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일곱째 이야기,
외세에 짓밟히고 조국에 버림받은 화냥년(2)
[정해랑 연재소설] 노동자 신돌석씨의 하루 (218)
[삽화-백소(白笑)]
대표의 발언이 끝나자 정의기억연대 사무총장이 한 주간 있었던 일들을 보고하는 발언을 하였다. 차분하게 설명하듯 말을 잘 했다. 매체에서 몇 차례 얼굴을 본 기억이 있지만 이렇게 직접 말하는 것을 들은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그는 날씨가 무척 덥죠 라는 말로 발언을 시작했다. 지난 주에는 건너편에서 했었는데 여기가 거기보다는 좀 나은 것 같다고 했다. 이렇게 장소를 여기저기 옮기면서 주변을 떠돌고 하고 있단다. 그 까닭은 수요시위를 방해하는 세력들 때문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래도 계속 하는 까닭을 그는 침묵하지 않고 가해자에게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기 위해서 라고 하였다. 모든 폭력에서 가해자는 피해자나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침묵을 요구하는데 특히 국가폭력과 성폭력은 침묵 강요의 강도도 세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국가가 직접 자행한 성폭력이니 더욱 그러한 것이다. 김복동 할머니가 우리가 떠벌렸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고 하면서 가해자인 일본 정부가 우리에게 침묵을 강요할수록 우리는 떠벌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30년 넘게 수요시위를 계속하는 까닭이라는 것이다.
발언은 주간보고라는 형식답게 당면의 문제로 이어졌다. 평화의 소녀상은 아픈 과거를 기억하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이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자는 외침입니다. 그런 취지로 국내, 해외에 많이 설립되었습니다. 일본은 이게 싫은 것이죠. 가해자로 역사적으로 확실히 인정되는 것이 싫은 것이에요. 그래서 평화의 소녀상 이야기만 나오면 몸서리를 칩니다. 한국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은 어찌할 수 없으니 해외 평화소녀상을 철거하려고 아주 열심히 전력을 다합니다. 정말 아주 열심히 합니다.
일본 총리가 독일 대통령에게, 총리에게 치워 달라고 지속적인 압박을 넣었어요. 얼마 전에 일본을 방문한 베를린 시장이 소녀상을 치울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는 걸 여러분들도 언론 보도를 통해 아실 겁니다. 정말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다른 나라도 아닌 독일이 이럴 수 있는가? 독일은 우리가 알기에 과거에 저질렀던 전쟁 범죄 홀로코스트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성숙하게 실천해 온 나라입니다. 그런 독일이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가장 과거사를 뻔뻔스럽게 인정도 하지 않고 반성도 하지 않는 일본을 따라 한단 말인가?
이것은 도저히 묵과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정의기억연대에서 독일대사관을 방문했단다.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을 비롯한 대표들이 독일 대사관 1등 서기관을 만나서 대화를 했다. 평화의 소녀상 철거 문제는 독일 정부가 전시 성폭력을 어떻게 보는지를 가늠하는 징표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전달했단다. 이 문제를 그냥 넘기려고 하면 독일 정부가 지금까지 했던 홀로코스트에 대한 반성이 모두 거짓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니까 1등 서기관이 우리의 뜻을 본국 정부에 확실하게 알리겠다고 약속했단다.
사무총장은 청중들에게 베를린 소녀상을 누가 만든 것으로 알고 있냐고 물었다. 신돌석씨는 갑자기 그런 질문이 들어오자 멈칫해졌다. 사실 잘 모른다. 청중 속에서 별 대답이 없자 독일에 있는 코리안협의회에서 만들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가 같이 만들었다는 것이 팩트라고 하였다. 그것은 소녀상을 제작하고 운송에 필요한 자금을 우리가 후원했기 때문이란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신돌석씨도 언젠가 조금이지만 후원금을 냈던 기억이 난다. 그 소녀상을 우리의 허락도 없이 함부로 철거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 발언자의 주장이었다.
평화의 소녀상은 우리들의 소녀상이고 전세계 시민들의 소녀상입니다. 피해를 기억하고 이런 피해가 일어나면 안 되겠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하기 위해서 평화의 소녀상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일본의 그런 만행에 대해, 베를린 시장의 망언에 대해 왜 아무 말도 안 하는 걸까요? 그런 질문을 하자 정부의 답변은, 시민들이 하는 거라서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본 정부 개입은 적절한가요? 적어도 일본 정부에 너희도 개입하지 말아 라고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삽화-백소(白笑)]
일본 정부의 개입을 비판하고 막으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동조하는 것이 윤석열 정부의 행태라고 사무총장은 목소리를 높였다. 강제동원 문제에서 그것은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요즘은 그것을 넘어서서 기업이 먹고 사는 문제까지 일본에 아무말도 못한다고 하였다. 라인야후 사태에 대해 말하는 것일 테다. 도대체 이런 정부를 믿어야 하나고 발언자는 청중에게 물었다. 아니오 라는 대답이 청중 속 여기저기서 나왔다. 한일관계를 개선했다고 떠벌리지만 개선한 것이 아니라 일본에 굴종적으로 모든 것을 내주고 있다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리라.
얼마 전에 한일정상회담이 있었지요. 그날 비가 몹시 내렸어요. 그런데도 이용수 할머니께서 몸소 나오셨어요. 일본 정부에 항의하고 한국 정부에 요구하는 서한을 직접 읽으셨어요. 역사 정의에 눈감지 말라, 한국정부는 당당하게 외교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피해자인 자기 나라 국민을 외면하고, 가해자인 다른 나라에 아무말도 못하는 현실이 정말 슬픈 일이지요. 한국 정부의 이런 태도에 대해서는 외국의 시민단체들도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들 말합니다.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정부나 지방정부도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사실상 그렇게들 생각하고 있지요.
독일 중부 헤센주에 있는 카셀 주립대에서 평화의 소녀상을 갑자기 철거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미대생들이 부당함을 알리는 퍼포먼스를 계속하고 있어요. 이 소녀상의 이름이 누진이라고 합니다. 학생들이 지은 이름이랍니다. 나아가서 누진을 돌려달라는 전시회를 연다고 해요. 카셀대가 치운 것에 대한 부당함을 알리려는 것이지요. 베를린에서는 일본인들도 규탄 시위를 했어요. 소녀상 철거를 시사하는 발언을 한 베를린 시장에 대해 세계인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일본인들이 규탄 시위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자 신돌석씨는 오히려 문제는 우리나라 극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부대라는 곳의 대표나 그 외 극우인사들이 베를린에 가서 철거하라는 요구를 했었다. 기가 막힌 일이다. 오히려 독일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했다고 한다. 일본 정부의 집요한 노력도 문제이지만 그들과 함께 철거를 위해 애를 쓰는 이들이 우리나라에 있다. 그들이 극소수인 것이 아니라, 정부여당의 상당수가 그들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분노를 넘어서 허탈해질 때도 있다.
발언자는 보고 형식으로 중요한 이야기들을 이어나갔다. 작년 11월 23일 한국법원이 일본에 손해 배상하라고 판결을 했단다. 이 판결문을 일본 총리 외무대신 등에게 법적 대리인 통해서 내용증명으로 보냈다고 한다. 수취한 것을 확인했단다.. 변호사들에게도 보냈다. 이것은 의지만 있으면 일본 재산 처분해서 법적 배상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양심의 법정이 아니라 현실의 법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그럴 의지가 없다. 정의기억연대는 시민들과 함께 이 판결의 집행을 하나하나 확실하게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과제를 이야기했다. 지금 우리가 한 곳을 잡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면서 시위를 해야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부정 혐오 세력이 날로 활개를 치고 있다고 하였다. 그들은 전국 소녀상에 혐오를 씌우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에 대해 각 지역에서 모여서 논의를 했다. 같이 대응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것을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은 피해자보호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21대 국회에서도 발의는 했으나 여가위에서 논의도 못 되고 폐기되었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부정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란다.
피해자 보호법 개정이 되어야 저런 터무니없는 행동들을 막을 수 있다고 하면서 22대 국회에서 바로 발의를 해서 통과시키도록 우리 모두 총력적으로 대응하자고 하면서 사무총장의 말은 끝을 맺었다. 이어서 정의기억연대 부설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에서 활동하고 있는 학예사의 보고가 있었다. 이곳은 피눈물 나는 할머니들의 역사를 아이들에게 알게 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해달라고 당부하신 김복동 할머니의 뜻에 따라 아이들의 공부방이 되기 위해 쉬임없이 활동하는 곳이라고 설명하였다.
학예사의 활동보고가 끝나자 연대사의 시간이 있었다. 제일 먼저 시민사회단체 대표 한 사람이 나와서 연대사를 하였다. 그는 30여 년 전인 1991년 이전에 우리 사회에 일본군 위안부는 공식적으로 없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하였다. 떠도는 이야기도 있고, 소설에도 나오고, 심지어 드라마에도 나왔는데 자기가 일본군 위안부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기록도 없었다. 그는 드라마를 인용했다. 원작 소설을 드라마로 만든 ‘여명의 눈동자’였다. 신돌석씨도 신문에 연재되던 소설을 가끔 보았고, 드라마는 아주 재미있게 보았었다.
[삽화-백소(白笑)]
당시 톱스타라고 할 수 있는 탤런트들이 주역을 하여 인기가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이 얼마나 사실적인지 피해자들의 삶을 제대로 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막에서 샘물이 솟아나듯이 물꼬를 튼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다가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통해서 비로소 일본군 위안부가 실재한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피해자임을 증언하고 나섰다. 왜 그때까지는 아무도 스스로 나서지도 않고, 누구도 밝히려고 하지 않고, 허구적 장치로만 이야기하는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나 나왔을까?
발언자는 역사적 진실 규명에서는 그것을 규명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을 방해하는 세력이 반드시 있다고 하였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인데 거기에는 세 세력이 있다. 그 중 첫째는 당연히 가해자인 일본이다. 그런데 가해자를 모든 일본인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발언자는 일본인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우리가 미워하는 것은 일본제국주의, 일본군국주의이다. 발언자는 지금의 일본 정부나 극우세력이 사실상 군국주의의 후예임을 단정하고 말하는 것이라고 신돌석씨는 생각하였다.
방해하는 세력의 둘째는 역대 독재정권이다. 그리고 거기 빌붙은 수구세력이다. 발언자는 우리나라 역대 독재정권은 아무리 부정해도 친일 정권이다. 친일이라는 것은 단순히 일본과 친한 것이 아니라, 일본제국주의, 군국주의에 빌붙어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왜 1991년 이전에는 일본군 위안부가 나타나지 않았는가? 역대 독재정권이 알게 모르게 막아 왔기 때문이다. 1991년 이후에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졸속으로 합의하고 돈만 조금 받고 다시 거론하지 않겠다고 한 적이 있지 않은가? 바로 박근혜 정권이다. 독재정권 아닌가?
발언자의 말에 따르면 지금 이 정부도 독재정권의 맥을 잇고 있기 때문에 일본에 굴종외교를 하고, 일본과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이 싫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과 대등하고 호혜적인 관계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앞서서 여러 사람이 말한 라인야후 사태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하나에서 열까지 일본이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지만 아무것도 요구하지 못하는 등신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행태에도 민간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소극적으로 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신돌석씨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이것을 연결해서 생각해 보니 역시 우리나라의 독재는 매국세력이고, 친일잔재임에 틀림없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100년 전 일을 두고 무릎 꿇고 사죄하라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는 자가 대통령이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일본이 침략해서 조선이 망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부패하고 무능해서 망했다는 자가 비서실장이다. 반민특위 때문에 나라가 혼란스러웠다는 자가 여당 대표가 될지도 모른다. 이토히로부미가 인재라고 추켜세우는 자가 여당 주요 당직자를 하고 있다. 이들을 친일세력이 아니면 무엇이라고 부를까?
김학순 할머니에 이어 수많은 할머니들이 내가 바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고 산 증거라고 하면서 일본제국주의의 만행을 증언하였다. 발언자의 말에 따르면 온 국민이 6월민주항쟁을 통해 이 분들을 부활시킨 것이다. 그리고 부활한 이 분들이 민주투사가 되어 우리의 민주주의를 풍부하고 강인하게 끌고 나가셨다. 그 구현체가 바로 오늘 하고 있는 수요시위다. 30여 년 동안 지속된 수요시위는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민주주의운동이다. 우리는 이것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더욱 강인하게 더욱 확장되게 해야 한다.
여기까지 말한 발언자는 그런데 세 번째 방해 세력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하였다. 우리 자신이 일본군 성노예 피해에 대한 진실 규명을 가로막아 왔다는 것이었다. 신돌석씨는 여기서 귀가 쫑긋해졌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방해했다는 것일까? 일본이 부정하고, 독재정권이 가로막았다고 하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우리 자신이 방해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발언자는 전쟁폭력 중에서도 성폭력은 이중의 가해가 있다는 말로 시작하였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성폭력이었기 때문에 그 해결에 더욱 진실 규명이 어려운 점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