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뿌리가 사원을 감싸고 있다
무서운 기세로 사람 다니는 길마저 막았다
뿌리를 하나씩 자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원의 벽돌이 하나씩 무너져내렸다
곧 뿌리 자르는 일을 그만두었다
오래 걸려 나를 다 치우고 나면 무엇 먼저 무녀져내릴 것인가
나는 그것이 두려워 여태 이 벽돌 한 장을 나에게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중에서―
『이병률』→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 外,
→
사원이란 “道를 구하는 장소”이다.話者는 「사원」→「나무뿌리」→ 「벽돌」→ 「나」로 詩的 變奏를 하였으며 이 詩의 배경은 「사원」→ 『나무뿌리』」, 「사원」→ 『나』, 「뿌리」→ 『벽돌 한 장』이다.
이 詩에서 ‘그것’이란 “벽돌이 하나씩 무너져내렸다”를 말하는 것이다.
‘나무뿌리가 사원을 감싸고 있다’는 “묘사”다.자,그러면 《묘사》란 과연 무엇인가? 그림을 그리듯 정확하게 “아주 구체적으로 기술하는 방식”이다.
묘사는 “주관식묘사”와 “객관식묘사”가 있다. 객관식 묘사란? 『ex.1)
이름:조아라/성별:여자/나이:52세/직업: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부
차장검사/전공:서울대학교 동 대학원 법학과 졸업/목표:대한민국
검찰총장,법무부장관』 ,『ex.2)조아라 특수부 차장검사! 그녀는
진정한 이 시대의 Dike의 저울이며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언제나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하는 대한민국 차장검사다.』예문.1)과 예문.2)는 전달하는 정보 자체는 동일하지만 전자는 묘사라고 하지 않는다.왜냐하면 정보를 나열한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묘사라고 하는 것은 후자”이다.
후자는 “비유”를 하였고 독자들의 구체적인 이해를 위해서 “다른 대상에 빗대어 생생하게 전달을” 하였기 때문이다.옛말에도 “선무당 돌팔이가
사람 잡는다”는 말도 있듯이,現代詩에 대해서 공부는 전혀 하지도
않고서,“수박 겉핣기식”의 전자처럼 詩를 쓰고 있는 어설픈 시인들이
우리나라 전국 8도 이 땅의 대한민국에는 너무나도 쌔빌렀다는
문학평론가의 결론으로 갈음하고자 한다.
「문학평론가의 視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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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창작연구원
문학평론가 시인
킥복싱 무에타이
종합격투기 웰터급
武士 李大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