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8 금요일
오늘은 하루 종일 베르사유에 모든 일정이 할당되어 있습니다.
저녁에는 오페라 바스띠유에서 오페라 관람이나 해볼까도 생각했으나
마침 공연 중인 게 별로 유명한 작품도 아니고 해서 예약을 안했는데
만약 공연을 보러 갔더라도 시차 때문에 피곤해서 잠만 잘 뻔 했습니다.
대신 마지막 밤이라 근사한 식당에서 저녁이나 먹어볼까 합니다.
그러나...
오늘도 역시 아침부터 비가 내립니다.
하늘을 보니 쉽게 그칠 것 같지도 않네요.
왜 우리는 이렇게 비를 달고 다니는지...
RER 교외선을 타야 하기 때문에 기차표를 새로 끊습니다.
그런데 지하철역 매표소의 아줌마가 영어를 못하는군요.
잠시 난감모드에 머물다
다행스럽게 우리 뒤에 줄 서있는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서 왕복표를 끊습니다.
앵발리드 역에서 RER 선으로 갈아타는데
여태까지의 지하철역과는 달리 플랫폼이 여러 개라 헷갈리는군요.
마침 행선지가 같은, 배낭여행 중인 한국인 처자 둘을 만났는데
이 처자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열심히 물어보지만
대답하는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소리들을 해서 더 헷갈리게 만듭니다.
때마침 마주친 역무원이 막 출발하려는 열차를 타라고 해서 급하게 뛰어서 올라탑니다.
종점에 내려서
“베르사유 궁전 내에는 식당이 없다.”던 인터넷 글이 생각나서
역 구내에서 점심에 먹을 빵을 구입합니다.
근데 빵 파는 아가씨가 영어도 못하는데다 엄청 싸가지가 없군요.
빵을 가리키니까 유리 건드리지 말라고 신경질 내고...
- 결국 내가 시킨 거랑 다른 빵을 줬더라는... -_-
째려보는 쟤!
비가 내리는데도 줄이 제법 있군요.
오른쪽 줄은 표를 가진 사람이 입장하는 줄이라
표가 없는 우리는 왼쪽 건물 앞에 줄을 섭니다.
오디오가이드가 포함된 티켓 가격만 나와 있어서 의아하긴 한데
말이 안 통하니 어쩔 수없이 그걸로 구입합니다.
지도를 받아보니 궁전 안에도 카페가 있고 바깥 정원에도 두 군데나 있었네요. -_-;
본관 건물 내부를 쭉 돌아보면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어떻게 살았을까도 함 봐주고
지하 화장실을 들렀다 궁전 내의 카페로 갑니다.
예배당
왕의 침대 - 키가 작으면 올라가기도 부담스럽겠다는...
거울의 방
거울의 방
왕비의 침대
샤인님이 자기의 전생이라고 짐작하는 여인...
근데 아빠가 파리에서 아주 불편하게 느꼈던 것 중에 하나는
화장실이 너무 부족하단 겁니다.
베르사유만 해도 여자 화장실 앞에는 줄이 몇 십 미터씩 늘어서 있어서
급한 사람은 사고 치기 딱 좋겠네요.
파리에서는 특히 여자분들은 기회 될 때마다 미리미리 근심을 해결하시길...
-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화장실 다녀오겠노라고 떠난 엄마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질 않아
실종신고라도 해야 되나 고민할 즈음, 엄마는 얼굴이 벌게서 나타났습니다.
근처의 카페를 갔더니, 주문 먼저 하고 화장실을 이용하라고 했다고...
결국 공짜 화장실 찾느라 한참을 헤매고 왔더라는...
덕분에 나머지 두 사람은 엄마가 힘들게 찾은 화장실을 편하게 이용했다는...
지하 카페는 셀프라
음료수만 사다가 아까 사온 빵이랑 같이 먹습니다.
근데 그 성질 더러븐 가스나가 빵을 엉뚱한 걸 담는 바람에 내가 싫어하는 치즈만 잔뜩 들어 있군요.
날씨만 좋으면 쭉 걸어서 둘러볼 생각도 있었으나
비도 오고해서 베르사유 내를 운행하는 미니열차(petit train)를 타기로 합니다.
미니열차는 15분마다 출발하고
쁘띠 트리아농에 한 번 서고
그랑 트리아농에 두 번째 정차
대운하에 세 번째로 정차한 후에 원래 출발지로 돌아옵니다.
정차할 때마다 내려서 구경할 수도, 다시 탈 수도 있습니다.
내 생각엔 쁘띠에 내려서 쁘띠와 앙투아네트 마을 구경하고
다시 열차 타고 그랑에 내려서 그랑 구경하고
다시 열차 타고 대운하에 내려서
거기서부턴 걸어서 정원을 관람하면서 궁전 쪽으로 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오다가 힘들면 중간에 카페나 잔디에서 쉬어도 되고요.
오늘은 비가 내리는 관계로
쁘띠와 그랑 트리아농을 먼저 구경한 다음
일단 출발지로 다시 돌아와서 출발지 근처의 정원을 절반쯤 관람하다
중간에 있는 카페에서 간단히 요기를 합니다.
비만 안 왔으면 정원에서 좀 더 여유를 즐겼을 것 같은데, 날씨가 무척이나 원망스럽네요.
미니열차 출발장 옆에 있는 북쪽의 화단
쁘띠 트레인
넵튠의 샘
쁘띠 트리라농 가는 길의 목장
어디더라?
쁘띠 트리아농
쁘띠 트리아농 실내
저녁에 레스토랑 갈 거라고 또 넥타이를...
그랑 트리아농
그랑 트리아농 뒤의 화단
정원 전경
꽃이 많다는 남쪽 화단 - 원래 베르사유에는 꽃이 없었단 얘기가 있습니다.
시드는 꽃이 영원불멸의 권력에는 맞지 않는다고...
카페 가는 길 - 각 잡힌 나무들...
사튀른의 샘 (겨울의 샘)
바쿠스의 샘 (가을의 샘)
라톤의 샘
카페에서 쉬면서
당일 예약만 된다는 <라틀리에 드 조엘 로뷔숑>에 저녁 예약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2순위인 <레 부키니스트>에도 실패하고
하는 수없이 격을 약간 떨어뜨려서 <사비>에 7시30분으로 예약을 성공합니다.
비 때문에 밖에서 시간을 좀 더 보내질 못해서
일정을 약간 앞당겨서 파리로 돌아와
엄마가 가보고 싶어 했던 에르메스 구경도 해보고
세라와 아빠가 샹젤리제의 맥도날드에서 휴식을 취할 동안
엄마는 샹젤리제의 매장들 구경을 계속합니다.
근데 맥도날드의 분위기가 생각보다 쾌적하질 못합니다.
실내도 적당히 지저분하거니와
다소 양아스러운 시커먼 애들의 눈빛들이 상당히 부담스럽습니다.
지하철 의자
사비는 몽테뉴대로 쪽에 있어서, 가면서 명품점포들을 구경하는데
여기는 다른 데와 달리 가게들이 정말로 웅장하고 품위가 있군요.
드디어 사비에 도착합니다.
*사비(Savy) : rue Bayard 23번지, 01 4723 4698
그닥 고급스러워보이진 않아도
잘 나가는 식당 같은 분위기는 풍겨줍니다.
샐러드 하나랑
메인 중에 주력으로 짐작되는 빨간 줄이 쳐져 있는 돼지와 양갈비를 하나씩 주문합니다.
여기는 하우스와인을 덜어서도 팔기에 500ml를 주문해봅니다.
햄 같은 게 조그만 그릇에 담겨 있어서 이걸 어떻게 먹어야 되나 고민하다 그냥 빵에 발라 먹어봅니다.
돼지는 적당히 맛있는데, 양갈비는 정말로 훌륭합니다.
세라 하나 주고 엄마도 좀 주고 나니 내가 먹을 게 없네요.
- 하나 더 시킬까 엄청 고민했다는...
다른 집에서는 안 시키던 디저트도 시켜봅니다.
초코글라스와 레몬소르베를 시켰는데 둘 다 맛있습니다.
마지막 저녁을 나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옵니다.
남은 컵라면을 해결하기 위해 커피포트를 찾았으나
오늘도 누가 빌려갔다네요.
뜨거운 물을 구할 수가 없겠냐고 물으니 복도 끝에 있답니다.
가보니 커피용 온수가 있긴 한데 탱크 용량이 너무 작아서 두 그릇도 되기 전에 물이 떨어집니다.
비록 뜨겁지도 않은 물에 덜 풀린 라면이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우리 가족의 사랑을 받고 있는 제품임!
부록 - 베르사유의 탄생에 관한 일화
오늘은 별다른 사건도 없고
이때는 지금보다도 사진을 더 못 찍을 때라
부록으로나마 보충을 좀 해드릴까 합니다. ^^
베르사유 궁전으로 대표되는 프랑스식 정원의 특징을 한마디로 얘기한다면
‘철저한 인위성’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본 베르사유 궁전은
연못이나 길 뿐만 아니라 나무들마저 마치 점호 전의 군대 내무반같이 각이 지나치게 잘 잡혀있어
아름답긴 하지만 내겐 썩 편안한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네요.
그런데 동전에 앞면이 있으면 뒷면이 있듯이
역사에도 정사가 있으면 반드시 야사가 함께 하는 지라
때로는 공식적으로 기록된 정사보다 숨겨진 뒷얘기가 더 역사적 사건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베르사유 궁전의 건립도 그런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요.
좀 더 알려진 이유로는
불과 열 살의 어린 나이에 맞이한 귀족들과 시민이 합세한 프롱드의 난으로 인해
도망을 다니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은 후
귀족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통제할 필요성을 느꼈다는 것이고
그에 덧붙여 어린 시절 그에게 좋은 추억을 안기지 못했던 파리에 정나미가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근데
이보다는 덜 알려졌으면서도 보다 직접적인 계기가 된 이유는
바로 보 르 비콩트 성 (Château de Vaux le Vicomte) 때문이라고 합니다.
당시 국가의 재정이 좋질 않아서 어린 나이에 돈이 지지리도 없었던 루이 14세는
상당한 갑부이던 니콜라 푸케(Nicolas Fouquet, 1615-1680)에게
왕의 나이 15살이던 1653년에 재무장관직을 맡겼고
- 물론 지가 알아서 임명한 건 아니고, 뒤에 버티고 있던 재상 마자랭이...
푸케는 국왕에 대한 재정적 지원으로 이에 보답을 했답니다.
그러던 중
돈이 넘쳐 주체를 못하던 푸케는 파리 인근에 낡은 성 하나와 주변 땅을 구입해서
당대 최고의 3인에게 공사와 인테리어를 의뢰하게 되니
건축가인 루이 르 보(Louis Le Vau, 1612~1670)가 전체적인 설계를 맡았고,
왕실 화가이자 실내장식가인 샤를 르 브륑(Charles Le Brun, 1619~1690)이 인테리어를 담당하고,
프랑스식 정원의 창시자인 앙드레 르 노트르(André Le Nôtre, 1613~1700)가 정원을 꾸미게 됩니다.
약 5년간의 공사를 거쳐
1661년 보 르 비콩트 성은 프랑스 최고의 화려한 궁전으로 재탄생을 하게 되고
그해 8월 푸케는 루이 14세와 무려 귀족 600명을 동시에 초대해서
분수에, 배에서 연주하는 음악에, 발레에, 불꽃쇼에, 황금식기에 담은 음식까지,
그야말로 초호화 연회를 베풀게 됩니다.
하지만
낡아빠진 우중충한 고성에서 찢어진 시트 틈에서 잠을 자고 낡은 옷을 입고지내야 했던
당시 23살의 가난하고 불우했던 젊은 루이는
완전 야마가 돌아서
연회가 다 끝나기도 전에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해 봄, 오랫동안 왕의 뒤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휘두르던 재상 마자랭이 죽은 후
왕권강화를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루이는
연회가 끝난 불과 3주 후, 부정부패와 반역 혐의로 푸케를 구속하고
그의 전 재산을 몰수한 후, 죽을 때까지 15년간을 감옥에다 가두었다 합니다.
- 그의 얼굴에 철가면을 씌웠다는 얘기도 있고
‘철가면의 사나이’의 실제 주인공이란 얘기도 있는데
내가 보기엔 유언비어 수준임...
권력자에게 함부로 까불면 어떻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한편 루이 14세는 보 르 비콩트 성의 공사를 담당했던 3인에다 추가로 예술가들을 더 동원해서
마침내 보 르 비콩트 성을 능가하는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베르사유 궁전을 완성하게 됩니다.
첫댓글 샤인님 전생^^ㅋㅋ , 화장실 고생담은 다들 있으신듯~ 저도 외국에서는 맥도날드 화장실 자주 이용하는편입니다^^ㅋ
뉴욕에선 화장실 걱정땜에 마시고싶은 생맥주를 포기한 적도 있었다는... ^^
@깨사랑 저두 화장실때매 맥쥬랑 커피 마이 포기햇어용.ㅜㅜ
정원 구경은 날씨가 절반 이상인데....안타까운하늘이네요
이때는 가는 정원마다 대부분 비가 와서 많이 안타까웠답니다. ^^
아름다운 궁전이네요....기억이 가물가물.....내가 갔을땐 날씨가 좋았든거 같아요....^^
여행은 날씨가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는.. ^^
빵집까스나.못된 까스나!!!!!!
말이 안 돼서 승질도 못 냈다는... ^^;
@깨사랑 인상쓰기잇잖아요.한국어로 욕하기.등등.
난 통하등데~^^
프랑스 인간들 건방진것들 많습니다.
우월감에 가득찬 시건방진 놈들 많이 듣습니다.
이번 가을 스페인에서도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