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소리에도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물에 젖지 않는 연꽃과 같이
저광야를 가고 있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 가거라.
- 수타니파타에서 -
올봄 산수유 피던 시절에 남원 실상사에서 본 천왕봉의 모습은 경이 그 자체였다.
웅장한 山群위에 우뚝솓아 흰눈을 이고 있는 모습은 마치 전설속의 雪山을 보는 듯하였다.
내 저산에 오르리라 마음속에 다짐하던 차 드디어 이번여름에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무릎관절부상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산행이 불가능한 나는 가장 빠른 코스인
마천 백무동코스를 택하고 천안에서 무궁화 열차를 타고 남원까지 왔다.
기차안에서 지난봄 실상사에서 산 불교최초의 경전 수타니파타를 꺼내어 읽었다.
창밖에는 벌써 누런 빛이 감도는 너른 평야가 보였다.
3시간걸려 남원역에 도착하니 버스정거장이 안보였다.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기차역을 옮기면서 아직 버스노선이 신설되지 않았다며 친절하게도
남원시외 버스 정거장까지 태워다 주셨다.
남원에 대하여 좋은 인상을 갖게 되었다며 인사를 드리고 백무동행 버스를 찾으니
벌써 막차가 끊겼다. 할수 없이 백무동가까운 인월에 가서 허룻밤자고 아침일찍 산행을 하기로 했다.
인월은 아직 70년대 새마을운동때 시행한 시가지 정비사업의 잔해가 그대로 남아 있는
조용한 산촌이었다.
된장찌개로 저녁을 간단히 때우고 소화겸 시내를 돌아다니니 유난히 다방과 노래방이
눈에 띄었다. 旅愁도 달랠겸 한잔할 생각도 났지만 내일 아침 산행을 위하여 참고
여관방에 돌아와 누었다..
옆방 문 열고 닫는 소리와 차배달온 아가씨의 목소리가 정적을 깨고 들려왔다.
자는둥 마는둥 새벽에 눈을 떠서 어제 저녁 먹은 집에서 다시 된장찌개백반을 먹고
백무동행 버스를 탔다. 버스기사와 손님들간의 억센 경상도 사투리의 대화를 듣고
경상도에 온 것을 실감하였다.
8시에 백무동에 도착하니 산을 뒤덮었던 구름이 서서히 걷히고 지리산의 능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백무동은 그야말로 천지가 물이었다. 많은 산을 다녀봤지만 이토록 물이 맑고
큰 계곡을 보지 못했었다. 도시락과 생수를 하나사서 배낭에 넣고 산에 오르니
휴가시즌이 끝나서 그런지 산행을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우뢰와 같은 물소리를 들으며 점점 더 깊은 산중으로 빨려 들어갔다.
얼굴은 땀범벅이 되고 호흡은 거칠고 힘들기 시작했다.
단지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 산을 오르기엔 너무 힘들어
과정을 즐기기로 마음을 먹고 이름 모를 들꽃과 폭포등을 사진 찍으며 올라갔다.
산행을 시작한지 두시간 가량 지나니 하산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정답게 인사를 나누고 마지막 깔딱고개를 넘어 능선에 오르니 드디어 산아래가 보이기
시작하고 눈앞에 가까이 장터목 산장이 나타났다.
사실 나는 지리산에 오르기전부터 장터목에 대하여 낭만적인 기억이 있었다.
오래전 한 중년사내가 젊은 날 함께 지리산 장터목산장에 왔던 옛애인을 추억하며
쓴글을 본적이 있어 마치 나의 첫사랑의 추억을 찾아 온것처럼 가슴이 설레었다.
장터목의 날씨는 고산지대라 그런지 변화무쌍하였다.
운무가 가득해 한치 앞도 안보이다가 갑자기 해가 쨍 비치더니 다시 운무속으로 잠기었다.
산장에서 도시락을 꺼내어 총각두명 옆 빈자리에 앉으니
맞은편에 앉아 있던 30대후반의 예쁘장한 아주머니 세명이 여기도 빈자리 있는데 앉으세요
하고 권했다.
사실 따끈한 국물이라도 얻으려고 총각들 옆에 앉았는데 이제 막 물이 끓기 시작하니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후딱 점심을 마치고 그아주머니 들한테 커피 한잔 얻어 먹으려다
말이 떨어지지 않아 자리에 일어나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천왕봉 가는 길은 지금까지의 길과 달리 경사가 매우 급했다.
낭떠러지에 아슬하게 자리잡은 멋진 구상목들을 찍으며 산에 오르니 갑자기 너른 평원이
보였다. 제석봉이었다.
예전에 지리산 사진전시회 하면 빠지지 않던 곳이 제석봉 고사목이었는데
막상 보니 고사목들은 밑둥조차 썩어 스러지고 폐허 그자체였다.
안내문을 보니 도발꾼들이 나무를 베고 흔적을 없애려고 산에 불까지 질렀다 하니
그들의 끝없는 비도덕적 행위에 치가 떨렸고 얼마전 본 신문기사가 생각났다.
일제말 헌병오장을 지낸 한 인사가 해방후 재빨리 경찰에 투신하여 지리산공비토벌대장이
되었는데 그공적으로 지리산 산림벌채권을 얻어 허가 받지 않은 지역까지 도벌을 하여
구속되었다가 막강한 배경으로 무죄방면되었다고 한다.
그 인사의 아들이 여당 대표가 되어 친일진상규명법에 앞장섰으니 역사의 아리러니이다.
한때 하늘을 가렸던 제석봉의 구상나무군락은 사라졌지만
얼마전부터 이 폐허위에 구상나무 묘목을 심어 지금 자리 잡고 있으니
여기서 작은 위안을 얻고 천황봉으로 향했다.
천왕봉은 대청봉이 산봉우리가 크고 바람이 거세어 눈잣나무외에 나무가 잘서식하지 못하는 반면에
산세가 뾰족하고 아기자기하며 바위급경사면에 아름드리 구상목들이 잘자리잡고
있다.
드디어 천왕봉 정상..
백무동을 출발한지 5시간만인 오후1시에 도착했다.
아래에서 구름속에 날카로운 바위로 보였던 모습은 가까이 가보니 사람들이 서있는 모습이었다.
정상에는 “한민족의 기상이 여기서 발원하다” 라고 새겨진 비석이 서있다.
여기까지 오르게 한 천왕봉에 감사드리며 북쪽 부모님이 계신곳으로 경배를 하였고
두팔을 하늘을 향해 뻗어 올려 지리산의 정기를 받아 들였다.
산을 내려와 보니 금방 올랐던 천왕봉은 구름속에 가리워 보이지 않앗다.
기차에 올라 다시 숫타니파타를 보며 이번 여행의 화두를
떨어져서 바라보기로 스스로 정하였다.
세상사에 힘들고 지치고
상처받거든 지리산으로 가라.
크고 웅장한 산속으로 들어가
한발자국 한발자국 앞으로 올라가라.
우리가 이루고자 했던 모든 일들이
백무동 물속에 구르는 돌보다 가치가 있었던가.
제석봉 벼랑위에 자리잡아
하늘향해 치솟은 늘푸른 구상나무보다 위대했던가.
천왕봉에 올라 우리가 사랑햇던 모든 것들이
발아래 구름보다 부질없다는 것을 알게 되거든
산을 내려와 세상속으로 다시 들어가라.
그리하여 산에서 바라본 것처럼
세상과 조금 떨어져 바라보며 살아가자.
윗글은 48세에 지리산 천왕봉 초등을 하고 쓴글입니다
어릴때부터 산을 좋아하여 관악산 수리산 북한산 용문산 등 서울 근교 산행 위주로 다니다가
설악산은 20세에 처음 올랐습니다. 그후 홀로 산행에 한계를 느껴 50세에 산악회에 가입하여
100대명산을 비롯하여 백두대간 등 전국의 명산을 다녔고 해외원정산행까지 다녔지만
정년퇴직전 기사시험공부를 위해 산행을 중단한 이후 지금은 산행을 거의 안합니다.
빨리 정상 컨디션을 회복하여 여건이 허락되면 북녁의 명산들도 가고 싶은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댓글 백무동에서 천왕봉
삼십대후반 산에 대해 무지했던때....
강아지 끌어안고 밤11시에 출발
천왕봉까지...ㅋ ㅋ
무식이 용감 했었네요....,
산을 즐길 시절엔 계절마다 찾던 지리산.....
화대종주도 여러번/~~~
꼭 다시한번 가보고싶습니다
강아지를 안고 백무동에서 천왕봉까지 오르시다니
대단한 체력이십니다..
지리산은 능선이 부드럽고 계곡이 깊어
사시사철 찾는 참 좋은 산입니다
올봄 철쭉꽃 피면 저도 오르고 싶습니다 ^^
그곳에
산이 있으니
그산이라 합니다
혼자서 무릎도
안좋으신분이
직접 산행하고 쓴
진솔한 산행기
그냥
그산에 함께한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그산은 추억이 있는 산이기도 하며
가지못한 산이기도 합니다
무릎아프면 무릎보호대차고 스틱가지고 가면 되는데
발목이 아픈건 정말 방법이 없습니다
건강하여 이렇게 산행을 하셨던, 하시는 분들이 제일 부럽습니다.
저는 기관지가 악화된 상태라 동네 산도 못 오르고 있으니..... 숨이 차서요.
반갑습니다
저의 산행은 과거형이며 미래형입니다
지금은 다시 산에 갈날을 꿈꾸며 동네산 위주로
다닙니다. 박시인님의 기관지상태를 잘모르지만
천천히 걷다보면 나지지않을까 생각됩니다
백무동
천왕봉 산행 가장 빠른 코스지요
올라 가면서 고로쇠 받은 물을 마시고 가던 생각이 나네요.
별이님 반갑습니다. 중간에 고로쇠물도 받아 드셨군요
백무동에서 2.3번정도 올랐는데 가장 가깝기도 하고
계곡을 끼고 물소리 들으며 가서 지루한줄 몰랐습니다
@그산 고무통에 받아 논 물 마시며 올라 갔지요.
@별이님 그러시군요
봄에 산에 가면 여기저기 고로쇠물받는 큰 통을 볼수 있었지요
거림 세석 천왕봉 중봉 무재치기폭포 대원사
길이 눈에 훤합니다
백무동 계곡 따라 천왕봉가는 길은 중산리길보다는 왠지 마음이 편했던 기억입니다
참으로 지리산 사랑이 깊으십니다
저도 한때 제일 사랑했던 여자(堉山)가 지씨 가문에 리산이 었어요 ㅋㅋ
저도 말씀하신 코스가 눈에 선합니다
남쪽지방에 사시기에 지리산가기가 수월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저는 48세에 초등했고 산악회 가입후에는 1.2년에 한번씩 갔던 것 같습니다
지씨가문의 리산이라는 아름다운 여인
아직도 그곳에 가면 만나실수 있을겁니다 ^^
몸부림님~
답글보고 오분동안 웃었습니다 ㅋㅋㅋ
지 씨가문에 리산 ㅋㅋ
아~~~ㅎㅎ
@하늘호수. 몸님의 글은 꽁트같으면서 웃음과 해학이 거의 천재수준입니다 ㅎㅎ
@그산 마져요
천재수준 마져요 ㅎㅎ
저도 직장시절에
지리산 1박2일 등반을 했던 기억이
아련하게 떠 오릅니다 ᆢㅎ
그러시군요
지리산은 어머니의 산이란 말처럼
언제나 누구든지 포근하게 품어주는 산입니다 ^^
저는 지리산 하면 세석에서 장터목에 이르는 '연하선경' 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그립습니다.
백무동에서 오르려면 꽤 힘들었을 텐데, 요즘은 남서울에서 중산리로 가는 버스가 있답니다. 주말 저녁 10시경 출발해서 새벽에 중산리 도착해요.
저는 재작년에 천왕봉 찍고 작년엔 구례에서 반야봉 다녀왔습니다. 올해는 종주할 생각인데 동행이 없어요 ^^;;
안개와 노을의 풍경이라는 연하선경 저는 그의미를 잘모르고 지나쳤습니다
그길이 제일 평탄했기에 저는 거의 달려갔던것 같습니다
다음에 지리산 오르면 천천히 연하선경을 감상하면서 걷겠습니다
일행이 없으면 저처럼 혼자 천천히 가시는것도 좋습니다 ^^
저도 산에 다니게 된 계기가
40초반 되면서 산악회 가입후
였습니다
운동도 좋아하지 않았고
더군다나 산은 죽을만큼
싫어했어요
회사에서 야유회를 산으로
정했을때 그절망감 이란 ㅎ
그런데 제가 이리 주말이 되면
일주일엔 꼭 한번씩 실행하게
되는게 산 오르기 입니다
여성스런 지리산이며
특히 남성다운 설악은
한달에 두번 설악비탐을
누볐던 시절도 십여년 전이군요
지금은 삼각산(북한산)위주로
살방 다니고 있답니다
무릎건강 회복하셔서
행복한일상 꾸려가셔요
파이팅!!
칼라플님 반갑습니다
저는 어릴때부터 산다니길 좋아했습니다
이사가면 항상 동내 뒷산부터 올라갔었지요
그후 40대에 몸무게가 늘어나면서 저의 체중을 생각하지 않고
산을 뛰어내려오다가 무릎이 시큰해지더니 고질병처럼 되었습니다
정년앞두고 기사시험 공부하면서 체중도 많이 빠져 스틱잡고 살방살방 다니면 다닐만합니다
문제는 발목입니다. 발목이 아프면 평지도 걷기 힘들어 물리치료받으며 조금 좋아져서
하루 2만보씩 걷습니다
봄이오면 다시 천안 광덕산부터 오를 생각입니다
응원감사드리며 저도 칼라플님의 멋진 산행응원합니다 !
산님의 기행을 보면 저도 같이 느끼며
걸어갑니다
깔딱고개 넘어 능선에 오르면
벌써 가슴이 벅차고 설레는 마음
산님 덕분에 실컷 느끼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빛나라여사님 반갑습니다
천왕봉 초등때 느낀 감정을 썼던글을 올렸는데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지리산 연하선경을 천천히 걷고 싶네요
오늘도 행복한 하루되세요!
저는 평생에 못해볼 산행을 이렇게 앉아서 감동을 느낍니다
저도 화전민촌에서 성장하느라 산을 노루처럼 달리며 컸지요
10살적 자꾸 오르고 오르다 산 꼭대기까지 올라가 바닥에 앉았는데
바닥에 조개껍질이 많은 거예요 아니 이 높은 산에 웬 조개껍질이
페총이라 하나요 하옇든 얼마나 많던지 좀자라서 알아 보니 옛산이라
몇 만년 전엔 다 바닷속에 잠겼던 시대꺼라는 글을 봤어요
하긴 그 꼭대기 아득한 곳에 조개를 들고 와서 까먹고 갔을 리가
그때 생각하면 산이 무서워요
이 높고 깊은 골이 바닷물 속에 있었다는 생각에 말이지요
산님 오늘은 왜 음악이 동반 되지 않았나요 음악 넣어 주세요~
운선작가님 반갑습니다
산을 노루처럼 달려가셨군요
바다가 융기하여 산이 됐다는 것을 지리시간에 배웠는데
실재로 보셨네요. 그동안 제글 본문에 항상 음악을 올렸는데
공지에 글본문에 동영상을 올리지 말라는 내용이 있어
오늘 글부터 안올리려합니다
하지만 음악을 사랑하시는 몇분께는 답글에 동영상을 올려드리겠습니다
아래영상은 Emi Fujita의 Wishes 인데 잔잔하여 듣기 좋습니다
https://youtu.be/zy6pam9l0ZE?si=OmWWJWyjAlpMxF3R
PLAY
@그산 노래 잘들었습니다 너무 좋았어요 ~^^
아 옛날 그 산이 그립습니다.
자연님도 산을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산에 다니던 그시절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