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세계 최고의 마님배우 알랭 드롱
(펌글)
Alain Delon (1935. 11. 8 ~ )
헐리웃 스타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프랑스 국민 배우 알랭 드롱.
한 때 세계 최고의 미남 배우라고 불리웠던 그.
요즘 잭 애프런을 보면서
왠지 젊었을 때의 알랭 드롱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는데...
알랭 드롱의 팬으로서 알랭 드롱이 훨씬 완벽한 외모라고 생각하지만,
게다가 알랭 드롱의 우수에 찬 깊고 고독한 눈빛의 포스만큼은 결코 못 따라가지만...
그래도 분위기나마 비슷한 배우가 현재 존재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앞으로 이보다 더 미친 미모의 배우가 또 나올까 한 번 기대해 보면서 사진 올립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의 젊은 시절 모습은 자체 발광하는군요....^^
어린 시절의 그,
어렸을 때 모습. 처음 보는 사진인데 너무 이쁘네요.
꼭 여자 아이 같은...
하지만 불우하게 자랐죠.
외모와는 달리 험한 인생을 살았어요.ㅜㅜ
이 사진....잭 애프런이랑 분위기가 비슷한 것 같아요. ^^
브리짓도 바르도하고도 스캔들이 났었죠.
예전에 영화인지 드라마인지 함께 촬영한 적이 있죠.
훈훈하고 섹시하고~^^ 아마 요즘에 나온다 해도 대번에 주가가 올라갈 마스크죠 ㅋ
정말 미친 미모인듯...><
글래머 배우였던 소피아 로렌의 모습이 보이네요. 둘이 나이가 비슷하죠 아마.
모든 여자들이 반하지 않고는 못 배겼던 저 사슴같은 파란 눈....><
여린 감수성을 가진 듯한 눈빛 뒤에 언뜻 언뜻 흘러 나오는 퇴폐미(?!) 또한 드롱의 매력이었죠.
이 사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알랭 드롱의 사진. 카리스마 작렬.....!!!
근육도 ㅎㄷㄷㄷ.... 1968년 로미 슈나이더와 출연한 'The Swimming Pool'의 한 장면인 듯 하네요.
카우보이 모자도, 중절모도 다 잘 어울렸던...게다가 스타일리쉬하기까지....!!!
1967년 영화 Le Samourai (사무라이) 에서 중절모에 깃 세운 트렌치 코트 입은 킬러로 나와요. 기회되면 꼭 보세요. 심장을 멎게 할 정도로 차가운 알랭 드롱의 매력에 빠지실 겁니다. 사무라이 스틸 사진은 다음에 올리도록 하죠-
20대 후반까지 불같은 사랑을 나누었던 독일 출신의 여배우 로미 슈나이더와 함께 한 모습. (1959~64)
독일에서 당시 "국민 여동생"처럼 사랑받았던 아기고양이 같은 귀여운 매력의 로미 슈나이더와 프랑스의 조각같은 미남배우 알랭 드롱...이들은 세계 최고의 아름다운 커플로 불리우며 늘 대중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지만 아쉽게도 영원히 함께 하지는 못했지요.
미 슈나이더 Romy Schneider (1938. 9.23 ~1982. 5.29)
오스트리아 비엔나 출신의 영화배우.
본명은 로즈마리 막델레나 알바흐 레티 Rosemarie Magdelena Albach-Retty 이다.
처음부터 배우를 하려고 한 것 같지는 않다. 잘츠부르크
근교의 수녀학교를 다니던 그녀는
<흰 라일락이 다시 필 때, When the
white lilacs bloom again (1953)> 라는 영화에 어머니 마그다와 함께 출연한
것이다. 이때부터 어머니의 성을 따서
'로미 슈나이더 Romy Schneider' 로 개명하여 불리게 되었다.
데뷔 초 청초한 이미지로 강하게 어필하여 많은 팬들을 끌어 모았던 그녀.
그녀가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은 4번째 작품인 영화
<Sissi (1956) >를 통해서였다.
오스트리아 프란츠 황제의 전설적인 로맨스를 다룬 영화였다.
로미는 오스트리아의 황비 엘리자베스 역으로 주연을 맡았는데, 독일 여자의
청순한 매력과 순수한 감수성으로 전 세계를 강타했다.
1958년 칸느 영화제에서 그녀의 모습은 온 미디어를 통해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당시에는 프랑스의 브리짓도 바르도와 같은 요부형, 글래머형의 배우가 판을
치고 있던 시대였지만,
독일에서는 낭만주의 스타일의 청순미를 지닌 로미에게
대단한 관심을 표명했다.
그녀의 명성을 드높인 작품 씨씨 <Sissi (1956)>에서의 모습.
독일 여자 특유의 청순미로 큰 인기를 누린 하이틴 스타 시절의 모습
1958년, 영화 <사랑은 오직 한 길 (Christine) >은 그녀의 운명을 바꿔놓은
작품이었다.
이 영화를 통해 그녀는 알랭 드롱 Alain delon 과 처음으로 만났다.
우리 나라에서는 1960년에 개봉했던 이 영화에서,
두 남녀는 정말 예술적인 조합을 이뤘다.
로미 슈나이더의 미묘한 우아함과 알랭 드롱의 고양이같이 깔끔한 매력이 하나의
이상적인 커플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촬영 중 알랭 드롱과 사랑에 빠진 그녀는,
제 2의 모국이나 마찬가지인 독일을 떠나 프랑스로 단숨에 건너왔다.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알랭과 단 둘이 마주보는 저녁 ?"
라고 할 정도로,
사랑에 푹 빠진 자신을 유감없이 표현하기도 했다.
?
로미 슈나이더와 알랭 드롱의 행복했던 한 때.
1961년부터 로미와 알랭은 비스콘티의 <그 여자가 창녀라 유감이야>라는 연극을
120회나 공연하였고, 다음 해 1월부터 두 커플은 안톤 체홉(Anton Chekhov)의
작품을 가지고 프랑스 전역을 돌며 100회나 되는 강행군을 거듭했다.
물론 연극은
성공적이었고 (상업적인 면에서...) 그녀는 헐리우드로부터 주목 받는 여배우로
떠올랐다.
헐리우드의 매체들은 그녀를, "제 2의 마를리네 디트리히 Marlene
Dietrich" 라고 치켜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헐리우드의 답답한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프랑스로 돌아온다.
같은 때,
알랭 드롱은 전 세계를 돌며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그녀는 이 때부터 알랭 드롱과는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예술가끼리의 사랑은 정말 힘들어요. 하지만 저는 평범한 사랑에 만족하는
것보다는 불행한 열정을 불태우겠어요." 라고 말한 바 있으나,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는 지는 의문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로미는
"알랭이 행복하기를 바래요."
하고 두 사람의 관계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너무나
사랑했기에 헤어졌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알랭 드롱 역시
로미를 사랑했지만 그는 자신의 일에서만큼은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로미는
일에 빠져 있는 알랭드롱의 곁에서 너무나 외로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그를향한 사랑이 오히려 막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그에게 방해가 될 수도 있을
꺼라는 생각으로 결국 이런 결정을 내린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파리를 떠나 베를린으로 돌아가 연극 연출가 아리 메옌 (Harry Meyen)
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지만, 1968년 알랭 드롱과 다시 재회를 하게 된다.
자크 드레 (Jacques Deray) 감독의 <태양은 알고 있다 The swimming pool>
에 알랭 드롱이 상대역으로 캐스팅 된 것이었다. 물론 알랭이 출연하게 된 것은
로미와 만나기 위해 그가 사전에 감독을 설득하여 이루어진 캐스팅이었다.
그녀는
알랭 드롱이 출연한다는 말에 그 자리에서 출연을 승낙했다고 한다.
"알랭의 부탁을 받고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지난 날을 가슴에 품고 계속 살 수는
없잖아요. 우리는 다시 좋은 친구가 되었거든요."
진심인지 아닌지 모르는 그녀의 말이었다. 어쨌든 영화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후
그녀는 클로드 소테(Claude Sautet) 감독을 만나 <즐거운 인생 These
things happen(1969)>에 출연하여 클로드 소테에게 프랑스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루이 델릭" 상을 안겨 주었다.
소테 감독은 그녀의 성숙한 여성상을 잘 표출하고 걸러낼 수 있는 감독이었다.
두 사람은 이후에도 4편의 작품을 함께작업했고,
그녀는 이 ?부터 청초한 여인에서 도발적인 시선의 요염한 여인으로
완전히 탈바꿈하는 데에 성공을 했다.
1976년 <중요한 것은 사랑 Mado>,1979년 <단순한 이야기 A simple story>로
두 번의 세자르 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자신이 쌓아 온 노력에 대한 댓가를 톡톡히 받았다.
이전과는 전혀 딴 사람으로 변한 것 같은 로미 슈나이더. 청순한 외모로 인기를
누린 과거에서 벗어나 농익은 관능미와 연기력으로 명실공히 최고의 여배우로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성공이 꼭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나보다.
그녀는 1970년 중반부터
다시 파리 생활에 길들여지면서 남편과 이혼하고, 자신의 매니저인 다니엘
비아시니 (Daniel Biasini)와 재혼하게 된다.
1977년 딸 사라를 낳았지만,
2년 뒤인 79년, 전 남편의 시신이 아파트에서 발견되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81년 아들 다비드가 열쇠가 없어 쇠창살을 넘어
집으로 들어가려다 쇠창살에 찔려서 죽는 참변을 당하게 되었다.
심한 충격을받은 그녀는 그 ?부터 마약과 술에 빠져들게 된다.
그 해에 두번째 남편과도
결국 이혼하고, 그녀는 정신적인 회복과 배우 생활의 재기를 위해 휴식을 취하던
중, 바로 그 다음 해인 1982년 5월 29일.
그녀는 소파 위에서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된다.
의사는 심장마비라고 발표했지만,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인한 자살이라
는 설이 더욱 신빙성을 얻었다.
그녀의 나이 불과 44살이었다.
그녀는
죽기 전 어느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알랭 드롱...그를 잊지 못해 내 삶은 추락했다."
라고 넋두리처럼 늘어놓은 바 있다고 한다.
그녀가 전에 했던 말들은 다 진심이 아니었다는 게 이 한 마디를 통해 입증되었다.
알랭 드롱과
치유하지 못하고 이루어진 두 번의 결혼은
그녀에겐 사실 무의미한 것일 뿐이었다.
알랭 드롱은 추도사에서,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모른다. 아주 유명한 배우가
될수록 살아가는 데는 서툴러지는 것 같다. 그레타 가르보, 마릴린 먼로, 리타
헤이워드가 그랬다....."
짧은 생을 마감한 그녀의 무덤 앞에서
그녀의 첫 사랑의 상대자였던 알랭 드롱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한 때는 가장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커플이었던 두 사람은,
그 날부터 가장 멀어져 있는 커플로 남아버렸다.
"알랭 드롱...그를 지워버린 내 삶은 의미 자체가 없었다."
-로미 슈나이더-
정말 잘 어울리고 예쁜 커플이었는데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특히나 비극으로 끝난 로미 슈나이더의 삶 때문에 더더욱.
다음은 세월을 땡겨서....중년이 된 알랭 드롱^^
나이가 들면서 더 섹시해지는 알랭 드롱...
젊었을 땐 그냥 완벽에 가까운 조각 미남이었다면,
나이가 들면서는 마치 이전엔 없던 무언가가 생긴 것 같네요^^
그리고 현재의 알랭 드롱.
칸 영화제 시상식. 이 때 전도연 완전 부러웠다는...알랭 드롱의 키스까지 받는 영광을...!!
이건 가장 최근의 모습. 어느 감독의 장례식이라는군요. 나이가 많이 들었지만서도 오히려 예전보다 더욱 강인해 보이는 포스(!) 비결이 어디에 있는 건지...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 하지만 정말 멋있게 늙어가시는 군요.
그 파란 눈은 여전하시네요^^
이젠 주름이 가득한 그의 얼굴에서...그의 젊은 시절의 모습은 멀리 되돌아갈 수 없는
추억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그는 우리의 기억 속에 영원히 최고의 미남배우로
남아 있을 꺼라 의심치 않습니다!!!
그가 출연한 영화 스틸 사진들도 기회가 되면 올리도록 하죠. 그의 미모와 연기력을
충분히 입증하는 주옥같은 작품들이 많습니다. 물론 대다수가 프랑스 영화고요.
그가 할리우드로 활발히 진출했더라면 또 어떻게 되었을 지 참으로 궁금해집니다.
아마 프랑스 국민 배우에 그치지 않고 세계적인 스타가 되어 지금껏과는 비교가
안 되는 부와 명예를 누렸겠지요.
물론 그는 고국인 프랑스를 택했지만 말입니다.
그럼 눈 정화 잘 하셨길 바라며......^^
* 음악은 '초이스'가 첨부 합니다
알랭드롱 이야기 잘 보셨나요?
그리고 음악도 잘 들어셨나요?
소싯적 저도 알랭드롱 영화라면 빠지지않고 본사람중에 한사람 입니다
천사의 푸른 눈을가진 고독한 사나이!
그 천사 눈의 매력에 빠져들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거구요
아마 가장 매력적인 시기는 중년의시기였지 않나하는 개인적 생각 입니다
그의 인상은 매우 차갑다...하지만 매력있다...
그 차가움과 함께 조각처럼 잘생긴 이목구비
정석처럼 잘생긴 얼굴...
차가운 코발트빛 푸른매력을 지닌...
그에게서는 언제나 그런 가슴시리도록 차가운 푸른색느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