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남도 기행- 벌교
여자만 서북쪽 진주 갯벌로 유명세
참꼬막·바지락·조개 등 자연의 보고
유서깊은 홍교와 슬픔 안은 부용산
세상 만물이 얼어붙는 겨울, 진주 갯벌로 유명짜한 벌교로 참 꼬막 여행을 떠난다.
겨울 들목부터 이듬해 봄이 올 때까지 벌교천과 여자만 일대는 참 꼬막 채취로 삶의 활력이 넘친다. 여수시를 끼고 고흥 앞바다에서부터 벌교를 거쳐 순천만으로 이르는 말굽형 바다가 여자만이다. 여자만의 서북쪽 벌교 대포· 장안리는 전형적인 어촌마을로 풍성한 갯벌의 자연보고다. 참 꼬막, 바지락, 맛 조개, 짱뚱어 산지로 유명하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하는 이 마을은 겨울이면 두껍게 옷을 껴 입은 아낙네들이 참 꼬막을 캐러 갯벌로 나가 하루의 일과와 삶을 이어간다. 아낙들은 통상으로 스노보드처럼 넓적한 판자로 된 '널 배(혹은 뻘 배)'를 이용한다. 널 배에 한쪽 무릎을 대고 다른 한쪽 다리로 밀면서 미끄러지듯이 나아가 30km쯤 떨어진 돌섬까지 간다. 이 널 배는 얼핏 보기에 쉬어 보이지만 앞으로 나가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어설픈 사람이 호기심으로 널 배를 타보지만 용만 쓰고 제대로 전진하지를 못한다. 아낙들은 숙달된 실력으로 이 널 배를 타고 다니면서 작업을 하지만 그 일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보통사람들은 이해를 못한다. 그저 눈으로 즐겁게 구경하며 낭만에 젖어드는 그런 풍경이 아니다. 살을 에는 바람을 참아내며 그날그날 생활의 수확을 걷어 올리는 삶의 현장이다. 그러나 그들에겐 언제나 웃음꽃이 피어난다. 하루종일 고된 일을 하지만 적잖은 수입이 짭짤하기 때문이다.
물이 빠지면 앞바다 일대가 거대한 갯벌로 변한다. 수만년에 걸쳐 20미터 깊이가 넘게 형성된 갯벌에는 해양 무기질의 영양소가 쌓이고 쌓여 그야말로 진주갯벌의 영양 밭이다. 꼬막 종패가 서식하기에 알맞은 기후 조건과 수온으로 그 곳에서 자라는 참 꼬막은 토실토실 살이 찬다.
흔히 갯벌은 우리나라 서해안권의 모래 갯벌, 진해의 진흙 갯벌, 벌교의 찰떡 갯벌과 중국의 황토갯벌 등 4종으로 대별되는데 이중 으뜸이 찰떡 갯벌(찰 갯벌)인 벌교 갯벌이다. 지난 2006년 국내 해안 습지로는 처음으로 '람사(국제습지보전협약)'에 등재됐다. 이 갯벌에서는 4월부터 9월말까지 맛 조개, 여름 장마가 지나고 가을까지는 짱뚱어, 찬바람이 부는 겨울 들목이 되면 꼬막철이다. 꼬막은 참 꼬막과 새 꼬막 그리고 피 꼬막 세 종류로 나눈다. 여기에 똥 꼬막도 포함된다. 새 꼬막은 양식(25년)이며 자연산은 참꼬막과 피꼬막이다.
참 꼬막은 23%의 단백질과 필수아미노산, 나이 아신, 히스티딘 등을 비롯해 타우린과 베타인 성분이 있어 강정효과가 높아 간 해독에 뛰어난 효능을 가지고 있으며 비타민B 복합제로 B12, 철분, 코발트가 많아 여성이나 노약자들에게는 겨울철 보양 식품이다. 참 꼬막은 자연 그대로 일 때는 많이 채취할 수 없고 1ha(3천 평)씩 나눠 해당 어민들의 고유번호와 이름을 붙인 양식 어업 형태로 채취한다.
참 꼬막은 갯벌에서 숨어살지만 햇빛을 보지않으면 안되고 항상 물이 들고 빠지는 환경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한다. 희한한 것은 온도가 40도가 넘어도 죽지 않는데 수많은 꼬막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갯벌 안으로 파고들지 못한 상태에서 온도가 0도 이하가 되면 금방 동사해버린단다. 꼬막 껍질에는 가로줄 무늬가 나 있다. 그 사이에 나무의 나이테처럼 분간 가능한 골이 꼬막의 나이를 말한다.
참 꼬막은 3년 된 것이 가장 맛있다. 사람의 혈액과 흡사하다는 꼬막의 육질과 피가 가장 싱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성장한다거나 5년이 넘으면 싱싱한 맛이 다해 검은 피가 흐른다. 참 꼬막은 회로 무쳐 먹거나 삶아서 그냥 속을 내 먹거나 양념장을 발라 먹는다.전을 부치기도 하고 젓갈을 담기도 한다.
벌교를 상징하는 읍내의 홍교 또한 볼만하다. 벌교라는 명칭은 '떼다리'란 우리말을 한자로 옮긴 것으로 예전에는 이 자리에 뗏목을 이은 다리가 있어 벌교(筏橋)라는 지명이 생겨났다. 조선조 숙종 44년(1718) 당시 낙안현 주민들이 현 위치에 떼다리(벌교), 강과 해류가 교차하는 곳에 원목(뗏목)으로 다리를 놓았다. 영조 4년(1728년)에 대홍수로 다리가 유실되자 1729년 선암사 초안(楚安)과 습성(習性) 스님에 의해서 공사가 완료됐다. 영조 13년(1737) 3칸의 무지개 다리로 다시 고치고 그 후 보수공사를 통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무지개 모양을 한 다리 밑의 천정 가운데 마다 아래를 향한 용머리를 조각했다. 물과 용의 관계에서 오는 민간신앙의 표현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이 용의 코끝에 풍경을 매달아 은은한 방울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한다. 다리가 놓인 강에는 바닷물이 드나드는데, 썰물 때에는 밑바닥이 거의 드러나고, 밀물 때에는 대부분이 물속에 잠긴다. 원래 폭 4m, 길이 80m에 이를 정도로 화려하고 거대하면서도 단아한 멋을 풍기는 선조들의 뛰어난 기술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여행정보-TIP 주변 볼거리
부용산
조선시대에 봉수대가 있었고 일제 강점기 때 신사가 있었다는 M1 고지. 이곳에 오르면 올망졸망 벌교 읍내가 훤히 보이고 부용산에 이른다. 좁은 산자락 운치 있는 나무들과 숲길에 '부용산 오리길'이라는 표지석이 보이는 곳에는 노래비가 세워져있다. 그 노래말을 지었다는 박기동 시인의 누이 박영애의 영혼이 부용산(벌교사람들은『절산』이라고 부른다)자락에 묻혀 있다. 미처 피지 못한 채 저세상으로 떠나버린 여동생을 가슴에 묻고 터질 것 같은 슬픔을 안은 채 그 산을 내려왔다는 시인의 제망매가. 50년이 넘도록 숨어 불러야 했던 '부용산'노래는 몇 년 전부터 잔잔한 감동으로 되살아났다. 목포 출신 연극인 김성옥의 꾸준한 노력 덕분이었다. 김성옥은 전 환경부장관이자 연극인인 손숙씨의 남편이다. 김성옥은 오랜 전 이 노래의 탄생배경을 알아보고 악보를 입수해 '부용산 음악제'를 열어 이 노래의 한을 풀어주기도 했다. 1997년에는 '민중가수'로 불리는 안치환이 '부용산'을 취입했고 그 외 몇몇 가수들에 의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태백산맥무대) 문화해설사와 함께하는 투어코스 및 안내
주릿재(율어)-추동저수지-고읍들-들몰-김범우집(봉림 김병옥씨 본가)-횡게다리(홍교)
소화(昭和)다리 -서민호 야학(구 대광교회-돌 교회)-현부자 제각-소화의 집(박봉래 제각)
철다리-중도방죽(중도방천)-벌교역전 -정미소-박공장(부영아파트)-솥공장(대창기계)
남원장-금산관, 대영관-정도가네(국일 식당 부근)-북초등학교(벌교여중)
-청년단(진성상사)-M1고지(체육공원)-경찰서(세운장)-석거리재-뱀골재-진트재굴 -용연사
먹을거리
고려회관-꼬막정식의 명가
벌교 읍사무소 바로 앞에 있는 고려회관에서 가장 먼저 맛봐야 할 메뉴는 역시 ‘꼬막 정식’이다. 적당히 찢어낸 김 조각에 고소한 참기름을 듬뿍 넣어 버무린 꼬막 회무침으로 밥을 비벼 먹으면….이게 바로 밥도둑이다. 청정 해역 벌교의 질 좋은 갯벌에서 잡히는 최상품의 꼬막을 하루 쓸 분량만 사용하고 있다. 양념 없이 바구니 째 차려주는 꼬막도 푸짐하다. 파·홍고추·깨 등 색색으로 치장해 부쳐낸 꼬막부침개 또한 별미다. 이 모든 요리의 맛은 정갈하고 활달하고 타고난 손맛을 자랑하는 여주인 조점순( 53)씨의 솜씨다. 문의-061-858-2959.
첫댓글 꼬막 한포대 사다가 삶아먹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