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 난 당신을 사랑했던 게 아니였어.
난 말야. 당신이 정말 절실하게 필요했던 거였어.
왜냐면 날 감싸 안아주고, 사랑을 준 건 당신이 처음이였으니까.
사랑한 게 아니지. 아니잖아.
내가 당신 사랑하면, 이상해지는 건데.
**스물 한 살 고등학생**
"아, 뜨거워!! 너무 가깝잖아."
"야. 차가워!! 머리 흔들지 말고 가만히 있어봐!!!"
일년이 흐른, 어느날 아침. 여름이 돌아왔다. 둘은 거실바닥에 주저앉은 채 잔뜩 씨름 중이였다.
나빈은 갑자기 해강의 젖은 머리를 말려주겠다며, 드라이기를 들고 와서 해강의 머리카락을
말리기 시작했고. 해강은 뜨거운 바람이 가까이 닿을 때마다 난리를 치며 고개를 돌리려 했다.
결국 씨름끝에 머리를 다 말린 해강은, 창문으로 잔뜩 쏟아지는 햇살에 살짝 눈을 찡그렸다.
"...날씨 더럽게 좋다. 진짜 좋네.."
부시시하게 헝크러진 머리카락을 하곤 멍하니 말하는 해강. 나빈은 말없이 활짝 웃었다.
갈색 머리카락을 막대기 하나로 틀어올린 나빈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반해강 씨야, 우리 놀러가자!!!"
해강은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이냐는 듯 주저앉은 채 나빈을 올려다 봤다. 나빈은 다시 말했다.
"놀러가자구!! 이런 날씨에 집에만 있으려고?
에이~ 그건 솔직히 아니지. 아닌거지. 그치? 그러니까 놀러가자아~!!!"
"......아, 알았어!! 그러니까 좀 놔!"
막무가내로 해강의 옷을 잡고 늘어지는 나빈 때문에, 해강은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허락했다.
나빈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팔짝팔짝 뛰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해강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파아란 하늘. 장마철이 끝나고 나니 맑은 날씨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해강이 뭘 입을까 생각하며 머리를 긁적이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나빈의 큰 목소리가 들렸다.
"..야아!!! 멋있게 입어!!!! 안 멋있으면 죽는다아아!!!!!!!"
해강은 피식 웃고는 옷장을 열었다. 나빈이 틈만 나면 쇼핑을 가자고 하는 바람에, 이 집에
처음 왔을 때는 와이셔츠 하나에 바지 하나밖에 없던 해강의 옷이 지금은 엄청나게 불어 있었다.
옷장 안을 쭉 보던 해강이, 귀여운 캐릭터가 그러진 옅은 노란색의 면 티를 꺼내 입기 시작했다.
밑에는 청바지를 입었다. 해강은 방 문을 열고 나가려다가, 책상위에 놓인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B·H·K 이라는 이니셜이 박힌 이니셜 목걸이. 며칠 전 나빈이 큰 맘 먹고 사왔다고 했던 거였다.
해강은 목걸이까지 걸고는 머리를 아무렇게나 헝크러 뜨린 뒤 방 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뭘 하길래 이렇게 안나오는 거야?"
평소에는 그냥 티에 청바지만 입고 금새 나오던 나빈이, 왠일인지 20분이 지나도 나오질 않는다.
해강이 무슨 일이 있나싶어 방 안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나빈이 문을 벌컥 열고 방에서 나왔다.
"왜 이렇게 늦............."
툴툴 거리며 말을 내뱉으려는 해강의 눈이 멈춘다. 나빈은 완벽하게 꽃단장을 하고 서있었다.
갈색 머리카락은 살짝 웨이브를 주어서 고급스러운 핀으로 반묶음 한 뒤 늘어뜨렸고, 평소엔
전혀 하지 않던 투명메이크업을 하고. 분홍빛의 여성스러운 블라우스에 흰 치마를 입었다.
"....선 보러 가냐?"
꽤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해강의 입에선 역시 마음과는 전혀 다른 퉁명스런 말이 튀어나왔다.
나빈은 인상을 살짝 찌뿌린 채 쿵쾅 거리며 분홍색 하이힐 구두를 신고 먼저 밖으로 나가버렸다.
해강은 운동화를 꺼내 신고, 먼저 나간 나빈의 뒤를 따라 문을 열고 나오며 작게 중얼거렸다.
"....발 아플텐데.. 구두같은 건 잘 신지도 않으면서."
밖으로 나오자, 따스한 햇살과 선선한 바람이 느껴졌다. 나빈은 기분이 좋은지 웃고 있었다.
그런 나빈의 모습에 해강도 살짝 웃었다. 나빈은, 그냥 정말 한 가족처럼 소중한 사람이였다.
엄마의 사랑을 느껴보지 못한 해강이였기에, 나빈이 주는 무한정한 사랑은 더없이 소중했었다.
"해강아, 우리 어디갈래?"
잔뜩 들뜬 목소리로 나빈이 말한다. 해강은 맑고 푸른 하늘을 잠깐 바라보다가 웃으며 대답했다.
"...니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야, 다.. 닭살돋아."
나빈의 심장이 순간 두근거렸다. 나빈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있다가 이내 더듬거리며 대꾸했다.
해강은 아무런 느낌도 없는 듯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강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가자!! 어디든간에."
*
*
*
"어? 비온다!!!"
나빈이 시내에 가자고 하는 바람에, 결국 해강은 시내 한바퀴를 다 돌았다. 어느새 해가 진다.
나빈의 외침에 해강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빗방울 하나가 해강의 눈을 찌른다.
점점 옷자락에 빠르게 번지는 빗방울을 멍하게 바라보다가, 나빈은 해강과 달리기 시작했다.
"이씨. 일기예보는 70%만 믿어야 되는 거였는데!!!"
그렇게 둘은 마구 뛰었다. 비는 어느새 지상을 향해 맹렬하게 쏟아져서 살이 따가울 정도였다.
횡단 보도를 건너는데, 순간 나빈의 발목이 삐끗거렸다. 구두를 신고 온 게 잘못이였었다.
평소 잘 신지도 않는 굽 높은 구두를 신고 달렸으니, 그럴만도 했다. 나빈의 발목은 부어있었다.
해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도 차가 하나도 없었다. 해강은 나빈을 조심스럽게 일으켰다.
"..괜찮아? 걸을 수 있겠어?"
"아... 모르겠어. 발목이 너무너무 아파."
그 때였다. 분명 주변엔 차가 하나도 없었는데, 어디서 나타난건지 차 하나가 그들에게 다가섰다.
놀란 해강이 나빈을 일으켰지만, 나빈은 발목에 힘이 없어서인지 제대로 일어서지를 못했다.
"..해강아. 난 남자 가슴에 영원히 묻혀보는 게 소원이거든.
눈 감아도 누군가 가슴에 묻혀보고 싶었어. 그러니까 날 기억할 넌 남아있어야 돼."
나빈은 해강을 밀치려 했지만, 해강은 나빈을 꽉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절대 놓칠 수 없다.
처음으로 받아본 사랑이고, 따뜻함이다. 이 여자는 처음으로 생긴 해강의 하나뿐인 가족이였다.
결국 차가 그들에게로 다가왔고, 나빈은 차에 몸을 내어주는 순간 해강을 있는 힘껏 밀쳐버렸다.
"......꺄아악!!!!!"
비명소리가 해강의 귀에 멍하니 들려왔다. 해강은 몸을 서둘러 일으키려 했지만 일어설 수 없었다.
왼쪽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자신의 앞에 나빈이 쓰러져 있는데, 움직일 수가 없었다.
빗물과 핏물이 섞여 해강에게 다가온다. 해강의 옷이 나빈의 핏물로 천천히 젖어들어 가고 있었다.
해강이 눈을 크게 뜬 채 나빈을 지켜보는 동안에도, 나빈의 눈은 가느다랗게 떨리며 감기지 않았다.
".......나................. 나....빈..........."
목이 막혀버린 듯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나빈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지다가 이내 사라진다.
차 주인이 놀란 듯 뛰쳐나오고, 해강의 머릿속은 멈춰버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피가 흐르는 자신의 다리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차 주인의 괜찮냐는 외침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해강은 다시 느꼈다. 1년 전, 나빈을 만나기 전에 너무나도 절실하게 느꼈던 감정.
".................하...... 흐으.... 흑......................"
죽고싶다. 할 수만 있다면 저 여자 대신 눈을 감고싶다. 이제 더이상 사랑따윈 받을수가 없다.
버림받은 이후 바라지 않았던 사랑을 저 여자가 주었다. 그런데 저 여자의 빛이 꺼져가고 있다.
그런데 움직일 수도 없고, 저 여잘 끌어안아 줄수도 없다. 그저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다.
*
*
*
"정 간호사!! 당장 수혈 준비해!!! 1407호 환자야!!!! 당장 수혈준비해!!"
삶을 잃은 사람은 의미가 없다. 그는 어지럽게 들려오는 외침과 약 냄새를 등지고 눈을 감는다.
그의 손목에 그어진 상처에서 핏물이 흘러나온다. 흰 시트가 말없이 그의 피로 젖어간다.
오늘은 4번째 시도. 이제 그만 눈을 감고싶다. 권나빈이 없는 반해강은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
"이게 벌써 몇번째야!! 격리 조치 시켜!!!!"
분명 이렇게 눈을 감고 나면, 다신 일어나지 않길 바라면. 꼭 다시 눈을 뜨고야 말게 된다.
*
*
*
[권나빈이 누구야?]
난 누군가 그렇게 말할까봐 겁이 났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권나빈이라는 여자를 기억하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살기로 결심했다.
권나빈이란 여자가 누군지, 말해주기 위해서.
그 여자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착했는지. 그 여자를 기억해주기 위해서.
그래서 난 존재 이유를 또하나 정해버렸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난 권나빈이라는 이유 때문에 살고 있다.
그때랑 지금이랑 다른 거라면.
그 땐 '권나빈'을 지켜주기 위해 살아갔지만.
지금은 '권나빈'을 기억해 주기 위해 산다.
내 존재가치는,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 사라져 버린다.
* 으음, 죄송해요.ㅜㅜ 이렇게 번외를 끝내버린다니.
중간에 여러일들이 있는데. 그건 전부 생략됬고, 현재에서 회상씬이 있으니까.
그것을 통해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우응. 원래 이런 느낌이 아니였는데 이렇게 되버렸어요.
P.s. 해강이를 레즈라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ㅜㅜ;
첫댓글 해강이가 레즈라뇨..절대 그럼 안되요..ㅋㅋ 전 계속 남자라고 착각하게 된다는..그럼..해강이가 여자란건 아무도 모르나요? 윤혜도 하는 말을 보면 모르는 것 같은데..ㅠ 재밌어요~^0^
슬퍼요~ㅠ0ㅠ 와우베리님,진짜 짱!! 해강아~~~.아, 그러고 보니..>/,<제 친구 이름도 해강이에요!!하핫,;; 여자지만은...;;;
크흑ㅠㅠ 해강이가 너무 불쌍해요ㅠㅠ 나빈이란 여자도 너무 착해,, 만약 그 때 해강이가,,,,크악+ㅁ+
레즈삘로나가는것도 재밋을듯..ㅋㅋ
흑 ㅠ 슬퍼요 ㅜ 0 ㅜ 해강이 불쌍해요 ㅠ
으윽 ㅠㅠ 슬퍼요 .. 그래서 해강이의 왼쪽다리가 불편한거군요..
해강이조아여ㅜ.ㅜㅎㅎㅎㅎㅎㅎㅎ(<-미쳤음)
진짜 권나빈과 짝퉁 권나빈(채하늘)은 정말 비교 되네요//나빈이 너무 착해요ㅋㅋ
남장소설이란것을 깝박 잊고있었어요..ㅠㅠ 해강이에게 너무 심취가 되서...진짜 보니까 채하늘 열라 싫어 >_<^^^
레즈......;;; 라고 생각할수도 있는 상황같은데요...^ㅇ^
에휴우 만나지 얼마 안되서 그런 일을 겪다니.. 정말 참 씁쓸하네요 ㅋ
레즈라뇨..절대로 그런 생각은 안들어요...그런데 번외를 보니깐 채하늘이 정말 무슨짓을 하는지 새삼 깨닫게 되네요. 나쁜아이군요, 채하늘이란 사람. 저런 착한사람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다니. 참...멋있어요, 해강이>_<!
우흑 진짜 채하늘이 엄청 나쁜 -_ -x였군요 해강이>ㅁ <너무너무 멋있어요 =_ ㅠ 나빈이 엄청 착하고오 ㅠ_ ㅠ
으음.ㅇ_ㅇ해강이 남장맞죠? 너무 남자 같이 나와서 모르겟네요.ㅇ_ㅇ;흐있,하늘 나쁜애라 참참, 싫더군요.악독해요.ㅠ_ㅠ나빈이가 훨씬좋아!
자살.............오메ㅠ,ㅜ운동화신었으면 좋았을텐데........
너무 재밌어요 ㅜㅜ 존경합니다 ! +_+ 담편도 얼른 써주세요 ! >//<
점점 해강이가 누구와 될지 궁금해지는군요ㅠㅠ
으음=_= 전 레즈물도 꽤 좋아하기 때문에....[맞는다]
으흠;;해강이의 정체성이 심히 궁금해 지는........
아 저렇게 나빈이가...
해강이,.,여자예요= ㅁ=??아하하; 남자 아닌가요ㅜ 0ㅜ;;
하하;; 설마.. 해강이가.. 여자?!!!!!!!!! -_-.. ..전 이거 보면서, 해강이가 남자라 아무도 남장인이 없는줄 알고 있었습니다만은.. 해강이가. .여자라니!!!
흠...해강이가 여자라곤 알고있었지만..워낙 남자같아서 ;;; 헷갈렸다는 역시 지대소설!!!
오늘 처음봤는데! 너무 재밋어요!! 건필하세요~ 레즈노노노노노!!ㅎㅎ
해강이가너무 불쌍해요ㅜ 나빈이 운동화신고 나가지는.
해강이가 여자예요?? 안돼요!! 그럼 나빈이는요?? 둘이.. 그니까.... 사랑하는 ㅅㅏ이 아니예요?? 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