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급제란 靑雲의 꿈을 안고 漢陽으로
향하는 嶺南 儒生들이 넘었던 문경새재 길을 걷다
☞ 산행일자: 2022년 07월 02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한여름을 방불케하는 무더위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12.1km + 들머리 2.6km / 6시간 47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고사리 주차장-조령산 자연휴양림-쉼터1-쉼터2-임산물 판매장-연풍새재 공원
문경새재(조령3관)-군막터-무명묘지-선바위-조망바위-암봉-마패봉-돌탑
사문리 탐방지원센터 갈림길-철계단-무명봉-안부-쉼터-안부-이정표-북암문-756m봉
스타소나무-안부-734m봉-달천(계명)지맥 분기봉-달천(계명)지맥 분기점-무명봉
안부-무명봉-안부-묘지-무명봉-764m봉-모봉-무명봉-754m봉-741m봉-무명봉
737m봉-느릿골재 갈림길-동암문-이정표-산성터-부봉 갈림길(왕복)-부봉-안부
암릉구간-조망봉-904m봉-암봉-안부-무명봉-947m봉(주흘산 갈림길)-사면길-평천재
831m봉-무명봉-탄항산-무명봉-804m봉-너럭바위-무명봉-안부-삼각점봉?-안부
모래산-물탱크-초소-하늘재
☞ 소 재 지: 경북 문경시 문경읍 / 충북 괴산군 연풍면 / 충주시 수안보면
세상이 어지러우니 날씨마져도 제 정신이 아닌 모양이다.
절기상으로는 이제서야 겨우 여름철 문턱에 들어섰건만 벌써부터 폭염 경보가 내릴만큼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으니 인간이나 날씨나 모두다 제 정신이 아니니 우야먼 좋겠노...
무성한 잡목과 잡풀로 인하여 길을 찾기가 어려운, 나홀로 걷는 지맥길은 잠시 접어두고
7~8월에는 길도 좋고 3번이나 종주를 한 탓에 길도 확실히 알고있는 대간길을 걷기로 한다.
4차 대간은 순서대로 하는게 아니라 시간이 나고 대간길을 가는 산악회가 있으면 가기로
하는데 예전에 몇번 산행을 했던 그랜드산악회란 곳에서 조령에서 마패봉과 부봉으로
이어지는 곳으로 산행 공지가 올라 왔기에 이번주는 이곳을 따라 가기로 한다.
물론 초반에는 같은 코스로 산행을 하나 산악회에서는 부봉까지는 같이 갔다가 1~6봉을 거쳐
동화원~조령~고사리 주차장으로 원점회귀를 하고 난 부1봉에서 되돌아와서 평천재~탄항산~
모래산~하늘재로 향할 것이다.
오는 길은 하늘재에서 그때 상황을 봐서 미륵리로 내려와서 수안보로 오던가, 아님 관음리로
내려와서 문경으로 가서 동서울 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탈것이다.
아침 7시에 잠실역에서 버스에 탑승하러 가는데 몇년동안 지맥길을 같이한 마루님(이 산악회에선
닉이 마그마인지 날짐승이라 하는데 잘 모르겠다)을 만났는데 무척이나 반갑다.
버스는 출발하고 회장님께서 나를 인사시키는데 오랫동안 독립군(나홀로 산행)으로 활동한
탓인지(?) 이런 분위기에는 왠지 영 어색하다...거기다가 총무 소임을 맡고있는 옥희씨가
떡과 꼬마김밥 도시락에 생수와 사과 한알까지 별도로 챙겨 주는데 고맙고 미안하다.
오늘 내 베낭엔 점심때 먹을 초코파이 2개와 두유 2개, 이온음료와 생수밖에 없는데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이다...충주휴게소에 들려서 또다시 아침 대용이라면서 떡 하나와 생수를
주는데 이것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들머리인 고사리 주차장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고사리 주차장(09:40)
2020년 9월 5일 석문 동(신선)지맥 첫 구간을 할 때 자차로 와서 이곳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오늘과 똑같은 코스로 마폐봉까지 걸었으니 정확하게 22개월만에 다시 온 셈이다.
이 주차장은 옆에 있는 호텔의 소유인 모양인데 큰 버스가 주차장으로 잠깐 들어가서
회차를 하려고 하니 관리인이라는 인간이 지랄발광을 하면서 차를 못들어오게 막는다.
소갈머리라고는... 벤뎅이속보다 더 좁은 넘을 다봤네...니는 남의 땅 안밟고 사나...
버스에서 내리니 마을 윗쪽으로 22개월전에 걸었던 마폐봉(전봇대 뒷쪽)과 신선봉(젤 높은 곳)이
범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주차장 맞은편 아래에는 고사리의 자랑거리인 조선시대에
암행어사 박문수가 쉬어갔다고 전해지는 350년 된 소나무도 예전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충북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에 있는 고사리 마을의 유래는 조선시대 충청도로 접어드는 영남대로의
첫 숙박지 신혜원(新惠院)이 있었던 마을로 17~18세기에는 주막만 100여 가구가 될 정도로 많았으나
광복 후에 자취를 감추었으며 조령 3관문을 지나 2km쯤 밑에 있는 고사리는 새재 7~8부 능선의
고지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옛날에 제1관 문과 대안보에 역촌이 있었는데 상놈이 많다며 양반들이
두 곳을 피해 '고 사이에서 잠을 자고 가자.'라고 하면서 '고사리'라는 이름이 굳어졌다."라고 전한다.
산행을 시작하다(09:55)
버스에서 내려 리딩하시는 대장님을 따라서 스트레칭을 하는데 독립군인 범여로서는 어색하다.
갑자기 배에서 이상 신호를 보내기에 옆에있는 식당에 가서 양해를 구하고 시원하게 볼 일을
보고 나오니 같이오신 분들은 벌써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어차피 나와 산행 목적이 다르니 가던지 말던지 무더운 날씨에 초반부터 오버페이스 할 필요야 있겠나...
牛步 걸음으로 느릿느릿 들머리인 조령(문경새재)으로 향한다
조령산 자연휴양림(10:00)
이곳까지만 차량 통행이 가능하고 여기서부터 문경새재(조령) 정상까지는 등로는 좋으나
차량 통행이 불가능한 곳이다...기상청의 예보로는 오늘 폭염경보가 내려졌다고
하는데 이곳은 숲속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그렇게 덥지는 않으나 그래도 땀은 비오듯 쏟아진다
조령산 자연휴양림 입구를 지나면서 만난 좋은 글귀들...
쉼터1(10:07)
데크목 쉼터 주위에는 문경새재에 관한 古文의 詩들이 많이 보인다
쉼터2(10:12)
이 길은 연풍새재길이다...같은 길이건만 흔히들 알고있는 문경새재길이 아니다.
아마도 이곳이 행정구역상 괴산군 연풍면이라 문경새재로 불리웠던게 껄끄러운 모양이다.
문경새재(과거길)는 영남과 기호지방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옛길로 선비들이 장원급제를 꿈꾸고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넘나들던 길로 새재라는 이름의 유래는 매우 다양하다.
고갯길 이 워낙 높아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데서, 고갯길 주변에 새(악새)가 많아 억새풀이
우거진 고개라는 뜻이기도 하다.
석천 임억령 (石川 林億齡:1496∼1568)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대수(大樹)이며 호는 석천(石川),
본관은 선산(善山), 해남출신으로 담양부사를 지냈으며, 눌재 박상에게 글을 배웠고 1516년에 진사시,
1525년에 문과에 합격했으며 관직은 담양부사, 강원도관찰사를 비롯 부교리·사헌부지평·홍문관교리·
사간·동부승지·세자시강원 설서 등 내외직을 두루 거쳤다.
천성적으로 도량이 넓고 청렴결백하며, 시문을 좋아하여 사장(詞章)에 탁월했으며, 담양 창평에 머물 당시
성산(식영정)시단을 열어 김성원, 정철, 고경명 등의 제자들과 수창했는데 성산동 관련 한시문은 500여
편으로 그 작품성이 뛰어나다.
남면(가사문학면) 지곡리 별뫼에 있는 식영정(息影亭)은 1560년 그의 사위인 서하당 김성원이 서하당과
식영정을 짓고 이중 식영정을 석천에게 증여한 것으로 이후 석천은 이곳 식영정이 있는 별뫼를 무대로
많은 작품을 남겨 송강 정철, 서하당 김성원, 제봉 고경명과 함께 '식영정 사선(四仙)' 이라 불리우고 있다.
정영방(鄭榮邦:1577년 ~ 1650년)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본관은 동래이고, 자는 경보(慶輔),
호는 석문(石門)으로 고조부는 홍문관 응교 정환(鄭渙), 증조부는 생원 정윤기(鄭允奇), 조부는
진사(進士) 정원충(鄭元忠)이며, 생부는 정식(鄭湜), 생모는 안동 권씨로 참봉(參奉) 권제세(權濟世)의 딸이다.
양부는 정조(鄭澡)이며 양모(養母)는 진성 이씨이며, 부인은 전주 유씨로 도승지(都承旨)로 증직된
유복기(柳復起)의 딸이다。
임산물 판매장(10:18)
2년전에 오를때는 코로나라는 역병 때문에 문이 굳게 닫혀 있었는데 이제는 사람들의
왕래가 있는지 음악소리도 요란하고 사람들도 보인다...다들 잘되야 할텐데...
임산물 판매장을 지나자마자 좌측 숲속으로 신선봉으로 오르는 샛길이 보인다.
시원한 숲길이지만 덥기는 더운 모양이다..땀이 비오듯 쏟아지는 걷다보니
연풍새재공원 입구에 도착한다
과거(科擧)의 길 동상
옛부터 영남에서는 많은 선비들이 청운의 뜻을 품고 과거보러 한양으로 갔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은 남쪽의 추풍령(秋風嶺)과 북쪽의 죽령(竹嶺), 그리고
가운데 새재(鳥嶺)가 있었는데 영남선비들은 이 문경새재를 넘었다고 한다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秋風落葉)과 같이 떨어지고, 죽령을 넘으면 미끄러진다는
선비들의 금기(禁忌)가 있어 영남선비들이 과거급제를 위하여 넘던 과거길이다
연풍새재 공원(10:25)
과거(科擧)의 길 동상 옆에는 延豐鳥嶺亭이란 쉼터도 보이고 동그란 지구 모양에 한반도 지도가
파여있는 조형물, 백두대간 조령의 비 하단에는 검은색 烏石에다가 조령의 유래를 새겨놨다.
백두대간의 조령산과 마패봉 사이를 넘는 이 고개는 옛 문헌에는 초점(草岾)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조령(鳥嶺)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어원은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한 하늘재(麻骨嶺)와 이우리재 사이에 있다고 해서 새(사이) 재 혹은 새(新)로 된
고개라서 새(新) 재라고도 한다. 조령은 조선시대에는 영남과 한양을 잇는 중요한 길목으로 영남 대로
(嶺南大路)라 불렸으며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올해는 과거 급제를 한 사람이 없는가 보다...급제한 유생이 이름이 안보인다
傍 옆에는 조선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목민관이 지켜야 할 지침을 밝힌 목민심서(牧民心書)와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 연암 박지원 열하일기(熱河日記)와 , 성호 이익(李瀷)의 문답집인 성호사설
(星湖僿說)의 책 조형물이 보인다.
1, 목민심서는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목민관이 지켜야 할 지침을 밝히면서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실학서로 유배지인 강진 다산초당에서 완성한 책으로, 지방의 수령들이 지켜야 할 일들을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관리의 횡포와 부정부패를 폭로 및 경계하고 있으며 수령들의 윤리적 각성을
다루고 있는데 총 48권 16책의 필사본으로 되어있다.
2, 열하일기(熱河日記)는 조선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에 다녀온 후에 작성한 견문록으로
〈연암집〉에 수록되어 있으며 26권 10책이다. 44세 때인 1780년 삼종형 명원이 청나라 고종 건륭제의
칠순 잔치 진하사로 베이징에 가게 되자 자제군관의 자격으로 수행하면서 곳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남긴
기록으로 당시 사회제도와 양반사회의 모순을 신랄히 비판하는 내용을 독창적이고 사실적인 문체로 담았다.
필사본으로만 전해져오다가 1901년 김택영에 의해 처음 간행되었다.
3, 성호사설(星湖僿說)은 30권 30책. 필사본으로 천지문·만물문·인사문·경사문·시문문의 5부분으로
분류되어 총 3,007항목의 글이 실려 있는데 천지문 223항목은 천문과 지리에 관해 서술했고 만물문
368항목에는 사물을 대하면서 평소에 생각했던 것들을 수록했다. 경사문 1,048 항목은 여러 고전과,
중국 및 우리나라의 역대 사서나 사실·인물·제도 등에 관하여 주석·논평한 것이다.
이 책은 성호의 학문과 사상을 연구하는 기본적인 자료임과 동시에 고대에서 조선 후기까지 중국과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지리·풍속·사상·역사 및 당시 전래된 서학과 풍물을 모두 망라하여
기록하하여 백과사전적 전서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괴산땅을 넘어서니...
곧바로 지명이 문경새재길로 바뀌어 버린다.
경북 문경에 소재한 문경새재는 영주 죽령, 영동 추풍령과 함께 조선시대 3대 고갯길로 꼽힌다.
5백여 년간 문경새재를 넘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중에는 입신양면을 꿈꾸는 청춘도 있고, 거상을 꿈꾸며 봇짐을 메고 다녔던 보부상들도 있었다
부산 동래에서 한양까지 추풍령을 넘으면 보름, 죽령을 넘으면 열엿새가 걸렸다고 한다.
문경새재는 열나흘 정도면 너끈히 한양에 도착할 수 있었으니 지름길인 셈이다.
그런데 과거 보러 가는 선비들에게 문경새재는 지름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낙방하고, 죽령은 대나무 미끄러지듯 낙방한다는 징크스가 그것이다.
연풍에서 문경으로 이어지는 문경새재는 전 구간이 흙길이다.
우리나라의 부흥시킨 故 박정희 대통령이 문경새재길을 새로 개설하면서
박 대통령께서 이곳만은 시멘트 포장을 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문경새재 옆으로는 계곡과 수로가 있어 언제든지 손발을 닦을 수 있다.
뙤약볕을 피할 수 있을 만큼 우거진 숲도 걷는 재미에 한몫을 한다.
이처럼 수려한 자연경관 덕에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 100선'에서
1위를 차지했던 곳으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選'과 명승32호로도 지정됐다.
낮은 물론이고 늦은 밤에도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밤에 황톳길을 맨발로 걷는다.
상상만으로도 운치 있는 풍경이다. 문경새재는 제1관문인 주흘관을 시작으로
제2관문 조곡관, 제3관문 조령관으로 이어진다.
전체 길이는 6.5km. 일정이 빠듯하다면 1관문이나 2관문까지만 걸어도 좋다.
문경새재도립공원에 들어서면 자연생태전시관, 사계절썰매장, 새재스머프마을,
옛길박물관 등 볼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들 중에서 옛길박물관은 과거길,
여행길 등 조선시대 길과 얽힌 문화를 재조명해놓았다.
문경새재(鳥嶺:642m:10:28)
조령3관문의 연풍쪽 현판에는 ‘鳥嶺關’이라 적혀있다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와 충북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문경새재는 거리가
짧은 만큼 길이 험하고 높아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으로 조령(鳥嶺)이라 불리기도 했다.
다른 뜻으로 백두대간 조령산 마루를 넘는 고개란 의미도 포함되며, 새로 생긴 고개라는 뜻에서
'새재'라는 설도 있도 있는 "문경새재는 백두대간의 조령산 마루를 넘는 재이다.
백두대간의 등뼈를 이룬 고산준령이 병풍처럼 이어져 충북과 경북의 도계를 이룬 천험의 요새인
조령(鳥嶺)은 제1관문에서 새재계곡을 따라 제3관문까지 이어지며, 조선시대부터 영남에서 한양으로
통하는 가장 큰 대로(영남대로)로서 "嶺南"이란 명칭도 조령의 남쪽 지방이란 뜻이다.
3관문을 지나 문경땅으로 넘어서니 현판이 산꾼들이 부르는 조령 제3문이 아닌 ‘嶺南第三關’이라 적혀있다.
영남제3관이라 적힌 문경관문(聞慶關門:사적제147호)
이 관문은 고려 태조가 경주를 수행차 고사갈이성(高思葛伊城 : 지금의 경상북도 문경)을 지날 때
성주 흥달(興達)이 세 아들을 차례로 보내 귀순하였다는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다
이 관문은 영남지방과 서울간의 관문이며 또한 군사적 요새지이다
삼국시대에는 이보다 동쪽의 계립령(鷄立嶺 :하늘재)이 중요한 곳이었는데 고려초부터는
이곳 초참(草站)을 혹은 새재라고 하므로 조령(鳥嶺)이라 이름하고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했다
조선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 때 왜장 고니시유끼나가(小西行長)가 경주에서 북상해 오는
카토 키요마사(加藤清正)의 군사와 이곳 조령에서 합류했을 정도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점이었다
이때 조정에서는 이곳을 지킬것이라 생각했지만 신립(申砬) 장군은 때가 늦었으므로 충주로 후퇴했다
그 후 충주에서 일어난 의병장 신충원(辛忠元)이 오늘날의 제2관문에 성을 쌓고 교통을 차단하며
왜병을 습격하였다...이곳의 군사적 중요성이 재확인 되자 군사시설을 서둘러 숙종34년(1708년)에
이르러서야 3중의 관문을 완성하였으며 문경에서 충주로 통하는 제1관문을 주흘관(主屹關),
제2관문을 조동문(鳥東門) 혹은 조곡관(鳥谷關), 제3관문을 조령관(鳥嶺關)이라 이름한다
우측에 있는 조령 산신각(山神閣)에 들려 들려 오늘의 무사산행을
기원하며 예를 올린 다음에 오늘 걷는 백두대간의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군막터(軍莫址:10:30)
예전에 조령관을 지키던 지키던 군사들이 대기하는 장소란다.
본격적인 오르막길...이곳에서 마폐봉까지 0.9km의 짧은 거리에 고도를 280m 올라야
하는 이런 구간...범여의 몸뚱아리는 이런곳엔 아주 쥐약이다.
그래 피하지 못할거면 즐기라고 하지 않았던가...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문경시 전시행정?
몇년전인가 문경시가 이곳에다 문경시의 특산물인 오미자를 홍보하기 위하여
하우스 파이프에다가 오미자를 심어놓고 옆에있는 안내판에다 친절하게 설명서까지
만들어놨는데 심어논 오미자는 다 죽어 버리고 안내판 글씨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신맛, 단맛, 쓴맛, 짠맛, 매운맛의 오묘한 5가지 맛의 조화를 이룬다고 해서 이름 붙혀진
오미자(五味子)는 문경시 동로면 황장산 일대를 중심으로 전국 오미자 생산의 45%를 차지하고 있다
이보시게 문경시 공무원 나리들...내 돈 아니라고 민초들의 피땀흘려 번 돈을 막써도 되나...
식물이란 토양과 기타 복합적인 것을 고려하여 심어야 살지...이런 산에서 어찌 살겠나.
천천히 아주 천천히 조령산성을 따라서 마패봉으로 향하는 이 길...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길이기도 하다.
여지도에 기록된 조령산성 지도
조령산성은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문경새재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문경새재는 험준한 산악지대로 북쪽의 마패봉(925m), 동쪽의 부봉(917m), 주흘산(1075m),
서쪽의 깃대봉(812.5m), 조령산(1,026m)으로 둘러싸여 있다.
성곽은 3곳에 위치한 관문을 중심으로 그 좌·우 능선을 따라 축조되어 있다.
각각의 성곽은 크게 문루와 이와 연결되는 평지성, 평지성과 연결되어 좌·우 능선을 따라
쌓은 산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문루 아래에는 모두 홍예문을 두었고, 평지성은 매끈하게 다듬은 입방체형 석재나 면과 모서리를
다듬은 성돌로 바른층쌓기를 하였고, 산성은 20~60㎝ 내외의 석재로 허튼층쌓기를 하였다.
문루의 명칭은 1·2·3관문에 걸려있는 현판에 따라 각각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라 하고, 산성의
명칭은 초곡성, 중성, 조령성이라 하겠다. 산성의 규모는 초곡성(草谷城) 2,270m, 중성(中城) 40m,
조령성 899m 정도 이다. 이 외에 북암문과 동암문에도 각각 333m, 750m 정도의 성벽이 있다.
부대시설로는 동암문, 북암문, 포루, 우물터 등이 있다.
그런데 문경새재와 관련된 각종 고지도에는 이외에 동창, 산창 등이 표기되어 있고,
최영준은 1관문 뒤에 조령관, 별장영, 산창, 병영, 무기고, 마당 등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해 놓았다.
이것은 곧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들의 흔적이 어느 정도 남아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현재 이들이 위치했던 곳에는 KBS 촬영장이 들어서 있으며 이로 인해 옛 모습은 확인할 수 없다
묘지(10:48)
며칠간 많은 비가 내렸던 탓인지 하늘은 정말 맑고 상쾌하다
1년에 이렇게 볼 수 있는 날이 과연 몇번이나 있겠는가...
그러나 날씨는 너무 더워서 살갗이 익는 느낌이다...오랫만에 구라청(기상청)의 예보는 맞는거 같다.
묘지에서 가야할 마패봉을 바라보니 숨이 막힐 지경이다.
급경사의 오르막길에는 아주 예쁘고 도도한 참나리들이 간간히 보인다.
너무도 도도하고 당당한 네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구나.
암릉 사이를 올라선 다음에 잠시후 안부에 있는 선바위를 만난다.
선바위(11:05)
마패봉을 향하는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잠시후에 너럭바위를 만나고 두발이 아닌 네발로 기다시피 바위를 통과한다.
열이 후끈거리는 암릉을 통과하는데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이런걸 以熱治熱이라고 하는 건가...
이곳에서 좌.우 어느쪽으로 가던 상관은 없다...오늘은 우측으로 올라가 본다
처음 가보는 등로인데 누군가 로프를 설치해놨고 조망도 좌측보다 훨씬 좋다
암릉구간 통과하면서 바라본 부봉 1봉에서 부봉 6봉까지의 능선이 뚜렸하게 보이고
그너머로 우뚝솟은 주흘산의 최고봉인 영봉이 보이고 부봉능선 아래 옴팍한 곳이
옛 선비들과 보부상들이 한잔의 술과 음식으로 즐겨 쉬어가던 곳인 동화원 자리이다
계속되는 오르막길...숨이 막힐듯한 무더위와의 전쟁...오늘은 피할수 없는 운명처럼 보인다
암릉 주위에는 올해 처음으로 반가운 꼬리진달래와의 遭遇를 한다
힘들게 안부에 올라서니 조망바위가 나온다
조망바위(11:20)
조망바위에 올라서니 그야말로 일망제이다
조망바위 바로 아래에 있는 문경새재는 綠陰속에 묻혀버렸고 그 윗쪽으로 깃대봉을 필두로
신선암봉~조령산 그리고 좌측으로는 부1봉에서 부6봉으로 내려서는 능선과 주흘산이 보인다
어머니 산(山) / 정연복
하늘에 맞닿은 높은 봉우리와
깊숙히 내려앉은 계곡
드문드문 우람한 바위들과
아가 손만한 작은 돌멩이들
훌쩍 키 큰 나무들과
앉은뱅이 이름없는 풀들
숨가쁜 오르막길과
편안한 내리막길
전망이 탁 트인 능선과
푸른 잎새들의 그늘속 오솔길
천둥과 번개와 벼락
벼락맞아 쓰러진 고목들
산은 너른 품으로
말없이 이 모든것을 포옹한다
오!
어머니 산(山)
꼬리 진달래(꽃말: 절제,신념)
진달래과에 속하는 상록관목으로 중국과 한국, 몽골이 원산지이며, 양지바른 산기슭에 서식한다.
크기는 약 1~2m이며 줄기 마디마디에서 가지가 2~3개씩 나와 나무 모양이 반구형을 이루며,
꽃은 꽃은 6~7월에 피고, 열매는 9월에 익으며 한국에서는 경상북도·충청도·강원도에서 자생한다.
참꽃나무겨우살이’라고도 부르고 있으며, 향기가 좋은 것이 특징이며 한방에서는 잎과 꽃을 말려
‘조산백’이라는 이름의 약재로 사용하는데, 기관지염 치료제나 지혈약으로 쓴다.
암릉구간으로 올라서니 연풍새재 공원 좌측에서 올라오는 길을 만난다.
어디까지 가셨나요?...산은 늘 거기에 있는데 왜그리들 급하신가요
암봉(11:26)
까치수염도 더위에 지친 모양인지 축 늘어져 있다...힘내거라...더워도 참아야지 우짜겠노...
6개의 봉우리로 이어지는 부봉 뒷쪽으로는 문경읍의 진산이라는 주흘산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능선에서 바라본 부봉(釜峰)의 모습
부봉은 6개의 봉우를 가진 산으로 그 독특한 암체로 이루어진 봉우리 하나하나 이어진 봉우리로 문경
북동쪽에 와서 수려한 산들을 떨구어 놓은 백두대간이 속리산으로 내려가기 전, 문경의 진산 주흘산의
북서쪽에 바위벽으로 우뚝 솟게 한 산이기도 하다.
부봉은 옛날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으로 문경새재라고 불리는 제 3관문을 비롯 1, 2관문인 주흘관,
조곡관이 자리잡고 있으며, 부봉에 오르기 위해서는 먼저 문경새재를 거쳐야 한다.
두 번째 관문까지 거치면 부봉으로 올라가는 표지적을 만날 수 있는데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으며 평탄한 산길을 쉬엄쉬엄 오르다가 보면 언제 있었냐는 듯이 가파로운 경사가
펼쳐 있는데 제법 날카로운 기세의 암사면이 버티고 있다.
부봉은 유명한 문경새재, 박달나무가 자생하는 희귀 동식물이 많아 이 일대가 지방기념물로
지정된 곳으로 그 명성을 회복하고 있으므로 꼭 한 번 가볼만한 곳이다.
빡세게 올라서니 마패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안부에 도착한다
얼마나 천천히 걸었는지 0.9km의 거리를 1시간 10분이란 시간이 소요됐다
마패봉(馬牌峰:925.1m:11:40)
문경시 문경읍과 충주시 수안보면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암행어사
박 문수가 조령 제3관문 위에 쉬면서 마패를 관문 위의 봉우리에 걸어 놓았다하여
붙혀진 지명으로 지도상에는 마역봉(馬驛峰)으로 표기가 되어있다.
경북 문경지역에서는 마패봉으로 부르고 충북 괴산지역에서는 마역봉으로 부른다
이 산은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의 恨이 서린 조령 삼관문을 안고 있는 산이며
마패봉이란 산 이름은 암행어사 박문수가 이 산을 넘으면서 마패를 걸어놓고
쉬어 갔다는데서 유래한다
국토지리원의 자료에 따르면 문경 새재의 정문 격인 제일 관문인 주흘문에서
북쪽으로 향하여 문경 새재로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산이 마폐산이다
처음에 마폐산을 馬역(門안에 力)山이라 했는데 역(力)은 男根을 말한다.
마폐산의 정상이 마역과 같은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또 풍수지리설로서도
말에게 힘을 불어 일으킨다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마역산은 외설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쉬움으로 1925년경의 지형도부터는
역자와 글자 모양이 가장 가까운 한자인 폐(閉)자를 대신 쓰게 되었다
인증샷
* 박문수(朴文秀:1691~1758)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사색당파중에 소론 계열의
인물이나 당색을 초월하여 인재를 등용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당시 군정과 세제 개혁의
논의에 참여 했으며 부정한 관리를 적발한 암행어사로 명성을 날렸다
마패봉 정상 좌측으로는 석문 동(신선)지맥의 분기점이기도 하다.
2020년 9월 5일에 이곳에서 첫 구간을 시작했다.
석문동(신선)지맥은 백두 대간 마폐봉(마역봉)에서 서쪽으로 분기하여 신선봉(996m),
소조령, 송치재,박달산(825m),맹이재,성불산(530m)을 지나 안민천이 달천에 합류하는
충북 괴산군 감물면 오창리에서 끝나는 31.9km되는 산줄기로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석문동천이 달천에 입수하기에 석문동 지맥이라 부르며 신산경표에서는
신선지맥이라고 부른다
원각도량하처(圓覺道量何處)
'깨달음의 도량, 즉 행복한 세상은 어디입니까'라고 묻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맞은편 기둥 주련에는 현금생사즉시(現今生死卽是) 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지금 생사가 있는 이곳, 내가 발 디디고 서 있는 이곳입니다'라고 답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라는 말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집은 지금 이 순간에 지을 수 있다는 뜻이다..
* 해인사 장경판전은 13세기에 만들어진 세계적 문화유산인 고려 대장경판
8만여 장을 보존하는 보고로서 해인사의 현존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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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산행기를 아래를 눌러 주셔요.
첫댓글 형님 마지막 구간. 같이 산행 합시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3년 후 산행 예약 안받음...ㅋㅋㅋ. 그땐 4대간 9정맥...162지맥 졸업식때 부지런히 뎐 벌어놨다가
꽃다발이나 하나 사온나...그리고 8월 19일~21일 1무1박3일 지리산 갈 의향이 있으면 연락해.
19일 밤...동서울에서 심야고속타고 성삼재 도착...노고봉 일출보고 오전중 반야봉 아래 절집(묘향암)도착
잠시 휴식...스님한테 점심 얻어묵고 이끼폭포와 박영발 비트 들린 다음에 다시 절집으로 되돌아 와서
반야봉으로 가서 일몰감상 후...절집으로 되돌아와서 저녁먹고 하룻밤 자고(무지 추움...겨울옷 필수)
새벽에 밥 먹고 날이 밝으면 절집 출발~삼도봉 도착(1시간 정도 비탐구간 개고생...걸리면 벌금 30만)
본인이 해결해야 함(니가 걸리면 내가 대신 내 줄수 있음...그 대신에 내 먹거리 니가 지고 가야한다.
안 걸리면 나는 양넘 지갑줏는 기분...화개재~연하천~벽소령~세석산장에서 거림으로 하산...하산주 한잔하고
고사리파는 청학동 아지매한테 갑질하여 원지까지 공짜 차를 타고와서 남부터미널 도착...잘 생각해보고 연락해라
@범여 형님 요 일정 나도 땡기는데 아깝네요.
@하늘마음
@범여 알겠습니다.시간이 되면 나는 부산에서 갈께요
이날씨에ᆢ지맥을ᆢ ㅎ단디 하이소 ㅋ
묘향대 7.27일 들를까 합니다ㆍ묘향주지스님
한테 안부전하겠습니다^^
호림스님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다하는데 웬 주지?
하긴 호위무사 일광이가(강아지) 있긴하죠...
거기는 전기가 안들어오니 가실때 조계사앞에 가서 1kg짜리 양초나 좀 가져가소
내가 작년에 100개를 갖다줬는데 좀 남아있기는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