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각자는 ‘한 사람'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많은 사람'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다른 사람들로부터 발현하는 연속적인 인격체들은 종종 서로에게 가장 기이하고 놀라운 차이점들을 드러내 보인다.
-호세 엔리케 로도, 『프로테우스의 의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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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으로 돌아가는 동안 로저는 두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셰리프가 눈치채지 못하게 하느라 갖은 애를 써야 했다.
울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드문 일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한, 체포된 이래 그 몇 달 동안 자신은 운 적이 없었다.
스코틀랜드 야드에서 취조를 받는 동안에도, 재판정에서 심문을 받는 동안에도.
교수형에 처한다는 선고를 들었을 때도 그런데 왜 지금?
거트루드 때문에. 지 때문에.
그녀가 그런 식으로 고통을 받고, 그런 식으로 미심찍어하는 것을 보는 것은 적어도 그녀에게는 로저 자체가, 즉 그의 삶이 소중하다는 의미였다.
결국 로저는 자신이 느끼는 것만큼 그렇게 혼자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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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그들의 복지를 위한 것인데, 그것이 속 수를 정당화하고 있음을.' 젊은 로저 케이스먼트는 생각했다.
그것을 위한 다른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었을까?
자신들과 후손의 미래가 달린 그 계약서에 담긴 내용을 단 한 마디도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들과 더불어 그들은 미래의 식민지화에 어떻게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었을까?
벨기에인들의 군주는 피와 불, 침략과 살인과 약탈과 더불어 행해진 다른 사업들과 달리, 이 사업
은 설득과 대화를 통해 실현되기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업에 어떤 합법적인 형태를 부여할 필요가 있었다.
이 사업이 평화적이고 예의바른 것이 아니었던가?
세월이 흐르면서 - 스탠리의 지휘하에 이뤄진 1884년의 탐험 이래 십팔 년이 지나 로저 케이스먼트는 자신의 유년기와 청년기의 영웅이 실은 서구사회가 아프리카 대륙에 배설한 가장 파렴치한 악한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탠리의 명령에 따라 탐험을 수행했던 모든 사람들처럼 로저 역시 스탠리의 카리스마, 붙임성, 매력, 그리고 그 모험가가 자신의 위업을 쌓아갈 때 동시에 발휘한 만용과 냉 철한 계산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한편으로 폐허와 죽음의 씨앗을 뿌리면서 - 마을들을 불태우고 약탈하면서, 원주민들에게 총을 쏘면서, 아프리카 전역에서 수많은 흑단색 몸에 수천 개의 상처를 남긴 하마 가죽 조각으로 만든 채찍으로 짐꾼들의 등가죽을 벗기면서 -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맹수와 육식 곤충과 전염병으로 가득찬 그 광대한 영토에 무역과 선교를 위한 길을 열어가면서 아프리카를 오갔다.
그리하여 마치 영웅 전설과 성경 이야기에 등장하는 거인들 중 하나인 듯 그가 존중받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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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그들을 원시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많은 것을 쏟아부어야 했다.
그들로 하여금 아이와 병자를 희생시키는 것이라든지.
가령 수많은 원주민 공동체에서 서로를 죽이는 전투라든지, 일부 지역에서 여전히 행해지는 예속과 식인풍습 등과 같은 야만적인 관습을 중단하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더불어 진정한 신을 알고, 그들이 숭배하는 우상들을 자비와 사랑과 정의의 기독교 신으로 대체하는 것이 그들에게도 좋지 않을까?
물론 아마도 유럽에서 가장 불량했을 수많은 악인이 여기로 흘러들어 온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이 없을까?
구대륙에서 좋은 것들이 반드시 와야 했다.
그것은 더러운 영혼을 소유한 장사꾼 들의 탐욕이 아니라 과학, 법률, 교육, 천부인권, 기독교 윤리였다.
이전으로 되돌아가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렇지 않은가?
식민화가 좋은지 나쁜지, 콩고인이 유럽인 없이 자신들의 운명에 따라 사는 편이 나은 것인지 묻는 게 무의미한 일이었다.
어떤 일 들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을 때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자문하는 데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었다.
그 일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려 애쓰는 편이 더 나았다.
왜곡되어 있는 것을 곧게 만드는 일은 언제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가장 좋은 가르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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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의미였을까?
아마도 그 선원이 중부 콩고와 상부 콩고에서 그 육 개월 동안 머물면서 했던 것, 하다가 그만 둔
것, 보았던 것, 들었던 것이 인간의 조건에 관해, 원죄에 관해 악에 관해, 역사에 관해 더 깊고 중요한 탐구심을 일깨웠다는 뜻일 것이다.
로저는 그것을 아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인간이 된다는 것이 탐심, 욕심, 편견, 잔인성이 도달할 수 있는 극단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면 콩고가 로저 또한 인간화시켰다.
도덕적인 타락이 바로 그런 것이었는데, 이것은 동물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무엇으로서, 인간만이 갖고 있는 것이었다.
콩고는 그런 것들이 삶의 일부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의 눈을 뜨게 했다. 그 폴란드인처럼 로저 또한 '순수성을 빼앗긴 상태’였다.
그때 그는, 자신이 스무 살에 아프리카에 도착 했을 때 여전히 숫총각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펜턴빌 교도소의 셰리프가 그에게 말했다시피, 언론이 광범위한 인간 종 안에서 그만을 인간쓰레기라고 비난하는 것이 불공정하지는 않았을까?
그는 자신을 압도해가던 사기 저하와 싸우기 위해 욕조에 물을 많이 채우고, 비누 거품을 많이 풀고, 자신의 몸에 벌거벗은 다른 몸을 밀착시킨 채 오랫동안 하는 목욕이 주게 될 쾌감을 상상하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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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의 아내는 그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았으리라.
어쩌면 그녀에게 정부가 생겼으리라.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이는 벨기에와 벨기에의 국왕 폐하를 위해 복무한다는 명분으로 이곳에 와 이 지옥에 파묻히고, 병에 걸리고, 독사에게 물리고, 가장 기본적인 안락함도 결핍된 채 살아가는 수많은 장교와 공무원에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서인가?
간신히 저축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보잘것없는 급료를 받기 위해서였다.
훗날 저 벨기에에 그들의 그런 희생에 대해 고마워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오히려 식민 모국에는 '식민지 것들'에 대한 완고한 편견이 존재했다.
식민지에서 돌아온 장교와 공무원들은, 야만인들과 그토록 많은 시간을 보낸 그들 역시 야만인이 되었다는 듯이 차별을 받고 따돌림을 당하고 경원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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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그 여행이 끝나 보고서를 쓰고 콩고를 떠난 뒤, 그리하여 아프리카에서 보낸 이십 년이 단지 기억에 불과해졌을 때, 로저 케이스먼트는 이곳에서 일어난 모든 무시무시한 것의 뿌리가 될 만한 단 한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탐욕'이라고 여러 차례 혼잣말을 했다.
그곳 사람들의 불행을 위해 콩고의 숲이 풍요롭게 간직하고 있던 그 검은 황금에 대한 탐욕. 그러한 부는 그 불 행한 사람들에게 떨어진 저주였고, 같은 방식으로 일이 계속된다면 그것이 그들을 지표면에서 사라지게 할 것이다.
그 삼 개월 열흘 동안, 그는 이러한 결론에 도달했다.
만약 고무가 먼저 고갈되지 않는다면, 수십만 명을 절멸시키고 있는 그 시스템에 의해 고갈되는 것은 콩고인들 자신일 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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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밀려드는 낙담, 두통, 메스꺼움, 신체의 쇠약함을 이기기 위해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이며 -허리띠에 새로운 구멍들을 뚫을 수밖에 없었던 그는 체중이 줄고 있음을 느꼈다
계속해서 마을과 초소와 주둔지를 방문하고, 계속해서 마을 사람, 공무원, 일꾼, 경비원, 고무 채취인들에게 질문하고, 채찍에 맞아 죽은 몸과 잘린 손, 그리고 살인, 투옥, 강탈, 실종 등에 관한 악몽 같은 이야기들로 이뤄진 매일매일의 광경을 극복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는 콩고인들에게 만연한 그 고통이 공기와 강, 그리고 그를 둘러싼 식물들까지 그 특유의 냄새로, 물질적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이고 형이상학적이기까지 한 악취로 가득 물들이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친애하는 지야. 내가 판단력을 잃어가는 것 같아."
여정의 절 반만 돌고 레오폴드빌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날, 그는 본간단가 정착지에서 사촌 거트루드에게 편지를 썼다.
"오늘 나는 보마로 돌아가는 일정을 시작했어.
내 계획대로라면 상부 콩고 여행을 몇 주 더 했어야 해.
하지만 사실 여기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서에 보여주고도 남을 만큼 충분한 자료가 이미 내게 있어.
인간의 악과 무지가 도달할 수 있는 극단을 계속해서 자세히 조사 하다간 내 보고서를 쓸 수조차 없게 될까봐 두려워.
나는 지금 미치기 직전이야. 보통의 인간이라면 정신을 잃지 않고는, 정신 착란을 겪지 않고는 이 지옥에 수개월이나 빠져 지낼 수 없을 거야.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고 있는 게 느 껴져.
무언가가 내 마음속에서 분열하고 있어.
끊임없는 고뇌속에 살고 있다고.
만약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내가 계속해서 관여한다면, 결국 나 역시 콩고인들에게 채찍질을 하고, 그들의 손을 자르고, 일말의 가책을 느끼거나 식욕을 잃지도 않으면서 점심식사와 저녁식사 사이에 그들을 죽이게 될 거야.
왜냐하면 그게 바로 이 저주받은 나라에 있는 유럽인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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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세 번쯤 로저와 앨리스 스톱포드 그린이 단둘이 있게 되었을 때, 신자가 고해신부에게 그러듯이 로저는 그 새 친구에게 마음을 열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아일랜드계 프로테스탄트 가정 출신인 그녀에게 그는 당시까지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용기내 털어놓았다.
즉, 불의와 폭력과 더불어 지낸 콩고에서 그는 식민주의라는 크나큰 거짓말을 발견했으며, ‘자신은 아일랜드인'임을, 다시 말해 아일랜드를 착취하고 약화시켰던 제국에 점령당하고 유린당한 나라의 시민임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이다.
그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되뇌면서 자신이 말하고 믿었던 수많은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바로잡겠다고 맹세했다.
콩고 덕분에 아일랜드를 발견하게 된 지금, 그는 진정한 아일랜드인이 되고 싶다고, 조국을 알고 싶고 조국의 전통과 역사와 문화를 습득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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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예민한 앤 젭슨이 살아 있었다면 그는 아일랜드의 슬프 고 아름다운 역사, 벨리미나 고등학교에서는 결코 가르치지 않았던 그 역사, 북앤트림의 어린이들과 사춘기 청소년들에게는 여전히 숨겨진 그 역사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아이들은 여전히 아일랜드는 기억할 만한 과거가 없는 야만국이고, 점령국에 의해 문명국으로 부상했으며, 전통과 언어와 주권을 빼앗아간 제국에 의해 교육과 근대화를 이룬 나라라고 믿고 있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아프리카에서 배웠는데, 만약 어머니가 계속해서 살아 있었다면 청년기와 장년기의 가장 좋은 첫 시절을 결코 아프리카에서 보내지 못했을 것이며,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 대한 커다란 자부심과 영국이 자신의 조국에 해온 짓에 대한 커다란 분노도 결코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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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는 사기가 꺾여버렸다.
체체파리의 공격으로 수면병에 걸려 팔, 다리, 입술을 움직이지 못하고 심지어 눈을 뜨고 있기조차 힘들어진 콩고인들처럼 말 그대로 무력해져버렸다.
수면병은 그들의 생각도 방해했을까?
불행하게도 이처럼 한바탕 밀려드는 비관적인 생각이 그의 통찰력을 예리하게 만들었고, 그의 뇌
는 탁탁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모닥불 같아졌다.
해군본부 대변인이 언론에 보낸 그 일기의 페이지들이 메트로 가번 더피의 얼굴이 불그스레한 조수를 몹시 놀라게 만들었는데, 과연 그건 실재하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위조된 것이었을까?
그는 인간 본성, 그리고 또한 당연히 자신의 중심부를 이루는 어리석음에 관해 생각했다.
그는 매우 철저한 사람이었고, 외교관으로서 모든 가능성 있는 결과들을 전부 고려하기 전에는 섣불리 나서지 않으며 최소한의 조치도 취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런데 지금 그 자신을 불명예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만들 무기를 적들의 손에 넘겨준 채, 그 자신이 평생 동안 만들어온 어리석은 올가미에 이렇게 갇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껄껄 웃고 있었음을 소스라치게 놀라며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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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그는 산투스로 떠나기 전인 1906년 9월에 자신이 아일랜드의 신화적 과거에 관한 '켈트의 꿈'이라는 제목의 장편 서사시를 썼다는 사실을, 그리고 앨리스 스톱포드 그린, 벌머 흡슨과 함께 영국군의 아일랜드인 징집을 반대하는 정치 팸플릿 '아일랜드 사람들과 영국 군대'를 썼던 사실을 집요하게 기억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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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첫 반응은 불신이었다.
즉, 그 저널리스트가 실제 사건들로 기사를 시작하지만 악폐를 지나치게 과장함으로써 그것들에 비현실성, 심지어는 다소 가학적인 상상력이 팽배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내 로저는 자신과 모렐이 콩고 자유국에서 자행된 불법행위, 즉 의혹을 공표했을 때 수많은 영국인, 유럽인, 그리고 미국인이 보였던 반응이 바로 그런 불신이었음을 기억해냈다.
무법천지에서 탐욕과 저급한 본능에 휘말려 자행할 수 있는 형언 불가능한 잔인성을 보여주는 모든 것으로부터.
그런 식으로 인간은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런 잔혹행위들이 콩고에서 일어났다면 아마존에서라고 일어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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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콩고와 아마존이 탯줄 같은 것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로저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잔혹행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을 따라다니는 원죄로, 인간의 무한한 사악함을 비밀리에 고무시키는 탐욕에 의해 유발되어 거의 변화하지 않은 채 동일한 모습으로 되풀이되었다.
아니면 탐욕 말고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그 영원한 싸움에서 사탄이 승리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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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한 시간에 걸쳐 조사위원들은 페루 아마존 회사의 지배인을 심문했다.
그가 위원들에게 장광설로 답변하는 바람에 가끔 통역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에게 단어와 문장
을 다시 말해달라고 했다.
로저는 심문에는 관여하지 않은 채 자주 주의를 딴 데로 돌렸다.
수마에타는 결코 진실을 말하지 않을 것이고, 모든 것을 부인하며 런던에서 아라나의 회사가 신문들의 비판에 들이댔던 논거를 되풀이하리라는 점이 명백했다.
아마도 무절제한 개인들이 이따금 무도한 행위를 저질렀을 것이나, 원주민을 고문하고 노예화하는 것은 물론 죽이는 것은 더더욱 페루 아마존 회사의 정책이 아니었다.
법이 그것을 금지했으며, 푸투마요에서 턱없이 부족한 노동력을 위협하는 행위는 미친 짓이었을 것이다.
로저는 자신이 콩고로 시공간을 이동한 것처럼 느꼈다.
똑같은 공포, 똑같은 진실 폄하.
수마타는 스페인어로 말하고 벨기에 공무원들은 프랑스어로 말하는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똑같이 파렴치한 태도를 보이며 명백한 사실을 부인했는데, 그들 모두 고무를 채취하고 돈을 버는 자신들의 기독교적 이상이, 태곳적부터 식인종이자 자기 자식들까지 죽이는 살인자임 이 분명한 이교도들에게 가해지는 최악의 잔혹행위를 정당화해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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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는 목소리, 노랫소리, 기타 뜯는 소리가 새어나오는 바와 성매매업소들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눈길을 주지 않은 채 아주 천천히 걸어서 돌아왔다.
그는 아이들을 생각했다.
자신들의 부족으로부터 억지로 떨어져나와 가족들과 헤어진 채, 어느 배의 밑창에 짐꾸러미처럼 쟁여져 이키토스로 끌려온, 그리고 어느 가정에 이십 또는 삼십 솔에 팔려가 쓸고 닦고 요리하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더러운 옷을 빨고, 모욕을 당하고 두들겨맞고, 남자 주인이나 주인의 아들들에게 가끔씩 성폭행을 당하며 살아가게 될 아이들을, 늘 같은 이야기.
결코 끝나지 않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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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바로 원죄의 얼굴, 정신. 사악한 왜곡이었을까?
로저가 에드먼드 D. 모렐과 나눈 어느 대화에서, 기독교적인 교육을 받은 교양 있고 문명화된 이들이, 즉 그 둘 같은 사람들이 콩고에서 상세하게 기록했던 그 무시무시한 범죄들을 저지르고 공범이 되는 것이 가능한지 서로에게 물었을 때 로저는 말했다.
"인간의 악의 근원에 대한 역사적, 사회학적, 심리학적, 문화적인 설명이 다 소진되고 없는데, 그 근원에 도달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어둠 속의 넓은 영역이 여전히 존재해요.
불도그, 당신이 그것을 이해하고 싶으면 한 가지 방법이 있어요.
논리적인 생각일랑 접어두고 종교에 의지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원죄입니다."
“그 설명은 그 어떤 것도 설명하지 못해요. 타이거”
두사람은 오랫동안 토론했지만 어떤 결론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모렐이 확언했다.
"만약 악의 근본적인 이유가 원죄라면 해결책이 없습니다.
만약 우리 인간이 악을 위해 만들어졌고 그 악을 영혼에 담고 있다면, 우리가 도저히 고칠 수 없는 것을 고치려고 투쟁해봤자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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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그는 그 모임에 참석했 던 모든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에게 조지 버나드 쇼가 비꼬듯 던진 신랄한 말을 기억했다.
"그것들은 양립할 수 없어요, 앨리스, 착각하지 마요.
그러니까 애국심은 하나의 종교고 명석함의 적이에요.
순전히 반계몽주의적이고 일종의 신앙행위라고요."
그 극작가는 자신의 이야기 상대를 불편하게 만드는 조롱조 반어법으로 늘 그렇게 말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호인처럼 하는 말 속에 늘 파괴적인 의도가 숨어 있음을 이야기 상대 모두가 직감했 기 때문이었다.
이 회의론자이자 불신자의 입에서 나온 '신앙행위'라는 단어는 미신 사기 또는 훨씬 더 나쁜 것들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믿지 않고, 모든 것을 막무가내로 비판하는 그 남자는 위대한 작가였고, 자기 세대에서 그 누구보다 아일랜드 문학의 명성을 높인 사람이었다.
어느 작가가 애국자도 아니면서, 선조들의 땅에서 그 깊은 혈육의 정을 느끼지도 않고서, 자신의 등뒤에 있는 옛 혈통을 사랑하지도, 혈통에 감동하지도 않고서 어찌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그런 이유로 그 위대한 창작가들 가운데서 한 사람을 고르라면 로저는 은근히 버나드 쇼보다 예이츠를 선호했다.
예이츠는 확실한 애국자로서 아일랜드와 켈트의 옛 전설들을 자신의 시와 극작품의 자양분으로 삼았는데, 그는 전설을 각색하고 새롭게 만들었으며 전설이 살아서 현재의 문학을 비옥하게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잠시 후 로저는 자신이 그런 식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후회했다.
로저가 어떻게 조지 버나드 쇼의 은혜를 모르겠는가.
비록 조지 버나드 쇼가 회의주의적 시각을 견지하고 민족주의에 반하는 글을 썼음에도, 런던의 위대한 지성인들 가운데 로저 케이스먼트를 변호하기 위해 그 극작가보다 더 명시적이고 용기 있는 방식으로 행동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버나드 쇼는 로저의 변호사인 서전트 A. M. 설리번에게 변론 방침에 대해 충고했는데 불행하게도 그 가련한 변호사, 그 탐욕스럽고 쓸모없는 인간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로저에게 사형 이 구형된 뒤에 조지 버나드 쇼가 감형에 찬성하는 글을 쓰고 성명서에 서명했다.
관대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반드시 애국자와 민족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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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키토스에 있는 엄청난 수의 백인과 메스티소, 즉 페루인과 외국인들이 빅토르 이스라엘처럼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이다.
그들에게 아마존의 원주민은 엄밀하게 말해 인간이 아니고, 문명화된 사람이라기보다는 동물에
더 가까운 존재, 열등하고 멸시할 만한 형태의 존재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착취하고 매질하고 납치하고 고무 농장으로 데려가거나 반항하면 광견병에 걸린 개처럼 죽여버렸다.
그것은 원주민에 대해 아주 일반적인 지각이었는데, 리카르도 우루티아 신부가 말했다시피, 이키토스의 하인들이 납치당해 일이 파운드에 상응하는 값으로 로레토 가정에 팔린 소년 소녀들이었다는 사실에 그 누구도 놀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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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들은 콩고인들이 아프리카에서 반란을 일으키지 않은 이유와 동일한 이유로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보기 드물게 개인 또는 작은 집단의 자살행위가 국지적이고 산발적으로 일어났을 뿐이다.
착취 시스템이 아주 극단적일 때 그 시스템이 몸보다 정신을 훨씬 먼저 파괴하기 때문이다.
원주민들을 희생시킨 폭력이 저항의지와 생존 본능을 없애버렸고, 그들을 혼동과 공포 때문에 몸이 마비된 자동인형으로 변화시켜버렸다.
많은 원주민은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이 구체적이고 특정한 인간들의 악행의 결과라고 이해한 것이 아니라 신화적인 대격변, 신들의 저주,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신성한 징벌의 결과라고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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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푸투마요 의 원주민이 몰린 그 비참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주인들에게 대항해 무기를 드는 것이라는 절대적인 확신에 이르렀다.
이곳에 페루 정부가 오고, 1854년부터 페루에서 예속 상태와 노예제도를 금지하는 법을 집행할 당국, 판사, 경찰이 있게 될 때 이런 상황이 바뀌리라고 후안 티손처럼 믿는 것은 현실성이 전혀 없는 환상이다.
노예 상인들이 훔친 소년 소녀를 어느 가정이 20솔 또는 30솔에 사서 쓰는 이키토스에서처럼 그런 식으로 법을 집행하지 않을까?
국가가 급료를 줄 돈이 없으므로, 또는 급료가 오는 도중에 불한당과 관료들이 갈취해버리므로 아라나 회사로부터 급료를 받는 당국자, 판사, 경찰들이 과연 제대로 법을 집행할까?
이 사회에서 국가는 착취 및 몰살 기계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부분이다.
원주민은 그런 기관들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자유롭기를 원한다면 자신들의 팔과 용기로 자유를 획득해야 한다.
보라족 추장인 카테네레 처럼, 하지만 카테네레처럼 감상적인 이유로 스스로를 희생하지 말고 마지막 순간까지 투쟁하면서’
그는 자신이 일기에 적은 이들 문장에 열중한 상태로 활기차게 걸으면서 당굴식물, 담 숲길을 가로막는 나뭇가지와 나무 몸통을 마체테로 쳐가며 길을 열어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오후에는 불현듯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 아일랜드인은 푸투마요의 우이토토족 보라족, 안도케족, 무이나네족과 같다.
우리가 자유를 찾기 위해 영국의 법, 제도, 정부를 계속해서 믿는다면, 우리는 식민화되고 착취당하고 영원히 그렇게 되도록 선고받은 사람이 될 것이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결코 자유를 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를 식민화하는 대영제국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거부할 수 없는 압력을 느끼지 않는다면 무
엇 때문에 그리하겠는가?
이 압력은 오직 무기로부터 비롯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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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타고 여행을 시작한 그 첫날밤에 불그레한 보름달이 하늘을 밝혔다.
빛을 내뿜는 작은 물고기처럼 보이는 반짝거리는 작은 별들과 더불어 달이 시꺼먼 강물에 반사되었다.
콧속으로 영원히 들어와버린 듯 여전히 지속되는 고무 냄새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따스하고 아름답고 고요했다.
선수 갑판의 난간에 오랜 시간 몸을 기댄 채 풍경을 감상하던 로저는 불현듯 자신의 얼굴이 눈물에 젖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말 근사한 평화로군요.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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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심문을 받는 동안 바실 톰슨과 레지널드 홀의 질문을 통해 로저는 자신이 반란을 주도하기 위해 독일에서 온 것으로 영국 정부가 의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바로 그런 식으로 역사가 쓰였던 것이다!
애써 봉기를 저지하기 위해 왔던 그가 영국이 범한 오류 때문에 반란군의 지도자로 변모해버린 것이다.
영국 정부는 오래전부터 그가 독립주의자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사실과 거리가 멀었다.
아마도 그 생각이 이를 설명해주는 것 같다.
그가 배를린에 있을 때 영국 언론이 그더러 카이저에게 몸을 팔았다고, 배신자일 뿐만 아니라 용병이라고, 그리고 요즘에는 런던의 신문들이 덧씌운 것처럼 비열한 인간이라고 그를 비난하면서 중상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말이다.
한 번도 최고 지도자인 적이 없었으며 그러하기를 바란 적도 없는 그를 최고 지도자로서 불명예 속에 내던져버린 캠페인!
그것이 바로 역사였으며, 과학이 되려고 시도했던 하나의 우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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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영혼에는 악이 들어 있어요, 친구." 그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했다.
"우리는 악으로부터 그리 쉽게 벗어나지 못해요.
유럽 국가들과 우리의 나라에서는 악이 한껏 위장한 채 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전쟁, 혁명, 폭동이 일어날 때만 훤히 드러나죠.
악이 공공연하게 집단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구실이 필요해요.
반면 아마존에서는 악이 민낯을 드러내고는 애국심이나 종교를 구실로 삼지도 않은 채 극악무도한 행위를 범하죠.
그건 순전히 지극한 탐욕일 뿐이에요.
우리를 해롭게 하는 악은 우리의 심장에 깊이 뿌리를 박고서 인간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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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로저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를 원했다는 듯이 그즈음 이키토스의 고등법원은 체포된 혐의자 아홉 명이 신청한 재심리를 갑자기 중단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은 파렴치의 걸작이 었다.
발카르셀 판사가 작성한 명단에 든 237명이 전부 체포되지 않는 한 모든 법률적인 절차가 정지된다는 것이었다.
체포된 소수의 혐의자들만으로는 그 어떤 수사도 불완전하고 불법적일 것이라고 판사들은 판결했다.
그래서 범죄 혐의자 아홉 명은 결국 석방되었고 경찰력이 237명을 재판에 회부할 때까지 그 사건 은 유예되었는데, 그 모두를 재판에 회부하는 건 물론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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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는 세인트 스테판 그린 공원의 무성한 나무 아래에 오랫 동안 앉아 있었다.
농장들이 폐쇄되고 원주민들, 그리고 홀리오 C. 아라나의 회사 직원, 경비원, 살인자들이 도망치면서 푸투마요의 광대한 모든 지역이 어떤 상태가 되어버렸을지 상상하려 애써보았다.
눈을 감은 채 공상에 빠졌다.
비옥한 자연이 모든 황야와 공터를 관목, 덩굴식물, 덤불, 잡초로 덮어갈 것이고, 숲이 재탄생하면서 동물들이 그곳으로 돌아와 은신처를 만들 것이다.
그곳은 새들의 노래, 앵무새, 원숭이, 카피바라, 봉관조, 재규어들의 휘파람, 으르렁거리는 소리, 날카로운 소리로 가득 찰 것이다.
인간의 탐욕과 잔인함이 수많은 고통, 사지절단, 죽음을 유발했던 그 캠프의 흔적은 불과 몇 년 만에 비와 진흙사태와 더불어 남지 않게 될 것이다.
건물들의 목재는 비로 썩어갈 것이고, 흰개미가 나무를 먹어치워 집은 무너져내릴 것이다.
모든 종류의 벌레가 잔해에 굴과 은신처를 만들 것이다.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인간의 모든 흔적이 밀림에 의해 지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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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거리에서 도둑들만이 반란군에 대항했던 것은 아니다.
무장봉기를 한 이들이 봉기 기간 중에 공격하거나 부상을 입히거나 죽였던 경찰과 군인들의 수많은 어머니, 부인, 누이, 말도 있었는데, 간혹 대담무쌍한 이들 다수의 여자가 고통, 절망, 분노로 흥분한 상태에서 집단을 이루기도 했다.
일부의 경우 그런 여자들이 반란군의 진지에 뛰어들어 무례한 짓을 하고 돌을 던지고 전투원들에게 침을 뱉거나 욕하고 그들을 살인자라고 불렀다.
자신들이 정의, 선, 진실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이들에게 그것은 가장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었다.
그 시련은 그들에게 대항하는 사람들이 대영제국의 사냥개들, 점령군의 군인들이 아니라 고통으로 눈이 멀어버려 반란군을 조국의 해방자로 보지 않고 자신들이 사랑하는 사람들, 반란군과 똑같은 아일랜드 사람들, 즉 죄라고는 자신들이 가난하다는 것과 먹고살기 위해 군인이나 경찰이 되었다는 것밖에 없는 사람들을 죽인 살인자들로 보는 초라한 아일랜드 여자들이라는 사실을 발
견하는 것이었다.
"그 어떤 것도 하야면서 검지는 않아요. 친애하는 친구." 앨리스가 의견을 말했다.
“아주 정당한 대의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죠. 여기서도 모든 것을 흐릿하게 만들어버리는 그 탁한 잿빛이 나타나죠.”
로저가 수긍했다. 그 친구가 방금 전 했던 말은 그 자신에게도 적용되었다.
어떤 사람이 제아무리 신중하고 또 자신의 행위를 가장 명석하게 계획했다 할지라도. 모든 것 가운데 가장 복잡한 계산인 삶은 계획을 폭파시켜버리고 그 계획을 불확실하고 모순적인 상황으로 대체해버렸다.
로저가 바로 이런 모호성의 살아있는 실례가 아니었던가?
그를 심문했던 레지널드 홀과 바실 톰슨은 그가 봉기의 선두에 서기 위해 독일에서 왔다고 믿었는데 정작 봉기의 지도자들은 그가 독일군에 의지하지 않는 봉기에는 반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그에게는 봉기에 관해 숨겼다.
이보다 더 모순적인 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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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기에 경께서 이해하지 못한 어떤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건 승리를 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물론 우리는 그 전쟁에서 질 겁니다.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견디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항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며칠, 몇 주 동안. 그리고 우리의 죽음과 피가 아일랜드 인의 애국심에 불굴의 힘을 돌려줄 때까지 그 애국심을 증대시키는 방식으로 죽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죽음으로써 우리 각자가 백 명의 혁명가가 태어나도록 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게 바로 기독교에서 일어났던 일이 아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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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는 피어스, 플런켓, 즉 자유를 위한 투쟁은 시민적임과 동시에 신비주의적이라고 믿는 그 젊은이들을 떠올렸다.
"저는 신부님의 말씀이 뜻하는 바를 이해합니다. 크로티 신부님.
현실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사람이라는 명성을 가진 톰 클라크를 포함해 피어스, 플런켓 같은 사람들이 봉기가 하나의 희생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는 걸 저는 압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죽음으로써 아일랜드인의 모든 에너지를 움직일 하나의 상징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저는 목숨을 바치려는 그들의 의지를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들만큼의 경험과 명철한 판단력이 부족한 사람들, 단지 하나의 본보기가 되려고 자신들이 도살장으로 간다는 걸 모르는 젊은이들을 무리하게 끌고갈 권리를 그들이 갖고 있습니까?"
"이미 당신에게 말했다시피 나는 그들이 하는 일에 감탄하지 않습니다. 로저."
크로티 신부가 속삭이듯 말했다.
"순교는 한 기독교인이 어떤 것에 자신의 몸을 맡기는 일이지, 그 사람이 찾는 목표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후 역사는 인류가 그런 방식으로, 즉 다양한 행위와 희생과 더불어 발전하도록 하지 않았을까요?
어쨌든 지금 제가 걱정하는 건 바로 당신입니다.
만약 체포되면 당신은 투쟁할 기회가 없을 겁니다.
대역죄를 지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을 겁니다.”
"크로티 신부님, 저는 이 문제에 개입되어 있으며, 제 의무는 수미일관한 사람이 되어 끝까지 가는 겁니다. 제가 신부님으로 부터 받은 모든 은혜를 결코 갚지 못할 겁니다.
신부님께 축복의 말씀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로저가 무릎을 꿇었고, 크로티 신부가 그에게 축복의 말을 한 뒤 두 사람은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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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레이 신부와 맥캐롤 신부가 감방에 들어왔을 때, 로저는 이 전에 요청했던 종이, 펜, 잉크를 이미 받아서, 확고한 태도로 주저하지 않고 짧은 편지 두 통을 막힘없이 다 써놓은 상태였다.
하나는 이종사촌 거트루드에게 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친구들에게 공동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편지들은 아주 유사했다.
지에게는 자신이 그녀를 정말 사랑했다고 전하고, 자신의 기억이 간직하고 있는 그녀에 대한 좋은 추억을 언급하고, 진심을 담은 몇 문장 말고도 다음과 같이 썼다.
"내일 성 스티븐의 날에 나는 내가 모색했던 죽음을 맞이할 거야.
하느님께서 내 잘못을 용서해주시고, 내 기원을 들어주시기를 바라고 있어."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똑같이 비극적인 용기를 담고 있었다.
"모든 사람에게 보내는 내 마지막 메시지는 '마음을 드높이’ 입니다.
내 목숨을 빼앗으려는 사람들과 내 목숨을 구하려고 애쓴 사람들 모두 복 많이 받기 바랍니다.
이제 여러분 모두는 내 형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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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감방으로 되돌아왔을 때 간이침대 옆에 아침식사가 놓여 있었으나 식욕이 전혀 없었다.
그가 사제들에게 시각을 묻자 그들이 이번에는 오전 여덟시 사십분이라고 말해주었다.
'내게 이십 분이 남아 있군.' 그가 생각했다.
거의 동시에 교도소장이 셰리프와 민간인 복장을 한 남자 셋을 동반하고 도착했다.
그들 가운데 한 명은 그의 죽음을 확인해줄 의사임에 틀림없고, 한 명은 영국 정부의 공무원이고, 나머지는 젊은 조수와 함께 온 사형집 행인이었다.
다소 작은 키에 힘이 세보이는 미스터 앨리스는 다 른 사람들처럼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으나 더 편하게 작업하기 위해 재킷의 소매를 걷어올린 상태였다.
둥글게 감은 밧줄을 팔에 건 상태로 왔다.
그가 교양 있고 까칠한 목소리로 로저에게 손을 묶어야 하니 등뒤로 손을 가져가라고 말했다.
미스터 앨리스는 로저의 손을 묶는 동안 터무니없어 보이는 질문을 하나 했다.
"아픕니까?" 로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파더' 캐레이와 '파더' 맥캐롤이 큰 소리로 연송 호칭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로저가 가본 적이 없는 가옥의 여러구역, 즉 모두 텅빈 계단들, 복도들, 작은 마당 하나를 각자 로저의 양옆에서 그와 함께 오랫동안 걸어서 통과하는 동안 계속해서 기도를 했다.
로저는 자신들이 지나간 곳들을 거의 인식하지 못했다.
그는 기도를 하고 연도에 응답했고, 자신의 걸음걸이가 당당하면서 흐느낌도 울음도 터져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때때로 눈을 감고 하느님의 자비를 빌었으나 그의 뇌리에 떠오른 사람은 앤 젭슨이었다.
마침내 그들은 햇빛 가득한 공터로 나왔다.
무장한 경비원 분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경비원들이 디딤판 여덟 개 또는 열 개짜리 작은 계단이 달린 사각형 목조 구조물을 에워쌌다.
교도소장이 선고문임에 틀림없는 문장을 몇 개 읽었는데 로저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고서 그는 로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어 거부했으나 아주 조용하게 다음과 같이 중얼거렸다.
"아일랜드."
그가 사제들에게 몸을 돌리자 두 사람이 그를 껴안았다.
캐레이 신부가 그에게 축복의 말을 했다.
그때 미스터 앨리스가 다가와 밴드로 눈을 가리려고 하니 로저에게 상체를 숙여달라고 요청했다. 로저가 그보다 키가 아주 컸기 때문이다.
로저는 상체를 숙였고, 사형집행인 미스터 앨리스가 그를 어둠 속에 잠기게 할 밴드로 눈을 가리는 동안, 그는 이제는 미스터 앨리스의 손가락이 이전에 자신의 손을 묶을 때 보다 덜 단단하고 덜 제어가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형집행인은 팔을 부축해 로저가 단을 향해, 넘어지지 않도록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게 해주었다.
로저는 몇 가지가 움직이는 소리와 사제들의 기도 소리를 들었고, 결국 다시 미스터 앨리스가 고개를 숙이고 상체를 약간 구 부려달라면서 “Please, Sir.”라고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로저는 그렇게 하고 나자 사형집행인이 그의 목 주위로 밧줄을 걸었다고 느꼈다.
미스터 앨리스가 마지막으로 소곤거리는 소리를 여전히 들을 수 있었다.
“호흡을 멈추면 더 빨리 될 겁니다. 경."
로저는 그의 말에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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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의 동포들은 영웅이자 순교자인 한 남자가 추상적인 본보기나 완벽함의 모델이 아니라, 모순과 대조, 나약함과 위대함으로 만들어진 한 명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서서히 받아들여갔는데, 그도 그럴 것이 호세 엔리케 로도가 썼다시피, ‘한 사람은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즉 그 인물 속에 천사들과 악마들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었다.
소위 〈블랙 다이어리〉에 대한 논쟁은 결코 멈추지 않았고, 아마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 일기는 실제로 존재했다.
로저 케이스먼트가 온갖 유해한 음담을 섞어 직접 쓴 것일까, 아니면 영국 정부당국이 본보기로
경고하기 위해, 그리고 잠재적인 반역자들을 단념시킬 목적으로 자신들의 옛 외교관을 도덕적• 정치적으로 처형하고자 날조해낸 것이었을까?
수십 년 동안 영국 정부는 독립 역사가들과 필상학자들이 로저의 일기를 조사해 국가의 비밀을 밝히려는 작업을 허가해주지 않았는데, 바로 이런 점이 일기를 날조했을 것이라는 의구심과 논거에 양분을 공급해주었다.
비교적 최근인 몇 년 전, 금제가 풀려서 연구자들이 그 일기를 조사하고 과학적인 검증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도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아마도 논쟁은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다.
나쁜 일 만은 아니다.
한 인간을, 즉 이론적이고 이성적인 모든 그물이 붙잡으려고 애쓰지만 늘 빠져나가는 총체성을 결정적인 방식으로 알게 되기란 불가능하다는 증거로서, 로저 케이스먼트에 관한 불확실성의 분위기가 늘 유지되는 것은 나쁘지 않다는 의미다.
나 자신의 인상 - 물론 소설가로서의 인상은 - 로저 케이스먼트가 그 유명한 일기를 썼으나 적어도 온전하게 체험한 것은 아니고, 일기에 과장과 픽션이 많이 섞여 있으며, 어떤 것은 체험해보고 싶었으나 체험할 수 없었기에 썼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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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에도 아마존에도 고무 채취 시대에 그들 땅에서 저질러진 엄청난 범죄들을 고발하기 위해 많은 일을 했던 인물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아일랜드에는 로저 케이스먼트에 관한 일부 기억이 섬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멕해린템플하우스에서 멀지 않은 멀로의 작은 강어귀 쪽으로 경사지게 뻗은 앤트림의 글렌세스크 '협곡' 정상에 신 페인 당이 그를 기리기 위한 기념비를 세웠는데, 북아일랜드의 과격한 합방주의자들 손에 파괴되었다.
부서진 조각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케리 카운티의 발리헤이그에 있는 바다를 바라보는 작은 광장에는 아일랜드인 어쉰 켈리가 조각한 로저 케이스먼트 상이 세워져 있다.
트릴리의 케리 카운티 박물관에는 로저가 1911년 아마존으로 갈 때 소지한 사진기가 소장되어 있고, 방문자가 요청하면 그가 아일랜드로 타고 온 독일 잠수정 U-19에서 입었던 투박한 울 오버코트를 볼 수도 있다.
개인 수집가인 미스터 숀 퀸란은 대서양으로 흘러들어가는 섀년강 하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발리더프에 있는 자신의 작은 집에 보트 한 척을 소장하고 있는데, 그 보트는 바로 로저, 몬테이스 대위, 베일리 상사가 반나 스트랜드까지 타고 간 (그는 강조해서 확언했다) 것이다. 트랄리에 있는 게일어 학교 '로저 케이스먼트'의 교장실에는 로저가 자신의 사건을 판결한 런던의 상소법원에 갔을 무렵 퍼블릭 바 세븐 스타스에서 음식을 먹을 때 사용한 세라믹 접시가 진열되어 있다.
매케나 요새에는 게일어, 영어, 독일어로 쓰인 작은 기념비 - 검은색 돌로 만든 기둥 - 가 있는데, 로저 케이스먼트가 1916년 4월 21일 그곳에서 왕립 아일랜드 경찰대에 의해 체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가 도착했던 반나 스트랜드의 해변에는 로저 케이스먼트의 얼굴과 로버트 몬테이스 대위의 얼굴이 함께 새겨진 작은 오벨리스크가 서 있다.
내가 그 탑을 보러 간 아침, 날카로운 소리를 질러대며 주변을 날던 갈매기들이 싸놓은 하얀 똥으
로 탑은 뒤덮여 있었으며, 그가 결국은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처형될 아일랜드로 돌아왔던 그 새벽녘에 그의 심사를 자극했던 그 야생 제비꽃들이 사방에서 보였다.
마드리드, 2010년 4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