자이신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에서 요단 강을 건널 것이다.
12 이제 이스라엘의 각 지파마다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뽑아라.
13 온 땅의 주권자이신 주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강 물에 닿으면, 요단 강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줄기가 끊기고, 둑이 생기어 물이 고일 것이다."
14 백성이 요단 강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진을 떠날 때에,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백성 앞에서 나아갔다.
15 그 궤를 멘 사람들이 요단 강까지 왔을 때에는, 마침 추수기간이어서 제방까지 물이 가득 차 올랐다. 그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 물 가에 닿았을 때에,
16 위에서부터 흐르던 물이 멈추었다. 그리고 멀리 사르단 근처의 아담 성읍에 둑이 생겨, 아라바의 바다 곧 사해로 흘러가는 물줄기가 완전히 끊겼다. 그래서 백성들은 여리고 맞은쪽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17 온 이스라엘 백성이 마른 땅을 밟고 건너서, 온 백성이 모두 요단 강을 건널 때까지, 주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강 가운데의 마른 땅 위에 튼튼하게 서 있었다.
살전 2:9-13
9 1)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의 수고와 고생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파하였습니다.
10 또 신도 여러분을 대할 때에, 우리가 얼마나 경건하고 올바르고 흠잡힐 데가 없이 처신하였는지는, 여러분이 증언하고, 또 하나님께서도 증언하십니다.
11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우리는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이, 여러분 하나하나를 대합니다.
12 우리는 여러분에게 권면하고 격려하고 경고하는데, 그것은 여러분을 부르셔서, 당신의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하게 살아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13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하는 것은, 여러분이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실제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신도 여러분 가운데서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마 23:1-12
1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2 말씀하셨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다.
3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르지 말아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4 그들은 지기 힘든 무거운 짐을 묶어서 남의 어깨에 지우지만, 자기들은 그 짐을 나르는 데, 손가락도 꼼짝하려고 하지 않는다.
5 그들이 하는 행실은 모두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1)경문 곽을 크게 만들어서 차고 다니고, 옷술을 길게 늘어뜨린다.
6 그리고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즐기고,
7 장터에서 인사받기와, 사람들이 자기들을 2)선생이라고 불러 주기를 즐긴다.
8 그러나 너희는 2)선생이라는 칭호를 듣지 말아라. 너희의 선생은 한 분뿐이요, 너희는 모두 3)학생이다.
9 또 너희는 땅에서 아무도 너희의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아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분, 한 분뿐이시다.
10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칭호를 듣지 말아라. 너희의 지도자는 4)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1 너희 가운데서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