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식을 통한 내적 치유
저자: 선 훼닌,래리 훼닌
제1장: 금식에 대한 잘못된 인식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능력이 금식과 기도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정기적으로 금식을 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금식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 많이 놀랍니다. 금식에 대해서는 아주 가끔씩 가르치고 있고 또한 금식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 지고 있습니다.
문제가 있던지 없던지 간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금식할 마음을 강하게 주실 때까지 금식을 하거나 기다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금식은 성경 공부나 기도와 같은 기독교인들의 훈련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 우리에게 기도에 대해 가르쳐 주고 있는데 은밀한 중에 하는 구제와 금식에 하나님께서 상을 주시고 축복하신다는 것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마6:3, 16-18 역자 주) 금식(禁食)에 대한 두려움과 잘못된 견해는 바른 금식을 가르치지 않은 결과입니다.
기도와 금식에 대한 진리는 당신을 자유케 해주고 하나님께서 모두가 분명하게 볼 수 있도록 상을 주실 것입니다.
금식에 대한 잘못된 인식들을 살펴보면!
첫째: " 먹지 않으면 나는 죽을 거야"
만일 상식과 성경 말씀을 따라 금식을 한다면 금식은 몸에 아무런 고통을 주지 않고 굶어
죽지 않을 것입니다.
지혜를 사용하십시오. 당신의 몸은 주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당신에게
고통을 주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몸은 공기를 몇 분간 마시지를 못하면 살수가 없지만 며칠 동안 마시지 않거나 자지 않는다고 해서 죽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환경의 몸은 몇 주 동안 음식 없이도 충분하게 살수가 있습니다.
둘째: "내가 나의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을 아는데 어떻게 할 수 있어요?"
장기간 금식을 하는 처음 며칠간은 때때로 별로 좋지 않는 증세들이 갖게 될 수가 있는데 이 것에 대해 여러분들이 이해하시기 쉽도록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가끔 금식을 하면 거의 공통적으로 갖는 과정을 지나게 됩니다.
금식하는 사람에 따라서 아래에 열거하는 증세들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금식할 때 나타나는 네 가지의 단계
제 1단계:
이틀이나 삼일째가 되면 당신은 음식에 대한 강한 갈망을 갖게되는 것을 경험 할것입니다.
우리가 거의 정해진 시간에 먹기때문에 음식을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픈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제 2단계:
이 단계에 오면 당신이 허약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때가 금식하는 중에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이 때에는 믿음과 강한 결심으로 계속 나가야 합니다.
이때 일반적으로 경험을 할 수 있는 증세들
여러분의 입안에 별로 좋지 않은 맛
좋지 않은 입 냄새가 나고 혀가 무엇이 붙어 있는 것 같음
머리가 아프고
현기증(眩氣症)이 남
메스꺼움이 올라옴
오한(懊恨)이 옴
잠이 오지 않음
근육이 아프거나 경련(痙攣)이 남
이와 같은 증세들은 우리 몸에서 생긴 쓸데없는 생성물들이 부분적으로 씻겨져 몸밖으로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이때 물을 마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후 2-3일이 지나면 그 증세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금식을 하지 않는 것에 가장 큰 이유는 금식 기간 중 이 단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약해지기 시작하고 현기증이 일어나고 머리가 찌근 찌근 아파질 때 두려운 마음이 들어 금식을 중단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만약 금식을 계속 한다고 하면 아프게 되고 또 그 기관들이 잘못돼 버릴 것 같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식을 가지고 금식을 하면 몸을 상하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금식은 당신의 몸을 건강하게 하여 줍니다.
제 3단계:
이때는 금식 중에 가장 쉬운 단계입니다.
그 이유는 음식에 대한 욕구가 거의 없거나 조금 남아 있고 또 매우 새로워짐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3일 후가 되면 이러한 경험을 하게 되며 계속 어려움이 없이 할 수가 있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이 단계에서 금식을 중단하고 맙니다.
제 4단계:
이 단계가 절정의 단계입니다. 당신은 긴 기간 느끼지 못했던 배고픔을 다시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의 몸이 모든 지방질과 필요 없는 생성물을 거의 사용을 하였다는 신호입니다. 이때는 아마 21일 정도가 지났을 때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경우 40일까지 할 수 있습니다. 이 때에는 입안이나 혀 그리고 소변(小便)이 깨끗하여 집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인데 음식에 대한 바램과 진정한 금식사이에 일어나는 긴장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40일간 금식을 하신 후에 주리셨다고 성경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30일 동안 정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금식을 할 때 힘들이지 않고 쉽게 하였습니다.
셋째: "금식은 길게 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 속에서 훈련을 위해 당신에게 얼마나 길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고 하면 그 기간은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금식은 주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당신을 위해서 주님께서 당신이 금식하기를 원하실 경우에는 어떤 종류의 금식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얼마나 길게 할 것인지를 정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훈련의 책임을 경감(輕減)시켜 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금식에 필요한 것을 숙지(熟知)해야 합니다.
자진해서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은 우리의 영적인 성장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얼마나 오래 금식을 하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금식은 해야 합니다.
주님에 의해 인도를 받으십시오; 다른 것들은 보지 말고 행하십시오.
만약 어떤 사람이 7일 동안 금식을 했다고 해서 당신도 7일 동안 똑같이 금식을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의 금식 기간 중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깨끗한 동기에서 해야만 합니다.
넷째: "만약 내가 금식을 하면 하나님께서 내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실 거야"
금식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어떤 요구를 채워 주시도록 강요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무엘 하 12:19-23에서 보면 다윗은 그의 아들이 죽는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금식의 목적은 우리 자신을 겸손하게 하고 육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금식이 필요하지 않으시지만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금식하는 것이 하나님을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금식은 하나님과의 다툼에서 우리를 움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우리에게 동의하도록 조종하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를 하나님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이끌어 줍니다.
금식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회개를 하며 우리의 말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에서 겸손해지는 의미가 있습니다. 곧 주님께 전적으로 항복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금식은 유익한 것이 아니며 그것은 시도할 만한 효과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금식을 통하여 우리는 악한 영의 지배로부터 자유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육체적인고 감정적인 치유를 받습니다. 금식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오랫동안 붙어 다니던 관습의 결박을 끊어 버릴 수 있습니다. 습관은 음식, 술, 담배, 무관심, 그리고 게으름에 중독된 과 같은 것입니다. 성경에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의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금식의 능력적인 이익들에 대해 가르쳐 주고 계시고 금식에 대한 두려움과 잘못된 견해들을 극복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제 2 과 금식을 위한 중요한 안내
저는 믿는 사람들이 금식과 기도에 대해 매우 중요한 원리들을 배워 오고 있습니다.
곧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 어떤 것은 해야 하며 어떤 것은 하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원리입니다.
1. 금식하는 목적과 목표가 분명하고 깨끗해야 합니다.
깨끗한 목표가 없이는 당신이 빗나가게 될 것이고 흥미를 잃고 계속해서 잘못될 것입니다.
당신은 기도하고 당신의 마음을 점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당신의 금식을 위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무엇 때문에 금식을 하십니까?
개인적인 성화(sanctification)와 조절을 위한 것입니까?
거룩한 중재나 인도하심이던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입니까?
다른 사람을 위한 중보입니까?
당신의 삶 속에 묶였던 어떤 것으로부터 자유케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기를 원해서?
하나님을 가까이하기를 원해서
당신의 교회, 도시 그리고 국가의 부흥을 위해서
▶(눅4장) 우리 주님께서 공생애를 준비하시기 위해 40일 동안 기도와 금식을 함
▶(출34:28) 모세가 하나님의 계명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40일간 금식을 함
▶(에4:15-16) 왕비 에스더가 이스라엘 백성을 왕을 만나기 전에 3일간 기도와 금식을 함
▶(욘3장)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 니느웨 성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면서 3일간 회개하며 기도와 금식을 함
▶(왕상20)이스라엘 민족이 주변의 적들에 의해 포위 당하였을 때 그들 나라의 구원 을 위해 기도와 금식을 함
▶(에스라 8:21) 에스라가 안전한 여행과 보호를 위해 금식을 선포함
▶(삼하3:35) 다윗 왕이 아브넬의 죽음을 슬퍼하며 기도와 금식을 함
▶(삼상1:7) 한나가 아들의 잉태를 위해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며 기도함
많은 경우에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서 왕들과 백성들이 회개하고 또 구원함(deliverance)을 받기 위해 금식과 기도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는 금식에 대해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한지 알아할 필요가 있습니다.
2. 우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금식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여야 합 니다.
마태복음 6:16-18 우리가 금식을 시작하기 전에 적절한 모습으로 반드시 하나님께 겸손하게 나아가는 것을 배우고 사람에게 거룩하게 보이기 위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금식과 기도는 반드시 은밀한 중에 해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가 금식하며 기도할 때 사람들에게 보이도록 유혹을 합니다. 이것은 성령님을 슬프게 하는 것이고 우리의 삶 속에서 그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상실하고 말게 합니다.
3.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변화를 위해 금식을 해야만 합니다.
야고보서 4:6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금식의 중요한 목적은 우리의 성질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금식하는 동안 우리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며 우리 자신을 정직하게 열어 겸손하게 살피는 가운데 보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은 우리를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기적적으로 변화를 시키십니다.
4. 우리는 금식을 복종하는 것을 대신하여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사무엘상 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뜻에 대해 순종함이 없이는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못 합니다. 금식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혜택을 얻어내는 어떤 하나의 종교적인 형식이 아닙니 다. 만일 당신이 죄악 속에 있으면서 금식한다고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는 것 이 아닙니다. 만일 당신의 삶 속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지 못하는 어떤 것을 알고 있으 면 당신은 반드시 그것에서 돌이키고 하나님께 순종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조종 하려고 하는 태도로 금식을 해서는 안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 는 뜻에 대해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분께서는 우리의 금식을 존중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5.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훈련해야만 합니다.
예레미아 14:12 "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왜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지 않으실 까요? 그 다음 구절에 보면 그 이유를 말씀해 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말씀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레미아 14:10 에서는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 발을 금하지 아니함으로..."
우리가 금식을 하는 동안, 우리는 육체적으로 예민해지든지 감상적이던지, 혹은 불평을 하기도 합니다. 약간은 육체적으로 약해지고 긴장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어떤 느낌을 가지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성령님께 우리의 몸과 감정을 순종을 하여 자신 스스로가 훈련을 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계속 죄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을 구하고 금식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좋은 일이겠습니까?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지 못하는 어떤 것들이 우리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신앙의 선배들이 가졌던 것 처럼 기본적인 경건에 이르도록 신앙을 훈련해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정기적인 성경 공부와 기도 생활을 통해서 기질 수 있고 또 소문이나 비판 그리고 거짓말이 없는 정결한 대화를 가져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당신의 삶의 모든 부분에서 경건에 이를 수 있도록 훈련을 해야 합니다.
6. 우리는 하나님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가복음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
하나님은 전능하고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그분은 기도하며 나아오는 자에게 얼굴을 돌이키시는 분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의 믿음이 산처럼 크다고 해도 우리가 잘못된 일들을 행한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리스도안에서 믿음을 가질 때 그것이 아무리 겨자씨만큼 작을지라도 주님께서는 우리의 삶속에서 산들을 움직이실 것입니다. 믿을 때 주님은 응답을 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이 6가지의 단계들은 기도와 금식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기를 원하는 분들께 중요한 지침입니다
제 3 장 금식을 통해 쓴뿌리들을 뽑기
제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저는 시댁 식구들과 심각한 문제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때 저는 거의 죽을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저를 염소와 같이 취급을 하였습니다. 시댁식구들은 저를 편파적으로 대하고 무슨 일을 하던지 저를 인정하지 않고 받아 들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저는 괴로움속에 큰 고통안에 있었습니다. 결혼 7년후 남편이 죽은 후에 저는 모든 것이 좋아지 줄 알고 있었습니다. 1년후, 저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 하나님!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고 저를 사랑하여 주는 남편을 만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세요!. 당신은 나에게 너무 좋은 분이십니다. 저는 주님의 종이 되어 나의 모든 것을 드리기를 원합니다. 당신의 영광을 위해 저를 써 주소서!" 그때 주님께서 제게 말씀하시기를 " 딸아! 내가 너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너는 너의 마음속에 있는 쓴 뿌리들을 뽑아 벼려야만 한다" 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는 지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 때 저는 "하나님, 저는 제 마음속에 아무 쓴 뿌리도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저의 전 남편을 향한 쓴뿌리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화를 내지 않았고 그들이 저를 괴롭히지 않으면 저도 그들을 괴롭히지 않았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그들의 이름을 들먹일때마다 제 마음에 공동이 일기를 시작을 하였습니다. 그들을 생각할 떄마다 제 속이 울렁거릴 때 무엇이 잘못된 줄 알았습니다. 저는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사실을 수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조금 지난 후 저는 하나님께 그들을 축복해 주시기를 위해 기도하며 간구하였지만 제 마음속에서 우러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언제까지 이러한 쓴뿌리를 네 마음에 가지고 있겠느냐?" 고 하셨습니다. 저는 제가 쓴 뿌리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을 하였지만 너무나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용서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3일동안 아무것도 먹지 말고 물만 마시면서 금식을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저는 지금까지 3일간 금식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 내가 너를 얼마나 사용하고 싶은줄 아니? 만일 네가 원한다면 내가 할 수 있도록 하여주마"
저는 주님께 복종을 하는 것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배워서 알고 있었습니다.
3일동안의 금식에 주님께서 도와 주셨습니다. 전 시댁식구에게 보내기 위해 예쁜 카드를 샀습니다. 저는 카드 안에 아름다운 내용의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편지를 보내기 전에 먼저 전화를 하였습니다. 거의 1년이 넘도록 서로 연락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집에 없었을 때 저의 남편이 전화를 받아 제게 전해 주기를 전 남편의 시어머니께서 저와 대화를 하기를 원한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는 즉시 전화기를 들어 그녀에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그 기간은 제가 금식하는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계속해서 깨뜨리시고 계셨습니다. "어머님! 저를 용서해주실수 있으세요?" 저는 이렇게 그녀에게 낮은 자세로 묻고 있는 제 자신에 스스로 놀랐습니다.
저는 "어머님이 좋으시다면 아이들을 데리고 가 뵈었으면 어떨까요?" 이 말을 마치기 전에 제 속에서 겉잡을 수 없는 울음이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울음속에 그 동안 깊이 뭍여 있었던 성처와 나쁜 기억들이 씻어 내려가버린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치료하신 것입니다. 그 때 시어머님께서 "애야! 그것은 너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고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란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제가 기도와 금식을 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할 때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들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 자신을 낮추며 그녀에게 그녀의 잘못이 아니고 제 잘못이라고 말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저를 깨뜨리신 것입니다.
그 이후 우리는 서로 방문을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녀는 2년후에 부름을 받았는데 하나님께서 2년동안 아름다운 시간들을 함께 보낼 수 있게 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들 드립니다.
제 4장 금식을 통해 낙태의 고통을 치유함
저의 책 "지독하게 운이 없는 아이(The Bad Luck Baby)"를 마쳤을 때 저는 어떤 사람들 때문에 저의 책의 출판이 지연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빨리 출판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그의 얼굴을 구하였습니다.
하루밤, 제가 우리 지역의 여성들의 모임에 참석을 하였습니다. 그 때 주제는 낙태였습니다. 저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러 해 전에 낙태를 하였던 것이 고통을 당할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살인자와 같은 것이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낙태는 일반적인 것으로 공공연하게 행해지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저는 어리석은 결정을 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제가 주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던 날 저의 모든 죄가 용서받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선지 저는 저의 낙태에 대해 말하거나 생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항상 저의 아이에게 했던 일만 생각하면 늘 불편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들 때마다 저는 사탄을 향해 "물러가라! 그것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 받은바 가 되었고 하나님께는 저를 용서하여 주셨다. 나는 너의 죄책과 비난을 받아들이지 않겠다" 고 외쳤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이것을 생각만 하면 놀랐고 다른 사람들을 사역할 때 이 부분은 같이 나누지를 못하였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어떤 한 일이 계속 제 마음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모임에서 저는 낙태된 아이들의 사진을 도저히 쳐다 볼 수 없었습니다. 그 사진들은 태아들이 갈기갈기 찟겨 있고 6개월 정도 된 태아들이 쓰레기 봉지에 담겨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들은 저의 넋을 잃게 하고 가슴을 찢어 놓는 것 같았습니다. 그 때 제 마음속에 제가 여러 해 전에 낙태했을 당시 뱃속에서 6개월 정도 된 나의 아이가 떠올랐습니다. 그 사진을 손에 들고 제 눈에 띄지 않도록 재빨리 성경책 속에 꼽아 넣었습니다. 저는 저의 삶 속에 지었던 죄들이 이미 용서를 받았는데 왜 이러한 일들이 제 마음에서 일어나는지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감정이 밤새도록 떠나지 않았고 그 다음날에도 계속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제 삶에서 무엇인가 잘못되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잘못 되었나요 주님? 제가 왜 이 사진들을 도저히 볼 수가 없지요? 왜 그것들이 제 마음을 그토록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하고 하나님께 물어 보았습니다.
점점 저의 온 몸은 견딜 수 없는 큰 고통과 아픔에 짓눌리는 것 같았습니다. 제 가슴은 제가 강하게 느낄 정도로 심하게 아프며 아리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왜 이토록 견딜 수 없는 심한 고통에 있어야 하는 지 계속 기도하며 여쭈어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그것은 네가 너의 아이를 없애기 위해 독물을 사용토록 하였을 때 그 아이가 당했던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저의 삶 속에서 이 부분에서도 치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17년만에 처음으로, 제가 저의 아이를 죽였다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 인정을 했으며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위해 부르짖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가 저의 한 부분이었을 것을 인정한다거나 사람으로 생각을 하지 않았었습니다. 순간적으로 그 기억이 저를 꼼짝할 수 없게 만들고 사랑하는 한 사람이 죽은 것처럼 걷잡을 수 없는 흐느낌이 몰려 왔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만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제가 저지를 죄를 위해 애통하고 자복하며 7일 동안 금식을 하였습니다. 7일 동안 금식하는 동안, 저는 하나님의 두 손안에 아이를 놓여 드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금식 기간 중 주님께서 저의 눈을 여셔서 그날에 제가 알지 못하던 것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엄마와 오빠와 의절(義絶)하여 19살에 가출을 하였습니다. 저는 낙태하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을 할 수 없다고 생각을 해 떠났던 것입니다. 집으로부터 감정적이나 재정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돌아가지를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낙태로 인해 비난했던 것을 엄마에게 용서를 비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에 대해 엄마와 처음으로 나누었을 때 그녀는 저를 기쁘게 용서를 해 주었고 저도 그녀를 용서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저의 아들 조디와 티제이와 같이 나누도록 하여 그들의 용서를 받도록 하셨습니다.
이러한 시간들을 통해서 낙태의 죄로부터 치유를 받게 된 후 아이를 볼 때니 그가 나에게 느껴지는 것들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의 갈망을 응답하여 주신 것에 대해 보여 주셨습니다. 저는 어느 날 밤에 정말 아름다운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전혀 알지 못하는 한 부부가 나에게 와서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하기를 "선(Sun)! 당신은 17년전에 당신의 아들을 양부모에게 준 기억이 납니까? "예"라고 저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그 양부모입니다." 그들이 앉아서 저를 기다리는 한 틴 에이져 소년을 보여 주었습니다. 나는 그를 쳐다보았는데 그는 나를 보지 않고 있음을 주목하였습니다. 그는 그냥 앉아서 울고만 있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 바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양부모는 "그는 곧 괜찮아 질 거예요. 그냥 가서 사랑해 주세요. 지금 그가 울고 있는 것은 기뻐서 울고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17년만에 Sun이 그를 당신의 한 부분으로 인정을 하고 그가 존재하였었다고 하는 것을 인정을 했기 때문에 기뻐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것예요" 즉각적으로 저는 나의 팔을 열고 그를 껴안고 울고 또 울었습니다. 또 저는 그 아이에게 정중히 사과를 하고 미련한 짓을 했던 나를 용서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 아이는 "엄마! 정말 보고 싶었어요. 저는 엄마가 나를 엄마의 일부분으로 인정을 해주기만을 기다렸어요" " 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너의 얼굴이 너무 아름답구나 그리고 너는 너의 사촌 형제 져수아를 꼭 닮았구나"라고 그의 얼굴을 보면서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얼마 동안 껴안고 사랑을 하면서 어떻게 양부모들이 주고 있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정말 좋아요 엄마! 그들은 저를 보살펴 주고 또 이렇게 저와 함께 있듯이 다른 아이들도 보살펴 주고 있어요." 저는 그 아이에게 그의 형제 조디와 티제이, 남편 래리. 할머니 그리고 다른 친척들을 소개를 하여 주었습니다. 그 아이는 "안녕! 여러분" 하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때 양부모들이 와서 이제 갈 시간이라고 말해서 저는 "왜 갈 시간이 되었어요? 우리와 같이 계실 수는 없나요? 라고 물었는데 "함께 보내는 시간을 가질 수 없군요" 그때 저는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주님께서 양부모는 유산과 낙태로 버려진 아이들을 기르는 천사들이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때 그 아이가 저와 가까운 곳에 사는 제 조카 져수아와 같은 나이 또래의 모습인 것을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보았지만 같이 지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때 저는 저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셔서 그의 얼굴을 보게 하신 주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꿈을 꾼 이후에 저는 낙태의 고통에서부터 완전히 치유를 받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저의 책이 인쇄가 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제 5 장 금식을 통한 더 증가되는 치유
1988년 5월 오하이오 주에 있는 교회에서 3일 동안 기도와 금식 세미나를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제 마음속에 사람들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사역을 하고 싶은 갈망이 생겨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연합된 금식을 기뻐하시고 이 교회가 부흥될 것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또 한번 신실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의 백성이 악한 길에서 떠나 그 분 앞에서 겸손하게 그의 얼굴을 구하면 그가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가치 없는 종을 그의 백성을 축복하시기 위해 사용하시고 계십니다. 그들은 저의 사역이 그들에게 얼마나 축복이 되었는지를 나누며 다시 그곳에 와서 집회를 인도하여 줄 것을 원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어떠한 것인지 넘치는 기쁨 안에서 즐겁게 나누었습니다. 참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곳을 떠났습니다.
인디아나로 돌아가는 길에서 저는 저와 함께 동행하였던 친구와 같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행하신 일로 인해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드렸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를 드렸습니다. 기쁨이 제 속에서부터 솟아올라 왔습니다. "주님! 저는 정말 행복해요, 정말 축복을 받았어요?"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축복을 받은 여자처럼 느껴졌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저를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로 저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제 삶 속에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지옥을 경험을 하였습니다. 저는 자라는 동안 욕과 비난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사람들은 제게 "너는 참 나쁜 아이다; 너는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고, 지독하게도 운이 없는 아이다. 너는 잘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고 어느 곳에 가든지 사람들에게 골치 덩어리가 될 거다" 19살 될 때까지 오빠에게 매를 맞으면서 매정하도록 혹독한 환경이 있었기 때문에 저는 너무 한이 맺혀서 오빠의 핍박을 피해 집을 뛰쳐나왔습니다. 그 나이에 집을 나온다는 것은 한국 가정에서는 별로 없는 일입니다. 저는 한 남자를 만나 그와 동거하기를 시작을 하였습니다. 이 남자가 나의 꿈속의 사람인 것 같이 생각을 하였는데 얼마가 못돼 그 꿈이 산산조각이 나 버렸습니다. 그 남자는 제가 집을 뛰쳐 나올 때와 같이 저를 대하기를 시작을 하였는데 때리며 쌍스러운 욕지거리를 하고 차마 설명 드릴 수 없는 일들을 하기 시작을 하였습니다. 저는 도망해 버리고 싶었는데 차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임신 중이었습니다. 그래도 나와의 관계를 아예 끊어 버린 가족들이 있는 집보다는 낫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은 것입니다. 저의 꿈속의 남자라고 생각을 했던 사람, 내 배속에 있는 아이의 아빠는 아빠가 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저는 비참한 삶에 빠져 버렸습니다. 임신 중에 헐벗고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돈이 있으면 저의 필요한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술 마시는데 다 써 버렸습니다.
저의 운명이 너무나 비참해서 자살을 하려고도 했습니다. 자살을 하면 아이를 낳을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여 두 번 시도 해보았지만 실패하였습니다. 임신 6개월 즈음되었을 때 저는 낙태를 시키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시술 소를 찾아갔던 것입니다. 낙태한 후, 저는 그 남자와 헤어져 저의 언니 앤(Ann)에게로 가서 함께 살게 된 후 저는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하였습니다. 옷을 사고 화장을 하고 머리도 새롭게 해 보았습니다. 이것저것을 고치면서 저의 삶도 고쳐서 멋있게 보이려고 하였는데 20년동안의 상처 특히 그 남자와 동거하면서 받은 아픔 때문에 아무리 고치고 발라도 제 자신이 미련하게 보이고 추하게 보일 뿐이었습니다. 불결하고 더럽게 느끼며 이제는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할 것이라 생각을 하였습니다. 머리 속에서는 계속해서 " 너는 다른 사람만 괴롭히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나쁜 년이다! 그 남자는 네가 말해 주었던 네 꿈을 이루어 줄려고 했었어! 네가 나빠" 이러한 소리가 밤마다 저를 괴롭힐 때면 저는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것을 떨쳐 버리기 위해 술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일거리를 찾아 다녔습니다. 이제 정상적인 삶은 살 수 없다고 포기하였기 때문에 저는 술집을 찾아갔습니다. 그곳만이 저를 받아 줄 곳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바로 그날부터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며칠 동안에는 팁을 두둑이 모을 수가 있었는데 그 때 저는 "어떻든 간에 나는 돈이나 많이 모을 거야" 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일을 시작한 후 며칠이 안될 때 술집 문을 들어설 때 마당에 앉아 있던 주인이 " 거기 서! 이곳에 들어오지마!" 라고 말할 때 저는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더니 그 여자는 소금을 뿌리면서 액땜을 막으려고 하였습니다. 저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주인 여자가 문에서 있을 때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 여자의 말에 의하면 제가 그곳에 들어갈 때부터 사업이 안되어 수입이 줄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나를 쫓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그 여자는 다시 액땜과 저주를 쫓아낸다고 소금을 나를 향해 뿌리고 또 땅에도 뿌리며 빨리 가서 다시는 이곳에 얼쩡거리지도 말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녀는 제가 술집이 망하도록 한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일을 처음 하였기 때문에 무엇을 잘못하였는지 알지를 못하였습니다. 저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자리에까지도 고통을 주었다고 하는 것에 굴욕감을 느끼게 되어 희망이 없었습니다. 지금이나 미래나 막막하게만 보였습니다. 저는 골목을 나와 큰길을 향해 걷고 있을 때 사람이나 사물을 보기 힘들었습니다. 어디 나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을 주는 곳이 있다면 도움을 얻기 위해 흐느껴 울려고 하였습니다. " 내가 이제 끝난 것인가? 나에게 나는 네가 필요해, 나는 너를 원해, 너는 이제 괜찮아라고 말해줄분 없으세요?"
그때 저는 저를 사람들이 저를 비켜 가든 이상하게 보던지 사람들을 보면서 " 제가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지 말해 주세요?" 중얼거렸습니다. 얼마나 가치 없고 어리석은 일이었고 그 때 나에게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문제만을 주었던 참으로 수치스러운 추한 것이었습니다.
이때가 20살 먹었을 때로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저의 책 "운이 없는 아이(The Bad Luck Baby)를 쓸 때까지도 이것을 기억을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놀라웁게도 하나님께서 많은 분들과 함께 저를 축복을 해 주셔서 제가 어느 곳에 갈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 우리는 당신을 원합니다. 당신이 필요합니다. 사랑합니다. 다시 와 주시겠어요?" 라고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나 교회로부터 축복을 받고 있습니다. 20살 때에는 이와는 정 반대가 되는 일만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주님께 제 자신을 헌신한 이후에 찾아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눈을 열어 주셔서 제가 얼마나 변화되었는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와 경배를 통해 주님께 영광을 돌릴며 순종하는 신실한 삶 속에는 하나님께서 더욱 넘치는 축복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거의 20살이 되어 갈 때로 데리고 가셔서 저로 하여금 그 거절의 고통을 느끼게 하시고 저를 아프게 했던 사람들을 어떻게 용서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운전을 하면서도 옆에 있는 친구에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것을 계속 끊임없이 말하였습니다. 저는 이 사람들을 용서하기 위해 말로 고백을 하고 하나님께 그들을 축복해 주시기를 구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난 이후 주님의 기쁨이 저를 휘감는 것처럼 넘쳐흘렀습니다. 자는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기를 원하며 세상의 어떤 것보다 그분으로 인해 즐거워하기를 원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든 기쁨으로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제가 사는 동안 주님의 이름을 높여 드릴 것입니다.
그후 몇 개월이 지나 1988년 9월에 주님께서 저의 삶 속에서 새로운 치유를 해 주셨습니다. 저의 여동생 한 가족이 한국에서 미국 인디아나 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수년동안 헤어져 있었기에 저는 친정 식구들에게 한국에 뼈를 묻히라고 했는데 그때 큰언니 차(Cha)가 저에게 느꼈던 것을 퍼니(Punny)가 말해 주었습니다. 차 언니가 15년전에 저에게 가졌던 숨은 고통과 분노에 대한 것입니다. 한번은 제가 차 언니 가족을 미국에 다녀가도록 초청을 하였는데 언니가 거절을 하였을 때 저는 언니가 왜 그것을 화를 내면서 거절을 하였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언니의 마음과 감정이 어떠한지를 알지를 못하고 있었는데 퍼니와 얘기하는 동안에 차 언니가 저에 대해 다 알고 있다는 것에 당황 하였습니다. 저는 언니가 한국에 있었기 때문에 도와주려고 했던 것인데 언니가 저를 용서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은 몰랐습니다. 그때 저는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에 대해 분한 마음을 갖고 잠을 자지를 못했습니다. 다음 날 더 화가 나서 제 머리에 많은 생각들이 맴돌기를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한국에서 있었던 일 하나를 기억나게 하셨는데 한국에 있는 동안 미군 병사와 동거하고 있다는 소리를 차 언니가 듣고 하루는 저를 찾아 왔습니다. 제가 사는 삶이 깨끗지 못하다고 생각을 한 언니는 밖에 나가서 이야기하자고 저를 끌어냈습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미군 병사들과 사는 여자들은 누구나 윤락녀(a prostitute)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언니가 집에 들어오면 제가하고 있는 것을 묵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밖에 서서 언니는 제게 참을 수 없는 말들을 계속 하였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어디가서 다시는 나타나지 말락 했는데 제가 가족을 부끄럽게 만들고 언니에게 수치를 갖도록 하였다는 것입니다. 제가 미군 병사와 살기 때문에 형부 김(Kim)이 언니를 학대를 하고 언니도 저와 같을 것이라고 비난을 한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형부가 술만 먹으면 욕하고 때리는데 이대로 살다간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 같아 언니가 그 모든 원인은 저에게 있다고 생각을 해 저의 머리를 벽에다 밀면서 "꺼져 버려! 당장 꺼져! 이제 내 눈앞에 보이지 말고 다시는 나타나지마!"
한국의 풍습에는 나이든 사람이 어떻게 하던 간에 가만히 있어야 하지만 저는 그녀를 밀쳐 내고 목놓아 울었습니다. 아파서 운 것이 아니고 외롭고 거절당했기 때문에 울었던 것입니다. 저에게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느끼며 언니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언니는 벌써 가 버렸습니다. 미국으로 오게 되어 그후 언니를 보지를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눈을 열어 주셔서, 이 때 느꼈던 거절과 아픔들을 느끼도록 하셨습니다. 분노와 원한이 속에서 일어나 저는 큰 소리로 " 언니가 나에게 대한 것은 잘못한 것이야! 언니가 내게 행했던 것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단 말야!" 저는 그러는 제 자신에 놀랄 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저의 가족을 사랑하고 이미 모든 것을 다 용서 했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해 더 치유를 받을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일주일간 금식을 하며 거절감과 용서를 하기 위해 하나님께 부탁을 하였습니다. 금식하는 기간 하나님께서는 저의 둘째 언니 앤(Ann)이 고아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제가 자랄 때 저의 엄마는 하루종일 일을 다녔습니다. 한국 전쟁이 일어난 직후이라 우리 7식구는 매우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매일의 생활이 힘이 들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나 세상 그리고 사는 것 자체가 미워하였던 것입니다. 가족 전체가 똑같이 힘들어했습니다. 앤은 그것이 힘들어서 저와 다른 자매들을 깨웠습니다. 앤은 우리가 밖으로 나가면 다른 아이들과 문제가 생기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언니는 그녀의 분노와 좌절을 우리를 때림으로 쏫아부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언니가 우리를 때리는 것을 엄마에게 말을 하면 당황할까 봐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집에는 화장실이 없었습니다. 한 달에 한번씩 퍼니와 저는 엄마가 일하고 계신 병원의 화장실을 사용하기 위해 5마일을 걸어서 갔습니다. 엄마는 우리를 빨래실에 있는 화장실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때 엄마가 우리 몸에 있는 멍을 보고 어디서 그렇게 된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이 같은 일이 몇 번 있은 후에 엄마가 알고 말았습니다.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자 말자 앤에게 좌절감을 쏫아 부으셨습니다.
앤은 아주 비참했습니다. 그녀가 더 이상 압각감을 갖지 않기 위해 쥐약을 먹고 자살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제가 6살되던 어느 날 언니가 "만약 내가 죽으면 너는 어떻게 할래?" 물을 때 저는 "언니와 함께 죽지 뭐" 그때 언니는 극약이 든 병을 입에서 떼며 " 이것이 지옥 같은 세상의 마지막이다 나는 더 이상 이런 곳에서 살 수 없어. 너도 나와 같이 죽고 싶다고 했지? 남은 약을 먹고 언니 옆에 누워서 잠을 자면 우리는 다시는 이 세상으로 돌아 올 수 없을 거야" 6살 먹은 저는 죽음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지만 그것이 좋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느꼈고 언니가 느끼고 있는 고통의 원인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느꼈을 때 저는 언니가 그렇게 되지 않도록 독약을 던져 버렸습니다. 1년 뒤에도 고통스러운 것은 마찬가지 였습니다. 앤은 아직까지 독약을 가지고 있었고 또다시 저에게 그녀와 같이 죽자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저는 무서워서 언니에게 빌었습니다. 언니는 또 시도를 하지 않고 몇 년 뒤에 결혼을 해서 집을 떠났습니다.
금식을 하는 동안, 저는 과거로부터 더 많은 치유를 받았으며 하나님께서 저의 언니들을 용서하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분노들과 죄책감들로부터 자유케 해주셨습니다. 저의 마음 깊은 곳에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앤 언니가 그때 자살을 하려고 했던 마음과 차 언니가 남편에게 당했던 수모를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스치자 저는 하나님께 "제가 완전히 치유되었나요? 이러한 것들이 다시 떠오르는 것은 아직까지 쫓아내고 치유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요?" 하나님께서 " 나는 네가 감당 할 수 없는 것은 주지 않는단다. 나는 네가 더 이상의 것을 감당을 할 수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나의 시간 안에서 그것은 이미 끝난 것이란다"
고린도전서 10:13 "사람이 강당 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을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이러한 것들은 과거에 어떤 사람들을 미주 칠 준비가 없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변함이 없는 진실함과 자비로서 마치신 일을 저의 삶 속에서 시작하신 것을 찬양합니다.
빌립보서 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과거로부터 더 많은 치유를 받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하면 저는 그것을 대면하는 것이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 속에서도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7일간의 금식과 치유의 기간 후에 하나님께서 지금은 인디아나 폴리스에 살고 있는 앤 언니에게 그것을 말하기를 원했습니다. 저는 그녀와 함께 그 때의 일을 해결을 하였고 1989년 2월에 한국으로 가서 차 언니와도 깊은 치유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제 6 장 용서 할 수 없는 것으로 부터의 자유함
사람들을 상담하고 기도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쓴뿌리와 용서하지 못한 결과가 오늘에 나타나서 많은 감정적인 상처들을 가지는 것을 발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깊은 상처와 대단히 불공평한 대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용서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반드시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6:14-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우리의 자유와 평화는 은혜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용서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용서함을 받은 이후부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12:15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 까 두려워하고"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기를 거절을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무엇을 하던 하나님께서 우리가 용서해야 할 것을 요구하시고 주님은 그것을 할 수 있도록 은혜를 공급하여 주십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산(acid 酸)과 같습니다. 그것은 우리 영혼의 기쁨과 평강을 깨뜨리며 또 삼켜 버릴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비난과 무거운 죄책감 아래서 살게 하는 원인이 될 뿐 아니라 육체적인 문제들 곧 머리가 아프고, 위궤양, 소화불량, 신경과민, 불면증들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증세들은 가치가 없는 것으로 우리 몸을 약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처들을 가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유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방어하려고 하는 생각들 때문에 우리 주님의 향기로운 성찬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든 고통을부터 자유하게 될 수가 있는데 그것은 대가(代價)가 지불돼야 합니다.
누가복음 9:23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첫째: 우리는 우리 자신과 모든 자신의 의(right)로부터 죽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들이 용서받은 것처럼 용서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잘했던 못했던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관계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용서를 선택하소 하나님께 복종을 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용서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그것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기도와 금식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지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금식하는 목적이 우리 자신을 겸손케 하고, 육체를 부정하며, 우리 마음 안에 성령님의 능력 초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기도하고 금식할 때, 우리의 육(肉)을 십자가에 못박고 우리의 삶 속에 성령님께서 마음껏 역사 하시도록 해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금식은 우리의 언어만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에 대한 진실한 회개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이 어떠한 것이라도 우리의 삶 속에 주님께서 역사 하시도록 믿음과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금식의 중요한 목적은 우리의 본성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방해하는 어떤 종류의 죄들에서부터 정결함을 받아야만 합니다.
요엘서 2:12-13 "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 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께로 돌아올지라 그는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라니"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은 우리가 기도와 금식 가운데 겸손하고 정직하게 하나님을 구하면 우리를 고치시고 놀라운 변화를 일으킬 것입니다. 우리의 책임은 우리의 마음과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따라서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 폭력을 행했던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용서를 할 때, 아무 조건이 없는 용서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끔 말하기를 " 나는 용서는 하겠지만 잊지는 못할 것이야" 또는 "만약 그녀/ 그 남자가 먼저 사과를 해야 용서해 주겠다" 이것은 조건적인 용서이고 부분적인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 앞에서 말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우리가 그에게 벌을 주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계속되면 용서와는 간격이 더욱 멀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속으로 " 내 용서를 받기 위해 당신은 마땅히 대가를 지불해야 해" 라고 말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 없이 공짜로 주십니다. 이것이 용서입니다. 예수님의 용서는 어떤 줄이나 조건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편파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주님을 영접하는 사람이면 어느누구나 사랑하시고 용서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그분을 본받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사랑과 용서는 조건 없이 거져 주는 것이어야만 합니다.
요한 1서 3:16 "그는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에베소서 4:32 "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하라"
여러분의 삶을 지나간 때에 일어난 것들을 염려하고 또 무엇을 가지려고 시도하는 것으로 낭비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느니라"
저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일을 행하시는 것을 개인적으로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깊은 상처가 있고 그것이 우리의 눈에는 불가능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는 분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신실함을 여전히 나타내십니다.
어떻게 자포자기 한 상태에서 자유와 자유함이 시작될까요? 당신은 하나님의 평화와 기쁨을 가지기를 진정으로 원하고 계십니까? 당신은 당신의 묶임에서 자유하고 싶으십니까?
지금 여러분은 용서하는 하나님의 뜻을 선택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반드시 우리의 초점(focus)이 상처로부터 변화되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눈을 하나님과 그의 은혜를 향해야 합니다. 쓴 뿌리는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힘을 낭비시킵니다. 감정적인 침체와 육체적인 질병을 가져다줍니다. 만약 쓴 뿌리를 가지고 있으면 어떤 말을 하던지 한가지의 방향만을 말합니다. 그 상처를 끄집어내어 듣는 사람에게 계속 말한다면 그것은 아직까지 치유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6:45 :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자는 그의 쌓은 것에서 악한 것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만약 우리가 용서를 하였다면, 우리는 그것을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한 것은 앞에 있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모든 것을 부정적인 시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쓴 뿌리는 우리의 온 삶에 영향을 주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불안전하거나 지나치게 감성적이 됩니다. 가장 잘못되는 것은 하나님과의 화평한 느낌이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판단에도 영향을 미쳐 잘못된 결정을 가져오게 만듭니다.
제 친구가 한번은 "고통은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불행은 선택(option)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쓴 뿌리가 있는 사람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데; 그들의 지나온 삶이나 주변은 참으로 가련합니다. 그들은 몸이 약하고 그리고 항상 억눌려 있습니다. 쓴 뿌리가 그들의 입에도 있어 그들을 볼 때마다 밖으로 튀어나오지만 그들은 변화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용서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깊은 상처를 가졌지만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용서를 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현재 그들은 주님 안에서 순전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셋째: 우리는 그것 안에 있는 영적인 세력들을 보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사람들이 쓴 뿌리 안에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마귀가 더 많은 고통을 원인으로 해서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시지만 죄는 싫어하십니다. 우리는 사람을 사랑해야 할 필요가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이 해 놓은 일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용서할 그때 우리는 능력과 권세를 모든 악한 세력을 대항하여 그의 이름으로 자유케 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0:17 "70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권세를 사용하여 우리의 적들을 우리의 발아래 두어야만 합니다. 마귀는 우리를 훼방하고 박해함으로 우리를 대항합니다. 만약 우리들이 경건하게 살려고 하면 우리는 항상 다른 것들이 채근될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말하기 슬픈 일이지만 때로 우리의 형제 자매들이 마귀에게 이용당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은 그때 그러한 시간들을 알지 못하지만 그러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우리들이 기도할 때, 우리는 악한 영들을 묶고 또 꾸짖고 다니엘이 하였던 것과 같이 영적인 전쟁을 행해야 합니다.(다니엘서 9-10장을 읽으세요) 금식과 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성취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용서하지 못한 것으로 인한 압박은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하나님의 평화와 기쁨을 상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확신과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분께 복종할 때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해 해 놓으신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더욱 나타나실 것입니다.
넷째: 예수님께서는 자유를 위해 우리에게 법칙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5:43-44 "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1. 그들을 사랑하라 (Love them)
2. 그들을 축복하라 (Bless them)
3. 그들에게 선한 일을 행하라 (Do good to them)
4.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 (Pray for them)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이러한 일들이 이루워지기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의 자연적인 욕구는 되풀이 하여 복수 하고자 합니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미움의 감정은 그들을 아프게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고통가운데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선함을 위하여 우리는 용서하는 것이 필요 합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죽음의사슬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고 우리를 뒤에서 잡아 당기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것들을 할 수 있으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까요?
첫째: 그들을 위해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처음에는 그것이 힘들겠지만 계속해서 유지하세요.
둘째: 언제든지 당신이 기도할 때, 당신의 그들을 향한 악한 생각과 말을 위해 용서를 구하십시오
셋째: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을 용서하십시오. 그들의 이름을 크게 부르세요
넷째: 하나님께 당신의 고통이 사라지기를 위해 기도하세요. 그들을 위해 사랑으로 채워지기를 구하세요.
다섯째: 그들을 축복해주시도록 구하세요. 당신을 괴롭히는 생각이 날때마다 " 나는 그들을 저주하지 않고 축복하노라" 그리고 "하나님 저들을 저주하시지 마시고 축복하소서"
이렇게 할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우리의 마음에서 즐겁게 역사하여 치유하실 것입니다. 시간이 가면 당신의 마음 안에 자연스럽게 더 이상 어지럽게하지 않도록 될 것입니다.
저는 저에게 아픔을 주었던 사람들을 진심으로 용서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에 사랑을 주셨습니다. 저는 그들이 잘 못되도록 빌지를 않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축복하시도록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자유로웠던지요! 하나님과 함께 있는 느낌이 얼마나 좋았던지요? 그것은 얼마나 가치 있는 지불이었던지요?"
제 7장 금식을 통한 영혼의 치유
래리 훼닌
이사야 58:6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어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금식과 기도가 가져다주는 축복은: 영혼을 치유하며, 마귀를 쫓아내고, 감정의 상처와 과거의 고통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여 줍니다.
금식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끌어 갑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사탄의 흠집을 낸 결과인 결박을 우리 안에서 풀어 주십니다.
사탄의 흠집들(bruises)이란 우리들이 사람이나 환경을 통해 우리에게 가해진 상처들의 결과로 우리의 감정 안에 생긴 깊은 상처를 말합니다.
에베소서 4:27 "마귀로 틈 못 타게 하라"
틈(place)이라는 말은 기회(opportunity), 특별한 경우(occasion), 구멍(opening) 혹은 발판(foothold)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 안에 있는 상처는 우리의 몸이 잘라진 것 같은 아픔을 가져다줍니다. 상처는 사탄이 잡입해 오는 경로가 되며 평생토록 다시 발생하는 아픔의 원인이 됩니다. 금식과 기도를 통하여 성령님께서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시고 깨끗케 하실 것입니다. 시간은 진정한 치유자가 되지를 못합니다. 만약 감정적인 상처가 치유를 받지 못한다면 그들은 더 나아질 수가 없고 다른 감정적인 문제들로 자라게 됩니다.
감정적인 상처는 한꺼번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마음의 고통의 열매를 생산하는 뿌리처럼 자라나며 마귀가 잡입 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15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이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 까 두려워하고"
사탄의 목표는 우리 마음에 흠집을 내어서 우리의 의지를 묶어 놓고 우리를 마음대로 조종을 하고 또 우리의 삶을 파괴하기 위해서 우리 마음이 어둡게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에 의해 마음과 의지와 감정으로 설계가 되어 성령님의 통제를 받고 또 고침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 감정, 의지가 상처나 흠집이 있다고 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섬기는데 큰 영향을 미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품과 형상을 가진 거룩한 하나의 온전한 총체(wholeness)적인 존재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3-24 "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이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사탄은 사람들이나 환경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고통을 감염시켜 부정적인 행동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의 문제의 뿌리의 원인은 사람이나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어떻게 그것들에 반응을 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거절(Rejection)은 거의 모든 감정적인 문제들의 뿌리이고 영적인 성장을 방해하는 열매를 가져오고, 불안한 감정과 귀신에 눌리게 만듭니다. 거절로부터 오는 2가지의 다른 문제들이 있는데: 1. 자기 투사(self- rejection), 마음 안에 있는 상처 (우리 안에 일어나는 일들), 2. 밖으로 나타나는 작용에 대한 거절의 두려움(어떻게 다른 사람과 관계를 할 것인가)입니다.
거절의 세 가지의 관점들
1. 증세들:
쉽게 상처를 받음, 감정이 너무 예민함, 성을 잘 내고 과민함
분노, 쓴 뿌리, 비판적이고 판단하는 태도
다른 사람을 신뢰하지 않음, 대인관계가 쉽게 무너짐, 세계의 모든 것이 그들을 상처를 주는 것 같음
고립, 자기 중심적, 이기주의적, 다른 사람을 신용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 잘난 체 함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에 대해 두려워함, 사람들의 이목에 신경을 씀
옷 입는 것
지위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이려고 함
교리와 실천에 민감함, 신비스럽고 사교의 가르침에 열려 있음, 신비주의적이고 비현실적이고 또는 비실용적인 습관을 가짐
남자라고 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나쁜 일이던 좋은 일이든 아무거나 행함
습관적인 거짓말, 의심이 많음, 회의 적임, 무가치하고 불확실한 것에 대해 깊은 느낌
매우 낮은 자존감, 낮은 자기 이미지
알코올 중독, 약물중독, 담배, 록 뮤직, 영화, 현실을 탈피하기 위해 긴 시간 동안 일함
머피의 법칙의 결박 아래 삶 "만약 잘 안되면 어떻하지"
2. 원인
거절의 이유는 일반적으로 어린 시절에서부터 옵니다. 가족은 거절을 가져다 주는 원인 중에 하나입니다. 가족을 위한 하나님의 뜻은 사랑을 받고, 감정적으로 성숙할 수 있도록 용납 받고 인정받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은 자기 혼자 먹으며 클 수가 없습니다. 어린이들은 반드시 영양을 공급받고 부모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린이가 자라날 때 그들의 자기 이미지와 도덕적인 가치 그리고 감정적인 안정감 등을 그들의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갖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들에 대해 부모가 말하는 것을 모두 믿습니다. 부모님들의 말과 행동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 하는 것은 자녀들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줍니다.
잠언 18:21:"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를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부모가 아이들에게 죄를 짓는 것은 말하는 것으로 인해 자녀들의 감정에 상처를 줍니다. "네가 어떻게 착한 사람이 되겠니? 너는 나쁜 놈이야! 왜 너는 다른 아이들과 같이 못하니, 네 형, 동생만도 못한 놈아! 돌대가리야! 사람들이 어떻게 보겠니 창피해 죽겠네 이거!, 너는 뚱뚱하고, 땅딸보, 꺽다리" 자녀들은 부모와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도 영향을 받습니다. "그 사람이 잘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를 가질 계획이 없었는데... 나는 남자(여자)를 원한다. 그 사람은 너무 늦어... 내 생각에는 그 사람 싹이 노래"
이와 같은 말은 자녀들을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영혼 속에 있는 것을 화폭에 담아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이 아이들에게 자신의 정보를 줍니다.
부모님들이 그들의 행동으로 자녀들을 대하는 것은 죄입니다. 이혼과 육체적이거나 성적인 학대는 자녀들에게 비극적인 것이고 자녀들은 부모들보다 자신을 비난합니다. 부모님들이 자신들 스스로 몰두하거나 게으른 것은 그들의 자녀들에게 죄가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왜 부모들이 자신들과 함께 시간을 갖지 못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부모님들은 그들의 감정을 문제들을 자녀들에게 그대로 전해 주며 은연중에 자녀들이 따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무능력과 사랑을 주거나 보여주지 못할 때 자녀들의 감정에 빈곤함을 줍니다. 시간이 지나서 자녀들이 폭력적이거나 반항적이 되면 부모님들은 충격을 받습니다. 부모님의 사랑과 돌봄을 대신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떤 자녀들은 좋은 집에서 좋은 부모에게 좋은 교육을 받는 축복된 가정에서 지냈으나 후에 이혼, 깊은 상처, 사람과의 깨진 관계들로 인한 거절을 당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어떠한 일에 대해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반응은 얼마든지 보전을 할 수 있게 됩니다.
3. 자유를 위한 7 단계
단계를 마다 여러분의 기억을 돕기 위해서 R로 시작이 됩니다.
1단계: 원인(原因)을 깨달으세요 (Recognize the source)
고의적인 것이던지 아니던 당신이 고통을 강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나, 당신의 부모나, 다른 사람들 혹은 당신의 환경 때문이 아닙니다. 그 원인은 사탄의 흠집들이고 또 상처에 대한 당신의 반응인 것입니다.
야고보서 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 로서 내려오나니....."
2단계: 받은 상처를 사실적으로 그려보세요 (Realize what has been wounded)
당신의 자기 인식(self-image)과 당신의 가치관(self-worth)의 느낌이 상처를 받았습니다. 사탄의 거짓말은 당신에게 잘못된 자인식을 그리도록 하는 원인이 됩니다. 성령님을 따라 하는 금식과 기도를 통해 당신의 상처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당신을 묶어 놓은 사탄의 거짓말로부터 자유함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당신의 마음이 새롭게 되며 성령님께서는 당신의 영혼에 변화된 삶을 가져오도록 하십니다.
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제 3단계: 당신의 죄악 된 반응들을 회개하십시오(Repent of your sinful responses)
당신의 죄악 된 반응들을 회개하고 그들에 대한 당신의 행동들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하는 것에 의해 좌우되지 말아야 하고 우리들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회개는 사탄이 누르고 있는 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이며 치유를 위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도록 하여 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7:30 "알지 못하는 세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제 4단계: 용서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에서부터 자유하십시오.(Release all other from your judgment through forgiveness)
용서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에서부터 자유하십시오. 당신에게 상처를 준 모든 사람을 용서함으로 당신의 분노와 쓴 뿌리에서 놓임을 받으셔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용서를 하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로 인해 당신 안에서 용서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에베소서 4:32"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 같이 하라"
제 5단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을 통해 사탄이 당신 안에 놓아둔 모든 저주와 당신 안에 있는 사탄의 거짓말에 대해 깨뜨리고 선언하십시오 (Renounce all of Satan's..)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당신의 입술로 사탄의 모든 문을 닫고 묶는다고 선언을 하십시오. 당신은 용서와 회개 그리고 진리의 말씀 위에 서 있는 다면 당신을 점령하고 있었던 사탄의 법적인 근거를 빼앗아 버린 것입니다.
야고보서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 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제 6단계: 당신의 과거로부터 돌아서서 당신 자신을 용서하고 치유함을 받으세요.(Receive your healing, forgive yourself, and turn from the past)
당신의 과거로부터 돌아서서 당신 자신을 용서하고 치유함을 받으세요. 당신의 과거 안에 살지 말고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것을 따라 살도록 하십시오. 해방은 행하는 것입니다. 당신을 시험하고 유혹하든 과거에 습관으로부터 돌아섰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서 고치시고 승리하신 것을 당신의 입술로 고백을 하십시오. 당신의 생각들을 지키십시오.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도록 하십시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아야만 합니다. 그는 당신의 견고한 보장이 되시고 그의 은혜는 당신이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당신에게 힘을 주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4:6 "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제 7단계: 화해(Reconciliation).
가능하다면 깨어진 관계들이 화해가 될 수 있도록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사탄의 속임수에 주의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알고 성령님께서 당신이 갈 준비를 해주시기 전까지 다른 사람에게 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십시오. 모든 사람이 당신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화해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경건하게 하나님께 상담을 구하시고 당신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십시오.
고린도후서 5:18-19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로서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시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각자가 다르고 한사람 한사람 개인적으로 다루어져야만 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지침에 불과 합니다. 이것들을 자세히 말한다면 한 단계마다 몇 권의 책이 나올 수 있을 만큼 큰 주제들인 것입니다. 진지한 상담은 격려하는 것입니다. 가끔 어떤 상처에 대한 치유는 상당히 더디고 어떤 것은 쉽고 또 빠릅니다. 금식과 기도를 통하여 주님의 성령에 의해 영광에서 영광으로 그의 형상을 더욱 더 닮아 갈 수 있도록 당신은 주님과의 개인적인 관계가 깊게 자라 갈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18"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제 8장 금식을 통한 자기 연민으로부터의 해방
한번은 얼마 동안 제가 기쁨이나 자유로운 느낌을 가지지 못했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때 저는 며칠 동안 침대에서 뒤치다꺼리면서 잠을 자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자기 연민과 절망감을 느끼며 고통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저는 일을 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제 마음이 아부 무거운 압박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님께 묻기를 "왜 제가 이러한 느낌을 갖는 것인가요?" 저는 저의 삶 안에 자유함을 받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기쁨이 없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했기 때문에 나의 기쁨과 자유함을 잃어버린 걸까? 일에 도착을 해서도 저는 하나님께 계속 기도를 하였습니다. 저는 일에 마음을 쏟을 수가 없어서 화장실로 갔습니다. 그 공장에서는 저와 제 여자 형제밖에 여자가 없었지만 저는 방해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제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저는 이 같은 마음보다 자유함을 갖고 싶어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 제게 이 성경 구절들을 주셨습니다.
요한 계시록 3:15-16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덥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덥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
"누가복음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주님께서 제가 미적지근한 신앙을 가진 것과 제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저는 주님께 전적으로 헌신하였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에게 육신이 하나님보다 앞선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같은 죄는 우리 위에서 뻗어 올라가기가 아주 쉽습니다. 처음에는 알기 힘들지만 그것이 조금씩 자라면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우리가 비참해지기 시작을 합니다. 저는 제 생활 속에 죄를 짖기를 원치 않을 뿐 아니라 항상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것이 저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힘이 드는 것을 깨닫기 시작을 하였고 또 더 이상 사람들에게 증인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영적인 게으름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너무 열심히 일을 하니까 몸이 피곤하고 마음이 피곤해 그러겠지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주님께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어 보았는데 주님께서는 7일 동안 금식을 할 마음을 주셨습니다. 처음에 저는 7일이 길게 느껴져 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제가하는 일이 힘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는 하루에 10시간씩 6일 동안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힘이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솔직한 이유로는 제가 먹는 것을 아주 좋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맛보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저는 음식을 좋아하는 저의 식욕을 포기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 네가 진정으로 자유함을 누리기를 원하며 또 얼마나 나를 기쁘게 하기를 원하고 있니?"라고 물어 보셨습니다. 그때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금식을 하였습니다.
이때가 제가 처음으로 오직 물만 먹고 먹지 않고 7일 동안 금식을 한 것입니다. 금식하는 동안에 주님께서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이 없도록 해 주셨습니다. 금식을 하면서 힘든 일을 일 주일 동안 거뜬하게 해 내었던 것이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제가 약해졌다고 느낄 때 주님께 힘을 달라고 기도하면 주님께서 항상 힘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힘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제1일: 하나님께서 저의 문제의 뿌리를 보여 주셨는데 그것은 거절의 감정 그리고 자기 연민으로부터 고통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거절은 제가 어머니의 복중에 있을 때부터 제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저의 아버지께서는 제가 태어나기 전 한국전쟁 중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저의 어머니는 임신 8개월 중에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벌써 5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고 그때까지는 전적으로 아버지께서 집안을 이끌어 가셨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은 어머니에게는 큰 충격이셨습니다. 어머님 혼자 감당하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땅에 태어나는 것을 어느 누구도 반갑게 생각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기쁨은 고사하고 거절을 당한 것입니다. 모든 식구들과 친척들은 저를 부를 때마다 "지지리도 운이 없는 아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저의 가족에게 일어나는 좋지 않은 일들마다 비난을 당했습니다. 한국전쟁이라고 하는 어려운 상황과 아버지가 없는 6 명의 자녀들을 어머니로서는 도저히 더 이상 돌보아 줄 수가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두 살 때 저를 친척집의 양녀로 보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적적으로 저를 삼 년 뒤에 다시 친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오도록 해 주셨습니다. 기적적인 것은 제가 하나님께 제 안의 상처들을 치유 해주시기를 간구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저를 치유하시고 자유케 해주셨습니다. 미지근하다고 하는 것과 저는 싸우기 시작을 하였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 마음속에 있는 거절의 감정의 문을 열어 주셨기 때문에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설 수 있었습니다.
제 2일: 하나님께서 저에게 견고함이 부족하다고 하는 것과 거절감의 결과로 자신을 쓸모 없게 느끼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저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 주실 때 저는 그것들을 회개하며 주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제 3일: 승리의 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안에 기쁨을 주시며 저를 고치시고 자유케 해 주셨습니다. 첫 사랑을 다시 찾고 주님의 기쁨이 저를 강하게 해 주었습니다. 제가 육체적으로 가장 약해 졌다고 느꼈지만 새로운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주님의 뜻과 주님께 순종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 4일: 주님께서 제게 말씀해 주시기를 저를 사역자로 세워 다른 사람들 특히 저와 같이 자기 연민과 거절감의 문제 속에서 고통을 당한 자들을 위해 사용하실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 5일: 주님께서 이 간증을 저희 교회의 소식지에 실어서 함께 나누기를 원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저는 한글로 먼저 쓰고 그 다음에 영어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이 때에는 처음부터 영어로 쓸 수 있도록 주님께서 도와 주셨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새로운 경험이 되었습니다.
제 6일: 저는 이전보다 더욱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주님께서는 참으로 저를 새롭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저의 삶 속에 훈련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을 느꼈고 저의 감정을 따라 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실감을 하였습니다. 해방은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사탄을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다음의 성경 구절들을 가볍게 다루지 마십시오. 에베소서 6:10-12, 베드로전서 5:7-8, 요한복음 10:10, 그리고 고린도전서 10:4-5 우리는 우리 마음을 지키고 주님 안에서 우리의 관계를 지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기 연민은 마귀가 우리 안에 자리를 잡도록 문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제 7일: 우리는 교회에서 아름다운 예배를 드리고 모든 사람들이 참으로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제 삶을 다시 전적으로 조정을 하신다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게 해주었습니다. 주님은 정말 아름답고 얼마나 좋은 지요? 주님의 이름을 영원까지 찬양합니다.
제 9장 금식을 통한 사람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1984년 10월, 하나님께서 제게 꿈을 주셨는데 그 꿈에서 많은 청중들 앞에서 간증을 하며 설교하는 것을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일어나자 마자, 꿈속에 있었던 것으로 인해 즐거워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 삶 속에 이루신 것을 설교와 간증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것이 항상 제가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 것인지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 사람으로서 저는 자기 확신이 부족하였습니다. 저는 성장하는 동안, 항상 나는 덜 떨어졌고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말하면서 컸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보다 사람들 앞에서 영어로 설교하며 간증할 만큼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큰 문제였던 것입니다. 제가 사람 앞에 서서 말할 때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염려하며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 꿈은 진정으로 제 마음을 휘집어 놓고 또 선동을 하였기 때 저는 "주님, 주님께서 제가 언젠가는 많은 청중들 앞에 서서 저의 설교와 간증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제게 보여주신 것을 압니다. 그러나 주님, 제 눈에는 제가 그 일을 하기에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까 하는 두려움이 없이 청중들 앞에서 담대하게 말을 할 수 있도록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2개월 뒤인 12월, 저는 처음으로 1985년 2월에 있는 지역 여성들에게 제 간증을 해 달라고 하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1985년 1월, 저의 집에서 지역 여성을 중심으로 중보 기도 모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임에서 저는 하나님께서 꿈속에서 보여주신 것들을 이 분들과 함께 나누어야 겠다는 강한 느낌을 가졌는데 처음에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을 말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라고 느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언젠가는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간증하며 설교할 것에 대한 꿈을 말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저를 향해 기뻐하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너를 통해 하시는 일에 대해 하나도 놀라지 않는다" 고 말하였습니다.
어느 덧 2월이 되어 저의 첫 설교 약속 때문에 매우 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저는 일을 하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확신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여성들 앞에 서시 전에, 어떤 두려움이나 의심보다는 그들을 돕고 섬겨야 겠다는 마음이 끌어 올라왔습니다. 제 그것을 비어 드리기 시작을 했고 하나님께서 일을 하기 시작을 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사용하셔서 집회에 모인 많은 여자 분들이 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하셨는지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3월에, 저는 다른 여성 모임에 참석을 하였는데 설교자가 참석한 여성들에게 사역을 하였는데 저는 그 설교자가 예언을 하며 사역을 하는 것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저는 구석에 앉아서 참석한 사람들 모두에게 큰 은혜가 임하기를 위해 중보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설교자가 저를 청중들 앞으로 저를 불러내더니 쳐다 보았 습니다. 그녀는 제가 설교와 간증을 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였는데 그녀는 그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1985년부터 문을 여시기 시작을 하여 1988년까지 계속 될 것이라고 하고 중단을 하였습니다. 그녀는 신나는 흥분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을 하였습니다. 1988년에는 세계적으로 저의 이름이 퍼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녀의 예언을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작년 가을에 제게 주신 꿈을 확신하는데 이분을 사용하고 계시다는 것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이러한 일을 이루신다는 것을 의심이나 두려움이 없이 확신을 갖게 해 주셨습니다. 그녀를 통해 예언을 받을 때 저의 집에서 모여서 중보 기도를 했을 때 그들을 통해 받았던 것처럼 큰 기쁨이 넘쳐흘렀습니다. 저의 꿈이 전적으로 분명해 지니 저의 마음에 어떤 두려움이 넘쳐흘렀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한국 사람으로서 저는 굉장히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능력 있게 사용을 하신다고 하는 것을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의 어느 작은 촌구석의 한 계집아이, 또 작은 도시에서 목회를 하는 제 남편을 도와주는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 자신에게 어떤 긍정적인 면을 찾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사람을 두려워하는 점을 극복할 수 있데 해 달라고 매달리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1995년 여름, 저는 저의 묶임 들로부터 자유함을 갖기 위해 7일 동안 금식을 결심하였습니다. 금식을 하는 동안에 저는 지난번 저에게 예언을 해 주었던 분의 집에서 집회를 갖는다는 소식을 들을 때 성령님께서 제가 그 집회에 참석하도록 인도하시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같이 참석을 하였는데 전과 같이 강력한 주님의 움직이심을 느끼고 있는데 또 그녀가 저를 위해 기도하며 예언을 해 주었습니다.
" 당신은 당신의 영 안에서 치열한 전쟁을 치를 것이고 당신의 삶 속에서 진정한 해방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 밤에! 전심을 다해 믿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자유케 해주실 것입니다. 당신은 해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여자 목사님은 저를 만지지도 않았는데 저의 팔이 앞으로 갔다 귀로 갔다 요동을 하며 서서 이 묶임에서 저를 자유케 해 주시기를 부르짖었습니다. 그녀는 두 명의 사역자에게 제 발에 기름을 바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성령님의 능력 아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제 뒤에는 소파밖에 아무도 없었는데 뒤로 넘어져 버렸습니다. 소파 위로 넘어진 후에도 저의 팔을 계속 올리며 방언으로 기도를 하기를 시작을 하였습니다. 저는 제가하고 있는 것이나 자세가 아주 꼴사나운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저는 오직 한 단어만 말하고 있었습니다. 정상적으로는 저는 기도를 유창하게 하는 편이기 때문에 저는 저의 자세와 방언을 바꾸려고 애를 썼는데 저는 바꿀 수고 없고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같이 온 일행들에게 바보스럽게 보일 것이라는 생각을 할 때 두려워지기 시작을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한 20분 정도 계속 되었을 때 주님께 "주님!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또 도움이 안되는 것이라고 느낄 때 주님께서 " 너는 계속해서 너의 손을 움직이고 유창하게 말하려고 하지 말라. 누가 너의 삶을 움직이고 있으며, 너의 손을 움직이고 있고, 너의 위치를 변화시키고 있고, 너의 말을 변화시키고 있겠느냐?" 저는 그분께서 능력을 가지고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것이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 내가 청중들 앞으로 너를 인도할 때, 내가 너를 통해 역사 하도록 하겠느냐?" 고 물으실 때 "예 당신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 때 빌립보서 4:13절의 말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을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진리가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의심에 가득찬 저를 강타하였습니다. 성령님께 제 자신을 모두 맡긴다면 그분께서 이끌어 가시고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그 순간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성령께서 역사 하셔서 저의 꼴 사나 왔던 자세가 바르게 되고 말하는 것도 다시 유창하게 돌아 왔습니다. 주님 중심의 삶 대신에 제 자신을 중심으로 삼았던 부분이 진정으로 깨뜨리는 회개와 더불어 제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나를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것보다 내가 무엇을 할까? 에 대해서 생각을 해 왔었습니다. 이 진실한 회개 이후, 하나님께서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에서 저를 치유해 주셨습니다.
이 일 이후에 하나님께서 다른 여성들의 모임들과 교회에 설교할 수 있는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1986년, 주님께서 책을 슬 마음을 주셔서 "지독하게 운이 없는 아이(The Bad Luck Baby)를 써서 1987년도에 출판을 하였습니다. 1988년도에는 제가 예언을 받은 대로 저의 이름이 전국에 퍼지게 되어 저는 청중들 앞에서 제가 꿈을 꾸었던 것처럼 저의 간증을 말하며 설교하고 가르치데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저는 금식은 육체의 일을 제거하는데 도움을 주고,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을 인정하는 것, 절제하는 것, 그리고 저의 삶을 취하시도록 하는 것까지 도움을 받았던 것입니다. 명백한 것은, 주님께 대해 견고하고 확신 있는 것은 금식으로부터 얻은 중요한 결과입니다. 저는 결코 그러한 경험을 잊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제 10장 금식을 통한 육체의 치유
1988년 12월, 저는 층계에서 넘어지는 사고로 등을 다쳤는데 급히 병원으로 실려 가 확인을 해보니 척추 뼈 두 대가 골절을 당하였습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고통이 심하게 왔습니다. 5일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는데 한번은 의사가 3개월 동안 깁스를 하고 있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3개월 뒤에도, 관절에 대한 부분이기 때문에 통증이 사라질 것에 대한 보장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기간 저의 신경을 안정시키기 위해 알약들과 수많은 주사를 맞고 있었습니다.
활동적인 사람인 제가 그 긴 기간 움직일 수 없고 육체적인 한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그때에는 제가 2년 동안 세계적으로 돌아다니면서 각종 모임과 교회들에서 간증과 설교를 하면서 주님께서 저를 통해 하시는 일을 즐기고 있던 때입니다. 제 몸이 이렇게 된 것을 얼마나 끔찍했던지! 저는 그때 제가 떨어질 때 매우 가깝게 있던 사람을 보고 분노하여 싫어하였습니다. 그 사람의 잘못으로 제가 굴러 떨어져 이 공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느꼈었습니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주님께 저를 고쳐 주시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먼저 제가 분노를 가졌던 사람을 용서해야만 한다고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자비롭게 대하시는 것과 같이 저도 그 사람을 자비롭게 대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고통을 느낄수록 그 사람을 더욱 미워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굉장히 힘이 들었습니다. 주님께서 저의 척추가 고침을 받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용서를 해야 한다고 하셨을 때 저는 척추가 먼저 낳아야 한다고 했지만 더 이상 주님과 실랑이를 벌일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7일 동안 금식을 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금식 기간 중, 저는 약을 복용하지 않았지만 조금밖에 고통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저는 주님께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저의 고통을 치유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풍성한 자비를 베풀어 주셔서 저는 더 이상 고통을 생각하지 않게 되고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매우 특별하게 저를 만져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더 이상 미움을 가지지 않고 사랑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저를 위해 해 주신 일에 감사를 드릴 때 주님의 평화와 기쁨이 제게 넘쳐흘렀습니다. 저는 주님으로부터 저의 척추가 치유 받았음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감사하게도 저의 척추는 사고를 당하기 전과 같이 건강하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정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사고를 당한지 13일째 되는 날, 저는 교회에서 기적 치유 집회에 참석을 하였습니다. 그 밤에 부흥사가 저를 위해 기도를 해 주었을 때 하나님의 능력 아래 뒤로 넘어졌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몸에 깁스를 하고 있었지만 뒤로 넘어져 있는 것입니다.. 제가 바닥에 누워 있는 동안 제 척추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제 뼈를 고치시고 만지시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누워 있었는데, 제 마음 한 구석에서 진심으로 치유를 받았을까 하는 의심이 올라 왔습니다. 저는 일어나자, 천천히 저의 등을 확인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앞으로 굽혀 보고 또 손을 높이 들어보기도 하였는데 전에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고통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저는 반복하고 또 빨리 해 보았는데 여전히 고통이 없었습니다! 저는 큰 소리로 주님을 찬양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교회당 안을 앞뒤로 달리면서 그 밤에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주심에 대해 감사를 드렸습니다. 주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립니다. 집으로 도착하자마자 저는 저의 깁스를 제거해 버렸습니다.
두 주간이 지난 후 저는 의사에게 검진을 받기 위해 갔습니다. X ray는 상당히 좋아진 것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의사는 아직까지 제가 깁스를 풀었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의사에게 제게 이루어진 사실들을 말해 주니 의사는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시 깁스를 하기까지는 나가게 하지 않으려고 하였지만 제 마음에는 완전히 치유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 번에 검진을 하였을 때에는 그가 보기에는 저의 등이 얼마나 아름답게 치유가 되었던지 쉽게 인정을 하고 가도록 하여 주었습니다. 의사는 앞으로 살아갈 때들에 어떤 통증이 온다고 놀라지 말라고 상기 시켜 주었습니다. 주님께서 제가 용서를 할 수 있도록 제 마음을 먼저 치유를 해 주시고 약속대로 저의 척추를 완전하게 치유하여 주셨습니다.
사고가 난지 일년 뒤, 저는 제 무릎에 이상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등을 다쳤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친구 한 명이 접골 전문의를 만나 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고통이 정확히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게 점점 더 심해지기 때 의사를 만나기 위해 갔습니다. 의사에게 갔을 때 그는 저의 등을 x ray로 촬영을 하면서 관절 부분에 통증이 있으면 말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의사에게 치유를 받은 이후로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의사는 신자인데 그의 눈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X ray를 제게 보여 주면서 문제가 되는 부분을 지적을 해 주는데 저는 굉장히 고통스러워야 정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상태에 있는데도 제가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고 하는 것을 믿기 힘들어했습니다. 의사는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말하기를 "하나님은 진짜 살아 계시고 당신에게 기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그는 제 척추에서 아무란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고 단순히 알지 못할 때 넘어져 발목이 약간 골절을 입은 것뿐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제가 저의 주치의를 방문을 하였을 때 그는 계속해서 만약 들에 어떤 문제가 있으면 말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항상 그에게 말하기를 "아니요" 저는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치유해 주셨다는 것을 믿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는 만면에 웃음을 지으면서 말하기를 "누가 당신을 치유를 해 주었던지 간에 저는 참 기쁩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지금 척추 때문에 고통을 당하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제 11장 금식을 통한 육(肉)의 훈련
하나님께서 저에게 일찍 일어나서 주님과 함께 보내시도록 요구 하셨습니다. 저는 밤늦도록 일하고 아침에는 푹 잠을 자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어렵다는 생각 속에 그것을 접어 두고만 있었습니다. 제가 또 비참해 지기 시작하기까지 주님께서 계속 그것을 다루어 가시니 저는 순종하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게으른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실감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마음속에서 계속 불타오르는 열망은 주님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 가능성이 있는 곳까지 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제가 해야 할 것들이 대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날마다 일찍이 일어나 하나님과 보내는 시간을 갖도록 해 달라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주님께서 제 마음에 금식할 마음을 주셔서 얼마나 해야 할 것인지를 여쭈어 보니 그것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얼마 동안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알지 못한 채 복종하는 마음으로 금식을 시작을 하였습니다. 전에 금식을 할 때처럼 기간을 말씀해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제 마음이 혼란스러웠습니다.
이 기간에는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 것인지 몰랐기 때문에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날에는 6시에 일어나서 특별한 곳에서 기도하였습니다. 저는 주님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주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둘째 날에 일어날 때는 매우 졸린 상태 였습니다. 그리고 잠이 깨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샤워를 하였습니다. 그후 저는 특별한 장소로 주님을 만나기 위해 갔습니다. 저는 "주님 제가 주님을 섬기고 예배하고 찬양하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 " 한동안 기도를 하였습니다.
삼일 째 되는 날 아침, 6시가 된 것을 알았는데 아직까지 피곤하고 졸렸습니다. 주님께 5분만 더 잠을 자도록 부탁을 했는데 주님께서는 지금 당장 일어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계속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저는 주님께 간곡하게 부탁하며 말하기를 " 딱 1분 만!" 이것은 계속해서 일어나기 전까지 다섯 번씩 계속 되었습니다. 넷째 날에는 약 15분 동안 걸려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다섯째 날에는 일어나기 위해 30분이 걸렸는데, 매일 아침 주님과 실랑이를 벌이는 것이 계속 되었습니다. 이런 실랑이를 벌이면서 일어났지만 저는 여전히 피곤하였습니다. 저는 주님께 " 하나님, 제가 금식 중이기 때문에 배가 고프고, 약하고, 졸린 것을 주님께서 아시지요?" 저는 모든 종류의 애교를 동원하였습니다. 저는 단호하게 주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 기도할 것입니다. 주님. 이제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즐거움이 전혀 없었습니다.
육일 째 되는 날 아침 제가 침대에서 일어날 때까지 45분 동안 주님과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특별한 장소로 걸어가면서 중얼거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피곤해요. 오늘이 육일 째인데 굉장히 배가 고파요. 금식을 언제 끝내야 하나요?" 영어 반 한국말 반으로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는 동안 저는 무관심한 대도로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기도하고 또 했지만, 그 기도가 아무데도 가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어디 계시나요?" 제 기도가 하늘에 상달하기는커녕 땅에 떨어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또 "하나님! 어디에 계신가요?"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6시부터 이곳에 있었는데 너는 어디에 있었니?" 그때서야 저는 어떤 일인지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깨어진 마음으로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를 하였습니다. 저는 왜 하나님께서 금식 기간을 말씀하여 주시지 않았는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이것이 시작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제가했던 첫 번째 6일간의 금식이 보여 준 것은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복종과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 것인지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제게 꼭 필요한 훈련이었습니다. 또 6일간을 더하게 되어 총 12일을 금식을 하면서 주님께서 저를 완전히 깨뜨리시기를 원하였습니다. 금식 기간 중, 저는 자명 시계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신실하게도 정확한 시간에 저를 깨우셨습니다. 주님께 전적인 복종하며 맡기는 것을 가진 이후에 주님께서는 제가 일어날 때가 되면 창 밖에서 새들이 지저귀도록 하셔서 저를 집중시키시고 또 깨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우리가 복종한 후에 주님께서 얼마나 신실하신 지를 보여 주십니다.
제 12장 높아지는 것은 낮아지는 것이다
래리 훼닌
당신의 필요가 무엇입니까? 당신은 무엇을 기대하고 계십니까?
어떤 사람이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좌절도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저의 가까운 친구이자 부흥사인 스티브 샘손이 한번은 " 우리들의 기대들은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기대들은 매우 낮은 것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능력 안에서 우리의 필요를 만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에 대한 응답을 위해 하나님께 어떻게 구할 것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과는 같지 않지만 그의 길은 최고의 길이며 오직 길 자체입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 안에서 성공을 원하고 제일이 되는 것을 만들고 싶다면, 저는 당신을 위해 신나는 소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높아지는 것은 낮아지는 것에 의해 시작된다
만약에 내가 내려가는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좋은 질문입니다. 제가 그것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마태복음 6:16-18
"금식 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이미 자기 상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금식 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너희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전심으로 하나님을 구하기 위한 타당한 동기가 없는 금식은 바짝 마르게만 할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왜(why)보다 당신이 하나님을 구하는 법에 있는 것을 더욱 흥미로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형식들과 종교적인 타당성을 넘어서 우리를 보시고 우리 마음의 깊은 것을 보십니다. 금식의 목적은 우리를 회개의 장소와 자기 겸손과 자아의 죽음으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혼적인 욕심을 부정하고 하나님과 가까워지기 위해 우리의 육신을 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가 사람의 뜻에 서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에 설 수 있도록 하여 줍니다. 여러분 보세요. 하나님께서는 금식이 필요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필요합니다. 금식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금식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또 그를 구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방법중의 하나입니다.
이 말씀들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역대하 7:14
"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짜라"
이사야 58:3
"이르시기를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하느니라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얻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 도다"
시편 35:13
"나는 저희가 병들었을 때에 굵은 베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에 돌아 왔도다.
시편 69:10a
"내가 곡하고 금식함으로 내 영혼을 경계 하였더니
마태복음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셨느니라"
고린도후서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한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세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위의 성경 구절을 보면 금식은 우리의 육체와 혼을 주님께 복종 할 수 있게 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낮아지는 5단계
야고보서 4장에서 우리는 낮아지는 5단계를 볼 수 있습니다.
제 1 단계: 야고보서 4:6-10
"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 할 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우리의 한가지 적(敵)은 마귀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만심입니다. 자만심은 스스로 높이는 것(self- exaltation), 자기 충족(self- sufficiency), 나는 할 수 있다는 태도, 나는 아무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까지도." 자만심은 창조 시에 마귀의 몰락하게 한 것입니다. 마귀는 그때 5번씩이나 이사야 14:12-15에서 "내가 ..할 것이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사야 14:12-15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하여 하늘에서 떨어 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I will ascend)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I will exalt)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I will also sit)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I will ascend)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I will be like most high)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라
가장 힘든 공부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 하지 않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것은 잊기 쉬운 것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만심과 반항을 싫어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거룩함에 저항하는 것 아래 있고 또 많은 사람이 하나님과 싸우는 것을 중단하고 돌아서서 하나님의 길을 가는 생활 아래 있습니다.
우리가 돌아설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호의(好意)이고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힘과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연약함을 완전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은혜 안에 서고, 걷고, 믿고 우리의 죄의 용서를 위해 필요합니다.
자 이제 우리는 루시퍼의 5가지 "내가 한다"와 우리가 예수님께서 5단계 내려 간 것을 비교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빌립보서 2:2-11
"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 시나 하나님과 동듬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지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십자가에서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첫째:(5-7절)
경건한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과 함께 게셨습니다. 그러나 자만하거나 과장된 길 안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복종 안에 계시고 사랑 안에 계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주님 안에 있는 것과 우리 자신들 안에 평화가 있는 것을 압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서 선한 것이지만 오직 주님의 영광과 은혜에 의한 것입니다.
둘째:(7절)
주님은 종이 되셨습니다.
이것은 생명을 위해 사랑의 종이 되시기로 선택을 하신 것을 말합니다. 우리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이던, 세상이던, 마귀이던, 혹은 하나님이던 누구의 종 되기를 택하게 됩니다. 구약 시대의 종들은 자유를 선택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러나 만약 종이 그의 주인을 사랑하고 또 그의 종으로 평생토록 섬기기를 원하면 주인은 종의 귀를 문지방에 대고 못질을 해서 표시를 합니다. 그후에 그 자신의 선택에 의해 사랑 때문에 종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 (8절)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복종은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5:8 "그가 아들이실 지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우리들 중 대부분은 그것이 쉬운 것 일 때나 우리가 큰 대가를 지불하지 않을 때는 순종을 하는 체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오건 곧 시험들, 끌려 다니는 일들(trails), 유혹들, 실망들 또는 죽음이 온다 할지라도 근본적인 순종(radical obedience)이 필요합니다. "나는 주님께 복종을 할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질 것 없이 복종을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하루 밤사이에 이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의 뜻 안에 행하는 가를 배워는 삶을 연습하는 것을 통해서 훈련되는 것입니다.
넷째:(9절)
십자가는 벽이나 목에 걸어 장식하는 것이 아니고 죽음의 장소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기까지 순종하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당신의 남편이나, 부인 상사, 자녀들이나 당신의 목사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어떠한 환경이나 사람이 아니라 십자가는 날마다 순종함을 통해 당신의 자연적인 성품들이 죽음을 갖도록 당신이 죽는 곳입니다.
누가복음 9:23-26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려오려거는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의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외면상의 환경은 오직 거울 속에 있는 우리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십자가의 목적은 하나님의 관심으로부터 나의 육적인 정욕의 죽음을 통해 분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섯째:(9-11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우리 안에서 높임을 받으십니다.! 우리는 원수 가운데 살면서 이길 수 있는 그의 이름과 권세를 부여받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 는 고백을 통해 아들 안에서 영화롭게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우리에게 주신 이름으로 존귀케 되는 것입니다.
제 2단계: 야고보서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 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한번은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향기 안에서 옷 입혀졌으며, 마귀는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 자신인 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에게서 마귀가 공포에 떨면서 도망하게 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자주 보여지기는 것을 사랑합니다. 문제는, 많은 경우 제가 마귀로부터 도망치려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뜻에- 곧 큰 확신을 가지고 마귀를 두려워하지 않는 - 복종하게 되는 모습으로 발견되어 지기를 원합니다.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지 못하도록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복종을 할 때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기 시작을 하고 지속적인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됨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종이란 우리의 처소가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고 우리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양보를 하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을 때 권세를 가질 수가 있습니다. 모든 권세는 초자연적인 권세로부터 위임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을 중단하는 것이며 그 뜻에 복종을 함으로 마귀를 저지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은 우리가 행해야 할 것이라는 것을 볼 수 있도록 기록된" 말씀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동의할 때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가 마귀, 사탄, 영적인 권세를 이길 수 있는 권세를 가질 때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을 할 준비를 하여야만 합니다. 주님 안에서 능치 못함이 없으며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시는 뜻을 실제적으로 믿고 행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제 3단계: 야고보서 4: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지금 밥 먹을 시간이니 손 씻고 오너라" 저는 아직 어머니께서 밥을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를 아직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더러운 손으로는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더러운 손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기 위해서는 죄 가운데 있지 않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죄인을 사랑하시지만 죄는 미워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회개함으로 우리의 손을 씻을 것을 원하십니다. 잘못된 동기들과 밑에 깔려 있는 눈에 띠지 않는 것들 곧 쓴 뿌리, 질투심, 정욕, 순종치 않는 것들로부터 우리 마음이 정결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데 양다리를 걸친 이중적인 마음을 갖지 않아야 합니다. 더 이상 미적지근하고 흐리멍덩하고 우유부단하지 않아야 합니다. 봉사하는 것보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시게 해야 합니다.
어느 외줄을 타는 곡예사가 외줄 위를 자전거를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건너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최고의 외줄 타기 곡예사로서 노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줄 위를 자전거를 타고 건너갔다 올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하니 그들이 "당신이라면 할 수 있소! 라고 할 때 곡예사는 "올라 타시오!" 만일 우리가 교회 안에서 우리의 입술로 아름다운 대화를 하는 성도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 줄 위를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해야 합니다. 두 세계에서 모두 최고가 되려고 하는 것을 그만 중지하세요! 오른 편을 택하고 오른쪽에 머물고 오른 편에서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 4단계: 야고보서 4: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우리는 때로는 죄를 가볍게 다룰 때가 있습니다. 곧 우리는가 우리 자신을 의롭다고 하는 주인과 같이 우리의 죄를 살짝 접어 둘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우리의 죄에 대한 진실한 깨어짐은 단순히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용서를 비는 것입니다. 모든 죄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령님을 슬프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참 모습을 볼 수 있을 때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빛 안에 있을 때입니다. 그때 우리는" 슬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자로다"고 말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바라며, 우리를 깨끗케 해주시기를 바랄 것입니다. 죄가 더 이상 감춰 있지 않고, 비밀스러운 허물이 더 이상 없는 정결함! 자유함! 평강과 기쁨 그리고 의로워진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사는 것입니다.
시편 51편과 시편32편을 주의 깊게 읽어보세요. 다윗의 기도문과 같이 당신의 기도문을 만들어 보세요. 지금! 당신이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정결함을 누리며 큰 기쁨을 갖게 될 것입니다.
제 5단계: 야고보서 4: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우리가 우리 스스로 겸손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겸손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큰 차이점이 있는 것입니다. 겸손하다고 하는 뜻이 무엇일까요?
1. 겸손은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의존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2. 겸손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지켜 주시고, 계속해서 보호해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진실한 마음으로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3. 겸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던 간 종 된 마음으로 섬기려고 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4. 겸손은 인간의 상(보답)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5. 겸손은 하나님 안에서 한 단계 낮추어 내려가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필수 과목입니다.
제 13장 금식을 통한 보이지 않는 부분의 치유
1986년 4월 하나님 앞에서 머물러 있는 시간에 빌립보서를 읽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빌립보서 처장을 보는데 제 눈이 20-21절에 머물렀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이 성경 구절로 시작하여 저는 바울 사도와 같이 되고 싶은 끓어오르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께 전적인 헌신한 것과 그를 위해 죽기를 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육신 안에는 선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보았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주님과 가까워져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기도하게 되는 이유가 된 것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구할 때 그분께서는 저를 금식으로 이끄셨습니다. 며칠 동안 해야 할지를 알지 못한 채 언제까지든지 주님께서 원하시는 기간 동안 하려고 마음을 먹고 시작을 하였습니다. 저는 제안에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일이 있다고 하면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지 주님께서 살펴 주시고 그것을 제가 보기를 원하며 부르짖었습니다. 저는 제 속에 어떠한 죄나 다른 것들에 대해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저는 바울처럼 아주 깨끗한 상태로 바울처럼 전적인 헌신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주님께 제가 아직까지 보지 못하는 부분들을 보게 해 달라고 주님께 끈질기게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금식 10일째 되는 동안 주님께서 세 가지의 부분을 제게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보여주신 첫 부분은 우리 부부가 사역에 자족(自足)하고 있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생각 할 수 없었을 만큼 하나님께 쓰임을 받아 많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이 없이 나아가며 하나님과 더욱 깊은 관계 안으로 부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제한하는 것을 갖지 않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제가 가지고 있는 비전이나 마음을 더욱 크게 증가시키셔서 크게 사용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제게 작은 생각을 버리고 주님과 깊은 관계를 가질 것을 원하셨습니다. 그것이 더욱 가치가 있고, 저보다 주님을 더욱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더욱 희생적인 삶을 살기를 원하시며 저의 모든 것을 드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광대하신 길보다 저의 작은 길 안에 있었던 것과 약한 헌신을 회개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두 번째 보여주신 것은 육신에 속한 일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저는 그날 밤에 주님께서 꿈속에서 제게 보여주시기까지는 알지 못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꿈에서, 저는 두 명의 경찰관과 문제를 가지고 있는 우리 교회의 어떤 자매를 보았습니다. 경찰관들은 그 자매를 유치장에 가두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울부짖으며 저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썬! 썬! 제발 와서 나 좀 도와 줘요. 나는 감옥에 가기 싫어요. 저 사람들이 나를 끌고 가지 말게 해줘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 제발" 그녀가 도와 달라고 울부짖고 있을 때, 저는 경찰관에게 달려가서 그녀를 놓아 달라고 사정을 하였습니다. 그때 그들은" 우리는 꼭 데리고 가야만 합니다"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부위를 살피며 그녀를 도와주기 위해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나에게 그녀를 따라가서 그들의 상관에게 도와 달라고 하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제가 그 건물에 들어섰는데 그 건물은 제가 이제까지 볼 수 없었을 만큼 점도 없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건물이었습니다. 제일 높은 사람이 있는 방에 들어서게 되었는데, 그 사람은 그의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사랑이 많고 그의 눈에는 자비로움이 담겨 있었습니다. 저는 그의 의자에 서서 그 자매를 도와 줄 것을 부탁을 하였습니다. 저는 필사적인 마음으로 애걸하다시피 그녀를 도와 줄 것을 애원하였습니다. 그때, 그는 저를 보면서 "네 자신을 돌 보라"고 부드럽게 말하였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돌아보니 아주 불결한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제 몸은 일하는데서 넘어져 굴렀기 때문에 먼지 투성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울부짖었는데 제 얼굴에서 더러운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오! 내가 이렇게 더럽고 불결하다니" 그때 그들이 "가서 너나 깨끗하게 씻어라. 깨끗이 씻고 돌아와서 다시 부탁하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한 남자가 제 옆에 서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남자가 저를 물이 흘러 넘치는 분수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는 사용할 비누와 수건을 보여주었습니다. 깨끗이 씻고 난 후 저는 다시 제일 높은 상관 옆에 있는 청원하는 자리로 돌아왔는데 그때 꿈에서 깼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것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보며 저의 영적인 상태가 어떠했는지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요한 계시록 1:2-5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치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고 그 거짓된 것을 드러낸 것과 네가 참고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내가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이 의미하고 있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저의 눈을 열어 주시고 또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려고 애를 쓰고 노력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저의 노력은 불결한 넝마들과(filthy rags)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역 안에서 무엇을 행하는 가를 보지 않으시고 어떠한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 가를 더욱 살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얼굴을 구하고, 사랑하고 경배하는 것 대신에 우리 육신의 일을 취하기가 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먼저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가질 것을 원하십니다. 그러나 제가 첫사랑에서 떠나 있을 때 저는 모든 더러움 안에 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책임임을 알게 되면 그후에 주님은 제게 다른 사람의 필요를 내가 필요한 것처럼 느끼며 기도하고 도와주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지만 중보자(intercessor)로 저의 사역에 충실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항상 제 삶 속에서 크게 이루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느끼고 있었지만 하나님께 충분한 감사를 드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항상 교회의 일로 인해 바쁜 것 곧 심방하고 성도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러한 일이 좋은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첫사랑을 가지고, 주의 백성들에게 어떻게 사역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분명한 지시를 주님께 구하는 것이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그들의 하나님이 된 것과 같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그들에게 어떻게 하나님께 직접 가까이 갈 수 있는지를 가르칠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것에 대해 보여 주신 후에 저는 저의 육신적인 사역에 대해 회개하고 또 하나님께서 저를 깨끗하고 새롭게 해 주심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세 번째 보여주신 것은 자만함(pride)과 자기의 의로움(self- righteousness)에 대해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6일째 금식하던 날에, 우리 교회에 한 부흥사를 초청을 하였습니다. 제가 교회에 갔을 때 아주 좋고 신선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하나님을 향해 더욱 성장하는데 있어서나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루신 일들뿐만 아니라 이루실 일들에 대한 기쁨을 막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저는 저의 잠재 의식 안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깊은 죄를 하나님께서 밖으로 끄집어내실 때 깜짝 놀랐습니다. 모임에서 저는 종전에는 하지 않았던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교인들 중 몇 사람에게 특별한 사역을 하기를 원하신 다는 것을 강하게 느껴서 저는 강사가 사역을 위해 우리들에게 오기 전에 그들을 위해 기도를 했습니다. 저는 자리에 않았지만 상당히 불편하였습니다. 상당히 두려움을 느끼고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지만 왜 그런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좋은 집회를 가졌고 저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침대에서 뒤척거림만 했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지금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는데 그것을 끄집어 낼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날 제 남편 래리 목사님과 함께 앉아 말을 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남편이 저에게 말을 해 주기 전까지 지난밤에 가지고 있었던 두려움과 위축되는 별로 편치 않은 느낌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상대방이 무엇인가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고쳐 줄 수 있도록 헌신되어 있었습니다. 래리 목사님은 아주 사랑스럽고 부드럽게 어제 밤에 강사가 와서 기도해 주기 전에 먼저 기도해 준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는 것을 말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강사를 위해 기도하며 금식을 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들으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강사님을 통해 교회에 필요한 것을 채우시기를 위해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를 하였습니다. 남편은 제게 당신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었다는 것은 알지만 주님의 시간을 놓쳐 버린 것 같다고 말을 할 때 저는 래리 목사님이 더 말을 계속하기 전에 "이제 그만하세요! 이제 다시는 그러한 짓을 하지 않겠어요!" 저는 방으로 뛰어들어가 침대에 펄썩 엎드리며 주체할 수 없도록 흐느껴 울었습니다.
래리 목사님이 들어와 왜 그러한 일을 했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6일 동안 물만 먹으며 금식을 한 후에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서 이루신 일들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저는 "지금 당신이 제가 주님 안에서 확실하게 느끼고 있는 때에 하나님께 잘못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더 이상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대해 제 자신을 신뢰할 수 있겠어요?" 남편은 저에게 하나님을 놓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놓친 것이라고 말을 했지만 저는 남편의 말이나 위로를 듣기를 원치 않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큰소리로 울었습니다.
저는 금식을 한 후에라도 나 자신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입으로 소리를 내어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속에서는 사람들과 부흥사가 어떻게 생각했을까 두려워졌습니다.
우리 교회의 부흥회에 인근에 있는 다른 교회 사람들이 많이 참석을 하였습니다. 저는 생각하기를 " 목사 부인인 나에게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 까?" 제가했던 일에 대해 저는 상당히 부끄럽고 화가 났습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난 그 다음 날, 제 자신이 참 가련해 보여,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고 이야기를 하기 싫었습니다. 그냥 저 자신을 침대에 담요를 뒤집어쓰고 있고 싶었습니다.
밤에 잠을 잘 때, 하나님께서 제게 다음과 같은 꿈을 주셨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어느 상점에 가서 우리 교회의 부부 한 쌍을 만났습니다. 저는 그 부부를 보기 원치 않아서 구석에 숨었습니다. 그들이 저를 보고 괜찮은지 물어 보았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정직하지 못하게 좋다고 말한 후에 장면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정지할 수 없이 달리는 자동차에 연결된 끈 하나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끈을 가지고 차를 세우려고 하였지만 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다리를 보았는데 차가 그 다리에서 퉁겨 나가 물 속에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물 속에 빠진 차는 제가 끈으로 끄는 데로 쉽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자만심의 결과인 난폭한 분노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차는 저를 상징하고 물은 성령님을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인정하기를 원치 않았지만 저는 분노를 가지고 그 속에 빠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아직도 제 마음속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너의 자만심! 너의 자만심! 그것을 성령님께 드려라!" 저는 육신과 아직 씨름하고 있으며 아직도 하나님께 스스로 의롭게 여기고 있는데 그것을 자만심이 아니라고 하나님과 다투고 있었습니다. 금식하며 회개하는 기간 중에 제 자신이 혼란스럽게 된 것이 참 못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제 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것이 너의 교만이다. 너는 그것을 다스려야 한다. 그것이 너의 영적인 성장에 암초이니라"
저는 저 자신에게 화가 나며 또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저는 당신께 가까이 가기를 원합니다. 저는 이번 금식 기간 중에 주님께서 저에게 보여주신 것이기에 좋을 줄로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주님! 저는 바울처럼 전적으로 주님께 헌신되기를 원하며 주님의 완전한 뜻 안에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 제 마음에 평화와 위로가 생길 때까지 먹지 않고 마시지도 않기를 원합니다. 주님!"
일어난 후에 저는 누가 저를 보는 것이 두려워졌습니다. 사람들을 보지 않으려고 오후 늦게까지 백화점으로 사람들을 피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도망갈 수 없었습니다. 제가 집으로 돌아 왔을 때 저의 교회의 한 부부가 저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난 이틀 동안 이루어진 일들에 대해서는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저를 만나라고 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아무런 일이 없었냐고 물었는데 저는 "아무런 일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들은 또 제게 묻기를 " 잘못된 일이 있나요? 목사님의 얼굴을 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요?" 그때 저는 "이것은 제 개인적인 문제인데 그것 때문에 울었어요. 아마 그것 때문에 제 얼굴이 좀 어두운가 보죠> 그러나 정말 괜찮아요 정말이에요"
그들은 "지금 금식하고 계시죠?"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이 제가 며칠 동안 금식을 하고 있고 또 이틀 동안은 물도 마시지도 않는 금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 후에 간호원인 한 자매가 제게 말하기를 그것이 얼마나 몸을 상하게 하는지 모른다고 금식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제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울면서 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과 더욱 가까이 가기 위해 노력을 했어요. 제가 얼마나 추한지 보게 되었어요. 하나님께서 제게 이루신 모든 일들을 위해 저는 주님 앞에 정말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며 사랑하기를 원하고 있어요. 바울처럼 살던지 죽던지 제 삶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만 나타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어떠한 대가를 지불할지라도 그것을 갖기 위해 노력하겠어요. 만약 그것이 40일이나 또는 100일 금식을 하는 한 있어도 저는 꼭 하고 말 거예요"
그 말을 들은 그들은 제게 "선! 한가지 꼭 당신이 알기를 바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얼마나 많은 기간 동안 금식을 할지라도 당신이 하나님의 팔을 틀 수는 없잖아요. 당신은 아무리해도 완전하거나 정결해질 수 없어요. 만약 당신이 금식하는 동안 실수를 계속한다면 당신은 다른 것을 결코 얻을 수 없을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아름다운 길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들은 저를 위해 조용하게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성령님께 제 삶을 몽땅 통제해 주시기를 그분의 손에 올려 드렸습니다.
그들이 돌아간 후 저는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구했습니다. 아주 사랑스러운 아버지 하나님께서 신실하심으로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가르치시며 그들을 개인적인 완벽하게 설계된 계획으로 좌우로 그들을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과하도록 하시고 제가 성령님께 제 자신을 다 양도할 수 있도록 하셔서 큰 변화를 갖도록 하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저는 전부 10일 동안 하나님께서 제게 원하시는 일들이 어떠한 것인지 그리고 그 때는 제가 요구하였던 것이나 그것의 대가인 것을 알지 못하였지만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제가 알지 못하는 부분들(blind spots)에 대해 제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 정말 감사를 드립니다. 제 안에서 저와 같이 오랜 기간 동안 갈등을 함께 나누어주신 주님께 찬양 드립니다.
제14장 처음으로 한 30일간의 금식
10일 동안의 금식을 하는 후에 주님께서 저에게 한국 사람들과 미국 사람들의 연합을 위해서 금식과 기도하도록 기도의 짐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100일 동안 기도할 수 있도록 제 마음에 감동을 주셨습니다. 1986년 5월, 기도하는 기간 중에 한국에 있는 기도와 금식을 주로 하는 기도원인 오산리 순복음 기도원 원장이신 최 자실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럽게 최 목사님께서 저의 주목을 끄셨습니다. 저는 최 목사님과 함께 그녀의 간증과 경험을 들으면서 말씀을 나누는 동안 강하게 끌리게 된 것입니다.
최 목사님은 여의도 순복음 교회의 당회장이신 조 용기 목사님의 장모님이십니다. 조 목사님의 교회는 5십만 명이 넘는 교인들을 가지고 있는 교회입니다.
최 목사님께서는 기도원을 운영하실 뿐만 아니라 세계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최 목사님께서 레이건 대통령 당시 미국의 기도하는 모임에 한국을 대표해서 참석하기도 하신 분이십니다. 최 목사님께서 9월에 저희 교회에 오셔서 말씀을 전해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는데 저는 무척 들떠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사람과 미국사람이 함께 모여 집회를 갖는데 최 목사님께서 가장 적합한 분이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최 목사님께서 인디아나의 그린필드에 오신다고 하는 것이 꼭 꿈만 같았습니다.
1986년 6월 한달동안 저는 3가지의 목표를 놓고 금식기도를 시작 하였습니다.
첫 번째 목표는 제가 영어로 책을 출판하는 일이고, 둘째는 저의 개인적인 사역과 행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능력이 더룩 증가되는 일이고, 셋째는 우리 교회의 부흥과 근접한 한국분들과 미국에 부흥의 물결이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30일동안 물만먹고 금식를 한다고 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이해 할 수 없었지만 순종하기로 제 마음에 확신있게 말하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안에 더욱 성장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금식 3일째 되는 날 하나님께서는 한 재매가 저의 저술하는 책을 도와주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게서 이처럼 빠르고 아름답게 인도해 주시는 것에 대해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저의 일상적인 생활속에서도 그의 약속을 지켜가십니다. 저의 책 "지독하게 복이 없는 아이"가 30일 금식 기간동안에 다 쓸수 있게 되었습니다.
금식이 끝나자 약속되었던 최 목사님께서 한국사람과 미국 사람을 위해 3일동안 집회를 인도하시기 위해 도착하셨습니다. 이러한 집회는 정말 축복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지역에 있는 한국 사람들과 미국 사람들을 위해 함께 사랑으로 연합된 집회를 갖도록 한 것은 정말 놀라운 기도의 응답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신 문을 닫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삶과 사역에 더 강한 기름부으심을 위한 저의 기도에 응답을 주셨습니다. 30일금식 후에 저는 전과는 전혀 다른 역사들을 기대했지만 여전히 똑같았습니다. 저는 전과 아무런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실망하여, "주님! 제가 너무 큰 것을 기대했나요? 왜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거죠?" 저는 주님께 부르짖었는데 그때 주님께서 제게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네 믿음안에 실실함으로 행하고, 날마다 네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 그리하면 그러한 것들이 올 것이다."
저는 제 자신에 대해 날마다 죽고 주님을 따르는 훈련을 할 때 저의 바라던 바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이 시간 이후로 저는 저의 삶속에서 이러한 부분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주님께서 저를 자유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로부터 1년 뒤 오하이오주에서 사역을 하고 있을 때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집회가 기적의 치유집회가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집회에서 그야말로 엄청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집회를 마친 후 저는 이것이 사실인지 제 살을 꼬집어 보았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약속을 하셨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꼭 올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주님을 신뢰하였지만 막상 그것이 눈 앞에 보여지니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니께서는 거짓말 장이가 아니심을 제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민수기 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아니하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다. 그가 하신 말을 어찌 실행치 아니하시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을 찬양합니다.
제15장 금식을 통해 시작된 새로운 계시
1988년초에 저의 개인적인 생활과 우리 교회안에서 많은 영적인 전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연약해지기 시작하는 것으로부터 더 나은 자세를 갖기위해 금식을 통해 제 자신을 훈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경우 저는 금식을 통해 환경적인 것들로부터 승리를 하곤 했습니다. 금식을 통하여 저는 많은 기적을 체험을 하였고 하나님께서 제 삶과 교회에서 신실하게 역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름이 한창 시작될 때 저는 모든 것이 이상 없이 좋다고 생각되고 잠시동안만이라도 편히 있고 싶다고 느껴질 때 힘든 영적인 전투를 치루어야 한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루아침, 잠에서 깨어났는데 주님께서 금식에 대한 마음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저는 왜 금식이 필요한지를 알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한가지 이유가 있다면 곧 갖게되는 집회를 위해를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즉각적으로 저는 금식을 할 수 없다고 거부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저는 그해에도 벌써 여러번 금식을 해 충분하다고 생각을 해 하나님께 양해를 구하려고 하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저는 종교적인 행사나 속박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또한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고 생각치 않고 그저 제 육신적인 느낌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것을 거절한 것입니다. 저는 계속해서 3주동안 제가 "좋아요 주님! 만일 주님께서 금식을 원하시면 하겠습니다." 말할 때까지 엉망이 되기 시작 했습니다. 이때도 하나님께서 며칠동안 금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 해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긴 기간을 원하시던 그것을 할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 복종하지 않고 반항 했던 것을 회개하였는데 하나님께서 5일이 지날 때까지 이 금식에서부터 저를 자유케 해주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과 시간을 보낸다는 것 외에는 왜 이 금식을 계속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뉴욕주의 바팔로 근처에서 집회를 인도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금식이 6일째 되던 날 저는 뉴욕에 도착하였는데 첮 집회에서부터 하나님께서 강하게 역사하기 시작을 하셨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온 뉴욕 주에서 처음 갖는 집회였기 때문에 다소 흥분된 상태에 있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집회 가운데 하나님께서 모인 분들을 축복하시는 것을 보기를 갈망하였습니다. 금식 7일째 되는 날이 주일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의 금식을 풀어주실 것이라 생각을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던 간에 저를 향하신 계획은 선한것이라는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월요일, 금식 8일째 되던 때 저희는 저녁에 집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기적적으로 치료하시고 그들의 삶 속에 있는 묶임을 깨뜨리시기 위해 어떻게 움직이고 계시는지를 보았습니다. 저는 이전에도 하나님의 강력한 움직이심을 보았지만 이번과 같지는 않았습니다. 우리의 눈 앞에서 정맥이 이상한 것(varicose veins)이 사라지고 엄지 발가락 이상(bunions-건막류 腱膜瘤)이 사라지고 또 다른 많은 치유들이 일어 났습니다. 이것은 제에게 새로운 경험이라 저는 매우 신이 났습니다. 우리는 그날 밤에 우리의 집회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님 안에서 함께 크게 기쁨을 누렸습니다.
다음 날 낮에, 하나님께서 이제는 물만 먹지 말고 오직 과일만 먹는 부분적인 금식을 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저는 뉴옥에서 8일동안 머물면서 8번의 영광스러운 집회들을 가졌습니다.
뉴욕에 있었던 어느날 밤에 저는 어떻게 금식을 하는가?에 대한 강의와 저의 간증에 대해 기록된 책을 저의 꿈속에서 보았습니다. 그 책에는 온갖 종류의 필요한 정보를 주었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언젠가는 제가 기도와 금식에 대한 책을 출판하게 될 것을 암시를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뉴욕에서 금식을 하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3일동안 기도와 금식을 모이는 것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큰 도시에 가서 금식과 기도를 하면서 도시 구석 구석 사람들과 함께 다닐 것을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이것은 그들의 삶과 도시와 가정과 교회 그리고 우리의 나라안에 있는 견고한 진을 끌어 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보여주시기를 그들은 각처에서 사는 사람들로 그들의 금식과 기도를 통해 이 공간에 어떻게 서야 할 것에 대해 배우고 또 그들의 마음에 끌어오르는 열정을 받을 사람들이 제게로 오는 것이었습니다. 이 불을 가지고, 그들은 그들의 가정과 교회로 돌아가서 이 나라 안에 부흥을 가져오도록 하는 원인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러한 일이 저를 위한 것임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저는 저의 삶 속에서 금식과 기도를 신실하게 훈련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저는 3일동안 우리 교회에서 성도들과 함꼐 모여 기도와 금식을 하는 것이 필요하였습니다. 제가 기도와 금식이 가지고 있는 이익을 충분하게 이해를 한 후에 주님께서 저를 3일 동안 기도와 금식을 하면서 큰 도시를 다니기를 원하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뉴욕을 떠날 때 굉장히 들떠 있는 마음으로 떠났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루신 저의 사역 뿐만 아니라 새롭게 주신 비젼에 대해 너무 신이 났습니다. 주님께서는 저의 금식을 높여 주셨습니다. 저의 집에 도착하여 저는 지난 8일 동안 뉴욕에서 가졌던 사역 속에서 일어난 일들과 그 후에 저에게 일어 났던 일들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뉴욕에서 8일 동안 지낼 때 8일 동안 금식을 하며 또 밤이면 집회를 가졌습니다. (저는 8일 동안 부분적인 금식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들 중에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것은 저의 금식이 88년 8월 8일에 시작을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 하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기를 위해 기도를 하면서 물었습니다.
제가 집에 돌아온 다음 날 아침, 저는 제 마음에 의문을 가지면서 깨어 났습니다. 저는 아직도 하나님 앞에 만일 제가 그 의미를 알아야 한다면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며 묻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제 마음에 8이라고 하는 숫자의 의미에 대해 말씀을 하셨습니다. 8이라는 숫자의 의미는 새로운 시작이니라! 저는 이것을 듣자마자 벅찬 감격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침대에서 벌쩍 뛰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제 삶 속에 또 다른 전환점이 되는 것이라는 것과 나라를 위한 사역에 대해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계시와 말씀에 순종을 하며 교회에서 3일 동안 함께 모여서 금식을 하였습니다. 이 시간까지, 저는 교회에서 그것에 대해 가르쳐만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몸을 이루며 기도와 금식을 갖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하는 금식에서는 하나님께서 무거운 것들과 방해물들을 깨뜨리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아름다운 결과를 가지고 왔습니다. 우리교회는 전과는 전혀 다르게 변화 되어 갔습니다. 이 일 이후에,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인디아나 주의 수도인 인디아나폴리스안에서 함께 금식하며 기도할 것을 제 마음속에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사무원 한명을 두지 못하고 또한 저는 조직적인 사람이 되지를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함께 모이는 것에 대해 저에게 보여 주실 때에는 저는 이 모임을 어떻게 조직하며 구성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전혀 아이디어가 없었습니다. 저는 오직 제가 설교해야 할 계획을 세운 것이 전부 였습니다. 시작을 해야 했지만 어떻게 세미나를 운영하고 이끌어 가야하는지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에게 어떻게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것인지 하나 하나 천천히 가르치시며 인도해 주셨습니다.
1989년 4월에 인디아나폴리스에서 처음 집회를 가졌습니다. 두 번째는 1989년 8월에 인디아나 주의 에반스빌에서 가졌습니다. 두전의 모임들을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에 대해 보여 주셨고 또 금식과 기도를 하며 겸손한 사람들을 높여 주셨습니다. 그들은 큰 기쁨과 승리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볼 때 저는 무척 기뻣씁니다.
인디아나폴리스에서 첫 집회를 갖는 동안 하나님께서 저에게 더 깊은 헌신을 할 것에 대해 말씀해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열방을 위해 저를 사용하기를 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에반스빌에서 가진 두 번째 모임은 지난 4월에 가졌던 헌신에 대해 하나님께서 존귀함을 보여 주셨으며 또 그분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전혀 꿈을 꿀 수 없었던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에반스빌에서 가진 집회 첫날 밤에 우리는 작은 자매들(The Little Sisters)이라고 불리우는 사역자들로부터 큰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전혀 기대하지 못한 놀라움을 갖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아주 특별한 깃발(banner)을 만들 수 있도록 존귀한 마음을 불어 넣어 주셨던 것입니다. 며칠동안 작은 자매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함께 기도하면서 깃발을 정성을 다해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습니다.
1990년 2월, 하나님께서 저를 도와 주셔서 이 책을 낼 수 있도록 합당한 사람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는 저를 존중해 저와 함께 3일동안의 금식 기도를 1990년도에 4번씩이나 같이 하였습니다. 이것은 1989년도에 2번을 한 것에 비하면 두배로 늘은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성취하신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신나는 일입니다.
16장 거짓의 힘
레리 훼닌
이사야 58:8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서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서 호위하리니"
금식과 기도의 또 다른 유익은 성령님 곧 진리의 영을 통해 우리의 삶에 진리의 빛을 비추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성령님에의해 거듭나기 전에는 우리는 어두움안에서 행하며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죄와 어두움의 주관자에 의해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골로새서 1:13-14 " 그가 흑암의 권세에서 검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
세상안에는 격렬한 큰 대립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그것의 중앙에 붙잡힌 바가 되어 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상은 인간의 영혼입니다. 그것은 빛의 왕국, 하나님의 진리와 어두움의 왕국, 사탄의 속임수 사이의 대립입니다. 사탄의 목적은 우리의 마음이 장님이 되게 만들어 우리의 의지를 묶어서 주님을 찾거나 섬길 수 없도록 하는 것에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4 "주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우리가 거듭난 후이던지 빛의 왕국으로 들어 왔다고 할지라도 우리 안에는 어두운 부분이 있고 보지 못하는 부분과 묶인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승리를 하지 못하고 갈등하고 또 실패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애야 합니다. 사탄은 여러세기에 걸쳐 훈련된 사기꾼의 대장입니다. 성령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를 대항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안에 아직까지 의심, 불신앙, 두려움, 염려나 어떤 죄가운데서 흔들리고 있다면 여러분은 승리를 지킬수가 없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을 위한 좋은 소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자유하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승리 할 수 있고 또 승리를 지속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두움을 드러내고 빛 가운데서 행하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두운 방에서 행할 때 빛을 비추면 어두움이 금방 물러가게 됩니다. 빛은 어두움보다 더 위대합니다. 아무리 작은 빛이라고 할지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빛은 어두움을 쫓아 냅니다. 작은 성냥불일지라도 칡흙같이 어두운 방에서 움직일 수 있을 도록 빛을 밝혀 주기에 충분 합니다. 기도와 금식을 통하여, 성령님께서 진리의 빛으로 우리의 삶의 어두운 부분을 조명하여 비취어 주십니다. 우리가 진리를 알 때, 그 진리는 마귀의 거짓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여 줍니다. 우리는어떻게 빛 안에서 행하는지를 배워야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가 빛으로 가득채워지기까지 자라야 하며 또 어두움의 세상에서 빛들로 나타내 질 수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음으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이 구절에서 우리는 거짓의 힘이 어떠한지를 볼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진리에 대해 눈이 멀어 그들 앞에 서 계시며 말씀하시는 진리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짓이 가진 힘은 믿는 성도들을 묶어 놓으려 하며 진리에 대해 어둡게 만듭니다. 진리는 그들에게는 거짓된 것이고 거짓됨이 그들에게는 참된 것이 됩니다. 그들은 속이는 자들이고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짓의 아비는 그들이 이점에 대해 볼 수 없도록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과거에 진리를 용납한 것이 어떠한 결과를 가지게 될까요?
잠언 23:7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사탄, 거짓의 아비이며 우리의 마음에 그의 거짓의 씨앗들을 실제적으로 심어 놓은바가 되었습니다. 거짓은 우리 안의 보이지 않는 부분들(blind spots)에 뿌리를 내리며 자라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5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을 받으실 이시로다"
우리는 거짓의 아비를 위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것으로 바꿔진(exchange) 곳에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또 다른 바꿔치기 곧 린리의 성령님의 조명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진리로 거짓것을 바꾸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편19:12 "자기의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우리 안에 있는 보이지 않는 부분들은(blind spots) 우리들이 볼 수 없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약해지는 것과 우리의 행동들에 대해서는 잘 보지를 못합니다. 비밀스러운 결점들은 보이지 않는 부분들입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어떤 숨겨진 죄일뿐 아니라 우리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알려지지 않는 은밀한 부분입니다. 거짓의 힘을 우리는 잘 볼 수 없습니다. 다른이들은 그것을 보기도 할 수 있고 또 우리를 돕기도 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함 곧 숨겨진 어두운 부분들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시편139:23-24 "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 하소서"
우리가 주님께 우리 자신을 살피시도록 내어 드릴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보이지 않는 부분을 계시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아픈 경험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우리들의 보이지 않는 부분을 하나 하나 분석을 해야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다윗왕은 그가 방심하여 은밀한 죄를 저지르기 까지는 그의 마음은 하나님 앞에 있었습니다. 밧세바와 함께 죄를 지은 것이 드러났습니다. 다윗은 밤에 엎드려 진 것이 아니라 죄가 약하게 만들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다윗을 치료하시기 위해서 그의 잘못을 드러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허물들은 사탄의 거짓말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시며 우리의 죄를 도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처리될 수가 있습니다.
야고보서1:14-15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나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사탄에 의해 드러날 아무런 것도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본성이 아니십니다.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거듭난 이후부터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진리 안에 살지 않는다면 옛 죄의 본성안에 사는 것이고 이미 죽은 육신의 생각과 옛사람이 다시금 고개를 쳐들고 다시 살아 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서 나라가 이루어 지도록 하는 것보다 나라 안에서 우리들이 갖도록 하는 것이 더욱 쉽습니다.
싸움은 우리의 마음 안에서 시작이 됩니다. 사탄은 인간의 마음과 세상을 조종을 합니다. 사탄은 세뇌공작(洗腦工作 brainwashing)에 기막힌 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태어날 때 시작을 하여 결코 중단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어린 시절에 거절로 인해 흠과 상처와 아픔들을 가져다 주어 우리 안에 그의 거짓의 씨를 심어 놓는 것입니다. 거짓의 씨는 자라서 우리의 인격과 감정적인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학대, 성적인 학대 그리고 부모에 대한 반항과 심한 아동학대과 욕은 우리가 거짓을 행하도록 계속 공격을 해 오는 것입니다. 사탄의 거짓은 우리의 자아상(self image)과 가치관(self worth)을 파괴를 합니다. 그 거짓은 우리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지으신 모든 것을 누리는 것과 하나님의 사랑을 용납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나라를 위하여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말할 수 없는 은사를 주십니다. 그러나 사탄은 더렵혀진 것과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비뚤어지도록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잘못된 형상에 묶인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것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을 하도록 합니다.
야고보서 1:12 "시험을 참는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우리가 유혹을 죄가 없이 통과할 때 축복된 것입니다. 채찍과 시험은 우리를 실험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험을 통과를 한 후에 비로서 인정을 받게 됩니다. 마치 철을 단단한 것을 만들고 시험하기 위해 뜨거운 불 속에 넣어 연마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연단을 받은 철은 약한 것을 발견할 수 없을 만큼 강해 집니다. 우리가 불꽃같은 시험에 놓여 있고 또 우리 안에 약한 부분을 드러낼 떄는 그것은 죄로 인한 것이 아니고 우리의 약한 부분을 치유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치유하여 조화된 하나를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뜻은 죽음이고 또 대적함입니다.
야고보서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악이나 어떤 나쁜 것을 통해 우리를 시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은행강도 짓을 하도록 하거나 간통을 하도록 하는 시험을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것이지만 사탄은 유혹하는 자로써 우리를 대항하여 악한 유혹을 하는 자인 것입니다. 모든 죄를 짓도록 하는 시험은 사탄으로부터 오는 것이지 하나님꼐로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서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
우리안에서 우리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우리 앞에 놓여진 유혹에 휘말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약함을 미끼로 삼고 또 함정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많은 경우 돈을 사랑하는 탐욕에 끌리도록 합니다. 다른 이들에게는 정욕과 성적인 유혹, 자만심, 그리고 독립된 영- 하나님과 관계 없는 영-, 자기 충족감 등등에 빠져 있습니다.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려고 할 때는 그가 우리의 주목을 끕니다. 그것은 아주 순간적으로 우리가 미끼를 취할 틈을 갖도록 하여 미끼질을 하는 고기처럼 우리의 호감을 끕니다. 그래서 사탄은 우리 앞에 유혹의 미끼와 함정을 만들어 놓고 지켜보고 들으면서 낚시꾼이 고기의 움직임을 주목하는 것과 같이 사탄은 우리의 주목을 끌게 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의 미끼를 볼 때는 이미 사탄의 낚시가 우리를 낚아 챌 때입니다.
야고보서 1:15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