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군ㆍ구례읍 변천사 ㆍ산동면내력
. 구례읍(求禮邑)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읍. 면적 45.79㎢, 인구 1만 1720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봉동리이다. 본래 구례군 지역으로 구례읍내가 되므로 현내면(縣內面)이 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현내면과 계사면(界肆面)이 통합되어 구례면이 되었고, 1963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대부분의 지역이 400∼700m의 산지로, 서쪽의 읍계는 섬진강 하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부는 섬진강과 그 지류인 서시천이 합류하면서 구례분지를 형성하였다. 두 하천의 서쪽으로 전개되는 분지의 일부에는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와 오이·무·배추·마늘·고추 등의 채소류 생산이 많으며, 특히 신월리의 배추는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요즈음은 대도시지역을 상대로 하는 원예농업이 발달하고 있으며, 양봉과 산수유 재배도 이루어지고 있다.
산동면(山洞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101.33㎢, 인구 3,15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원촌리이다. 본래 남원부의 지역으로 지리산 밑 골짜기가 되므로 산골 또는 산동이라 하여 고려 때 산동부곡이라 불렸다. 1897년에 구례군에 편입되어 두 면으로 갈라져 지리산의 상봉 쪽이 내산면(內山面), 그 바깥쪽이 외산면(外山面)이라 하였다. 1932년 내산·외산 두 면이 다시 병합되어 산동면으로 개칭되었다.
동·서·북쪽은 험준한 산지로 둘러싸이고, 남쪽으로는 저산성 산지로 막혀 분지 형상을 이루며, 산지가 83.4%에 달한다. 지리산 3대봉의 하나인 반야봉을 비롯하여 대두산·천마산 등의 산이 많다. 하천은 계월천·무은천·둔기천 등이 합류하여 서시천을 이루며, 이들 하천의 유역에 농경지가 분포되어 있다. 농업이 주 산업이며, 전 농가의 80∼90%가 산수유를 재배해 그 생산량이 전국의 60%를 차지한다. 매년 4월이 되면 온 동네가 산수유꽃에 덮히는 절경을 즐기려는 관광객들이 늘고 있다.
도로는 국도가 남북으로 남원과 구례로 오갈수있다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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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군의 연혁
요약
전라남도 북동부 끝에 있는 구례군의 행정구역의 변천사.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는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지 않으나, 청동기시대 이후의 유물·유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구차례현이 설치되었다. 757년 구례현으로 개칭하여 곡성군 영현이 되었다. 고려 때에는 1018년 남원부에 예속되었다가 1143년(인종 21) 감무를 두어 독립되었고 조선초에는 군현제 개편에 따라 현감이 파견되었다.
1499년(연산군 5) 이 지방 사람의 역모로 유곡부곡으로 만들어 남원에 합병시켰다가 1507년에 복구한 적이 있다. 별호는 봉성이었다. 1895년 지방제도 개혁으로 군이 되었으며, 1896년에 전라남도로 소속되었다.
1906년 지방행정구역 정리 때에 남원의 두입지인 고달면·중방면·외산동면·내산동면·소아면 등 5개면이 편입되어 행정구역이 확장되었다. 1914년 군면폐합 때 고달면을 곡성으로 이속시켰고, 현내면·가사면을 구례면으로, 문척면·간전면을 간문면으로, 소의면·방광면을 광의면으로, 용강면·중방면을 용방면으로 통합하고, 토지면·마산면·외산면·내산면은 그대로 소속시켰다. 1932년에 내산면·외산면을 산동면으로 합하고, 1946년에는 간문면으로 다시 문척면과 간전면으로 나누었다. 1962년 구례면을 읍으로 승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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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구례.산동면이 그렇게 태어낫구나.
원래 남원지역이었구나~
산동 그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