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1:28-2:2
찬송가 490장 “주여 지난밤 내 꿈에”
오늘 본문이 속한 역대기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히브리 성경 속 역대기의 이름은 ‘날들의 사건들’이라 불렀고, 70인역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 비교하여 ‘생략된 것’이라고 불렀습니다. 다양한 이름을 가졌었던 역대기는 그 시작부터 이름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아담부터 시작하는 족보 속 이름 중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도 존재하지만,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다소 생소한 이름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신앙의 근원을 보여주는 역대기의 족보 속에서 과거 자신들의 조상을 괴롭히며 고통을 주었던 민족의 족보까지 등장합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여 힘겨운 날을 보내며 소망이 없어 보이는 유대민족에게 이러한 족보가 어떤 의미였는지 말씀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마엘과 그두라의 자손들 1:28-33
(28-29) 아브라함의 자손은 이삭과 이스마엘이라 이스마엘의 족보는 이러하니 그의 맏아들은 느바욧이요 다음은 게달과 앗브엘과 밉삼과
역대상 1장의 족보는 아담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아담에서 노아, 노아의 아들 셈에서 아브라함까지 각각 열 세대를 아우르며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의 족보를 기술합니다. 그런데 유대 민족의 뿌리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족보에 이삭보다 먼저 이스마엘의 자손을 나열합니다. 물론 이 족보는 창세기 25장에 등장하는 족보와 사실상 비슷합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믿지 못했던 아브라함이 하갈과 동침하여 낳은 아들입니다.
이제는 믿음의 조상인 이삭의 족보가 나와야 할 것 같은데, 역대기 기자는 다른 족보를 이스마엘과 이삭의 족보 사이에 배치했습니다.
(32-33) 아브라함의 소실 그두라가 낳은 자손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요 욕산의 자손은 스바와 드단이요 미디안의 자손은 에바와 에벨과 하녹과 아비다와 엘다아니 이들은 모두 그두라의 자손들이라
32절에는 그두라 자손의 족보가 등장합니다. 이 족보도 마찬가지로 창세기 25장과 거의 동일한 족보입니다. 창세기 기자는 그두라를 아브라함의 둘째 아내의 개념으로 후처라고 표현했는데, 역대기 기자는 소실, 즉 첩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물론 창세기 25장에서 그두라의 자손을 열거한 다음 언약의 배우자였던 사라 사이에서 낳은 이삭과 재산 분배에서 큰 차이점을 두어 그두라의 자손은 첩의 자손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본문 28절에 그두라의 자손들에 대한 언급이 없었기에 그두라의 족보의 등장은 우리를 당황하게 만듭니다.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후대에 의해 편집되어 삽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왜 이렇게 족보의 순서를 배치하고 삽입했는지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본문을 더 살펴보아야 합니다.
에서의 자손과 에돔 족속 1:34-54
(34-37)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으니 이삭의 아들은 에서와 이스라엘이더라 에서의 아들은 엘리바스와 르우엘과 여우스와 얄람과 고라요 엘리바스의 아들은 데만과 오말과 스비와 가담과 그나스와 딤나와 아말렉이요 르우엘의 아들은 나핫과 세라와 삼마와 밋사요
역대기 기자는 이스마엘과 그두라의 자손을 보여주고 이삭의 자손을 보여줍니다. 여전히 역대기 기자는 에서와 이스라엘에서 이스라엘의 족보로 넘어가지 않고, 에서의 후손을 언급합니다. 본문 35절은 에서의 아들이라고 표현했는데, 창세기 36장은 에서 곧 에돔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라고 표현합니다. 이와 같이 창세기는 에서와 에돔을 동일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오늘 본문에도 에서의 자손을 이야기할 때 에돔에 대한 족보가 바로 나와야 하지만, 다소 뜬금없이 세일의 자손이라는 족보가 등장합니다.
(38-42) 세일의 아들은 로단과 소발과 시브온과 아나와 다손과 에셀과 디산이요 로단의 아들은 호리와 호맘이요 로단의 누이는 딤나요 소발의 아들은 알랸과 마나핫과 에발과 스비와 오남이요 시브온의 아들은 아야와 아나요 아나의 아들은 디손이요 디손의 아들은 하므란과 에스반과 이드란과 그란이요 에셀의 아들은 빌한과 사아완과 야아간이요 디산의 아들은 우스와 아란이더라
세일이라는 인물은 어느 족보에서도 에서의 자손으로 직접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세일은 사람이라기보다는 특정 지역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창세기 32장에서 야곱이 형 에서를 찾아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에서가 사는 지역을 에돔 벌 세일 땅이라고 소개합니다. 따라서 세일의 자손이라고 표현한 이 족보는 창세기 36장의 족보와 비교했을 때, 호리 족속이라고 이해할 수 있으며 에서의 족보로 보기에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세일의 자손이 등장한 후 역대기 기자는 우리에게 에돔 땅을 다스렸던 왕들의 족보를 보여줍니다.
(43-54)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있기 전에 에돔 땅을 다스린 왕은 이러 하니라 브올의 아들 벨라니 그의 도성 이름은 딘하바이며 벨라가 죽으매 보스라 세라의 아들 요밥이 대신하여 왕이 되고 요밥이 죽으매 데만 종족의 땅의 사람 후삼이 대신하여 왕이 되고 후삼이 죽으매 브닷의 아들 하닷이 대신하여 왕이 되었으니 하닷은 모압 들에서 미디안을 친 자요 그 도성 이름은 아윗이며 하닷이 죽으매 마스레가의 사믈라가 대신하여 왕이 되고 사믈라가 죽으매 강 가의 르호봇 사울이 대신하여 왕이 되고 사울이 죽으매 악볼의 아들 바알하난이 대신하여 왕이 되고 바알하난이 죽으매 하닷이 대신하여 왕이 되었으니 그의 도성 이름은 바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므헤다벨이라 메사합의 손녀요 마드렛의 딸이더라 하닷이 죽으니라 그리고 에돔의 족장은 이러하니 딤나 족장과 알랴 족장과 여뎃 족장과 오홀리바마 족장과 엘라 족장과 비논 족장과 그나스 족장과 데만 족장과 밉살 족장과 막디엘 족장과 이람 족장이라 에돔의 족장이 이러하였더라
역대기 기자는 창세기 36장 31-39절을 참고하여 에돔을 다스렸던 왕들의 족보를 보여줍니다. 역대기 기자가 창세기의 족보를 참고했을 때는 보통 이름만 발췌하였습니다. ‘누구의 아들은 누구요’ 와 같은 형태 말입니다. 하지만 흥미롭게 에돔의 왕들을 보여주는 족보에서는 다스렸던 왕의 죽음도 언급합니다.
이 땅의 인간 모두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임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역대기 기자는 의도적으로 에돔 왕들의 죽음을 기록함으로써 죽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왕의 죽음으로 그 다음 왕이 그를 대신하여 다스렸다는 다소 장황한 기술 방법을 택했습니다. 역대상 1장의 족보들과 유사한 형태를 띠려면 모두 죽음을 언급하던가, 아니면 에돔 왕의 족보에서 죽음을 기록하지 않으면 되었을 것입니다. 역대기 기자가 이렇게 기술한 이유는 무엇이었겠습니까?
에돔 족속은 꾸준히 이스라엘과 마찰을 일으켰던 민족입니다. 에돔이라는 뜻은 히브리 단어로 ‘붉다’라는 말과 그 소리가 비슷합니다. 아마 야곱에게 장자의 명분을 붉은 죽과 바꾸었다는 이야기에서 이름이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에돔은 이스라엘이 거주하였던 가나안 땅에 비하여 언덕이 많고 메마른 곳에 거주하였습니다. 출애굽 당시 모세가 에돔 땅을 통과하려고 했을 때 이를 거부했었고, 분열 왕국 시대에 에돔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유다를 괴롭혔었습니다. 특히 바벨론이 유다를 공격할 때 함께 침공했던 민족이 에돔이었습니다. 또한 에돔은 에스겔, 오바댜, 이사야 등 선지자들로부터 하나님의 심판을 선고받은 민족이기도 했습니다.
역대기를 읽는 당시 독자들은 포로에서 귀환하여 다시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로서의 삶을 재건해야 하는 유대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에돔에 대한 좋은 기억과 역사가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그럼에도 역대기 기자는 에돔 왕의 족보를 나열함으로 과거의 역사를 직면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저 슬프고 고통스러운 기억만 직면하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바로 왕들의 ‘죽음’을 언급하며 에돔의 모든 왕들이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을 기록하며 신실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게 해주었습니다. 에돔의 왕이 죽고 다른 왕이 대신하여 그들을 통치했지만 결국 그 왕도 죽음을 맞이합니다. 에돔의 왕은 오직 죽음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창문을 열지 못한 인간 왕국의 말로는 죄와 사망일뿐입니다. 그렇다면 유대 이스라엘 민족은 어떤 민족입니까?
이스라엘의 자손(2:1-2)
(1-2) 이스라엘의 아들은 이러하니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과 단과 요셉과 베냐민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더라
하나님이 택한 유대 이스라엘의 족보가 시작됩니다. 이것은 본문 1장 34절과 연결되는 믿음의 족보입니다. 앞서 이스마엘, 그두라, 에서의 족보를 언급하며 직면하게 했던 역대기 기자는 드디어 마음껏 믿음의 족보를 나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만나게 될 족보는 다윗을 향하게 됩니다.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역대기 기자가 기술한 족보를 통하여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유대 민족에게 회복을 약속하신 신실한 하나님을 향할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불어 넣어주십니다.
하나님을 철저하게 떠나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으로 결국 멸망당한 유대 이스라엘 민족은 비참한 모습의 포로 생활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곳이 어디든 다니엘과 같이 하나님께 창문을 열어 믿음을 지켜온 포로기 이후 세대는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약속의 땅으로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황폐한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믿음의 조상으로부터 이어진 하나님의 신실한 언약 공동체로서의 삶을 재건해야 하는 유대 민족의 앞길은 막막했을 것입니다. 스룹바벨, 에스라, 느헤미야 등 이들을 이끄는 지도자들이 함께 했지만, 옛 예루살렘의 영광을 재현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불가능해 보였을 것입니다. 막상 돌아오니 이게 무슨 소용이 있냐며 다시 바벨론의 생활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혹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역대기를 통하여 이들에게 소망과 새 힘을 주길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전을 재건하고 성벽을 다시 쌓아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의 삶을 말씀으로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보길 원합니다. 우리의 가정에서 믿음을 세워가려 할 때 무기력한 적은 없었습니까? 우리의 일터에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결단하며 말씀의 생활을 시작하려 할 때, 혹독한 환경과 방해로 인해 좌절했던 적은 없습니까?
오늘 역대기의 족보를 통해 우리의 현재 삶을 직면하길 원합니다. 수많은 사람 가운데 그저 사랑하셔서 은혜로 택하신 하나님을 기억하십시다. 또한 우리는 이해할 수 없지만 신실하게 나를 통해 하나님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는 하나님의 신실함을 의지하십시다. 불가능해 보이는 오늘 이 하루 속에서 다시 한번 주님께 창문을 열어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으로 살아내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말씀과 기도를 통해 주님의 뜻 살필 수 있도록 이 새벽을 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포로 생활을 마치고 약속의 땅으로 다시 돌아온 유대 민족의 앞날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내가 지금 걸어가는 이길이 옳은지 의심이 들고 소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하게 택하신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족보를 통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도 오늘을 내딛는 걸음에 주님의 자녀로 살아갈 힘과 용기를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속한 가정과 일터, 모든 관계 속에서 하나님께 신실하게 창문을 열고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께서 역대기 기자를 통해 족보를 초반에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묵상해 봅시다.
2. 믿음의 조상이 나열되는 족보를 바로 보여주지 않고 이스마엘, 그두라의 족보와 같이 다른 족보를 굳이 배치한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묵상해 봅시다.
3. 역대상 1장 속 족보들 중 에돔 왕들의 족보와 비교했을 때 차이점은 무엇이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
4. 오늘을 믿음으로 살아내기 위해 떠올릴 수 있는 하나님과 나의 기억이 있습니까? 그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작성: 김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