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밤이 지나고 아침을 기다리며
2024년 4월 26일
18세 이은현
내 마음에 비가 내리는 날 윤동주 시인의 시를 읽어보았다. 마음이 축 쳐져서 내 마음에는 비가 내리는 것 같았고 그 상황에서 윤동주 시인의 시는 큰 위로가 되었다. 윤동주 시인은 1942년 여름방학에 일본 경찰에게 잡혀서 후쿠오카 형무소로 끌려가셨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고른 시가 1942년 6월 3일에 써진 시다. 그러니까 거의 마지막 때에 쓰신 시라고 볼 수 있다. 시 제목은 ‘쉽게 씌어 진시’이다. 한번 들어볼까? (쉽게 쓰여진 시:‘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 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한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 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1942. 6.3’)
처음에 나온 문장처럼 창밖에 비가 속살 거릴 때 이 시를 쓰셨나보다. 그 뒤에 문장 중에 나는 이것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국어 사전에서 찾아보니까 침전은 물체가 가라앉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윤동주 시인이 사셨던 때는 일제 강점기 시대다. 그만큼 더 힘든 인생 가운데 사셨을 거다. 그 힘듬을 혼자 가라앉는 것 같다는 말로 표현하신 것을 보고 슬프기도 했고 공감도 되었다. 힘듬의 고통 속에 있는데 아무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마치 바다 속에 가라앉고 있어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처럼 그저 희망 없는 고통 속에 가라 앉는 것 같을 것이다. 나도 이 느낌을 조금씩 느끼면서 살았다.
이 고통을 표현 하신 뒤에 시인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안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 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일제 강점기 속에서 힘들고 몸과 마음이 다 아픈데 시는 쉽게 씌어 졌으며 이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셨다. 근데 왜 인생은 살기 어려운데 시가 쉽게 씌여 졌다고 하셨으며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셨을까? 생각해 보니까 이러한 이유인 것 같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속보다 시를 쓰는 것이 쉽게 씌어질 정도로 그만큼 시 쓰는 것이 윤동주 시인에게는 힐링의 시간이자,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이셔서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된다. 또 시가 쉽게 씌어 지는 것을 보고 부끄럽다고 하신 이유는 이것인 것 같다. 이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 힘들게, 무겁게 시가 씌어 지는 것이 아니라 쉽게 씌어 지는 것을 보시고 시대 상황같이 무겁게 가는 것이 아니라 쉽게 시를 쓰시는 것이 그저 부끄럽게만 느껴져서이시지 않을까?
하지만 시인은 슬픈 그 감정으로 시를 끝내지 않는다. 두 문단 뒤를 보면 이런 내용이 나와 있음을 볼 수 있다.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그 시대의 어두웠던 그 배경에 빠져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어둠을 등불을 밝혀서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라는 희망의 표현을 담고 계신 것을 볼 수 있어서 기쁘기도 했다. 여기서 각 단어의 뜻을 나의 생각이 담긴 말로 풀어보겠다. 등불은 모든 국민의 그 독립하고자 하는 뜨거운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말하는 것같다. 어둠은 일제 강점기 때 보였던 시대적 어두웠던 배경인 것 같고 말이다. 또 시대처럼 올 아침은 이제 곧 올 독립의 그 빛을 말하는 것 같다. 어두웠던 일제 강점기가 지나고 빛나는 아침 같은 독립의 날이 언제 올지는 모르셨지만 그 날이 속히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윤동주 시인의 그 간절한 마음이 느껴지는 문장이기도 하다. 마지막 부분의 최후의 나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마 일본 경찰들에 의해서 잡힐 자신을 미리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마지막은 이렇게 마무리를 짓는다.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아무도 자신에게 희망의 손길을 내밀지 않더라도 윤동주 시인 그 자신은 포기하지 않았다. 바로 자신이 자신에게 작은 손을 내민 것이다. 크진 않더라도 윤동주 시인에게는 자신이 내미는 그 손이 눈물과 위안이 되었다는 것이 나에게도 큰 위안이 되었다.
이제 윤동주 시인은 여름 방학중에 일본 경찰에게 잡혀가는 그런 사건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다 끝난 것이 아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길 기다리고 있는 윤동주 시인의 눈앞에는 이미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윤동주 시인은 새로운 길을 걷고 있겠지?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앞내용 생략.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