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한국고교야구 대표팀이 콜롬비아, 대만에 이어 숙적 일본에까지 2-4로 패퇴하면서 최종 순위 5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야구라는 스포츠가 의외성이 큰 스포츠이기 때문에 승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문제이겠지만 이렇게, 세개팀에게 연패를 했다는 것은 결코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여기서 다시 4천개가 넘는 고교야구팀을 가진 일본과 60개도 안되는 한국의 그것을 비교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야구 인프라 핑계를 대려고 하지 마라..
차이가 많이 난다. 그러나 그게 언제는 안 그랬었나? 옛날에는 더 했다.
그러나 그런 절대 열세속에서도 한국고교야구가 일본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일본을 앞선 전력을 보여준 경우가 더 많았다.
노히트노런 9회,퍼펙트게임 2회를 기록한 괴물투수 "에가와"를 깨버린 1973년의 한국 고교야구팀.
1973년 동아일보 기사 중, 사진은 대구상고의 장효조선수..
73년에는 고시엔의 초고교급 스타 '에가와'를 유대성이 홈런으로 무너뜨렸고 프로 출범이전 마지막 한일 고교야구대회에서는 강기웅과 류중일등이 일본대표팀에게 “기본기”를 가르쳐 주며 완승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공부를 병행하면서 야구를 하는 일본애들과 공부보다는 야구에 더 집중해서 훈련해 온 한국선수들의 훈련방식의 패턴이 달라진 것은 없다.
어떻게 보면 아무리 고교야구 숫자가 적다고 해도 '엘리트교육'으로 다져진 한국고교야구가 '생활스포츠' 개념의 일본고교야구를 이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수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한국고교야구는 일본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역대전적도 27전 14승 9패 4무라고 한다.
고시엔의 영웅이던 가네무라 요시아키(한국명:김의명)을 녹다운시킨 1981년의 한국고교야구 대표팀, 슬라이딩하는 선수는 대구고교의 강기웅
그러나 이번에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성적도 성적이거니와, 한국고교야구대표팀의 플레이에는 배움의 학생야구에서 볼 수 있는 순수함이나 패기있고 투지넘치는 플레이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예전에 류중일처럼 기본기가 잘 되어 있는 모습도 볼 수 없었다.
이들의 플레이는 경산볼파크에서 뛰는 삼성라이온즈 2군선수들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었고, 오히려, 어떤면에서는 그들보다 더 프로의 냄새가 짙게 풍겨 나왔다.
감독인 이정훈부터 숙적 일본과의 대결에 앞서 압축배트 사용 논란으로 잡음을 일으키면서 일본으로 하여금 심리전이 아니냐는 비난을 들었다.
윤형배를 대신한 한국팀의 에이스 심재민, 초교 6학년때 키가 172cm가 넘었고 비거리 100m짜리 홈런도 친 적이 있었던 김해 엔젤스 리틀야구단 출신으로, 중1때 구속이 136km/h가 나왔던 리틀야구계의 '거물'이었다. 하지만... 야구선수로만 성장해 온 심재민보다 공부를 병행하면서도 160km/h를 던지는 쇼헤이 오타니를 가진 일본의 교육시스템이 부럽다.
순수해야 할 아마추어 학생야구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는 너무 "프로"같은 행동이었다.
우리나라 고교야구대표팀의 모습은 적어도 몽테가 본 마지막 대표팀이던 1981년의 그것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거의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그때와 지금의 한국고교야구 환경은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선수들의 목표의식의 변화
프로출범 이전 한국고교야구선수들의 꿈은 대학에 가서 멋진 대학생활을 마친 다음 실업팀에 가는 것이었다. 당시의 실업팀은 주로 금융권 은행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으면서 크고 작은 대회를 연중에 갖는 형식으로 운영되었다.
이 실업팀에 입단(입사)하게 되면 일단은 선수생활을 하는데 일반 대학을 졸업한 신입사원보다 입단 계약금이나 연봉이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요즘 프로야구 최고 스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스타급 선수는 그에 버금가는 정도의 거액의 계약금을 쥐고 입사할 수 있었고 이후 나이가 들어 선수로서 더 이상 뛰지 못할때가 되면 그 회사의 사원으로 일하게 되는 평생 직장이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야구만 잘하면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을 나온 선수가 아닌 동기생보다 오히려 안정된 미래가 보장되는 것이었다.
실업야구 최강팀이었던 한일은행과 한국화장품간의 대결을 보도한 1980년 동아일보
그리고 때로는 자신의 실력은 조금 모자라도 야구 동기생중에 장효조, 이만수같은 수퍼스타가 있으면 그 선수들 이름에 업혀서 같은 대학이나 실업팀으로 갈 수도 있었다.
따라서 요즘처럼 프로 진출이 아니면 완전히 '야구 폐인'이 되는, '모 아니면 도' 식의 일생을 건 모험이 아니었다.
그렇다보니 이들은 비록 교실에서 책을 보는 시간보다 운동장에서 공과 뒹구는 시간이 더 긴, 전형적인 오늘의 한국의 학생야구선수들과 같은 길을 걸었었지만 지금처럼 프로에 뽑히기 위한 동료간의 경쟁을 치열하게 의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교실에서 공부하는 동기생들보다는 더 동료의식이 투철했고 '우리학교', '우리팀'이라는 동료의식이 강했다고 말할 수 있다.
프로 아니면 죽음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
고교야구팀뿐 아니라 초등,중등학교도 마찬가지로, 학교 야구팀은 거의 그 선수 부모들의 금전적인 뒷받침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부모들이 그 팀 주위에서 생활하다시피 하고 있다.
가끔씩 TV중계에 잡히는 부모들의 열광적인 모습은 그런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부모들은 자신들의 아이(선수)들에게 아이의 장래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미래까지를 걸고 생활한다는 뜻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부모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거액의 돈과 시간을 자신들의 아이에게 "투자"하는 것이다.
프로에 진출해 주전까지 꿰찬 성공한 고교선수 김상수
자신들의 아이가 수퍼스타가 되서 프로야구단에 지명을 받으면 엄청난 계약금을 받을수 있고 프로에서 잘 하면 제2의 박찬호나 이승엽이 되서 엄청난 돈을 벌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자신들의 "사업"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동료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할 수 밖에 없고 팀 보다는 개인이 더 중요해지는 상황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결국은 학원스포츠를 옛날처럼 순수하게 나아갈 수 없게 한다.
"고교야구는 교육의 일환인 만큼 학생들이 야구와 야구 이외의 것들을 조화롭게 익히며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하도록 돕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 말은 일본의 전국고교야구연맹 회장인 오쿠시마 다카야스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인데, 그냥 들으면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우리나라 학원야구를 대입해서 생각해 보면 왜 현재의 우리나라 학원스포츠가 순수함을 잃어 버렸는지를 확실히 말해 주고 있는 듯 하다.
고시엔 본선에서 패한 고교생들의 전통인 "고시엔의 흙 가져가기",울면서 흙을 퍼담는 이들의 모습은 미래에 다시는 이런 패배를 당하지 않기 위한 다짐이라고 한다.
'교육의 일환', '야구와 야구 이외의 것들', 또는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등의 이야기들에 우리의 현실을 비춰보면 부끄럽기까지 하다.
더구나 그는 말미에 이렇게 이야기하며 결정타를 날린다.
"한국은 초ㆍ중ㆍ고교 줄곧 오전, 오후 내내 열심히 야구를 하며 실력을 키우고 있고 그런 와중에 강한 선수들이 늘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에서 야구는 모두가 직접 하며 즐기는 생활 스포츠에 가깝다.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한국을 꼭 이겨야 한다고 사람들이 말한다면 학생 선수들이 수업보다는 야구에 전념하도록 하게 할지도 모르겠다.(웃음)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역시 고교야구가 사람들의 응원을 받지 못하게 되지 않겠나"
일본에서는 확률로 보면 10명중 1명의 고교생이 야구선수라고 한다. 그래서 고교 야구 선수만 17만명이라고 하니 엄청난 숫자다. 그리고 여기서 프로선수가 되는 것은 그 어렵다는 한국의 프로야구선수가 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그렇지만 그 많은 탈락선수들이 우리나라처럼 야구폐인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야구로 해가 뜨고 지는 일본에서도 가장 인기있는 고시엔대회(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그들은 프로야구선수가 되기 위해서 야구를 한게 아니고 야구가 좋아서 야구를 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야구만 할 뿐, 같은 또래의 친구들처럼 평범한 꿈을 가지고 사는 일반 학생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우리의 경우, 과장해서 말하면 야구를 하기로 한 이상, 공부는 완전히 포기한다. 그리고 책과 교실보다는 볼과 운동장이 더 친숙하다. 그야말로 프로야구 준비생인 것이다.
이런 환경이 우리의 고교야구에서 배우는 학생의 "순수함"을 뺏아갔다.
학생야구는 순수해야 한다.
학생야구에서 현란한 기술이나 기교를 보기 바라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나중에 프로 선수들에게서 충분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야구에서는 교과서가 아닌 배움의 또 다른 항목인 야구를 통해서 그들의 순수한 열정과 패기, 도전 정신을 보여주면 된다.
옛날 프로출범 이전에는 실업야구나 대학야구보다는 고교야구가 훨씬 더 인기가 있었다. 지금의 일본과 비슷한 것이었다.
TV에서 대회의 대진 추첨을 했을만큼 폭발적이었던 고교야구의 인기
우리나라가 워낙 학연,지연 등 연줄에 목매는 바가 커서 상경해 있던 사람들이 고향에서 올라온 팀들이 펼치는 경기가 많았던 고교야구에 열광한 탓도 있었지만 실업이나 대학야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순수한 아마추어리즘을 가지고 있는 고교야구가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뻔한 유격수앞 땅볼을 치고도 1루로 전력 질주한다.
양준혁이 은퇴하면서 1루로 전력질주한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는데, 이것은 그 옛날 고교야구선수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것은, 어떤 순간에도 최선을 다 하는 학생야구의 가장 기본적인 모습이었다.
1973년 황금사자기 결승전에서 필사의 홈 슬라이딩을 하는 대구상고의 장효조, 그는 포수와 충돌하면서도 결승점을 올렸고, 기절해 응급실로 실려갔다.
그런 순수함이 기성세대들로 하여금 세태에 찌들어가는 자신들의 모습에 투영되어 옛 학창시절의 푸른꿈들을 상기하게 해 주었기 때문에 그 모습에 열광하였던 것이다.
지금 일본의 고시엔대회도 마찬가지다.
프로에서는 볼 수 없는 순수함이 있고, 그 옛날 자신들이 꾸었던 고시엔 구장에서의 꿈을 대신 펼쳐주는 어린 선수들의 모습에 열광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지금도 날고기는 현란한 기교를 가진 프로야구보다 순수한 열정을 가진 고시엔대회의 인기가 더 높다.
응원석의 열기, 이들의 모습에서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의 열정이 그대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고교야구의 인기가 사라진 이유를 홍보 부족이니, 너무 높은 프로야구의 인기때문이라느니말들이 많고 일리는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보지 못한 말들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야구에 학생은 없이 프로준비생만이 있을 뿐이고, 프로에 가지 못하면 반풍수가 되어야 하는 현실때문에 학생야구 본연의 순수함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이렇게 비판을 해놓긴 했지만 이 문제의 해결은 정말 어렵다.
제일 중요한 해결책은 선수들이 프로가 아니더라도 선수가 아닌 일반 또래 친구들 이상으로 안정된 미래가 보장되도록 해주어야 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다시 실업야구를 부활시켜서 프로에 진출하지 못하는 선수들을 취직시켜 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일본처럼 고교선수들에게 공부와 야구를 병행하라고 할 수도 없다. 그것은 그야말로 죽도 밥도 안되는 어정쩡한 인간을 만들어 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고교야구 주말리그, 선수들에게 학업의 기회를 주고자 하는
눈가림식 운영으로 마련한 제도지만 텅텅 비어 있는 관중석처럼 황량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그러나 반드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고교야구의 인기를 부활하기에도 필요하지만, 현재처럼 프로에 가지 못하는 80%의 선수들을 "폐인"이 되는 상황으로부터 구제하기 위해서도 해결책이 마련되기는 해야 하는 것이다.
몽테크리스토의 아이도 삼성라이온즈리틀야구단 출신이다.
야구를 좋아해 온 몽테의 성격상 아이가 이승엽같은 훌륭한 선수가 되기를 바라면서 제도권으로 보낼까도 생각해 봤지만 우리나라 현실에서 야구선수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야구선수 하나 만들기 위해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눈으로 본 이후에는 깨끗이 포기를 하고 말았다.
삼성리틀야구단의 마지막 백넘버 10번으로 남은 몽테Jr. 이 팀이 역사속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도 일본처럼(일본을 그 누구못지 않게 싫어하지만 이 부분에서는 정말 그들이 부럽다) 공부와 야구를 병행해도 야구폐인이 되지 않는 교육시스템이라면 아이가 원하지 않는한 무조건 야구를 하도록 놔뒀을 것이다.
오늘도 몽테크리스토 아닌 또 다른 야구를 미치도록 사랑하는 어느 학부모가 자신의 아이의 진로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빡빡머리를 한 이만수의 파이팅넘치는 플레이가 후배 고교선수들에 의해서 부활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다시 경북고등학교 유격수 유중일의 교과서적인 수비자세와 톱니바퀴처럼 짜임새있던 그 팀 선수들의 유기적인 플레이가 펼쳐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머리 좋고 열정이 가득한 우리 야구팬들이 나서서 한국의 학원 야구에 순수함을 되찾아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