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담양
담양은 동서보다 남북으로 긴 형태를 하고 있다. 남면 유둔재의 남쪽을 제외하고 증암천, 오례천, 금성천, 용천 등 모든 물줄기는 하나로 모여 드넓은 창평벌과 담양벌을 만들면서 영산강의 상류부를 이루고 있다. ‘호남가’에 나오는 “백리 담양 흐르는 물은 구부구부 만경인데“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이다.
자연 이런 물줄기를 둘러 싼 산줄기는 추월산을 시작으로 가마골을 돌아 동쪽 산줄기를 이루면서 광덕산 - 서암산 - 설산 - 연산 - 만덕산 - 국수봉 - 까치봉 - 북산 - 무등산으로 이어지는 영산강과 섬진강의 분수계인 호남정맥의 한 맥을 잇고 있다. 추월산 남쪽 줄기는 밀재를 지나 도장봉 - 장군봉으로 이어져 병풍산이 병풍처럼 담양을 감싸다가 불태산으로 이어지면서 인접 순창 복흥과 장성군 진원면과 경계를 이룬다. 잠시 영산강은 담양의 봉산과 한밭 들녘을 지나면서 큰물을 이루는 영산강은 광주시 북구 용전을 지나 극락강으로 이름을 잠시 바꾸어 서쪽으로 흘러간다. 5.18국립묘지를 돌아서 청옥동으로 끊어질 듯 이어지는 구릉대를 지나 무등산자락의 덕봉산을 넘어 광주호를 경계로 광주시와 마주하며 이어진다.
이처럼 고도 4~600 여 미터의 산지로 둘러싸인 담양은 영산강 물줄기에 의해 화강암이 풍화 침식되면서 이루어진 창평들, 고서들, 수북들, 봉산들, 대전들 등 너른 들녘을 안고 있는 호수모양의 분지이다.
외벽의 산지는 북쪽의 겨울바람을 막아주는 장벽이 되면서 푄현상으로 겨울기온이 따뜻한 편이고 분지 안쪽의 산지들은 구릉성 산지로 음기 없는 햇볕을 듬뿍 뿜어내고 있다. 일찍이 이중환이 말하는 지리, 생리, 인심, 산수 같은 조건이 좋아 살기 좋은 터가 많았다. 자연 농업 생산성이 높아 천석꾼 만석꾼 하는 부자가 많았다. 그래서 쌀로만 빚은 창평엿이나 한과가 유명한 것도 그 연유의 하나일 것이다.
또한 이런 산세와,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적은 기후, 습기가 있는 비옥한 점토와 양토가 섞일 수 있는 수분수지 조건은 대나무 생육의 최적조건을 이루었다. 물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마을의 규모와 농업의 발달이 함께 한 결과이다. 그래서 담양에는 마을이 있으면 대가 있고, 사시사철 푸른 대가 있으면 마을이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담양은 옛날부터 전통산업으로 대나무와 죽물제품이 한반도 전체에서 제일 발달하였다. 이제 대나무는 담양의 이미지이고 예나 지금이나 대나무는 담양의 먹거리, 일거리를 제공하는 고마운 나무가 되고 있다.
대나무의 곧은 절개가 선비정신을 보여주듯 이곳 담양엔 특히 과거 한 때 면이 아니라 군이었던 창평이있다.
창평은 너른 들녘과 함께 광주의 인접성, 그리고 명산 무등산의 산줄기 자락을 따라 펼쳐진 관계로 경승지가 많고 인재도 많았다. 담양에 비해 진취적인 기상을 갖고서 과거 고정주에 의한 창흥의숙이 세워져 김성수, 김병로, 송진우 등이 한 때 이곳을 다녔다. 이미 예전부터 소쇄원, 식영정, 송강정, 명옥헌, 면앙정 등 정자와 시가문학이 발달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유명한 곳으로는 과거 화산활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추월산(731m)이 빙어가 자랄 정도로 깨끗한 담양호에 그림처럼 비쳐 서있고, 건너편엔 절경의 요새 금성산의 금성산성이 마주하며 대하고 있다. 영산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끄트머리는 담양의 용면 용연리 가마골이다. 원래 숯가마골이지만 용연폭포를 시작으로 영산강은 긴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북에 추월산과 담양호가 있다면 남에 무등산과 광주호가 있다. 농업지대로 일찍부터 관개를 위한 저수지가 많았으나, 영산강종합개발로 거대한 저수지가 이제는 사람이 찾는 호수가 된 것이다. 더구나 광주호 주변은 무등산 자락의 산세와 잘 어우리고 주변의 소쇄원, 환벽당, 식영정 등 가사문화권 유적이 그림처럼 전개되면서 무등산 최대의 관광지가 되고 있다. 대나무의 죽림원이 생태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음과 함께 담양읍 관방천 제방 위의 관방림은 그 수령과 함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담양의 국도나 지방도에 심어진 메타세콰이어 가로수는 울창하면서도 곧게 뻗어서 길을 에워싼 성벽처럼 이국적 풍경을 자아내게 하여 그 자체가 하나의 관광코스로 한 몫을 하고 있다.
이처럼 담양은 내륙의 위치에도 불구하고 너른 들과 영산강의 풍요로운 물줄기, 둘러 싼 산줄기, 그리고 호수와 대나무로 청정지역의 이미지로 성장하고 있다.
2. 금성천
전라남도 담양군의 금성면 동쪽에 위치한 덕진봉(384m) 서쪽 산록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영산강으로 유입하는 지방 하천이다. 덕진봉은 전라북도 순창군과 경계이다. 상류의 덕성리 일대에 소류지가 축조되어 있다. 유역에 금성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영산강과 합류되는 와룡 마을 일대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발달하고 있다. 지명은 이 하천의 지류들이 발원한 산성산(526m) 일대에 축조되었던 금성산성(金城山城, 사적 제353호)에서 유래되었다.
3. 금성산성
이 성은 호남의 3대 산성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삼국 시대에 처음 축조하였으며 임진왜란 후 1610년(광해군 2)에 성곽을 개수하고 내성을 구축하였다. 1622년(광해군 14)에 내성 안에 대장청(大將廳)을 건립하고 1653년(효종 4)에 성첩(城堞)을 중수하여 견고한 병영기지로 규모를 갖추었다. 성안에 객사, 보국사 등 10여 동의 관아와 군사 시설이 있었으나 동학농민혁명 때 불타 없어졌다. 동서남북에 각각 4개의 성문터가 있는데 통로 이외에는 사방이 30여m가 넘는 절벽으로 둘러싸여 통행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금성산의 주봉인 철마봉을 비롯하여 일대의 산지는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또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성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 되어 있으며 가운데는 분지여서 요새로는 완벽한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다. 이 같은 지리적인 특성으로 임진왜란 때는 남원성과 함께 의병의 거점이 되었다. 『해동지도』(담양)에 하천의 유로가 비교적 상세히 묘사되어 있고, 금성산성에는 장대, 객사, 창고와 4대문이 그려져 있다.
4. 용천
전라남도 담양군의 용면 추월산 남쪽 사면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영산강에 유입하는 지방 하천이다. 상류에 상월소류지가 축조되어 있으며 쌍태리 일대에 계류천을 이룬다. 이후 용면의 면 소재지인 추성리 일대를 지나면서 유역에 비교적 넓은 들을 이루고 있다. 이후 남쪽으로 흘러 월산면 만송리 일대에서 월산천을 합류하고, 담양읍 삼다교 일대에서 영산강과 합류한다. 지명은 발원지인 용면에서 유래되었다. 『해동여지도』(담양)에 용천으로 추정되는 지류가 산곡면(山谷面)에서 발원하여 영산강으로 유입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으며 '신천(薪川)' 지명이 표기되어 있다, 『여지고』에 "신천(薪川)은 서쪽 10리에 있다."라는 기사 내용에서 하천의 위치가 유사하다.
01 담양, 금성천, 금성산성, 용천.hwp
첫댓글 다시 한번 영산강을 회상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