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세티1.6 -준중형차의 구매가치
최근에 GM대우 홍보실의 K차장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라세티 1.6을 주말에 한번 몰
아보지 않겠냐는 것이었지요. 주로 수입차 시승을 많이 하는데다 라세티가 완전한 신차도 아
니기 때문에 의외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주말을 이용해 1.6을 충분히 몰아보는 것도 무
척 흥미로운 일이 될 것 같았습니다. 라세티 1.5를 몰아본적은 있었지만, 1.6(100cc의 차이는
무
시하기엔 그렇고 그렇다고 차이를 느끼기엔 부족한 것이지만)은 처음이었으니까요.
대우에 대한 제 예전 감정은 국산차메이커에 대한 애정과 차에 대한 불만이 뒤섞여 있었습니
다. 김우중 회장의 세계경영 일환으로 동유럽지역 공장을 중심으로 몸집을 불려나간 것이 대
단해 보이기도 했지만, 누비라 레간자 등의 당시 대우 주력차종들이 일제차수준과 비교했을
때 차의 기본적인 품질감에서 상당히 열세였다고 생각됐기 때문입니다. 당시 현대차의 경우
는 도요타나 혼다차와 비교했을 때 '차이가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근접한 수준까지는
따라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시 대우차는 현대차과 비교해도 전체적인 품질감에서 부족
한 면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공격적인 경영이 좋더라도 제품이 뛰어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
게 마련인 것이니까요.
현재의 GM대우는 단적으로 말해 우리기업이 아닙니다. GM의 자회사중 하나이지요. GM의
세계전략 가운데서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겁니다. 그러나 남의 기업이라서 외면해야 하는 그
런 문제는 전혀 아닙니다. 칼로스 라세티 매그너스 등 최근의 판매차종은(물론 GM이 인수하
기 전에 개발된 것이지만) 상당히 괜찮은 구매가치를 보여주고 있고, 또 미국에서 칼로스는
시보레 아베오, 라세티 세단은 스즈키 포렌자, 라세티 해치백은 스즈키 레노, 매그너스는 스
즈키 베로나로 팔리고 있습니다. 물론 대우라는 브랜드는 사라졌습니다만, 적어도 분노할 일
은 아닙니다. 애국심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대우라는 브랜드가 사라지고 GM의 손에 의해 예
전의 우리 자동차기업이 좌지우지되는 것이 기분나쁠 수는 있겠지만, GM대우에서 일하는 직
원들의 대부분 여전히 한국인이며, 수만명의 한국인들이 GM이 경영하는 이 회사에서 봉급을
받으며 생활을 해나간다는 것은 오히려 내수에는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1990년대 미국 빅스리의 자동차공장 가운데 24곳이 문을 닫았고 7만5000명이 일자리를 잃었
습니다. 같은 기간 GM은 해외에 생산시설을 짓는데 10억달러 이상을 투자했습니다. 같은기
간 도요타는 켄터키주 조지타운 공장을 확장하고, 인디애나주 프린스턴에 SUV와 픽업트럭
공장을 짓고, 찰스타운 외곽에 엔진공장을 짓는데 10억달러 이상을 들여 미국인 2만명의 고
용효과를 냈습니다. 국내 자동차회사중 유일하게 한국인 소유인 현대기아 그룹의 경우에도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 지은 공장에서 내년초부터 미국에서 판매될 신형 쏘나타의 거의 전량
을 생산할 예정입니다. 물론 미국인들이 생산하게 될겁니다. 쌍용은 중국기업에 넘어갔습니
다만, 앞으로 이 회사가 어떻게 전개되어 갈지는 불투명합니다. 다만 한국인들이 차를 생산하
는 한, 이 회사 역시 국내 내수경제에 일조하는 회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르노삼성의 경우도
르노가 국내에 엔진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한 것처럼, 단순히 외국에 팔린 기업이라고만 보기
에는 국내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자동차 산업이라는 것은 완성차
업체 뿐 아니라 수만개의 부품업체들이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GM대우를 보는 시각도, 현대차는 우리기업 GM대우는 외국기업 이런 이분법적
시각으로 보기 어려운 면이 많다는 것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구매가치가 높은 차를 사게
마련인 것이고, 현대든 GM대우든 르노삼성이든 서로 경쟁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더 좋은 차
를 제공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겠지요.
시승차는 라세티 1.6 세단형 중에 최상급 모델인 다이아몬드의 풀옵션 모델이었습니다. 4단
자동 트랜스미션에 선루프 전면 듀얼에어백 사이드에어백 열선시트 TV CD체인저 내장 AV시
스템 등이 장착돼 있습니다. 준중형차급에서는 과하다 싶을 정도의 옵션을 넣다보니 차값만
1600만원대에 육박합니다만, 그렇다해도 여전히 준중형급에서는 국산차에 대적할만한 외제
차가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가격경쟁이 안되기 때문에, 동급이라 할 수 있는 도요타 카롤라나
혼다 시빅같은 차종은 수입이 안되고 있습니다. 한일자유무역협정이 체결돼 무관세 적용이
되기 전까지는, 아무리 가격을 낮춰도 2000만원 이하로 들여오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이미 이 급에서 가격경쟁을 포기한 상태이고 독일차들은 차크기가 작더라도 가격이
정말 만만치 않습니다. 급이 완전히 같은건 아니지만, 폴크스바겐 보라 2.0 (제타) 정도가 엇
비슷한 급(배기량은 좀더 높지만, 차체 크기나 성격으로 볼 때)이라 할수 있겠는데요. 보라 역
시 국내 판매가가 3000만원선입니다. 애초부터 가격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상대적인 것이긴 합니다만, 국내 준중형차의 가격대비 구매가치는 꽤 높은 편이라
고 할 수 있습니다. 옵션에 너무 욕심내지 않는다면 1000만원대 초반에서 구매가 가능하니까
요. 더구나 배기량이 1500cc에서 1600cc로 커지면서, 부족했던 출력문제가 조금이나마(정
말 조금이지만) 해결됐습니다.
라세티에 대해 간단히 평하자면, 현대 아반떼XD나 기아 쎄라토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무난한 승차감(단단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푹신하고 소형차로 보기엔 꽤나 조용한)을 보여줍
니다. 라세티 이전모델인 누비라의 경우 아무래도 전체적인 품질감이 현대차에 비해 다소 못
미치는 부분이 있었다는 생각이지만, 라세티에 와서는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입니다.
주행감만 놓고 보면 SM3 1.6 쪽이 좀더 단단한 느낌입니다만, 실내공간의 넉넉함으로 보면
라세티 쪽이 뛰어납니다. 현재 준중형급 판매량은 아반떼XD, 라세티, 쎄라토, SM3 순입니다.
품질·주행감으로 보면 SM3가 상대적으로 평가받을만한 부분이 있는데도, 기대만큼 팔리지
않는 것은 역시 국내 준준형차 소비자들이 단단한 주행감 보다는 넓은(또는 넓어보이는) 실내
공간과 고급스러워보이는 스타일에 크게 구애받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라세티의 경우 내장의 고급스러움이나 전체적 품질감은 뛰어난 편이지만, 아직까지 내구성에
대한 평점이 상대적으로 현대·르노삼성차에 비해 약간 모자란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겠습니
다. 세단형 모델과 또 다른 느낌의 해치백 1.6은 디자인이 상당히 신선하다는 생각입니다. 세
단쪽보다는 오히려 해치백 모델에 훨씬 더 좋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준중형급 해치백 중에
서는 가장 예쁜 디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 생활에서 1대의 차를 굴리기에는 세단보다
해치백이 쓰임새가 많다는 점을 생각해 볼때 라세티 해치백 같은 모델이 오히려 준중형급의
특성에 잘 맞는 차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출처: 조선일보 최원석 기자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네...
무지하게 길지만 잘봤어요..
별로 길지도 않네요,..시간이 많아서 그런가...^^
글이 길다길래 배기량이 늘어난 부분에서의 시승에의한 치열한 전개를 기대했었는데 아쉽네요...
잘 읽고 갑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