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7.14 주일 낮 설교
-민 돈 원 목사(동의교회 담임)-
.성경:막8:14-21
.제목:영적불감증을 극복하라
불감-증 (不感-症) :감각이 둔하거나 익숙해져서 별다른 느낌을 갖지 못하는 증상.
1931년 미국 여행 보험사 직원인 하인리히는 75,000건의 보험 사고를 분석한 결과 대형사고 한건이 발생하기 이전에 관련되는 소형사고가 29회 발생하고 또 그 29건의 소형사고 이전에 비슷한 사소한 징후들이 300번 나타난다는 통계를 근거한 1: 29: 300 이것을 ‘하인리히 법칙’이라고 부릅니다(PPT영상-1)
산림청은 지난 2011년 여름 장마때 폭우가 쏟아지자 `산사태 위험지구 발령 대상` 지역임을 알리는 문자메시지(SMS)를 서초구 담당자들에게 발송했습니다. 그러나 서초구는 이를 통상적인 예보로 가볍게 여긴 나머지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당시 서초구 관계자는 "예보 메시지 내용은 구체적인 위험 지역을 특정해 알려주는 방식이 아니라 `비가 많이 오니 산사태에 주의하라`는 식의 포괄적 내용이라 큰 실효성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SMS 발송을 담당하는 산림청 치산복원과 관계자는 "연속 강우량, 일(日) 강우량, 시(時) 강우량을 모두 따져 발송한다"며 "`귀 관할 구역은 산사태 위험지구 발령 대상`이라는 내용으로 통보한다"고 말했다.
산림청이 산사태 위험등급 1등급 지역으로 분류한 우면산에 대해 서초구는 별다른 예방 대책을 취하지 않은 것입니다. 같은 날 중랑ㆍ금천 등 다른 구청들이 산사태주의보나 경보를 발령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당시 산사태 참사가 발생한 서초구 우면동 형촌마을에 속한 산을 비롯하여 비슷한 날 춘천에서 많은 대학생등 13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등 우리나라가 산사태에 취약한 이유로는 기상, 지형ㆍ지질, 인위적 훼손 등이 꼽힙니다.
이러한 서초구의 전반적인 `재난안전 불감증`이 결국 산림청의 `산사태 위험지구 예보` 묵살로 이어졌던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전문가들이 모두 이번 피해의 주된 원인으로 `주먹구구식 개발`을 꼽고 있는 점에 비춰볼 때 신 구청장의 잇단 `개발을 통한 수해 방지` 발언은 재난안전 불감증을 반영한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습니다.
<영상2 : 당시 블랙박스에 찍힌 우면산 산사태 상황>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34617543
신호등을 보면 파랑 불은 가라는 신호, 빨강 불은 정지하라는 신호입니다. 달력을 보면 주일을 표시하는 숫자는 모두가 빨강 색입니다. 주일에 무디어지면 그런 색이 구분되지 않습니다. 이 역시 영적불감증의 증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음의 역사적인 큰 사건을 우연의 일치라고 말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침묵하시는 뜻이 담겨 있다고 봅니다.
나폴레옹이1813 년 10 월 17 일 영국을 침략했다가 웰링턴 장군에게 망했다. 주일에 영국을 침략했다가 거대한 권력도 52세로 몰락하였고 김일성은 주일에 대한민국을 쳐들어와서 그 결과 북한은 최고로 가난한 나라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일본역시 1941년 12월 8일 일본이 미국을 침공했다가 원자폭탄의 피해를 입고 나중에 미국에 항복하게 됩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근대사에 길이 남아 있는 최대의 해상사고였던 46,000톤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영국을 떠나 미국 뉴욕으로 가다 일어난 침몰사고 역시도 지금부터 100여년전인 1912년 4.14 주일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북 부안에서 격포를 향하던 100톤급 서해 페리호 여객선이 침몰한 날이 1993.10.10주일이었습니다. 당시 362명의 승객중 292명이 목숨을 잃은 대형 참사였습니다. 침몰한 그때의 시간이 전국 대부분 교회의 예배드리는 시간인 주일 오전 11시 무렵이었습니다.
<이번 아시아나항공 샌프란시코 공항 착륙전 폭발사고7.6일 인천을 떠나 7일 주일 새벽3시28분 >마의 11분대:74%(이륙3분, 착륙8분 지난 1997년 대한항공 여객기의 괌 충돌사고, 80명이 목숨을 잃은 1989년 대한항공 리비아 트리폴리 공항 추락사고, 66명이 사망한 1993년 전남 해남군의 아시아나항공기 추락사고도 모두 착륙 직전 일어났습니다.
‘마의 11분’대에 사고가 많이 나는 중요한 이유는 조종사가 이 시간대에 항공기를 완전히 제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륙할 때는 비행기가 최대한 힘을 내서 떠오르는 중이어서 기체 결함 등 위험요인을 발견해도 조종사가 즉각 대처하기 어렵고 착륙 전에는 항공기가 고도를 크게 낮춰 지면과 가까워진 상태이므로 긴급사태가 발생해도 조종사가 기수를 갑자기 올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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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사회’(risk society)라는 저서를 쓰고 2008년 한국을 방문한바 있는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 교수는 현대사회에서의 인간의 삶을 '문명의 화산 위에서 살아가기'로 비유했다. 이는 현대인들이 산업화와 과학기술의 발달로 안락과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그 대가로 사회생활에 대한 위험도가 증가하게 되었다는 '위험사회(risk society)'를 의미합니다.
사회가 풍요할수록 위험의 크기와 강도는 비례하고 위험과 안전이 공존한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당시 방문하여 그는 한국을 ‘잠재된 위험한 사회’라고 규정했습니다.
예컨대 우리 사회에 만연된 안전 불감증이고 서로간의 불신과 책임회피입니다. 그간 기관은 기관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왜 내가, 왜 우리가?”, “설마 내게” 라는 의식이 팽배해 왔던 것이 사실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중국 사천성의 막대한 피해에 이어 지난해 세계경제 중심이라는 일본이 가공할만한 지진사태와 뒤따른 쓰나미로 이웃나라인 일본이 엄청난 피해를 당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100년만의 폭설, 폭우 등 자연의 극한상황 재해가 곳곳에서 일어났습니다. 최근몇년전 미얀마에 싸이클론(열대성태풍)으로 인해 40만명이상이 사망 또는 실종 150만의 이재민이 발생 했습니다. 안전지대라고 하던 지진도, 백두산의 이상 기류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을 만큼 가까이 와 있습니다. 대자연의 울부짖음 앞에 현대 문명의 이기는 속수무책 검푸른 파도에 떠밀려 버렸습니다. 이제 누구에게 책임을 묻고 의지할 여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매슬로우(A.Maslow)라는 심리학자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구분했습니다. 그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중요한 욕구가운데 하나로 ‘안전에 대한 욕구’를 역시 꼽고 있습니다. 1차적 욕구인 생리적 욕구를 비롯하여 안전의 욕구, 애정의 욕구, 존경받으려는 욕구, 그리고 자기 실현의 욕구단계로 점점 나은 욕구를 추구하며 살아간다고 보았습니다. 사실 그 가운데 안전에 대한 욕구만큼 안전에 대한 위협을 받고 사는 시대가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인 것 같습니다. 동시에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경제수준이 향상되면 될수록 그만큼 안전에 대한 위협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의학이 발달될수록 병의 종류와 치명적인 병의 위협은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신무기를 팽창하면 할수록 전쟁의 위협은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편리하게 살려다보니 환경위협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이뿐입니까? 우리 자녀들이 학교폭력, 음란문화에 노출되어 안심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장래가 안전합니까? 직장이 안전합니까? 가정이 안전합니까? 더욱이 경제위기, 정치적 불안정, 수입개방화로 인해 서민들의 생활이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국내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대량희생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런 재난은 비단 경제 대국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렇듯 세계 어느 곳도 안전지대는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매일 불안을 걱정하며 두려워하고 살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에게는 이렇듯 안전지대가 없을까요?
시12:1-5에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고 믿음직한 자들이 없어졌다고 말씀합니다. 그 대신 두마음가진 말들과 위협하는 말들, 교만한자들의 말들이 무성한 것에 대해 다윗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다. 존 웨슬리도 미국 항해 중 모라비안 교도들로부터 큰 교훈을 받았습니다. 폭풍으로 인해 웨슬리가 두려워할 때 모라비안들은 평안하고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당신은 예수님을 아십니까’ 예, ‘나는 그를 세상의 구주로 압니다’. 그러자 다시 물었습니다. ‘그가 당신을 구원하신 것을 압니까?’ ‘네 나까지 구원하시기 위해 돌아가셨기를 바랍니다.나는 북미토인들을 회개시키기 위해 가는데 오! 나는 누가 회개시킬까 누가 나를 이 사망을 무서워하는 공포에서 구원하여 줄까 나는 분노의 자식이요 지옥의 지식이로다’하면서 심적으로 매우 고통스러워 하던 그때 피터 뵐러목사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에게서 웨슬리는 구원의 도리가 행함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게 된다는 사실과 그런 자들을 용서하시고 심적 평화와 죄를 이기는 능력을 순간에 얻는 것임을 강조하는 가르침을 알게 되면서 다시 전도의 힘을 얻게 됩니다. (구원은 순간적, 변화와 구원의 완성은 점진적)
그래서 시4:8에서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세상 어디도 안전하지 않지만 하나님만이 가장 안전한 곳임을 말씀합니다.
여러분, 은행이 안전합니까? 보험에 들어있는 그 무엇 때문에 안전합니까? 돈을 좀 모아 두었기에 안전합니까? 자녀가 좀 공부좀 한다고 안심이 되고 미래가 안전합니까? 내 건강을 체크해 주는 집안에 잘 아는 주치의가 있어서 안전합니까? 그렇게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이라 말씀하는지를 들으십시오. 잠언 29:25은 말씀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다시 한번 묻습니다. 여러분 가정이 안전합니까? 자녀들은 안전합니까? 건강은 안전합니까? 직장과 장래는 안전합니까? 우리 교회는 안전하다고 여기십니까? 이 사회가 안전하다고 생각합니까?
우리 시대의 문제는 안전불감증과 함께 오늘의 시대의 믿음의 사람들의 문제 역시 점점 무디어져 가는 믿음 불감증입니다.
믿음 불감증의 원인 무엇이 문제일까요? 강단이 복음의 능력이 무력해진다는 데 있습니다. 복음은 생명입니다. 예배는 생명입니다. 기도는 생명입니다. 전도는 생명 살리는 일입니다. 이것 하지 않고서 하나님이 다 하신다고 그럴싸하게 이런 말을 일삼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몰려 다니고 가슴에 사무치는 말씀을 듣는 자들은 지극히 제한적인 듯 합니다. 그러기에 왠만한 자극 가지고는 설사 들어도 가슴을 치지 않습니다. 그 결과 뿌린대로 거두고 있고 심은대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치료할 수 있나? 주님은 어떻게 말씀하셨나요? 마11:16-17입니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당대 세계적인 설교자인 스펄젼 목사님이 울고 있는 그를 향해 그의 부인이 물었습니다 “왜 울고 있는가?” “힘든 일이 있느냐?”“무슨 슬픈 소식이라도 들었는지” 를 물었습니다.
이때 스펄젼 목사님이 눈물을 훔치고 차분하고도 심각한 표정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유를 알고 싶소?” “내가 우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날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을 생각해도........... 도무지 감동도 없소" "감격이 사라졌단 말이요"
"이 사실이 너무 가슴이 아파 그러는거요” 하며 슬피 울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잘 보십시오. 제자들은 주님과 동상이몽의 상태인 것을 보여줍니다. 코드가 다르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편한 코드를 선택하면 주님과 맞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인간적으로는 참 좋은데 믿음의 큰 일을 하기에는 한계성이 있어 믿음의 주문 믿음의 요청을 하기가 힘든 경우 있습니다. 목사는 교회를 이끌어 가다보면 도전적인 비전을 제시할 때가 있습니다. 대체로 우리성도들은 참 성실하게 사십니다. 대접하고 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 아내가 피를 먹는 것 같다고 감동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마음을 서로 읽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의 제자들의 문제는 주님의 마음을 읽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기적을 보이신 것에 대해 제자들의 관심이 떡에 있습니다. 그 바로 앞에 있는 11-13절에 바리새인들은 여전히 표적에 관심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경고합니다. 이 때 제자들이 웅성거리면 하는 말, ‘우리에게 떡이 없기 때문에 그러시는가 보다...’ 그것을 아시고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눈이 있어도 듣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이미 6장에서 오병이어로 5000명 먹이시고 12광주리 남은 기적을 상기시켜 줍니다. 이어서 요8:1-10에 행하신 떡 7개와 작은생선 두어마리로 4000명 먹이시고 7광주리 남은 기적을 떠오르게 합니다. 제자들은 관심이 예수님이 되지 못했습니다. 또 다시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영적 불감증 상태에 있는 제자들이었다는 뜻입니다.
영적 지각이 없으면 불감증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극복할 수 있습니까?
1)하나님과 코드를 맞춰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늘 본문에서 떡을 말씀하시면 떡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6장에서의 오병이어-남은 12광주리, 먹이신 5000명, 8장에서의 7병이어-남은 7광주리 4000명 먹이심 기적을 말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믿지 않는 어리석음 지각이 없는 제자들을 다시 교훈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6:33) 우선 순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헨리 클라우드는 그의 책 ‘나는 안전한 사람인가?’에서 안전한 관계에 대해 3가지 요소를 말합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수 있도록 이끌 때이고, 사람들과 친해지도록 이끄는 것이며,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하면서 성경에서 이에 대한 3가지 근거를 찾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마22:37-38에 나오는 첫 번째 계명인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지켜야 하고 사람들과 친해지도록 이끈 것은 이어서 말씀하는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가능하고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엡2:10의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으므로 지으신 분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근거로 제시합니다. 창세기에서 이 3가지를 분명히 증거해 줍니다. 아담이후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면서부터 안전은 위협받게 되었고 이것은 4장에 이르러 가인과 아벨처럼 동생을 죽이는 형제간의 관계단절로 이어졌고 그리고 노아의 방주이후의 사건등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목적한 대로 선한 일을 위해 살지 못하게 되는 연쇄적 불행을 성경은 밝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류의 불행과 저주를 구속하시기 위해 새로운 언약을 맺게 해 주고 안전한 관계를 회복시켜 줄 분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2)바리새인의 누룩을 제거해야 합니다. 종교적 겉치레, 지식이 있으나 헌신이 없음, 자기잣대로 주님을 판단, 주님의 일에 동의하지 않고 흠집만 잡는 자들 자기의만 드러내는 자들 . 경고해도 늘 무시하는 자들, 행동으로 본을 보이지 않는 자들을 일컫습니다.
3)헤롯의 누룩이 제거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기 위해 빌라도가 당일에 친구, 타협한 헤롯의 권력 , 명예, 성공과 같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는 자들, 예수님도 죽이고 믿음의 사람을 멸시하는 풍토입니다.
오늘 이 시간 영적불감증으로 굳어진 마음이 주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녹아진 사랑으로 나타남으로써 우리의 영원한 안전지대이신 오직 예수님, 예수님만을 소망하므로 신앙의 불감증에서 성령님께 예민하여 무디어진 신앙을 이번 매일기도회와 여름행사 그리고 매 시간 예배를 통해 회복하는 삶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