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뿌리는 사람
1888년 6월, 캔버스에 유채
베르나르에게...
요즘은 고갱과 자네와 내가 같은 곳으로 가지 않은 게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하네. 고갱이 이곳을 떠났을 때는 내가 다른 데로 옮길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았고, 자네가 떠날 때는 짜증스럽게도 돈 문제가 걸려 있었지. 그래서 내가 이곳이 생활비가 많이 든다고 전하는 바람에 자네가 오지 못하고 말았네.
우리가 모두 아를로 왔더라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우리 세 사람이 같이 지낸다면 가사일도 함께 할 수 있었을 테고. 이제 이곳 사정에도 밝아지고 보니 함께 지냈더라면 득이 되었을 점을 많이 발견하게 되네.
나는 북부지방에 있을 때보다 잘 지내고 있네. 그늘이 전혀 없는 한낮의 밀밭에서 작업하는 게 매미처럼 즐겁네. 서른다섯 살이 되어서가 아니라 스눌다섯 살이었을 때 이곳에 올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나! 그 당시 회색이나 색이 없는 것에 빠져 있었네. 늘 밀레를 꿈꾸었고 모베나 이스라엘스 같은 네덜란드 화가들과 사귀곤 했지.
"씨 뿌리는 사람"의 스케치를 보내네. 흙을 온통 파헤친 넓은 밭은 선명한 보랏빛을 띠고 있네. 잘 익은 보리밭은 양홍빛을 띤 황토색이고.
하늘은 황색 1호와 2호를 섞어 칠했는데, 흰색이 약간 섞인 황색 2호 물감으로 색칠한 태양만큼이나 환하네. 그래서 그림 전체가 주로 노란색 계열이라네. 씨 뿌리는 사람의 상의는 파란색이고 바지는 흰색이네. 크기는 정사각형의 25호 캔버스.
노란색에 보라색을 섞어서 중성적인 톤으로 칠한 대지에는 노란 물감으로 붓질을 많이 했네. 실제로 대지가 어떤 색인가에는 관심이 없네. 낡은 달력에서 볼 수 있는 소박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거든. 나이든 농부의 집에서 볼 수 있는 달력에는, 눈이나 비가 오는 장면이나 날씨 좋은 날의 풍경이 아주 유치한 양식으로 묘사되어 있지 않나. 앙크탱이 "추수" 에서 성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그런 양식 말일세. 솔직히 내가 시골에서 자라 그런지 시골 풍경에 대해 반감은 전혀 갖고 있지 않네. 과거의 단편적인 기억은 아직도 나를 황홀하게 하며 영원한 것에 대한 동경을 갖게 한다네. 씨 뿌리는 사람이나 밀짚단은 그 상징이지.
언제쯤이면 늘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을 그릴 수 있을까? 멋진 친구 시프리앙이 말한 대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은 누워서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고서 꿈 꾸는, 그러나 결코 그리지 않은 그림인지도 모르지. 압도될 것 같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완벽함 앞에서 아무리 큰 무력감을 느끼더라도 우선은 시작은 해야겠지.
또 하나의 풍경 스케치를 편지에 했는데, 해가 지는 것처럼 보이나, 달이 뜨는 것처럼 보이나? 여하튼 여름 태양이네. 마을은 보랏빛이고, 태양은 노란색, 하늘은 청록색이네. 밀밭은 오래된 황금빛, 구릿빛, 녹색을 띠는 황금빛, 혹은 붉은 황금빛, 혹은 붉은 황금빛, 노란 황금빛, 노란 청동빛, 적록색 등 모든 색을 담고 있네. 크기는 정사각형의 30호 캔버스네.
미스트랄(지중해 연안에 부는 북서풍)이 한창일 때 이 그림을 그렸는데, 오죽했으면 이젤을 말뚝으로 고정해야 했네. 이 방법을 자녀에게도 권하고 싶군. 이젤 다리를 흙속에 박고 50cm 길이의 말뚝을 그 옆에 박았네. 그러고는 이 모두를 로프로 묶어야 했네. 그렇게 하면 바람이 불어도 작업을 계속할 수 있지.
흰색과 검은색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씨 뿌리는 사람'을 예로 들겠네. 이 그림은 위쪽 절반은 노란색, 아래쪽 절반은 보라색, 이렇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네. 그럴 때 노란색과 보라색이 너무 지나치게 대조되어 거슬리는 면이 있는데, 바지를 하얀색으로 칠해서 눈을 쉬게 하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보내게 해준다네. 이걸 말해주고 싶었네.
고갱도 퐁타방에서 지내는 게 싫증이 났는지 자네와 마찬가지로 외롭다고 하더군. 자네가 그를 한번 만나러 가도 좋을 텐데. 그런데 그가 계속 그곳에 머무를 생각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군. 파리로 걸 것 같기도 하고....
그는 자네가 퐁타방으로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더군. 우리 세 사람이 여기에서 함께 지낼 수 있다면! 자네는 거리가 너무 멀다고 할지 모르지. 사실 멀기는 하지만 겨울을 생각해보게. 이곳에서는 1년 내내 이뢀 수 있다네. 내가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도 혈액순환을 막거나 , 아무 일도 못하게 하는 추위를 두려워할 필요가 별로 없다는 데 있네.
1888년 6월 18일
첫댓글
시골 풍경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은
영원한 것에 대한 동경을 갖게 한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