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벼락
3학년2반
안 춘자
1972년 초등학교 5학년때
같은 반 남학생이 쪽지를 써서 내 책상속 맨 위의 책 위에 올려 놓은
것을 발견하고 어디서 어떻게 읽어보아야 할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누군가 볼까 두려워 주머니에 구겨 놓고 쉬는 시간만 기다렸었다.
화장실에 가서 펼쳐 보았을때 무어라고 썼는지 자세히는 기억 안 나고
맨 위에 살짝쿵 이란 글자만 확인하고 떨려서 다시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그 편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그냥 버리기엔 너무나 아깝고 가방에 넣고 다니자니
셋이나 되는 오빠들이 가끔씩 책가방 검사를 하니 책상 하나를
같이 쓰던 때라 마땅히 둘만한 곳이 없었다.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 거리며 다니기를 사흘째.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허름한 집이 이사 가고
다 쓰러져 가는데 브로크 담이라 해야 하나,
당시엔 그런 담도 귀했는데 반은 부서져 시멘트가 가루가 되고
남은 반쪽 벽이 비스듬 한데 가운데로 동그랗게 구멍이 있었다.
순간 저기다 하며 난 그 편지를 비닐 봉지에 꼭꼭 싸서 동그란 구멍에 집어넣고
위에 다른 돌멩이를 두개 포개어 홈을 메꾸었다.
그리고 학교가 끝나고 올때마다 그 편지를 꺼내 읽어보고
또 다시 그곳에 집어넣고 하기를 얼마나 지속했는지 모르겠다.
눈이 내리면 학교가다 행여 편지가 젖을까 비닐 종이를 살짝 옮겨 놓고
다시 돌멩이를 올려놓고 어떤 때는 남자 아이들이 그곳에다 소변을 보면
어쩌나 냄새 나고 젖을까 노심초사 했었다.
곱돌을 주워다 소변금지 라고 쓰고 가위 모양을 그려 놓기도 했었다.
그렇게 5학년이 가고 6학년이 되면서 우리는
남자는 1반 여자는 2반으로 나누어지면서
그애와는 눈빛마저 마주칠 수 있는 기회는 멀어졌고
그애는 중학교를 갔는데, 나는 중학교 진학을 못하면서
그 일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3년 후 나는 서울로 취직을 하게 되었다.
그 아이와는 의무적으로 또는 형식적으로 일년에 몇 번씩 편지
왕래를 하다가 24살이 되던해 큰오빠 결혼식이 있어 춘천에 왔는데
그 아이와 초등 친구 몇 명이 식장엘 찾아왔다
초등학교 졸업 후 10년만에 첫 만남이었다
쑥스럽고 부끄러웠다.
초등학교 때의 그 모습이 아니라서 조금 실망도 했고 목소리도 변하고
훌쩍 커버린 그 모습에 놀랍기도 했다.
그 친구는 내 손을 살짝 잡으며 보는 눈이 없으면
볼에 살짝 뽀뽀를 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가슴은 어찌나 쿵쾅거리고 낯이 뜨겁던지...
난 무슨 말을 할까 망설이다 용기를 내어 말했다.
그때 나한테 보낸 편지 지금도 있을까?
무슨 말이냐고 묻기에 전후 사정 이야기를 하고 지금도
그 집터가 남아 있는지 가보기로 했다.
어쩌면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지역은 그린벨트로 묶여서 개발은 되지 않았지만
집터는 다 부서지고 담벼락도 몇 개 남지 않았는데
기억을 더듬어 이쯤 이었을거야 하면서 발로 여기저기 차 보니
시멘트 담은 그냥 부서진다.
아쉬운 마음으로 그래 그랬겠지~~~.
지금까지 있을리가 없지 ~~
하면서 생각 없이 걷어 차는데 하얀 종이가 바래서
누렇게 갈기갈기 찢어진 비닐 속에 접혀 그것이 그때의 편지인지
분간 조차 어렵게 글씨는 색이 날아서 알아볼 수가 없고 비닐도 조밥이 되어 있었다.
어머나!!!
세상에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데.....
아직도 흔적이 이렇게 남아 있다니
우린 잠시 그때의 시간을 회상하며 생각에 잠겼었다.
50살이 되던해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 왔던 친구들과 그 친구를 불러 저녁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에서
난 그때 이야기를 하면서 그 담벼락에 얽힌 에피소드를 이야기 했었다.
친구들은 어머나!
그런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가 있었냐고 하며 모두들 한마디씩 한다.
60 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도 우리는 만나면 서로가 첫사랑 이었다 하며
무너진 담벼락에 대한 애틋한 이야기를 드러 내놓고 말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누구나 지나간 시간과 아름다운 추억들이 많이 있겠지만 대부분의 담벼락은
지저분하고 그리 좋은 추억은 아닐텐데 난 그 친구와의 아름다운
추억이 있어 가슴 한켠을 설레게 한다
지금은 도시화 되고 아파트로 삭막 해지면서 생활은 편리하고 깨끗해 졌지만
70년대 어렵던 시절 내 가슴에 자리 잡은 아련한 추억 하나.
광호야!
네 이름을 불러도 좋을 만큼 우린 그 옛날부터 친구였지.
솔직히 너보다는 그 담벼락에 네 편지를 숨긴다는 생각을 했던
내 자신이 기특하고 그 일로 인해 지금도 너와의 인연이 지속되는것 같아.
내 생에 예쁜 추억 하나 간직할 수 있게 해줘서
많이 고마워~~~^^
첫댓글 와우! 짝짝짝 감동입니다.
읽는 내내 저절로 미소지어 지네요 ^^![축하](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48.gif)
드립니다.
가끔 되돌아 보면 아름다운 추억이 삶의 원동력이 되어 주는것 같습니다.
수상을
안춘자씨 그런 아름다운
축억이있었군요~~~
어린시절에 있었던 귀한사연^~^
잘읽어보았네요😃
실로 오랜만에 들어 왔는데 귀한 글을 보게 되었네요.
![축하](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48.gif)
합니다. ^^
읽는 내내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답니다. 감칠맛나게 잘쓰셨어요.
선배님 감사 합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보잘것 없는 글을 칭찬해 주시니
멋진 글이네요~~ 궁금했었는데 ~~~브루크 담벼략~우리들의 비밀창고였죠,,, 다마(구슬)도 숨기고, 몰래먹으려고 빵도 숨기고~~어린 시절이 생각나는 글이네요~~~
어린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네요~~
우리는 양지바른 담벼락에 앉아 소꿉놀이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고~~
우리들의 놀이터였죠~~^^
선배님~~ 멋진 작품으로 수상하심 축하드립니다~~^^
문예부장님 순애보적인 사랑 너무 멋져요 *-*
그리고 잘 읽었습니다 ~~
수상 축하 합니다 ^^
모든분들 감사 합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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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누구나 저마다의 첫사랑에 대한 애잔한 추억을
가슴에 묻고 사시겠지만
저 처럼 이루지도 못했으면서 공개 할 수. 있는것은
순수함 일테죠
그래서 오랜 끈을 이어갈수도 있나 봅니다
시제가 담벼락 보다는 첫사랑이 더 어울릴것.
같은.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였으므로 이렇게 주옥같은 글이 탄생 하였군요.
앞으로도 아름다운 추억 더 많이 쌓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저는 담벼락에 잘 어울리는 시제로 읽었습니다.
아주 감명깊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