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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9일 오늘의 역사
2022년 김예림국제빙상경기대회 그랑프리에서 금메달
김예림(단국대)이 김연아 이후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시니어 그랑프리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특히 그의 우승은 러시아, 미국과 함께 피겨계를 삼분하고 있는 일본에서 홈 링크 선수들을 전부 따돌리고 일궈낸 우승이어서 더욱 뜻이 깊다.
김예림은 19일 일본 삿포로 마코마나이 아이스 아레나에서 열린 2022~2023 ISU 시니어 그랑프리 5차 대회 ‘NHK트로피’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점수(TES) 66.90점, 예술점수(PCS) 66.37점, 감점 1.00점을 획득해 합계 132.27점을 기록, 전날 쇼트프로그램 72.22점을 합쳐 총점 204.49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 2009년 11월 김연아가 프랑스 대회에서 일궈낸 마지막 그랑프리 대회 우승 이후 13년 만에 ‘연아 키즈’ 김예림이 다시 정상에 올랐다.
2021년 부분월식 3시간 30분 이어져 580년 만에 가장 긴 월식
19일 오후 달의 일부가 지구 그림자에 가려지는 부분 월식이 있었다 올해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천문 관련 이벤트인데 3시간 30분 이어져 580년 만에 가장 긴 월식이란 의미도 갖는다.
한국천문연구원에 따르면 이번 월식은 오후 4시 18분 24초부터 시작되어, 우리나라에서는 달이 오후 5시 16분에 뜨기 때문에 월출 이후 볼 수 있다. 이 때 달은 절반가량 지구 그림자에 가려진 채 떴다. 다만 이때는 달이 구름에 약간 가린 것으로 보이고, 달이 완전히 떠올라야 가려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후 6시 2분 54초에 가장 많게 달의 97.8%가 가려지고, 오후 7시 47분 24초에 끝났다
2021년 한국군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국제 사이버 공격 및 방어 훈련(CYBERNET 2021)’ 대회에서 준우승
2019년 대성호 화재사건
대성호 화재는 2019년 11월 19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의 차귀도 서쪽 70 km 해역에서 발생된 어선 화재 사고이다. 화재 사건이 발생된 당시에는 선원 12명이 승선하였으나, 한국인 6명과 베트남인 6명 등 12명이 해당 선박에 승선하였으며, 11명은 구출되지 못하고 실종된 상태이며, 1명만 구출하였으나 숨진 사건이기도 한다. 이 사건의 여파에 따라 사고 해역 주변에는 파도가 엄청 거센 것으로 보이게 된다. 따라서 1명이 숨지고 11명이 실종되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2013년 국가기록원 주일대사관으로부터 이관 받아 3·1운동 피살자 630명·관동대지진 피살자 290명 명단 공개
2010년 장미란 광저우 아시안게임 우승(311kg)으로 그랜드슬램 달성
2009년 첫 EU 대통령 선출
2009년 11월 19일 유럽연합(EU) 특별 정상회의에서 EU 개혁조약인 리스본조약에 따라 신설된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에 헤르만 반 롬푸이(62) 벨기에 총리가 선출됐다.
이날 특별 정상회의에서 초대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이하 외교대표)로는 영국의 캐서린 애슈턴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을 지명됐다.
롬푸이는 2008년 12월 벨기에 총리가 됐으며 당시 이브 르테름(Leterme) 총리가 권력 남용 스캔들로 사퇴하자 하원의장이었던 롬푸이를 벨기에 국왕이 후임 총리로 지명했다. 당시까지 벨기에 정계에서도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으나 벨기에의 지역 갈등을 완화시키고 글로벌 경제위기를 잘 견디어내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롬푸이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면서 중도 우파 정치인으로 현재 EU의 정체성을 잘 대표한다. 그는 네덜란드어·프랑스어·영어에 능통하고, 1990년대 벨기에 예산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재정 적자를 큰 폭으로 줄인 경제통으로도 알려져 있다.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2년 6개월의 임기를 수행하게 된다.
연봉은 30만~35만 유로(약 5억2000만~6억원)로 미국 대통령 연봉(약 4억6000만원)보다 많으며 22명의 개인 참모와 10명의 경호원, 상임의장 전용 리무진 승용차를 운전할 운전기사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을 수행한다.
2009년 패션모델 김다울 프랑스 자택에서 사망
2009년 11월 19일(현지시각) 세계적인 패션모델 김다울(20)이 프랑스 파리 자신의 아파트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최초 발견자는 김다울의 친구였으며 이후 프랑스 경찰이 주프랑스 한국 대사관 측에 통보했다.
김다울의 한국 매니지먼트인 에스팀 관계자는 최근 김다울이 모델 일뿐만 아니라 미술 전시회를 열고 사진집도 낸 데다 얼마 전엔 샤넬 광고를 찍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해왔으며 별다른 자살의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다울의 미니홈피와 블로그에는 ‘불면증’ ‘현실과 이상의 갭’ 등 심경을 토로하는 글을 올려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에서 주목받는 모델이었던 만큼 외신들도 비중있게 다룰 정도로 충격을 안겨줬다.
김다울은 1989년생으로 한국에서 태어나 8세부터 싱가포르에서 자랐으며 영어·중국어·프랑스어·한국어 4개국어에 능통한 재원이었다. 키 176㎝. 13세에 싱가포르 로레알 광고 모델로 데뷔하면서 모델 일을 시작해 2007년부터 해외에 진출해 파리와 뉴욕, 런던, 밀라노를 오가며 샤넬, 루이비통, 돌체&가바나, 페라가모 등 유명 디자이너의 쇼 무대에 섰다. 해외 활동 2년 만에 세계 패션모델 랭킹을 소개하는 사이트 ‘모델스닷컴’의 ‘톱 50’에 올라 주목을 받았으며 지난 2009년 NY매거진 ‘주목해야 할 모델 톱 10’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8년 행남자기 김준형 창업주 별세
행남자기 남강(南岡) 김준형(金浚炯·94) 창업회장이 2008년 11월 19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전남 영광 출신인 김 회장은 1942년 순수 민족자본으로 생활도자기 전문회사인 행남자기를 창업했다. 김 회장은 1998년까지 경영일선에서 활동하다 장남인 김용주 현 행남자기 대표이사 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줬다.
2004년 광주, 수능 ‘휴대전화 부정’ 사건
2004년 17일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휴대전화를 이용한 부정행위와 대리시험으로 얼룩졌다.
광주에서 시작된 부정 파문은 곧 전국으로 확대됐으며, 수험생 등 374명이 입건되고 314명의 성적이 무효 처리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휴대전화를 이용한 수능 부정행위 소문은 수능 이틀 전인 15일 광주시교육청 홈페이지에 자신을 ‘한 수험생’으로 밝힌 네티즌의 글이 떠돌면서 구체화됐다. 이 네티즌은 “후배가 여관에서 답을 받으면 그것을 조합해 다른 학생들에게 보내는 방식으로 1년 전부터 준비해왔으며 답을 보내는 학생은 바지 속에 휴대전화를 넣고 진동으로 한 뒤 두꺼운 코트로 가리고 문자메시지를 보낸다”고 썼다. 또 이 글은 “커닝 조직은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로 구성돼 다른 학생에게 과목당 30만~50만원을 받고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로 답을 전송하는 방법으로 부정행위를 계획하고 있다”는 등 그 내용이 세세했다. 부정행위는 연루 학생들이 사전에 모의한 뒤 예행연습까지 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지역이미지 훼손을 심각하게 우려하는 가운데, 부정행위 수사는 전국차원으로 확대되었다. 수사 결과, 전국적으로 부정행위가 이뤄진 것으로 밝혀졌고, 광주가 유달리 심각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던져주었다.
2002년 7만7000여t 중유 실은 유조선 스페인해안 침몰. 해양오염 심각
7만 7000여t의 중유를 싣고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근처를 항해하던 중 많은 양의 기름을 흘러내리며 가라앉기 시작했던 4만 2000t급 유조선 프레스티지호(號)가 19일(현지시각) 조난 5일 만에 완전 두 동강난 채 깊이 3500m의 바다로 침몰했다.
유조선이 싣고 있던 연료용 중유는 지난 1989년 알래스카 근해에서 발생한 엑손 발데스호 침몰 사건으로 유출된 기름(원유)의 약 2배에 이르는 데다 중유는 원유보다 정화 작업이 훨씬 어려워 최악의 해양 오염이 우려됐다.
유조선은 지난 14일 태풍으로 침몰하면서 기름을 뿜어냈다. 흘러나온 기름은 갈리시아의 바위투성이 해안 200㎞를 오염시켜 갈매기를 비롯한 바닷새들과 게 등 수많은 해양 동물들이 죽고 해조류 등 해양 식물이 오염됐다. 환경운동가와 자원봉사자들은 해변에서 시커멓게 물든 바닷새들을 구조하고, 해변의 기름 찌꺼기를 제거했다.
1999년 중국, 러-미에 이어 세 번째로 무인우주선 발사
1999년 11월 19일 중국이 무인 우주선을 대기권 밖으로 쏘아올리는 데 성공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21일 중국이 첫 발사한 무인 우주선 션저우(神舟)호가 단기비행 임무를 무사히 끝내고 내몽고 자치구에 착륙했다고 보도했다.
장쩌민((江澤民) 국가 주석이 ‘신의 배’라는 뜻으로 명명한 션저우호는 이날 오전 6시30분 장정2호F 로켓에 실려 감소성 주천 기지에서 발사돼 10분 후 로켓에서 분리된 뒤 정해진 궤도에 진입했다. 무게 10t의 션저우호는 21시간동안 지구를 14바퀴 선회하면서 우주과학 실험을 실시하고 21일 새벽 3시41분 무사 착륙했다.
이번 우주선은 비록 실험우주선에 불과했지만, 중국은 소련과 미국에 이어 세번째로 무인 우주선 발사에 성공한 나라가 됐다. 1950년대부터 우주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해온 중국은 지난 1992년 유인 우주선 프로젝트에 착수하기로 결정, 수천명의 과학자들을 동원해 연구와 개발에 박차를 가한 끝에 마침내 이날 유인우주선의 전(前) 단계인 무인우주선 실험에 성공했다.
1997년 남북한 항로관제 직통전화개통
1995년 크바스니에프스키 폴란드 대통령에 당선
1995년 11월 19일 폴란드 대통령선거에서 구공산당원 크바스니에프스키가 당선됐다. 전체 49개 지역의 공식 개표결과를 모두 종합한 결과, 크바스니에프스키 후보가 51.72%의 지지율을 얻어 48.28%를 얻는데 그친 바웬사 대통령을 물리치고 차기 폴란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42세의 젊은 그가, 그것도 한물 간 공산당의 후신인 폴란드사회민주당(사민당)을 이끌고 자유노조출신의 거물 바웬사를 물리치고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열린 사고, 실용적이고 유연한 정책, 그리고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통찰력 때문이었다.
1993년 정부 베트남 호치민시(옛 사이공)에 총영사관 개설
1990년 독일 베를린에서 남-북-해외 대표 모여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결성 결의
1987년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사망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1987년 11월 19일 폐암으로 타계했다. 향년 77세였다. 그는 해방 후 40여년동안 한국 최대의 재력을 형성한 재벌의 대명사였다.
1901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그는 38년 삼성상회를 설립, 사업에 투신했다. 그는 효성그룹창업주였던 고 조병제씨 등과 삼성물산공사를 세웠고, 제일제당·제일모직을 잇따라 설립해 상업자본을 산업자본화하는 데 성공했다. 69년 삼성전자를 설립, 당시 금성사와 경쟁하면서 전자산업의 발전을 선도했고, 80년대 들어서는 반도체 유전공학 등 첨단산업분야에 과감히 진출해 사업을 확장했다.
그는 5·16 직후에 한때 부정축재자로 몰리기도 했으나 오히려 같은 해 8월 전경련의 전신인 한국경제인협회를 창설, 회장에 취임함으로써 혁명정부의 경제개발계획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한 지난 66년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사건과 관련, 한때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는 등 곤욕을 치렀으나 삼성그룹회장을 복귀, 삼성그룹의 전성시대를 이뤘다.
1985년 한국 남극자원보존협약 가입
1984년 중단되었던 남북적십자회담 예비접촉 열려
1984년 멕시코시티 가스공장서 대규모 폭발사고 544명 사망. 실종 1000명 주민35만명 대피
1982년 미국, 퍼싱II 미사일 발사 성공
미국의 퍼싱II 미사일이 1982년 11월 19일 처음으로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제리핸들리 육군대변인은 이날 뉴멕시코주 화이트 샌즈미사일기지에서 발사된 퍼싱II 미사일이 세 차례 실패끝에 100km의 시험사정거리를 완벽하게 비행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험발사된 퍼싱II 중거리 미사일이 유도체제 실패로 목표물을 정확히 명중시키지 못해 시험발사에서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퍼싱II 미사일 발사 후 잠정자료를 분석한 결과 수압부족 때문에 유도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시험발사가 정확하게 이루어지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퍼싱II는 서유럽에서 소련을 공격할 수 있는 최초의 서방 중거리미사일이었다.
1981년 여-야, 야간통금해제를 정부에 건의
조승우가 출연한 영화 ‘고고70’은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그룹사운드 ‘데블스’의 신나는 노래와 춤으로 국내 최초 고고클럽 ‘닐바나’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밤 12시에 사이렌이 울려 거리를 돌아다니지 못하자 청춘남녀들은 당국의 눈을 피해 이런 곳에서 젊음을 발산했다.
야간통행 금지는 영화 속 얘기에 그치지 않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광복 직후인 1945년 9월에 시작된 제도였다.
미 군정 포고1호에 의해 서울과 인천이 대상 지역이었다.
정부는 6·25전쟁이 끝난 뒤 1954년 4월 내무부 고시 제195호로 경범죄처벌법을 개정하면서 통금규정(제1조 제43호)을 만들었다.
안보가 불안하므로 치안을 유지하려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관광지인 제주는 1964년부터, 내륙지방인 충북은 1965년부터 해제됐다.
통금해제는 전두환 정권이 본격적으로 검토했다.
시대가 바뀌면서 야간활동 금지로 인한 득(得)보다는 실(失)이 많다는 판단에서였다.
1988년 열릴 서울 올림픽도 영향을 미쳤다.
1981년 11월 19일, 여야는 이른 시일 안에 접적(接敵)지역과 해안지역을 제외하고 전국의 야간통행 금지를 해제하도록 정부에 건의키로 했다.
합의 형식이었지만 사실은 여당이 주도했다.
권정달 민정당 사무총장은 이날 오후 7시 여의도 전경련회관 19층 중식당에서 중진 회동이 시작되자 통금해제안을 갑자기 꺼냈다.
이견이 없어 4분 만에 논의가 끝났다.
당정이 여러 차례 협의를 마친 뒤라 시기를 정하는 일만 남았다.
당시 신문을 들춰 보니 통금해제 이후를 불안해하는 제목이 적지 않게 보인다.
길어질 밤…기대와 걱정, 청소년 선도 어려워져, 남편 귀가 늦을까 걱정이다….
범죄가 늘지 않고 시민 귀가가 오히려 빨라졌다는 제주와 충북의 사례를 ‘증언’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한 기사도 등장했다.
야간통금은 1982년 1월 5일 0시에 완전 해제됐다.
1980년 KAL기 김포공항서 착륙중 화재 15명 사망, 15명 부상
1979년 계엄 당국의 휴교 조처 해제로 대학교 전면 개교
1979년 이란, 미국 인질중 여자등 13명 석방
1978년 북경에 모택동비판 대자보 등장
1977년 인도 안드라 프라데시에 태풍/해일 강타 사망 1만 명
1977년 포르투갈의 TAP 보잉 727기 마테이라도에 추락 사망 130명
1977년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 이스라엘 방문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이 1977년 11월 19일 밤 30년동안 적대해온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아랍국가에서 국가원수가 이스라엘을 방문한 것은 이스라엘 건국이래 처음이었다.
베긴 이스라엘 수상은 철저한 경계가 진행되는 가운데 벤 구리온 공항에 도착한 사다트 대통령을 영접했다. 온건파 사다트의 이스라엘 방문은 사다트 대통령이 11월 9일 `필요하다면 이스라엘 국회도 가겠다`고 발언하자 베긴 수상이 이에 응답해 11월 15일 초청장을 보낸 것이 계기가 됐다. 방문 이틀후인 20일 사다트는 이스라엘 국회에서 연설했다.
이집트로 귀국한 사다트는 환호하는 국민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지만 아랍 강경파는 그를 비난하고 리비아와 시리아는 이집트와 단교했다. 다마스커스 베이루트 바그다드 등에서 이집트 정부 관계자가 피습받기도 했다.
사다트는 이에 굴하지 않고 1978년 9월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수상과 13일간에 걸친 장시간 회담을 열어 마침내 9월 17일 중동평화협정 합의 문서에 조인했다. 사다트와 메나헴 베긴은 그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집트 내에서 사다트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점차 높아져 갔고 결국 1981년 10월 6일 사다트는 군사퍼레이드를 지켜보다가 이슬람 과격파의 총탄에 쓰러졌다.
1975년 유엔총회, 한국문제의 서방-공산측 두 결의안 동시채택
1975년 한-이란 각료공동회의. 한국의 대(對)이란 기술자 파견, 건설참여 등 10개항 조인
1973년 정부 미군군표를 본토 달러로 대체사용 발표
1969년 미국 아폴로12호 달 착륙
1968년 한국-스와질란드 국교 수립
1966년 서울 무악재(毋岳─) 개통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峴底洞)과 서대문구 홍제동(弘濟洞) 사이를 잇는 고개.
인왕산(仁旺山)과 안산(鞍山:毋岳) 사이의 안부(鞍部)를 넘는 고개로, 그 명칭은 조선시대 초기에 한양(漢陽)을 도읍으로 정하는 데 공이 컸던 무학대사(無學大師)의 ‘무학’에서 연유하는 것이라고 한다.
무악재는 한양의 북서쪽 경계이자 서도(西道:황해도 ·평안도의 통칭)에서 한양으로 들어오는 교통의 요충지가 되어 왔고, 특히 명(明) ·청(淸) 나라의 사절들이 한양으로 들어오는 길목의 관문 구실을 하여, 고개 밑(현재의 독립문 자리)에 사절을 맞는 모화관(慕華館) ·영은문(迎恩門) 등이 세워져 있었다.
1965년 바티칸 공의회, 신앙의 자유 선언안을 승인
1963년 몬트리올서 캐나다여객기 추락 117명 사망
1961년 네루-나세르-티토, 나세르에서 중립국 수뇌회의
1960년 북한, 남북연방제 제안
1957년 유엔총회, 군축위 확대안을 채택(25개국 구성)
1946년 대일(對日) 우편물 정식인가
1946년 유네스코, 파리에서 제1차 총회
세계 각국의 교육, 과학, 문화의 보급 및 교류를 통해 국가간의 이해를 돈독히 하고 협력관계를 촉진함으로써 국제평화와 안전을 확보하려는 유네스코 (유엔교육과학 문화기구)가 1946년 11월 4일 유네스코 헌장 발효와 함께 정식으로 발족했다.
유네스코 헌장은 1945년 11월 16일 영국과 프랑스가 주축이 되어 런던에 소집된 44개 연합국 교육문화회의에서 채택됐다. 이는 1942년 10월 유럽 여러 나라의 문교장관들이 런던에서 문교장관회의를 열고 전쟁으로 파괴된 교육시설 및 문화재를 복구하기 위한 국제기구의 설립을 촉구하는 결의를 하자, 미국이 이에 동조하여 1944년 국제기구안이 제시됨으로써 설립이 구체화된 것이다.
1차 총회는 발족 15일 뒤인 11월 19일 파리에서 열렸다.
1942년 소련군, 스탈린그라드서 독일군에 대반격 개시
1942년 대종교 주요간부 21명 구속
1924년 신사상연구회 화요회로 개칭
1919년 대한애국부인회(大韓愛國婦人會) 발족
1919년 11월 평양에서 결성된 항일여성단체.
3·1운동 직후 평양에서는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장로교파와 감리회파의 애국부인회(愛國婦人會)가 각각 조직되었다.
장로교파의 애국부인회는 1919년 6월 한영신(韓永信)의 주도로 조직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독립운동단체를 후원하였으며, 감리회파의 애국부인회는 6월에 박승일(朴昇一)·이성실(李誠實)·최순덕(崔順德) 등이 역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할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국내 비밀조직을 통합하여 항일투쟁세력을 결성하고자 김정목(金貞穆)과 김순일(金淳一)을 파견하여 8월부터 연합을 추진하였다.
이에 11월 양측의 주요간부들은 독립군자금을 모금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한다는 목적 아래 대한애국부인회로 통합하였다.
본부는 평양에 두고 지방에 있는 부인회를 지회로 흡수하는 한편 부인회가 없는 지방은 지회를 설립하기로 하였다.
부서로는 총재·회장·부회장·재무부·교통부·적십자부 ·서기를 두었으며, 임원에는 총재 오신도(吳信道), 회장 안정석(安貞錫)·최순덕(崔順德) 등,
부회장 한영신(韓永信), 재무부장 정월라(鄭月羅)·조익선(趙益善) 등,
적십자부장 이성실(李誠實)·김신희(金信喜)·홍활란(洪活蘭) 등,
서기는 최명실(崔明實)·최매지(崔梅智)·이겸량(李謙良) 등이 선임되었다.
교회를 중심으로 평양·진남포·강서·증산 등 평안남도 지역에 설치된 지회는 독립성이 강하여 대한애국부인회가 서북지방 애국부인회의 협의체적인 성격을 띨 정도였다.
회원은 100명이 조금 넘었으며, 회원과 동지를 통해 모은 군자금 2,100원은 두 차례에 걸쳐 김정목과 김순일을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보내졌다.
1920년 10월 15일 금산지회장 송성겸(宋聖謙)이 군자금을 나르던 도중 붙잡혀 관련인 100여 명이 검거됨으로써 조직이 붕괴되었다.
1917년 인도수상 인디라 간디 출생
1863년 링컨, 게티즈버그 연설(Gettysburg Address)
남북의 분열을 막아 미국이 세계최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데 중요한 발판이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게티즈버그 전투가 끝나고 4개월이 지난 뒤, 1863년 11월 19일 링컨 대통령이 게티즈버그를 찾았다. 전몰 장병들을 추모하는 국립묘지 개관식 자리였다.
링컨이 연단에 서자, 사람들은 당대의 웅변가 에드워드 에버렛이 장장 2시간에 걸쳐 이미 1만5000명의 청중들을 울리고 웃긴 뒤라 링컨의 연설이 주목을 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87년전 우리의 선조들은... 새로운 나라를 세웠고...”로 시작되며 272단어로 이루어진 간결하고도 감동적인 어조의 연설은 2분에 불과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이날의 연설은 훗날 명연설의 고전이 됐으며,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세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다짐해야 합니다.(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라는 끝맺음 문구는 민주주의의 의미를 함축적이며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1833년 '생의 철학' 창시한 독일 철학자 빌헬름 딜타이 출생
1828년 슈베르트 사망
오스트리아 대표적인 작곡가 슈베르트가 1828년 11월 19일 사망했다. 초기 독일낭만파의 대표적 작곡가로 `가곡의 왕`으로도 불리운 그의 음악적 천분은 일찍부터 두드러져 8세때 교회에서 가창, 바이올린, 피아노, 오르간 등의 기초적인 지도를 받고 11세때 아름다운 소년 소프라노 음성을 인정받아 빈 궁정예배당의 합창아동으로 채용되어 국립 기숙신학교에 들어갔다.
여기에서 궁정악장 A.살리에르에게 작곡법을 배워 작곡을 시작하게 되었다. 1828년 31세의 짧은 생애를 마치면서도 오토 에리히 도이츠의 연대순으로 정리된 작품번호에 따르면 작품수는 998개에 이르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약 633곡의 가곡이다.
생전의 고전파시대에는 별로 주목되지 않았던 가곡이라는 예술부문이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선율과 색채 넘치는 화성에 힘입어 비로소 독립된 주요한 음악의 한 부문으로 취급됐다. 대표곡으로 `실을 잣는 그레트헨`(1814), `들장미`(1815),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처녀`(1923), `겨울나그네`(1827)등이 있으며 유해는 유언에 따라 전년에 작고한 벨링크묘지에 있는 베토벤 무덤 가까이에 묻혔다.
1806(조선 순조 6) 실학자 이긍익 세상 떠남
1600년 영국 왕 찰스1세 출생
1598년 이순신 장군 노량해전에서 전사
1598년 8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병사함으로써 7년을 끌어온 임진왜란도 사실상 파장 분위기였다. 전남 순천에 있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한시바삐 조선에서 물러나고자 했으나 길목에는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버티고 있었다. 명나라 장군을 통해 퇴로를 열어보려 했지만 이순신의 반대로 이마저 어려워지자 고니시는 인근의 일본 수군에 도움을 요청, 500여척의 배를 긁어모았다.
남해와 하동 사이의 노량으로 적선들이 집결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이순신이 마지막 해전에 나선 것은 11월 18일(음력)이었다. 이날 밤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노량에서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고, 500여척에 달하던 일본 함대는 불과 50여척 남짓만 살아남아 남해 쪽으로 도주했다. 이 해전으로 전쟁도 사실상 끝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전투, 그것도 승리가 확정된 전투 끝 무렵인 19일 새벽 갑자기 날아온 탄환이 이순신의 왼쪽 가슴에 꽂혔다. 이순신은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단 말을 하지 마라" 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진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무찌른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은 "나를 넬슨에게 비기는 것은 가하나 이순신에게 비기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일" 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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