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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5일 오늘의 역사
2022년 윤석열 대통령 G20 정상회담 참석
2020년 인민혁명당 사건(1974)의 실체 알린 조지 오글 목사 세상 떠남(91세)
2020년 미국 우주탐사기업 스페이스X 유인우주선 리질리언스(우주비행사 4명)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쏘아올림, 11.16 ISS 도착
2020년 마뉴엘 메리노 페루 임시대통령 탄핵당한 전 대통령 후임으로 취임한지 5일만에 사임
2017년 경북 포항 규모 5.4지진 발생
2017년11월15일 오후 2시 29분 경북 포항시 북구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난해 9월 12일 경북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에 이어 국내에서 일어난 역대 두 번째 규모의 지진이었다. 포항 지진은 발생 깊이가 3∼7㎞ 지점으로 경주 지진(11∼16㎞)보다 진원이 얕아 전국에서 흔들림이 감지될 만큼 충격이 컸다
지진의 피해 규모는 시설물 피해 2만7천300여 건, 피해액 551억원이였다
포항 지진의 여진은 2.0∼3.0 미만 64회, 3.0∼4.0 미만 5회, 4.0∼5.0 미만 1회 등 12월 9일까지 총 70회 발생했다.
정부는 포항 지진 이튿날인 16일 치러질 예정이던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도 일주일 뒤인 23일로 연기했다. 수능이 자연재해 때문에 연기된 것은 1993년(1994학년도) 수능 체제가 도입된 이후 처음이었다.
교육부는 포항지역 수험생 5천523명 가운데 북부지역 4개 학교에 배정됐던 수험생 2천45명의 경우 남부지역 대체고사장 4곳에서 시험을 치르도록 했다.
2017년 판문점으로 북한군 귀순
2014년 전남 담양 펜션 화재로 대학생 등 사망 5명 부상 5명
2009년 허영섭 녹십자 회장 별세
백신 국산화의 선구자, 녹십자 허영섭(68) 회장이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경기도(현재 황해도) 개풍 출신인 허 회장은 서울대 공대 금속공학과를 나와 독일 아헨공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 1970년 귀국 후 부친 고(故) 허채경 한일시멘트 창업주가 대주주로 있던 극동제약에 입사한 후 사명을 녹십자로 바꾸고 평생을 백신과 필수의약품 국산화에 쏟았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개발한 B형간염 백신, 세계 최초 유행성출혈열 백신, 세계 두 번째로 개발한 수두백신 등이 대표적인 결실이다. 특히 전남 화순에 독감백신 생산시설을 세워 이번에 신종인플루엔자 백신 국산화를 이뤘다.
B형간염 백신 개발 성공으로 거둔 이익을 민간 연구 재단인 목암생명공학연구소 설립으로 사회에 환원했고 선천성 유전질환인 혈우병 환자들을 위해 한국혈우재단도 세웠다.
한국제약협회장,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장, 국제백신연구소 한국후원회 이사장, 한독상공회의소 이사장을 역임한 고인은 국민훈장 모란장과 과학기술훈장 창조장, 독일정부 십자공로훈장을 받았다.
2009 독도를 외국으로 규정한 일본 대장성 문서 발견
2009년 11월 15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실이 익명의 일본 고위관료를 통해 입수한 자료에 의해 독도를 외국으로 규정한 일본 대장성 법령 자료가 발견됐다.
1946년 8월 15일 일본 대장성(大藏省)이 발표한 고시(告示) 654호에서 독도(竹島로 표기)는 조선, 대만, 사할린, 쿠릴열도, 남양군도 등과 함께 외국(外國)으로 규정되어 있어 사실상 일본이 대한민국 광복 이듬해에 스스로 '독도(獨島)는 일본 땅이 아니다'라고 인정한 것이다.
박 의원실에 따르면 "일본은 패전 직후인 1946년에 일본 기업들이 부담할 배상 및 노무자들에 대한 미지급 임금 채무 등의 해결을 위해 '회사경리응급조치법'을 제정해 회사가 실행 중인 사업 및 전후 산업 회복에 필요한 동산, 부동산, 기타 재산 등을 정했다"며 "이 법의 칙령에서 '재외(在外) 자산'의 범위를 규정하고, 대장성 고시에선 패전 전 점령했던 영토 중 외국으로 분류한 지역을 규정했는데 여기에 독도가 포함돼 있다"고 했다.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독도학회장)는 "1946년 1월 일본 도쿄에 설치된 연합국 최고사령부는 지령(SCAPIN) 제677호에서 독도가 일본의 영토에서 제외되는 곳으로 명시했다"며 "이번에 발견된 1946년 대장성 고시는 당시 군정하에 있었던 일본이 연합국 방침을 추인하고 실행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史料)"라고 했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대한민국 광복 이후에 독도를 자국(自國) 영토가 아니란 것을 처음으로 인정한 법령 자료로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은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지난해 12월 청와대에 보고한 ▲1951년 6월 6일 공포된 ‘총리 부령(府令) 24호’와 ▲1951년 2월 13일 공포된 ‘대장성령(大藏省令) 4호’ 등 두 개의 일본 법령이었지만, 이번 자료는 이보다도 5년 앞선 것이다. ‘총리 부령 24호’는 일본이 옛 조선총독부의 소유 재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대장성령 4호’는 공제조합 등에서 연금을 받는 자를 위한 부속 도서에서 ‘울릉도, 독도, 제주도’ 등을 일본의 섬에서 제외했다.
박선영 의원은 “이 자료는 일본 정부가 패전 직후에 영토의 서쪽 경계로 독도를 주장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독도 영유권 논쟁에서 우리에게 유리한 법령 자료”라며 “정부는 적극적으로 이런 법령·역사적 자료를 발굴하고 활용해서 일본과 독도 영유권 분쟁의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했다.
독도 전문가인 귀화 일본인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일본이 패전 이후 독도를 자국 영토에서 제외시킨 최초의 법령 자료로 보인다”고 했다. 호사카 교수는 “일본은 연합국과의 종전 협정을 통해 자치권을 회복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2년) 이후부터는 태평양 전쟁 패배에 따라 반환해야 할 영토목록에서 독도를 삭제했는데, 그 시점 이후에도 독도를 자국영토에서 제외한 일본 정부 법령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했다.
2009년 바둑 현대화 공로자 이학진 별세
구한말 마지막 왕족인 의친왕 이강(李堈) 공의 사위인 고인은 일본 게이오대 유학시절 조남철 국수와의 만남으로 바둑계와 인연을 맺은 뒤 김인 조훈현의 유학을 주선하는 등 주요기사들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했다. 한국기원의 전신인 조선기원 산파 역을 맡았고, 광복 직후 한성기원이 자리를 못 잡고 전전할 때 이강 공의 사저인 사동궁(寺洞宮) 터를 무료로 제공해주기도 했다.
2008년 미국 워싱턴에서 첫 G20 금융정상회담 개최
G20 금융정상회의는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신설된 회의로 1999년 창설되었던 G20 재무장관 회의의 규칙이 적용된다. 따라서 2010년 G20 재무장관회의 의장국인 한국은 2008년 의장국 브라질, 2009년 의장국 영국과 함께 G20 금융정상회의의 주도 3국으로 선정되어 5개 분야 47개 중·단기 개혁과제의 내용 및 추진 방법을 2009년 4월 G20 정상회의 이전까지 마련하는 임무를 맡게 됐다.
이번 회의에 참석한 정상들은 중·단기 과제를 명시한 47개의 구체적 행동 계획 등을 담은 공동성명서를 채택했으며 2009년 4월 2차 회의를 열기로 했다.
또 G20회원국들은 향후 3개월 동안 은행 및 신용평가사 감독 강화, 경영진 급여 제한, 재정 및 통화정책을 통한 경기 침체 연착륙을 시도한다는 데 합의했다. 정상들은 또 세계무역기구(WTO) 도하 라운드의 합의에 이를 수 있는 양식(modalities)을 마련하는 데 노력하는 한편, 앞으로 12개월 동안 새로운 무역·투자 장벽을 설치하는 것을 억제하기로 합의했다.
2007년 시속250km 사이클론 ‘시드르’ 방글라데시 강타.
집 27만 채 파괴 90만 채 침수 이재민 300만명 농경지 34만6천ha 침수 사망 3500명 실종 3500명, 방글라데시 농업기반 붕괴 위기
2005년 농민대회 강경진압, 경찰에 맞아 쓰러진 전용철 씨 11.24 숨짐, 홍덕표 씨 12.18 숨짐
2004년 콘돌리자 라이스, 흑인여성 최초로 미국 국무장관에 선출
미 역사상 여성 국무장관으로는 두 번째이며, 흑인여성으로서는 첫 번째다. 그녀가 콜린 파월 장관의 자리에 앉게 된 배경은 한마디로 ‘부시 패밀리’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 이미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일했고, 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000년 첫 대선에 나설 때는 그의 외교정책 개인교사였다.
지난 4년간 백악관에서 외교정책의 총괄조정·대통령 보좌역할을 하였다
19세에 대학을 졸업했을 정도로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 라이스는 대학졸업 무렵 음악에 대한 열정을 국제정치로 바꿔 26세 때 소련 관련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부시 전 대통령 때 국가안보위원회에서 소련 전문가로 활동했으며, 38세 때 스탠퍼드대 교무처장에 임명돼 행정능력을 인정받았다.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해온 라이스는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기보다는 의견조정자로서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해왔다. 부시 행정부의 강경파와 온건파가 대립할 때면 라이스는 부시 대통령에게 양측의 의견을 모두 전달해 대통령이 최종결정을 하도록 했다.
라이스는 2기 내각구성을 앞두고 국무장관보다는 국방장관에 더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친구들에게는 ‘평화로운 학교’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라이스를 옆에 두고 싶어하는 부시 대통령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해 국무장관직을 수락하게 됐다.
2005년 실미도 요원 유해를 발굴하다. 유해는 경기도 고양시 서울시립묘지에 안치했다.
2004년 통일운동가 조용술 목사 세상 떠남
2002년 베를린 마라톤의 영웅 손기정(1912. 8. 29 ~ )이 폐렴으로 별세하다
한국 마라톤의 영웅 손기정(孫基禎·90)옹이 11월 15일 새벽 0시40분 삼성서울병원에서 지병인 폐렴으로 별세했다. 그는 일제하이던 1936년 일본대표로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해 2시간29분19초의 당시 올림픽 최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획득, 암울한 시대를 살던 한국인들에게 민족적 자긍심을 심어주었다.
사흘째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던 손옹은 아들 정인(59), 외손자 이준석(38)씨가 임종을 지켰으나 한마디 유언도 남기지 못했다.
손옹이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한 것은 13일 오전 0시45분쯤. 2000년 12월부터 지병인 만성신부전증과 폐렴으로 입·퇴원을 거듭해온 손옹은 이날 호흡곤란 등의 증세가 갑자기 악화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오전 11시45분쯤엔 혈액순환을 측정하는 산소분압농도가 크게 떨어져 의료진은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해달라”는 통보까지 했었다. 이후 상태가 한때 나아져 일반병실로 옮겨졌으나 결국 입원 48시간 만에 저세상으로 떠났다.
2002년 중국의 장쩌민이 공식 퇴진하고 후진타오 시대가 개막되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부주석이 11월 15일 중국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돼 중국 4세대 최고 지도자로 공식 취임했다. 중국 공산당은 이날 제16기 1중전회(중앙위 1차 전체회의)에서 당의 최고 실권자인 중앙위원회 총서기에 후 부주석을 선출하고, 최고 권력기관인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정원을 종전의 7명에서 9명으로 늘려 60세 전후의 개혁적인 인사들을 대거 발탁, 더욱 젊어지고 개방적인 지도부를 출범시켰다.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은 이번에 총서기 자리를 내놓았고 군부 실권을 장악하는 당 중앙군사위 주석직은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당분간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였다. 기존의 정치국 상무위원 7명 가운데 후 부주석만 유임됐을 뿐 장쩌민 국가주석과 주룽지 총리, 리펑 전인대 상무위원장 등 이른바 제3세대 지도부 나머지 6명은 모두 빠져 정계 일선에서 퇴진하고, 후 부주석을 중심으로 하는 제4세대 지도부에게 길을 터줬다.
한편 중국 공산당은 2100여명의 당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11월 8일부터 14일까지 열린 16차 당대회(전당대회)에서 300여명의 16기 중앙위원(후보위원 포함)을 선출하고 폐막했다. 16기 중앙위는 대폭적인 물갈이와 중앙위원 중 20% 이상이 50세 이하일 정도로 젊어진 것이 특징이다.
1995년 지하철 5호선 강동구간(왕십리-상일동) 개통하다.
1992년 전북 정읍군 호남고속도로서 승용차 등 차량 20대가 연쇄충돌
1명 사망, 50여명 중경상
1989년 브라질, 60년 이래 처음 국민직선으로 대통령 선출
1989년 목동아이스링크 개장하다.
1989년 올림픽대교 개통하다.
광진구 구의동 584번지와 송파구 풍납동 469번지 사이 한강에 있는 다리이다
대한민국 세계화의 시발점인 제24회 서울올림픽을 영구히 기념하고 올림픽 경기장 주변 교통처리를 위해 건설된 특별시도502호선으로 국내 최초의 콘크리트 사장교이며 길이는 1.5km에 이른다. 88서울올림픽을 뜻하는 높이 88m의 주탑 4개가 서 있으며, 주탑은 올림픽 성화대 모양을 형상화하였다. 4개의 주탑은 연·월·일·시의 4주와 4계절, 4방향을 의미하며, 케이블 24개는 제24회 서울 올림픽 경기를 의미하며 그 예술성이 우수하다. 올림픽대교 건설과 함께 남단 고수부지에는 2,500평 규모의 도로공원과 지구촌의 화합을 상징하는 지름 6m의 5륜과 24개의 기념조형물이 조성되었다
1988년 소련 첫 우주왕복선 부란호 발사
1988년 아라파트 PLO의장, 팔레스타인 독립국 선포
1988년 전두환 처남 이창석, 횡령혐의로 구속
1988년 동요작곡가 윤극영 세상 떠남
불멸의 동요 ‘따오기’를 작곡한 동요 작곡가 윤극영 선생이 1988년 11월 15일 사망했다. 86세였다. 윤극영은 경성 법학 전문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의 도쿄음악학교와 도요음악학교에서 성악을 공부했다. 1923년에는 소파 방정환과 함께 색동회를 조직하고 그 이듬해에는 동요 보급단체인 다리아회를 조직해서 어린이 문화운동과 동요보급에 힘썼다.
현대 동요 100년의 역사에 기록된 이름들 가운데 가장 우뚝선 윤극영이 1920년대에 작곡한 ‘반달’이나 ‘따오기’에는 나라 잃은 겨레의 아픔과 슬픔이 담겨있다. 그러나 윤극영의 동요들이 모두 그늘진 것 만은 아니었다. ‘까치 까치 설날은’이나 ‘고드름’ 같은 노래들에는 밝고 맑은 동심이 녹아있다
1987년 경남 함안군 구마고속도로서 승용차와 고속버스가 충돌 11명 사망, 30명 중경상
1984년 제1차 남북경제화담 개최 경의선 철도 연결, 남북경제협력위원회 설치 등 합의
남북한 당국자간의 경제회담이 1984년 11월15일부터 약 1년동안 다섯차례 열렸다
앞서 정부는 남북한 간 경제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도모하고 이를 바탕으로 민족적 신뢰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경제회담을 개최 할 것을 북한측에 제의했다
양측은 남북경제협력위원회 설치와 셩의선 연결 등에 의견 일치를 보이면서도 남측은 선 교류 후 합작투자를 북측은 합작 및 물자교류를 동시 제의하는 등 합의를 이루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1986년 1월22일 제6차 회담을 열기로 합의했으나 북측의 일방적인 불참 통보로 회담이 중단되었다
1983년 키로프스 북부지역주민, 터키계 독립 선포
1980년 숭전대조사단, 수원 서둔동서 철기시대 집단취락지 발견
1978년 아이슬란드의 DC-8 전세기, 스리랑카 뒤 콜롬보근처에 추락. 183명 사망
1976년 경주 황룡사 터 발굴
1976년 오웅진 신부가 꽃동네를 설립하다. (‘사랑의 집’ 준공)
1976년 11월 15일 오웅진 신부가 단돈 1천3백원으로 충북 용담산 기슭에 방 다섯칸 부엌 다섯칸짜리 시멘트 블록집 `사랑의 집`을 짓고 무극천 다리밑에 살던 18명의 걸인을 데려와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꽃동네의 시작인 셈이다.
1980년 9월 19일 청주교구 사제총회는 꽃동네 설립을 가결했고 1981년 예수부활대축일을 기해 전국에 꽃동네 회원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초라했던 꽃동네가 지금은 20여만평의 부지에 부랑인, 정신병자, 노인, 결핵환자, 알콜중독자, 심신장애자를 위한 사랑의 종합시설을 갖춘 전문요양원으로 성장했다. 게다가 가평과 거창에 제2꽃동네와 제3꽃동네를 만들고 사랑의 연수원까지 준공했다
1975년 제1회 서방선진국 정상회담 파리에서 개최
자본주의 경제재건의 길을 모색하는 제1회 주요선진국 정상회담(서미트)이 1975년 11월 15일 프랑스 파리 근교 랑피에성에서 시작됐다. 회의에는 이 회의를 처음 주창한 프랑스와 미국, 일본, 영국, 서독, 이탈리아 정상들과 각국 경제장관 및 외무장관이 참석했다.
첫날 회의에서는 세계경제의 현상과 방향에 대해서 둘째날 회의에서는 무역, 통화, 에너지, 남북문제, 동서경제관계 등에 대해서 논의했다. 최종일인 17일에는 경기, 무역, 통화, 에너지 등 15개 항목으로 된 랑피에 선언을 채택하고 폐막됐다. 1976년에는 캐나다가 1977년에는 유럽공동체가 추가로 참가해 개최지를 돌아가면서 매년 열렸다. 1980년 베네치아 서미트부터 경제 서미트보다는 정치 서미트경향을 강화했다.
1974년 주한 유엔군사령부, 휴전선 남방 1km지점에서 땅굴 발견 발표(북한 제1땅굴)
제 1호 땅굴은 1974년 11월 15일 발견된 남침용 땅굴로 선임하사 구정섭이 지휘하는 육군 수색조가 임무 수행 중에, 땅 밑에서 수증기가 올라오는 것을 발견하고 수상이 여겨 그 곳을 파던 중 북한 초소로부터 갑작스런 사격을 받았다. 이에 우리 군도 응사하면서 조사를 계속한 결과 땅굴이 그 모습을 드러냈으니 바로 남침용 제1호 땅굴이다. 이 땅굴은 서울로부터 52km, 개성으로부터 24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지표에서 2.5m ~ 4.5m 깊이이며 철근이 세 가닥 들어간 조립식 콘크리트를 사다리꼴로 엮어 튼튼하게 만들었다. 땅굴을 판 목적은 남침 1시간 내에 1개 연대 규모를 침투시키고 남파 간첩의 비밀 통로로 이용하여 요인의 납북을 돕는 통로 및 우리 군의 기밀을 탐지해 내기 위한 것 등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1973년 통일벼를 개발하다.
1971년 마이크로 프로세서(MPU) 세계 최초 탄생
`IT(정보기술)혁명`의 주역인 마이크로프로세서(MPU)가 1971년 11월 15일 처음 탄생했다. MPU는 전자기기의 각 장치와 신호를 교환하며 연산을 수행하는 대규모 집적회로. 대표적인 MPU는 PC에 들어가는 CPU(중앙처리장치)를 꼽을 수 있다.
인텔이 내놓은 세계 최초의 MPU `4004`는 처음엔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새끼손가락 크기의 i4004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과 비슷한 성능을 발휘했지만 인텔조차도 그 가치를 몰랐다. 인텔이 겨우 6만달러에 특허권을 일본 업체에 넘길 정도였다.
MPU는 그동안 인류의 역사를 바꿔 놓았다. 특히 1981년 8월 IBM이 인텔 `8088` CPU를 내장한 세계 최초의 PC `PC 5105`를 내놓으면서, MPU는 일약 IT혁명의 주연으로 떠올랐다. 인텔은 8088 개발 이후 거의 2년마다 MPU의 집적도를 두 배 이상 높이며, PC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끌어 올렸다.
1971년 최초의 원전 고리 1호기 본공사 착공
1971년 인도-파키스탄 국경에서 군사 충돌
1969년 미국, 아폴로 12호 발사
1964년 런던 심포니, 서울 시민회관에서 연주하다.
1962년 병무청 발족하다.
1959년 독일 사회민주당이 고데스베르크 강령을 채택하다.
1955년 일본의 자유당과 민주당을 합당한 자민당(자유민주당)을 창당하다.
1954년 38선 이북 수복지구, 군 관할서 행정부로 행정관 이양식 거행
1941년 독일군이 모스코바를 공격하다.
1936년 평양방송국(JBBK) 개국
1935년 필리핀 연방공화국이 성립하다.
1926년 이상협, <중외일보> 창간1895(조선 고종 33) 조선 고종, 건양 연호 사용
1920년 제1회 국제연맹총회, 제네바에서 개최되다.
1920년 11월 1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의 첫 총회가 열렸다.
국제연맹은 1920년 1월 10일에 발효된 1차 세계대전 패전국에 전쟁 책임을 물은 '베르사유조약'에 따라 창설됐다. 11월 15일에 열린 첫 총회에는 승전국과 중립국 42개국가가 참석했으나 국제연맹을 창설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미국은 공화당의 반대로 참가하지 못했했으며 패전국 독일과 막판에 전쟁에서 발을 뺀 러시아는 가입을 거부당해 참가하지 못했다. 이후 독일은 1926년에, 러시아는 1934년에야 국제연맹에 가입했다.
1920년대의 국제연맹은 국가간의 사소한 갈등을 해결하는 등 나름의 성과를 보였으나 1930년대 들어서면서 파시즘이 대두되자 권위가 점차 약해졌다. 1932년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에게 철수할 것을 요구하자 일본은 되레 연맹을 탈퇴했고, 독일과 이탈리아도 1933년과 1937년에 탈퇴통보를 해왔다. 1939년 핀란드를 침범한 소련을 축출하는 용기를 보였지만 이미 연맹은 힘을 잃은 상태였다. 이후 국제연맹은 1946년 4월 18일 공식적으로 해산됐다.
1917년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껭 세상 떠남
1916년 폴란드 소설가 셴키에비치 세상 떠남
1908년 서태후(西太后) 사망
중국 청나라 말기의 ‘서태후(西太后)’는 이름이 아니다. 1861년 함풍제가 병사하고 후궁에서 태후에 오른 서태후가 서쪽에, 정실이 동쪽에 기거하다보니 편의상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을 뿐이다.
17세에 궁녀로 입궁한 그녀가 귀인과 빈을 거쳐 태후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황제 생전에 총애를 받아서가 아니었다. 함풍제를 이을 유일한 아들이 그의 핏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과감한 결단력에 간교한 계책까지 갖춘 야심가였고 남성을 능가하는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5세의 어린 아들이 동치제로 즉위하면서 그녀의 47년 절대권력도 함께 시작됐다. 정실 동태후가 있었지만 그녀는 본시 성격이 온순해 서태후의 적수가 되질 못했다. 동치제가 생모인 자신보다 양모인 동태후를 더 따르자 그녀는 아들을 미워했고 아들은 결국 나이 스물을 못넘기고 1874년에 죽었다. 그녀는 4세밖에 안된 자신의 여동생의 아들을 광서제로 옹립하고 수렴청정를 이어갔다. 1881년 동태후마저 의문의 죽음을 맞자 이제 권력은 사실상 그녀의 독차지가 됐다. 사치했던 그녀는 쌀 5000kg에 상당하는 비용을 하루 식사비로 썼으며 옷만해도 3000상자가 넘어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옷을 갈아 입었다.
1898년 청년이 된 광서제가 개혁주의자들의 무술변법에 힘을 실어주며 일대 개혁을 추진하려하자 이에 위협을 느낀 서태후는 수구파들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변법을 103일 만에 진압하고 광서제를 무력화시켰다. 결국 광서제는 10년간 유폐된 채 지내다가 1908년에 죽음을 맞았다. 다음날인 11월15일 서태후는 이제 2세밖에 안된 광서제 동생의 아들 푸이(溥儀)를 선통제로 세우고는 자신도 곧 73세로 눈을 감았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권력을 움켜쥐려했던 여인이었다.
1900년 대한성공회 강화읍 성당 축성
대한성공회 강화읍 성당이 1900년 11월 15일 축성됐다. 대한성공회 성당 중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며 대한성공회의 산실로 `못자리 교회`로도 불리지만, 이 성당이 더 뜻깊은 점은 독특한 건축양식때문이다.
이 성당은 전통 한옥양식으로 지어졌고 불교식 사찰 배치구조와 흡사하다. 또 유교식 현판을 내걸고 있으면서 내부공간 구성은 서양 바실리카 건축양식을 채용했다. 서양 기독교문명과 한국 전통문화의 만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당시 성공회 선교사들의 토착화 정신이 잘 담겨 있는 역사적 건축물이다.
성당건축은 강화선교를 책임졌고 이후 3대 주교가 된 마크 트롤로프(한국명 조마가) 신부가 총책임을 맡았고 경복궁 중건공사에 참여했던 대궐목수와 중국인 석공 등이 참여했다. 건평은 70평이고 전체 터가 1,000평 규모인 강화읍 성당은 인천 강화읍이 내려다보이는 옛 강화 토성자리에 위치해 있다. 이 건물은 기독교 선교사들이 전통문화를 배격하면서 큰 갈등을 겪었던 사실을 고려하면 불교와 유교의 상징까지 흡수했다는 점에서 놀라운 융합으로 평가되고 있다.
1895년 (양력 환산 12월 30일) 고종 32년, 단발령(斷髮令)이 단행되다.
김홍집 내각이 고종 32년인 1895년 11월 15일 성년 남자의 상투를 자르는 단발령을 공포했다. 당시 내세운 단발의 이유는 `위생에 이롭고 작업에 편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고종이 솔선수범하여 태자와 함께 먼저 머리를 자르고, 관리들과 백성들에게 단발하도록 했으나, 일반 백성들은 이를 청천벽력으로 받아들였다.
"손발은 자를지언정 머리는 못자른다"는 유생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사회적으로도 큰 혼란을 야기했다. 유교 윤리가 일반백성들의 생활에 깊이 뿌리를 내린 조선사회에서는 "신체·머리털·살갗은 부모에게서 물려 받은 것으로서 감히 훼상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라는 말 그대로, 머리를 길러 상투를 트는 것이 인륜의 기본인 효의 상징이라고 여겼다. 그러므로 단발령이 내리자, 백성들은 이것을 살아 있는 신체에 가해지는 심각한 박해로 받아들였고 이에 완강하게 반대했다.
당시의 조선은 동학혁명과 뒤이은 청일전쟁으로 온통 쑥대밭이 돼있었고 급기야 1895년 10월에는 궁궐안의 왕비(명성황후)가 무참히 살해당하고 넉달후인 1896년 2월에는 국왕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할 수 밖에 없었던 비참지경 그 자체였다. 이런 상황속에서 단발령 강요에 대한 백성들의 반감은 개화 그 자체를 증오하는 감정으로까지 발전했고, 또 일본을 본따 만든 제도라는 인식이 전국적으로 확산돼 반일의식으로 이어졌다. 단발령으로 촉발된 반일 분위기는 전국 각지의 의병운동으로 전개됐고, 을미사변과 함께 의병운동의 결정적 기폭제 구실을 했다.
결국 당시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발표된 단발령 강요와 이에 대한 백성들과 유생들의 저항으로 김홍집 내각은 국정개혁을 결실시킬 대중적 지지기반을 상실하고 말았다. 대신에 이범진 이완용 윤치호 등을 중심으로 한 친러(親露)내각이 등장하게 됐다. 새 내각은 그동안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고자 단발령을 철회하고, 각자 개인의 자유의사에 맡기도록 함으로써 비로소 단발령이 일단락됐다.
1887년 미국 화가 조지아 오키프 태어남
1867년 일본 메이지유신 성공 바쿠후의 권력 천황에게 넘어감
1736년 독일출신 영국 천문학자 윌리엄 허셸 태어남
1630년 요하네스 케플러(그림)가 사망하다.
1630년 11월 15일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가 59세의 나이로 길에서 급사했다. 그는 1571년 독일 출생으로 4세 때에 천연두를 앓는 등 육체적인 병약함과 경제적인 빈곤 속에서 자랐다. 17세에 아버지가 죽고난 이듬해 튀빙겐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해 신학을 공부하고 1591년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신학에 싫증을 느끼고, M.메스트린 교수로부터 소개받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감동되어 천문학으로 전향했다.
천문학사에서 케플러라는 이름은 행성 운동에 관한 `케플러의 3법칙`으로 유명하다. `케플러의 3법칙`은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타원운동을 한다든지 움직이는 속도는 면적과 비례한다든지 하는 하늘의 법도를 정확히 밝혀 낸 것이다.
제1법칙은 행성은 태양을 하나의 초점으로 하는 타원궤도를 그리며 공전한다는 것이다. 제2법칙은 행성과 태양을 연결하는 동경(動徑)은 같은 시간에 같은 넓이를 휩쓸며 지난다는 것. 즉, 행성의 속도와 그 동경이 그리는 넓이의 곱은 항상 일정하다는 것이다. 제3법칙은 행성의 공전주기의 제곱은 공전궤도의 긴반지름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법칙이다. 이로써 케플러는 그때까지의 천문학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지금도 이 `케플러의 3법칙`은 그대로 쓰이고 있다.
1478년 (조선 성종 9) 서거정 등 <동문선> 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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