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화에 관한 시모음 26)
목련이 지는 밤 /정태중
하얀 얼굴 살포시
달빛에 눕고
바람에 뚝,
정체성 잃어버린 밤
님 오실까
꽃신 하나 놓았네
봄볕, 검은 스카프 두르고
사르르 잠이 들면
하얀 이불 홑청
먹빛으로 물드는 밤
꿈결에 살포시
꽃신 신고 님 오셨으면
하얀꽃 목련화야 /신성호
백의 천사같이 하얀꽃 목련화야
아기 손짓으로 구름 한조각 잡으려
해맑은 미소를 짓고있는 너
분주한 삶의 발걸음 잃어 버리고
바람을 핑개 삼아 다소곳이 서서
고깔 나래의 춤을 추는 듯 싶구나
이고 진 흰구름 만큼이나 순결하고
고관대작 규수의 정숙한 네 자태가
아름다움 그 보다 곱기도 서럽구나
한참을 바라보고 서있는 나의 마음은
사랑하는 내 누님같이 그 따스함으로
꾸밈없이 활짝 핀 그대로가 더 좋구나
겨울 목련 /김미숙(salvia)
-사랑은 3
속적삼 사이로 고개 내민다
묵은 가지 겨울비에 젖어
속절없이 흔들리는 밤
지난 봄 내내
하얀 나비떼로
불치의 병 앓더니
어쩌자고
어쩌자고 때 아닌게 다시 피어
겨울잠 자는 이내 마음
슬픔의 운판을 두드리나
목련의 사랑 /권윤오
하얀 백설공주가
하얀 꽃향기를 즐기고 있다
하얀 나무위에
하얀 꽃 하얀 새가 춤을 춘다
참으로 아름답구나
찬 기운이 채 가시기도 전
봄 향기 찾아 온 그대는
진주 같은
고결한 사랑을 먹고 있음이다
첫날밤 신부의
하얀 속옷 벗는 소리에
설레는 마음은
춥고 외로운 모진 밤이 오더라도
임을 향한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으리라
목련이 필 때 /고명
누가 거기
맺힌 그리움을 터뜨리고 있는가
느닷없이 귓볼
달아올라 달아올라
눈을 감으면 희미한 옛이름의
향기가 몰약처럼 퍼져 온다
하얀한 꽃그늘 가버린 날들이여
구름구름 피어올라
피어올라 날고 있는가
비 그친 봄하늘을
목련화 /김종덕
기린 같은 긴 목을 빼고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
전해오는 향기는 가까운 곳은 아닐진대.
소식을 전해오는 실바람에도 눈을 맞출 수 없어
아련한 향은 코끝에 맴도는데
어디서 온 향인지 눈시울만 젖게 하네.
봉오리를 튀울 때 살짝 보이는 흰 목젖은
제 새끼 먹이려는 새 주둥아리와 같아
보릿고개
저 어미 그날도 보리쌀을 삶는다.
땅 파며, 흙 뒤지며
새끼 줄 것 나올까나.
뽀얗게 드러나는 흰 속살은
흙 묻어 팔랑대던 어미의 치마인데.
코 끝에 맴도는 그 향기를 몰라보니
세월의 막힘인가
마음의 막힘인가
꿈에도 못 뵈는 님
곱게도 피었어라.
산 목련꽃 /임재화
1.
맑은 물 은구슬처럼 흐르고 있는
깊은 계곡의 구름다리를 지나서
초록색으로 물드는 숲속 길모퉁이에
밝은 햇살 잠깐 찾아와 비칠 때면
큰 바위 옆으로 길게 누운 곳 옆에서
산 목련꽃 송이가 수줍어 고개를 숙였다.
2.
저 멀리 먼 산 높은 산봉우리 위에
흰 구름 조용히 머물러 있는데도
맑은 계곡물은 쉼 없이 휘돌아 흐릅니다.
차마 수줍은 산 목련 꽃송이들이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 맞으며
괜스레 외로운 마음이 마냥 서럽습니다.
목련의 노래 /오보영
제아무리
네가 날
막아서 봐도
난
꼭 해야 할 도리로서
꽃을 피운다
반겨주는 님을 위해
향기 뿜는다
목련이 있는 뜰 /홍금자
달이 뜨는 밤이면
소리 하나 들린다
4월의 뜰에서
목련 틔우는 소리
낮동안의
눈부신 햇살
새들의 지저귐마저 접어두고
달빛만 좋아
밤이면 몸을 푼다
누구에게도
산고의 고초
보이지 않으려
별빛 붙잡고
생명을 낳는다
새로 태어난
목숨 하나
꽃잎 같은 젖냄새
가득 배어 있다
하늘 닮아 맑다
구름처럼 보드랍다
나의 꿈 닮은
작은 천사여
목련2 /권오범
세상물정 캄캄절벽인 것이
어찌하여 봄의 전령이란 감투 썼을까
여차하면 재 뿌리는
동장군 속셈도 모르면서
허여멀건 한 매무새 앞세워
고고한 척 추파를 던져
묵적하던 이 마음 들썽하게 헤집은 죄
잘코사니
그깟 진눈깨비 감당할 참을성도 없이
뭣 하러 서둘렀는지
처참하게 구겨진 체면 남세스러워
이파리마저 모르게 낱낱이 추락해 뒹굴 것을
목련꽃 /김향아
눈이 부시도록
하얀 너의 두툼한 옷은
그 옛날 왕족이나 입었을 듯한
고급스런 원단에
촉감은 비단결이요
향기 또한 명품이니
네가 도도한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게야.
꽃잎이 한 꺼풀씩 떨어져
바닥에 뒹굴어도
쉽게 밟지 못하고
애써 발길을 피하여 딛게 되는 걸 보면
너의 도도함만큼이나
위엄 또한 대단했나보다.
목련 /백창우
언니
목련이어요
사월의 햇살을 물고 날아다니는
흰빛 목련이어요
언니
목련이어요
삼백이 호실 침대 위에서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그 붉은 목련이어요
우린
어디쯤에 와 서 있는 걸까요
어머닌 정말 그 산을 넘으실 수 있을까요
창 밖의 힘없이 부서지는 꽃잎이
마치 우리들의 잃어버린
날개 같군요
밤비에 젖은 목련 /윤기명
사연 가득한 잎새를 보내고 난 나목 위에
어둠고 슬픔 애상이 흘러내린다.
무성한 잎새가 단풍이 들고
낙엽이 되어 떠난다는 기별 남았는데
열 여덜 봉긋한 가슴을 내밀고
그리움 가득한 밤을 뒤척이고 회상하며
하얀 웨딩드레스 입고 춤추는 여인이 되어
봄날 향기를 뿜어 유혹하던 꽃나무가
긴 밤 그리움에 목이 메어 울어 줄 때
내 뜨락 목련은 밤비에 젖어 애절하구나
목련화의 계절 /박명숙
두근거리며 설레는 순간이 있었지
담 너머 하얀 미소로 반기는 너
소녀의 첫사랑에 설레었고
아가씨의 해맑은 미소를 마주하던 나
중년의 추억 어린 기억이 스치고
목련화의 계절이 오면
잠잠하던 심장이 팔딱팔딱 뛰고
두 눈은 빛난다
몸은 쭈글쭈글하여도
청춘의 기억으로 생각이 밝아지고
얼굴이 피는 까닭이다
우리 인생도
피고 지는 계절을 지나고 있겠지
질 때도 소리 없이
기억만을 떠올릴 수 있다면
아름다운 삶을 가꾸며 다시 오는
목련화의 계절은 아련한 그리움으로
피고 지는 까닭이니
계절이 피고 지는 것에
우리의 삶도 피고 지기를 반복하며
그리운 이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이 사랑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흐르는 까닭이다
첫사랑이 있었고
까닭 없이 설레던 가슴 한쪽의 기억
거짓 없이 순수한 낯빛을 간직했던
아, 다시 피는 목련의 계절이
청춘의 봄으로 피어난다
목련꽃이 질 때 /오순남
빛 바랜 목련 꽃잎이
툭
떨어진다
낡아 버린 책 속
낱장 떨어지듯
저기 높이 바라다보는
시시티브이도
부지런히
봄을 담고 있는데
어설픈 향기
파란 하늘빛 아래
그리움 되어 쌓여만 간다
목련나무 빨랫줄 /박서영
누추한 속옷 내 걸린 목련나무 빨랫줄
꽃이 어느 시간 속을 이동해 사라지는 것처럼
축축해진 옷을 입은 사람의 시간도 말라 간다
빨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받아먹는
야생 고양이 한 마리의 시간도.
목련 /김현주
순간순간
짧은 사랑
영원한 사랑
어디 있으랴
쌓인 그리움
하얀 미소
오직 그대
위한 눈빛
그 순간만의 진실한 사랑
떨어지는 온기 그리워하지 않으리.
목련 /손정모
겨울 밤 이슥토록
은빛처럼 눈부신 달빛에
줄곧 멱 감더니
자오선에 밀물처럼 춘분
가없이 밀려들 때면
청순한 새댁
눈부신 속마음이 되어
진하고도 그윽한 향
봄의 뜨락으로 내뿜으며
눈꽃에 휩쓸리는 별빛인양
청아한 선율로 남실대며
서서히 속내를 터놓는가?
목련꽃망울 /양현주
봉긋한 배
개어귀에 향기를 토하는
저 목련꽃은 배불뚝이다
햇살과 정분났는지
간데없는 봄바람의 아이를 가졌다
지천에
출산하는 소리 참 지미(至美)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