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절대 진리로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변!
◎질문.
예수가 존재했다는 것도, 성경의 말씀이, 예수의 말씀이 모두 진리라고 하는 것도... 일단 성경이 믿을 수 있는 것이고 진리이고 완전하다는 게 전제가 되어야 하는데요.. 그렇다면 성경이 진리이고 완전하다고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궁금하네요. 많은 대답이 성경이 옳다는 이유를 성경 구절을 인용해 증명하려 하는데, 그건 전혀 수긍할 수 없다고 봅니다. 성경을 증명하려하는 데 그 증명 내용을 성경에서 인용하다니요...? 기독교와 비신자의 중간에 걸친 사람으로서 궁금합니다.
◈답변입니다.
기독교와 비신자의 중간에 걸친 사람으로서의 질문이라 하셨는 데... 어떠한 상태에서 질문하셨던 간에 이런 질문은 안티 기독인들께 들은 말(마귀의 영)로 인해 발생된 질문으로서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의 저자는 천지만물과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이시고 질문자는 우주만물들 중에 지극히 작은 사람임과 동시에 또 종이 한장만 눈을 가리어도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무지한 혈육에 휩쌓여 있습니다. 이와 같은 엄청난 격차가 존재하는 사람들간에 발생된 이견에 대해서는, 무지한 쪽이 유식한 쪽의 말을 믿고 따라야만 비로소 의사 소통이 원만하게 가능하도록 된 것이 인간 사회의 철칙이고 진리입니다.
성경을 읽는다는 건,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잘 모르는 분이 성경이라는 동리에 찾아가서, 성경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그곳에 등장하는 지형과 전개되는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배우는 일(공부)입니다. 즉 시골에 계신 분이 서울에 계신 친인척 분을 찾아뵙기 위하여 서울에 간 것과 같으며, 수학을 배우기 위해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님 앞에 수학책을 펼쳐놓은 것과 같은 것이 바로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일들이 기록된 성경책을 읽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예수님보다 무지무능하기 때문에 이런 격차 사이에서 발생되는 이견에 대해서는 반드시 무지무능한 사람들이 전지전능하신 분들의 말씀을 믿음으로 신뢰해 따라야만 비로소 의사 소통이 가능합니다.
일례를 들어, 시골에 계신 분이 서울에 계신 친인척 분을 찾아뵙기 위해 서울에 도착하게 되면, 서울에서 오가는 행인들을 통해 서울의 지리와 교통편을 알기 위해 그들의 말을 무조건 믿음으로 실행해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시골에 계신 분이 서울 길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행인을 붙들고, "종로가 어느 쪽 방향이고 그 쪽으로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서 어떤 교통 수단을 이용해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서울에 사는 분이 이에 대해 "저쪽 맞은 편 버스 정류장에서 몇번 버스를 타십시오."라고 가르쳐 줍니다. 그런데 시골 분이 서울 행인에게 "지금 가르쳐 주신 말씀이 참말이어야 하는 데, 선생님의 말씀이 참말이라고 할 수 있는 증거가 무엇입니까?"라고 심문조로 다그쳐 물으면, 그 서울 분이 어떤 반응을 나타내 보일런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만일 이런 경우에 대해 제대로 대응해 줄 수 있는 서울 분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이 없어 하며 "잘못 했습니다. 다시는 말씀해 줄 수 없으니 더 이상 제게 묻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하든지, 아니면 "여보시오. 댁이 몰라서 질문해 놓고 저더러 제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며 따지는 건 또 뭐요?" 하며 흥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성경을 읽을 때 전제되어야 할 마음의 태도는, 이처럼 "타지를 방문한 사람이 그 지방에 거하는 사람들에게 무얼 알고자 질문하였을 때에는 반드시 그분들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는 마음의 각오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댁이 가르쳐 준 말이 참말이라는 걸 무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라고 되물으면, 이건 몰라서 배우려고 하는 학생의 태도가 아니라, 검찰이 피의자의 죄상을 밝히려고 하는 심문조의 질문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믿을 수 있는 것이고 완벽하다는 게 전제되어야만 그 모든 말씀을 믿을 수 있다."라고 하는 건, 하나님과 천국에 대해 무얼 배워 알려고 하는 학생의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또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승천하셨다는 기상천외한 사건에 대한 모순점이나 진위를 밝히려고 심문하는 재판관의 태도입니다. 이럴 때, 서울 사람 같은 하나님이 무슨 거짓된 범죄가 있는 양 심문당하듯 진리를 가르쳐 주겠으며, 또 이와 같은 교만한 자들을 하나님이 천국에 데려가 어느 상좌에 앉혀 받들어 섬길 수 있습니까? 그리고 성경을 인용해 성경을 증명(풀이, 변명)하는 것은 아전인수격의 말 뿐이니 신뢰할 가치가 없다고요? 그러면 수학을 배울 때, 수학책에 기록된 여러가지 수학공식을 적용해 배우는 것도 아전인수격 교육법이라 하여 배울 가치가 없는 것입니까?
님의 위와 같은 질문은, 이 세상 최고의 지식과 보화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언행을 배워 익히려는 학생으로서의 질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만물들 위의 최고최대의 지식과 능력을 가진 자로 자처하여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고 우주만물보다 더욱 광활한 창조주 하나님과 그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 지식의 모순과 진위를 밝히려는 한낱 무모한 재판관의 심문행위입니다. 님은 성경(하나님)과 자신 사이의 관계설정부터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즉 종이 한장만 가리워도 한치 앞을 제대로 분간할 수 없는 무지무능한 사람이 우주만물을 창조해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지식을 배우려는 학생 신분이 아니라, 도리어 자기자신이 하나님(성경) 이상의 지식이나 능력을 갖춘 자로 자처하고 하나님을 죄인 취급하듯 심문조로 질문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이 같이 교만한 자들이 하늘의 별보다 많고 바닷가의 모래알보다 많다하여 그들의 숫자에 의해 한분 하나님이 소멸될 신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를 대등한 입장에서 볼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왜 이런 질문을 제가 하느냐 하면, 님의 질문 자체가 질문으로 성립될 수 없기 때문에 하는 소리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를 님의 생각에 따라 대등한 수준으로 전제해 두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를 심판할 판사, 곧 재판관은 또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재판관은 원고와 피고 모두에게 공히 적용될 수 있는 법을 근거로 하여 공명정대한 판결을 시행하여야 할 공인이어야 합니다. 사람들과 하나님께 공히 적용될 공법이 무었이며, 또 사람들의 양심을 꿰뚫어보고 판결하시는 하나님보다 더욱 공명정대하게 판결을 시행할 지존자가 누구입니까? 그분들이 안티 기독인들로 생각되십니까?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만으로도 얼굴을 들 수 없어서 하나님이 없다고 하여야만, 즉 경찰이 없는 상황하에서만 행패부리는 어둠의 자식들입니다. 그래서 국법(경찰)과 방불한 성경(하나님)이 없어야만 비로소 마음 편히 말할 수 있는 언어 조폭들입니다. 모든 공갈협박꾼들은 자신들이 요구하는 이의 제기에 대해 상대방이 충분한 증거자료를 대지 못하면, 상대방을 곧장 죄인으로 몰아부치는 논리 게이머들입니다. 양측이 공히 공인할 수 있는 뚜렷한 재판관도 없이 오직 자신들의 입씨름으로만 결판내려는 자들은 모두 언어 조폭들입니다. 안티 기독인이란, 이 세상 최고의 법인 성경말씀의 모순이나 진위를 밝힐 의와 선과 정의도 없이 다만 뒷골목 으슥한 데서 만나는 교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지혜와 믿음으로는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말펀치로 그들을 죽이는 살인자들입니다.
성경의 모순점과 진위를 밝혀 달라고 고발하는 인간들의 송사를 재판해 줄 수 있는 초 능력자, 곧 하나님보다 강하고 밝은 제3의 재판관을 사람들이 세울 수 없기 때문에 저의 반박성 글 또한 별무관심일 수도 있습니다. 저 또한 남들의 취약점을 이용해 비열하게 논리적으로 이기는 것 또한 안티 기독인들과 똑 같은 언어 조폭 행위입니다. 안티들이 내 세우는 제3의 재판관, 즉 양측 모두가 공인할 수 있는 재판관이 없을 때 행하는 판결이 바로 전쟁의 수단입니다. 그러나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승자 되시는 하나님이 먼저 자신의 처지와 입장을 이해시키려고 이처럼 저와 같은 사람들을 통해 여러가지 비유로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해 드리는 것입니다.
성경(하나님)이 왜 성경(하나님) 자체의 말씀으로만 성경을 증거하게 되었는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님이 만일 세계 여행을 하는 도중 인적이 드믄 오지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반드시 그 오지 여행에 앞서 가이드가 님에게 이런 저런 약속을 받아낼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숨이 걸린 문제들이기 때문에 철저한 약속이행을 요구할 것입니다. 즉 가이드 자신이 허락하지 않는 장소로 임의로 여행객들이 발길을 들여 놓았을 때에는 일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등등 여러가지 약속들을 계약서에다 기입할 것입니다. 이럴 때 그 오지에 관한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는 가이드가 선생님이 되시고 님 같은 여행객들은 제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선생되신 가이드를 무조건 믿고 지시하는대로 따라가야만 생명을 안전하게 보존하며 여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이드와 여행객들 사이는 마치 전진전능한 하나님과 소경된 사람들 사이와도 같습니다. 여행객들이 보기엔 이쪽 길이 훨씬 평탄할 것 같은 데, 가이드는 전혀 엉뚱하게도 가파르고 험악한 골고다 길로 접어듭니다. 이럴 때 여행객들이 가이드에게 왜 험악한 십자가 길로 가느냐고 항의할 수 있습니까? 여행객들이 가이드에게 할 수 있는 이의 제기란 사실상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전지전능과 무지무능한 사이에서 발생된 심한 격차 때문입니다. 설혹 교양을 갖춘 여행객이 가이드에게 원망조로 항의해 보았자 그 가이드는 출발할 때 자신과 맺은 계약서(성경 말씀으)로만 대답합니다. 즉 "출발하기 전에 제가 부탁드리지 않았습니까? 제발 제 말을 믿고 따라와 주십시오!" 하심 같이, 가이드가 여행객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한마디, 곧 출발하기 전에 자신과 약속한 말을 지켜 달라는 말 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경으로만 대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실세자 예수'는 타관객지와 같은 이 세상을 떠나 천국 본향으로 되돌아가려는 여행객들을 위한 유일한 안내자, 곧 성령의 마지막 부탁말씀입니다.
http://cafe.daum.net/kblw 기독 애국 신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