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생애
.1786년(정조10년) 병조판서 김노경과 어머니 기계유씨 큰아들로 한양에서 출생
(추사 증조부는 영조의 화순옹주의 부마)
.6세 대문에 정희가 쓴 입춘대길을 보고 재상 채제공은 장래 명필이 될거라 예언함
총명하여 북학파 박제가 문하에서 수학
.8세 아들 없는 큰아버지 양자로 들어감
.15세 한산이씨와 혼인
.20세 부인사망
.23세 예안이씨와 재혼
.24세(순조9년) 부친 따라 청나라 북경의 완원에게 고증학 공부
(후에 존경의 뜻으로 완당이란 호 사용)
귀국하여 생원시 합격
.30세 수락산에서 동갑 초의선사와 처음만남
.31세 금석학이란 돌과 쇠붙이의 글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북한산 비봉의 비석이 진흥왕 순수비임을 고증함
.34세 문과 급제
.41세 충청도 암행어사
.51세 성균관 대사성, 병조참판
.52세 부친사망 청계산 옥녀봉 중턱에 묘 조성
.55세(헌종6년) 기묘사화 윤상도 옥사에 연류 국문을 당했으나
벗인 우의정 조인영의 상소로 목숨을 건지고 제주도유배 위리안치(가시울타리로 가둠)됨
.64세 제주유배 9년에서 풀려남
.66세(철종2년) 다시 함경도 유배
.67세 유배에서 풀려나
과천 과지초당에서 생활
.71세(철종7년) 강남 봉은사 현판(판전;板殿)씀
이해 10월10일 과지초당에서 서거
.세한도(歲寒圖)
몹쓸 바람이 부는 제주 모슬포 앞바다
유배 중 제자 소치 허련은 3번 바다건너 찾아왔고 초의선사는 찾아와 6개월을 함께 하였다.
특히 제자인 역관 이상적이 청나라에서 귀한 서적을 가져오므로 세한도를 그려줌
세한이란 설 전후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송백(松柏)은 독야청청(獨也靑靑)한다는 뜻이다.
이후 이상적이 죽고 일본 철학교수 후지츠카 치카시손에 들어간 세한도를
손재형 선생의 끈질긴 설득에 기증받아
현재 진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황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