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별희
<인연>
우연한 기회에 경극에 대한 것을 듣게 되었는데, 나는 경극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였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중국 전통 예술장르이고, 왕의 남자가 경극을 그대로 따왔다느니 하는 게 거의 전부였다. 대학생, 그 중에서도 사범대생이지 않는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떠오르는 게 바로, 패왕별희였다. 하도 유명해서 알고는 있었다. 그렇다! 경극을 영화로 이해해보자. 그래서 패왕별희를 보게되었다.
<포인트>
보면서 생각해 볼 만한 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열해 보자면,
- 사람의 교육에 의한 습관성 경향
- 남성성, 여성성에 대해서
- 이성 관계에 있어서 1:1 관계 외에 대안에 대해서
- 헐뜯기&품어주기
- 무엇이 진짜 현실인가
<이야기 속으로>
영화는 한 편의 작품이다. 감독이 담고자 하는 인생이 담겨 있다. 그것이 분명하게 똑 드러나진 않는다. 하지만, 우리에게 여러가지를 안겨주고, 우리가 공감하는 부분, 새로운 부분, 환상적으로 대리충족해 주는 부분 등 여러가지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서, 경극을 알게 되었고, 또 간접적으로 중국의 개화시기도 알게 되었고, 비록 가상이지만, 흡사 현실에도 가능함직한 인생들도 보게 되었다. 나에게 많은 것을 남기고 이 영화는 끝이 났다.
- 사람의 교육에 의한 습관성 경향
쳉데이(장국영)가 어른이 되고 나서 일인데, 샬루(장팽이)는 주샨(공리)과의 결혼 때문에 경극을 그만두려 한다. 정확한 내용이 기억은 안 나지만, 암튼 이들은 자신을 가르친 사부에게 간다. 이들은 어려운 시기에, 극단에서 이 곳 아니면, 살 길, 살 곳이 없었기에, 맞아가면서, 이를 악물고 처절하게 자라난 기억이 있다.
사부는 이제 늙고 힘도 없었다. 사부는 우리의 천직이자, 목표인 경극을 그만두는 게 어디있냐며 노발대발하면서, 매질을 한다. 그리고 가혹행위를 쳉데이에게 부추긴다. 내가 볼 때는 그건 분명 정도를 벗어난 폭력같아 보였으나, 이들은 가만히 있었다.
왜? 그렇게 자라왔으니까. 그리고 다른 사상적 대안이라든지, 아니면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게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다 큰 어른 두 명이, 늙은 노인네 한 명에게 맞고 있다. 나름 이상한 모습으로 비춰졌다.
- 남성성, 여성성에 대해서
남자는 남자다워야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 요즘에는 잘 먹혀들지 않는다. 이미 메트로섹슈얼, 보이쉬 이런 단어가 패션 잡지에는 흔하다. 남자이면서 여자보다 더 이쁜 사람들이 이제는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꽃미남"이라고 표현한다. 이런 표현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자도 호감가게 만드는 느낌. 동성애를 자극하는 느낌에 가까운 듯하다.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도 쳉데이를 보고는 호감을 느끼고, 잠자리를 청해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쳉데이는 창녀촌에서 길러졌다. 처음 등장할 때도, 머리에 예쁜 리본을 꼽고, 여자처럼 분해서 등장한다. 나름 예뻐보인다. 근데 이게 문제의 발단인 것이다. 쳉데이는 그 아름다움,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뭔가 우월해 보이는 것과 같지만, 그것이 당시 사회에서는 용납되기 힘든 방향으로 발달해 나가게 된다.
바로 "여성성"이다. 자기에게 그런 필링이 있으면, 사람은 또 거기에 도취되기 쉽다. 또 주변 사람들은 모두 남자라, 그것을 가지고 놀리고, 또 여자와 같이 대한다. 계속 그쪽 방면으로 길러지는 것이다.
결정적인 사건은, 자신이 우미인, 여자 역을 맡게 되는데, 그는 여기서 자신이 여자라 밝히는 대사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자신도 모르게 혼동을 가져와 버린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인해, 그들의 패왕별희는 성공할 수 있지만, 동시에 인간성, 인간관계로는 불행의 나락을 예고해 버리는 듯하다..
- 이성 관계에 있어서 1:1 관계 외에 대안에 대해서
쳉데이는 샬루를 점점 연인 대하듯이 한다. 그런 정을 또 쌓아온다. 근데, 샬루가 홍등가에서 주샨를 좋아하게 되고, 부인으로 데려오게 된다. 여기서 쳉데이의 질투가 시작된다. 아름다움이 두 개가 존재한다. 1:2는 불가능하단 말인가?
드라마 같은 곳에도 이와 관련한 소재를 많이 다루고 있다. 일부다처제는 남자가 한 결정에 대해 여자가 뭐라 말할 수 없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통제가 없는 곳에서는 여자들의 질투가 겉으로 좀 더 많이 드러나는 듯하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자신의 사랑, 물질,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그렇기에 그것을 나누는 행위는 많은 분란을 일으킬 수 있다. 사랑은 1:1이 제일 무난한 듯하다.
- 헐뜯기&품어주기
마지막 부분에 쳉데이와 샬루가 인민들에게 잡혀 끌려간다. 거기서 그동안 그들 간에 있었던 비밀을 다 털어놓으라 한다. 샬루가 시작한다. 처음에는 정말 망설인다. 그러나.. 한 번 말을 하니, 다음은 더 쉽게 되고, 다음부턴 이제 웃으면서 당당하게 외쳐되기 시작한다. 주샨의 표정이 아연실색 변한다. 비열해 보이는 장면.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쳉데이도 이제 맞받아치고, 그 불똥은 주샨에게까지 간다.
이들의 말은 모두 사실은 맞지만, 그것 묻어두고 가야 할 것들이였다. 성경의 한 사건이 생각난다. 사람들이 창녀를 데리고 예수께 와서 이 여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궁금해 한다. 그러자 예수의 말,
"죄 없는 자는, 이 여자를 돌로 쳐라."
사람들은 아무 말이 없더니, 슬금슬금 모둠 각자 갈 길로 돌아간다.
참 공감이 가는 장면이란 생각이 든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놈 없다."고 했다. 그 누가, 아무 실수 없이 완벽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실수를 한다. 서로 그런 실수를 이해해주고, 덮어주고 가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과연 내가 저런 자리에서도, 상대를 품어줄 수 있을까? 나의 목숨이 소중할까? 상대와의 의리, 신의를 지키는 게 중요할까? 그리고 말 하는 것과 안하는 것, 차이가 있을까? 인민들이 단지 위협만 했지, 끝까지 신의를 지켰을 때, 결과는 어떠했을지 아무도 모른다.
- 무엇이 진짜 현실인가
샬루는 쳉데이에게 몇 번씩이나 말한다. 너는 현실과 경극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고. 이것이 우리에게도 적용되지 않을까? 우리도 사회의 어떤 단체에 소속되기 마련이다. 군대에서는 자신의 부대에, 윤리교육과에, 학교에서 선생으로 소속된다. 각 자리가 나에게 요구하는 모습이 있기 마련이다. 명확하게 제시하기는 불가능하나, 어느정도 그 선이 분명하게 있기는 하다.
그런데, 그것이 나의 전부 모습이 될 수 있는가? 거기에 충실하기만 한 것이 정말 옳은, 바람직한 모습인가? 그 상 자체에 문제점이 없지는 않은가? 또 그 모습으로 24시간 1년내내 산다는 것이 옳은가?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모습이다.
지성인은,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안주하면 안된다.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