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놉시스)
신라 제31대 신문왕 시기는 3국으로 분열된 나라를 통일된 신라의 사회문화적인 새로운 통일된 사회로 이행되는 변혁의 격동기였다. 새로운 정치 이데올로기로써 당나라의 유교를 받아들여 왕권을 강화하고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인재를 등용해야 하는 시대가 요구하는 개혁의 꿈을 꾸고 있었다. 임금의 장인이었던 김흠돌의 반란을 평정하고 이를 전환점으로 하여 중국의 율령 제도를 도입하여 통일 신라의 새로운 사회를 꿈꾸고 있었다. 이러한 개혁의 선봉에 섰던 한림학사 설총은 신문왕 2년(682) 왕명에 따라서 당나라의 국자감을 표방하여 국학을 처음으로 세우고 서라벌 중심의 표준화된 이두로써 9경을 석독구결로써 교수-학습을 실행하였다. 국학을 거치지 않고서는 공직에 나갈 수가 없고 진출할 기회가 여러 분야에 걸쳐서 공정하게 열려 있었다. 이에 기득권을 누려 왔던 귀족으로서는 이를 갈며 반대하였다. 그 과정에서 홍유후 설총은 힘겨운 개혁의 과제를 풀어감에 있어 기득권 세력과 많은 갈등과 반목의 벽을 넘어야 했다. 마침내 설총은 한림학사 자리에서 해직되는 굴욕을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시대가 개혁의 선봉에 섰던 설총을 다시금 불러들인 것이다.
이러한 갈등과 반목을 넘어서 차츰 안정될 무렵 화왕을 중심으로 하는 간신과 충신의 이야기가 장미와 할미꽃으로 풍자적인 화왕계를 설총에 의하여 만들어지게 된다. 화왕계 창작의 역사 문화적인 배경을 고려하면, 김흠돌 일파의 반란을 평정하고 새로운 통일 신라의 나라를 만드는 과정에 따른 풍자적인 속내라고 볼 수 있다. 머리 부분에서 꽃 중의 꽃 모란은 화왕으로서 간신배인 장미꽃의 현혹에 빠져서 충직한 신하인 할미꽃의 올바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다 할미꽃의 결기에 찬 직언을 듣고 후회하면서 올바른 군왕의 길을 걷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를 적어서 후세 임금들에게 교훈을 삼게 하라는 왕명을 내려 설총으로 하여금 화왕계(花王戒)라는 작품을 지어 남기게 한다. 화왕계라는 작품은 우리나라 한문소설의 효시로서 풍자 소설의 이정표가 되고 있다. 이 작품의 속내로 보면, 한림학사로서 설총(薛聰)이 국학(國學)을 설립하여 공평한 교육의 기회를 통한 인재 등용함에 있어 기득권자인 귀족들의 반발로 한 때 벼슬을 내놓고 야인이 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모란의 원관념은 신문왕, 장미는 설총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귀족, 할미꽃은 설총으로 볼 수 있다. 마침내 교육과 새로운 이데올로기로서 유학을 받아들여 왕권을 강화하고 국력을 안정시키게 된다.
고려 현종 13년(1022) 설총은 홍유후라는 시호를 받고 향교의 문묘에 배향된다. 그 당시 현종은 극심한 가뭄으로 잇단 기우제를 올리는 등 힘겨운 어려움을 겪는다. 이 때 홍유후 설총이 현종의 꿈에 나타나서 자신의 무덤이 사람들의 집 기둥에 눌려서 편안하지 못함을 호소함에 따라서 현종은 이를 해결해 준다. 한편 홍유후는 비를 내리도록 하늘에 청원을 하여 해결해 준다. 사회는 갈등이 해소되어 과정에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정확한 근거 자료는 없으나 그가 내다 보는 앞으로의 예언성 기록을 담은 설총결이 전해 온다. 미래지향적으로 우리 역사문화의 나아갈 바를 예언하고 있다. 홍유후 선생은 갔어도 선생님의 꿈은 이루어질 것이다.
<등장 인물>
설총 : 신라 29대 무열왕 시절에 원효와 요석공주 사이에서 태어났다. 신문왕을 도와서 서라벌 중심의 이두를 표준화하고 이로써 당나라에서 도입한 유교의 경전을 우리말 중심의 석독구결로 풀이하여 국학의 한림학사로서 교수와 학습을 주도한다. 이로써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 유학 교육의 종주가 된다. 그 과정에서 기득권층의 많은 반대에 부딪히지만, 통합이라는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요구에 부응하여 다시금 개혁의 전면에 등장한다. 이러한 시대적인 격동기에 왕명에 따라서‘화왕계’를 지어 후세 임금에게 교훈으로 삼게 한다. 선생이 지은‘감산사미타불화광후기’에 일부 이두자료가 남아 전한다. 고려 현종 13년(1022)에 홍유후라는 시호를 추증받았으며 문묘에 배향된다. 마침내 동방 18현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신문왕 : 신라 제31대 임금으로 통일 신라의 제도를 정비하고 국학을 세우고 유교를 도입하여 새로운 정치 이데올로기로써 왕권을 강화하였다. 즉위 초에 장인이었던 김흠돌 일파의 반란을 평정하였다. 이를 계기로 하여 녹읍전과 귀족들의 사병제를 폐지하여 연봉제와 사병들의 중앙군 편제로 정비하였다. 특히 만파식적으로 피리를 불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한 악치(樂治)의 군주였다.
요석공주 : 삼국사기와 화랑세기에 따르면, 요석 공주는 무열왕의 딸로서 김흠운(金歆運)과 결혼하였으나 흠운이 무열왕 2년(655) 오늘날 옥천 땅인 조천성(助川城)에서 백제군과의 싸움에서 전사, 과부가 되었고 두 사람 사이에 두 딸이 있었다고 전한다. 그 뒤 둘째 딸이 31대 신문왕의 왕비인 신목왕후(神穆王后)가 된다. 원효와 만나서 홍유후 설총을 두게 되었고 요석이 홀로 설총을 키워서 국학을 세우고 왕권을 강화하여 통일 신라의 새 장을 여는데 큰 공을 세웠다.
신목왕후 : 신문왕의 왕비로서 폐비가 되어 출궁 당한 김흠돌의 딸이었던 전비에 이은 왕비로서 효소왕의 어머니가 된다.
귀족 : 신문왕 당시 성골과 진골을 중심으로 하는 당시 신라의 지배층인 17관등 가운데 6관등 이상의 기득권 계층을 이른다. 신문왕의 개혁 정치를 돕고 그 선봉에 섰던설총의 국학교육을 직간접으로 반대했던 사람들이다.
매화 : 설총의 스승이면서 당나라 국자감의 태학사 출신으로 신라로 귀화한 온양 방씨의 시조인 방지(方智, 신라 이름 方千慶)의 딸로서 가상적인 이름이다.
학생 : 국학에서 표준 이두로 유교의 경전을 공부하는 가상의 학습생을 이른다. 조선조로 말하자면 성균관의 유생이 되는 셈이다.
현종 : 고려 제8대 임금으로서 고려의 국가제도를 정비하고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하였다. 강조의 정변(1009) 이후 기울어진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지방 세력을 억제하고 중앙집권화를 이끌었다. 성종 이후 폐지된 연등회와 팔관회를 부활시켰다.
여요 전쟁의 불에 탄 고려실록을 다시 편찬, 불력에 의하여 나라의 안위를 위하여 초조대장경을 간행하였다. 유교의 진흥에도 힘을 기울여 설총과 최치원에게 홍유후와 문창후를 추증하고 향교의 문묘(文廟)에 처음으로 향사를 모셨다.
길손 : 가상 현실 속에서 홍유후 설총 선생과 오늘날의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공부하는 학습자로서 시대를 뛰어넘는 선생과의 대화를 한다.
해설사 : 렉쳐 콘서트에서처럼 등장 인물이나 장면의 상황에 대한 해설을 하면서 진행을 하는 인물이다.
제1막 신문왕의 새로운 정치
#1. 새 시대의 바람, 반란을 평정하고도 칼날 같으니까.
귀족1 : (쑥덕공론으로) 뭐라고 해야 하나. 무슨 석독구결인가 하는 새로운 교수법으로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하니 도대체 우리가 아는 한문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귀족2 : (탄식하듯 한숨을 쉬며) 한문으로 된 유교 경전을 우리말 순서로 하는데 한자의 소리와 뜻을 섞어서 한다지. 학생들은 너무나 빨리 익힌다는 것이지. 거 왜 무술오작비나 임신서기석 같은 표기라고 듣긴 했어.
귀족3 : (퉁명스럽게) 이거 완전히 또라이 짓 아닌가. 성현들의 글을 제 마음대로 요리하는 셈 아닌가. 세상이 이렇게 될 줄 정말 몰랐네그려. 거 왜 원효의 군사 암호 해독하는 방법인바, 화독화란(畵犢畵鸞)을 빨리 돌아가라는 뜻으로 풀이하는 방식이라는 거야. 중국의 학자들도 알아먹지 못하는 방법이라고 하지. 참 나 원... . 어디서 그런 방식을 익혔나.
귀족4 :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거 왜 당나라 국자감의 태학사 방지 혹은 방천경이라는 학사에게 배웠다는 것이야. 중국의 반절식 한자 소리의 학습이라는 거지.
(어느 날 신문왕이 설총을 불러서 차를 마시며 다정하고 단호한 어조로 이야기를 건넨다.)
신문왕 : 총지, 통일된 신라의 큰 틀을 짜기 위해서는 새로운 나라에 걸맞은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 무슨 좋은 방안이 없겠는가? 자네는 나의 신하이기도 하지만 집안으로는 내 고종사촌 아우가 아닌가. 아주 소박하게 이야기를 듣고자 하여 이렇게 부른 것이야. 이 자리에서는 나를 폐하라고 하지 말고 형이라고 해라. 알겠제?
설총 : (얼굴을 들어 임금을 보면서) 폐하, 아 참 형님. 아시다시피 당나라에서는 국자감을 만들어 전통적인 교육 기관으로 자리를 잡아 나라의 인재를 길러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새로운 정치 이념으로써 유학(儒學)을 중심으로 왕권을 강화하고 효행을 강조하여 나라의 질서를 바로잡았다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유교 경전이 필요한데 우리에게는 이렇다 할 경전이 없고 인재 양성의 기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자면 국자감을 견문하고 그와 같은 교육 기관을 세우고 거기서 교육하는 유교 경전을 구해서 서라벌을 중심으로 하는 표준 이두로 인재를 양성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신문왕 : (차를 권하면서) 그럼 새로운 교육 기관을 만들고 이에 따른 업무를 자네가 맡아서 추진함이 어떻겠는가?
설총 : 저의 지혜와 능력으로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방지 스승님과 사찬 강수 선생 같은 분이라면 몰라도요. 형님.
신문왕 : 강수 선생은 지난번에 다녀왔잖아. 이번엔 방지 스승을 모시고 자네가 다녀오도록 해. 자네만 믿겠네. 경전도 구해오고 말야. 내가 상대등 진복공에게 특별히 이야기해놓을 테니까 비용일랑 걱정하지 말고. 나라의 정말로 중차대한 소임을 위한 일인데 말야. 뒤에 딴소리 안 하기로 약속하는 거야. 내가 요석 고모님께도 잘 말씀 드릴께.
#2. 경전 구하기의 굴욕
(당나라 국자감 사절단이 꾸려지고 설총이 정사를 맡고 당나라 태학사 출신 방지가 자문역을 맡고 사절 일행이 궁을 찾아서 신문왕에게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한다.)
설총 :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한다.) 폐하, 저희 당나라 국자감 사절단 출행을 보고드립니다. 부디 다녀오는 동안 옥체 강녕하소서.
신문왕 : (특히 태학사 방지를 향하여) 이번 사행에 여러 가지 노고가 크시겠소이다. 태학사의 제자이며 이번 사행의 정사인 총지를 도와서 국자감의 좋은 점과 특히 교수-학습의 교재인 경전 마련에 유념하시고요. 바닷길 다녀오시자면 건강에 각별한 유념을 하실 줄 믿겠소이다.
방지 : (허리를 굽혀 정중하게 두 손을 모으고 답례를 한다.) 폐하의 성은에 보답할지 걱정이 많습니다. 성심을 다하여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춘분이 지난 이른 봄이라고는 하지만 갈매기 벗을 삼아 신라 사행단은 쌀쌀한 바람이 부는 황해를 건넜다. 거의 한 달이 걸려서 산 넘고 물 건너 어렵사리 입국 절차를 거쳐서 당나라 서울 장안 국자감으로 들어갔다. 국자감에서 여러 가지 견학을 하고 이제 황제를 친견하는 자리였다.)
설총 :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힌다) 신라 왕명으로 국자감 견학을 온 백의정륜학사 설총이옵니다. 폐하께 인사 올립니다. 이번 사행길에 국자감 태학사였던 방지 스승을 모시고 왔습니다. 여러 가지 배려를 해주신 황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사절단의 노래) 천황폐하 만수무강 비옵니다. 해동 신라에 경전 한 질 주옵소서. 한 권도 줄 수 없다네. 낭패로다 낭패로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감. 에라, 벽창호야, 벽창호 황제야. 처음엔 줄 것처럼 하더니 이제 와 안 된다니. 빈손으로 가야 하니 이일을 어이 할꼬. (설총의 노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네. 내 비록 자신은 없다 해도 마지막 수를 써볼 테니. 지성이면 감천이라 해지 않은가. |
(황제는 인사를 받자 경전 때문에 온 줄 알고 9경을 내어 보이면서 물었다.)
황제 : 해동 신라에는 이런 유학의 경전이 있는가?
설총 : 없는 줄 압니다. 바라옵건대, 소신이 머무는 곳으로 가져가 보기를 청원합니다.(마침내 설총은 시경과 서경, 그리고 효경 등 9경을 빌려다 하룻밤 만에 그 내용을 다 외우고 며칠 뒤 다시 황궁으로 들어갔다. 절절한 마음으로 황제에게 청원을 한다.)
설총 : 폐하, 해동 신라에는 보여주신 9경이 없사오니, 원하옵건대, 한 질을 신라에 주셨으면 합니다.
(황제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관계 신료들과 협의를 하고 나서 오후에 다시 신라의 설총 일행을 불렀다.)
황제 : 경전을 소장하고 관리하는 신료들과 협의해 본 결과 지금으로써는 한 권도 줄 수가 없네. 다음 기회에 다시 한번 살펴보도록 할 것이야.
해설사 : 천자가 경전을 줄 수 없다고 하여 총지는 빈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총지가 귀국하자마자 당나라 장안에서는 갑자기 큰 소동이 벌어졌다. 이상한 서기가 동쪽으로 서리더니 천둥이 치매 황제가 정신을 차려서 신하들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그뿐이 아니다. 동쪽 바다에 해일이 일어날 때, 선생이 태평가 노래를 부르자 해일이 바로 잠잠해졌다.
(설총의 노래) 바람도 태평성대 바다도 태평성대 천지일월이요, 요순건곤일세 하늘이시여, 태평성대를 내리소서. |
신하 : 황제 폐하, 총지는 해동의 현인으로, 만인이 우러르는 사람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예우를 하지 않아서 하늘이 필시 격노한 것입니다.
황제 : 앗, 내가 잘못했구나. 다음에는 반드시 올바르게 처리해야겠네.
해설사 : 그제서야 천자는 설총을 푸대접하여 9경을 주지 않음에 대하여 크게 뉘우쳤다. 총지는 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외워 온 9경을 바둑을 복기하듯이 죄다 다시 엮었으니 참으로 놀라운 능력이었다. 신문왕을 찾아가서 옮겨 적은 경전을 신문왕에게 보여주었다.)
신문왕 : (너무도 놀라운 모습으로 눈을 크게 뜨고 설총이 기억해서 옮겨 적은 경전을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자네 무슨 천리안이라도 되는 것인가? 경전을 못 구했다기에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내가 아우 하나는 잘 두었단 말이지. 이제 국학에서 아우가 앞장을 서서 우리 함께 힘과 지혜를 모아 통일 신라의 새 일꾼들을 길러내세.
설총 : 과찬이십니다. 어쩌다 겨우 해낸 일일 뿐입니다. 폐하의 뜻을 받들어 힘껏
표준 이두로 경전을 가르치고 올바른 예제를 바로 세워서 국학을 발전시켰으면 좋겠습니다.
신문왕 : (흡족한 듯이) 암, 그렇고말고. 아마도 이런저런 반대도 있을 것이고.
몸과 말조심하시게. 자네가 귀족들에게는 미운 오리 새끼일 것일세. 겁먹지 말고.
(신문왕) 놀랍도다 놀라워. 설총이 해냈구나. 새 시대의 등불 되리. 하늘이 감동한 듯. 통일 신라 바로 세울 터전을 마련한 듯. 누구나 평등한 배움의 길이 열렸네. 해동 신라 만만세. 피리를 불었더니 만파식적을 불었더니. (설총) 폐하의 성덕이 크옵니다. 소신의 작은 정성이 도움이 되었다면 더 바랄 게 없나이다. 만파식적의 은덕이 크옵니다. 폐하 만수무강 하옵소서. |
#3. 석독구결로 경전 교육의 반대와 해임
해설사 : 설총은 왕명에 따라서 국학에서 표준 이두로 유교의 경전을 우리말 순으로 가르쳐 새로운 인재를 정성을 다하여 길러냈다. 문제는 귀족 사대부들이,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이서 도와줄 줄 알았던 강수 선생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성현의 글을 제 마음대로 풀이하고 뗐다 붙였다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쌍심지를 돋우고 나선 이들이 귀족들이었다. 어느 날 어전 회의가 예정대로 열렸다.
상대등 : 폐하, 한림학사 총지의 석독구결 교육으로 성현의 경전을 훼손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아주 높습니다. 이에 대한 의논을 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누구보다도 경전과 문장에 밝은 사찬 강수의 의견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강수 : (무슨 구결로 성현의 경전을 풀이함이 옳지 않다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사찬 강수입니다. 중국에서도 성현의 글에는 술이부작이라 하여 함부로 손을 대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림학사 설총은 무슨 석독 구결이라 하여 곡학아세하는 방법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는 마땅히 시정해야 옳다고 봅니다. 폐하께서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시어 설총의 석독구결 학습법을 중지시키시어 올바른 학습지도를 함이 옳다고 봅니다.
상대등 : (강수의 의견이 당연하다는 듯이) 폐하, 사찬 강수의 의견이 옳다고 봅니다. 설총을 당분간 그 직에서 물러나게 하심이 옳다고 봅니다. 그전에 본인의 솔직한 심정을 들어보고 최종 의사결정을 하도록 함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해설사 : 신문왕은 설총에 대한 인신공격성의 중신들 의견이 마땅하지 않았으나 상대등을 비롯한 조정 중신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어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설총이 나서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자신의 의견을 말하였다.
설총 : 강수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대신들의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그럼 소박하게나마 저의 의견을 말씀 올리겠습니다. 우리말과 중국의 말은 그 순서가 다르고 낱말 끝에 붙는 조사나 어미가 다릅니다. 우리말은 중국의 글과는 달리 말끝에 조사나 어미가 붙지만, 중국의 경우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중국의 한문은 떼고 붙이는 것이 분명하지 못하여 아무리 한문 경전을 익히 잘 아는 선비나 사대부라도 의미나 맥락을 확실하게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물며 새로이 시작하는 젊은 학생들이 문리를 터득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문리를 얻었다 해도 떼고 붙이는 것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경전의 풀이를 좀 더 한문의 속내를 잘 아는 선생이 학생들에게 경전의 원문은 그대로 살리고 거기다 조사나 어미를 붙이되 한자의 뜻과 소리를 빌려서 하면 훨씬 빠르고 쉽게 배웁니다. 특히 혼자서 연습하고 글짓기를 배움에 보다 알기 쉽게 배우고 익히게 됩니다. 절대로 성현이 지으신 글의 내용에 손을 대거나 왜곡하는 것이 아닙니다.
강수 : (말 같지 않다는 퉁명스런 어투로) 설학사, 중국에서도 성현들이 지으신 경전에 손을 대지 않고 국자감에서 학습하는 것을 잘 알면서 그런 억지 주장이 어디 있나요? 설학사의 아버지 원효대사가 암호 풀이를 하여 군사 자문을 잘했다고 그런 가업을 이어받아서 국학의 교육을 망치겠다는 것이요? 무슨 말장난 같은 암호 풀이식으로 성현들의 경전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함부로 학문을 오도하는 일이 될 뿐이라고 보네. 쉽게 그리고 비천한 방법으로 접근함은 매우 틀린 방법이라고 생각하네만.
해설사 : 이건 아예 인신공격성의 발언이었다. 조정 중신들은 하나 같이 강수의 편이었다. 정서상으로 강수는 원효의 불교식 사유가 못마땅하였던 터였다. 안 그래도 국학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교육 과정 때문에 귀족 자제들도 국학의 과정을 거치치 않고서는 종전처럼 추천에 따라서 나아가던 벼슬길이 막혀 버림으로써 엄청난 불만과 소속이 부글거림이 있던 터였다. 임금의 중재가 있었으나 만장일치로 설총의 해임안을 주청하였으므로 자칫 정사를 그르칠 분위기였으니 신문왕은 번민에 싸였다.
신문왕 : (신중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조심스럽게) 중신들의 의견이 그러하니 짐도 잘 생각해 보고 다음 조정 회의에서 결론을 내겠소이다. 그리들 알고 오늘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기로 하겠으니 그리 아시오.
해설사 : 며칠이 지났으나 신문왕은 이렇다 할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냥 설총의 해임안을 마냥 미룰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임금은 설총에게 사람을 보내서 궁으로 들라고 하였다. 차를 함께 하자면서 불러들인 것이다. 설총은 깊은 번민 끝에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결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어머니였던 요석궁주와 아내였던 매화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
신문왕 : (설총에게 차를 들라면서 겸연쩍은 듯이) 총지, 자네가 시련을 겪게 되었음에도 내가 아무런 힘이 못 되어 미안하네. 잠시 머리도 식힐 겸 표준 이두의 방법론을 더욱 확고하게 연구할 겸 쉬는 편이 어떨지?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나 이야기를 듣고 싶네만.
설총 : (머리를 숙이며 송구하다며 두 손을 모으고) 폐하, 소신의 모자람으로 하여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합니다. 폐하께서는 빠른 시일 안으로 중신 회의를 열어 주십시오. 스스로 한림학사 자리에서 물러나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이런 시련을 각오한 바가 있었습니다.
신문왕 : (미안하다는 듯이 어서 차를 들자고 하며 약간의 여유를 얻는다.) 아우님, 너무 실망하지 마시게. 국학교육은 물러설 수 없는 우리의 꿈이잖아. 우리 앞으로 때를 보아 다시 힘을 합쳐 더욱 힘차게 일을 진행했으면 좋겠네. 뭐 좋은 이야기라도 짐에게 들려주면 좋겠네그려.
요석궁주 : (찻자리를 함께 하면서 아들인 설총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통일 신라의 번영과 안정을 위한 국학과 표준 이두에 대한 자네의 꿈이 나와 폐하의 꿈이며 통일 신라의 꿈이라고 생각하네. 우리가 오늘날까지 어떻게 견뎌 왔는데 이만한 시련에 무릎을 꿇을 사람들은 아니잖아. 그렇지. 중업이 아빠. 아마도 중업이 어미도 같은 생각이라고 보네. 고진감래라고 시련을 넘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지혜를 모아 보자고. 힘을 내자고(요석궁주는 찻잔을 들어 건배를 권한다).
신문왕 : 고모님, 고맙습니다. 통일된 신라의 푸른 하늘의 흰 구름 같은 꿈을 설총과 함께 이루어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차를 마시면서 아우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떠세요?
요석궁주 : 좋은 생각입니다. 동감입니다. 폐하.
설총 : (가라앉은 목소리로) 폐하, 이야기 말씀을 하시니 혹시 당나라 이태백의 청평조(淸平調) 설화를 기억하시는지요. 꽃들의 이야기입지요. 꽃으로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괜찮으시다면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신문왕 : (흔쾌하게 허허로운 얼굴로) 그럼, 괜찮다마다. 한번 듣고 싶으이.
설총 : (한번 들어보라는 듯 사설을 늘어놓는다) 어느 해 늦봄 당나라의 현종은 흥경지 동쪽의 심향정 앞에 모란을 구경하러 갔습니다. 어떤 대신이 말하기를,
“모란은 하루에 4색이라고. 아침에 붉고, 낮에는 짙은 청색, 밤에는 짙은 황색이고, 한밤중에는 흰색으로 보인다”
고 했습니다. 당 현종은 그 소문을 듣고 어떤 모란인지 몸소 보러 갔습니다. ‘왜 이름난 명화, 애첩이란 말을 사용했을까’라고 하면서 한림학사 이백을 침향정으로 불러오게 하였습니다. 현종은 이백으로 하여금 시를 짓게 하고 무녀들의 춤을 보며 시흥에 젖고자 하였습니다. 이백은 모란과 귀비를 보고 시를 읊었습니다.
(청평조)-설총이 읊는다 구름 같은 옷차림과 꽃을 닮은 그대 얼굴, 난간 스친 봄바람에 이슬 맺힌 꽃 농염하네. 만일 군옥산에서 그댈 보지 못한다면, 달빛 아래 요대로 그대를 만나러 나아가리. 한 가지의 꽃이 이슬을 머금은 듯 향이 난다. 그대를 만나 운우의 정을 나눔에 애간장이 녹는다. 궁인에 묻는다면 누가 이만큼 아름다울까. 가련한 듯 나는 제비는 새로 단장을 한 듯. 아름다운 저 모란은 모두를 즐겁게 하고, 언제나 임금은 절로 웃음이 피어나네. 봄바람에 그지없는 회한을 풀고, 침향정 난간 북쪽으로 기대고 있네. |
(모란이 피고 지는 아름다운 어느 날 신문왕은 설총의 일로 중신 회의를 열었다.)
신문왕 : 오늘 이렇게 여러 중신들을 모이라고 한 것은 지난번 회의에서 약속한 대로 한림학사 설총의 해임 건을 매듭짓기 위함이오. 며칠 전에 설학사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은바, 일단 설학사는 국학의 교육을 중지하고 그 자리에서 해임을 간청하였기로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하였소이다. 이에 대하여 누가 이의가 있으면 말하시오. 없으면 설학사 본인이 나와서 자신의 거취 문제를 솔직하게 말하기를 바라오.
설총 : 폐하께서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마음만 앞서서 분수도 모르고 함부로 행동한 것에 대하여 여러 어르신들께 송구하기 그지없습니다. 용서하십시오. 표준 이두에 대한 보다 확고한 연마를 하여 앞으로 국학교육에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해설사 : 바로 학사 옷을 벗고 산중으로 물러나 머물렀다. 그가 산으로 들어간 지 사흘이 되었을 때, 갑자기 해와 달이 그 빛을 잃고 온 나라가 어두워지자, 왕이 크게 두려워하여 조정의 일관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신문왕 : 해와 달이 그 빛을 잃다니 이 무슨 변괴인가.?
일관 : 총지 곧 설총은 존경받는 학자인데 이렇다 할 아무런 죄도 없이 물러남에 하늘이 노한 것 같습니다.
해설사 : 왕은 크게 뉘우치고, 총지가 머무는 산으로 직접 찾아가 보니 산에도 해와 달까지도 작아져 그 빛을 잃었다. 왕이 너무 놀라 만파식적 피리를 불어 설총에게 사과하며 친히 설총을 다시 맞이하니 바로 해와 달이 본디 빛을 찾게 되었다.
(신문왕) 만파식적 피리를 불어 서라벌 장안에 해와 달이 제 빛을 찾았네. 설총을 찾아 사과하고 그 자리로 오게 하여 힘차게 인재를 길러냈지. 피리 소리로 하늘과 소통하여 세상을 다스렸지. (설총) 폐하, 너무 자책하지 마소서. 첫술에 배부르겠습니까. 소신이 모자라서 생긴 일이니 힘을 길러 보은하겠습니다. 뵙지 못하는 동안 옥체 보중하소서. |
#4. 복직과 표준이두의 활용
(무대가 점차 밝아지면서 한림학사 차림의 설총과 몇 명의 국학의 학생이 등장한다.)
(설총의 노래) 공든 탑이 무너지랴. 빠르게 알기 쉽게 우리말 순서에 따라서 배우고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나를 따르라. 겁먹지 말고. 누구나 평등한 배움의 길이 열렸네. 폐하의 성덕이라네. |
(학생의 노래) 스승님, 기다렸습니다.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스승님 없는 국학은 불 꺼진 창이었습니다. 아무리 어렵다 해도 배우고 말 걸 스승님 따라서 우리말 순서에 따라서 경전을 풀이한다니 기대가 되는 걸 누구나 평등한 배움의 길이 열렸네. 폐하의 성덕이라네. |
(복직을 알리는 인사를 하면서 스승과 제자들이 함께 박수를 치고 총지, 총지를 연호하면서 기뻐한다. 서로가 부둥켜안고 학생들이 진심 어린 환영을 한다.)
설총 : (무술오작비를 예로 들어 보이면서) 여러분, 반갑습니다. 여기 좀 보시게들. 무술오작비 알지. 여기 달구벌에 둑을 막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만든 빗돌이지. 비문에‘작기지(作記之)’라고 적었는데 우리말식으로 썼다는 것이지. 말하자면‘둑을 만들고 기록한다’는 뜻이니까 글자만 한자이지 우리말 순서에 따라서 글을 썼다는 것이야. 알겠제?
학생1 : (신기하다는 듯이 손을 번쩍 들고 묻는다). 그럼 묻고 대답하다를 ‘문답지(問答之)’라고 적어도 됩니까요?
설총 : 그래, 바로 그거야. 올바르게 뜻을 쉽고 빠르게 알아차렸구먼.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겠지?
학생들2 : (한 목소리로 힘차게 대답한다) 예, 알겠습니다. 배워 보겠습니다. 스승님.
설총 : 조금 어려운 점이 있더라도 따라와야 한다. 잉? 임신서기석에 천전서(天前誓)는 우리말 순서로 읽으면 된다는 것이지.‘하느님 앞에서 맹세한다’와 같은 경우야. 이것을 한문식으로 하자면‘전천서(前天誓)’가 되는 것이고. 알아듣겠나?
학생1 :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문의 순서를 우리말 순으로 다시 쓴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럼 토씨나 어미 같은 경우는 어떻게 되는지요?
설총 : (기특하다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아주 좋은 질문이야. 가장 오래된 금석문인 무술오작비에서‘공부하다’를‘공부여(工夫如)’로 적었으니 여기서 –여(如)를 –다로 읽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학생2 : 그럼 어미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설총 : 흥미로운 질문이야. 선화공주 알잖아. 선화공주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서동요에서‘안고 가다’에 해당하는‘안고’는 안을 포(抱)를 써서‘포견(抱遣)’이라고 써놓은 것을 보면 여기서 안고의 –고가 포견의 견(遣)으로 비슷한 한자의 소리로 우리말을 적은 것이야. 이런 향가를 적은 글자는 좀 어렵고 공자나 맹자가 지은 유교 경전을 읽을 때는 원문은 그대로 놓아두고 단어와 단어 사이나 구와 구, 그리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 한자의 뜻과 소리를 활용하여 우리말을 적어두는 것이야.
(표준 이두에 대한 경전 풀이는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서동요 같은 향가의 표기에서 보이는 말음첨기에 대한 풀이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설총과 함께 방지 스승에게서 한자의 반절식 공부와 경전 풀이를 연마했던 매화는 설총의 아내이자 학문의 동지였다. 동시에 그녀는 방지 스승의 따님이었다.)
설총 : (뭔가 향찰과 이두에 대한 풀리지 않는 점에 대하여 답답해하면서 아내인 매화를 보면서) 중업 엄마, 날 좀 봅시다. 한자 발음에서는 우리 말에서 쓰이는 미음(ㅁ)이 거의 니은(ㄴ)으로 나던데 향가에서는 한자로 어떻게 썼는지를 찾아보고 있어요. 혹시 우리 밤(夜)을 적으려면 아래에다 미음(ㅁ)으로 소리를 받쳐서 적어야 밤(pam)으로 소리를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생각이 잘 안 나거든.
매화 :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바짝 다가서며) 덧붙이는 글자니까 첨기라 하면 어때요.
설총 : 그럼 말음첨기라고 하면 빨리 알아듣겠지?
매화 : 아주 그럴듯하네요. 너무 고생이 많네요. 요즘은 국학의 교수-학습에 대하여 반대하는 귀족들 이야기가 많이 안 들리네요.
설총 : 글쎄, 두고 봐야지. 학생과 대중들의 열화 같은 찬성이 있으니까. 국왕의 의지가 확고하니까. 대들었다가는 임오년 같은 참변이 일어날 걸 너무나 잘 아니까.
매화 : 이제 보니까 〜니까 학사님이에네요. 푹 좀 쉬시고 일을 하는 편이 낫겠지요.
해설사 : 밤이 늦도록 경전을 풀이하고 가르칠 자료를 만들면서도 아내의 격려와 도움말이 설총의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 다음 날 국학에서 학생들에게 말음첨기에 대한 한자 표기를 가르쳤다.
(무대가 밝아지면서 설총이 가르치는 강당으로 전환된다.)
설총 : (무슨 새로운 것이라도 발견한 듯이 힘찬 모습으로) 누구 말음첨기라는 것을 들어본 일이 있나요?
학생1 : 어떤 경우에 쓰이는 용어인지를 알고 싶습니다.
설총 : 진평대왕 시절 지어 부른 향가 서동요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노랫말 가운데 밤낮 할 때의 밤을 야음(夜音)이라 적었어요. 그러니까 야음의 –음(音)은 위의 밤야(夜)를‘야’로 읽지 말고 미음(ㅁ)으로 끝나는 소리로 읽으라는 꼬리표로 써야 뒤에 붙여 적은 것 같은 보기들입니다.
학생2 : 그럼 모죽지랑가의 봄을 춘음(春音)이라 적은 것과 같은 말음첨기를 뜻하는 것입니까?.
설총 : (아주 반가운 듯이 흥분된 말투로) 바로 그거야. 그렇고말고. 바람 풍하면 풍음(風音)이라고 적으면 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지요. 모두 알겠어요? 아울러 향가 창작법에서 알아두어야 할 것은 보언(報言)이라고 하여 노래나 무대에서 어떻게 활동하라는 것을 알려주는 일종의 지문이라고 보면 됩니다. 고대로 올라갈수록 제정일치의 제의문화 곧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이 노래에 끼어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샤머니즘의 경우, 하늘이나 땅신, 혹은 조상신에게 비는 제례 행위에 대한 지시적 내용이 실려 전한다고 보면 됩니다.
(설총과 매화의 노래) 경전을 읽을 때는 조사와 어미를 우리말로 말음첨기는 위에 오는 말의 끝소리로 읽으라 함이요. 보언이라 함은 제사장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리려 함이라네. (학생들의 노래) 어렵던 경전 풀이도 우리말 조사와 어미를 넣어 읽노라면, 떼고 붙임이 분명해져 혼자서도 스스로 공부가 된다네. 십 년 공부를 한 두 해에 아는 기쁨 행복한 배움길이라네. |
제2막 선택 앞에 선 화왕
해설사 : 머리 부분에서 꽃 중의 꽃 모란은 화왕으로서 간신배인 장미꽃의 현혹에 빠져서 충직한 신하인 할미꽃의 올바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다 할미꽃의 결기에 찬 직언을 듣고 후회하면서 올바른 군왕의 길을 걷게 된다. 더불어 할미꽃이 한 이야기를 적어서 후세 임금들에게 교훈을 삼으라는 명을 내려 화왕계(花王戒)라는 작품을 남기게 한다. 화왕계의 역사문화적인 배경을 고려하면, 신문왕이 등극하는 과정에서 임금의 장인이었던 김흠돌의 반란을 평정하고 새로운 통일신라의 나라를 만드는 과정에 따른 풍자적인 속내라고 볼 수 있다. 한림학사로서 설총(薛聰)이 국학(國學)을 설립하여 공평한 교육의 기회를 통한 인재 등용을 함에 기득권자인 귀족들의 반발로 한 때 벼슬을 내놓고 야인이 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모란의 원관념은 신문왕, 장미는 설총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귀족, 할미꽃은 설총으로 상정할 수 있다. 마침내 교육과 새로운 이데올로기로서 유학을 받아들여 왕권을 강화하고 국력을 안정시키게 된다.
#1. 화왕의 깨달음
(막이 열리고 무대가 밝아지면서 합창을 한다.)
(등장 인물이 합창을 한다)-화관무를 추면서 나라가 어려우면 충신을 생각하고 가정이 어려우면 현모양처를 생각하네. 얼굴만 예쁘다고. 말은 입에 혀처럼 달콤할 수가 장미화는 꽃 중의 꽃 모란에게 온갖 아첨을 다 떨었지 겉 볼 안이라고 할미꽃은 쪼그랑 밤송이 같았다네 화왕 모란은 장미화와 할미꽃 가운데 장미를 선택했네. 앞뒤 없이 할미꽃은 직언을 일삼았지. 궁에서 쫓겨났지만, 소신껏 임금의 본분 찾기를 주장했어. 늦었으나 화왕은 간신배 장미화를 버리고 충신인 할미꽃의 말을 듣고 후세의 임금들에게 교훈이 되게 충신인 할미꽃으로 하여금 화왕계를 짓게 했다네. 풍자문학의 얼굴이 되었었지. |
해설사 : 임금의 장인이었던 상대등 김흠돌의 일파가 반란을 일으켰다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그 뒤 왕권 강화가 한창 물이 오르고 개혁을 구상하다 머리도 쉴 겸 설총을 불러 함께 약주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몇 순배 잔이 오가면서 술기운도 오르고 임금이 설총에게 먼저 말을 건넨다.
임금 : 빙월당, 며칠 동안 내리던 비도 그치고 바람도 선선하오. 술 한 잔 나누면서 허허롭게 세상 이야기를 듣고 싶소.
설총 : 무슨 이야기를 말씀이십니까?
임금 : 아무 이야기라도 좋소, 격식을 떠나서 형과 아우로 돌아가서 자연스럽게 말이야.
설총 : 조금 지난 이야기라도 들어보시겠습니까? 제가 시정에서 떠도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습니다.
임금 : 보시게, 아우, 뭘 이렇게 뜸을 들이나. 이야기해봐.
해설사 : 설총이 머뭇거리더니 바로 이야기를 하는 데 꽃 이야기란다. 모란이 화왕이 된 전설이며 모란과 장미와 할미꽃 이야기를 한다. 어느 날인가 지나가는 장사꾼한테서 들은 이야기라 하면서 설총은 얘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모란은 화왕으로, 장미는 간신배로, 할미꽃은 충신으로 등장하며 상황이 전개된다.
설총 : 형님, 혹시 모란꽃에 얽힌 전설을 들어보셨나 모르겠습니다. 왕자와 공주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신문왕 : 뜸 들이지 말고 어서 해보라고. 궁금하구먼.
설총 : 아주 오랜 옛날 인도의 어느 나라의 왕자가 다른 나라의 공주를 사랑했답니다. 전쟁이 터지자 왕자는 싸움터로 나갔습니다. 왕자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공주는 집앞을 지나가던 눈먼 장님이 부르는 노래의 사연을 듣고 왕자가 죽었음을 알게 됩니다. 너무도 놀란 공주는 왕자가 살아 있기만을 기도하며 허위허위 왕자의 나라로찾아 갔습니다. 안타깝게도 왕자는 싸움터에서 죽었고 그 자리에 모란꽃이 피었다고 합니다. 깊은 슬픔에 잠긴 공주는 신에게 왕자와 영원히 함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신은 공주의 부탁을 들어주어 작약 곧 함박꽃으로 피게 했다는 전설, 모란이 지고 난 뒤에 이어서 작약꽃이 피어난다고 합니다.
신목왕후 : (슬픈 사연에 눈물을 지으며 아우인 설총을 보며) 사랑의 화신들이 되었네. 선덕여왕님의 모란이 떠오르는구먼.
설총 : 이제 모란꽃과 장미꽃, 그리고 할미꽃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겠습니까?
신목왕후 : 그래 어디 한번 들어보자고. 오래만에 마음 편하게 아우님 이야기를 듣네.
설총 : 꽃 중의 꽃 모란이 화왕(花王)으로서 처음 이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이 향기롭다고 동산에 심고, 울타리를 하고 잘 가꾸었습니다.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는 듯 어느 꽃보다 아름답게 피어났습니다. 그 주위의 많은 꽃이 다투어 화왕을 만나러 왔답니다. 심지어는 산골에 사는 꽃들마저 다투어 와서 문안을 드렸습니다.
해설사 : 이때였습니다. 춤추는 선녀같이 곱고 붉은 얼굴에 옥 같은 치아와 신선하고 탐스러운 감색 나들이옷을 입은 장미꽃이 아장거리며 화왕에게 다가와 다소곳하게 아뢰었습니다. 그 뒤를 따라서 붉고 흰 장미, 노랗고 분홍색 장미, 그리고 들장미도 따라 와서는 한 바탕 춤을 추며 흥겨운 놀이를 펼쳐 보였습니다. 그 다운데 열렬한 상랑과 정열을 내세우는 빨간 장미가 황왕 앞으로 다가섰습니다.
장미 : 저는 백설 같은 모래밭에서 거울같이 맑은 바다를 바라보며 자라났습니다. 봄비로 몸의 먼지를 씻었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자랐습니다. 제 이름은 장미라 합니다. 임금님의 높으신 덕을 그리워하여 꽃다운 잠자리에 향기를 더하여 모시고자 왔습니다. 임금님께서 저를 받아주시겠습니까? 변함없는 사랑과 정렬로 모실 것입니다.
장미꽃들의 합창 –화관무를 추면서 마음도 몸도 씻어 빛깔까지도 향기로운 동산에서 임을 모시리라 폐하를 모시리라. 만수무강하소서. 사랑과 열정의 노래를 부르리라. 행복의 파랑새와 춤을 추리라. |
(이윽고 이번에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띠를 매고, 손에는 지팡이, 머리는 흰 백발을 한 장부 하나가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겨우 나와서 조신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할미꽃 : 저는 서울 밖 한길 옆에 사는 백두옹(白頭翁)이라 부릅니다. 들판에서 더러는 산모퉁이에 의지하여 살고 있습니다. 듣건대, 신하는 맛있는 음식과 향기로운 차, 그리고 술로 수라상을 받들어 임금님의 미각을 흡족하게 하고, 정신을 맑게 해드리고 있사옵니다. 고리짝에 넣어둔 양약으로 임금님의 체력을 돕지만, 한편으로 금석의 독약으로 임금께 독을 없애야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여 ‘비록 명주실 같은 사마가 있어도 군왕으로서는 들풀 같은 관괴를 버려서는 안 되며 모자람을 대비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임금님께서도 어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할미꽃의 노래)-화관무를 추면서 새라고 다 꾀꼬리인가. 잘 들으시오. 속 사람이 고와야지, 참 미인 되리라 백두옹 할미꽃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오. 새겨서 들으면, 누가 더 옳은지 듣기는 좋다 해도 말속에 가시가 돋아 있지. 나라를 위한 마음으로 가늠해 들으소서. |
장미 : 만일에 할미꽃을 가까이 하시면 임금님께서 누구와 정렬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을 나눌 수가 있겠습니까. 다 꼬부라진 할미꽃이 아름다운 노래도 춤도 잠자리도 기대할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아니 되옵니다. 전하.
할미꽃 : 나비효과를 아시잖습니까? 얼굴이 곱고 노래와 춤을 잘 추는 미녀 한 사람이 나라와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깊이 생각해 주십시오. 외모로만 꽃을 판단하시면 안 됩니다. 이제 바야흐로 통일 신라가 꿈꾸는 세상은 헐벗고 굶주린 많은 백성들이 행복하게 사는 나라 아닙니까? 폐하, 통촉하소서.
신하 : 두 사람의 경우, 화왕께서는 누구를 거두고, 누구를 버리시겠습니까?
화왕 : 할미의 말도 도리가 있다. 하지만 미인이란 얻기가 쉽지 않으매 그대라면 어찌할까? 모든 것이 때가 있는데.
할미꽃 : 임금님께서 영명하시어 모든 일을 잘 판단하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뵙고 말씀을 듣자오니 그렇지 않으십니다. 무릇 임금 된 이로써 아첨하는 신하를 멀리 하고, 정직한 신하를 가까이 하는 이가 드물다고 하였습니다. 예로부터 맹자 같은 성현도 불우한 가운데 일생을 마감했고, 능력 있는 한 나라의 풍당은 겨우 낭관 벼슬에 머물다 백발이 되었다 합니다. 전들 어찌하겠습니까?
(솔직담백하였으나 귀에 거슬렸다. 문득 화왕은 자신이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뉘우치는 바가 있었다. 얼마 동안 시간이 흘렀다.)
할미꽃 : 전하께서 혹시 정시자(丁侍者)의 고사를 들으신 적이 있사온지요? 제가 말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화왕 : (마지 못해 고개를 흔들면서) 그래, 그럼 한 번 이야기해 보게나.
(두 손을 앞으로 공손하게 모으면서 정시자의 고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할미꽃 : 옛날 언젠가 어느 고을에 지체 높은 김재상이 살고 있었습니다. 출신성분이 분명하지 않은 정시자(丁侍者, 지팡이)라는 사람이 가끔 심심하지 않게 찾아오곤 하였지요. 차를 함께 하면서 정시자라는 이름이 하도 이상하여 김재상이 물어보았습니다. 다음은 김재상과 정시자의 이야기입니다.
김 재상 : 자네의 왜 이름을 정(丁)이라고 하는가? 나는 자네를 잘 알지도 못 하는데 모실 시자 시자(侍者)라고 함은 무슨 연유인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정맞게 정(丁)시자는 펄쩍 뛰면서 재상 앞으로 다가왔다.
정시자 : 옛날 성인에 소의 머리를 한 분을 포희씨(包犧氏)라 하는데 그가 바로 저의 아버지입니다. 또 뱀의 몸을 한 분을 여와(女媧)하고 하는데, 그가 곧 저의 어머니입니다. 저를 낳아서 숲속에 버리고 돌보지 않았답니다. 저는 때때로 서리며 우박을 맞고 비바람을 만나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 뒤로 진(晉) 나라 시절에 범씨(范氏)의 집안 집사가 되었습니다. 이때 몸에 옻칠을 한 문둥이로 바뀌는 재주를 배웠습니다. 또한 당나라 때 조로(趙老)의 수행원이 되어서 말을 잘한다고 하여 쇠주둥이(鐵嘴)라는 별호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 뒤 저는 정도(定陶) 땅에서 살았습니다. 이 시절 정삼랑(丁三郞)을 길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저의 관상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자네 생김새를 보니 위로는 가로 그어져 있고, 아래로는 내리 그어져 있으니, 내 성인 정(丁)자와 똑같군그래, 자네에게 내 성을 자네에게 주겠네.’저는 이 말을 듣고 성을 정이라 하였고, 줄곧 고치지 않았습니다. 저의 할 일은 남들을 모시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부리기만 해서 고달프기만 합니다. 하지만, 저를 나쁘다고 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제는 돌아가 기댈 곳도 없습니다. 나라 안을 돌아다니면서 거지들에게도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바로 어제, 하느님께서 저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시고, ‘너를 화산(花山)의 시자(侍者)로 삼을 것이다. 빨리 그곳에 가서 스승을 정성껏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재상께서는 저를 거두어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김재상은 정상좌(丁上座)야말로 진실한 시자임을 알게 되었다.
(화왕의 노래) -화관무를 추면서 등잔 밑이 어둡구나. 할미꽃이여. 참되고 아름다운 신하인 줄을 짐의 탓이로다. 짐의 잘못이네 (백성들의 춤과 노래)-화관무를 추면서 화왕 전하 장미꽃 이야기를 잘 새겨들으시오. 마음이 고와야지, 얼굴만 고우면 참 미인인가.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할미꽃의 이야기를 들어보소서. 잘 새겨서 들으면, 누가 더 옳은지 듣기는 좋은 말도 말속에 가시가 돋아 있지. 할미꽃을 말을 들으소서. 만수무강하소서. |
화왕 : 백두옹, 내 잘못했네. 내가.
제3막 영혼과 현종의 만남
(무대가 밝아지면서 검은 도포와 유건을 쓴 한림학사가 현종 앞에 나타나서 자신의 절절한 사연을 이야기한다. 사연을 들어주면 가뭄에 비를 내리도록 돕겠다는 제안을한다.)
(설총의 노래) 석 달 열흘 가뭄이 들어 마실 물도 말라가네. 폐하는 하늘 보고 기우제를 올리셨네. 소신이 도울 테니 제 사연 들으소서. 집 기둥에 눌린 제 무덤을 풀어주시면 하늘에 빌어 비를 오게 하겠습니다. 태평성세를 이루소서. |
해설사 : 고려 현종의 꿈속에 설총이 나타났다. 안 그래도 세상이 뒤숭숭한 판인데 혹심한 가뭄에 민심은 임금의 탓으로 돌리려는 간신배 무리들이며 임금의 정통성을 들먹이는 자들이 겁 없이 헛소문을 퍼뜨리고 다니기 일쑤였다.
현종 3년(1012) 여름은 혹심한 가뭄으로 내로라하는 무당을 불러 오월 경진일에 성안에서 토룡을 만들고 기우제를 지냈으나 비 소식은 없었다. 마실 물조차 모자라는 판이었다. 임금이 몸소 나서서 기우제를 지내고 산신령을 섬겨 모시는 곳에서 정성껏 기도하였다. 경인일 밤에 문득 한 선비가 나타났다. 숭유각(崇儒閣)에서 홀연히 검은 두건에 도복을 입은 선비가 나타나 남쪽으로부터 와서 전각 섬돌 위에서 절을 하는데 그 거동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에 왕도 몸을 굽혀 답례하고 손을 들어 인사를 하였다. 설총이었다.
현종 : 그대는 누구시며 어디서 온 학사인가요?
(흰 도포와 두건을 쓴 백의정륜학사 홍유후는 일어나 두 번 절을 하면서 답을 하였다.)
홍유후 : 저는 신라 신문왕 시절 백의정륜학사 설총이라고 합니다. 원통한 일이 있어 말씀드리고 이를 풀어주시면 마침내 단비가 내리도록 도와 드리겠습니다.
현종 : 무슨 일인데 나를 찾아오셨소. 사연을 듣고자 하오. 그리고 학사를 만나 보니 온몸에 한이 서려 있음을 느끼겠소이다. 어떤 여한입니까?
홍유후 : 하늘과 땅을 욕되게 하지 않음은 천도이고, 흥진비래는 사람의 도리입니다. 신의 해골이 계림 동쪽 월토산 남쪽 언덕에 묻혀 있습니다. 지금은 조복(趙復)이란 사람의 집 기둥이 그곳에 세워져 있으므로 자손이 운을 펴지 못하고 있습니다. 살펴주십시오.
(꿈이었다. 어둠 속인 듯 어렴풋했으나 임금은 설총의 손을 잡으며 걱정하지 말라고 타이른다.)
현종 : 학사의 유택이 이같이 억울하게 되었으니, 내 어찌 바로잡지 않으리오.
홍유후 : 사람이 사는 집과 무덤 사이에는 고랑을 두어 살피를 두고 있습니다. 아무리 달이 차더라도 해를 흐리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해설사 : 현종은 알 듯 모를 듯하였다. 꿈이었다. 바로 중추원 추밀에게 왕명을 전하고 김질의 반란을 평정한 서경유수 이자림을 보내 왕명으로 조복의 집을 허물고 그 터에 신라 학사 설총의 묘소로 삼았다. 현종은 다시금 명령하여 봉분을 다시 만들고 사당을 짓고 묘비를 세우도록 하였다. 꿈에 약속을 하였던 대로였다. 마침내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몰려들더니 며칠 동안 장맛비가 내렸다. 가뭄이 완전하게 해소되었으며 민심은 폭풍우 뒤의 맑은 하늘처럼 가라앉게 되었다.
현종 : 설학사님, 정말로 고맙소이다. 앞으로도 나라의 힘든 일이 있을 때 도와주면 평생 그 은혜를 잊지 않으리다.
홍유후 : 제가 더 고맙습니다. 만수무강하소서. 전하
(서로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멀리 사라져 갔다.)
백성의 노래 먹구름 장대비가 땅을 적시면, 얼마나 좋으랴. 백성의 걱정을 헤아리심이 갸륵하여라. 바람에 펄럭이는 국학의 깃발이여. 절절한 홍유후의 부르짖음이여. |
제4막 설총의 예언
(무대가 차츰 밝아지면서 흰 도포와 유건을 쓴 홍유후와 길손이 등장한다.)
해설사 : 지난날은 오늘로 이어지고 올 날을 가늠하게 한다. 홍유후 설총의 남다른 혜안으로 내다보면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한 번쯤의 이야기를 기대할 만도 하다. 일찍이 전해오는 홍유후의 말년에 남겼다는 것으로 알려진 설총결(薛聰訣)이 궁금해진다. 정감록(鄭鑑錄)의 자료를 일부 바탕으로 하여 그 속살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지나가는 한 길손이 홍유후 선생에게 물었다.
길손 : 선생님, 미륵부처님이 언제쯤 오시겠나요?
홍유후 : 한양 땅 나라의 운세가 다할 무렵 오시지 않을까 싶소. 지금 내가 정리한 이두는 소리를 한자로 적은 글자요. 하지만 뒤에 올 사람은 이를 새로운 글자로 모든 사물의 소리를 적는 그런 시대가 올 것이요. 이로써 온 세상의 존경을 받는 문화 국가가 될 것이라 믿소.
길손 : 왜 그렇게 보십니까?
홍유후 : 모든 일에는 오름과 내림이 있지 않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서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세상을 만들 테니까.
해설사 : 서학에 맞서서 겨레의 얼을 지키고자 하며 동학을 세운 최제우 선생을 통하여 자신이 죽은 뒤 8년 뒤인 고종 8년(1871) 신미년에 곡부 땅에 한 선비가 올 것을 예언하고 있다. 또한 새로운 문자로써 이두보다 훨씬 편리하고 글자의 획을 더함으로써 새로운 소리의 특징을 드러내는 자질 문자 시대가 열릴 것임을 믿고 있었다. 지날 손이 또 물었다. 마침내 1997년 훈민정음 해례본이 유네스코 세계 기록 문화유산이 되었다. 세계 문자 올림픽에서 연이은 금메달이 되었다.
길손 : 그런 가능성을 어디에서 볼 수 있습니까?
홍유후 : 원효 스님이 금강삼매경소를 쓰신 연유로 금강산이 된바, 비로봉에 그런 정기가 모여들었소이다. 마치 연꽃 봉우리가 피어나듯이 말이요. 원효 스님께서 이두로 중국 사람들의 생각과 소리를 들여다보는 혜안을 보여주시었소.
해설사 :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필이면 금강산일까? 그럼 금강산이 하늘의 정기가 모이는 우주산이란 말인가. 금강이란 지혜를 이름이다. 산스크리트 말로 지혜를 디히(dhi धङ, 智慧)라 한다. 이는 종교적인 명상 혹은 깊은 생각을 뜻한다. 그럼 우주 나무도 있지 않을까? 박달나무인가. 아니면 무궁화인가. 소나무인가. 미루어 보건대 붉은 소나무로 보인다. 지날 손이 홍유후 선생에게 물었다.
길손 : 단군의 어머니인 웅녀-고마로 시작합니다. 선생님 보시기에 고마는 뒤로 오면서 어떤 성씨로 이어졌다고 보십니까? 고마(곰)이 어머니와는 무슨 관련이 있나요?
홍유후 : 고구려를 고려라 하고 일본에서는 고마라 하오. 소리로 보면 고마 곧 곰이요, 이는 소리가 변하여 김씨가 되었다고 봅니다. 일종의 낱말의 겨레요, 단어족이 된다고 보아야 할 거요. 어머니가 한 집안의 중심이 되는 모계사회가 있었다는 이야기란 말이요. 어머니란 말도 고마(곰)에서 소리가 변하면서 생긴 말로 보입니다. 김(金)이란 한자의 뜻이 쇠인 만큼 철기문화를 일으킨 씨족을 이름이 아닌가 하오만.
해설사 : 그렇다. 단군왕검이 웅녀 곧 고마(곰) 부인의 아들로 태어나 자랐으며 아버지 환웅은 거처를 확실하게 알 수가 없지 않았던가. 환웅은 하늘로 사라져 버렸다. 여성에 의하여 구원에 이르는 그런 세상이었다. 지날 손이 앞으로의 세상의 중심이 어딘가를 물었다.
길손 : 앞으로 우리나라의 중심이 되는 고장은 어디일까요? 아마도 용화 낙원의 중심은 태전 곧 큰 밭이니 오늘날의 어디쯤일까요? 아, 그럼 대전이란 말씀인가요? 아니면 세종시라는 말씀인가요? 그렇게 볼 수도 있고.
홍유후 : 대전이 어디 한 군데뿐인가요. 마음을 잘 쓰면 거기가 한밭이요, 태전이 됩니다. 마음 밭이란 말이지요. 사람 명당이 진정한 명당이 됩니다.
길손 : 선생님 글에 백 년 뒤의 일을 백 년 전에 와서 행하신다고 했는데 무슨 말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거든요.
(길손이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시 다그쳐 묻는다.)
홍유후 : 소 울음 훔이라 하여 주문을 외울 수도 있소. 백 년 앞서 와서 행함이란 바로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요. 국학을 새로이 세워서 새 시대에 알맞은 인재를 길러 감은 바로 백 년 천 년을 내다보는 그런 일이니까요.
길손 : 개벽의 시간이란 너무나 짧다고 하셨는데 이는 무엇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까? 통일된 세상에서 새로운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엮어가는 그런 세상이고 전혀 글자를 모르던 사람도 우리말로 한자를 적어 어느 정도 소통이 되어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마침내 지구촌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임금과 스승의 길은 다 어디로 갔는가 하셨음은 무엇을 이름인가요?
홍유후 : 임금은 임금답게 스승은 스승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제자는 제자답게, 부모는 부모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답게 답게 답게... 행함으로써 아름다운 세상이 됨을 이른 것이지요. 사람이 사람을 섬김으로써 다스림을 말하고 싶었소이다. 안민가에 나오는 안민의 노래를 잊지 말아야지요.
해설사 : 길손은 고맙다는 듯이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정중하게 숙여 인사를 하며 홍유후 선생에게 작별 인사를 올렸다. 아름답고 인정이 살아 숨 쉬는 도덕적인 홍익인간의 세상을 그리며 오가던 이야기도 모두 끝이 났다. 신문왕의 만파식적 소리가 서라벌을 넘어 온 누리에 바람과 함께 퍼지는 듯 구름은 그렇게 바람에 밀려 흐르고 있었다. 고선사 대숲에는 바람이 태평소를 분다. 저수지 못 물은 춤을 추고 철새들이 시를 읊고 있었다(대금과 징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등장 인물 모두가 나와서 합창을 한다.)-화관무를 춤춘다 만파식적 소리 들려. 어둠은 가고 새 새벽 온다. 금강산에 서기로 청룡백호 연이어 응했도다. 일만 이천 인재를 배출시킬 새 문명의 꽃이여, 신령스러운 봉우리에 운기가 새롭구나. 곰녀에 뿌리를 두고, 거룩한 역사 이루어짐도 모두가 태초부터 홍익의 이념으로 신시를 이루었지. 하늘의 운수가 그렇게 이루어져 있는 까닭이라. 동아시아 한반도는 신시의 중심지라. 홍익의 터전이라 온 누리 만방이 그 은혜를 받으리라. 전에 믿는 자들의 걸음걸이는 매우 급했건만, 뒤에 따르는 이들의 걸음걸이는 어이 그리 더딘고. 새로운 개벽의 시간은 촌음에 불과하건만 게으른 믿음의 발걸음은 어찌할 것인고. 배은망덕의 의리 없음이여. 홍익의 횃불이여. 임금과 스승의 정도는 다 어디로 갔는가. 예절도 의리도 없이 인륜의 도가 다 끊어졌으니, 아, 가련하도다. 백성들이여. 민족정기를 되살리고 아시아의 등불 되리 홍익의 나라 만들어 가야 하리니. 통합의 시대가 오리니. |
(무대가 어두워지면서 아리랑 노래로 막을 내린다.)
첫댓글 교수님, 유익하고 재미 있는 뮤지컬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역사 공부도 잘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