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 정 : 사적 317호 2. 명 칭 : 중원미륵리사지(中原彌勒里寺址) 3. 소 재 지 :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 58 4. 폐사시대: 조선시대 추정 5. 일반설명 미륵리사지(寺址)는 미륵대원지(彌勒大院址)라고도 하며 석조(石造)와 목구조(木構造)를 합성(合成)시킨
석굴사원(石窟寺院)으로 석굴(石窟)을 금당(金堂)으로 한 북향(질�)의 특이(特異)한 형식(形式)을취한
유일(唯一)한 유적으로 유명하다.
미륵리 사지 [마의태자와 덕주공주의 한]
월악산국립공원 내 하늘재 아래에 위치한 고려시대의 사찰지로 현재 파손된 사원 안에 석불입상이 서 있고,
그 앞으로 역시 같은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여 지는 8각 석등이 있고 석등의 전면에는 미륵리 5층석탑으로 알려진 석탑이 1기가 존재하는 단탑가람(사원)배치의 형식을 갖춘 사지이다.
일찍부터 석굴사원이냐 아니냐는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발굴과정을 통해 많은 유구와 유적이 발견되어 이 미륵당이 국내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석굴사원일 가능성이 보이고 있다.
석굴사원은 인도나 중국과 같이 더운 기온을 피하기 위하여 석굴에 사원을 만들지만 우리나라에는 석굴사원과 같은 양식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한다.
다만 경주의 토함산 석굴암만이 유일무이 하다고 했는데 미륵당 역시 석굴사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경주 석굴암 복원 과정에서 참고로 이 미륵리 주실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석굴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사지에서 출토된 유물들로 보아서는 고려 초기에 창건되었으며
고려후기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지의 이름은 미륵대원(彌勒大院)으로 고증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 태자와 누이 덕주공주 남매가 왕권회복을 도모코자 강원도
한계산성으로 가는 도중 미륵사와 더불어 세웠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경주를 떠난 마의 태자일행은 망국의 한을 안고 신라의 국권회복을 위해 병사를 양병코자 금강산으로
길을 가던 중 문경군 마성면에 이르게 되었다.일행은 그곳 계곡 깊은 곳에 야영을 하고 하룻밤을 자게
되었는데,그 날밤 왕자는 관음보살을 만나는 신기한 꿈을 꾸었다.꿈속에서 관음보살은 왕자에게 말하기를
[이곳에서 서쪽으로 고개를 넘으면 서천에 이르는 큰 터가 있으니 그 곳에 절을 짓고 석불을 세우고
그곳에서 북두칠성이 마주보이는 자리에 영봉을골라 마애불을 이루면 억조창생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으리니 포덕함을잊지말라].
잠에서 깨어난 마의 태자는 꿈이 신기하기에 누이동생인 덕주공주를 불러 꿈의 얘기를 전하고 그 내용을 물었더니 놀랍게도 같은 시각에 공주 역시 그와 같은 현몽을 받았다.
두 남매는 맑은 계곡물에 손과 입을 씻고 서천을 향해 합장배례한 뒤 다음날 서쪽을 향해 고개를 넘으니
고개마루턱 큰 바위에 한 권의 황금빛 포경문(布經文)이 놓여 있었다.
그 곳에서 일행은 북두칠성이 마주 보이는 곳에 파란 별빛을 받고 있는 최고봉이 보이는 장소를 택해 석불입상을 세우고 별빛을 받고 있는 최고봉 아래에 마애불을 조각하였다. 그리고는 8년이라는 세월을 이 곳에서 보내게 되었다.
공주는 만족하였으나 마의태자는 그러하지 못하였다.
태자는 공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초지(初志)를 굽히지 않고 한계산성을 향해 떠났고 마지막 혈육인 오빠와 헤어진 공주는 절에 몸 담고 아버지인 경순왕을 그리워하며 태자의 건승을 빌었다 한다.
그러하기에 미륵리 석불입상은 마의 태자의 상이요 덕주사 마애불은 덕주 공주의 상으로 두 남매가 마주보기 위해 마애불은 남향이고,석불은 북쪽을 향하고 있다고하며 이들은 일년에 한 번씩 서기를 하여 서로 만난다고 한다.
실례로 북향하고 있는 불상을 찾아보기란 힘들며 또 한편으로는 석불을 비롯하여 석축 전체가 화재에 큰 손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미륵입상 두상부분은 전혀 불에 탄 흔적이 없이 매끄러운 형태로 남아 있는 점도 이 전설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충청북도 충주 상모면 미륵리에 위치하고 있는 미륵리사지(사적 제 317호). 남한강 줄기를 끼고 있는 충주
지역을 중원(中原)이라고도 하는데 안내판에는 ‘중원 미륵리 사지’로 표기되어 있다.
중원은 말 그대로 ‘국토의 중심부’라는 뜻인데 이 일대가 삼국의 중요한 전략적 기지였음을 근처에 널려있는 국보국 유물들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수안보로 향하는 길목에만도 중앙탑으로 알려진 탑평리 칠층 석탑이 있고, 중앙탑에서 서북쪽에 위치한 용전리 입석마을에는 중원 고구려비가 있다.
그래서 충주지역에 형성된 문화권을 중원 문화권이라 하며 고대 삼국의 국경과 문화가 서로 마주쳤던 접점지역이기도 했다.
미륵리사지는 충주와 수안보를 거쳐 지릅재와 하늘재 분지에 위치하고 있다. 미륵리사지는 포암산, 신선산, 주흘산, 월악산 등각각 동서남북의 네 산의 기운이 모여드는 지점에 위치한 명당 중의 명당이다.
미륵리사지는 오랫동안 폐사지로만 알려져 있었으나 이 절의 정확한 명칭이나 건립 시기 등에 관한 자료는 전해지지 않는다.
단지 1970년대 발굴조사를 통해 ‘미륵당(彌勒堂)’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 조각이 출토되면서 사찰의 역사가 밝혀지기 시작했다.
첫댓글사진이 꽤 오래전 사진 같아요. 20여년 전 수안보 온천에 갔다가 관광차 미륵사지로 알았는데 미륵리사지? 이군요.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수백년이 지나면서 얼굴과 목은 뽀얀색이 변하지 않고 빛이나는 것이 신비스럽고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눈물을 흘린다는 이야기며, 금강산으로 떠난 마의태자 오빠를 기다리며 그리는 덕주공주를 상징하는 미륵리사지가 마의태자가 있는 금강산 북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안내자의 말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당시 촬영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자료 고맙습니다. 20여년 전 사찰 복원모금을 하던데 지금은 새로운 모습으로 증축되어 있는지? 궁금하군요.
20여년 전 모습과 흡사하여 오래전 사진으로 알았는데 최근 사진이면 아직도 사찰 복원은 안 된것 같아요. 신라시대 불교는 어느시대 보다 왕성하여 마의태자 관련 자료는 강원도 인제군 금부리에도 있습니다. 부안김씨 보다 인제군청에서 1억5천 예산으로 현재 관광지로 발굴 개발하고 있는 실무자가 작년 추향대제 때 참석 발표해 문중에서는 고마워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오랜 세월 선조들이 해온 방식대로 부김에서 강원도 인제군 금부리 마의태자 대왕각에서 대제를 모셔 왔는데 태자파들이 갑자기 자기네 조상이다고 대제를 모실수 있는 일인가? 그 동안 모셔왔던 태자파들의 조상들은 앞으로 안 모시면 불효자가 따로 없군요.
첫댓글 사진이 꽤 오래전 사진 같아요. 20여년 전 수안보 온천에 갔다가 관광차 미륵사지로 알았는데 미륵리사지? 이군요.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수백년이 지나면서 얼굴과 목은 뽀얀색이 변하지 않고 빛이나는 것이 신비스럽고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눈물을 흘린다는 이야기며, 금강산으로 떠난 마의태자 오빠를 기다리며 그리는 덕주공주를 상징하는 미륵리사지가 마의태자가 있는 금강산 북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안내자의 말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당시 촬영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자료 고맙습니다.
20여년 전 사찰 복원모금을 하던데 지금은 새로운 모습으로 증축되어 있는지? 궁금하군요.
충북 충주시에 있다면 아주 근접한 거리에 있네요?
교통편을 알아보고 3월달에는 신김 산우회 정기산행을 이리로 가면 어떨까요?
좋은 자료 잘보았습니다,감사 합니다.
충주가 아니고 서울쪽에서 수안보지나 고개 넘어 월악산 가면 지나가는 곳입니다.
여행 메니아가 여기를 모르다니?...
제주도 촌넘이 무엇을 알겠싸옵니까
충주가 됬든 수안보가 됬는 충청북도에 있다면 가까운 거리니 당장 가고 싶어 집니다.
오늘 부터 잠자기는 글른것 갔싸옵니다,,,후
주소는 충주 상모면이고 가는길은 어디서 출발 하느냐에 달려 있지요. 함 가보고 싶은곳 입니다.
나주김문은 범공선사님 으로부터 기록에따라 법주사 등지에 많은 관심으로 하시는데. 문화제로서 많은 고증과 마의태자 흔적이라 하는데 부안김씨는 하느님 종회로 전원 개종하셨나 관심이 없으시나 절짓는것보다더 궁금해서리................
20여년 전 모습과 흡사하여 오래전 사진으로 알았는데 최근 사진이면 아직도 사찰 복원은 안 된것 같아요.
신라시대 불교는 어느시대 보다 왕성하여 마의태자 관련 자료는 강원도 인제군 금부리에도 있습니다.
부안김씨 보다 인제군청에서 1억5천 예산으로 현재 관광지로 발굴 개발하고 있는 실무자가 작년 추향대제 때 참석 발표해 문중에서는 고마워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오랜 세월 선조들이 해온 방식대로 부김에서 강원도 인제군 금부리 마의태자 대왕각에서 대제를 모셔 왔는데 태자파들이 갑자기 자기네 조상이다고 대제를 모실수 있는 일인가?
그 동안 모셔왔던 태자파들의 조상들은 앞으로 안 모시면 불효자가 따로 없군요.
정확히는 모르지만 우리나라도 먹고살만한지 문화관광국등 많은 정부단체가 있지요. 고증이 확실하면 후손들이 나서서 복원할수 있도록 협조하여 선조들에 유산을 후손이 배우고 정신적인 안식처가 될수있도록 함이 좋겠습니다.
어찌 되었건 안성에서는 한시간 반이면 갈수 있을것 같네요.
다음주 화요일 쯤해서 날씨가 풀리면 한번 댕겨 올라구 헙니다.
석원 행님은 이런게 경청회에 있으믄 미리미리 갈켜 주셔야지...이렇게 짱 박아 놓으실게 뭐 있다구,,,ㅎㅎㅎ
감사 합니다.
스스로 공부해야 합니다.에는 신라관련 자료가 제일 많습니다.
감솨아~~~합니다.
알고는 있지만 시간과 노력이......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