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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둘
사람은 어느 때 특별히 빛나는지
소지연
myungheesoh@gmail.com
예술을 대하는 지극한 마음이 퇴고의 아름다움까지 일깨워준, 청년 한 사람에 대해 말하고 싶다.
2022년 6월 18일, 텍사스의 포트워스에서 폐막한 제16회 ‘반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에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나흘간의 경연 끝에 5명의 쟁쟁한 결승진출자를 물리치고 역대 최연소인 18세의 임윤찬 군이 우승한 것이다. 2017년도에 정상을 차지한 선우예권과 더불어 한국 청년들의 연이은 쾌거였다.
준결승에서 그가 난해하기로 이름난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12곡을 독특한 기법으로 완주했을 때, 숨을 죽이며 지켜본 관중들의 갈채 속에 결과는 이미 예견됐다. 결승 두 곡으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고 3번」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이 끝을 맺자, 완벽한 하모니를 이뤄냈던 여 지휘자, 마린 알솝( Marin Alsop)은 지휘봉을 내림과 동시에 감격의 눈물을 내비쳤다. 아직은 여드름 자국 드문드문한 수줍은 눈망울의 청년을 무엇이 그토록 특별하게 했을까.
11세에 이미 세계적 경연에서 2, 3 등을 수상했고, 15세엔 2019년 윤이상 콩쿠르에서 우승한 범상찮은 전력이었다. 다른 천재 음악인에 비하면 조금 늦은 7세에 시작했지만, 겨우 18세에 세계가 주목하는 연주자로 우뚝 서버린, 짧은 듯 꽉 찬 인생이 한 떨기 꽃처럼 향기를 내뿜었다. 더욱 놀라웠던 건 그에게서 흘러나온 수상 소감이었다. “ 관객에게 진심이 닿았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요.” 담담한 첫마디는 모든 연령대와 장르를 넘어 예술가들의 기본을 소환한 한방이었다. 잘나가는 연주자를 원했다기보단 작곡가의 내면을 찬찬히 음미하여 자신의 음악으로 승화하고 싶었다는, 소박한 듯 심오한 초심을 밝힐 때의 그윽한 눈빛! 우승하고 나니 되레 심란해진다며, “일등 한 피아니스트라 해서 반드시 제일 잘 쳤다는 법은 없다”라는 어찌 보면 타당하기 그지없는 가설까지 덧붙인다. 그 나이에 이만큼 이루었으니 조금은 으쓱해도 나무랄 일 아닌데, 대체 얼마나 음악을 아끼면 저토록 조심스러울 수 있을지? 쏟아지는 찬사에는 아랑곳없이 자신의 연주를 꼼꼼히 점검하는 모습이 애 늙은이가 따로 없는 듯, 내면에서 비치는 빛이 너무도 특별하여 도무지 눈길을 거둘 수가 없었다.
(...)
『한국산문』 등단(2014)
축구(蹴球)의 위상(位相)과 도덕심
장상권
sgjang22@naver.com
아마도 1960년대의 도덕심 이리라.
그때나 지금이나 축구 놀이는 참 흥미 있고 재미있는 놀이고 경주다.
크건 작건 어떤 조직의 주체가 마각을 다투는 흥미진진한 놀이다.
내가 바로 근무 중인 육군 본부 내, 각국 감실 대항 축구 시합이었다.
이는 해마다 치르는 친선 화목 경연 대회 중 가장 흥미 있는 군대 다운 운동이었다. 이는 군대 조직의 대외비이지만 오래된 역사이기에 시작한다. 삼각지 중심 넓은 육군 본부 운동장을 중심으로 군사 조직 즉 각국 감실 의 행정 조직, 비밀 정보 등 한국의 최고 군사 조직과 행정 조직 인제와 인력을 보유한 최고의 사령탑이다.
이에 상호 보완과 협력을 위한 행사로 매년 각국의 감실이 친선 축구대회를 했다. 비밀이지만, 저 현역 남녀 보완 행정 요원 등등 많은 전문 인력 이 각국 감실 예속된 집단이었다
이 행사의 최고의 동원력과 화친의 행사가 바로“육본 각국 감실 대항 축구 시합이었다. 여기에 승패는 해당 감실에 명예이고 자존심이었다. 당일에는 우리 헌병 감실과 통신( 정보) 간의 최종 승패를 다루는 게임이었다
그때 마침 헌병 감실 띰에 정 모 상사가 상대 팀에 골대 앞으로 단독 드리블하고 골대 앞에서 불과 4~5미터 앞에서 슛하는 찰나, 그만 퍽 주저앉고 말았다, 밑을 보면서…우 우 와 와 하는 함성은 아는지? 모르는지?? 관중들의 야유가 터지고 뜻 모르는 관중들의 환성은 사방을 들썩거렸다. 과연 그는 왜 슛찬스를 스스로 포기했을까? 행여 반란??
이적 행위, 골데, 바로 옆에 앉은 관중 일부는 알아챘다 그것은 반항도 이적 행위도 아니었다.
진실과 소문은 순간 전파되었다. 그 원인은 축구복이었다
그가 입고 있던 축구복은 군용 팬티였다 호크 달린 군용 팬티는 완벽한 보호 장치가 없는, 급하면 언제든지 꺼낼 수 있는 편리한 군복 팬티였다 숫 하는 순간 돌기 부분이 이탈한 것이다. 얼마나 급했으면 감출 시간조차 급정거로 퍽 주저앉고 숫을 포기했을까?
그러나 그는 도덕심과 자존심도 생각했으리라. 더 이상 행동을 늦출 수도 없는 급박한 상황에서 숫을 포기할 만큼 자신의 긴급한 상황을 다른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에세이스트』등단2012)
저서 『도전하라! 그 속에 답이 있다』
큐피드, 화살을 제대로 쏠 수 없겠니?
이경숙
artnvo@hanmail.net
멀리서 보아도 분명 그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조금 마른 듯한 몸매와 큰 키, 승려처럼 깨끗하게 깎아버린 머리, 푸른색 운동복은 이 년 전과 다름이 없었다. 낭패스러웠다. 여기서 또 만나다니.
그때는 집 근처에 운동시설이 없어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헬스클럽에 다니고 있었다. 난 운동에 대해 약간의 강박증이 있다. 일주일에 닷새 또는 엿새는 운동을 30분이라도 꼭 한다. 안 하면 불안해진다. 과로로 쓰러진 이후에 온 건강염려증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거의 매일 헬스클럽에 나가게 되는데 운동시간이 같은 사람이 여럿 되었다. 그 사람도 나와 비슷한 시간대에 오는 회원이었는데 머리카락을 박박 밀은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이 특이했다. 또, 다른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혼자서 운동에 열중하다 가는 것 같았다.
그런 그 사람이 언제부턴가 내가 가는 운동시간과 거의 맞추어 오고 운동하는 내내 나의 주변에서만 서성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눈이 마주치면 수줍게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 정확히는 모르지만, 몸매나 옷차림에서 나이는 대략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쯤으로 짐작되었다.
이런…나는 60대인데…이 사실을 저 사람이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다른 무엇보다 그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그가 만들어 낸 나의 허상이니 그 사람의 마음이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볼 때 내가 받을 상처가 두려웠다. 심술궂고 고약한 호르몬 같으니라고. 아니, 대책 없는 큐피드 녀석 같으니.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아프리카 가젤처럼 날렵하고 탄력 있는 몸매를 가진, 전직 육상선수 트레이너에게 매료되었다. 그를 보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에게 있어 난 나이 많은 한 명의 회원에 불과했지만 나는 그를 많은 트레이너 중의 한 명으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그의 눈에서 경멸이 읽힐까 두려워졌고, 어쩌면 그는 내가 짐작하는 그런 사람이 아닐 수도 있을 거란 현실적인 결론에 아예 그를 만나거나 볼 수 없는 다른 운동센터로 옮기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끝을 모르는 감정의 소모가 정신을 지치게 했지만, 당시 50대였던 나는 20대인 그와 과연 십 분이라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공통된 관심사가 있기는 한 것일까. 그런 의문들은 나를 위축시켰다. 난 젊은이들이 즐거워하고 환호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젊은이들은 나이 먹은 이들에겐 관심이 없어 애써 친해지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그에 대한 나의 감정은 ‘젊음에의 찬미’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미 나에게서는 사라져버린 그 젊음의 아름다움에 대한 고통스러운 갈망 같은 것에 가슴을 두근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에세이스트』 등단(2017)
열일곱 번째 이사
김형국
hkkim5215@hanmail.net
고심을 거듭한 끝에 우리 아파트로 거처를 옮기기로 했다. 이십여 년 전 장만한 것인데 한 번도 거주하지 않았다. 임대차 시기가 맞지 않은 데다 자녀들의 학교와 직장이 주된 원인이었다.
십 년 넘게 강남에서 전세를 살았다. 임차 기간이 만료될 때마다 수천만 원씩 오르는 전세금은 커다란 근심거리였다. 그래서인지 경제적인 부담 없이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포근하고 아늑한 처소가 그리웠다. 내 소유 아파트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친근하고 익숙해진 일상생활의 편리함을, 딸은 직장 출퇴근의 어려움을 이유로 강남지역 떠나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결국, 아내는 나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지만, 딸은 독립을 선언하고 오피스텔을 구해 나가기로 했다.
이삿날이 정해지자 걱정이 앞서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낯선 주거지로 이전하려니 기대와 우려도 교차했다. 이번 이사는 결혼 이후 열일곱 번째다. 정기적으로 국내외에서 일정 기간 순환 근무해야 하는 직업의 특수성 때문에 이삿짐을 꾸리고 푸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 외국에서 거주했던 십여 개의 주택들이 눈에 선하다. 아내는 이따금 딸이 태어난 모로코와 아들이 태어난 미국을 생전에 꼭 한 번 찾아가 자식들이 요람기를 보냈던 사랑의 보금자리를 보고 싶다고 한다.
두어 달 이사 준비로 아내와 내 일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책과 의류 그리고 가구와 부엌 용품의 정리는 많은 손길이 필요했다. 특히 내게는 책 정리가 가장 신경 쓰이고 힘이 들었다. 다양한 서적을 분류하여 도서관과 대학교에 기증하고 친구와 지인에게 보내기도 했다. 부득이 일부는 쓰레기통에 버리게 되었다. 저자에 대한 도리를 저버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느 정리의 달인은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했다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사를 목전에 두고 내부 인테리어 공사에 매달렸다. 깊은 관심을 가진 아내의 구상이 대부분 반영된 가운데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나는 별로 아는 바가 없어 적극적으로 관여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으나 거실과 방의 확장 여부와 같은 중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나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공사 중에는 가재도구를 이삿짐 보관회사에 맡기고 딸의 오피스텔에 머물렀다. 세 식구가 원룸의 비좁은 공간에서 지내게 되어 불편하고 답답했다. 가까이 있는 조그만 공원에 들러 맑고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거나 신문을 읽는 게 그나마 낙이었다. (...)
『에세이스트』 등단(2018)
화실 가는 날
김연숙
windtree@hanmail.net
"이제 진짜 끝입니다.” 나의 말에
“속이 시원합니다.” 곁들이며 류 선생님은 하하하 웃는다.
5개월 만에 그리던 그림을 마무리한다.
그림이 마르면, 다음 주 액자를 주문해서 딸에게 여행의 좋은 추억을 선물하리라.
화실 동료 샘들이 그림이 멋지다. 좋다고 응원해주었다. 고마워요!
아쉽게도 2개월 전에 그림 분위기가 딱 괜찮았다. 그때 마무리하고 멈췄어야 했다.
샘들도 이때 좋다고 했었는데 흑… 난 뭐가 맘에 들지 않았는지 다시 도전한다.
서너 번, 류 선생님이 이제 그만 끝내도 되겠습니다. 해도 다음 시간이 되면 으레 이젤에 올려놓고 난 또다시 생각하고 시작하고 했으니… 선생에게 마음으로 미안해했습니다.
류 선생님은 내가 하는 걸 바라보며 얼마나 답답했을까?
예쁘게 그리지마, 라고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난 어떻게든 보이는 대로 사진 안에 인물을 분위기 있고 예쁘게 그리려고 했었으니깐. 아효! 지금 생각해도 경쾌한 웃음이 난다. 선생님의 말씀을 분명히 명심했음에도 듣지 않았던 나, 실수를 용서하라고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여유가 있다고 하지만 지금도 내 마음은 아직 미완성이다. 딸의 얼굴 표정, 분위기를 제대로 나타내려 해도 나의 미흡한 실력으로는 역부족의 시간이었다.
삶의 둘레에서 예술성을 추구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함에 겸손하지만, 진정성이 있을 때 소중하다. 사진 속의 그녀는 말없이 차분하게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돌려 웃는 모습이 빛의 은혜로움으로 이를 데 없이 깨끗하고 맑다. 딸과 나는 여름방학이 되면 여행했다.
서유럽 여행에서 찍은 벨기에 수도 브뤼셀 'Grand Place' 노천카페에서 찍은 사진을 유화 소재로 선택했다. 빅토르 위고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극찬한 ‘그랑플라스’ 이곳 카페에서 상냥한 독일 중년 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미소를 건네며 우리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한다. 우리는 간단하게 서로 인사를 나누고 사진도 찍었다. 그들은 1783년부터 수도원에서 생산되어 지금까지 After more than 200 years in the pursue of perfection …. 그 맥이 내려오는 벨기에 맥주 Schweppes를 추천해준다. 덕분에 우리는 그 유명한 맛과 향이 으뜸인 최상의 맥주를 맛볼 수 있었다. 여행지에서 잠시이지만 이방인으로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인사와 미소를 나누는 동안 일어나는 설렘이 기분 좋게 상큼하다.(...)
『에세이스트』등단(2019)
아버지의 첫사랑
정문정
sj6723@hanmail.net
엄마는 그 여자를 대구 여자라 불렀다. 오늘 아침 난데없이 내 앨범에서 대구 여자가 툭 튀어나왔다. 살다 보면 우연한 장소에서 의도하지 않은 일이 종종 벌어진다. 대구 여자는 아버지의 첫사랑이다. 아버지는 대구 영남고를 다니셨고 군 생활도 그곳에서 했다. 그때 그 여자를 알았고 동거했으며 장래까지 약속했다고 한다. 물론 그 약속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이후, 할아버지의 병환으로 아버지는 상사로 제대했다. 집안 좋고 근동에서는 소문난 양반집의 막내딸과 선을 보게 되었다. 그 동네의 초등학교 교사가 처녀를 좋아했는데, 선택은 아버지였다. 뒤늦게 대구 여자의 소문을 들은 외할머니가 결혼을 반대했다. 중매 선 친척 고모의 설득도 있었지만, 처녀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돌담에 기대선 봉숭아 꽃잎이 맥없이 늘어진 날이었다. 한 여자가 마당으로 걸어 들어왔다.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하이힐을 신고 어떻게 걸어왔는지, 하얀 바탕에 자잘한 꽃무늬 원피스, 짧은 파마머리는 손질되어 윤기가 흘렀다. 소금기 없는 바닷바람이 대청마루까지 밀려와 마루를 쓸고 있었다.
엄마는 한눈에 누구인지 알아보겠더란다. 시골에선 볼 수 없는 고운 자태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한다. 그 모습을 들킬세라 얼른 아기를 안았다. 아기는 품에서 바둥거렸다. 이를 지켜본 백옥같던 그녀의 낯빛이 절망으로 무너져 내렸다. 이내 눈물은 붉은 볼을 타고 내렸다.
그때 마침 작은아버지가 오셨다. 대구에서 아버지랑 같이 생활하셨기에 형수가 될 뻔한 여자를 모를 리가 없었다. 느닷없이 나타난 여자를 보고 그 자리에 없는 형을 원망했다고 한다.
눈물을 훔친 여자는 작은 보퉁이에서 선물로 가져온 듯한 물건들을 꺼내놓았다. 식구들을 한명 한명 거론하며 작은아버지께 일러주고 아버지 것만 도로 챙겨 넣었다. 시집 식구가 아닌 타인의 선물이 되어 직접 만든 옷가지들은 대청마루에 쌓였다. 보퉁이를 챙겨서 가겠다는 그녀였다. 버스가 다니는 읍내까지 간다고 해도 차는 끊어질 시간이다. 무엇보다 십리 길을 걸어가면 밤이 될 것이기에 밥을 해 먹이고 재웠단다.(...)
『에세이스트』등단(2019)
‘정숙’이란 이름만 들어도 정겹다
문대권
englmoon@hanmail.net
40년간의 교직 생활을 통하여 많은 제자와 만났다. 특수학교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로 6학년 졸업반 담임을 많이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연을 지속하고 있는 제자는 손가락을 곱을 정도이지만 특별한 인연을 맺어 온 두 제자가 있다. 성과 이름이 똑같은 ‘정숙’이라는 제자이다. 남해 정숙, 사천 정숙이다.
남해 정숙이는 1972년 첫 발령지인 남해 상주초등학교에 근무할 때 졸업한 띠동갑 제자이다. 며칠 전 카톡으로 “선생님, 스승의 날 축하합니다.”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는 현재 서울 K 초등학교 교감 선생님이다. 6학년 때 부반장으로 예쁘고 키도 크며 교우관계도 원만하여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었다. 시골에서 자랐지만, 서울 교육대학교에 입학하였으니 같은 교육자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반갑고 대견한 제자이다. 사제 간이지만 세월이 흘러 그의 나이가 벌써 예순에 가까워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십수 년 전, 우리가 교직에 머물러 있었던 때 스승의 날엔 서로 축하 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었던 작년에 카톡으로 “오 교감, 언제 승진하나요.” 물었더니 “선생님, 서울에는 승진하기가 무척 힘들어요. 내년에 승진 기회에서 탈락하면 명예퇴직하려고요” 충격적인 말을 했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몹시 안쓰러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라고 부탁했는데, 올해 교장 연수받는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기쁜 소식이었다. 평생 교직에 몸담으면서 교장으로서 교육관을 학교 현장에 접목해 본다는 것은 교육자가 마지막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소망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졸업 후 그와 첫 번째 만남은 2011년 나의 정년 퇴임식에서였다. 그동안 서로 연락이 뜸했는데 38년 전 상주초등학교 졸업생 중 열 명의 제자가 퇴임식에 나타났다. 식장에 참석한 교직원들은 깜짝 놀랐다. 당시 ‘참교육’ 운운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학교 현장에선 퇴임식은 교내 방송 인사로 대신하고 그냥 헤어지기 서운하다고 본교 직원과 점심 식사로 끝내던 시절이었다. 그때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와 “선생님, 저도 12년 뒤에는 퇴임할 것”이라고 말했던 제자 오 선생이다. 같이 초등교육에 몸을 담고 있었던 터라 교육 가족이라는 동질감에서 오는 애정으로 지금까지 서로 연락하고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
『에세이스트』 등단(2020)
『여기』 시등단(2022)
그녀에게서 묵향이 난다
최병란
qudfks1015@daum.net
그녀에게서 묵향이 난다. 까무잡잡한 얼굴, 굳은살이 베인 두툼한 손,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서 한 폭의 담백한 수묵화를 본다. 찔레꽃 같던 그녀의 얼굴이 피어오르고 이내 내 가슴은 파도처럼 울렁인다.
정임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나이 18세였다. 나보다 2살이 많았다. 어느 여름날, 석양이 겨우 남은 산모퉁이를 넘어갈 무렵 그녀는 친구 한 명과 우리 동네로 느닷없이 들어왔다. 시골뜨기 같은 얼굴에 작은 키, 가끔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내뱉는 말투는 서울말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서울로 돈 벌러 갔다던 동네 오빠 둘과 함께 동갑내기 네 명이 두 쌍의 부부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두 쌍의 꼬마 부부 덕분에 조용하던 동네가 술렁거렸다. 오지 중에서도 오지인 봉화 산골 마을에 전라도에서 온 어린 색시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동네 눈과 귀가 모두 그리로 쏠렸다.
정임은 인천의 어느 공장에서 남편을 만나 이곳으로 왔다. 그의 남편은 일찌감치 조실부모하고 아래로 누이 셋에 남동생 둘, 즉 여섯 남매의 맏이였다. 열여덟 살의 가장이 감당하기에는 눈앞에 놓인 현실이 너무나 가혹했다. 그들이 돌아오자 시 숙모는 자신이 데리고 있던 동생들을 데리고 나갈 것을 종용했다. 동네 허름한 집을 얻어 육 남매는 함께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정임의 등장은 내게도 충격적이었다. 우리 집과도 가깝고 나이도 비슷했기에 우린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그녀의 사랑은 당돌하고 저돌적이었다. 거칠 것이 없는 사람처럼 살림살이를 척척 해나갔다. 지적장애가 있는 시동생을 거두고 빈 땅을 얻어 농사를 지었다. 동생들은 그녀가 오고 난 후 몰라보게 입성이 좋아졌다. 엄마처럼 동생들을 돌보는 그의 모습에 남편도 많이 의지하는 것 같았다. 제법 손이 매운 그녀를 보며 동네 어른들의 칭찬이 늘어갔다. ‘진정한 사랑의 승리자’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에세이스트』등단(2020, 89호)
바다에 누워 ‘잠’
김주선
jazzpiano63@hanmail.net
과수원과 잠농(蠶農)을 겸했던 우리 집은 살림방까지 누에에 내주어야 할 만큼 농사가 컸다. 잠란지(蠶卵紙)에 붙은 누에씨가 꼬물거리기 시작하면 여러 채반으로 나누었다. 한 번씩 허물을 벗고 잠을 잘 적마다 키가 쑥쑥 자라나 잠실 시렁에 층층이 채반을 올려서 키워야 했다. 뽕잎이 한철일 때 잠실 문 앞에 서 있으면 잎을 갉아 먹는 벌레 소리가 지적지적 빈대떡 지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먹고 자고 그렇게 네 번째 허물을 벗은 후에야 제 몸 하나 웅크릴 관을 만드느라 실을 토해냈고, 나비로 환생할 꿈을 꾸었다.
인간의 잠드는 욕망은 잠벌레(누에)의 생을 통해 꿈틀거리기 시작했을까. 영면(永眠)에 들면서도 환생을 바라고 누에고치처럼 생긴 옹관에 장례를 치렀다는 기록과 함께 삼한 시대의 옹관 묘터가 곳곳에서 발견되니 말이다.
잠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하길래 식욕 성욕 못지않게 수면욕을 다뤘을까. 나도 죽은 듯이 곱게 자고 싶지만, 나이 드니 병이 들고 병이 드니 수면의 질이 급격히 떨어졌다. 수면다원검사 예약날짜를 받아놓고 보니 걱정이 깊어졌다. 내가 모르는 나의 잠의 세계는 어떤 곳일까.
‘잠’의 어원을 찾아보니 누에의 잠(蠶)에서 유래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누에가 뽕잎을 먹지 않으면 ‘잠이 들었다’라고 말한다. 사람이 베개를 벤 모양으로 머리를 들고 넉 잠을 자야 고치가 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한 달이 채 안 걸린다. 누에에게 잠은 먹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사람이 죽는 것을 ‘고이 잠들다’라고 표현하는 것 또한 고치 속에서 번데기가 되어 이듬해 봄에 나방이 되기까지의 깊은 잠을 비유한 것이다.
잠을 잘 잔 누에가 고치 색깔도 좋고 희다. 아기 잠에서 시작하여 막잠을 잘 때까지 누에가 자는 잠의 질에 따라 명주실의 품질이 다르다. 농부는 최적의 수면 환경을 위해 똥이 묻은 채반을 소제하고 깨끗한 뽕잎으로 갈아 주어야 한다.
내가 유아일 적에 잠자는 모습을 보면 코끝에 손가락을 대 볼 정도로 숨소리가 약했다고 한다. 잠투정도 없는 순둥이를 바랐지만, 병치레를 달고 살았다 하니 고양이만큼 선잠을 자고는 칭얼대었나 보다. 쌔근쌔근 건강한 숨을 쉬는 아기라면 엄마도 꿀잠이 되게 잤겠지만, 나 때문에 늘 괭이잠을 잤다고 했다. 그랬던 내가 유년을 지나 한창 클 나이에는 취미가 ‘잠’이라고 할 만큼 잠 벌레였다. 잠이 보약인지 처녀 시절엔 예쁘다는 소리도 곧잘 들었다.
(...)
『한국산문』 등단(2020)
『세명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대상(2022)
제15회 바다문학상 수상
공저 『폴라리스를 찾아서』, 『목요일 오후』
딩동, 월요일입니다
위연실
pass0715@hanmail.net
아장걸음 아가로 시작되어 학생, 아가씨, 새댁, 아무개 엄마에서 할머니까지 나를 부르는 호칭이 많기도 했다.
때마다 생소한 세계를 맞이하면서 적응하고 마름질하느라 애썼다 싶어, 위안이라도 받고자 두리번거려 보지만 만만한 상대가 없다. 모두 바삐 바삐 살아내느라 정신 무인지경이니 스스로 다독이고 나름대로 포상하며 살아가는 것이 최상의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빨리 늙어라, 빨리 늙어라.’를 주문처럼 중얼거리던 혼동의 시절은 진즉에 지나가고, 세상 맘에 드는 노년의 반열에 올라서니 소망이 이루어져 평온하다. 하지만 그 평온이 어디 복지 혜택처럼 무상 지급되겠나? 그에 걸맞은 조건이 따라붙어야 맛나게 유지될 테지.
누워서 먹는 떡도 값은 지급해야 하고, 낡아가는 속도를 줄이려면 머리도 녹슬지 않아야겠기에 적당한 일이 필요했다.
이런저런 이유를 둘러대며 개 목줄 같았던 각자의 직업을, 아이들이 둥지를 떠나자마자 과감히 내던졌다. 그리고 곧바로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늘 함께 있을 수 있는 자영업을 마련했다.
막상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찰싹 붙어 있으려니, 같이 있어 보고 싶다던 바람은 잘못 품은 꿈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결론은 가성비가 좋았다고나 할까, 아무튼 실보다 득이 크다고 생각을 한껏 부풀렸다. 왜냐하면 그것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여유는, 손주들 용돈도 맘먹은 대로 폭폭 줄 수 있으며 명절이나 이름 있는 날, 내 좋은 이들에게로 푸짐한 떡 바구니라도 보낼 수 있어 좋다. 그뿐인가, 비록 적은 도움이지만 어렵다, 힘들다, 애가 탄다는 곳으로 멈칫거리지 않고 보태줄 수 있기에 석양빛 비춰든 나이에 축복이라 여기며 고단함을 덮는다.
받는 그들이 손사래 칠 때까지 직업인으로 남아있을 예정이다, 단 건강이 허락하여야겠지만 아직은 팔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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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스트』등단(2021)
문학시선 신인상(2021)
제26회 대한민국 장애인 문학상 수필 부문 우수상
제29회 장애인 문학상 동시 부문 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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