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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긴 삶
신외숙
요즘 유투브에 자주 올라오는 베트남 싱글맘들의 동영상이 있다.
100퍼센트 다큐멘터리로 진행되는 영상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20세 미만의 미혼모거나 내쫒긴 아내들이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여자들은 갖가지 눈물겨운 사연을 안고 있다. 개중에는 14세에 결혼했다 아기를 낳자마자 이혼당한 여자가 있는가 하면 앉은뱅이 장애의 몸으로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도 있다.
이제 갓 청소년 티를 벗지도 못한 싱글맘들은 친정부모로부터도 버림받아 이중고의 아픔을 겪는다. 친정부모는 아무리 경제적 능력이 있어도 이혼한 딸을 가족으로 받아주지 않고 그대로 내쫒는다. 17세에 이혼당하고 찾아온 딸이 밥상을 차리자 딸과 외손자를 그대로 내쫒는 친정 엄마도 있다.
어린 나이에 부모에 의해 내쫒긴 아이들도 있다. 그 가엾은 영혼들을 노리는 후안무치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싱글맘들은 아기를 위해 혹독한 시련도 감내하는데 그 과정은 인생의 한 축소판처럼 보여진다.
한번 내쫒긴 인생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대부분 깊은 숲속에 들어가 거처를 마련한다. 나뭇가지를 꺽어 지지대를 세운 다음 커다란 나뭇잎으로 지붕을 만들고 바닥에 깔아 침대를 대신한다. 거처를 마련할 때는 반드시 대나무 숲이 인근에 있고 물의 근원지가 있어야 한다.
간신히 비만 피할 정도로 엉성하게 만든 집에 밤이 찾아온다. 젖먹이 아이를 안은 미혼모는 숲속 밤바람을 맞으며 잠을 잔다. 더운 날씨 덕에 이불은 필요 없다지만 비가 닥치면 그대로 온몸이 빗물로 수난을 맞는다. 남편에게 내쫒긴 여인들은 그나마 낫다. 대나무로 만든 큰 등짐과 돗자리 낫 이불 솥 등 생활도구를 주고 내쫒기니 어디든 텐트를 치고 밥을 해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미혼모들은 그야말로 맨몸으로 신발로 못 신고 쫒겨나 풍찬노숙(風餐露宿)한다. 처음에는 동네를 떠돌며 남의 밭에서 수확한 야채를 장에 내다 팔고 품삯을 받는다. 솥이 없어 밥도 못해먹고 빵으로 끼니를 때운다. 공사장에 가서 노동을 하고 품삯을 받는가 하면 깊은 숲속에 들어가 나무 열매나 생강 고구마 죽순 등을 캐 노점에서 판매한다. 플라스틱이나 캔 등 고물을 주워 파는 경우도 있다.
삶은 힘들어도 모성애는 눈물겹다. 16세 17세 미혼모들은 아기에게 헌신하며 끈질긴 삶을 이어 간다. 그녀들은 깊은 숲속에 들어가 열매나 야채를 수확해 모은 돈으로 아기 옷이나 장난감을 산다. 대나무로 집을 만들고 침대와 식탁 의자도 만든다. 밭의 울타리도 만든다.
산에 올라가 물의 근원지를 찾아 긴 호스나 대나무로 연결해 24시간 내내 물이 흐르게 한 다음 식수로 이용한다. 간단해 보여도 지혜가 엿보인다.
그러다 뜨거운 날씨에 열사병으로 쓰러지거나 말라리아에 걸려 사경을 헤매는 일도 발생한다. 고아로 떠돌아 살다 17세에 미혼모가 된 여자가 있다. 여자는 맨발로 거리를 떠돌며 캔이나 페트병을 주워 고물상에 팔아 생계를 이어 간다. 여자는 15세에 청소년 남자들에게 집단으로 성폭행 당했다.
이후, 이상한 남자를 만나 아이를 임신하고 혼자 낳아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여자는 말한다.
아직까지는 살고 싶다고.
여자는 꽤나 미모다. 맨발로 거리를 떠돌며 아이와 함께 페트병을 자루에 주워 담던 어느날 신발을 발견했다. 까만색 슬리퍼를 탁탁 털어 신고는 아이의 신발도 주워 신겼다. 아이 양말을 주워 신기는데 색깔이 다른 짝짝이다. 주운 고물을 팔고 돌아서는데 중년의 여자가 다가와 그들이 지낼 수 있는 산속 대나무 집을 소개한다.
그 안에는 옷가지와 간단한 살림도구가 남아 있다. 누군가 살다 간 흔적이 오히려 그들 모자에겐 큰 안식처가 된다. 여자는 아이와 함께 깊은 산속에 들어가 나무 열매와 나물을 채취해 팔면서 생활을 이어 간다. 쌀을 사서 밥을 해먹고 나무 열매를 따 아이에게 먹인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아이의 생부가 나타나 모자를 내쫒고 난동을 부린다.
모자는 다시 산속으로 들어가 거처를 마련한다. 처음에는 나뭇잎을 깔고 몸을 눕혔지만 시간이 지나자 대나무를 잘라 집을 짓기 시작한다. 집짓기는 의외로 간단하다. 굵은 대나무를 잘라 땅속에 단단하게 박은 다음 벽과 지붕을 만든다. 지붕은 야자수 잎을 촘촘하게 엮어서 방수를 한다.
벽은 대나무를 잘게 잘라서 엇갈리게 엮어서 끈으로 묶는다. 다음 그것을 세워 벽을 만들고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다. 가운데 창문을 내는데 이 또한 허술하기 짝이 없다. 옆으로 누운 직사각형으로 나무를 엇갈리게 한 다음 가운데 나무를 박아 창문의 모양새를 유지한다.
출입문은 천장 높이 보다 약간 낮게 직사각형으로 대나무를 잘라 엮은 다음 기둥을 세워 회전이 가능하게 한다. 비교적 튼튼하고 단단하게 만들어 안에서 문을 닫아걸면 얼마든지 외부인을 차단시킬 수 있다. 침대를 만드는 방식도 비슷하다. 땅에 기둥을 세우고 굵은 대나무를 연결해 기초 공사를 한다.
그다음 잘게 잘라 편 대나무를 벽면까지 연결하고 나면 훌륭한 침대가 완성된다. 대나무로 엮어 만든 벽 사이로 햇살이 비쳐온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집이지만 그들만의 보금자리에도 안정과 평화가 깃든다.
또다른 미혼모가 있다. 여자는 3살쯤 된 아들과 함께 신발도 없이 쫒겨났다. 산속에 들어가 간신히 비바람을 피해 살아가는데 연이어 도둑과 강간범이 침입한다. 여자는 바닥에 커다란 나뭇잎을 깔고 아들과 함께 잠을 잔다. 이불도 없고 신발도 없다.
잠에서 깨어나면 아들과 함께 깊은 산속에 들어가 죽순이나 나물 생강 나물 열매를 채취해 장에 가 판매한다. 그 돈으로 아이의 옷을 사고 쌀과 고기를 산다. 약간의 여유가 생기자 대나무로 집을 짓기 시작한다. 열매를 채취해 판 돈으로 병아리를 사다 키우고 땔감을 동네 주민에게 팔아 생필품을 산다.
물고기를 잡거나 게 식용 개구리를 잡아 판매하기도 한다. 그러다 큰 나무 위에 올라가 열매를 따던 중 아들 위로 대나무가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아이에게 약초를 달여 먹이고 닭을 잡아 보양식을 한다. 이어 약국을 찾아 처방을 하지만 증세는 심해진다. 여자는 결심하고 그동안 모았던 돈을 모아 병원을 찾는다. 멀리 떨어진 병원을 가기 위해 오토바이 기사를 고용한다.
베트남은 의료시설도 열악하기 짝이 없다. 정확한 진단을 받고 병원을 나오면서 여자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죽어가는 강아지를 데려와 키우고 아이에게 온갖 정성을 기울인다. 아이가 회복되자 모자는 또다시 산행을 한다. 나물과 열매를 따서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나무 위에 올라가 나뭇가지를 흔들면 아들이 떨어지는 열매를 바구니에 담는다. 버섯을 딸 때도 아이는 단단하게 한몫을 한다. 엄마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이다. 엄마가 요리를 하면 아이는 식탁을 준비하고 꼭 엄마의 입에 먹을 것을 넣어준다.
영특하고 배려심 많은 아이는 엄마가 어떤 일을 하든 반드시 옆에서 돕는다. 혼자서 해먹을 타고 놀다가도 병아리에게 모이를 주고 장사할 때도 물건을 직접 소비자의 봉지에 넣어주기도 한다. 그야말로 효자 스타일이다.
또다른 싱글맘은 알코올 중독자인 남편에게 쫒겨나 노숙인이 되었다. 3살쯤 되어 보이는 딸아이와 함께 고물을 주워 판매하는데 이들 역시 맨발이다. 19세인 여자는 싱글맘이 되어 산속에 움막을 치고 살아가는데 열매를 채취해 판매한 돈을 노리는 치한이 따라붙는다. 깊은 숲속에 자리한 집으로 가는 길목까지 따라붙은 치한을 따돌리기 위해 여자는 꾀를 낸다. 딸을 안고 뛰어가다가 중간에 샛길로 빠져 풀숲에 숨은 것이다.
치한은 길을 헤매다 결국 돌아섰다. 여자는 딸을 안고 간신히 집으로 돌아와 남은 쌀로 밥을 짓는다. 그렇게 힘들게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 있는가 하면 젖먹이 아기가 침대에서 떨어서 울어도 전혀 미동도 안 한 채 술중독에 빠져 지내는 여자도 있다.
병든 아이를 키우기 힘들다고 나무에 묶어서 길가에 방치하는가 하면 젖먹이 어린아이를 길가 풀숲에 버리는 모정도 있다. 그런가 하면 무슨 사정이 있는지 모르지만 젖먹이 어린 딸을 데리고 홀로 살아가는 싱글대디도 있다. 20대 안팎으로 보이는 남자는 아이를 업은 채 산에 가 열매를 채취해 판매하는데 싱글맘과 별로 다를 바 없다.
맨몸으로 쫒겨난 여자들을 노리는 후안무치한 치한이 있는가 하면 힘들게 번 돈을 갈취하려는 절도범도 많다. 싱글맘이 산에서 채취한 열매를 팔고 돌아서는 순간 도둑이 따라붙는다. 마스크와 복면을 하고 따라붙은 도둑은 잔인하게 돈을 갈취한 뒤 숲속으로 사라진다.
얼굴에 검정칠을 한 치한은 미혼모가 사는 곳에 은밀히 틈입(闖入)한다. 음식을 훔쳐 먹고 돈을 훔쳐 달아난다. 칼을 든 채 숲속에 숨어 있다 여자를 노리는 치한도 있다. 그런가 하면 불쌍한 미혼모에게 다가가 물건을 몽땅 구입하면서 도움을 주는 남자도 있다.
기거할 집을 알려주거나 음식이나 일용품을 몰래 담 안에 던져주고 사라지는 여자도 있다. 길거리를 떠도는 노숙자 미혼모에게 온정을 베푸는 천사도 있다.
남편에게 내쫒긴 여자는 힘들게 번 돈을 갑자기 나타난 남편에게 몽땅 빼앗긴 채 빈털터리가 된다.
음식점에 들른 여자는 주인에게 사정해 설거지를 해준 다음 딸과 함께 국수 한그릇을 얻어먹고 나온다. 땔감 나무를 한 짐 메고서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팔기도 한다. 돈이 생기면 병아리를 사다 키우고 돼지도 키우고 잡풀을 뽑아내고 땅을 평평하게 씨앗을 심는다.
비옥한 땅에 뜨거운 열기에 2달이면 야채를 수확해 판매가 가능하다. 그런가 하면 16살 장애인 미혼모는 앉은뱅이 걸음으로 간신히 연명한다. 처음에는 독지가로부터 라면이나 생필품을 공급받아 살아가지만 그것도 한때다. 여자는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아기를 업은 채 기어서 먹을 것을 찾아 헤맨다. 풀잎에 난 열매를 입에 넣으면서 눈물을 흘린다.
나무 뿌리에 달린 식물을 채취해 구워 먹으며 또 눈물을 흘린다. 여자는 그야말로 삶을 위해 악전고투를 벌인다. 땅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아이와 함께 잠을 자다 느닷없이 출몰한 뱀을 보고 기겁을 한다. 거대한 몸체의 뱀은 아이와 여자에게 돌진한다. 여자는 뱀을 쫒기 위해 몸을 움직이지만 둔할 수밖에 없다.
장애의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는 긴 막대기를 꺼내 필사적으로 뱀을 퇴치하며 또다시 눈물을 흘린다. 몸을 간신히 움직여 살아가는 그녀는 다른 미혼모들에 비해 훨씬 열악하고 불쌍하기 그지 없다. 그런가 하면 부지런하고 재주 많은 미혼모들은 17세 19세 어린 나이에도 숲속의 열매를 채취하고 직접 밭을 일구거나 병아리나 돼지 등을 사육해 수입을 올린다.
그렇게 번돈으로 땅을 사고 터전을 마련한다. 그 이전에 숲속에 집을 짓고 살다 땅 주인이 나타나 쫒겨나기를 반복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힘들게 만든 대나무 집은 주인에 의해 그야말로 풍비박산 난다. 그럼에도 아기를 가진 미혼모들은 다시 또 삶의 투혼을 발휘해 숲속으로 들어간다.
전 남편에 대한 분노나 버림받은 상처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아이와 함께 삶을 위해 전진 또 전진할 뿐이다. 동명상련일까. 미혼모들은 길가에 버려진 아기나 고아들을 데려자 키우기도 한다. 길가에 쓰러진 노인을 업고 와 간호해 회생시키기도 한다.
그러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노인의 아들로부터 아이 옷과 쌀부대를 선물 받는다. 길가에서 고물을 줍는 고아 아이를 데려와 먹이고 씻기고 학교까지 보내는 여자도 있다. 자신은 글도 못 읽으면서 아이에게 깨끗한 옷과 가방까지 사주며 학교에 보낸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천사다, 여자는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 온갖 수고를 아까지 않는다 그러다 농약에 중독돼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아이는 동네로 뛰어가 도움을 청한다. 해독제 풀을 먹고 살아난 여자는 또다시 노동 현장에 뛰어든다. 고아 아이는 굶주림에 허겁지겁 식사를 한다.
먹을 것을 보면 꼭 엄마나 할머니 입에 먼저 먹여주는 미혼모의 아들과 대조되는 장면이다.
다큐멘터리 동영상을 보는데 마음속에 울림이 있었다. 아! 저들은 배반과 상처라는 아픔속에서도 끊임없이 삶을 개척하고 있구나. 자신의 처지와 상관없이 이웃사랑을 실천하는구나. 나도 모르는 다짐이 생겼다. 이제부터는 환경을 탓하지 말자. 운명이나 행불행을 따지지 말자. 과거의 상처나 피해의식 따위는 더더욱 따지지 말자.
베트남에 왜 유독 미혼모가 많은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녀들은 버림받았다 해서 남편을 원망하거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모성애에 집착하며 아이의 생명을 책임지고 돌본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아이가 걸음을 떼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일을 가르치는 것이다. 아이에게 등짐을 매게 하고 작은 곡괭이를 들고 밭을 일구는 법을 가르친다. 어릴 때부터 엄마 옆에서 보고 배운 아이는 어떤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가는 방법을 체득한다.
세상은 항상 악과 선이 공존한다.
악인과 선인도 마찬가지다.
힘들게 살아가는 미혼모들의 돈을 갈취하는 도둑이나 치한이 있는가 하면 거처할 집을 소개하거나 비싼 값으로 물건을 팔아주는 부유한 남자도 있다. 고아들의 거처를 부수고 키우고 있던 닭을 잡아먹는 악인이 있는가 하면 그런 고아 아이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돌보는 미혼모도 있다.
이래 저래 세상은 공존하고 있다.
빛과 어둠이 교차로 공존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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