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 하구언이 관광지일 때가 있었다.
어머니도 동네 아주머니들과 다녀오셔서
“바다를 막었는디 볼 것은 없드라만은 한 번은
가볼 만 허드라”
바다 구경 한 번 못하고 가장 물을 많이 본 곳이 있다면
영산포역전 다리 아래로 흐르는 강물이었다.
“엄마, 바다는 영산강보다 크든가?”
“그러제”
외가댁 논은 영상강 유역에도 있었는데 가끔은
가물다보면 영산강 주변의 논으로 짠물이 올라와 농사를
망친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연시간에 썰물과 밀물이 나오면 헷갈리고 만조시간
해일 모두가 낯선 단어였다.
“영산강 하구언을 막으면 지도가 완전히 바뀌어 분다고
합디다.”
지도가 어떻게 바뀌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간척지 사업이란 단어도 이해가 안 되었다.
지금처럼 영상매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른들의
입으로 통해서만 듣는 상식에 불과했다.
우리 마을 앞으로 흐르는 내는 아무리 가물어도 짜지
않았고 가물면 물이 마르긴 했어도 비가 많이 오면 물이
많이 흘러가고 가물면 돌들이 솟아오르고 그 틈으로 물이
조금씩 흘러 내렸다.
바닷물이 짠 이유는 동화속의 맷돌이 돌아가 많은
소금이 나와서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미령이와 나는 어느 날 마음을 먹고 하루에 세 대밖에
없는 영암으로 가는 버스 11시차를 타고 영암에서 내려
목포로 가는 영산강 하구언을 경유하는 목포행 버스에
몸을 싣고 유명한 관광지 영산강 하구언에서 내려 뚝방
길을 걸어갔다.
길고 지루한 길 양 옆으로는 바다가 물을 담고있었다.
바다가 아니고 큰 저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어느 남자애가 자전거를 타고 비스듬하게 막아진
길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 빠지면 죽을 텐데 하며
손에 땀이 나고 발에서도 땀이 났다.
목포로 가서 선착장에 갔더니 무슨 島가 그리도 많은지
배를 타고 싶었지만 그 생소한 모른 島를 가면 영영
길을 잃어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선착장 옆으로 내려가 바닷물이 짠지 손으로 찍어 맛을
보니 짰다.
삼학도 주변은 섬도 작았고 물이 말라 있었고 유달산을
가니 이난영의 노래비가 있고 산은 우리 집 뒤에 있는
산보다 야트막하고 작았다.
다만 꽃들이 많고 나무가 우리집 뒷산보다 잘 다듬어졌고
오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기억밖에 없다.
목포는 너무나도 낯설고 검게 그을린 선착장 사람들의
낯선 얼굴이 무섭게 느껴졌다.
해가 지기 전에 집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 완행
열차를 탔는데 몽탄역. 일로역, 고막원역 학교역, 학다리역,
다시역. 처음 본 활자 처음 들어본 지명을 두고 미령이와
난 웃고 또 웃었다.
영산포역에서 내리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터미널까지 걸어와 버스를 타고 집에 오니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어디 갔다 인자 오냐?”
“응 너뿌랑 친구집 좀 갔다 오니라고”
“어디를 갔기에 하루 종일 걸려야? 밥은 묵었냐?”
“아니? 엄마, 근디 목포는 크당가?”
“나도 안가봐서 모른다. 광주 목포 여수 순천시 헝께
전라남도에서 두 번째로는 크것지야.”
“응, 영산포 나주보다 크까?”
“큰께 시제 달리 시달리야(市겠니)”
“으응. 나는 언제나 목포를 가보까 잉”
어머니의 뒷조사를 난 그렇게 무마 시켰다.
그리고 목포를 간 이야기를 아무한테도 하지 않았다.
첫댓글 제 고향도 넓은 간척지가 있다. 그 곳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막은 간척지가 아니고 일제시대 때 일본 사람들이 들어와 득량만 바다을 막아서 농지로 사용되고 있는 곳이다. 간척지 길이는 전라선 열차로 4개(득량, 예당, 조성, 벌교)역을 달려야 끝이 날 정도로 넓다. 언젠가 나도 그 간척지 둑방길을 캄캄한 밤에 친구들과 함께 걸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기분이 아마도 따박솔님 글에서 느꼈던 그런 감정이 아니었나 싶다. 친구들이 함께 있어서 그 길을 걸었지 혼자 가라고 했으면 못 갔을 것이다. 손,발에 땀이 났고 긴장이 많이 되었고 조용한 밤이라서 바다가 울고 있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누군가가 바닷물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라 했다.
산중사람은 물이 밀려 왔다가 쓸려가는것이 전혀 이해가 되지를 않았습니다. 그 때 맘 먹고 갔는데 그 호기심을 해소 해놓고 두 번을 다시 다녀 왔답니다.
언제적 이야긴가하고 두번 읽었는데 알수가 없네요.ㅎㅎㅎ 기억이 참 좋군요..잘 읽고가요.
기억이 좋긴요. 호기심이 많다보니 기억하는거지요.
하여튼 인물이여 인물 ^^*
인물이면 울 단해님도 못 만났을 것이요 ㅎㅎㅎㅎ
ㅎㅎㅎㅎㅎㅎㅎ 따박솔님~~~참말로 기억력~~굳이네요~~대단한 따박솔님께 ~~아낌없는박수 보내드립니다..쉬어갑니다..
잡다한것을 많이 기억해서 어떨때는 잊고 살앗으면 하는 때가 많습니다.
저는 자전거 얘기만 나오면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입니다. 철천지 한? 이 맺혀서...ㅎㅎㅎ 이유는 묻지 말아주세요..ㅎㅎ 고막원 을 일깨워 주시는 군요. 청기와 주유소 앞의 기사님 식당.. 음식맛은 ... 그당시만 해도 차가 많지 않았지만 차를 운전 하는 사람은 모르는 이가 없었지요. 아~ 옛날이여~~~!
그렇군요. 알만합니다. 5학년 때 저도 오빠가 삼천리 자전거 뒤에 태워 주었는데 무서워서 그만 손을 놓치는 바람에 처음으로 결석이란 걸 했습니다. 6년 개근상 타려고 어머니 시켜서 조퇴로 해달라고 선생님께 말슴드리라고 해서 6년 개근상장과 10장짜리 앨범 한 권 건졌습니다.
추억은 때론 슬프기도 하지만 즐거운 기억이 더 많지요. 즐거웠던 추억만 생각하기로 해요... 근데... 양쪽에 시퍼런 물을 사이에 두고 무서워하면서 뚝방길을 걷는 꿈은 무슨 꿈인가요? 글을 읽으면서 뜬금없이 꿈이 생각나네요!
물이 맑으면 재물 꿈입니다. 서진님 땅이 튀던지 아니면 버섯이 대풍을 이루어 금점운이 쏟아질 꿈입니다.
푸하하
웃겼나요?
ㅎㅎ 어떻게 이야기를 안하실 수 있을까요.. ㅎㅎ 전 모두 이야기 하는디...ㅎㅎ 학다리역을 처음 보고 저도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근데 학다리고 나온 사람들이 있어서 재밌게 생각되었지요~
디지게 혼나지요 가스나가 씰데없이 싸돌아 다닌다고 그래서 못햇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