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차가웠다. 1987년 12월 어느 겨울 밤, 붉게 충혈 된 눈을 껌벅거리며 세 자매가 어린 지 자식들을 품에 안고 모여 들었다. 어두운 청량리 역 광장. 포장마차 붉은 가스등이 흐르는 눈물에 얼룩덜룩 일렁이고, 아비의 죽음을 전해들은 자식들은 그저 잘못 삼킨 인절미가 목구멍에 걸린 듯 컥컥거리며 숨죽여 울었다 차디찬 주검이 되어 누워 있는 아비를 부여안고 어미는 울며불며 아비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14살 된 막내의 앙상한 눈빛이 비수처럼 누이들 심장을 갈랐다. “나는 어떡해~ 나는 어떡해~ 여보, 나는 어찌 살아” 어미의 애끓는 통곡은 아비의 몸을 붙잡고 늘어졌지만 영혼을 비운 육신을 덥히지 못했다. 아비보다 열 배는 지혜롭고, 아비보다 백배는 용감했던 어미는 남편이라는 사람의 이승에서의 마감을 지켜보면서 태산이 무너지는 절망을 보았다. 평생 일밖에 모르고, 하나 뽑아 하나 꽂는 융통성 없고 착해빠지기만 했던 그 남편의 죽음 앞에 집채 만 한 두려움의 파도가 어미의 뒷덜미를 후려쳤다. 절망의 몸짓은 허망한 눈빛으로 전이되고 통곡의 끝은 침묵을 몰고 와 어미의 입을 끝내 닫아버렸다. 그렇게 아비는 죽어서야 태산이 되고 바다가 되었고 혼자 남겨진 어미와 막내를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은 아무도 데려가지 못했다. 이유는 너무나 많았다. 꽃같이 아름다운 엄마는 자식을 너무 많이 낳은 죄로 선녀 옷을 입고 하늘로 올라가지 못했다. 평생 나무꾼의 사랑은 넘치게 받았으나 모진 살림살이 고된 인생살이에 나를 낳고도 도망갈 궁리를 했다고 한다. 질긴 아비의 사랑이 마냥 좋기만 했던 건 아니었던가. 둘을 두고 둘만 데려가려니 큰언니가 졸래졸래 쫓아 나와 ‘엄마, 어디 가아?’ 하는 바람에 보따리를 풀었다며, 피식 웃음 섞어 내 던진 한 토막 일화. 그녀의 쓸쓸한 추억담을 자식들은 귓등으로 흘러들었다. 엄마가 이름을 가졌다는 사실을 언제 알았던가. 이 옥 선. 열 살이 넘어서야 내 엄마도 이름을 가졌다는 그 생소함과 신기함. 사람들은 늘 엄마를 두창이엄마로 불렀다 두창이 엄마는 두창이를 대학생으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 했다. 맏아들을 대학에 보내지 않으면 곰 같은 남편이 세 딸을 어찌 할지 너무나 잘 알았기에 어미는 머릿속이 늘 바빴다. 오빠를 서울에 보내는데 성공한 어미는 맏아들의 뒷바라지를 맡아 줄 큰언니의 역할을 강조하며 큰 딸마저 서울로 진학시키는 전략을 완수했다. 끌탕 하는 아비의 푸념을 가라앉히는 데엔 일이 최고라는 걸 아는 어미는, 낮이고 밤이고 베틀에 매달렸다. 양식을 생산하는 역할로 자식을 많이 두길 원했던 아비는 왠지 속는 기분이 들면서 울화통이 터지는데, 저 여섯이나 되는 자식을 모두 공부시킬 속셈을 가지고 능청을 떠는 아내가 기가 막혔다. 뭔 일이 있어도 여식 세 명만큼은 공장에 들어앉힐 생각이었던 기대는 어미의 기지로 살금살금 무너졌다. “도대체 어케 살 작정으로 간나아들까지 공부를 시키자는 기야!” 버럭버럭 소릴 질렀다. 그러나, 도시에서 교복을 입고 내려 온 두 자식을 바라보는 기쁨은 어미의 억척스런 삶의 시윗줄을 다시 탱탱하게 당기는 희망이 되었다. 아비는 소리만 질렀지 어미의 살을 파고들지 못했다. 어미는 이미 전쟁터를 휩쓰는 장군이 되어버렸다. 아비의 등짝은 더 굽어 들었고 어미의 손등은 연잎에 새겨진 잎맥처럼 갈라졌다. 바람이 설컹설컹 얼음 살을 내뿜는 겨울 밤. 공장 일에 녹초가 된 아비의 마음은 내년 먹을 양식 걱정에 한숨이 문지방을 넘는데, 어미는 뒤란에 묻은 동치미를 푸기 위해 솜처럼 젖은 몸을 일으켜 방문을 밀어젖힌다. 동치미 무 설렁 썰어 녹두지짐 몇 조각 덥혀 조갈 난 아비 시름을 풀어 주기 위해서다. 휘 돌아치는 걱정거리를 꿀꺼덕 동치미 한 그릇으로 삼키고 아비의 굽어진 등을 두드려주는 어미의 모성애는 결국 아비 마음을 녹여내고 말았다. 지혜로운 여인은 어리석은 온달도 장군으로 만든다 했던가. 촌스러운 시골 양반 얕잡아 본다며 서울 가는 아비의 낡은 양복을 매무시해주며 조목조목 야무진 대응거리를 가르쳐주던 엄마의 낮은 다짐소리.. 비장한 아버지의 입매는 여선생 앞에 얌전히 서있는 남학생의 모습되어 아직도 풍경으로 남아있다. 엄마는 두창이 엄마이면서 우리들의 엄마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느 날 둘째 언니와 나를 불러 세운다. 샘 많은 막내딸을 염두에 둔 탓인지 내 눈을 깊게 바라보며 다짐을 받는 어미. 둘째 언니만 피아노를 가르칠 수밖에 없는 연유를 설명하는 어미는 샘 쟁이 막내딸을 어르고 달래는 중이다. ‘우리 막내딸은 공부를 잘 하니 공부만 해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언니는 공부에 별 취미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언니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싶은데 엄마가 두 명 모두를 가르칠 형편이 안 된다. 똑똑한 우리 막내딸이 언니에게 피아노를 양보하면 엄마 마음이 너무 좋겠다’ 라고 하셨다. 나는 공부 잘하고 똑똑하다는 그 칭찬에 히~ 마음이 풀어져서 그 매혹적인 피아노 건반을 너그럽게 양보했다. 살면서 두고두고 억울한 선택을 한 거 같아 밑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혜안을 가진 그 엄마도 막내딸이 이리 될 줄은 미처 몰랐으리라. 결국 어미 기대의 배신은 내가 했고, 언니는 피아노 원장님 되어 멋진 음악을 곁에 두고 삶의 활력소 역할을 맡기고 있으니 절반은 성공한 어미의 대책마련이다. 그 때가 1972년. 읍내에 피아노라곤 한두 집 있었을까? 절에 다니던 어미는 교회 목사 사모님께 언니를 맡기면서 몇 번이나 고개를 조아리며 존경의 표시를 했다. 생각해보면 그런 어미의 혜안을 어찌 딸들은 물려받지 못했는지 야속한 아이러니다. 잡초처럼 억센 어미들은 칡처럼 잘근잘근 지 몸을 짜 내어 자식의 입에다 단물을 넣어준다. 자식을 많이 낳은 여인의 숙명은 붉은 동백보다 슬프다. 허리가 휘도록 밭이랑을 매는 어미를 만들고, 목이 부러지도록 젖과 하는 어미를 만들고, 허연 매즘 가루로 두 눈가를 눈물로 실룩이게 하는 어미를 만든다. 그렇게 짜고 훑어 내어 키운 자식들은 그런 어미의 희생을 유물로 만들어 박물관에 기증을 하고, 다 자기 잘 난 덕에 사는 줄 안다. 그 척박하고 곤궁한 시대의 희생물이었던 우리 어미들 가운데 울 엄마도 있다. 그런데, 웃고 있다. 어미는 늘 웃었다. 부정을 몰아내는 긍정의 힘을 웃음에서 찾아 낼 줄 알았다. 즐거워도 웃고, 힘들 때도 한숨 끝에 미소를 달았다. 유난히 어미 꽁무니를 밝히던 나는 집에 돌아와 어미가 없으면 정수리를 치솟는 불안감에 금방 눈물 담은 두 눈으로 미친 듯이 어미를 찾아다녔다. 언제였던가.. 어릴 때 본 모습이었을까? 아니면 늘상 마주치던 모습이었을까. 공장 한 쪽 구석에 구부리고 앉아 수천 개의 날실과 씨실을 맺음질 하고 있는 어미의 모습이 너무나 낯 선 여인의 얼굴을 하고 있던 영상이 떠오른다. 한숨 내 쉬는 입가에 정체 모를 슬픔이 떠돌고, 흐트러져 내려 온 머리카락 옆 이마에는 골 깊은 찡그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가루 분 묻은 손짓은 흡사 형틀에 매달린 죄수의 형벌처럼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반듯한 콧날을 가진 어미의 옆모습 주변에 무수한 섬유 먼지가 부유하고 있었다. 그런 낯 선 어미의 모습에 화들짝 달려들지 못하고 쭈빗쭈빗 얼굴을 어미 앞에 들이대자, 꿈에서 깨어난 듯 풀어진 눈동자가 고개를 들었다. “엄마~” 이 세상 모든 어미의 단 잠을 깨우는 가장 혹독한 주문, 엄마! 이 세상 모든 어미의 꿈길을 가로막는 가장 매서운 호칭, 엄마! 자아의 인식이 여물지 못한 어린아이의 눈에 비치는 삶은 거대함과 두려움이다. 마음자리가 지 몸 하나 겨우 끼울만한 굴렁쇠 밖에 안되는 어린 아이는 슬픈 어미의 표정이 낯설고 두려웠다. “엄마~” 그 천진한 주문에 천천히 미소를 만드는 엄마의 얼굴. 아~ 금방 보았던 어미의 얼굴은 그저 어둑한 실내 때문이라고, 밝은 곳에 있다가 어두운 곳에 들어 와 겪은 착시 현상 때문이라고 어린 내 마음의 두려움을 일시에 몰아내던 연하디 연한 어미의 미소, 어미의 표정. 그 시절, 마음 놓고 펑펑 울 수도 없던 서러움을 고된 노동에 기부하고도 늘 자식을 보며 웃어주던 위대한 여인 우리 엄마. 그 웃고 있는 엄마의 영상이 지금 나를 울린다. 어미를 닮아 인물 좋고 풍채 좋던 오래비는 누이의 선망이 되고 어미의 신화가 되었다. 군인이 되어 휴가 나온 오래비가 어미를 업어 주었다. 함지막하게 입 벌리고 터질 듯한 기쁨으로 좋아 어쩔 줄 몰라 하는 어미는 그 동안의 모진 고생을 그 기억 하나만으로 모조리 땅 구덩이에 파묻었다. 울 오래비가 살아 한 효도 중에 어밀 업어 줄 생각을 한 거..최고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도대체 아무리 끄집어내려 해도 그 이상의 선물을 한 거 같지 않은 건 순전히 나의 착각이려나.. 한번 물어 봐야겠다. 아버지의 죽음 이 후 여섯 자식을 억척으로 공부 시킨 넓은 집터에서 밀려난 어미는 서서히 늙어 갔다. 할 일이 너무나 많았던 자식들은 저 할 일에서 어미를 밀어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어미를 데리러 어떤 작은 골방을 찾았을 때다. 무수한 짐 다발이 폐허가 된 성벽처럼 쌓여 있는 그 작은 방 안. 밥상 자리 하나 겨우 디딜 만한 공간에서 어미는 오그라들고 있었다. 넓은 마당에서 부잣집 마나님 같았던 엄마의 얼굴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어미 곁에 있던 막내는 나이 든 영감 같은 미소를 지으며 그 환경을 감수하고 지켜 본 증인의 자격으로 이렇게 말했다. ‘누나, 엄마가 좀 이상해’ 천하무적 슈퍼 우먼 이 옥 선 여사님이 이상해졌다. 당황한 자식들은 이상해진 엄마를 붙들고 왜 이래 왜 이래? 물었지만 뜨악한 표정으로 허공을 헤매는 어미의 눈동자는 자식의 눈을 맞추지 못하고 허둥거렸다. 모진 세월에 모진 외로움에 야물었던 어미의 지혜는 금이 가고 그 명석한 기억력의 단층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당뇨로 신장을 내 준 어미는 오줌 줄을 매달고 자꾸만 나비를 쫓아 다녔다. 초등학생처럼 수건에 이름이 새겨지고 남동생이 어미와 저를 한 줄로 묶어 다녔지만 신기하기도 하지. 동생이 잠이 들면 야물게 매듭지어진 줄을 풀고 소풍을 갔다. 그나마 오래가지 않았다. 앙상하게 마른 다리 한 쪽이 부러져 비뜨름하게 이어 붙인 수술을 한 닥터는 어미가 다시는 걸을 수 없을 거라 했다. 정상적인 가정을 꾸려 가는 자식은 정상적인 삶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어 못 모시고, 비정상적인 생활을 했던 자식들은 그래서 또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나는, 비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던 자식에 포함되어 있었다. 오빠가 마련해 준 천정 높은 주택으로 이제는 환자용 침대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슬픈 엄마를 데리고 들어갔다. 옛날 고관대작이 서양인의 집을 본 따 만든 것 같았던 이층 집. 밤마다 페치카에 붉은 장작이 타 오르고 댄스파티가 열렸을 것 같았던, 그래서 밤만 되면 술잔을 든 요염한 여인의 웃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던 그 이상한 집에서, 나와 아들과 결혼 못한 노총각 두 동생이 구성되어 엄마랑 동거를 시작했다. 누워서도 엄마는 끊임없이 움직였다. 두 팔을 앞으로 뻗고 당신 몸이 움직일 수 있는 반경 안에서 이쪽과 저쪽으로 옆 돌기를 하셨다. 욕창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그런 몸짓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육남매를 낳은 이유를 그때 알 거 같았다. 일주일에 한번 씩 교대로 자식들이 엄마를 보살피라고, 나머지 하루의 몫은 내 아들이 해줬다. 여섯 명이 힘을 합치니 엄마가 가벼워졌지? 맥없이 피식거리며 웃는 엄마의 이유 있는 항변을 어지간히 늦게 깨달았지만 어쨌든 치매 걸린 엄마는 뿔뿔이 흩어져 살던 남매를 모이게 해줬다. 나는, 고백하건데, 신께 고백하건데 절대 착한 딸이 아니었다. 줄줄 밥알을 흘리고 국을 흘리면서도 몸짓을 멈추지 않는 어미의 등짝을 내려치고, 소리를 질러댔다. 두 언니가 밥만 보면 걸신이 들린 듯 먹어대는 어미를 위해 고기를 볶아 먹이고 가는 날이면 전화통을 붙잡고 악을 썼다. 야!! 네가 와서 엄마가 저질러 놓은 거 치울 거야? 바닥에 학습지 가방을 내 팽겨치고 두 다리를 뻗고 대성통곡을 하며 소릴 질러댔다. 아들 녀석이 그런 나를 보고 방문을 열었다 닫았다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무리 언니를 쳐다보며 ‘영기 엄마래요?’ 라고 부르는 치매 걸린 노인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런 내 발광을 못 들었을까... 끔찍하게 예뻐했던 어미의 사랑을 무참하게 짓밟은 막내딸이 뒤늦게 죄 값 치르는 심정으로 보살피리라 했던 다짐은 그저 허울 좋은 맹세였다. 엄마를 모시면서 나는 더 큰 죄를 지었다. 한번 씩 제 정신이 돌아온 거 같은 눈동자를 발견하면 줄기차게 물었다. “엄마 내가 누구야? 응? 내가 누구지?” 우물 안 검은 물결처럼 비쳐지던 엄마의 망막 안에 내 얼굴. 그 눈 안에 내가 들어가 있는데 엄마는 나를 보지 못했다. 그저 갈 길 바쁜 여인처럼 피식 웃고 다시 좌우로 몸을 틀어 대는 어미는 여전히 과거의 어느 부분을 여행하는 중인 듯 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경계, 무의식의 세계와 의식의 세계가 공존했던 엄마와 나의 동거. 그 틈바구니에서도 삶은 독백처럼 삐져나와 출렁거렸다. 나는 알고 있다. 부정 할 수 없는 엄마의 교훈을. 천방지축 날뛰는 막내딸을 세상 밖으로 내 놓고 미처 헤아리지 못했음을 눈치 챈 당신이, 늦게라도 그 딸을 인간으로 만들고 싶어 한 것을. 또 우리 가족은 알고 있다. 당신이 조금씩 허물을 벗고 조금씩 날개를 키우는 기간에 말은 잃어 버렸지만 여전히 자식들을 향해 무언가 말하고 싶어 했음을. 당신의 자궁 문을 열고 세상에 나온 육남매의 의미를 깨우치게 하고 싶었음을. 그렇게 속내가 깊어지고, 두려운 것을 알게 하고, 인생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 엄마의 오물. 그것이 더 이상 더럽게 느껴지지 않을 때, 씻어 내어 아기처럼 깨끗한 육신에 옷을 입힐 때마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을 때 더 이상 바락바락 소리 지르지 않아도 저절로 일상이라 느낄 때 한 줌도 안 되는 엄마를 꼬옥 안아주고 입을 맞추면 내가 착해지는 기분이 들 때 그럴 때, 겨우 간신히 그것을 알았을 때 엄마는 하늘 길을 열고 가셨다. 두창이 엄마로 불리는 걸 훈장처럼 자랑스러워했던 엄마는 그 두창이가 나타나서 가슴에 품어주자 눈을 감으셨다.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에게 끔찍한 효자였던 남동생은 임종을 놓친 한탄을 내뱉었지만 엄마의 신화는 맏아들 몫이었다. 우주를 들어 올리는 엄마의 위대한 전설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자식들이 다 파먹어 속이 텅 빈 마른 고목되어 그렇게 가버렸다. 지칠 줄 모르고 어미의 가슴을 후벼 파는 자식의 배신을 모두 용서하고 가셨다. 나는, 여자이기에 여자가 뭔지를 안다. 어미이기에 어미가 뭔지 자식이 왜 애물단지인지 안다. 그러나, 여자라 해서 모든 여자가 같지 않고 어미라 해서 모든 어미 마음이 같지는 않다. 자식 하나만 달랑 키운 내 마음의 6분의 5는 여자로 뜀박질하기 일쑤다. 온전히 자식의 어미로만 살기엔 억울한 여자의 마음이 그래서 울 어미처럼 살지 못하게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다시 태어난대도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 속을 다 갉아 먹은 자식들에게 빈 떡갈나무 되어 벌판에 버려지고 싶지 않다. 할 수만 있다면 어미를 다시 불러내어 새 생을 살게 하고 싶다. 내 죽은 후에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자식이 많은 들 무엇 하리..싶어서다. 그런데, 그 마음 끝에 따라오는 물음표가 있다. 그렇다면 너는 너의 어미보다 뭔가 달라야 하는데, 뭐가 다르지? ...................... 할 말이 없게 만드는 물음이다. 이제는 울 어미들 같은 맹목적인 희생을 감내하는 여인들이 많지 않다. 모두가 고개를 설래설래 내 저을 그녀들의 삶을 강요하는 이도 없다. 앞으로 일세기가 흐르면 우리들이 역사책에서 읽은 조선 여인의 은장도처럼 우리 어머니들도 옛날이야기 책으로 엮어질지 모른다. 답답하고 무참한 희생을 코웃음으로 응수 할 것인지 거룩하고 위대한 여인들의 공적으로 응수 할 것인지는 후손들의 몫이다. 육남매를 온전히 상처 하나 없이 키워 내고도 마지막 남은 우리 엄마 유품은 참으로 빈약했다. 모조리 다 주고 가난뱅이가 되어 버린 엄마는 번듯한 휴양소에도 가지 못했다. 그래서 자식들은 뒤늦게 물려받은 육신을 엄마에게 아주 조금씩 나누어줬다. 그나마 여섯 명이나 낳았기에 가능했지 이 옥 선 여사께서 달랑 나 하나만 낳았다면 어찌할 뻔 했는가. 남아있는 자들은 언제나 어리석기에 부모님 가신 후에나 가슴을 쥐어박는다. 왜, 더 잘해주지를 못 했나 회한의 눈물을 떨구지만 받기만 하고 자란 습성을 쉽게 고치지 못하는 것은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어떤 여인도 어머니만큼 따뜻할 수 없다. 그것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단 하나의 이유가 될 지라도 그래서 불멸의 진리가 되어버린 어머니 마음이라 해도 그 희생을 대신해 줄 가치 있는 선물을 절대 만들지 못한다. 그저, 저도 부모되어 한번 씩 되짚어 보는 걸로 죄책감을 일깨우면서 늙어간다. 얼마 전, 초로의 주름진 얼굴로 내게 이런 말씀을 하신 분이 계셨다. 강보에 싸인 어린 아이였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생각해 보라고.. 얼마나 그립고 외로웠겠냐고... 감당할 수 없을 사랑을 듬뿍 받은 자식임에도 그 빈자리가 이렇게 그리운데, 그 오랜 세월 하늘 가 엄마 별만 바라보며 그리움을 삼켰을 그 분의 쓸쓸한 독백이 불현듯 심장을 때린다.
출처: 豊友會 원문보기 글쓴이: 시보네/54
첫댓글 스스로 돌아 낮과 밤을 만들고태양을 돌아사계절을 만드는우리 어머니 /최종진오월가정의 달.감동적이였습니다.
가슴 밑바닥을 울리는 글에 시보네님의 환상적인 편집이 어우러져 명작을 낳았습니다! 이 세상에 계실때 잘 해드려야지 하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못난 자신을 한탄 해 봅니다.....
첫댓글 스스로 돌아
낮과 밤을 만들고
태양을 돌아
사계절을 만드는
우리 어머니 /최종진
오월
가정의 달.
감동적이였습니다.
가슴 밑바닥을 울리는 글에 시보네님의 환상적인 편집이 어우러져 명작을 낳았습니다! 이 세상에 계실때 잘 해드려야지 하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못난 자신을 한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